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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시 모음
2015년 02월 19일 03시 29분  조회:2713  추천:0  작성자: 죽림

 

1. "새해"에 대한 시모음 10편

 

 

 

1)새해 인사 - 김현승

오늘은 

    오늘에만 서 있지 말고, 
    오늘은 
    내일과 또 오늘 사이를 발굴러라. 

    건너 뛰듯 
    건너 뛰듯 
    오늘과 또 내일 사이를 뛰어라. 

    새옷 입고 
    아니, 헌옷이라도 빨아 입고, 
    널뛰듯 
    널뛰듯 
    이쪽과 저쪽 
    오늘과 내일의 리듬 사이를 
    발굴러라 발굴러라. 
    춤추어라 춤추어라.

 

2.) 새해 첫 기적 
            반칠환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 날 한 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 3) 새해 아침 - 송수권

    • 새해 아침은 불을 껐다 다시 켜듯이 
      그렇게 떨리는 가슴으로 오십시오 

      답답하고 화나고 두렵고 
      또 얼마나 허전하고 가난했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지난밤 제야의 종소리에 묻어둔 꿈도 
      아직 소원을 말해서는 아니 됩니다 

      외로웠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억울했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슬펐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얼마나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습니까? 
      그 위에 우레와 같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그 위에 침묵과 같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낡은 수첩을 새 수첩으로 갈며 
      떨리는 손으로 잊어야 할 슬픈 이름을 
      두 줄로 금긋듯 
      그렇게 당신은 아픈 추억을 지우십시오 

      새해 아침은 
      찬란한 태양을 왕관처럼 쓰고 
      끓어오르는 핏덩이를 쏟아놓으십시오 

      새해 아침은 
      첫날밤 시집온 신부가 아침나절에는 
      저 혼자서도 말문이 터져 콧노래를 부르듯 
      그렇게 떨리는 가슴으로 오십시오

4)새해 새 아침 - 이해인

    새해의 시작도 
    새 하루부터 시작됩니다

    시작을 잘 해야만 
    빛나게 될 삶을 위해
    겸손히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아침이여

    어서
    희망의 문을 열고
    들어오십시오

    사철 내내 변치 않는
    소나무빛 옷을 입고
    기다리면서 기다리면서
    우리를 키워온 희망

    힘들어도 웃으라고
    잊을 것은 꺠긋이 잊어버리고
    어서 앞으로 나아가라고
    희망은 자꾸만 우리를 재촉하네요

    어서 
    기쁨의 문을 열고
    들어 오십시오

    오늘은 배추밭에 앉아
    차곡차곡 시간을 포개는 기쁨
    흙냄새 가득한
    싱싱한 목소리로
    우리를 부르네요

    땅에 충실해야 기쁨이 온다고
    기쁨으로 만들 숨은 싹을 찾아서
    잘 키워야만 좋은  열매를 맺는다고
    조용조용 일러주네요

    어서
    사랑의 문을 열고
    들어오십시오

    언제나 
    하얀 소금밭에 엎드려
    가끔은 울면서
    불을 쪼이는 사랑

    사랑에 대해
    말만 무성했던 날들이 부끄러워
    울고 싶은 우리에게
    소금들이 통통 튀며 말하네요

    사랑이란 이름으로 
    여기저기 팽개쳐진 상처들을 
    하얀 붕대로 싸매주라고

    새롭게 주어진 시간 
    만나는 사람들을
    한결같은 따듯함으로 대하면
    그것이 사랑의 시작이라고-
    눈부신 소금곷이 말을 하네요

    시작을 잘해야만
    빛나게 될 삶을 위해
    설레이는 첫 감사로 문을 여는 아침
    천년의 기다림이 비로서 시작되는 
    하늘빛 은총의 아침
    서로가 복을 빌어주는 동안에도
    이미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새해 새 아침이여
 
5) 새롭지 않은 새해의 시 1 - 이동순


 

    새해가 왔는가 
    미처 맞이할 겨를도 없이 불쑥 
    들이닥친 길손처럼 새해는 와 버렸는가 

    어제 방구석에 쌓인 먼지도 그대로 
    내 서가의 해방기념시집의 찢어진 표지 
    그 위를 번져 가는 곰팡도 아직 못 쓸고 있는데 
    새해는 불현듯 와 버렸는가 

