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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 허동식
2015년 03월 15일 21시 14분  조회:4603  추천:1  작성자: 죽림

 


 


아리랑

 

 

허동식

 

 

민요로 부르기에는

가슴에 손을 얹고

감히 생각을 한다

 

 

님이 넘는 재로 알기에는

천년을 제단에 놓고

감히 울어도 본다

 

 

작은 곡조 하나에도

긴 여운 하나에도

 

 

하늘을 내리는 찬바람이 보인다

황토를 씻어가는 강물이 들린다

 

 

아주 말하는

한일까

 

 

싫다면

만세라도 부르랴

 

 

<약력>

 

 

▲1966년 길림성 화룡 출생.

▲1990년 북경재정무역학원 졸업.

▲2001년 시집 <무색여름> 간행.

▲2007년 중국 장백산문학상 수상.

▲2007년 장백산문학상 수상시집 <진달래> 간행.

▲현재, 감숙성 란주시 기쁨여행사 사장

 

여름에 모아산을 가면
 

 

                                                          (흑룡강신문=하얼빈)

                                                                  (란주) 허동식

 

 

 

여름에 모아산을 가면

세전벌을 지키는 멀고 가까운 산들이

어릴적 기억에 푸르른 풍경을

건들어진 음악으로 만들어서

둥기당 둥기당 튕기고 있었다

 

 

여름에 모아산을 가면

일본을 사는 남철심 시인의

시문(詩文)에까지 멋들어지던 <<꾸마!>>가

가둑나무 가지에 주렁지고 있었고

아직은 세련되지 않았다는 <<반짜개>> 서울말씨들이

나란히 흔들리고 있었다

 

 

여름에 모아산을 가면

내가 코물을 빨아먹으며 클적에는

시집장가 가는 사람들마저도 좋아하였던 국방색 곤색은

눈에 보이지를 않았고

온갖 색상들이 숲속을 물결치고 있었는데

나는 고향사람들 울긋불긋 옷차림에

화려하다는 상표를 붙여주면 좋을가

아니면 괜찮은 인생을 산다는 딱지를 붙여주면 좋을가고

싱거운 생각을 짜게 하였다

 

 

여름에 모아산을 가면

앞을 걷는 형의 발에서

수입제 등산용 신발이 큼직하게 번뜩거리고 있었는데

나는 로무를 하다가 귀국한 형의

아픈 허리를 쳐다보며

형의 어깨에 수입제 배낭이 덜렁거리고

형의 발에

<<왕바신>>이 아닌 뚱뚱보신이 편하다 한들

왜 그런지 왜 그런지

세상만사중의 어떤 변화는

<<써거지게>> 싫다는 생각을 굴려보았다

 

 

익숙하던 풍경이 적잖게 낯설어지고

흑토와 찬바람 <<범벅>>이던 말씨가

투박하지도 세련되지도 않은 말씨로 변해가고

단조롭던 옷차림이 만국기로 바뀌여 가는것은

나의 재간으로서 견디여 낼수는 있다

그리고 형을 포함하는 고향사람들이

신물나는 가난을 국방색과 곤색처럼 벗어내치는 일은

<<기차게>> 좋아한다

 

 

그런데 여름에 모아산을 가면

장백호랑이 조각상 아래에 두런두런 들려오는

--이번까지 나가면 5번째인데 집생각이 나면 사람이 미쳐버린다우!

하는 고향사람들 이야기와

--형은 다시 나가면 거의 10년째인데 언제면 마무리요? 하는 나의 말과

형이 슬며시 꺼내놓는

--너는 래년 <<구정>>에 집으로 나올만 하니? 에는

고향사람들과 형과 나의

정처없이 떠도는 외로움과 그리움이

서시장 랭면사발에 들어있는 <<옥씨국시>>처럼 듬뿍듬뿍한것은

왜 그런지 왜 그런지

나는 견디여 낼수가 없었다

 

 

여름에 모아산을 다시 가본것은

아마도 반년전 일이다

오늘은 시같지도 않은 시를 긁적거리며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어느덧 겨울의 <<새쓰개바람>>이 위이잉 위이잉 운다

그런데 이 겨울은

고향의 겨울이 아니고 란주의 겨울이다

 

 

밤에 꿈을 만들어서라도 모아산을 가면

나는 구불구불 산길을 헤매이고 있었고

내려다보이는 세전벌은 크고 넓어서

또다시 둥기당 둥기당 풍경이였으나

태줄을 묻어둔 화룡으로 올라가려면

서성에서 넘어서야 목도고개가 보이지 않아서

나는 안타까웠고

그래서 질끔 울었던것 같다.

