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페렉·자크 루보 지음,
피에르 바야르의 <예상 표절>은 시기적으로 앞선 작가가 나중 작가의 작품을 ‘표절’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엉뚱하면서도 흥미로운 주장을 담은 책이다.
이 책 앞부분에서 바야르는 “예상 표절이라는 개념을 고안해낸 건 울리포(잠재문학작업실)다”라고 밝힌다. 울리포는 프랑스의 실험적 문학 집단으로 조르주 페렉, 레몽 크노, 이탈로 칼비노, 마르셀 뒤샹 등이 속해 있었다.
조르주 페렉이 1979년에 처음 발표한 짧은 소설 <겨울 여행>은 바야르에게 예상 표절 개념에 관한 영감을 준 바로 그 작품이다. 이 소설 주인공인 문학 선생 뱅상 드그라엘은 1939년 8월 어느날 동료 드니 보라드의 집 서재에서 <겨울 여행>이라는 소책자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일인칭 시점으로 쓰인 이 소설을 읽자 “마치 눈앞에 있던 문장들이 갑자기 그에게 친숙한 듯했고,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게 무언가를 떠올리게 만드는 듯했으며, 문장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거의 같은 것 같기도 하고 이미 어디선가 읽은 것 같기도 한, 어떤 문장에 대한 또렷하면서도 흐릿한 기억이 떠오르는 것처럼, 아니 그보다는 겹쳐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요컨대 이 소설 속 문장들은 랭보와 말라르메, 로트레아몽, 귀스타브 칸, 베를렌 같은 유명 시인들의 시 구절을 베끼거나 살짝 변형시킨 것들로 보였는데, 문제는 이 책이 이 시인들의 활동 시기보다 앞선 1864년에 출간되었다는 사실. 드그라엘은 “로트레아몽, 제르맹 누보, 랭보, 코르비에르 그리고 다른 많은 시인들이, 단 한 편의 작품 안에 이후 서너 세대의 작가들이 양분으로 삼을 열매들을 모아놓을 수 있었던 천재적이고 불우한 한 시인의 표절자에 지나지 않았음을” 확신하지만, <겨울 여행>의 지은이 위고 베르니에와 그의 작품에 관한 30년 가까운 추적과 연구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결실도 맺지 못한 채 숨을 거두고 만다.
역시 울리포 멤버인 자크 루보가 1992년에 처음 발표한 <어제 여행>은 페렉 소설 <겨울 여행>을 계승·발전시킨 작품으로 문학적 대화와 유희의 흥미로운 사례를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드니 보라드의 아들로 존스홉킨스대학 프랑스 문학 전공 교수인 데니스 보라드는 페렉의 <겨울 여행>을 읽고 위고 베르니에의 삶과 문학에 관한 탐구에 나선다. 고모의 도움으로 그는 위고 베르니에의 또 다른 책 <위고 베르니에의 시들>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는데, 추가 자료를 통해 드러난 사실은 또 다른 충격을 준다. “보들레르의 <악의 꽃>이 베르니에의 <위고 베르니에의 시들>의 완벽한 표절작”이었던 것. 루보는 <악의 꽃> 속 여러 작품의 구절들을 헤쳐 모아 놓은 듯한 베르니에의 시들을 열거한 다음, “1857년 6월25일, <위고 베르니에의 시들> 출간이 예정되었던 최초의 날짜에서 이틀이 지난 후, 파리에서 샤를 보들레르의 <악의 꽃> 초판이 판매되었다”는 사실을 들어 보들레르가 베르니에의 시들을 베꼈다고 주장한다. 베르니에를 베낀 것이 보들레르만은 아니어서 루보는 “모두가 그 책을 읽었다. 모두 그 책을 베낀 다음, 틀림없이 모두 없애버렸을 것이다”라는 과감한 결론으로 나아간다.
페렉의 <겨울 여행>과 루보의 <어제 여행>은 프랑스에서 1997년에 한권의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는데, 지난해에는 역시 이 이야기를 이어 쓴 울리포 구성원 열다섯명의 ‘공동창작소설’이 <겨울 여행 & 그 연작들>이라는 제목으로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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