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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 김철
2015년 03월 02일 00시 03분  조회:5147  추천:0  작성자: 죽림
 

김철시인 
전국소수민족작가특수공헌상 수상

 

 

 

김철시인이 문학신인 육성에 바친 로고로 전국소수민족작가특수공헌상을 수상했다.


시인 김철은 1932년 일본 시모노세끼 출생으로 중국작가협회 연변분회 주석, 연변문련 주석 등 직을 맡아하다가1982년 중국작가협회로 전근, 중국작가협회 “민족문학”월간지 주필을 력임했다.  
세계예술축전 대상(1956년 모스크바), 세계문화명인성취상, 한국해외문학상, 국무원특수공헌상 등 상을 수상, 시집 30권을 출간했다.       

      
김철 시인은 중국작가협회 “민족문학”주필과 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 상무부회장을 지내던 기간 소수민족의 문학창작과 작가양성을 위하여 신강, 내몽골, 운남, 산동, 연변, 통화 등지에서 여러차례 창작문필회를 조직하였고 북경에서 전국소수민족작가회의를 성공적으로 소집하였다. 연변에서 북경에 전근되여간 초기에도 전국소수민족문학학원을 꾸려 여러 민족 문학신인들을 많이 육성해냈다.

 

 

김혁 기자


“종합신문” 2009년 2월 23일

 

♧ 추모수필 ♧ 

<<길짱구>>와 같은 그의 생애 


김철



임효원하면 《길짱구》가 생각난다. 그이는 좋은 시들을 남겨놓고서 저세상으로 갔다. 생각하면 《길짱구》와 꼭같은 그의 생애, 어찌 보면 《길짱구》는 시인의 자화상일런지도 모른다. 광복후 송강성(지금의 흑룡강성)에서부터 정열에 넘치는 필을 든 청년시인― 임효원선생, 파란만장 그의 한생은 《길짱구》와 같이 밟히며 살아온, 문단의 불행한 축도라고도 말할수 있지 않을가. 반우파투쟁, 민족정풍, 《흰기》 뽑기, 영화 《무훈전비판》, 문화대혁명… 어느 하나도 그를 빼놓지 않았다. 무시무시했던 문예계의 비판운동가운데서 그는 번마다 된서리를 맞았고 번마다 또한 위험한 신세가 될번했으나 다행히도 그는 변두리를 스치며 겨우 살아남은 불행중 다행스런 인물이였다. 

밟히면서도 머리 들고 살아온 인간, 그의 삶은 《길짱구》처럼 끈질긴 삶이였다. 그의 《길짱구》는 유린 당한 인간의 항변이기도 했다. 《길짱구》와 같이 짓밟히며 울부짖으며 살아온 우리 또래들의 한세대, 우리는 모두 《길짱구》의 친구들이 아닌가! 

나와 임효원시인사이에는 지울수 없는 한토막의 추억이 있다. 1953년 초여름, 내가 지원군전사복을 입고 일자리를 찾아 연변으로 처음 왔을 때였다. 그때 임효원시인은 문단의 몇몇 동료들과 함께 연변문련을 창립하려고 준비사업에 분망한 나날을 보내고있었다. 내가 그들을 찾아갔을 때 준비위원회 성원들은 최죽송사(후에 신풍대대) 어느 농민집 뒤골방에서 회의를 하고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배낭에 넣어 지고온 《전선시초》라는 자작시집 두권을 건네주면서 좀 보아달라고 부탁하였다. 

이튿날 나는 성부지명부지 아무런 련락도 없었던 신문사 사장(당시의 이름은 동북조선인민보였는데 후에 연변일보로 개칭)을 찾아갔다. 사장실에 들어서니 대머리가 훌렁 벗어진 50대 어른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왜 왔소?》 

《나를 신문사에서 쓰지 않겠습니까?》 

전사답게 거수경례를 하고나서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였다. 물론 지금처럼 누구를 통해 장황한 자기소개도 없었고 손에 든 술병 같은건 더더구나 없었다. 그런데 대방의 대답은 뜻밖이였다. 

《쓰겠소!》 

《예?》 

도리여 내쪽에서 어안이 벙벙해졌다. 

(저분이 나를 어떻게 알고 쓰겠다 하실가?) 

