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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시와 심상운
2015년 02월 17일 23시 41분  조회:4742  추천:2  작성자: 죽림

심상운론 ⦁ 2

 

 

 

문 덕 수 (시인⦁ 예술원회원)

 

 

 

1.

심상운(沈相運) 시인은 독실한 불교신자이므로 불교관계자를 끌어들여 얘기를 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필자의 편의상 장자(莊子)를 끌어들여 얘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심상운은 허순행의 『꽃잎만 붉다』의 해설에서 노장철학(老莊哲學)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공자는 기원전 4세기 전 활약한 중국 고대의 대사상가이나 공맹의 가르침이 오상오륜(五常五倫)을 중심해 질서와 신분을 고정화시켰지만, 장자는 자유, 무차별, 무위자연을 기본으로 했습니다.

장자에겐 혜시(惠施)라는 좋은 친구가 있었습니다. 호수(濠水)의 다리 위에서 그 아래의 강물을 바라보면서 “강물 속에서 물고기들이 즐겁게 놀고 있다.”고 장자가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혜자는 “너는 고기가 아니다. 고기가 즐거운지 어떤지 어떻게 아는가. 그렇지만 고기들은 번민하고 있는지도 몰라.” 장자는 반박하여 “나는 고기가 아니다. 그러나 너는 내가 아니므로 내가 고기 마음을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 네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어서 장자는 “청컨대 근본으로 돌아가라” 하고는 문답을 끝맺습니다. 네가 나에 대하여 “고기의 마음을 어떻게 알겠는가? 하는 순간, 너는 내가 고기 마음을 알 수 있음을 시인하고 있는 것이다”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莊子與惠子游於濠梁之上. 莊子曰; 儵魚出遊從容, 是魚樂也. 惠子曰: 子非魚, 安知魚之樂? 莊子曰; 子非我, 安知我不知魚之樂? 惠子曰; 我非子, 固不知子矣. 子固非魚也, 子之不知魚之樂全矣. 莊子曰; 請循基本. 子曰; 女安知魚樂云者, 旣已知吾知之. 而問我, 我知之濠之上也―『莊子』 「秋水」)

 

여기서 다시 공맹과 노장의 출생지를 따질 자리는 아니지만 조금 보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공맹의 고향은 산동성 곤주부(袞州府)이고, 노장의 향리는 하남성 귀덕부라고 합니다.

이 두 곳은 직선으로 연결하면 한국의 이수로서 2백리. 근거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 거리로서 남북사상의 대립을 말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특히 광막한 중국에서 말입니다. 공맹은 북방 사람입니다. 중국의 북방인은 특히 현실적입니다. 남방은 허무적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심상운은 공맹보다 남방의 노장에 더 가깝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허유(許由)라는 사람이 요(堯) 임금을 찾아왔습니다. 허유는 당시 유명한 은자(隱者)입니다. 요임금에게 방문의 뜻을 말합니다. 요임금은 허유에게 “지금까지 천하를 다스릴 자를 찾아 왔습니다. 당신을 만나고 나서 이 직위를 당신에게 양위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일광(日光) 밑의 거화(炬火) 한 개비의 빛으로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시우(時雨)가 내린 후에 우물물을 관개(灌漑)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번엔 꼭 당신에게 양위할 생각입니다.” 허유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천하를 다스린다면 내가 맡을 것은 무엇입니까? 천자의 이름만을 얻기 위한 것이라면 실없는 짓입니다. 실(實)의 빈(貧), 실이 있어야 그 이름이 있어요. 당신은 나를 보고 안 되었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만 내게는 내 만족이 있습니다. 메추리(?)는 숲속에 둥지를 틉니다. 아무리 광대한 숲속의 둥지라 할지라도 결국 하나의 소지(小枝)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 두더지(?)를 보십시오. 끝없는 강물의 흐름에서 물을 마십니다. 아무리 황하가 크다고 할지라도 그 두더지의 마시는 물은 조그마한 배를 채우는 몇 방울의 물입니다.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내게는 내 만족이 있습니다. 다시는 양위 문제를 내놓지 마십시오”

 

(堯讓天下於許由, 曰; 日月出矣, 而 爝 火不息, 其於光也, 不逆難乎? 時雨降矣, 而猶浸灌, 其於澤也, 不亦勞乎? 夫子立而天下治, 而我猶尸之. 吾自視缺然, 請致天下! 許由曰; 子治天下, 天下旣巳治也, 而我猶代子, 吾將爲名乎? 名者, 實之賓也, 吾將爲賓乎?

