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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의 1, 2 , 3. ㅡ 석화
2015년 03월 08일 23시 13분  조회:4092  추천:0  작성자: 죽림
시창작의 1, 2, 3. 

석 화 



1. 모든 말에 리듬을 실어라. 

생명의 첫째가는 표현은 호흡이다. 생명은 호(呼)와 흡(吸) 즉 날숨과 들숨의 끝임 없는 반복으로 진행된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무수한 호흡을 반복하며 반복되는 호흡은 리듬을 불러온다. 사람에게 있어 이 숨결은 성대를 울려 소리를 내게 하고 그 소리에 생각을 실어 말이 되게 한다. 말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 글이며 말과 글이 가장 아름답게 이루어진 것을 문학이라 부르고 그 문학의 최초와 최후가 시이다. 시는 말 중의 말(詩=言+寺)로서 시와 비시(非詩)를 가늠하는 저울추를 운율(韻律)이라 하여 문학은 우선 리듬을 담은 운문(韻文)과 그렇지 않은 산문(散文)으로 나뉜다. 

바벨탑의 상징은 세상이 수많은 무리들로 나뉘고 그 무리들은 각기 다른 말을 한다는 이야기로 민족과 민족언어의 의미를 해석하고 있다. 민족언어는 그 해당 민족의 제일 주요하고 가장 근본적인 특징이다. 하나의 민족은 역사, 지리, 문화의 사회학적 공통성과 함께 피부, 골격, 체질 등 생리학적 공통성을 지니고 있는데 민족언어는 이 모두를 함께 아우르는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민족마다 발성법이 다르며 이 자기만의 발성법은 그 민족 나름의 호흡에 의한 성대의 울림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한 민족의 언어에는 그 민족의 숨결과 함께 그 민족의 문화, 풍습, 역사와 전통 모든 것이 스며있어 이를 일러 그 민족혼의 가장 기본적인 염색체(DNA)라고 말한다. 따라서 민족언어를 잃은 민족은 모든 것을 잃은 민족이며 역사 속에 버림받고 현실속에 사라진 민족이라고 말하게 된다. 

시는 리듬 속에 모든 것을 담아낸다. 모태의 시간을 넘어 아득한 태고로부터 한줄기 핏줄을 타고 흘러온 맥박과 숨결이 시인의 호흡에 이어져 민족어의 운율로 리듬을 타게 된다. 훌륭한 시인이란 이 리듬에 자기 숨결의 호흡을 맞추는 자이며 이 리듬에 자기 심장의 박자를 맞추는 자이다. 조상의 숨결에 핏줄을 대고 그 맥박에 박자를 같이 하여 가슴에서부터 울려 나오는 리듬이 입에 올라 스스럼없는 경지에 이르는 자, 그 리듬으로 조화로운 운율을 엮어내는 자가 시인이다. 


2. 이름을 부르고 말을 걸어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김춘추)》라는 시구가 있다. 언어는 기표와 기의 즉 말을 이루는 소리 부분인 시니피앙(significant)과 개념을 나타내는 의미 부분인 시니피에(signifier)로 구성된다. 그리고 이름은 그 기표와 기의를 통하여 지칭하는 대상의 형태 및 속성을 지시한다. 세상의 모든 사물과 현상은 우선 불러주는 이름으로 하여 세상에 존재한다. 해, 달, 별과 꽃과 나비 모두는 그 불러주는 이름에 의하여 우리들에게 인지된다. 물론 《이름값을 못하는 것》도 있고 《이름과 영 다른 것》들도 있지만 그것은 우선 그것 먼저 이름표를 가진 것들과 구별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일 뿐이다. 

아름다운 것들은 아름다운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사랑스러운 것들은 사랑스러운 이름을 가지고 있다. 민들레, 채송화, 들장미, 함박꽃과 나비, 잠자리, 귀뚜라미, 금붕어와 다람쥐, 꾀꼬리, 종달새와 토끼, 거북이, 사슴… 이들의 이름을 불러보아라.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모습들이 눈앞에 금방 떠오를 것이다. 또 코끼리, 반달곰이나 호랑이, 사자를 불러보아라. 그에 걸맞은 모양이 눈앞에 우렷이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 누나와 사랑하는 딸과 아들을 불러보아라. 가슴 가득 따스한 감동이 물결을 칠 것이다. 

머리와 가슴속에 식물과 조류, 곤충류, 어패류와 여러 동물들의 이름을 늘 넣어 다니라. 오늘을 같이 살고 있는 주변 사람이든 역사를 살고 간 옛사람이든 소설이나 드라마 속의 가상적 사람이든 아무튼 그대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들을 항상 불러보라. 그리고 그 모두와 말을 걸어라. 사람이든 다람쥐든 민들레든 또는 나무든 돌이든 이름을 부르고 말을 걸어라. 수많은 인연이 생겨나고 수많은 이야기가 엮어지고 수많은 감동이 물결 칠 것이다. 

우리 겨레는 원래부터 동구 밖 성황당아래의 돌무더기에서부터 집안의 부엌과 뒤 뜰 장독대에 까지 각기 맡은 신들이 따로 있으며 그들을 불러와 말을 나눌 줄 알았다. 유일신적이 아닌 범신론적인 의식을 가지고 세상만물에 모두 신이 있으며 그들 모두와 친해 함께 살아가는 재미를 지니고 있었으며 서로의 느낌과 경험을 공유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름을 부르고 말을 걸어라. 그것들이 마음속으로 다가 올 것이다. 


3. 거꾸로 보고 뒤집어 보아라. 

