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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조선족 시인/ 홍군식
1990년 북경노신문학원 작가연구생반 과정. 2004년 북경대학MBA반 수료. 1982년부터 中, 韓文으로 문학작품 발표 시집『세기말의 음모』,『361도 고독』출간. 르포『시대를 클릭하는 CEO들』출간. 경영관리학논문집『회사가 부르는 인재』,『현장경영』출간 흑룡강작가협회 회원 연변작가협회 회원. 흑룡강조선족작가창작위원회 회원 중국현대시연구학회 회원. 중국향토시인협회 회원. 중국산문시학회 회원. 세계華文시인협회 종신회원. 전 흑룡강신문사 편집, 기자
청도정군문화전파유한회사 총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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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으로 병든 시계바늘이 부르는 노래
홍군식은 좋을 때보다 미울 때가 더 많은 사람이다. 그와 함께 있을 때면 항상 근심스럽다. 실수나 하지않을 지, 일이나 저지르지 않을 지, 그래서 난처할 때가 많고 민망스러울 때가 많고 미울 때가 많다. 그렇다고 사람들 많은 데서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눈에 들어오니 보지 않을 수도 없고……그러나 그래서좋다. 소박하고 단순하고 때가 묻지 않아서 좋고 또 부럽다.
홍군식은 자기의 삶을 나름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누가 뭐라고 하든, 누가 좋다고 하든, 누가 나쁘다고 하든, 누가 밉다고 하든, 누가 잘한다고 하든 별로 관심이 없고 자기가 하고 싶고 해야 된다고 하는일들을 나름대로 열심히 하기만 한다. 어쩌면 사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거나 의식하지 않는 듯 하지만 그런 것도 아니다. 사회에 해 될 일은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글도 그렇게 쓰고 시도 그렇게 쓴다.
나름대로, 그렇게 떠올라서, 그렇게 쓰고 싶어서……
왜 그렇게 썼느냐 하면 대꾸도 하지 않는다.
무슨 뜻이냐 하면 그저 그런 뜻이지요, 쓰여진 대로 읽는 그런 뜻이지요. 그렇게 대답을 한다.
그래서 홍군식의 시는 주제요, 파악이요 그런 것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저 시 자체 그것뿐이다. 그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편하게, 읽히는 대로 읽으면 된다.
두 번 군식이 시 때문에 놀란 적이 있다.
바로 얼마 전에 주부작가의 출판파티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그 장소에서 한 할머니가 책이 있으면 달라고 하기에 마침 홍군식의 제2시집 ≪361˚ 고독≫의 샘플(樣書) 몇 권을 금방 받아 손에 들고 있던 차라곁에 있던 할머니들에게 다 나누어 드렸다. 나는 나누어 주면서도 한다 하는 시인들도, 한다 하는 편집들도 읽어 내려갈 수 없고, 알아볼 수 없다는시집을 할머니들이 읽어 보기나 할지, 알아나 볼지, 그저 책을 달라고 하니 주면 되지, 그렇게만 생각했는데 웬걸, 그 중 한 할머니가 며칠이 지난 뒤 전화가 왔다.
“선생님 주신 이 시집 그때 출판파티에 왔던 그 분 시집 맞아요?”
그렇다고 하니 “그런데 그 분은 왜 시를 이렇게 광기(狂氣) 나게 쓴답니까? 그러니까 외롭지요. 너무 발광(發狂)하는 것 같아요, 우리 여기 노인협회 사람들이 다 그럽니다. 너무하답니다.”그랬다. 시인들이 알아보지 못한 홍군식의 시를 할머니들이 알아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 문학을 하노랍시고 주접 떠는 나 같은 놈들은 결국 문학을 떠났었구나, 그렇게 놀랐다.
제2시집을 출판하기 전에 먼저 시고를 보내왔다. 나는 첫 몇 수를 보고 이거 조선족출판사들에서는 출판을 못할 걸, 발표하려면 한 3년 뒤에 보자. 그랬다. 그랬더니 그러면 자기는 한족 출판사를 찾겠는데 그럼 왜 발표를 할 수 없느냐, 왜 한 3년 뒤에야 보자고 하느냐, 그렇게 자꾸만 물었다. 꼭 마치 어린애들 같았다. 나는 어떻다고 말을 할 수가 없어, 그저 내가 그렇게 생각되더라, 그랬다. 그러더니 어느 한번 전화로 잡담을 하다가 갑자기 제의해왔다.
“내 ≪361˚고독≫ 책 제목을 바꾸면 안됩니까? ≪고독이라는 내 새끼≫로 바꾸겠습니다.”
나는 기가 막혀 말이 나가지 않았다.
≪고독이라는 내 새끼≫, 시적 의미, 시대적 관조를 제쳐놓고 소리만 들어도 속이 시원하도록 스트레스를 푸는 시집의 제목이었다. 그러나 나는 안 된다고 했다.
