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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봄 3월 김소월 가는 봄 삼월, 삼월은 삼짇 강남 제비도 안 잊고 왔는데, 아무렴은요 설게 이 때는 못 잊게, 그리워.
잊으시기야, 했으랴, 하마 어느새, 님 부르는 꾀꼬리 소리. 울고 싶은 바람은 점도록 부는데 설리도 이때는
경칩 박성우 봇물 드는 도랑에 갯버들이 간들간들 피어 외진 산골짝 흙집에 들었다
새까만 무쇠솥단지에 물을 서너 동이나 들붓고 저녁 아궁이에 군불 지폈다 정지문도 솥뚜?도 따로 닫지 않아, 허연 김이 그을음 낀 벽을 타고 흘렀다
대추나무 마당에는 돌확이 놓여 있어 경칩 밤 오는 비를 가늠하고 있었다 긴 잠에서 나온 개구락지들 덜 트인 목청을 빗물로 씻었다
황토방 식지 않은 아침 갈퀴손 갈큇발 쭉 뻗은 암수 개구락지 다섯 마리가 솥단지에 둥둥 떠 굳어 있었다
아직 알을 낳지 못한 암컷의 배가 퉁퉁 불어 대추나무 마당가에 무덤이 생겼다
꾀꼬리가 짜내는 봄 유극장(송나라) 버드나무로 몸을 던졌다가 교목으로 휙 옮겨오며 마냥 다정스럽고 꾀꼴꾀꼴 때로 베틀소리를 낸다 낙양의 삼월 꽃은 비단처럼 화사한데 얼마나 많은 공력을 들여 짜낸 것일까
나의 하나님 김춘수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늙은 비애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의 마음 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또 대낮에도 옷을 벗는 여리디 여린 순결이다 3월에 젊은 느릅나무 잎새에서 이는 연두빛 바람이다
맑은 봄날 전영애 아직은 차가운 3월 눈부신 청명
흙밑에 엉겨 있는 생명들의 연록빛 꼬물거림이 다 어려 비칠 것 같다
그 청명을 내다본다
헐레벌떡 집 한 채를 겨우 짓고 혹은 그나마 못 짓고 죽을 내가
무한한 순간 프로스트
바다와 나비 김기림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靑 무 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봄강 박남준 겨울 철새들이 기억 기억 기억해요 다시 돌아오마고 기역 자를 쓰며 떠나간다 강물이 글썽이며 반짝반짝 손을 흔든다 그 강가 버들강아지들 떼거지로 깨어나서 꼬리 치며 이별하는 삼월 봄 강 풍경
봄날의 농촌 풍경 송완(청나라) 들녘의 참새들 떼 지어 날고 산골 영감들 오다가다 만나면 묵은 이야기 오밤중 쇠꼴 먹이고 아내를 깨우며 내일은 춘분 나무 심는 날이라 말하네
삼일절 노래 정인보(1893 - 6.25때납북)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같은 대한독립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이날은 우리의 의요 생명이요 교훈이다 한강은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 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 날을 길이 빛내자
3월에 기억되는 애국소녀 유관순
3월 김광섭 3월은 바람쟁이 가끔 겨울과 어울려 대폿집에 들어가 거나해서는 아가씨들 창을 두드리고 할아버지랑 문풍지를 뜯고 나들이 털옷을 벗긴다
애들을 깨워서는 막힌 골목을 뚫고 봄을 마당에서 키운다
수양버들 허우적이며 실가지가 하늘거린다
대지는 회상 씨앗을 안고 부풀며 겨울에 꾸부러진 나무 허리를 펴 주고 새들의 방울소리 고목에서 흩어지니 여우도 굴 속에서 나온다
3월 바람 4월비 5월꽃 이렇게 콤비가 되면 겨울 왕조를 무너뜨려 여긴가 저긴가 그리운 것을 찾아 헤매는 이방인
3월 김명희 3월은 느티나무 우듬지로 온다 얇은 햇살도 가지 끝으로 기대어 선다 아직은 잔설이 남아 발이 시리다 나는 가끔 발이 시려 잠을 설치곤 한다 발 아래 식구들 모여 살았던 곳 잔뿌리로 길을 내며 살을 비비고 온 몸으로 물을 나르는, 사이사이 유난히 싱그럽게 깨어나는 가지가 있다 그러나, 아직은 뿌리에 물을 모으는 시기인지도 모른다 서둘러 몸만 빠져 나간다고 해서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보는 게 아닌가 보다 숨 가쁜 시간이 지나가고 흔들어 깨우는 바람이 몇 차례 지나가고 난 후, 가까스로 눈을 뜨는 나는 시린 두 손 합장하며 안도의 숨을 쉰다 작은 벌레 한 마리 점자로 가만가만 뿌리의 숫자를 더듬는다 <길 없는 길>. 시선사.
