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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조선족 시인/ 조광명
중국 길림성 유수시 출생 1986년부터 문학작품 발표 시작. 중국 연변작가협회 회원. 문학상 다수 수상.
대표작: 죽어서 껍질 반 장도 남기지 못할 몸이요, 평생 시 공부에 죽어서 한 줄 시 남기지 못해도 여한은 없을 터. |
프로필과 대표작
조광명
며칠 전, 정말 문학에 미쳐서, 문학 이외에는 할 짓이 없어서 문학에만 빠져있는 한 재간둥이 친구가 인터넷에 문학카페를 하나 지어놓고 그 카페에 못난 나를 기어코 소개해 올려준다면서 내 상세한 프로필과 내 대표작 목록, 그리고 작품 수편 등을 요구해온 적이 있다.
작품이야 좋든 나쁘든 발표한 것들이 꽤 되니까 인터넷상에 떠도는 내 작품 중 아무거나 긁어다 올리고픈 대로 올리슈 하고 카페 주인장의 처분에 맡겼지만, 상세한 프로필과 스스로 대표작이라고 인정되는 작품목록을 적어 보내달라고 하는 데는 많이 난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광고가 난무하는 시대, 가난한 글쟁이일지언정 자기홍보라도 잘해야 싸구려 글이나마 그래도 잘 <팔리>는 거니까 무료로 홍보해주겠다는데 얼마나 좋냐, 요구하는 대로 보내주면 될 걸 과히 난감해 할 필요까지야 있었냐고 의아해할 분들도 있을 수 있겠으나,그러나 그 친구가 메신저에 적은 구절을 그대로 옮기면 내 난감함을 이해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도 프로필 달랑 넉 줄입니까? 이번엔 안됩니다. 수상작품명이랑 수상연도랑 상세하게 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대표작품명도 상세히 보내줘야 합니다.
어떤가? 좀 생어거지 투가 아닌가. 무조건 어떻게 보내야 한다는 <명령>은 <애교>치고는 너무 내리먹이는 <쌩>어거지가 아닌가.
ㅎㅎ, 속으로 웃었다. 이 친구 나를 잘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직 날 잘 모르고 있군.
그리고 그 웃음 뒤엔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먼저 프로필부터 짚고 넘어가자.
참말로 내 프로필이란게 달랑 넉 줄밖에 안된다. 다시 여기에 중복해 적어봤자 정말 달랑 넉 줄, 그 이상은 더 적을 게 없다.
-1986년부터 문학작품 발표 시작
-수차 수상.
-시집 <좌선, 어느 30대의 아침> 출간
-현재 청도 거주.
이상이다. 굳이 행을 나누니까 그나마 넉 줄이지 행을 나누지 않고 이어서 적으면 기껏해야 한 줄 반밖에 안될 것이다.
다른 프로필도 아니고, 문학인으로서의 내가 내 작품 뒤에 적을 프로필로는 이상 넉 줄밖에 정말 더 적을 게 없다. 그만큼 문학인으로서의 내 글짓기 농사 20여년이 거의 무깍지 농사로 일관해 왔다는 뜻도 되겠으나, 내 스스로 자신에게 물어 1986년에 처녀작을 발표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내 이름 세 글자를 박아서 발표된 작품이 수량 상으로는 꽤 될 것 같은데, 정작에 내 기억에 남는 내 작품 속의 글 구절이나 글 제목 같은 건 거의 없으니, 그나마 처녀작이 발표될 때의 그 설레임이 그 발표연도에 대한 기억으로 이어진 것만 해도 고마울 따름이다.
그리고 수상 경력도 몇 번은 있지만, 그건 내 글이 잘 나서 보다도 못난 글을 이쁘게 봐주고 뽑아준 편집선생님들과 평심위원들의 선택의 덕분이지, 스스로 정작 내 자신의 글을 다른 사람들의 글과 비겨봐서 과연 내 글이 잘되어서 상을 탔구나 하고 생각해 본적은 한 번도 없다. 그리고 사실 말이지 우리 문단이란 게 작가협회 회원증을 그 무슨 명찰처럼 소지하고 있는 사람은 수 백 명 되는 줄로 알지만, 정작 글 농사에 매달려 열심히 우리 문자로 밭이랑을 가꾸는 작업에 땀 쏟는 이는 통틀어 몇 명 안 되는 것도 사실이니, 글 농사 몇 년 열심히 지으면 그게 기특해서 이런 저런 상을 설치한 문예지에서 격려의 차원에서 상을 한 두 번 주는 것도 사실 아닌가. 정말 작품이 뛰어나서 수상한 분들에게 모욕이 되는 망발일지 모르지만, 내 경우에는 아직 문학에 제대로 입문도 못한 놈이 하도 문학 문학 하면서 열성을 부리니까 그게 기특하고 안쓰러워서 편집선생님들과 평심위원들이 격려의 차원에서 상이라는 영광을 안겨주었겠지 하고 생각할 뿐이다. 행운으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지나면 그만, 영원으로 이어지지 않는 게 행운 아닌가.
