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규동
그분의 시를 애독할때면 젊음의 피가 팔팔 끊는 청년시인으로 생각했었다.그런데 왠걸 만나보니 육십을 넘기신 분이셨다
작달만한 키에 말씀이 적었고 미소가 적었다.두번 만나서 만난 장시간의 대화가운데 그의 이왕지사를 약간 요해하게 되였는데 그이는 원래 조선작가 동맹에 있었는데 후에 중국에 건너왔다가 돌아가지 못하고 화룡땅에 뿌리를 박게 되였다한다 .그는 자신이 시를 위하여 분투한 인생은 실패의 인생 시를 선택한거도 매우 후회를 하셨다 .자연 시와 인생 성공과 실패는 우리가 나눈 중심화제로 되였다. 지금까지 시집한권도 출판못한 불안감과 전생을 깡그리 바쳐가며 시에 전념한 수고보다도 차려진 것이 너무도 작고 작다는 불평이였다 .이젠 시란 말만 나와도 괴로워 하는 듯한 현규동시인.현재 진행중인 현대시에 대해서도 줄열히 꾸짖으면서 책임감이 없는 창작태도에 대한 비판을 10차 (두만강 여울소리)시가탐구회에서도 열변을 토했다면서 대단히 격분해 하셨다 .조약은 있어도 너무 현실과 이탈한 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다.불편한 눈 때문에 독서도 곤난하다면서 여생에 크게 창작열정을 내비치지않는 현규동시인 나는 처음 문학인으로서의 성공과 실패의 모순속에서 방황하는 한 선배시인의 모순된 심리를 엿보게 되였다 . (한국 대구 서지월 시인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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