3월 나태주 어차피 어차피 3월은 오는구나 오고야 마는구나 2월을 이기고 추위와 가난한 마음을 이기고 넓은 마음이 돌아오는구나 돌아와 우리 앞에 풀잎과 꽃잎의 비단방석을 까는구나 새들은 우리더러 무슨 소리든 내보라 내보라고 조르는구나 시냇물 소리도 우리더러 지껄이라 그러는구나 아, 젊은 아이들은 다시 한번 새옷을 갈아입고 새 가방을 들고 새 배지를 달고 우리 앞을 물결쳐 스쳐가겠지 그러나 3월에도 외로운 사람은 여전히 외롭고 쓸쓸한 사람은 쓸쓸하겠지
3월 목필균 햇살 한 짐 지어다가 고향 밭에 콩이라도 심어볼까 죽어도 팔지 말라는 아버지 목소리 아직 마르지 않았는데
매지 구름 한 조각 끌어다가 고운 채로 쳐서 비 내림할 까 황토밭 뿌리 번진 냉이꽃 저 혼자 피다 질텐데
늘어지는 한나절 고향에 머물다 돌아가는 어느날 연두빛꿈
3월 문인수 아직은 바람이 차다 하면서 누가 밤중에 깜깜한, 찬 부엌으로 내려갔다 군불 한 소끔 더 때고 들어왔다 잉걸 화롯불도 새로 들여온 것 같았다 나도 선잠을 걷고 화롯불 앞에 쪼그려 앉고 싶었던 것처럼 방금 자리 뜬 저 아이들처럼 이글이글 올라온 이 한 무더기 동백꽃 쬐보는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 지금은 또 먼 땅 속에서 두런두런거리는 것 같다 아직은 때때로 바람이 차다
3월 에밀리 디킨슨 3월이네요, 어서 들어오세요! 오셔서 얼마나 기쁜지요 일전에 한참 찾았거든요 모자는 내려놓으시지요 아마 걸어 오셨나보군요 그렇게 숨이 차신 걸 보니 그래서 3월, 잘 지내셨나요? 다른 분들은요? 자연은 잘 두고 오셨나요? 아, 3월 바로 저랑 이층으로 가요 말씀드릴 게 얼마나 많은지요
로마 테베레강
3월 임영조(1943-2003) 충남 보령 밖에는 지금 누가 오고 있느냐 흙먼지 자욱한 꽃샘 바람 먼 산이 꿈틀거린다
나른한 햇볕 아래 선잠 깬 나무들이 기지개 켜듯 하늘을 힘껏 밀어올리자 조르르 구르는 푸른 물소리 문득 귀가 말게 트인다
누가 또 내 말을 하는지 떠도는 소문처럼 바람이 불고 턱없이 가슴 뛰는 기대로 입술이 트듯 꽃망울이 부푼다
오늘은 무슨 기별 없을가 온종일 궁금한 삼월 그 미완의 화폭 위에 그리운 이름들을 써놓고 찬연한 부활을 기다려 본다
3월 장석주 얼음을 깨고 나아가는 쇄빙선 같이 치욕보다 더 생생한 슬픔이 내게로 온다
슬픔이 없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모자가 얹혀지지 않은 머리처럼 그것은 인생이 천진스럽지 못하다는 징표
영양분 가득한 지 3월 햇빛에서는 왜 비릿한 젖 냄새가 나는가
산수유나무는 햇빛을 정신없이 빨아들이고 검은 가지마다 온통 애기 젖꼭지만한 노란 꽃눈을 틔운다
3월의 햇빛 속에서 누군가 뼈만 앙상한 제 다리의 깊어진 궤양을 바라보며 살아봐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3월에 슬퍼할 겨를조차 없는 이들은 부끄러워하자 그 부끄러움을 뭉쳐 제 슬픔 하나라도 집어낼 일이다 해운대
3월 헤세 초록빛 새싹으로 덮힌 기슭에 벌써 제비꽃 푸름이 울려 퍼졌다 오직 검은 숲을 따라서만 아직 눈이 삐죽삐죽 혀처럼 놓여 있다 그러나 방울방울 녹아내리고 있다 목마른 대지에 흡인되어 그리고 저 위 창백한 하늘가에는 양떼구름이 빛 반짝이는 떼를 이뤄 흘러가고 있다 사랑에 빠진 피리새 울음은 나무 덤불 속에서 녹는다 사람들아, 너희도 노래하고 서로 사랑하라! 시슬레 부부 ㅡ 르느와르