그 행운을 수차례 받아 안았을 때의 고마운 마음은 간직하고 있어야 하겠지만, 그러니까 수차 수상했던 기억은 있지만, 대체 어느 작품으로 언제 수상했던 지는 사실 잘 기억에 남아있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걸 기억하고 있어선 뭘 하랴. 결국은 별거 아닌 게 상에 걸렸던 것을. 혹자는 이것을 내 건방짐으로 타매할 지도 모르겠으나 건방짐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기억하고 있지 못하는 데 어쩌랴.
기억할 필요도 없어서 아예 기억하지 않고 있었는데 어쩌랴.
혹시 수상도거리호가 되어 해 마다 수 십 개 문학상을 혼자 도맡아 수상하는 정도라면 장부책 관리하듯 전문 따로 수상경력을 적어놓는 기록부 같은 걸 만들어서 일이삼사 하고 빠뜨리지 않고 적어놓는 열성을 부릴 수도 있겠으나 이건 가뭄에 콩 나듯 몇 년에 어쩌다 한 번씩 수상의 영광을 지니는 것이니 굳이 그런 기록부 같은 걸 만들 일도 없다. 그렇다면 기억에 의존해야 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 내 기억이란 게 자기 핸드폰 번호도 제대로 기억을 못해서 혹간 누가 내 핸드폰 번호를 물어오면 멍 하고 한참 머릿속을 뒤집어야 하군 하는 나의 <아다마> 수준이니 어찌하랴...<건방지>게 그 소중한 문학상에 관한 상세한 정보 같은 것들은 기억의 뒷골목으로 시집보내버리고 말고 있는 자신을 이렇게 변명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와 놓고는 어느 구석에 처박아놓고 있는 지도 모르는 상패 혹은 수상증서들을 다 뒤져서 일일이 재확인 작업을 진행해서 상세한 프로필 작성 작업을 하기에도 귀찮으니 위에서처럼 달랑 넉 줄밖에 더 적을 게 없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말이지 내 주제이면 넉 줄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그만큼 사회상에 지명도도 없고,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어떤 화려한 타이틀 같은 것도 없는 놈이니 텅 빈 놈은 텅 빈 대로 짧은 프로필로 살면 그만이 아닌가. 정말 어데 나가서 내가 조광명이요 고래고래 소리질러봤자 어, 니가 그 조광명이냐 하고 알은체 해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고, 반갑다고 달려와 손잡고 흔들어줄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니, 빈 깍지 인생은 빈 깍지 인생답게 빈 껍질 같은 넉 줄이래도 너무 충분하지 않은가. 그나마 고마운 거지, 내 이름자 세 글자 뒤에 그 넉 줄이라도 적을 게 있다는 게. 죽어서 한 줄기 연기로 사라지고 말 줄 알지만, 혹시 마지막으로 흩날리는 그 연기라도 아쉬워하는 그 누군가가 있을 거라면, 그 누군가가 종이에 <시를 쓰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가 시 한 줄도 남기지 못하고 가는 불쌍한 인간아!>하는 글줄이라도 적어서 함께 불태워 연기로 날려 보내줄 거라면 미리 고마워서 절이라도 드리고플 뿐이다.
그리고, 대표작에 관해서다.
그 친구에게 제발 믿어주쇼 하고 빌었다. 정말 나에게는 내 마음에 들어 내가 기억할 정도로의 대표작이란 게 없다고.
-왜 없습니까? 내가 기억하고 있는 작품만 해도 수두룩한데...
-그건 당신이 기억한 거고, 난 내 마음에 만족할 정도로 기억하고 있는 작품이 없는 게 사실이니까...