鷦 鷯 巢於深林 不過一枝, 偃鼠飮河, 不過滿腹, 歸休乎君, 予無所用天下爲. ―『莊子』 「逍遙遊」)

 

나는 심상운과 비견할 만한 인물을 찾다가 우연히 허유(許由)라는 한 인물을 찾았습니다. 심상운을 허유의 곁에 갖다 놓은 것은 무리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허유는 너무도 크고 너무나 굉장한 전설을 소유하고 있어서 좀 어떨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여기서는 그런 명성적, 역사적 전설과는 관계가 멉니다만 심상운의 근본 성격과 관련되는 듯싶습니다. 심상운의 과거 경력의 여러 가지 면이 천하를 주어도 싫다고 하는 허유와 일맥상통합니다. 나는 심상운의 그러한 면이 자랑스럽게 생각되고, 또 그러한 면에서 새로운 시론의 가능성도 믿습니다. 심상운은 공맹(孔孟)에는 모자라는 점도 있으나 노장(老莊) 쪽에 더 가깝게 생각됩니다.

 

2.

나는 몇 번 하이퍼의 내부(단위와 단위) 연결의 양상을 말한 바 있습니다. 심상운의 최근 시에서 하이퍼시의 여러 가지 연결의 양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실례를 좀 들겠습니다.

 

[A] 꽃이 1cm 될까말까 한

배추벌레 한 마리가

 

파란 배추 잎 위로

배밀이하며 올라가고 있다

-「길」 부분

 

[B] 누가 푸른 바다를 유리병 속에 넣고 어항이라고 했을까? 열대의 두 마리 맨살 번득이며 유유히 지느러미를 흔들고 있는 오전 11시 20분 한 쌍의 남녀가 산호초 화려한 바다 속을 보며 어깨를 감싸고 있다

-「맨살에 링크하기」 부분

 

먼저 [A]의 고리 연결 방식부터 봅시다. [A]에서는 단위가 분류되어 있습니다. 배추벌레가 배추잎사귀에서 배밀이하면서 기어 올라가고 있음을 묘사한 단위입니다. 그런데 마추픽추의 돌벽을 기어 올라가는 벌레의 모습은 단위를 별도로 만들어 즉 별개의 단위로 만들어 연결합니다. 지금 마추픽추의 돌벽을 기어올라가는 광경은 예문에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만 나타내어도 배추잎사귀 위를 기어 올라가는 광경과는 별도로 되어 있습니다. 현재의 순간의 시간 경과를 나타내는 벌레의 이동 광경을 표시한다고 하더라도 [A]단위에의 두 시간 경과 사이에 패여 있는 갭은 내가 이 논문에서 말하는 초월의 한 양상입니다. 하나는 자연에의 시간 이동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에서의 시간 이동입니다. 이러한 시간 이동 경과에 따라 생명 현상이 이어지거나 망가지고 있습니다. 어쨌든 문제는 이러한 고리 이미지가 단위를 구별해서 연결되고 있음을 작자는 보여주고 있고, 이것도 한 방법입니다. 그 다음의 [B]에서는 어항속의 열대어 두 마리와 어항 대신에 산호초 화려한 바다 속을 보며 남녀가 어깨를 감싸고 있는 모양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어항 속의 열대어 두 마리와 산호초의 바다 속을 바라보면서 어깨를 감싸고 있는 남녀 한 쌍의 광경이 한 편의 한 센텐스 속에 비교되고 있습니다. 가령,