3월과 4월 사이 안도현 산서고등학교 관사 앞에 매화꽃 핀 다음에는 산서주조장 돌담에 기대어 산수유꽃 피고 산서중학교 뒷산에 조팝나무꽃 핀 다음에는 산서우체국 뒤뜰에서는 목련 꽃 피고 산서초등학교 울타리 너머 개나리 꽃 핀 다음에는 산서정류소 가는 길가에 자주제비꽃 피고
3월로 건너가는 길목에서 박목월 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 바람결에는 싱그러운 미나리 냄새가 풍긴다 해외로 나간 친구의 체온이 느껴진다
참으로 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 골목길에는 손만 대면 모든 사업이 다 이루어질 것만 같다
동, 서, 남,북으로 틔어 있는 골목마다 수국색 공기가 술렁거리고 뜻하지 않게 반가운 친구를 다음 골목에서 만날 것만 같다
나도 모르게 약간 걸음걸이가 빨라지는 어제 오늘 어디서나 분홍빛 발을 아장거리며 내 앞을 걸어가는 비둘기를 만나게 된다 ㅡ무슨 일을 하고 싶다 ㅡ엄청나고도 착한 일을 하고 싶다 ㅡ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 바람 속에는 끊임없이 종소리가 울려오고 나의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난다 희고도 큼직한 날개가 양 겨드랑이에 한 개씩 돋아난다
3월 삼질날 정지용 중, 중 때때 중, 우리 애기 까까 머리
삼월 삼질 날, 질나라비, 훨 훨 제비 새끼, 훨 훨
쑥 뜯어다가 개피 떡 만들어 호, 호 잠들여 놓고 냥, 냥, 잘도 먹었다
중, 중, 때때 중 우리 애기 상제로 사갑소 <學潮>. 1호. 1926년 6월
3월에 이해인 단발머리 소녀가 웃으며 건네준 한 장의 꽃봉투 새봄의 봉투를 열면
그애의 눈빛처럼 가슴으로 쏟아져오는 소망의 씨앗들 가을에 만날 한 송이 꽃과의 약속을 위해
따뜻한 두 손으로 흙을 만지는 3월 나는 누군가를 흔드는 새벽 바람이고 싶다
시들지 않는 언어를 그의 가슴에 꽂는 연두색 바람이고 싶다
3월에 오는 눈 나태주 눈이라도 3월에 오는 눈은 오면서 물이 되는 눈이다 어린 가지에 어린 뿌리에 눈물이 젖어 젖는 눈이다 이제 늬들 차례야 잘 자라거라 잘 자라거라 물이 되며 속삭이는 눈이다
3월의 바람 속에 이해인 어디선지 몰래 숨어들어 온 근심, 걱정 때문에 겨우내 몸살이 심했습니다
흰 눈이 채 녹지 않은 내 마음의 산기슭에도 꽃 한송이 피워 내려고 바람은 이토록 오래 부는 것입니까
3월의 바람 속에 보이지 않게 꽃을 피우는 당신이 계시기에 아직은 시린 햇볕으로 희망을 짜는 나의 오늘 ... 당신을 만나는 길엔 늘상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살아 있기에 바람이 좋고 바람이 좋아 살아 있는 세상 혼자서 길을 가다 보면 보이지 않게 나를 흔드는 당신이 계시기에
나는 먼데서도 잠들 수 없는 3월의 바람 어둠의 벼랑 끝에서도 노래로 일어서는 3월의 바람입니다