    파헤쳐 놓은 수도공사도 끝내지 못했는데 
    태어나리라던 아기예수도 아직 태어나지 않았는데 
    여지껏 나무에 대룽대룽 매달려 
    애잔한 잎들은 팔랑이는데 
    못다 쓴 원고뭉치는 그대로 밀려 있는데 
    미처 남쪽으로 떠나지 못한 새들도 있는데 
    불현듯 불현듯 새해는 왔는가 

    기다리던 첫눈도 나리지 않고 
    적적한 마당귀를 덮고 있는 김장독 이엉 사이로 
    시궁쥐만 분주히 쏘다니는데 

    새해는 왔는가 
    헛꿈을 잔뜩 안고 돌아와 저 혼자 설레이는 
    놈팡이처럼 새해는 왔는가 와서 무얼 하려는가 

    모듬판에서 돌아오는 밤 
    이미 자정을 넘겨 볼에 스미는 찬 기운 
    텅 빈 호주머니와 마음 속으로 
    아무거나 새것이라면 마구 채워야 하는 걸까 

    해마다 와서 속절없이 가 버리는 것이 
    새해일까 나라는 깨어지고 깨진 틈서리는 
    서로 붙을 생각조차 품지 않는데 
    보리싹 파릇파릇 움 틔우는 저 들판이 
    후루룩 겨울참새를 허공에 뿌리는 그 속마음은 
    무엇일까 

 

6) 새해 아침 - 양현근

 

    • 눈 부셔라

      저 아침
      새벽길을 내쳐 달려와
      세세년년의 산과 들,
      깊은 골짝을 돌고 돌아
      넉넉한 강물로 일어서거니
      푸른 가슴을 풀고 있거니
      이슬, 꽃, 바람, 새
      온통 그리운 것들 사이로
      이 아침이 넘쳐나거니
      남은 날들의 사랑으로
      오래 눈부시거니

 

 

 

 

7)새해에 부치는 시 /김남조

 

첫 눈뜸에

 

눈 내리는 청산을 보게 하소서

 

초록 소나무들의 청솔바람소리를 듣게 하소서



 아득한 날에

 

예비하여 가꾸신 은총의 누리


 

다시금 눈부신 상속으로 주시옵고


 

젊디젊은 심장으로


 

시대의 주인으로 기름부어 포옹하게 하여 주소서



 

 

 

생명의 생명인 우리네 영혼 안엔


 

사철 자라나는 과일나무 숲이 무성케 하시고


 

제일로 단맛나는 열매를


 

날이 날마다


 

주님의 음식상에 바치게 하옵소서

 

8)임진년 새해/황갑윤

 

 

새벽에 일어나 파란 하늘을 본다
이슬에 목을 축인 숲들 사이로
방금 배달된 갓-구운-365일에
두 손 모아 감사드린다

 

해가 내 안으로 들어온다

나 또한 해로 들어간다
우리가 서로 안에 들어가지 않는
그런 순간은 없다

 

정월초하루의 우렁찬 발소리
자욱한 새벽의 기운에
가슴이 가득차서 터질듯하다

 

해야 솟아라
바다마저 흔들리고 땅마저 요동치도록 
힘차게 솟구쳐라 
그리하여 마셔도 타들어가는 목마름을 
여명의 빛으로 멈추게 하라

 

뜨겁게  박동치는 심장은

새 삶의 부활을 위해

붉은 피를 끓이고 있다

 

 9)새해의 시 / 김사랑

 새 날이 밝았다
오늘 뜨는 태양이
어제의 그 태양은 아니다
겨울 산등성이로 불어가는 바람이
지난 밤에 불던 바람이 아니다

독수리는 하늘 높은 곳에서
날카로운 눈빛을
땅에 꼿았다
산양은 절벽의 바위를 뛰어 올라
산정을 향한다

우리가 꾸는 행복은 
내일을 향해 뻗어있고
사랑하는 심장은
겨울에도 장미처럼 붉었나니
이루지 못할 꿈은 어디에 있던가

나의 하루의 삶이
나의 인생이 되듯
흘러지난 세월은 역사가 되나니
다시 나의 소망을 담아 꿈을 꾸나니
가슴은 뜨겁고
나의 노래는 날개를 매단듯 가볍다

