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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인 - 김수영
2015년 02월 19일 19시 50분  조회:2301  추천:1  작성자: 죽림
 

                  김수영  시 모음

                                                 (본관 김해김씨)

 

 

김수영은 1950년대와 1960년대를 통해 현대시 영역에서 시의 현대성을 가장 적극적

이고 날카롭게 탐구한 시인입니다. 그의 초기시는 난해한 성향을 띤 모더니즘시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4·19 를 겪으면서 자유와 그 자유를 억압하는 체제, 그리고 소시민의 

비애를 성찰하는 시를 발표하였습니다. 죽을 때까지 현실과 정치를 직시하고 적극적인 

태도로 시, 시론, 시평 등을 발표한 대표적인 참여시인입니다.

 

 

 

 

 

 

                    

                

                   풀 /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1968> 

 

시인의 대표시입니다. 2008년 조선일보에서 현존하는 문인 100명에게 애송시 100편을 뽑는 투표를 하게 하였는데, 그때 1등으로 뽑힌 시가 이 시입니다.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풀을 노래한 시로 읽어도 좋고, 민중시나 저항시로 읽어도 좋습니다. 읽는 우리들 마음이겠지만 저는 그냥 풀로 읽는게 더 좋네요.

 

 

 

 

                         

                    / 김수영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靈魂)과 육체(肉體)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눈에다가 기침을 하고 가래라도 뱉자'고 외치는 아주 단순한 시이지만,,, 

눈을 닮기 위해 자신을 정화하려는 시인의 노력을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살아 있다'라고 외치는 시인의 순수하고 정정한 모습이 우리를 압도합니다.

 

 


 

                             

                   푸른 하늘을 / 김수영                     

 

 

 

푸른 하늘을 제압(制壓)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修正)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飛翔)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혁명은 고독하다' - 자유를 향한 자의 고독한 의지가 우리의 가슴을 찡하고 울리네요. 

김수영시인은 '시인은 사회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혁명가와 같은 존재로서 

그런 인식으로 시인은 시를 써야한다'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미 / 김수영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1954년>

 

지독히 비시적(非詩的)인 산문 문장을 그대로 시로 살려놓고 있는 이 시는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치 떨리게 서럽다. '몸이 까맣게 타버려서' 멀리 있는 사람의 가을까지 보인다. '여전히 바라는 것'이 있고, 나의 바람이 '으스러진 설움'이 될 것을 알기에 나는 악착같이 시를 쓰고 사랑하는 것이리라.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가 '나'라고 말하지 않고 그냥 '거미' 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우리의 설움은 가뭇하게 타버리고 가을 찬바람처럼 맑아져 다시 오리라. 모든 사랑을 첫사랑이라 생각하면서, 첫사랑처럼 마지막 사랑에 몸서리치리라. 까맣게 몸을 태우면서. (김선우, 시인)

 

 

 

 

 

             

 

공자의 생활난  /  김수영          

 

 

꽃이 열매의 상부에 피었을 때
너는 줄넘기 작란을 한다.

 

나는 발산한 형상을 구하였으나
그것은 작전 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

 

국수   이태리어로는 마카로니라고
먹기 쉬운 것은 나의 반란성일까.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사물과 사물의 생리(生理)와
사물의 수량과 한도와
사물의 우매와 사물의 명석성(明晳性)을,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1945> 

 

 

 

 

 

 

 

矜持의 날 / 김수영                          

  



너무나 잘 아는 
순환의 원리를 위하여 
나는 피로하였고 
또 나는 
영원히 피로할 것이기에 
구태여 옛날을 돌아보지 않아도 
설움과 아름다움을 대신하여 있는 나의 긍지 
오늘은 필경 긍지의 날인가보다 

내가 살기 위하여 
몇개의 번개같은 환상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꿈은 교훈 
청춘 물 구름 
피로들이 몇 배의 아름다움을 가하여 있을 때도 
나의 원천과 더불어 
나의 최종점은 긍지 
파도처럼 요동하여 
소리가 없고 
비처럼 퍼부어 
젖지 않는 것 