하늘이 있고 땅이 있으며 해가 있고 달이 있다. 낮이 있고 밤이 있으며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다. 오른 쪽이 있고 왼쪽이 있으며 바른 것이 있고 그른 것이 있다. 세상은 원래부터 이렇게 자기의 짝을 하나씩 가지고 생겨났다. 세상만물은 모두 상대적인 존재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한 쪽만 바라보고 살아왔다. 사물의 뒤편, 반대편의 것은 보지 못하고 아니 보려고 하지 않고 살아왔다. 산이 있고 그림자가 있는데 산만 보고 그림자는 보지 못하거나 그림자만 보고 산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시작은 어느 것의 끝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며 그 끝은 또 새로운 시작을 품고 있다. 정지는 운동의 다른 한 형태이며 운동은 수많은 정지상태가 이어져 이루어 낸 것이다. 나무가 걸어 다니고 사람이 돌이 된다. 물고기가 하늘을 날고 새들이 바다에서 헤엄을 친다. 이렇게 발상의 전환을 위하여 모든 것을 한번 거꾸로 보고 뒤집어 보라. 추상을 구상으로 유기물을 무기물로 또는 그 반대로 생각해 보라. 이것이 메타포(metaphor) 즉 은유와 암유이며 난센스와 아이러니(반어)이며 알레고리(풍유)의 미학이며 패러독스(역설)에 접근하는 길이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어떤 사물을 대할 때, 어떤 현상을 접할 때, 어떤 생각을 할 때 직선적이거나 평면적이 아닌 입체적인 3차원 또는 그 이상의 사유를 진행하며 문제대상의 정면뿐이 아닌 뒤면, 측면과 그보다 많은 면을 동시에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같은 한 그루의 나무를 보더라도 항상 바라보던 시각이 아니라 한번 물구나무서서 올려다보거나 그보다 높은 곳에 올라 내려다보아라. 대뜸 풍경이 바뀌어 질 것이다. 이와 같이 생각의 창문을 열어 일반인들 눈으로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풍경을 찾아내어 그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시인이 마땅히 해야 할 몫이 아니겠는가. 새로운 시각을 찾아 거꾸로 보고 뒤집어 보라는 것이다. 


4. 바람을 보는 눈을 가져라. 

우리는 세상을 오관을 통하여 느끼고 받아들인다. 외부의 각가지 신호를 눈, 귀, 코, 입과 피부로 느끼고 그것을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으로 감수하고 판단하고 대응하는 것이다. 그런데 밖으로부터 받아들인 신호들 가운데서 시각으로 받아들인 신호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 옛사람들은 이것을 가리켜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고 하였다. 객관세계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여러 가지 감각들 중에서 시각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말일 것이다. 

보라. 밖으로 세상을 보고 안으로 마음을 보라. 보이는 것을 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라. 눈을 떠서 보이는 것만 보아서는 아직 시인이 아니다. 당신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내 눈엔 훤히 보이는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그 중 하나가 바람을 보는 눈을 가지는 것이다. 바람은 꽃잎을 흔들어 존재를 나타내고 깃발을 펄럭이어 가는 길을 알려준다. 언덕이 파랗게 물들어지면 봄바람의 아랫도리가 보이고 들판이 누렇게 물들어 가면 가을바람의 뒤 잔등이 보인다. 바람은 이렇게 비유로 말하고 바람은 이렇게 상징으로 말한다. 바람은 A를 그냥 A라고 말하지 않는다. 바람은 A는 B이며 C이며 D이며 그 밖의 또 다른 무엇이라고 말한다. 바람은 제 곁의 다른 것을 흔들어 자기를 나타낸다. 이 모두를 바로 보려면 우선 바람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할 것이다. 바람의 무게, 바람의 향방, 바람의 색깔, 바람의 모양을 바로 알아보는 눈을 반드시 가져야 할  것이다. 

바람은 자기를 보여주지 않지만 늘 우리 곁에 있다. 마찬가지로 사랑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언제나 우리의 곁에 있다. 사랑은 사랑이 만들어 낸 창조물로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눈빛에 비껴 사랑하는 이의 웃음에 담겨 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바람을 보는 눈을 가질 때 사랑의 눈이 떠지게 될 것이며 시적 안목도 비로소 열리게 될 것이다.   


5. 언제나 나에서 비롯하라. 

한편의 훌륭한 시가 한 시대의 정서를 기록하여 위대한 예술품으로 살아있게 되는 것은 시인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한 그 시대의 강렬한 빛줄기가 남겨놓은 흔적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민족의 참담했던 시기를 김소월과 박팔양, 이상화, 이육사, 윤동주등 개개인의 시인을 통하여 느끼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에서는 김소월의 서정을 이육사의 《절정》에서는 이육사의 격정을 각기 다르게 받아 안게 된다. 같은 시대를 살다간 시인들이지만 그들의 마음을 각기 통과한 시대적 아픔은 각기 부동한 시편을 남겨 놓았고 그것은 다시 다 같이 천고의 절창으로 되었다.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하여야 오늘의 시대적 정서가 화인처럼 찍힌 시편을 남겨 백년 뒤에 오는 세월을 감동시킬 것인가. 우리의 시는 현재를 위해 씌어지면서 또한 미래에 읽힌다고 한다. 시인의 창작작업은 모든 예술작품의 창작작업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창작물이 장구한 예술적 생명을 지니기를 갈망하게 된다. 두보, 리백과 같이 송강이나 황진이처럼 그리고 상기의 소월, 상화처럼 오래 읽히고 길이 남는 시를 쓰고자 한다. 

여기에 정답이 있을까. 나는 그저 언제나 나에서 비롯하려 한다. 세상은 나로 하여 존재하며 모든 느낌은 나만의 느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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