 

아침 10시, 그녀는 파란 의자에 앉는다

 

앉아 있는 그녀를 하얀 구름이 휩싸고

빨간 버스가 그녀와 구름을 싣고 달린다

-「파란 의자」 부분

 

와 같이 연(단위)을 달리하여 연결해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어쨌든 이러한 연결방법도 있는 듯합니다. 한 단위 안에서의 연결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심상운은 앞의 「길」에서 보여준 배추벌레의 이미지에 의한 연결 방식과 여기의 [B]에서 보여준 연결 방식(어항의 열대어 두 마리나 어깨를 감싸고 있는 한쌍 남녀, 「파란의자」에서 보여주는 파란 의자에 앉는 여자의 이미지)은 분명히 다릅니다. 앞의 「길」에서 보여주는 단위 속의 두 이미지 사이에는 큰 균열이 있고, 그 균열은 단순한 어휘의 연결이 아니라 그 속에는 굉장한 깊은 초월의 갭이 있습니다. 그것이 단위 간의 갭입니다.

심상운의 시에서는 여러 가지 연결의 방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자에게는 종전의 시처럼 감정이나 관념이 곧 전달되지 않습니다. 조금 참고 견디며 고리 이미지를 찾아보는 그런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것도 하이퍼시를 읽는 즐거움의 한 가지입니다.

앞의 시「파란 의자」(하이퍼시클럽의 동인 모임의 『하이퍼시』라는 앤솔로지가 있습니다. 이 동인지에 실려 있는 시입니다)는 매우 재미있고, 또 하이퍼시를 읽는 독자의 즐거움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다시 전문을 싣습니다.

 

아침 10시, 그녀는 파란 의자에 앉는다

 

앉아 있는 그녀를 하얀 구름이 휩싸고

빨간 버스가 그녀와 구름을 싣고 달린다

 

(TV 속에서는 굶주린 하이에나 두 마리가 뚝뚝

뻘건 피 떨어지는 누우 새끼의 허벅지를 입에 물고

아프리카 초원을 달리고 있다)

 

그녀는 파란 의자 위에서 구름이 만든 아이스크림을

한 입 넣어 물고

무거운 가방을 든 검은 외투의 사내에게 손을 흔든다

사내도 그녀를 보고 웃으며 손짓한다

 

버스 안은 침묵들이 움직이고 있는 빈 악보 속 같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음표들이

투명한 물방울로 둥둥 떠다니고 있다

 

그녀는 그 방울들을 손가락 끝으로 톡톡 터뜨린다

그럴 때마다 방울 속에서 나온 노란 알몸의 소리들이

쪼로롱거리며 버스 안에서 뛰어놀다가 바람에 실려서

도시의 하늘로 줄지어 날아간다

 

도시를 빠져나온 빨간 버스는

돌고래들이 솟구치는 태평양 바다 위를 달린다

 

출렁이는 바닷물이 그녀를 덮친다

그때 그녀의 가슴 속에서 뛰쳐나온 물고기 한 마리가

은빛 지느러미를 퍼들거리며 튀어오른다

 

순간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2001년 9월 11일 아침, 뉴욕 무역센터 쌍둥이빌딩

눈부신 유리창 속으로 날아 들어가 굉음을 내며

폭발하는 은빛 비행기

 

(그 은빛 비행기에는 검은 외투를 벗어버린

알몸의 사내가 타고 있었다고?)