그리하여 
피로도 내가 만드는 것 
긍지도 내가 만드는 것 
그러할 때면 나의 몸은 항상 
한치를 더 자라는 꽃이 아니더냐 
오늘은 필경 여러가지를 합한 긍지의 날인가보다 
암만 불러도 싫지 않은 긍지의 날인가보다 
모든 설움이 합쳐지고 모든 것이 설움으로 돌아가는 
긍지의 날인가보다 
이것이 나의 날 
내가 자라는 날인가보다

 

 

  
                                             

 

 

사랑의 변주곡(戀奏曲) /  김수영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都市의 끝에 
사그러져가는 라디오의 재갈거리는 소리가 
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 
강이 흐르고 그 강건너에 사랑하는 
암흑이 있고 三월을 바라보는 마른나무들이 
사랑의 봉오리를 준비하고 그 봉오리의 
속삼임이 안개처럼 이는 저쪽에 쪽빛 
산이 

사랑의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들의 
슬픔처럼 자라나고 도야지우리의 밥찌끼 
같은 서울의 등불을 무시한다 
이제 가시뱥 덩쿨장미의 기나긴 가시가지 
까지도 사랑이다 

왜 이렇게 벅차게 사랑의 숲은 밀려닥치느냐 
사랑의 음식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 때까지 

난로 위에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물이 아슬 
아슬하게 넘지 않는 것처럼 사랑의 節度는 
열렬하다 
間斷도 사랑 
이 방에서 저 방으로 할머니가 계신 방에서 
심부름하는 놈이 있는 방까지 죽음같은 
암흑 속을 고양이의 반짝거리는 푸른 눈망울처럼 
사랑이 이어져가는 밤을 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만드는 기술을 안다 
눈을 떴다 감는 기술---불란서혁명의 기술 
최근 우리들이 四.一九에서 배운 기술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소리내어 외치지 않는다 

복사씨와 살구씨와 곶감씨의 아름다운 단단함이여 
고요함과 사랑이 이루어놓은 暴風의 간악한 
信念이여 
봄베이도 뉴욕도 서울도 마찬가지다 
信念보다도 더 큰 
내가 묻혀사는 사랑의 위대한 도시에 비하면 
너는 개미이냐 

아들아 너에게 狂信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라 
人類의 종언의 날에 
너의 술을 다 마시고 난 날에 
美大陸에서 石油가 고갈되는 날에 
그렇게 먼 날까지 가기 전에 너의 가슴에 
새겨둘 말을 너는 都市의 疲勞에서 
배울 거다 
이 단단한 고요함을 배울 거다 
복사씨가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거다! 
복사씨와 살구씨가 
한번은 이렇게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 
그리고 그것은 아버지같은 잘못된 시간의 
그릇된 冥想이 아닐 거다 

<1967. 2. 15> 

 

 

달나라의 장난 / 김수영                                

 

팽이가 돈다 
어린아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 앞에서 
아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한번 팽이를 돌려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안에서 쫓겨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 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라라의 장난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 벽화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는 팽이가 기억이 멀고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년전의 聖人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1953>

 

 

 

 

 

폭포 / 김수영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사이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楕)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1957>

 

 

 

 

 

그 방을 생각하며 / 김수영                                     

 

革命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노래를 그 방에 함께 남기고 왔을 게다 
그렇듯 이제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메말랐다 
그 방의 벽은 나의 가슴이고 나의 四肢일까 
일하라 일하라 일하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나의 가슴을 울리고 있지만 
나는 그 노래도 그 전의 노래도 함께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革命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나는 인제 녹슬은 펜과 뼈와 狂氣--- 
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움 혹시나 역사일지도 모르는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재산으로 삼았다 

革命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었지만 
나의 입속에는 달콤한 의지의 殘滓 대신에 
다시 쓰디쓴 냄새만 되살아났지만 

방을 잃고 낙서를 잃고 기대를 잃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 

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풍성하다 

 

<1960. 10. 30>

 

 

 

 

 

거대한 뿌리 / 김수영                                            

 

