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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시인
전국소수민족작가특수공헌상 수상
김철시인이 문학신인 육성에 바친 로고로 전국소수민족작가특수공헌상을 수상했다.
시인 김철은 1932년 일본 시모노세끼 출생으로 중국작가협회 연변분회 주석, 연변문련 주석 등 직을 맡아하다가1982년 중국작가협회로 전근, 중국작가협회 “민족문학”월간지 주필을 력임했다.
세계예술축전 대상(1956년 모스크바), 세계문화명인성취상, 한국해외문학상, 국무원특수공헌상 등 상을 수상, 시집 30권을 출간했다.
김철 시인은 중국작가협회 “민족문학”주필과 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 상무부회장을 지내던 기간 소수민족의 문학창작과 작가양성을 위하여 신강, 내몽골, 운남, 산동, 연변, 통화 등지에서 여러차례 창작문필회를 조직하였고 북경에서 전국소수민족작가회의를 성공적으로 소집하였다. 연변에서 북경에 전근되여간 초기에도 전국소수민족문학학원을 꾸려 여러 민족 문학신인들을 많이 육성해냈다.
김혁 기자
“종합신문” 2009년 2월 23일
십년 전 대학에서 대학생들과 대화를 가진적 있다. 당시 대화의 주제가 “작가의 령감”이었다. 필자가 창작경력에 대한 소개를 마친뒤 바로 질문 답변 절차에 들어갔는데 한 학생이 이런 질문을 했다.
“누구나 글은 쓸 수 있지만 작가다운 글은 못 쓰는데 대체 작가란 어떤 사람인지 작가님의 소견을 듣고 싶습니다.”
17살부터 시, 소설, 연극, 시나리오, 칼럼, 기행문을 써오면서도 필자는 작가가 대체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 또한 그럴 필요조차 느끼지도 못했던차라 인차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잠깐 뜸을 들이고나서 필자는 생각나는대로 답했다.
“솔직히 말해 필자는 작가에 대한 정의를 생각조차 못해본 사람입니다. 정의를 내릴 수도 없고.”
이렇게 허두를 뗀 필자는 대충 작가에 대한 소견을 피력했다. 작가는 모든 것과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다. 인간과의 대화는 물론 삼라만상과 대화가 가능하다. 하늘의 태양, 지어 꽃잎에 맺힌 이슬과도 대화가 가능하다. 영혼과도 또한 하나님과도 대화가 가능하다. 대화가 가능한 것은 작가가 대화를 통해 계시를 받고 창작 충동을 받으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필자의 아버님(김철)은 당대 원로 시인이다. 아버님은 어떻게 해야 시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학도들의 질문에 “시인이 되려면 남다른 시각과 느낌을 가져야 한다.”고 답한적이 있다. 남다른 시각이라면 시인다운 시각이란 말인데 그런 시각을 갖추어야만 시인다운 령감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되겠다. 시인과 령감을 언급하면서 아버님은 자작시 <대장간 모루우에서>를 예들었다.
대장간 모루우에서
나는 늘
매를 맞아 사람이 된다
벌겋게 달아오른 나의 정열
뜨거울 때 나는 매를 청한다
맞을 때는 미처 몰라도
맞고 나면 그 매값을 안다
그래서 나는 내 몸이 식을 때
노상 주르르 눈물을 흘린다.
시인의 눈에는 대장간 모루위에 놓인 쇠붙이가 그냥 쇠붙이로 보이지 않고 고된 인생살이에서 삶의 이치를 터득해 가는 자신을 찾아본 것이다. 이런 시각적인 차이, 그 차이가 바로 시인과 일반인과의 차이다. 시각적인 차이로 느낌도 다를 건 당연한 일이다.
시인다운 시각은 어디서 오는가에 대해 필자의 아버님은 직답은 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가난한 시인이다. 돈보다도 사색의 빈곤, 그 고통이 심하다. 그래서 부자가 되고 싶다. 추억에는 백만장자지만 사색에는 참말 거지다. 그래서 애써 사색의 부자가 되고 싶다.”
그러니까 시인다운 시각은 깊은 사색에서 온다는 말이 되겠다. 그런 사색이 동반되어야 시적인 령감을 얻을 수 있다는 말로도 통한다.
아버님은 문화혁명시절 4년 옥살이를 하면서도 감방에서 사색을 멈추지 않았고 시를 구상하는 비범한 창작열정을 보였다. 아버님은 “내가 자살을 하거나 정신이 붕괴되지 않은 것은 가족의 드팀없는 믿음외에도 내 맘속에 항상 시가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가 플라톤은 시인을 “신들린 사람”이라고 했다. 아버님은 진짜 시에 “신들린” 분이셨다.
“부전자전”으로 필자가 아버님 뒤를 이어 작가가 된데는 유전자보다도 아버님이 항상 쫓는 집요한 사색, 그 사색이 동반한 창작열정이 필자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사전에 올림말을 보면 령감이란 사유의 일종인데 일명 영감사유라고 한다.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창조적인 사유로서 간단하게 말하면 창의적인 기발한 생각이다. 작가의 생활체험, 소유한 지식, 끈질긴 추구, 깊은 사색의 복합체가 승화를 이룬 것이 바로 작가가 얻는 령감이다.