 

아침 11시, 빨간 버스는 아마존 숲 위를 날아가고

그녀의 파란 의자는 더 반짝이기 시작한다

-「파란 의자」 전문

 

좀 긴 작품입니다. 좀 긴 작품을 가지고 감상해 봅시다. 제1연에 “아침 10시”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연월과 시간이나 날짜는 사물 묘사에 있어서 현장의 시간을 잘 나타내는 요소입니다. 심상운의 시에서는 날짜와 시간이 잘 제시됩니다. 묘사의 사주(四柱)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파란 의자’에 앉고, 앉은 그녀를 구름이 휩싸고 공중으로 날아가고 지상에서는 빨간 버스가 그녀의 구름을 싣고 달립니다. 완전히 상상 속의 이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형이상적 세계 속의 이미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구름이 만드는 아이스크림’은 비유인 동시에 상상 세계 속의 이미지입니다. ‘실제의 아이스크림’과 역설적 대조를 이루는 이미지입니다. 독자는 여기서 파란 의자에 앉은 그녀와 빨간 버스에 탄 구름과 그녀의 두 이미지를 비교해 보는, 그래서 사물과 허구의 두 이미지의 ‘역설’을 보는 시적 감수력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 다음은 괄호 속의 이미지도 실은 사실과 상상세계의 역설을 보여줍니다. 파란 의자와 하이에나 허벅지를 입에 물고 있는 두 이미지의 비교 관찰에서 실제(현실)와 상상의 역설적 비교와, 그리고 현실적 초월성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의 이미지의 광경은 변화를 거듭하여 무거운 검은 외투의 사내와 파란 의자에 앉은 여성과의 만남이 등장합니다. 마치 연애장면을 연출하는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장면은 다시 변화하여 버스 안의 침묵의 빈 악보의 광경을 제시합니다. 그런데 태어나지 않은 음표들의 물방울이 파란 의자에 앉은 그녀에게 닿은 그 침묵의 음표들을 톡톡 터뜨립니다. ‘노란 알몸의 소리’라고 하며 색채감각으로 그 음표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연은 또 한 번 대전환을 합니다. 즉 빨간 버스는 돌고래들이 솟구치는 태평양 바다 위를 달리는 상상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이것은 굉장한 세계에의 전환입니다. 다음의 현장은 무역센터 쌍둥이빌딩의 폭파현장입니다. 이것은 세계적인 정치 현실의 도입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검은 외투를 입은 청년은 뜻밖에도 무슬림 폭파범의 일인으로서 그 비행기에 타고 있었던 범인의 한 사람인 듯합니다. 파란 의자에 앉았던 사람은 손을 흔들면서 교신했던 것으로 보아 그 남자와 여자는 다 같은 쌍둥이빌딩의 폭파범으로 보입니다. 폭파범은 체포되었는지 그 다음엔 보이지 않고, 그 파란 의자만 반짝이기 시작합니다.

이 시는 결국 이 속에 폭파범들이 잠복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허구입니다. 이렇게 이 시 전체의 구조를 알고 다시 읽어보면 무척 재미있는 시로 느껴집니다. 모든 하이퍼시가 다 이러한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러나 이러한 구조도 있다는 것은 알고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심상운의 하이퍼시는 하이퍼의 여러 가지 단위간의 연관관계를 연구해 볼 수 있는 실례의 구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비유의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연결도 두 단위의 연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합니다.

 

3.

심상운 시의 저서 중에 『의미의 세계에서 하이퍼의 세계로』라는 저서가 있습니다. 21세기 한국에서 전개된 디지털과 하이퍼시의 세계를 개략한 저서(푸른사상사, 2010)이며, 이 저서는 김기림의 『시론』(詩論, 白楊堂, 1947)에 버금갈 시대적 의미가 있는 저서입니다. 김기림의 저서는 모더니즘을 중심으로 한 시론이지만 심상운의 저서는 디지털과 하이퍼시를 조명한 시론입니다. 내용의 차이가 있으나 모두 한 시단의 동인지운동으로 살펴볼 수 있는 저서입니다.