또 <사실>이란 단어를 쓸 수밖에 없다. 이렇게 내 언어의 곤궁을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너무 느끼고 있다. 그러나 사실이란 단어를 대체할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지금까지 글 농사 이십여 년이지만, 그러나 아직도 문학이 뭔지 깨우치지 못하고 그 구도의 길에 갈팡질팡 하고 있는 게 내란 놈의 꼬락서니다. 문학과 글쓰기라는 이 도를 깨우치기에 나는 아직 멀었다는 얘기다. 그런 내게 대표작이란 게 있을 수 있겠는가. 아직도 나는 술래라는 그 허상을 쫓아 진지하게 놀음에 빠져있는 어린애처럼 문학이라는 이 늪에 빠져 허우적이기만 하는, 수영도 바로 못하는 풍덩 수준의 초짜인 것이다. 문학의 초년 입문생에 다름 아니다.
살아서 아니라, 죽어서라도 남들이 영영 기억해 읽어줄 글 한 편이라도 남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내 허망한 욕망인 줄 안다. 죽어서 반 장 껍질도 남기지 못할 줄 알면서도 열심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놈이니, 죽어서 한 줄 글줄도 남기지 못할 줄 알면서도 아무런 여한이 없이 지금의 내 글짓기 작업에 재미를 느끼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나마 굳이 대표작이란 게 있을 수가 있다면 그건 내 죽은 뒤에 남들이 인정해줘서 타이틀 붙여주는 거지, 멀쩡히 살아있을 때 스스로 자기 작품을 대표작이라고 이름붙여 내놓는다는 건 내 주제에는 스스로의 주제파악이 잘되지 않아서 불가한 작업니다.
이런 내게 그 친구가 <상세한 프로필>과 <상세한 대표작 목록>을 요구해 오는 <애교>를 부렸으니 내가 얼마나 난감했겠는가. 난감했지만, 나는 <더 이상은 NO>하는 <무정함>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나의 그 <무정함>을 그 친구가 건방짐으로 받아들였다 해도 방법 없다.
없는 놈이 있는 체 해봤자 털어 먼지밖에 더 없는 걸 나 자신은 잘 아니까.
짧은 나를 스스로 올리춰봤자 일 미터 칠십에도 미치지 못하는 단신인 줄 나는 잘 아니까.
나는 아직도 문학의 길에 아장아장 걸음마 익히는 못난 새끼오리이니까.
아장아장이라는 귀여운 단어를 스스로에게 선물하며 구구한 변명을 줄인다.
이천구년 사월 칠일 청도 문우재서.
시인이 벽을 만나면
사진/시 조광명
이 시대 가난만큼 널린 시
그 시를 주으러 길에 나섰지
흔한 시들은 길에 가래침처럼 뱉어져서
행인들의 발에 밟히다
공기 속에 먼지로 부유하고
하늘을 땅처럼 날다가
땅을 하늘처럼 내려앉고
재밌군 재밌어 이 신성한 시의 왕국에
가장 흔한 건 싸구려 시
시인은 맨발의 거지로
녹 쓴 놋쇠숟가락 하나 들고
시를 주 시를 주 밥알보다 천한 시를 주
때 묻은 발에 흰 밥알 하나 태양처럼 묻히고
금방 어둠과 흘레 마친 아침의 태양을
히멀겋게 바라보며
재밌군 재밌어 시가 배가 고팠어
배가 홀쭉한 승냥이처럼, 눈에 파란 불 켜고
오만한 꼬리 도고한 깃발처럼 높이 쳐들고
그래, 모든 사랑하는 것을 노려봐야지
지켜야지, 시인의 몫으로
이 세상서 가장 위험한 건
추위를 두려워 않는 겨울의 시
배고픔을 두려워 않는 가난의 시
그리고 칼을 두려워 않는 검객의 시
시를 바치리 시대의 제단엔, 항상
칼 대신 시를, 밥 대신 시를, 생화 대신 시를.
아무런 낙서도 씌어있지 않는 벽은
시에 대한 모독,
그 벽에 시인은 침을 뱉어서라도
왜곡된 사랑 그리듯 시를 써야 하리
시인의 몸뚱이보다는 차갑지만
그러나 하늘처럼 흐르며
항상 우리의 운명처럼
떡 버티고 섰는 벽에.
청도 문우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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