이 아침에 돋는 태양을 보라
이글거리며 타는 태양은
나를 위해 비추나니
고난 속에 시련이 온다해도
나 이겨 내리니
그대 소망하는 바 더디게 올뿐
언젠가 다 이루어 지리니
우리 함께 달려 가보자


2."설날"에 대한 시모음 - 10편

 

 

1.)설날 - 최경신

 

아직 살아 새해를 맞으니 고맙다

 

 내 앞에 엎드린 너희들의 듬직한 등이

너희 서로를 바라보는 가슴들이

따뜻해서 고맙다

 

 이것 줘서가 아니고

저것 줘서가 아니고

세상을 바르게 살아 줘서 고맙다

 

 너희가 있는 자리에서 너희가 받는

신뢰와 사랑과 칭찬이

하나같이

이 어미 가슴을 훈훈하게 데워 주니

이 보다 더 큰 효 어디 있으리

 

 이런 나날이 있어 내 사람이 고맙다

 

 

 

2.)설날 아침에 - 김종길    
  

설날 아침에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 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3)설날 전야/이재무

 

아부지와 엄미가 죽고 나서

맏이인 내가 제사 모셔온 지

시오년이 넘는다 오늘은 설날 전야

동생네 식구들을 데리고 중국집에 간다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저녁을 먹는다

숟가락 젓가락 소리 높고 맑고 환하다

생활은 빨지 않은 이불처럼 눅눅하고

무거운 법이지만 모처럼 이산을 살아온

가족이 둥그렇게 모여 앉아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덕담을 하고

집 떠나 돌아오지 않는 살붙이들

하나하나 떠올리며 호명하다 보면

영하권의 추위도 무섭지 않고 또, 마음은

금세 더운 국물과 함께 후끈 달아오른다

 

 

2

 

돌아와 아홉 시 뉴스를 본다

화면 속으로

모천회귀하는 연어떼 같은

귀성차량 행렬이 어지럽게 지나고

천장에 매달려 곰팡이냄새를 피우는

시골집 오래된 메주같이 누렇게 뜬

얼굴들 클로즈업 되고 있다

'6개월 체불임금 돌려 달라'

절규하는, 연변에서 온 저,

비늘 떨어지고 지느러미 상한 연어들!

달게 먹은 저녁 늦도록 내려가지 않아

더부룩한 아랫배 하릴없이 문질러대다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벌린 입 다물지 못하는

아내에게 벌컥 화를 내며 소화제를 찾는다

 

 

4) 설날가는 고향 길 / 오광수 *


내 어머니의 체온이 
동구밖까지 손짓이 되고
내 아버지의 소망이
먼길까지 마중을 나오는 곳

마당 가운데 수 없이 찍혀있을 
종종 걸음들은
먹음직하거나 보암직만해도
목에 걸리셨을 어머니의 흔적

온 세상이 모두 하얗게 되어도 
쓸고 또 쓴 이 길은
겉으로 내색하진 않아도
종일 기다렸을 아버지의 숨결

오래 오래 사세요.
건강하시구요
자주 오도록 할께요
그냥 그냥 좋아하시던 내 부모님.

언제 다시 뵐 수 있을까요?
내 어머니, 내 아버지
이젠 치울 이 없어 눈 쌓인 길을
보고픔에 눈물로 녹이며 갑니다

 

 

 

 

 

 

 

 

 

 

 

 

 

 

 

 

 

 

 

 

 

 

 

 

 

 

 

 

 

 

 

 

 

 

 

 

 

 

 

 

 

 

 

 

 

 

 

 

 

 

 

 

 

 

 

 

 

 

 

 

 

 

 

 

 

 

 

 

 

 

 

 

 

 

 

 

 

 

 

 

 

 

 

 

 

 

 

 

 

 

 

 

 

 

 

 

 

 

 

 

 

 

 

 

 

 

 

 

 

 

 

 

 

 

 

 

 

 

 

 

 

 

 

 

 

 

 

 

 

 

 

 

 

 

 

 

 

 

 

 

 

 

                                                5) 귀성길 / 문인수

 

 

 앞차에 헌 자전거가 한 대 실려간다.

끈을 문 트렁크 뚜껑이 질겅질겅,

자전거를 씹는 형국이다. 불가사리다. 자전거에 잠긴 길, 길이 길 잡아먹는 것 본다. 경부고속도로,

나는 조수석에 기대앉아 지그시,

되새김질에 빠진 하마다. 청춘…… 제맛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아,

잘 씹지도 않고 삼킨 길이 지금,

막힌 길이 저 아가리에 깜깜 오래 질기다.

