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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 남철심
2015년 03월 14일 20시 00분  조회:4283  추천:0  작성자: 죽림






                            (좌측 두번째 남철심 시인)


핸들을 잡은 시인

 

                     남철심

 

 

 

윤청남 시인을 나는 그냥 윤기사라고 불렀던것 같다.
내가 그를 그렇게 부르게 된것은 아마 중국에 있을 때 내가 교통경찰로 근무했고 윤청남 시인이 운전기사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인것 같다.
윤청남 시인을 처음 만난것이 사업상 관계였고 그때 처음으로 윤기사라고 불렀다. 한번 불러서 버릇된것을 고쳐 부른다는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닌것 같다.
같이 시를 쓰면서 서로 허물없는 사이로 가까이 지내면서 때로는 형이라고 부르고 싶어졌다. 그러면 더 가깝고 친절해 보일것 같았다. 그런데 좀처럼 형이라고 부를수가 없었다. 역시 습관은 무서운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지 윤기사라는 부름에 습관되여서 그런것만이 아닌것 같다. 자신보다 십년이나 선배되시는 분을 어느날 불현듯 형이라고 막 부를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기실 윤청남 시인이 나에게 보여준것은 형이 동생에게 베풀어주는 그런것을 훨씬 초월하는 것이였다. 내가 보아온 윤청남 시인은 스스로 존경심이 가는 그런 분이였다.
훨칠한 키에 쩍 벌어진 두 어깨. 불깃불깃한 두불엔 항상 사나이 다운 그런 빛이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저 눈, 그의 두 눈길은 너무나 연하고 부드럽다. 부드럽다 못해 조금은 쑥스러운 그런 빛을 흘리고 있다. 부드러운 저 한쌍의 눈길을 통해 선하고 선한 시인의 마음이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는것이다.
한번은 윤청남 시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연길에 간적이 있다. 
어디까지 왔는지 도중에서 불현듯 차가 멈춰섰다. 그리고 차에서 뛰여내리는 윤청남 시인의 뒤모습이 보였다.
원 일이지? 영문을 모르는 나는 어리둥절해서 차창밖만 내다 보았다. 당풍가라스 너머로 뛰여가는 윤청남 시인의 뒤모습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저 앞 멀리서 한채의 소수레가 미친듯이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아, 그런 일이였구나! 뒤따라 나도 차에서 뛰여내렸다. 
워낙 놀란 소가 수레를 끈채로 길 한복판으로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놀란 소를 막을수 있는 그런 힘이 내게는 없다. 어떡하지?
그런데 어느사이 윤청남 시인이 앞으로 달려오는 소고삐를 잽싸게 잡아쥐고는 날래게 뒤로 낚아채는 것이였다. 그러자 달리던 소가 천천히 멈춰서기 시작했다. 수레가 완전히 멈춰서자 소잔등 너머로 놀란 영감의 꼬부라든 모습이 보였다.
너무 놀라 얼이 나갔는지 수레채우에 멍하니 앉아있을뿐 영감은 감사하다는 말도 못하고 있었다.
정말로 위기일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놀란 소가 마주오는 자동차와 골받이를 하는 날엔 무슨 사고가 날지 상상할수도 없는 일이였다.
<<그래도 농촌에서 뼈를 키운 덕에 소코라도 잡을줄 알지. 정말 다행이야.>>
윤청남 시인은 그냥 태연했다.
얼핏 들으면 간단한 일 같지만 기실 이 사실은 한 인간의 생명을 구해준 위대한 행위인 것이다.
어느 여름의 늪가에서 내가 윤청남 시인을 일생의 친구로 사귀겠다고 다짐한적이 있다.
그것은 내가 일본에 오기 전해의 여름이였던걸로 생각된다.
친구의 별장에서 술 한잔하고 더위를 몰아내느라고 앞마당에 있는 늪에서 수영을 한적이 있다.
수영이라고 하지만 나라는 인간은 물속에만 들어가면 철저히 바닥까지 가라앉는 놈이다. 물결이 배꼽을 금방 넘어서는 기슭에서 엉기엉기 걸어다니는 것이 나의 수영인것이다.
반대로 윤청남 시인은 물속에만 들어가면 한마리 미꾸라지로 변한다. 어릴 때는 큰 호수에서 반천씩 떠 다녔다고 한다. 그만큼 물재주에는 신심이 있는것이다.
나는 두 다리를 꼬부리고 몰속에 앉아서 모가지만 밖으로 내밀고는 가운데로 자맥질해가는 윤청남 시인을 부러운듯이 바라보기만 했다.
신기하게도 그 깊은 늪 한가운데에 우뚝 서면서 윤청남 시인이 나더러 들어오라고 소리쳤다.
물론 들어갈수야 있지.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게 걱정이여서 그렇지.
나는 질겁해서 밖으로 뛰여나갔다.
그러는 나를 보더니 윤청남 시인이 다시 기슭으로 미끌어 왔다.
<<내가 있으니 두려워 말어, 먼저 옅은 주위를 한바퀴 돌아보자.>>
그래도 나는 까딱 움직일수가 없었다.
<<널 위해서라면 난 목숨까지 버릴수 있어, 날 믿고 얼른 들어와.>>
널 위해서라면 난 목숨까지 버릴수 있어. 그때 만일 다른 사람이 같은 말을 했더라면 나는 죽어도 믿지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윤청남 시인이 나에게 던져준 이 한마디 말을 나는 그냥 스쳐버릴수가 없었다. 그는 말하면 행동으로 옮기는 성질이다. 