나는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어쩌다 셋이서 술을 마신다 둘은 한 발을 무릎 위에 얹고 
도사리지 않는다 나는 어느새 南쪽 식으로 
도사리고 앉았다 그럴때는 이 둘은 반드시 
이북친구들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앉음새를 고친다 
팔·일오 후에 김병욱이란 詩人은 두 발을 뒤로 꼬고 
언제나 일본여자처럼 앉아서 변론을 일삼았지만 
그는 일본대학에 다니면서 사년 동안을 제철회사에서 
노동을 한 강자다 

 

나는 이사벨 버드 비숍여사와 연애하고 있다 그녀는 
일팔구삼년에 조선을 처음 방문한 영국왕립지학협회회원이다 
그녀는 인경전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세계로 
화하는 극적인 서울을 보았다 이 아름다운 시간에는 
남자로서 거리를 무단통행할 수 있는 것은 교군꾼, 내시, 외국인의 종놈, 궁리들 뿐이었다 그리고 
심야에는 여자는 사라지고 남자가 다시 오입을 하러 
활보하고 나선다는 이런 기이한 관습을 가진 나라를 
세계 다른 곳에서는 본 일이 없다고 
천하를 호령한 민비는 한번도 장안외출을 하지 못했다고......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나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구문의 진창을 연상하고 인환네 
처갓집 옆의 지금은 매입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패러다이스처럼 생각한다 
버드 비숍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비숍여사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네에미 씹이다 통일도 중립도 개좆이다 
은밀도 심오도 학구도 체면도 인습도 치안국 
으로 가라 동양척식회사, 일본영사관, 
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나 빨아라 그러나 
요강, 망건, 장죽, 종묘종묘상,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무식쟁이,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이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제삼인도교의 물 속에 박은 철근기둥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괴기영화의 맘모스를 연상시키는 
까지도 까마귀도 응접을 못하는 시꺼먼 가지를 가진 
나도 감시 상상을 못하는 거대한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1964. 2. 3> 

 

 

 

 

병풍 / 김수영                                                     

 

병풍은 무엇에서부터라도 나를 끊어준다.
등지고 있는 얼굴이여
주검에 취한 사람처럼 멋없이 서서
병풍은 무엇을 향(向)하여서도 무관심하다.
주검의 전면(全面) 같은 너의 얼굴 위에
용(龍)이 있고 낙일(落日)이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끊어야 할 것이 설움이라고 하면서
병풍은 허위의 높이보다도 더 높은 곳에
비폭(飛瀑)을 놓고 유도(幽島)를 점지한다.
가장 어려운 곳에 놓여 있는 병풍은
내 앞에 서서 주검을 가지고 주검을 막고 있다.
나는 병풍을 바라보고
달은 나의 등 뒤에서 병풍의 주인 육칠옹해사(六七翁海士)의 인장(印章)을 비추어주는 것이었다.

 

 

 

 

 

푸른 하늘을 / 김수영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詩人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革命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革命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1960. 6. 15>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 김수영                            


 

 

거미  / 김수영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 
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1954. 10. 5>

 

 

 

 

 

 

사랑의 변주곡  / 김수영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도시의 끝에 
사그러져가는 라디오의 재갈거리는 소리가 
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 
강이 흐르고 그 강건너에 사랑하는 
암흑이 있고 삼월을 바라보는 마른나무들이 
사랑의 봉오리를 준비하고 그 봉오리의 
속삼임이 안개처럼 이는 저쪽에 쪽빛 
산이

 

사랑의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들의 
슬픔처럼 자라나고 도야지우리의 밥찌끼 
같은 서울의 등불을 무시한다 
이제 가시? 덩쿨장미의 기나긴 가시가지 
까지도 사랑이다

왜 이렇게 벅차게 사랑의 숲은 밀려닥치느냐 
사랑의 음식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 때까지

 

난로 위에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물이 아슬 
아슬하게 넘지 않는 것처럼 사랑의 절도(節度)는 
열렬하다 
간단(間斷)도 사랑 
이 방에서 저 방으로 할머니가 계신 방에서 
심부름하는 놈이 있는 방까지 죽음같은 
암흑 속을 고양이의 반짝거리는 푸른 눈망울처럼 
사랑이 이어져가는 밤을 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만드는 기술을 안다 
눈을 떴다 감는 기술-
--불란서혁명의 기술 
최근 우리들이 사·일구에서 배운 기술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소리내어 외치지 않는다