심상운이 진술한 한 가지 특징은, 그 진술은 근거의 추구를 통해서 전개해 나가는 것입니다. 심상운은 앞의 저서에서 디지털시와 하이퍼시를 비교하고 있거니와 그런 경우에도 디지털시의 경우, 그 데이터의 본질에 육박해서 디지털의 논리를 전개해 간다는 점에서, 애매하고 모호한 관념에서 진술하고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근거나 본질을 확실히 파악해서 논리를 전개하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시하고 있는 점은 디지털시의 근원입니다. 예를 들면 “분리와 결합이 가능한 디지털시의 탈관념된 언어단위(unit)들은 결합을 통해서 대상의 모습(현상)을 드러내지만 분리(해체)를 통해서 존재의 본질을 확인하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본질이나 근거를 애매하게 두고 그냥 넘어가지 않은 그의 태도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을 볼 때, 그의 진술 태도는 신뢰할 수 있습니다. 또 심상운은 오남구의 「달맞이-데몬스트레이션」을 인용하고 특히 퐁퐁퐁퐁 가로를 딛고 간다와 같은 표현을 언어 기호만으로 존재하게 되는 현대시의 초현실주의에서 주장하는 오브제론으로 보고 있는 듯합니다. 그는 컴퓨터가 열어놓은 사이버세계는, “제2의 생활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가상(virtual)세계, 현실과 경계선의 모호한 세계가 되었고…”에서, 컴퓨터 같은 IT정보시대의 중요한 현실의 도입이 확실시 되는 것입니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그가 말하는 기호와 현대 프랑스의 기호론자인 보드리야르의 이론과 연결된다는 점입니다.

다음엔 이미지에 관한 논의입니다. 이미지(image)라는 언어는 허구를 주장하는 어원으로, 상상(imagination)과 같습니다. 심상운은 상상과 공상에 관한 이미지에 관하여 논하고 있습니다. 요즘 문학의 장르론이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문학에서 장르론은 중요한 영역입니다만, 그러나 그 장르를 마치 도구처럼 사냥하는 주체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시의 장르는 시인이며, 시조의 장르는 시조시인이며, 평론 장르의 주체는 평론가입니다. 장르의 중요성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주체와 장르와의 관계입니다. 즉 그 장르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활용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 점은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이퍼시에서 장르의 붕괴론을 주장하는 이유는 하이퍼가 현실에 무게를 두면서 상상을 초월하려고 하고 나아가 ‘공상 지향’이 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이퍼시의 이미지가 상상보다 공상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듯합니다. 왜 상상 쪽보다 공상 쪽에 더 무게를 두는 것일까요? 이는 이미지가 실제의 사물의 존재에 무게를 두는 그런 것과는 관계가 없지 않은가, 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인 듯합니다. 하이퍼시도 사물의 이미지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러니까 이미지의 존재에 관한 관심도 이미지의 실체(實体)로 오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심상운은 이미지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이는 프랑스의 금세기의 철학자인 보드리야르의 사상과 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즉 이미지는 실체가 없는, 즉 공상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듯합니다. 이미지는 사물의 실체를 가지느냐 안 가지느냐 하는 이미지론의 가장 중요한 핵심인 것 같습니다. 결국 이미지의 표현은 ‘식’(識)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 불교의 유식론인 듯합니다. 어쨌든 이와 같이 이미지는 공상이든 상상이든 이 모든 문제를 본질로 보고 있음이 심상운의 근본 자세인 듯합니다. 사물은 진실에 있어서 자성이공(自性而空)이라는 사상과도 직통합니다.

 

4.

하이퍼시로 넘어가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심상운의 저서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보입니다. 하이퍼텍스트의 시에서는 이미지는 목적의식과 연관되어서 의도성을 갖게 되고 비유적·상징적 의미를 갖게 되는 합리적이고 논리적 상상(imagination)보다 콜리지(Coleridge, 영국의 문예비평가)의 말처럼 시간과 장소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펼쳐지는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인 공상(fancy)에 더 비중을 두게 됩니다. 공상은 목적의식이 없이 공상의 가지치기를 보여주는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공상의 가지치기는 어떤 고정된 의미를 갖지 않음으로써 독자들에게 다양한 가상공간을 제공합니다. 공상은 목적의식의 좁은 공간에서 벗어난 무목적의 넓은 공간 속으로 시인과 독자를 안내합니다. 이것이 순수한 하이퍼텍스트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삶의 현실을 외면할 때, 시는 관념 쪽으로 끌려들어가게 되고 박제(剝製)와 같은 이미지의 그림만 남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현실과 하이퍼텍스트의 상상력이 어떻게 조화로운 화합을 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유로운 상상과 현실 속에서 시의 싱싱한 감각이 생동하기 때문입니다.(『의미의 세계에서 하이퍼의 세계로』 171~172쪽). 여기에 하이퍼시의 본질에 육박함으로써 직면하는 공상과 접촉에서 오는 또는 직면하는 양면을 논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이 점에 대하여 염려가 되므로 하이퍼시가 가지는 파라독스의 측면에서 논한 바 있습니다만...

