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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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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시 모음 ㄷ
2015년 02월 19일 02시 37분  조회:2730  추천:0  작성자: 죽림
 
 <9월 시 모음> 문인수의 '9월' 외 

+ 9월

무슨 일인가, 대낮 한 차례
폭염의 잔류부대가 마당에 집결하고 있다.
며칠째, 어디론가 계속 철수하고 있다.
그것이 차츰 소규모다.
버려진 군용 텐트나 여자들같이
호박넝쿨의 저 찢어져 망한 이파리들
먼지 뒤집어쓴 채 너풀거리다
밤에 떠나는 기러기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몇몇 집들이 더 돌아와서
또, 한 세상 창문이 여닫힌다.
(문인수·시인, 1945-)


+ 9월(九月) 

九月은 
허무의 바다 

어머니의 
쪽빛 저고리 안에 
감춰진 恨 

그리움이고, 
황혼의 탄식 

九月은 
슬픈 離別의 
임시 정거장. 
(장건섭·시인, 전북 익산 출생)


+ 9월의 노래 

나도 한때 꽃으로 피어 
예쁜 잎 자랑하며 
그대 앞에 폼잡고 서 있었지 

꽃이 졌다고 울지 않는다 
햇살은 여전히 곱고 
초가을 여린 꽃씨는 아직이지만 

꽃은 봄에게 주고 
잎은 여름에게 주고 
낙엽은 외로움에게 주겠네 

그대여! 
빨간 열매는 그대에게 주리니 
내 빈 가지는 말라도 좋겠네 
(이채·시인)


+ 9월에 부르는 노래 

꽃잎 진 장미넝쿨 아래 
빛 바랜 빨간 우체통 
누군가의 소식이 그리워진다 

망초꽃 여름내 바람에 일던 
굽이진 저 길을 돌아가면 
그리운 그 사람 있을까 

9월이 오기 전 떠난 사람아 

지난해 함께 했던 
우리들의 잊혀져 가는 
그리움의 시간처럼 
타오르던 낙엽 타는 냄새가 
올 가을 또한 그립지 않은가 

가을 오기 전 
9월, 
9월에 그리운 사람아. 
(최영희·시인)


+ 9월도 저녁이면 

9월도 저녁이면 바람은 이분쉼표로 분다 
괄호 속의 숫자놀이처럼 
노을도 생각이 많아 오래 머물고 
하릴없이 도랑 막고 물장구치던 아이들 
집 찾아 돌아가길 기다려 등불은 켜진다 
9월도 저녁이면 습자지에 물감 번지듯 
푸른 산그늘 골똘히 머금는 마을 
빈집의 돌담은 제풀에 귀가 빠지고 
지난여름은 어떠했나 살갗의 얼룩 지우며 
저무는 일 하나로 남은 사람들은 
묵묵히 밥상 물리고 이부자리를 편다 
9월도 저녁이면 삶이란 죽음이란 
애매한 그리움이란 
손바닥에 하나 더 새겨지는 손금 같은 것 
지난여름은 어떠했나 
9월도 저녁이면 죄다 글썽해진다 
(강연호·시인, 1962-)


+ 9월 

오동나무  뻔질나게 
포옹하던 매미도 갔다 

윙윙거리던 모기도 
목청이 낮아졌고 
곰팡이 꽃도 흔적이 드물다 

어느새 반소매가 
긴 팔 셔츠로 둔갑했고 
샤워장에도 온수가 
그리워지는 때가 되었다 

푸른 풀잎이 
황톳빛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메뚜기도  한철이라 
뜨겁던 여름 구가하던 보신탕집 문지방도 
먼지가 조금씩 쌓인다 

플라타너스 그늘이 구멍 뚫린 채 
하늘이 푸르디푸르게 보인다 

짝짓기에 여념 없는 고추잠자리 
바지랑대가 마구 흔들린다 
(반기룡·시인, 1961-)


+ 9월 

징검다리는 
흐르는 물살에 잘 버텨야 한다. 
자칫 중심을 잃어 제자리를 이탈하거나 
급류를 이기지 못해 떠내려가기라도 하면 
사람들의 미움을 한 몸에 받게 된다. 
여름과 가을 사이에서 9월은 
최대한 편하고 좋은 징검다리가 되려 애쓴다. 
사람들은 심성 고운 그런 9월을 사랑한다. 

길목을 지키는 존재란 
으레 긴장되고 분주하게 마련이지만 
가을의 길목에 선 9월은 
언제나 자신을 자랑스러워한다. 
풍성한 들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즐거운 마음을 
선선한 공기를 들이켜는 사람들의 싱그러운 호흡을 
푸르른 하늘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잘 알기 때문이다. 

9월의 들녘에선 
여름내 살쪄 올라 사람들을 뒤뚱거리게 했던 
무료와 권태의 비계덩이들이 
예리하게 날 다듬은 낫이며 호미로 
부지런히 움직이는 농부들의 힘찬 손길에 
뭉텅뭉텅 떨어져 나가고 있다. 
(안재동·시인, 1958-)


+ 구월 

뜰이 슬퍼합니다. 
차디찬 빗방울이 꽃 속에 떨어집니다. 
여름이 그의 마지막을 향해서 
조용히 몸서리칩니다. 

단풍진 나뭇잎이 뚝뚝 떨어집니다. 
높은 아카시아나무에서 떨어집니다. 
여름은 놀라, 피곤하게 
죽어가는 뜰의 꿈속에서 미소를 띱니다. 

오랫동안 장미 곁에서 발을 멈추고 
아직 여름은 휴식을 그리워 할 것입니다. 
천천히 큼직한 
피로의 눈을 감습니다. 
(헤르만 헤세·독일 시인, 1877-1962) 


+ 9월

여름 끝물의 더위와
가을의 신선함

미지근한 온기와  
서늘한 냉기가 함께 있어

산에 들에 오곡백과
무르익는 달.

어느새 종반으로 치닫는
올해의 지난날 뒤돌아보며

생활의 결의
새롭게 다지는 달.
(정연복·시인,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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