《정말입니까?》 

《정말이요.》 

《그럼 여기다 쓰겠다는 글쪽지 하나 써주십시오. 동북군구에 가서 정식수속을 해야 하니깐요.》 

그 사장님은 또 두말없이 나를 받겠다는 글쪽지를 써주었다. 우리의 취직담판은 이렇게 끝났다. 이 당돌한 취직담판에 대한 의혹은 후에야 풀렸다. 바로 나에 대한 자료를 제공한 사람이 임효원시인이였다. 

그처럼 다망한 사업가운데서도 언젠가 내가 건네준 시집 《전선시초》를 읽고 임효원시인은 매우 높은 평가를 하였다 한다. 

《참말 대단한 젊은이야. 앞으로 꼭 훌륭한 시인이 될수 있을거야!》 
그리고는 이 소문을 문예계에 파다하게 퍼뜨렸는데 하루전에 리희일사장이 들었다는것이였다. 하여 리사장은 아무런 고려 없이 나를 신문기자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임효원시인은 나의 문단생애가 시작되는 기자생활의 다리를 놓아준 고마운 분이였다. 

그후 우리는 줄곧 한전선에서 일해온 한전호속의 전우였다.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눈 시우, 먼저 가신 그 길이 편하시기를 두손 모아 비는 간절한 마음이다.  


<<연변문학>> 2007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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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지평선


김철


사회주의새농촌을 건설하는 문제는 열기띤 화제이다. 이는 우리 당, 전국 인민, 그리고 우리 작가들앞에 나선 력사적과제이며 전당 전민이 실현해야 할 위대한 력사적사명이다. 

그런데 현황은 어떠한가? 

그동안 농촌이 우리 창작에서 소외되고있었다. 농민들이 우리곁을 떠나가고있다. 한동안 우리 작품의 주제가 많이는 도시로 옮겨졌고 농촌보다는 도시생활에 그 주의력이 쏠렸고 시에서는 큰 《나》요 작은 《나》요 하면서 자아도취에 빠져있었다. 우리 작가, 시인들에게는 차츰 농촌생활이 생소해지고 흥취도 적어졌다. 그러니 농민들이 우리곁을 떠날수밖에. 

사회주의새농촌건설에서 새문화건설은 매우 중요한 위치에 처해있다. 그들의 관념도 변하고있다. 생활환경, 생활양식, 관념과 의식, 풍속과 세태, 전통과 혁신 모두가 탈바꿈을 하고있다. 어떤 사람은 이를 두고 《천지개벽》이라는 명사를 쓰고있다. 특히 조선족사회는 변화가 매우 크다. 백여년의 농경이민사에 종지부를 찍고 지금은 산업대진군을 하는 지각변동이 일어나고있으며 외국 로무수출과 농촌인구류동으로 하여 조선족농촌에는 심각한 사회문제들이 야기되고있다. 이 와중에서 우리 민족 농민들의 사상과 생활도 매우 복잡해졌고 현실과 미래, 그리고 삶을 두고 외면 못할 충돌과 변화가 일어나고있다. 희와 비, 희망과 우려가 한데 엉켜 생활의 다양한 양상을 보여주고있다는 말이 되겠다. 이 모든것은 우리 작가들이 정시하고 주시해야 할 문제들이다. 지난날 력사의 위대한 전환기마다 우리 작가들은 필을 날려 불후의 명작이나 거창한 문장들을 썼다. 참혹했던 항일전쟁이나 들끓던 합작화시기 같은것이 그러했다. 이 시기 우리 작품의 주인공은 대부분 농민들이였다. 어찌보면 지난날 농민의 희로애락은 우리 민족정서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그 시기 우리 작가와 농민들은 매우 친근했고 물과 고기의 사이였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를 않다. 우리 문학작품에서 농민들의 형상이 차츰 희미해지고 소외되여가고있다. 이는 우리가 깊이 사고하고 반성해보아야 할 문제인것 같다. 

지금 농촌에는 일부 어설픈 그림자가 드리워있기도 하지만 밝은 빛과 서광이 비쳐들기도 하고있다. 사회주의새농촌, 성향의 차별이 축소되여가고있는 향진기업의 성장, 이런 농촌의 모델이 동북 각지에 적지 않게 나타나고있다. 이런 향진의 농민들은 도시시민들 못지 않는, 완전히 신형의 농민모습과 생활양상이 펼쳐지고있다. 그들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도 변화되고있다. 신형의 륜리, 새로운 감정, 새로운 형태의 농민, 이런 신형의 인간들이 우리 작품에 대거 등장되여야 할것이다. 