복사씨와 살구씨와 곶감씨의 아름다운 단단함이여 
고요함과 사랑이 이루어놓은 폭풍의 간악한 
신념이여 
봄베이도 뉴욕도 서울도 마찬가지다 
신념보다도 더 큰 
내가 묻혀사는 사랑의 위대한 도시에 비하면 
너는 개미이냐

 

아들아 너에게 광신(狂信)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라 
인류의 종언의 날에 
너의 술을 다 마시고 난 날에 
미대륙에서 석유가 고갈되는 날에 
그렇게 먼 날까지 가기 전에 너의 가슴에 
새겨둘 말을 너는 도시의 피로에서 
배울 거다 
이 단단한 고요함을 배울 거다 
복사씨가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거다! 
복사씨와 살구씨가 
한번은 이렇게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 
그리고 그것은 아버지같은 잘못된 시간의 
그릇된 면상이 아닐 거다

 

<1967. 2. 15> 

 

 

 

 

 

꽃 잎  / 김수영                                             
 

누구한테 머리를 숙일까 
사람이 아닌 평범한 것에 
많이는 아니고 조금 
벼를 터는 마당에서 바람도 안 부는데 
옥수수잎이 흔들리듯 그렇게 조금


바람의 고개는 자기가 일어서는줄 
모르고 자기가 가닿는 언덕을 
모르고 거룩한 산에 가닿기 
전에는 즐거움을 모르고 조금 
안 즐거움이 꽃으로 되어도 
그저 조금 꺼졌다 깨어나고


언뜻 보기엔 임종의 생명같고 
바위를 뭉개고 떨어져내릴 
한 잎의 꽃잎같고 
革命같고 
먼저 떨어져내린 큰 바위같고 
나중에 떨어진 작은 꽃잎같고


나중에 떨어져내린 작은 꽃잎같고


<1967. 5. 2>

 

 

 

 


기 도   /  김수영                                                   


 -사일구순국학도위령제에 부치는 노래 
 

詩를 쓰는 마음으로 
꽃을 꺾는 마음으로 
자는 아이의 고운 숨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죽은 옛 연인을 찾는 마음으로 
잊어버린 길을 다시 찾은 반가운 마음으로 
우리가 찾은 革命을 마지막까지 이룩하자


물이 흘러가는 달이 솟아나는 
평범한 대자연의 법칙을 본받아 
어리석을 만치 소박하게 성취한 
우리들의 革命을 
배암에게 쐐기에게 쥐에게 삵괭이에게 
진드기에게 악어에게 표범에게 승냥이에게 
늑대에게 고슴도치에게 여우에게 수리에게 빈대에게
다치지 않고 깎이지 않고 물리지 않고 더럽히지 않게


그러나 쟝글보다도 더 험하고 
소용돌이보다도 더 어지럽고 해저보다도 더 깊게 
아직까지도 부패와 부정과 살인자와 강도가 남아있는 사회 
이 심연이나 사막이나 산악보다도 
더 어려운 사회를 넘어서


이번에는 우리가 배암이 되고 쐐기가 되더라도 
이번에는 우리가 쥐가 되고 삵괭이가 되고 진드기가 되더라도 
이번에는 우리가 악어가 되고 표범이 되고 승냥이가 되고 늑대가 되더라 
도 
이번에는 우리가 고슴도치가 되고 여우가 되고 수리가 되고 빈대가 되더 
라도 
아아 슬프게도 슬프게도 이번에는 
우리가 革命이 성취하는 마지막날에는 
그런 사나운 추잡한 놈이 되고 말더라도


나의 罪있는 몸의 억천만개의 털구멍에 
罪라는 罪가 가시같이 박히어도 
그야 솜털만치도 아프지는 않으려니


詩를 쓰는 마음으로 
꽃을 꺾는 마음으로 
자는 아이의 고운 숨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죽은 옛 연인을 찾는 마음으로 
잊어버린 길을 다시 찾은 반가운 마음으로 
우리는 우리가 찾은 革命을 마지막까지 이룩하자

 

<1960.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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