심상운은 하이퍼시도 오남구의 디지털시에서 발전한 것인 듯 말하고 있습니다. 오남구가 내세운 ‘탈관념’, ‘빈자리X’, ‘껍데기론’은 디지털시의 바탕이 되는 존재성을 갖는다고 말합니다. 오남구는 그의 선언에서, “아날로그시대의 시가 기술(記述) 또는 자동기술하는 것이라면, 미래의 디지털시대의 시는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염사’(念寫) 또는 ‘찍는다’는 행위라고 하였다. 찍는다는 행위는 관념의 세계를 사물성의 보여주기의 세계로 전환하는 것으로 시의 현장성과 연관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의미의 세계에서 하이퍼의 세계로』 213쪽)

심상운은 하이퍼시의 배경 이론인 리좀(rhizome)의 개념을, “수평형(水平形)이라는 점에서 현대철학(포스트구조주의)에서의 중심의 집중에 반대되는 다양화 또는 탈-중심체계를 의미하는 용어로도 쓰인다. 현대사회학에서는 이런 형태의 사회를 구성상으로는 씨줄/날줄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망상사회(網狀社會, grid society), 주도적 노선이 아닌 임의적 진전경로로 특징되는 ‘리좀사회(rhizome society )’라고 한다. 이런 네트워크 체계를 현대시의 무한상상(無限想像)에 접합하여 응용한 것이 하이퍼텍스트적인 시다. 따라서 ‘하이퍼시’는 가장 발전된 상태의 디지털시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지하는 바와같이, 들뢰즈는 수목상(樹木狀)의 조직형태의 전형으로서 드러나는 일자중심(一者中心), 이항대립(二項對立) 진행에서의 해방은 리좀의 불균형성, 무법칙성(無法則性) 등을 말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욕망(慾望)을 미세한 입자(粒子)의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흐름이 상호 결합하고 분리하면서 방향을 바꾸고 증식(增殖)하는 과정을 욕망이라고 하는데 그 욕망과 관련됩니다. 이것은 장소로서의 운동으로써 획득되는 탈속령화(脫屬領化) 쪽이 본래적인 것으로 보는 사상과 일치합니다. 여기서 컴퓨터 상의 공간이 아닌, 즉 종이에 표시되는 문자 하이퍼시에서 링크의 역할을 보고 있음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의식과 무의식의 흐름, 기표의 흐름, 장면의 변화, 소리, 유사한 단어, 구문 등의 반복 그리고 자유연상, 현실과 환상의 교차, 시간과 시간, 공간과 공간의 넘나듦 등의 다양한 사상과 이미지의 표현방법으로 구현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를 구현한 것이 오남구의 시가 주장하는 이미지의 미끄러지기, 말의 덩어리, 또는 마디 점핑하기 등으로, 이는 시인의 무의식 속에서 이미 이루어진 정신현상이 시의 언어로 표출된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한 예를 보인 것이 오남구의 「봄이 차 한잔을 놓는다」와 같은 시라는 것입니다.