기독교 신자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신의 계시”다. “신의 계시”를 “영적인 계시”라고도 하는데 작가가 생활실천과 사색을 통해 받는 계시, 느낌, 또는 창작 충동도 역시 작가만이 가질 수 있는 “영적인 계시”가 아닐가.
작가가 령감을 얻는 방식 또한 각양각색이다. 어떤 작가는 미술, 음악, 영화 등 다른 쟝르의 작품에서 령감을 얻는다고도 하고 또 어떤 작가는 꿈을 통해 령감을 얻는다고도 한다. 그 중 많은 작가들은 산책하면서 또는 명상에 잠겨 령감을 얻는다고 한다. 여기서 필자는 한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작가의 체험이다.
필자의 경우를 보면 창작의 령감을 얻는데 가장 필수적인 것이 바로 생활체험과 사색이다.
필자의 작품 중 중편소설 “아 동년”은 필자의 동년의 추억을 바탕으로 씌어진 자서전체 소설이고 중편소설 “청춘약전”은 필자가 지식청년시절 의 생활체험과 주변 친구들의 운명을 다룬 글이며 3대 여성의 운명을 다룬 시나리오 “민들레꽃”은 역사공부에서 얻은 사색과 품을 들인 인물취재에서 얻어진 작품이다. 10편의 소설로 이루어진 계열소설 “수도권의 촌놈들”은 필자가 중국국제방송국으로 전근된 후 쓴 소설이다. 소설은 개혁개방후 수도에 진출한 각양각색의 인물 군상을 그렸는데 이 소설 역시 사색을 동반한 작가적인 체험에 근거해 씌어진 것이다. 아래에 중편소설 “정신병리학 연구”를 례들가 한다.
이 소설은 정신병원이라는 특이한 환경을 배경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와 정상인이지만 정신질환을 가진 일반인들의 운명과 흘러온 세월이 인간에게 강요한 정신질환, 아울러 정신질환이 정상인, 사회에 조성한 위해를 각광시키면서 물질의 풍요만 추구하지 말고 심령의 구석구석을 살펴볼 것을 독자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이 소설을 쓸 충동은 정신병원 원장으로 있는 친구를 찾아 정신병원에 갔다가 목격한 장면에서 받았다. 정신병원에 가 보니 한번 특이한 환경인 정신병원을 돌아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환자들인 입원한 병동에 들어서기 바쁘게 한 늙은 환자가 군례를 붙혔다. 그 환자는 전쟁시기 포소리에 놀라 정신이 돌아버린 분이었다. 여자 병동에 가니 한 여인이 연지곤지 바른 얼굴로 열심히 문화혁명시기 추던 “충성무”를 추고 있었다. 돈에 환장해 정신이 돌아버린 한 환자는 쉴새없이 무언가 중얼거리며 동전을 쌓아올리고 있었다. 이런 환자들을 보는 순간 필자는 정신병 환자의 사유는 그가 미쳐버린 그 시대에 머물러 있고 정신병원은 그냥 병원이 아니라 하나의 “역사박물관”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 정상인들은?
원장인 내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정상인도 여러가지 정신질환을 안고 있다. 단 그가 정상인인 것은 그가 정신 통제력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통제력을 잃으면 정신병환자다.”
정신병원에서 받은 계시, 느낌, 충동으로 필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상들을 새삼스럽게 눈여겨 보게되었고 물질의 풍요속에 병들어가는 심령의 상처를 짚어내게 되어 나중에 그것이 소설화 되었다. 소설이 발표된 후 필자는 소설을 장막연극으로 각색했다. “망각된 인간들”이란 제목으로 된 연극은 3회 공연밖에 못하고 금연당했다. 문화대혁명이 끝나 11년이 지난 1987년이었지만 “좌경” 사조는 남아있었다. 당시 이 연극에 “사회 전체를 정신병원으로 모독하고 현대인을 죄다 정신병환자로 치부했다”는 루명을 뒤집어 씌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연극은 그 이듬해 “중국소수민족제재연극창작” 은상을 수상했다.
필자는 작가의 령감을 유발하는 작가의 생활실천과 사색은 작가의 사명감에서 온다고 본다. 작가의 사명감에 대해 작가들마다 다 나름대로의 해석이 있지만 필자 생각에는 작가의 사명감은 한마디로 인간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안고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그리는 것이라고 본다.
20년전 필자는 한국과 중국 연변에서 한국의 조정래 소설가를 두 번 만났다. 편한 자리에서 나누던 대화 중 조정래 소설가는 이런 말을 했다.
“소설가는 그냥 고개 숙이고 묵묵히 밭길을 걷는 농부와 같다.”고 했다.
농부는 묵묵히 밭길을 걷지만 가을을 꿈꾼다. 작가 역시 농부마냥 창작에서 수확의 계절을 꿈군다. 천재적인 발명가 애디슨의 명언으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천재는 99%의 땀과 1%의 령감으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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