이렇게 하자면 우리 작가들이 새로운 자태로, 새로운 안광으로, 새로운 감정으로 변화되는 새농촌 현실속에 들어가야 할것이다. 결코 낡은 관점이나 낡은 의식형태에 사로잡혀 그들의 부정면이나 락후한 면에만 낯을 돌리고 현실을 어둡게만 보지 말고 새로운 각도와 새로운 형태의 농민을 발견하고 묘사하기에 력점을 두어야 할것이다.  
우리 문학의 복무대상의 대부분은 여전히 농민이다. 우리 작품의 독자도 대부분이 역시 농민이다. 우리가 그들을 도외시하거나 지어는 그들을 잃는다면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문학의 대상과 의미도 기로에 빠지게 될것이다. 우리의 문학이 광활한 농촌에 뿌리박고 예전과 마찬기지로 그들 대다수를 위해 진심으로 복무한다면 우리 문학의 수평선도 날로 넓어질것이 아닌가! 

광활한 농촌에 낯을 돌리자, 농민들을 작품에 주인공으로 모시자. 시에서도 순수한 《나》를 좀 적게 쓰고 농민들의 세계에로 붓끝을 돌리자. 우리 문학이 농민을 잃는다면 그 주체를 잃는것과 다름없는것이다. 

당중앙의 호소가 바로 사회주의새농촌을 건설하는데 그 력점을 두었다. 우리 문학도 이에 적극 호응해야 할것이 아닌가. 
문학의 광활한 천지, 문학의 지평선이 열리고있다. 우리 모두 필봉을 농촌에로 돌리자. 그리고 광활한 천지에서 대작을, 걸작을 많이 쓰자. 시대가 이를 요구하고있지 않는가! 

(문화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수 있습니다.)
 



<<연변문학>> 2007년 6월호

작가의 령감
2013년 03월 31일 작성자: 훈이

 십년 전 대학에서 대학생들과 대화를 가진적 있다. 당시 대화의 주제가 “작가의 령감”이었다. 필자가 창작경력에 대한 소개를 마친뒤 바로 질문 답변 절차에 들어갔는데 한 학생이 이런 질문을 했다. 

 “누구나 글은 쓸 수 있지만 작가다운 글은 못 쓰는데 대체 작가란 어떤 사람인지 작가님의 소견을 듣고 싶습니다. 

 17살부터 시, 소설, 연극, 시나리오, 칼럼, 기행문을 써오면서도 필자는 작가가 대체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 또한 그럴 필요조차 느끼지도 못했던차라 인차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잠깐 뜸을 들이고나서 필자는 생각나는대로 답했다. 

 “솔직히 말해 필자는 작가에 대한 정의를 생각조차 못해본 사람입니다. 정의를 내릴 수도 없고.”

 이렇게 허두를 뗀 필자는 대충 작가에 대한 소견을 피력했다. 작가는 모든 것과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다. 인간과의 대화는 물론 삼라만상과 대화가 가능하다. 하늘의 태양, 지어 꽃잎에 맺힌 이슬과도 대화가 가능하다. 영혼과도 또한 하나님과도 대화가 가능하다. 대화가 가능한 것은 작가가 대화를 통해 계시를 받고 창작 충동을 받으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필자의 아버님(김철)은 당대 원로 시인이다. 아버님은 어떻게 해야 시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학도들의 질문에 “시인이 되려면 남다른 시각과 느낌을 가져야 한다.”고 답한적이 있다. 남다른 시각이라면 시인다운 시각이란 말인데 그런 시각을 갖추어야만 시인다운 령감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되겠다. 시인과 령감을 언급하면서 아버님은 자작시 <대장간 모루우에서>를 예들었다. 
 

대장간 모루우에서 

나는 늘 

매를 맞아 사람이 된다 

벌겋게 달아오른 나의 정열 
뜨거울 때 나는 매를 청한다 

맞을 때는 미처 몰라도 
맞고 나면 그 매값을 안다 

그래서 나는 내 몸이 식을 때 
노상 주르르 눈물을 흘린다.
 

 시인의 눈에는 대장간 모루위에 놓인 쇠붙이가 그냥 쇠붙이로 보이지 않고 고된 인생살이에서 삶의 이치를 터득해 가는 자신을 찾아본 것이다. 이런 시각적인 차이, 그 차이가 바로 시인과 일반인과의 차이다. 시각적인 차이로 느낌도 다를 건 당연한 일이다. 