 

봄이 부~드~럽~다 눈을 쏟아내리고 골목이 투명하다 살얼음이 진 공기 팽팽한 막을 만들어 울타리의 장미덩굴이 꼼짝 않는다. 새벽녘의 고양이가 스릉~ 팽팽한 막을 건드리고 간다 부~드~럽~다 내가 만진다 스릉~ 한꺼번에 사물들이 깨어 일어난다 길이 열리고 골목으로 어둠이 콸콸 흘러내리고 숨소리가 흘러내린다 그 때 삭풍에 장미덩굴이 뒤척이는 듯싶다 꿈틀꿈틀 움직이며 내 귀에 가까이 대고 “배아줄기세포이야긴데……” 속말을 하여 내가 장미덩굴을 들추어 본다

-「봄이 차 한 잔을 놓는다」에서

 

여기서 링크의 역할을 하는 것이 “부~드~럽~다”, “스릉~”과 장미덩굴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배아줄기세포의 상상, 고양이의 이미지 등입니다. 심상운은 여기서 인과관계에서 벗어난 의식의 불연속적인 흐름은 시의 흐름을 시적 형상화를 통해서 순간적 직관에 의한 보여주기(showing) 한 것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5.

심상운은 또 문덕수의 문제의 장시 「우체부」의 기법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비평가들이 작품 비평에 있어서 그 작품의 내적인 어떤 특색을 그 작품의 밖에 있는 역사나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특성과 관련시켜 보는데 비하여(나는 이러한 방법을 역사주의라 봅니다), 심상운은 작품 자체를 그 형식적 방법으로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평은 우리 시대에 있어서 일종의 혁명적·혁신적 사태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는 역사주의 비평에서 벗어나서 작품 자체의 시적 예술적 방법론에 입각한 시대로 바뀐 것입니다. 언어(기호)가 역사를 가리키던 시대는 가고 역사 자체가 알맹이로 남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심상운은 「조셉룰랭」의 부분을 인용하고 고향의 뒷동산 호수 → 어머니의 양수 → 잉어가물치 → 서낭당, 나무 → 우체부, 가방 → 빈, 동그라미 → 달망산 → 우발수 → 유화 → 닷되들이만한 큰 알→사문의 바랑 등으로 이미지가 의식의 흐름이나 자유 연상, 이외에 어떤 인과나 논리도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들의 연결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현실과 비현실을 초월합니다. 여기서 초월한다(hyper)라는 것은 이론적인 것들이 아무런 조건 없이 결합하고 자유롭게 새로운 세계를 형성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관념이 탄생되기 이전의 무의미의 공간이며 현대시에서 말하는 하이퍼텍스트(hypertext)의 세계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리고 하이퍼시의 기법을 열거하고 있는데, 1)불연속적인 연결과 총체적인 현실 인식, 2)단선구조의 시에서 해방된 다선구조의 세계, 3)사건을 생생하게 감지하게 하는 사실적인 표현기법, 4)펀(pun), 5)언어 유희 등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단선구조의 시에서 해방된 다선구조의 세계는 가장 자극적이고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선구조는 논리적(인과적)이고 공리적인 선명한 주제의식의 단선구조에서 벗어나 현실과 가상현실의 복합구조를 시에 도입하여 상상의 영역을 넓히고 이미지의 독자성을 시의 중점에 두고자 하는 시의 방법이다.”(『의미의 세계에서 하이퍼의 세계로』 227쪽) 이것은 그의 다른 논문에서 지적하는 1)이미지의 독자성, 2)풍부한 상상의 세계, 3)미래 지향의 예술적 공간을 다시 언급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선 구조에 대한 해설은 동시에 하단에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21세기 한국의 시인들은 대부분 길이에 관계없이 한 편의 시에 하나의 시점(단일시점)만 존재케 하면서 하나의 이미지 또는 하나의 메시지(의미)를 전달하는 데 집중하는 시를 쓰고 있다. 시 속의 사건과 인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건과 인물들은 시 속에서 시인(시적 화자)에게 종속되어서 독립된 시점을 나타내지 못하고 시의 대상(소재)으로 존재할 뿐이다. 이런 단일한 시점의 단선구조는 그림의 원근법(遠近法)과 같이 한 곳에 중심을 두고 하나의 시점에 대상을 집중시킴으로써 독자들에게 안정감을 주고 작자가 의도하는 세계로 들어가려 한다. 그런 기법은 미술의 역사에서는 19세기적인 기법이다. 이 단일 시점의 원근법을 깨뜨린 것이 20세기초 파블로 피카소나 조르주 브라크가 일으킨 큐비즘(Cubism) 운동이다.”(동 상서 227쪽~228쪽) 이것은 다선구조의 의미를 해설한 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하이퍼시의 중요한 점을 지적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6.