 

 

6) 설날/권영우

뒤뜰 청솔 더미에서 목욕한 해묵은 석양이 
동쪽 하늘 붉은 때때옷으로 치장하고 
대청마루에 새해 복(福), 한 광주리를 걸어 놓는다 

날마다 맞이하는 무덤덤한 햇살이 
오늘 아침은 
가난한 가슴에 부푼 꿈을 가득가득 안겨온다 

섣달 그믐 묵은 때를 열심히도 벗기시던 
어머니는 
밤새도록 지극 정성 차례상을 준비하셨다 
설빔하는 어머니 무릎에 누워 
자지 않으려 용쓰다 깜박 잠든 
새해 새 아침 설날 어둑새벽 
개구쟁이 동생이 찬물에 세수하고 
할아버지 할머니께 넙죽 세배를 드린다 

큰 누나가 지어준 색동 주머니에 
깜박깜박하시는 할머니의 
손 때묻은 무지개 알사탕이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우는 오늘은 설날이다 

소식 없는 대처의 둘째형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애끓는 정성이 담긴 
떡국 한 그릇 
삼신할미에게 공양 되는 오늘은 설날이다 

동네 어귀를 들어오지 못해 망설이던 
떠돌이 새가 
하얀 눈밭에 걸린 청솔가지에서 밤새 울다가, 
일 년 365일 눈물로 지새운 
어머니 치마폭에 용서를 비는 오늘은 설날이다 

그렇다, 먹지 않아도 배부르고 
모든 걸 용서해주고 용서받고 
그리운 가족 사랑을 주고받으며 
정겨운 희망의 닻을 올리는 오늘은 설날이다

 

6)설날 / 월암

 

 

아버지 설장 보러 가시던 날

나는 양지쪽 논둑에서 연을 날렸다

 

섣달 그믐밤엔

눈썹이 희도록 새 아침 기다리다

곶감 대추 차린 음식 차례 모시고

복주머니 두둑해지는 재미로

온 종일 세배도 다녔다

 

지금은

섬돌 위 신발을 정리하며

마당에서 팽이 치는 손주 한 번 쳐다보고

안방에서 윷놀이하는 아들 딸 한 번 보고

나이테에 묶인 나를 또 한 번 보며

 

아직도 주방을 지키고 서서

사위들 상차림 걱정하는

아내의 더덕껍질 손을 본다

 

-2010.2.14-

 

 

2)설날 풍경 - 월암

 

 제기차기 팽이치기

사물놀이 연날리기

팔방차기 널뛰기 어우러진

민속극장 뜰

할배가 손주 연 자새 감아주고

아배는 바닥에 깔린 연 올려주고

할매는 손녀와 팔방차기하고

어매는 빗나간 팔방 돌 제자리에 놓고

투호가 빗나가서 쨍그랑거린다

곰배팔 절뚝발이가 제기를 차고

코 묻은 팽이가 돌다가 멈춘다

 

모자를 깊이 눌러쓴 김삿갓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웃다가 훈수를 하다가

민속주 한 잔에 붉어진 얼굴로

육자배기 속으로 빠져들다가

명창 임방울과 또 한 잔하고

어매는 늙어가고 할매는 젊어진다

 

-2011. 02. 03.-

 

 

3)설 - 월암

 

아내는 동지가 지나면

설 만들기에 든다

무를 썰어서 말리고

조기 얼간 속에 설을 쟁이고

소꼬리 우족의 족편 속에

가풍과 모성애를 심어

숭모-崇慕의 얼을 지핀다

 

설날이 되면, 나는

어릴 적 할아버지의 체온에 땀이 배고

어머니를 닮은 아내는

손등이 짓물러도

손주들 재롱에 앉을 틈이 없다

나는 아내와 손자들 사이에서

엉거주춤한 설을 보내고

또 다음 설을 기다린다

 

-2011.01.22-

 

 

4)설날 아침에/월암

 

언제부터인가

설날 아침을 반기지 않고 있었다

 

나는 세월을 사랑한 바 없지만

세월은 항상 나를 따라다니며

설날 아침이면 차례상 앞에

나를 꿇어 앉힌다

 

헛짓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아이들은 세뱃돈 생각에 여념이 없고

아내와 며느리는

허리 통증을 미소로 감추며

뒷바라지에 열심이다

 

나는 정성 것 큰절을 올리면서

내년에는 꼭 간소화해야겠다고

다짐하지만, 매년에도

그런 다짐은 반복된다.