 

 시인다운 시각은 어디서 오는가에 대해 필자의 아버님은 직답은 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가난한 시인이다돈보다도 사색의 빈곤 고통이 심하다그래서 부자가 되고 싶다추억에는 백만장자지만 사색에는 참말 거지다그래서 애써 사색의 부자가 되고 싶다.”
 

 그러니까 시인다운 시각은 깊은 사색에서 온다는 말이 되겠다그런 사색이 동반되어야 시적인 령감을 얻을  있다는 말로도 통한다. 

 아버님은 문화혁명시절 4 옥살이를 하면서도 감방에서 사색을 멈추지 않았고 시를 구상하는 비범한 창작열정을 보였다아버님은 “내가 자살을 하거나 정신이 붕괴되지 않은 것은 가족의 드팀없는 믿음외에도  맘속에 항상 시가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가 플라톤 시인을 “신들린 사람이라고 했다아버님은 진짜 시에 “신들린” 분이셨다.  

 “부전자전”으로 필자가 아버님 뒤를 이어 작가가 된데는 유전자보다도 아버님이 항상 쫓는 집요한 사색, 그 사색이 동반한 창작열정이 필자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사전에 올림말을 보면 령감이란 사유의 일종인데 일명 영감사유라고 한다.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창조적인 사유로서 간단하게 말하면 창의적인 기발한 생각이다. 작가의 생활체험, 소유한 지식, 끈질긴 추구, 깊은 사색의 복합체가 승화를 이룬 것이 바로 작가가 얻는 령감이다. 

기독교 신자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신의 계시다. 신의 계시를 영적인 계시라고도 하는데 작가가 생활실천과 사색을 통해 받는 계시, 느낌, 또는 창작 충동도 역시 작가만이 가질 수 있는 영적인 계시”가 아닐가. 

작가가 령감을 얻는 방식 또한 각양각색이다. 어떤 작가는 미술, 음악, 영화 등 다른 쟝르의 작품에서 령감을 얻는다고도 하고 또 어떤 작가는 꿈을 통해 령감을 얻는다고도 한다. 그 중 많은 작가들은 산책하면서 또는 명상에 잠겨 령감을 얻는다고 한다. 여기서 필자는 한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작가의 체험이다.

필자의 경우를 보면 창작의 령감을 얻는데 가장 필수적인 것이 바로 생활체험과 사색이다. 

필자의 작품 중 중편소설 “아 동년은 필자의 동년의 추억을 바탕으로 씌어진 자서전체 소설이고 중편소설 청춘약전은 필자가 지식청년시절 의 생활체험과 주변 친구들의 운명을 다룬 글이며 3대 여성의 운명을 다룬 시나리오 민들레꽃은 역사공부에서 얻은 사색과 품을 들인 인물취재에서 얻어진 작품이다. 10편의 소설로 이루어진 계열소설 수도권의 촌놈들은 필자가 중국국제방송국으로 전근된 후 쓴 소설이다. 소설은 개혁개방후 수도에 진출한 각양각색의 인물 군상을 그렸는데 이 소설 역시 사색을 동반한 작가적인 체험에 근거해 씌어진 것이다. 아래에 중편소설 정신병리학 연구”를 례들가 한다. 

이 소설은 정신병원이라는 특이한 환경을 배경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와 정상인이지만 정신질환을 가진 일반인들의 운명과 흘러온 세월이 인간에게 강요한 정신질환, 아울러 정신질환이 정상인, 사회에 조성한 위해를 각광시키면서 물질의 풍요만 추구하지 말고 심령의 구석구석을 살펴볼 것을 독자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이 소설을 쓸 충동은 정신병원 원장으로 있는 친구를 찾아 정신병원에 갔다가 목격한 장면에서 받았다. 정신병원에 가 보니 한번 특이한 환경인 정신병원을 돌아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환자들인 입원한 병동에 들어서기 바쁘게 한 늙은 환자가 군례를 붙혔다. 그 환자는 전쟁시기 포소리에 놀라 정신이 돌아버린 분이었다. 여자 병동에 가니 한 여인이 연지곤지 바른 얼굴로 열심히 문화혁명시기 추던 “충성무를 추고 있었다. 돈에 환장해 정신이 돌아버린 한 환자는 쉴새없이 무언가 중얼거리며 동전을 쌓아올리고 있었다. 이런 환자들을 보는 순간 필자는 정신병 환자의 사유는 그가 미쳐버린 그 시대에 머물러 있고 정신병원은 그냥 병원이 아니라 하나의 역사박물관”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 정상인들은? 