이 말은 절대 나를 달래느라고 한 말만은 아닐것이다. 
어느 한 순간에 우연히 던진 한 마디 말이지만 나는 그것이 그의 진심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친구를 위해서는 목숨까지 바치겠다는 친구. 그것이 빈 말만이 아니였음을 나는 몇번이고 내 몸으로 경험했다.
내가 일본에 온 뒤 경제난으로 어려운 형편에 있는 우리집 사정을 알고나서 금방 자동차를 판 돈을 그대로 내 부모의 손에 쥐여주던 그 정을 나는 죽어도 잊을수가 없다. 
그래서 가난한 내가 일본에서 항상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내 전부의 재산은 친구라고.
내가 일본으로 떠나기 전에 두만강시회의 친구들과 두만강변에서 작별의 술을 마인적이 있다.
그때 윤청남 시인이 고향을 잊지말라며 술잔에 두만강변의 흙모래를 한줌 부어넣고 나와 함께 나누어 마이던 그 정경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러한 친구들이 있기에 나는 꼭 멋진 모습으로 내고향 연변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하여 지금도 부지런히 달리고 있는것이다. 윤청남 시인은 이렇게 나에게 힘이 되여주기도 했던 것이다.
윤청남 시인의 인간다운 참 모습은 그가 남들에게 베풀어준 사랑의 정에서도 잘 보여진다.
북녘땅에서 살길을 찾아 건너온 한 고아를 자기 집에 데려다 먹여주고 재워주던 사실. 먼 중국의 내지로 팔려가는 북한의 처녀를 목숨을 걸고 빼돌려준 사실…
이것이 바로 인간 윤청남이다. 윤청남 시인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아마 이런 사실들은 잘 모르고 있을것이다.
윤청남 시인은 도처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뒤모습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는것이다. 
인간 윤청남이 이렇하다면 그럼 시인 윤청남은 또 어떻한가.
여기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있다.
어느 봄날. 살구꽃 피는 산기슭으로 한대의 승용차가 느릿느릿 달리고 있다.
우람진 몸매에 얼굴이 불깃불깃한 기사는 운전을 한다기보다는 차창밖으로 스쳐가는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뒤좌석에는 시장어른님이 앉아서 꾸벅꾸벅 좋은 봄꿈을 꾸고 있었다.
어느 더럭바위우에 한그루의 살구꽃이 활짝 피여서 하늘을 가득 덮고 있었다. 사람을 매혹시키는 절경에 취했는지 달리던 자동차가 칙하고 멈춰섰다.
운전석에서 뛰여내린 사나이는 어기영차 산기슭으로 달려가고 뒤에서는 어딜가? 하는 시장어른의 목소리가 따라온다.
산중턱 까지 톱아오른 사나이는 그 자리에 멈춰서서 언제까지고 더럭바위우의 살구꽃과 살구꽃 사이로 얼핏얼핏 보이는 파아란 하늘을 번갈아 쳐다보기만 한다.
일이 이 정도까지 되자 시장어른도 어쩔수 없다는듯이 차에서 내려 역시 파아란 하늘과 연분홍 살구꽃을 쳐다보며 나름대로의 시흥에 잠겨본다.
다행히도 이분이 바로 시도 쓰고 소설에도 장끼를 보여주던 도문시의 김(이름을 까먹었음)시장님이시였다. 
그리고 시장님을 통해 이 사실이 한입두입 전해져 도문시의 아름다운 일화로 남았다.
그래서 나는 윤청남 시인을 발견의 시인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의 시적발견은 또 이렇게 얻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시에 대한 그의 추구는 미칠지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회의로 가는 시장님을 도중에 버려두고 꽃에 도취되여버릴 지경이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윤청남 시인에게는 딱 한가지 결점이 있다. 뭐냐하면 시는 넘 잘 쓰는데 뛰여쓰기와 철자가 엉망인것이다.
그가 쓴 초고를 보려면 여간 힘든것이 아니다. 한바탕 뜯어보고 맞춰보아야 뭐가뭔지 알린다.
그래서 원고를 보낼때면 옆에 있는 처녀애들이 제가 수개해 드릴가요? 하면 그 나오는 소리가 또 걸작이다.
<<우리가 뛰여쓰기까지 다 해주면 편집어른들이 심심해서 어떻게 살아?>>
<<엉?!>>
이것이 시인 윤청남의 멋이다.
최근엔 윤청남 시인이 무슨무슨 문학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바다건너 일본땅에도 연신 날아들어온다. 이러한 사실을 접할 때마다 나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올것이 왔을 뿐이다. 조금 시간이 늦어서 왔을 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연신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소리도 없는 박수이지만 그것이 공중넘어 윤청남 시인에게 제대로 전해졌으리라고 믿는다.
윤형, 
아니 윤기사, 축하합니다!


2003년6월25일 

교도 사와라기 학생료에서

[출처] 핸들을 잡은 시인 |작성자 남철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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