“새끼”가 뭐냐, 그랬다.
그러니 또 왜 안됩니까? 왜 안 된다는 거요, 그렇게 짜증이 나도록 질문을 들이댔다. 꼭 같은 질문을 몇번이고 반복했다. 나는 아무런 원인도 없고, 그저 안 된다면 안된 거다, 그렇게 막아버렸다. 나도 책 이름을 ≪고독이라는 내 새끼≫, 그렇게 달고 싶었다. 그러나 안 된다고 그랬다.
홍군식 제2시집의 샘플을 보기 전에 한번 또 놀란 적이 있다. 첫 번째 시집 ≪세기말의 음모≫ 때문이었다.
한국에 나가 몇 년간 일을 하고 돌아온 친구가 집에 놀러 왔다가 책꽂이에 있는 ≪세기말의 음모≫을보고 “이거 추리소설이니?”하고 물었다. 나는 어이가 없었으나 “그래, 추리소설이지, 20세기 말에 가장 뛰어난 추리소설이지.” 그러면서 한번보라고 주었다. 주고 나서도 전에 책도 별로 보지 않고, 문학에 관심조차 없던 친구가 보기나 할까, 책 낭비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한 달 뒤에 그 친구가 전화가 왔다.
“이 시 쓴 사람 말이야, 어디 오도가도 못하는 사람이니? 딱 집 없는 사람이 쓴 거 같다.” 그랬다. 나는 그만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할말을 찾지 못했다.
그렇구나, 우리들이 소위 말하는 “시를 모르는 사람”들이 외려 시를 더 잘 보는 구나…… 나는 내가 문학을 몇십년 했답시고 주접을 떨어도 헛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언젠가 맥주를 하면서 홍군식이보고 너 고독하지 않다, 외롭지 않다, 그랬다.
왜? 하고 물었다.
나는 내 친구가 ≪세기말의 음모≫을 보고 전화를 걸어와서 여차여차 말하더라는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나는 좋아하라고 말해주었는데 못나게도 엉엉 울었다. 그리고 한동안 말도 없이 맥주만 들이켰다. 그때부터 전화만 하면 자기가 쓴 시들을 읽어준다. 꼭 한 밤중, 새벽 한시가 지나서야 전화를 걸어온다. 좀 일찍 하든지, 아니면 전화를 짤막짤막하게 하든지, 시는 발표된 다음 지면에서 보든지 인터넷에서보든지 그만 읽으라고 하면 기어코 읽어야 한단다. 때론 듣다가 깜빡 잠들어 버릴 때도 있지만 나야 자든 말든, 자기 읽을 시만 홍군식답게 읽는다. 한번은 ≪저 화냥년 같은 외고집의 장미≫라는 시 때문에 실랑이 질 오래 했지만 자기는 기어코 “화냥년”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랬다. 그래서 ≪저 화냥년 같은 외고집의 홍군식≫이라고 하니 그 제목도 좋구먼 그랬다.
한밤중에 전화를 한 시간씩 받다 나면 짜증이 날 때도 많다. 그래서 “너 전화요금 좀 아껴라.”그러면 “나 언제 부자 되는 거 보았소?” 그러면서 전화를 끊을 줄 모른다. 짜증을 내고 이제 전화 좀 그만 하라, 그런다. 매번 전화가 올 때마다 그런다. 그러나 막상 이틀만 전화가 없어도 또 생각이 나고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궁금해 나게 하는 사람이 홍군식이다. 그런데 요즘의 홍군식은 “식성”이 바뀌었는지 전화를 끊기 전에 꼭 노래를 불러달라고 한다. “노래 불러주지 않으면 전화 끊지 않습니다.” 이렇게 공갈했다.
그럴 때는 장사익의 “찔레꽃”을 불러준다.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 찔레꽃처럼 울었지 찔레꽃처럼 노래했지 찔레꽃처럼 춤췄지 찔레꽃처럼 사랑했지 찔레꽃처럼 살았지 찔레꽃처럼 울었지 당신은 찔레꽃 찔레꽃처럼 울었지.”
저기 천만년 원초의 하단전(下丹田)에서 우러나오는, 가슴이 쓸쓸하도록 굵직한 슬픔을 담은 노래를불러준다. 고독과 적막과 쓸쓸함과 슬픔을 한잔의 맥주에 담아 꿀컥꿀컥 마시는 홍군식에게 불러줘 본다. 그러나 두 마디도 부르지 못하고 막히고 만다. “형, 됐소…… 그것 두 노래라고 부르오?” 그리고는 키득키득 웃는다. 그러나 나는 군식이가 구경 우는 지 웃는 지를 알 수가 없다.
2007년 2월 16일 龍潭山城이 바라 보이는 지린(吉林)의 송화강 뒷자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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