3월의 바람 속에 이해인 차갑고도 따뜻한 봄눈이 좋아 3월의 눈꽃 속에 정토로 떠나신 스님 '난 성미가 급한 편이야' 하시더니 꽃피는 것도 보지 않고 서둘러 가셨네요 마지막으로 누우실 조그만 집도 마다하시고 스님의 혼이 담긴 책들까지 절판을 하라시며 아직 보내 드릴 준비가 덜 된 우리 곁을 냉정하게 떠나가신 야속한 스님 탐욕으로 가득 찬 세상을 정화시키려 활활 타는 불길 속으로 들어가셨나요 이기심으로 가득 찬 중생들을 깨우치시고자 타고 타서 한 줌의 재가 되신 것인가요 스님의 당부처럼 스님을 놓아 드리는 쓰라린 그리움을 어찌할까요 많이 사랑한 이별의 슬픔이 낳아준 눈물은 갈수록 맑고 영롱한 사리가 되고 스님을 향한 사람들의 존경은 환희심 가득한 자비의 선행으로 더 넓게 이어질 것입니다 종파를 초월한 끝없는 기도는 연꽃으로 피어나고 하늘까지 닿는 평화의 탑이 될 것입니다 하얀 연기 속에 침묵으로 잔기침하시는 스님 소나무 같으신 삶과 지혜의 가르침들 고맙습니다 청정한 삶 가꾸라고 우리를 재촉하시며 3월의 바람 속에 길 떠나신 스님, 안녕히 가십시오 언제라도 3월의 바람으로 다시 오십시오, 우리에게. <이해인 수녀의 법정스님 추도시>
3월의 시 워즈워드 수탉은 꼬기오 시냇물은 졸졸 작은 새들은 짹짹 호수는 번쩍번쩍 푸른 들판은 햇볕에 졸고 늙은이와 어린 아이 힘센 자와 같이 일을 하네 소들은 풀을 뜯으며 고개 한 번 쳐들지 않네 마흔 마리가 한 마리같이!
패한 군사들처럼 흰눈은 물러가고 헐벗은 언덕 위에서 쩔쩔매네 소년농부ㅡ 이따금 ㅡ 환호성을 울리고 산에는 기쁨이 샘물에는 숨결이 조각구름은 떠가고 푸른 하늘은 끝도 없어라 비는 그치고 간데 없네!
3월, 플라타너스 마경덕 도로변 플라타너스기둥 일렬로 서있다
지나가던 봄이 죽었나 살았나 귀를 갖다댄다 얼룩버짐 온몸에 퍼져있다
도심을 가로지른 전선 아래 버스가 줄지어 달려가고 몸통만 남은 플라타너스 머리 위 전선을 비집고 막무가내 뭉특한 모가지를 디민다
퍽퍽, 맨몸으로 허공을 들이받는 저, 저, 가지 끝 짐승 냄새가 난다
나무는 지금 터진 살을 꿰매는 중.
길을 가다가 성난 뿔을 보았다 허공에 쩌억 금이 가는 소릴 들었다
성 마르코 성당
3월 해 헤세 이른 더위에 취해 노랑나비 하나 비틀거리고 있다 창가에 앉은 채 끄덕끄덕 노인 하나 졸며 쉬고 있다
봄잎을 뚫고 노래하며 한때 나비는 집을 떠났었다 그 많은 거리의 먼지가 그 털 위에 내렸다
꽃 피는 나무와 나비들이 그 노란빛을 아직은 늙히지 않았어도 오늘까지만은 같은 것인 듯 보여도
하지만 색깔과 향기는 열어졌고 비워졌다 빛은 서늘해지고 공기는 숨 쉬기 더 힘들고 어렵게 되었다
봄은 나직이 윙윙거린다 그 노래, 아리따운 노래를 하늘이 푸르고 희게 흘러간다 나비가 황금빛 퍼덕임으로 날아간다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삼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 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기요미즈데라
새봄2 김지하 삼월 온몸에 새순 돋고 꽃샘바람 부는 긴 우주에 앉아 진종일 편안하다
밥 한술 떠먹고 몸 아픈 친구 찾아 불편한 거리를 어칠비칠 걸어간다
세월아 멈추지 마라 지금 여기 내 머음에 사과나무 심으리라
언땅 한길 김영랑 언땅 한길 파도 파도 광이는 아프게 마치더라 언-대로 묻어두기 불쌍하기사 봄 되어 녹으면 울며 보채리
두자 세치를 눈이 덮여도 뿌리는 얼신 못 건드려 대 죽고 난 이 3월 파르스름히 풀잎은 깔리네 깔리네