 원장인 내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정상인도 여러가지 정신질환을 안고 있다. 단 그가 정상인인 것은 그가 정신 통제력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통제력을 잃으면 정신병환자다.”

정신병원에서 받은 계시, 느낌, 충동으로 필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상들을 새삼스럽게 눈여겨 보게되었고 물질의 풍요속에 병들어가는 심령의 상처를 짚어내게 되어 나중에 그것이 소설화 되었다. 소설이 발표된 후 필자는 소설을 장막연극으로 각색했다. “망각된 인간들이란 제목으로 된 연극은 3회 공연밖에 못하고 금연당했다. 문화대혁명이 끝나 11년이 지난 1987년이었지만 좌경 사조는 남아있었다. 당시 이 연극에 사회 전체를 정신병원으로 모독하고 현대인을 죄다 정신병환자로 치부했다는 루명을 뒤집어 씌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연극은 그 이듬해  중국소수민족제재연극창작” 은상을 수상했다. 

필자는 작가의 령감을 유발하는 작가의 생활실천과 사색은 작가의 사명감에서 온다고 본다. 작가의 사명감에 대해 작가들마다 다 나름대로의 해석이 있지만 필자 생각에는 작가의 사명감은 한마디로 인간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안고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그리는 것이라고 본다. 

20년전 필자는 한국과 중국 연변에서 한국의 조정래 소설가를   만났다편한 자리에서 나누던 대화 중 조정래 소설가는 이런 말을 했다. 

 “소설가는 그냥 고개 숙이고 묵묵히 밭길을 걷는 농부와 같다. 했다. 

 농부는 묵묵히 밭길을 걷지만 가을을 꿈꾼다작가 역시 농부마냥 창작에서 수확의 계절을 꿈군다천재적인 발명가 애디슨 명언으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천재는 99% 땀과 1% 령감으로 이루어진다.” 
 


                                                                              (두만강 사이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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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에서 틔운 문학꿈
시와 노래로 꽃피다
(ZOGLO) 2018년5월18일
 

평생영예칭호 수상자 김철

20세기 70년대 말에 창작된 <선생님의...>(동희철 작곡)는 30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 의해 불리고 있다. 이 노래의 작사자가 바로 김철 시인이다.
이 노래는 당시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지위가 일락천장이 됐던 교육자들의 위상을 높여주고 옳바른 교육기풍을 선양한데서 연변을 비롯해 전국의 조선족학교들에서 많이 불려졌고 그뒤 한어로 번역돼 전국 각지 학교들에 널리 전파됐다.
 
김철 시인(87세)의 본명은 김룡섭, 1932년 8월 6일에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태여났다. 일본, 중국 대만을 거쳐 부모의 고향인 전라남도 곡성군에서 초등학교 4학년까지 다녔으며 1942년 부모를 따라 중국으로 이주했다.
 
1949년 마라손선수로 연변과 흑룡강성에서 1등을 따내기도 했던 그는 전국대회 선수권자격을 얻었지만 조선전쟁의 발발로 무산됐다.
 
1950년 그는 중국인민지원군에 참군, 군예술단에서 무용배우와 안무가로 활약했다. 장진호전역 당시 우연히 페허더미속에서 조기천의 시집 《백두산》을 찾아낸 것을 계기로 그의 시인꿈이 싹트기 시작했다.
 
미구에 부대를 따라 이동하던 김철은 우연히 조기천과 한 집에서 묵게 되였으며 그와 밤새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로부터 그는 얻을 수 있는 시집은 모조리 보았고 짬만 나면 시를 쓰면서 본격적으로 문학창작을 시작했다.
 
한편 1952년 그가 창작한 무용 <공병춤>은 중국인민해방군, 중국인민지원군 제1차 예술콩클에서 1등상을 수상했으며 전국순회공연에 참가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당시 모택동주석, 주은래총리 등 당과 정부 지도자들은 중남해 회인당에서 그가 창작하고 출연한 <공병춤>을 관람하기도 했다.
 