 

설날은

억지로 밀고 쳐들어오는

불청객인가보다.

 

 

5)송구영신(送舊迎新)/월암

-제1시집에서 옮김

 

한해가 저물면서

뻥 뚫린 가슴에 아쉬움이 찬다

 

창을 열면 찌부둥한 하늘이

밀고 들어 올 것만 같아

문을 걸어 잠그고

흘러간 한해의 신음소리를 듣는다.

 

웃음도 눈물도

아픔을 달래던 날들이

깊어 가는 그믐밤 찬바람에

묻히고

 

새해 아침 밝은 빛이

내 가슴을 열고

조용히 스며들어 불을 밝힌다.

 

-2005.1.2. -

 

6)새해 아침에 -제1시집(여름밤)에서

 

 내가 세월을 사랑한바 없지만

세월은 나를 항상 찾아든다.

오늘도 전혀 기다리지 않는 새해가 와서

아침을 밝히고 있다

 

내가 별로 바라지 않는 일이

매년 이만 때면 꼭 반복 뒤며

나로 하여금 받아드리도록 한다.

 

내가 이 세상에 오기 전

태초부터의 일이라고 하지만

나는 알 수 없고

신(神) 만 이 알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새 해 아침이 오는 것을 반기지 않는단 것을

신은 알고 있지만

그것을 반기는 어린이들과 함께 가져다주신다.

 

반갑지 않는 설날 아침이지만

그런 기색 없이

손주들과 함께 웃고 있다.

 

  -2004.12.30.

 

7)설 명절과 아내

(제1시집에서)

 

명절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아내

올 설도 치다꺼리에

짜증과 웃음의 범벅이다.

 

방과 방에 가득한 술상과 윷놀이 판

먹고 마시고 웃고, 추억담의 꽃 잔치

팽이치기 숨바꼭질에 신이 난 꼬마들

부딪혀서 울다가 또 웃고

승용차 네 대에 가득 실어 보내며

그래도 더 줄게 없나 구석구석 더듬다가

멀리 사라진 뒷모습 눈물로 씻어낸다.

 

아내는 몸져눕고

나는 그 뒷바라지에 매달리다가

무사도착 전화벨이 울리면

아내는 벌떡 일어나 앉고

나는 일손을 멈춘다.

 

정원이 비에 젖고 있다

사흘간 명절의 들뜸도 뒷바라지의 시달림도

빗물이 씻어 내리며, 손녀의 젖꼭지 같은

동백꽃망울 속에 녹아든다.

- 006.2.1.금암동 자택에서-

 

8)설날 / 김 용 복

 

  설날

지금은 나에게 서러운 날

몇 개가 남았는지 모를 나이

곶감 빼어 먹는 것 같은 허전함을

흩어진 형제와 떠나신 부모님 생각으로 메운다.

 

 

바람 부는 언덕에 올라

5일 대목장에서 오시는 아버지를 기다리던 우린

저녁노을 등에 지고 목이 길어진 그림자만큼

선물꾸러미가 궁금해 까치발 세워 목을 늘렸지.

 

 

오형제 발 크기를 지푸라기로 잘라 가신 아버지

저 멀리 고갯길 넘어오시는 아버지

낮술의 흥에 겨워 비틀비틀

지게에 매달린 검정고무신 흔들흔들

 

 

대청마루에는 설날 입을 옷

바지저고리 조끼 버선 댓님 키순으로 놓이고

아버지가 사온 검정 고무신 오형제

그믐 날 새워 설날 기다리다 등잔 그름으로

아궁이처럼 콧구멍이 까맣게 그슬렸지.

 

 

해질녘 굴뚝 연기가 하늘에 머리 풀고

가마솥 시루떡 익는 김 서린 부엌의 떡 냄새

초가추녀 밑을 돌아 문풍지 따라 방에 들면

허기진 배가 꼬르륵 군침은 목젖을 넘는다.

 

 

다시는 오지 않는 고향의 어린 시절

아주 멀고 먼 지난 세월의 강 저편을 그리며

이 글을 읽는 손자들에게 할아버지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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