이웃집 아저씨에게 정이오(조선) 정이월 다가고 삼월이라네 꿈결 같은 세월 속에 또다시 봄이 왔네 천금을 주고도 이 좋은 시절 살 수 없거늘 뉘 집 술이 익었는가 꽃 바야흐로 활짝 피었는데
處容 斷章 김춘수 3월에도 눈이 오고 있었다 눈은 라일락의 새 순을 적시고 피어나는 山茶花를 적시고 있었다 미처 벗지 못한 겨울 털옷 속의 일찍 눈을 뜨는 남쪽 바다. 그 날 밤 잠들기 전에 물개의 수컷이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3월에 오는 눈은 송이가 크고, 깊은 수렁에서처럼 피어나는 산다화의 보얀 목덜미를 적시고 있었다 시집< 처용> 1974년
춘분 권 천학 봄이면 눈이 없어도 눈 뜰 줄 아는 나무처럼 땅심 깊숙이 물관부를 열고 투명한 물길을 여는 나무처럼 초록 잎새 끝까지 밝히는 마음의 눈을 가진 나무처럼 눈감고 있으면서 속눈 틔우는 나무처럼
실버들 가지 연두 빛으로 몸 트기 시작하는 춘분 때쯤 환절기의 몸살감기를 앓는 내 삶의 낮과 밤 일교차 심한 봄추위 속에서 어느새 새 촉을 뽑아 올리며 푸릇푸릇 몸을 튼다
춘분 노천명(1912 - 1957) 한고방 재어놨던 석탄이 퀭하니 나간 자리 숨었던 봄은 드러났다 "얼래 시골은? 나왔갔늬이" 남쪽 기집아이는 제 집이 생각났고 나는 고양이처럼 노곤하다
춘분 원재훈 당신과 나의 그리움이 꼭 오늘만 같아서 더도 덜도 말고, 하루 종일 밤과 낮이 낮과 밤이 잘 빚어진 떡 반죽처럼 만지면 기분 좋을 때, 내 슬픔, 내 기쁨, 꼭 오늘처럼 당신이 그리워서 보름달처럼 떠오르고 싶어라 당신의 눈물로 나의 손을 씻고 가끔씩 나의 창문을 두드리는 허전한 나뭇잎의 마음을 잡고 싶어라 새순은 돋아나는데 아장아장 봄볕이 걸어오는데 당신이 그립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살고 싶어라
춘분 이성교 해야 해야 나오너라 구름 타고 물 건너고 복짓개 들고 나오너라 구름다리 넘으면 목 마른다는데 그때 한 입 뿜어 짚신 신고 나오너라
꽃은 바람에 펄펄 날려도 사랑은 한결같이 높기만 하여 흙탕물 먼 곳에 질펀히 번져 가누나
춘분은 해와 달이 입맞추는 날
내사 강릉 색시를 잊을 길 없어 봄볕에 나폴대는 긴 갑사댕기를 어느 뉘 가슴에 묻어주랴
춘분 장승진(1974 - ) 전남 장흥 낮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겨울 동안 방치됐던 묵정밭에서 잔돌멩이들이 눈을 뜹니다 볕 좋은 하루가 노릇노릇 익어갑니다 너무 익은 부분을 바람이 식혀줍니다 그 가운데 당신이 놓아둔 삽 한 자루 햇볕을 받아 눈부시게 빛납니다 돌아온 시력을 다시 끌어당깁니다 참새가 밭두둑에 앉아 목을 빼더니 무리를 찾아 떠나갑니다 바람이 참새를 힘껏 밀어줍니다 기억의 저편, 우두커니 선 나무에 초록 기운이 감도는 것 같습니다 잎이 자라는 대로 운명의 손금도 알 수 있겠지요 당신이 지펴 논 봄기운이 초록 불꽃으로 타올라 세상을 달굽니다 내 그림자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도 이 불꽃의 일렁임 때문이겠지요 이제 바람과 불꽃에 음습한 나를 말려야 할 때입니다 <통신두절> 문학의 전당.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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