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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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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시 모음 ㄹ
2015년 02월 19일 02시 04분  조회:2069  추천:0  작성자: 죽림
 


+ 6월에는

6월에는 
평화로워지자 
모든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 
쉬면서 가자 

되돌아보아도 
늦은 날의 
후회 같은 쓰라림이어도 
꽃의 부드러움으로 

사는 일 
가슴 상하고 
아픈 일 한두 가지겠는가 
그래서 더 깊어지고 높아지는 것을 

이제 절반을 살아온 날 
품었던 소망들도 
사라진 날들만큼 내려놓고 
먼 하늘 우러르며 쉬면서 가자
(나명욱·시인, 1958-)



+ 6월의 장미     

하늘은 고요하고
땅은 향기롭고
마음은 뜨겁다

6월의 장미가
내게 말을 건네옵니다

사소한 일로
우울할 적마다
'밝아져라'
'맑아져라'
웃음을 재촉하는 장미

삶의 길에서
가장 가까운 이들이
사랑의 이름으로
무심히 찌르는 가시를
다시 가시로 찌르지 말아야
부드러운 꽃잎을 피워낼 수 있다고
누구를 한번씩 용서할 적마다
싱싱한 잎사귀가 돋아난다고

6월의 넝쿨장미들이
해 아래 나를 따라오며
자꾸만 말을 건네옵니다

사랑하는 이여
이 아름다운 장미의 계절에
내가 눈물 속에 피워 낸
기쁨 한 송이 받으시고
내내 행복하십시오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유월의 기도 

신록 머금은 계절 
꽃잎들 껴안고 
산아래 머무르면 

지칠 줄 모르는 
초록 노래 
향기로 이끄시는 
나의 모후여! 

당신의 숲 속에서 
오래오래 머물며 

사랑의 빛으로 
감사의 빛으로 

날마다 새롭게 
물들고 싶습니다
(김경숙·시인, 전남 해남 출생)


+ 금낭화 

6월, 어머니는 장독대 옆에 틀니 빼놓고
시집을 가고 싶은가 보다
장독 항아리 표면에 돋은 주근깨처럼 자잘한 미련도 없이
어머니는 차랑차랑 흔들리는 고름으로 신방에 들고 싶은가 보다
(안도현·시인, 1961-) 
  

+ 6월의 童謠 

6월은 모내는 달, 모를 다 내면
개구리 떼가 대지를 장악해버려
함부로는 들 건너지 못한다네

정글도록 땀방울 떨구어서는
청천하늘에 별톨밭 일군 사람만
그 빛살로 길 밝혀 건넌다네

심어논 어린 모들의 박수 받으며
치자꽃의 향그런 갈채 받으며
사람 귀한 마을로 돌아간다네
(고재종·시인, 1959-)


+ 6월 

사방이 풋비린내로 젖어 있다

가까운 어느 산자락에선가 꿩이 울어
반짝 깨어지는
거울, 한낮

초록 덩굴 뒤덮인 돌각담 모퉁이로
스르르 미끄러져 가는
독배암
등줄기의 무지개
너의 빳빳한 고독과
독조차
마냥 고웁다

이 대명천지 햇볕 아래서는
(이정화·시인)


+ 6월에 쓰는 편지 

내 아이의 손바닥만큼 자란
6월의 진초록 감나무 잎사귀에
잎맥처럼 세세한 사연들 낱낱이 적어
그대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도무지 근원을 알 수 없는
지독하고도 쓸쓸한 이 그리움은
일찍이
저녁 무렵이면
어김없이 잘도 피어나던 분꽃
그 까만 씨앗처럼 박힌
그대의 주소 때문입니다

짧은 여름밤
서둘러 돌아가야 하는 초저녁별의
이야기와
갈참나무 숲에서 떠도는 바람의 잔기침과
지루한 한낮의 들꽃 이야기들일랑
부디 새벽의 이슬처럼 읽어 주십시오

절반의 계절을 담아
밑도 끝도 없는 사연 보내느니
아직도 그대
변함없이 그곳에 계시는지요
(허후남·시인)


+ 유월의 햇살 

지금, 밖을 보고 있나요? 
햇살이 투명하고 눈부십니다 
누군가 내게 준 행복입니다 

지옥의 문을 들어서는 공간에 
당신과, 하늘에는 햇살이 닿아 있고 
땅으로는 지열이 닿아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천만다행입니다 

여느 사람들처럼 
손 잡고, 길을 걷지는 못하겠지만 
나보다 행복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당신은 내게 그런 존재랍니다 

삼월에 새싹 돋고 
유월에 곧은 햇살 쪽쪽 내리꽂히는 
이 세상은, 그래서 나에게는 
화사하고 눈부신 낙원입니다 

당신이 오로지 내게만, 문 열어 준 
그 낙원에서, 나 살고 있습니다
(신석종·시인, 1958-) 


+ 6월 기집애  

너는 지금쯤 어느 골목
어느 낯선 지붕 밑에 서서 울고 있느냐
세상은 또다시 6월이 와서
감꽃이 피고 쥐똥나무 흰꽃이 일어
벌을 꼬이는데
감나무 새 잎새에 6월 비단햇빛이 흐르고
길섶의 양달개비
파란 혼불꽃은 무더기 무더기로 피어나는데
너는 지금쯤 어느 하늘
어느 강물을 혼자 건너가며 울고 있느냐
내가 조금만 더 잘해주었던들
너는 그리 쉬이 내 곁을 떠나지 않았을 텐데
내가 가진 것을 조금만 더 나누어주었던들
너는 내 곁에서 더 오래 숨쉬고 있었을 텐데
온다간다 말도 없이 떠나간 아이야
울면서 울면서 쑥굴헝의 고개 고개를
넘어만 가고 있는 쬐꼬만 이 6월 기집애야
돌아오려무나 돌아오려무나
감꽃이 다 떨어지기 전에
쥐똥나무 흰꽃이 다 지기 전에
돌아오려무나
돌아와 양달개비 파란 혼불꽃 옆에서
우리도 양달개비 파란 꽃 되어
두 손을 마주 잡자꾸나
다시는 나뉘어지지 말자꾸나
(나태주·시인, 1945-)


+ 6월이 오면   

아무도 오지 않는 산 속에 바람과 뻐꾸기만 웁니다
바람과 뻐꾸기 소리로 감자꽃만 피어납니다
이곳에 오면 수만 마디의 말들은 모두 사라지고
사랑한다는 오직 그 한마디만 깃발처럼 나를 흔듭니다

세상에 서로 헤어져 사는 많은 이들이 많지만
정녕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은 이별이 아니라 그리움입니다

남북산천을 따라 밀이삭 마늘잎새를 말리며 
흔들릴 때마다 하나씩 되살아나는 바람의 그리움입니다

당신을 두고 나 혼자 누리는 기쁨과 즐거움은 모두 쓸데없는 일입니다
떠오르는 아침 햇살도 혼자 보고 있으면
사위는 저녁노을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 사는 동안 온갖 것 다 이룩된다 해도 그것은 반쪼가리일 뿐입니다

살아가며 내가 받는 웃음과 느꺼움도
가슴 반쪽은 늘 비워둔 반평생의 것일 뿐입니다
그 반쪽은 늘 당신의 몫입니다
빗줄기를 보내 감자순을 아름다운 꽃으로 닦아내는 
그리운 당신 눈물의 몫입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지 않고는 내 삶은 완성되어지지 않습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야 합니다
살아서든 죽어서든 꼭 다시 당신을 만나야만 합니다
(도종환·시인,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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