『장자』(莊子) 중에 다음과 같은 인물 묘사가 있습니다. 장자는 구루병(佝僂病, 곱사등이)으로 근대의 잔병을 면하게 된 지리소(支離疏)라는 사람의 자유와 행복을 찬양하면서 심한 곱사등이를 묘사한 것이 있습니다.

 

지리소라는 곱사등이는 그 병 때문에 징병(徵兵)에 면제되어 자유와 행복을 누리면서 장자의 ‘무용(無用)의 철학’을 논합니다. 지리소는 그의 턱이 배꼽 밑에 달렸고, 두 어깨는 머리보다 높고, 상투는 하늘로 치솟아 있고, 오장(五臟)은 머리 위쪽에 붙어 있고, 두 다리가 몸 옆구리에 붙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키질을 해서 쌀을 고르면 열 식구를 먹여 살릴 수 있었고, 나라에서 징집하더라도 나가지 않아도 되는 지리소는 팔을 휘저으며 사람들 사이를 유유히 걸어다니지만, 그는 언제나 병신이라는 이유로 끌려가지 않았습니다. 나라에서 신체 부자유자에겐 곡식을 내릴 때에는 3종(지금의 50리터에 해당함 6斛 4斗 정도라고 함)의 곡식과 열 다발의 땔나무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육체가 온전하지 못한 사람이라도 그 목숨을 충분히 마칠 수 있었으니 하물며 그 덕이 온전하지 못한 자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支離疏者, 頣隱於齊, 肩高於頂, 會撮指天, 五管在上, 兩髀爲脅, 挫鍼治繲 , 足以餬 口, 鼓筴 播精, 足以食十人, 上徵武士, 則支離攘臂而 遊於其間, 上有大役, 則支離以有常疾, 不受功. 上與病者粟, 則受三鍾, 與十束薪 夫支離其形者, 猶足以養其身, 終其天年, 又況支離其德者乎? -『莊子』 <人間世>)

 

곱사등이라 하더라도 지나친 묘사 같지만 장자의 주제인 “무용(無用)之 용(用)”을 드러내는 데는 충분한 듯합니다. 그런데 정상인과 곱사등이와의 대조는 큰 역설(paradox)입니다만, 이런 역설의 효과를 심상운은 무엇이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하간 굉장한 패러독스입니다. 하이퍼시는 이런 특징도 중시하는 것 같습니다.

 

7.

잡담 한 가지를 덧붙이겠습니다.

어느 날 대공원숲 둘레길을 한바퀴 돌고 점심식사를 하다가 끝나갈 무렵에 심상운이 문득 “오늘은 안광태가 없어서 좋네”라고 한마디 무심코 했습니다. 모두들(문덕수, 김규화, 강정화, 김예태, 허순행, 정연덕 등) 갑자기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정말 의외의 폭소였습니다. 병(대상포진?) 때문에 오랫동안 참석하지 못한 안광태를, 대장(심상운)이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이 나서 웃었지만, 점심이 끝나자마자 나누어주는 작품이 배부름에 상당히 부담스러웠기 때문인 모양입니다. 그런 부담감에 불을 질러 짓눌려 있었던 참가자들에게 불을 지펴 뜻하지 않는 패러독스의 웃음을 터뜨리게 된 듯합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안광태의 시 연구는 결국 하이퍼시 연구로 연결되어, 그만큼 이 시의 중요성은 참가자들이 인식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고 이와 같이 연구모임에서 토론의 주제가 되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하이퍼시의 난해성은 하이퍼시의 패러독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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