1953년 제대할 때는 연길에 있는 《동북조선인민보》(연변일보의 전신)에 무작정 찾아가서 받아달라고 지청구를 들이댔는데 당시 문화분야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던 터라 순조롭게 입사했다. 이 가운데는 에피소드가 들어있다.
 
일찍 <공병춤>이 전국문예경연대회에서 1등상을 수상하고 중앙 문화부에서 회보공연을 할 때 김학철 선생이 주석단에 앉아 관람했고 그 뒤 김철 시인은 연길행에서 문학도의 신분으로 김학철 선생을 찾았다. 김철 시인이 전쟁의 나날에 쓴 수백수의 시들을 묶은 2권의 자작시집 보고나서 김학철 선생은 크게 고무격려해주었고 그 소문이 당시 신문사 사장이던 리희일의 귀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때로부터 김철 시인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신문기사와 문학창작에 정진했다. 신문사에 문예부가 선지 얼마 안돼 일손이 딸리는 상황에서 김철 시인 혼자서 1주일에 문예면을 한기씩 꾸려야만 했다. 이외에도 중요행사에는 통신문을 써서 주요 지면에 공급해야 했고 따로 론설도 써야 했다. 시인은 한 인터뷰에서 그때가 가장 바빴지만 일할 멋이 났다고 적고 있다.
 
1956년에 김철 시인이 정진옥 작곡가와 손잡고 창작한 대합창 <장백의...>는 모스크바에서 펼쳐진 제6차 세계청년예술축전에서 은상을 수상, 그때 그의 나이 24살이였다. 당시 주덕해 서기가 김철 시인과 정진옥 작곡가에게 “로항일근거지이며 수많은 항일렬사들이 나온 연변에서 그들을 노래하는 큰 작품을 써달라”고 부탁을 했고 이들은 장백현 북쪽의 밀영지에서 혹한을 체험해가며 작품을 써냈다.
 
이 작품은 북경 ‘천교극장’에서 공연했는데 적은 합창대 인원으로 큰 무대를 꽉 채우는 성량을 보여주며 관객들을 감동시켰다. 평의결과 모든 평심들이 <장백의...>를 1등으로 선정했다고 한다.
 
김철 시인의 처녀작은 시가 아닌 <낟가리>란 제목의 단편소설이다. <낟가리>의 원고료는 60원이였는데 당시 월급이 40원 50전이였다고 하니 거금이 아닐수 없다. 이어서 1953년 서정시 <지경돌>이 《동북조선인민보》 신춘문예에 입선되며 문단에 데뷔한 그는 지금까지 38권의 저작을 내놓기에 이른다.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5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옥중에서 장편서사시 《동틀무렵》을 구상했고 출옥해서는 《연변문예(<연변문학> 전신)》잡지사에 출근하면서 창작에 몰두, 련속 장편서사시와 서정시집들을 쏟아냈다. 이후 그는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겸 비서장, 연변작가협회 주석과 연변문련 주석을 력임했다.
 
1983년에 중국작가협회로 전근했고 중국 4대 문학간행물의 하나인 《민족문학》의 주필을 맡았다. 이 기간 또 중국민족작가협회 상임부회장으로 활약하면서 전국 소수민족 문과대학을 꾸리는 등 문학인재 양성에 모든 심혈을 기울였다.
 
김철의 첫 시집 《변강의 마음》은 1957년에 출간됐다. 그밖에 1958년에 출간된 시집 《동풍만리》, 장편서사시 《동틀무렵》과 《새별전》, 서사시집 《내 고향의 금물결》, 서정시집 《가야금집》, 《태양에로 가는 길》과 《산향길》 그리고 《인간세상》 등이 있다. 그중 《새별전》은 봉건시대 농민봉기의 장엄하고 웅장한 투쟁을 배경으로 했고 주인공 새별과 장수의 굴곡적인 사랑이야기를 통해 조선족 인민의 아름다운 정신면모와 투쟁정신을 보여줬다. 김철 시인의 《새별전》, 《김철시선집》 등 작품은 전국 제2회, 제4회 소수민족문학 창작상을 수여 받았다. 그의 시작품은 향토분위기가 농후하고 민족특색이 선명하며 감정이 풍부하다는 평가이다.
 
(본 기사는 자료에 근거해 작성됐음을 알린다.)
 
///연변일보 리련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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