 

 





  계급과 민족 초월하는 인간영성

 

  실리때문에 가짜예술 취급 받아

  어릴 때 '홍색낭자군' 영화를 몇 번이나 구경했던가? 나의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남패천이라는 놈은 가증스러웠고 또 발레 가무극 '홍색낭자군'을 쳐다보면서 우리 시골애들은 다리를 건뜻건뜻 높게 들어보이는 홍상천인지 하는 사람을 두고 '에그, 사타구니 찢어지겠다'를 부르짖었다. 애들은 물론 시골어른들을 상대해서도 홍상천이 다리를 놀이감처럼 놀리는 장면들은 이야기거리가 너무나도 단조롭고 오락성이 적어서 재미가 없었다.

  그러나 '홍색낭자군'은 발레 오페라라는 시각에서만 보면 명작이 아닐 수가 없고 대작이 아닐 수가 없다. '사타구니 찢어지는 것들'이 바로 발레의 극치이고 서방세계의 발레와 중국 고전희곡중의 정화들이 유기적으로 조화된 것들이다. 남패천을 대표로 하는 지주계급의 악착함을 죄다 무시하고 홍상천과 여주인공 오경화의 영웅적인 기상을 죄다 무시하고 시대적인 배경과 사회정치적 배경을 죄다 무시해도 '홍색낭자군'은 사실 발레극의 경전이다. 말하자면 예술의 일맥인 형식미의 하나인 무의 극치에 오른 것이다.

  내용을 떠난 형식미는 존재의 가능성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적어도 발생의 가능성을 잃게 된다. 그런데 왜 수많은 예술품들이 나중에는 내용과는 아주 상관이 없이 오똑하게 존재하여 인간영성의 눈부심을 표현하고 또 인간들의 매혹을 독차지하게 되는 것일까? 그 영문을 조금이라도 알고 싶다.

  도구적 이성이 주류의식으로 된 사회에서는 계급성이요 민족성이요 하는 것들만이 울부짖고 가치적 이성은 가끔 수욕을 당한다. 그러면서 계급과 민족을 초월하여 공존하는 인간영성이라는 것은 실리때문에 가짜예술이라는 평판을 받는다. 그러나 그런 구체적인 세부를 무시하면 어느 개인도 조직도 민족도 나라도 필경은 인간영성미에 대한 추구를 멈추지는 못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래서 고려청자도 고려백자도 조선반도에서의 탄생과도 관련이 크지 않게 다만 인간영성의 걸작으로서 세인들의 찬탄을 받는다. 윤동주시인의 시작들도 그가 중국 조선족시인이든 한국시인이든 상관이 없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다.

광란의 밤 고뇌하는 사나이 

                   ―허동식의 ≪무색여름≫을 읽고 
                                        2001년급 조선문학 석사연구생 김영수 

≪무색여름≫ 저자 략력 
필명 허암 
1966년 화룡현 토산에서 출생 
1990년 북경재정무역학원 졸업 
80년대초부터 시작품 발표 
현재 란주에서 관광업에 종사 

≪무색여름≫의 저자 허동식은 재기가 있는 청년시인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연변문단에 잘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필자는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에서 출판한 그의 시집 ≪무색여름≫을 어느 따스한 여름날에 감명깊게, 그러나 서늘하다 못해 섬뜩한 느낌마저 받으며 읽은적이 있다. 그만큼 그의 시는 필자에게는 신선하고도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처절한 고독과 외로움이 찾아오는 밤, 그에 어울리는 시어들의 광란적인 야간비행, 주위를 둘러보면 삭막한 황야와 스치는 바람, 이 밤과 바람에 허무의 긴 모가지를 드리우고 핀 꽃을 큰발로 힝힝 짓밟으며 철저히 고뇌의 오르가슴을 느끼는 한 사나이가 있다. 
그 사나이가 바로 ≪무색여름≫의 저자 허동식 시인이다. 필자는 비록 그를 한번도 만나본적이 없지만 그러나 그의 시에서 필자는 번뜩이는 한 젊의 지성의 미와 시혼을 발견하였으며 삶에 대한 참사랑을 느낄수 있었다. 
이 글에서는 주로 서정적주인공의 허무의식과 허무에 대한 대응자세가 기본 모티브가 된다는 전제하에 허동식의 시세계를 단계적으로 고찰하여 그의 시세계의 실체는 무엇이며 그의 시의 예술성은 어디에 있느냐를 밝히는데 있다. 
그의 많은 시편들은 과격한 언어이미지의 사용과 시인의 치렬한 정서적충동 및 삶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력력히 담은 시라고 할수 있다. 그가 서두에서 ≪실말이지만 20대 나이에 소위 〈무색여름〉을 감상하는 일은 저에게는 힘이 부치는 일이였고 또 어느정도 불행한 일이였습니다. 바람도 들지 못하는 작은 방안에서 우리에게 차례진 가난의 이름도, 정체도, 깊이도 잘 모르고 이미 썩기 시작한 가난의 송장을 해부한다고 서두른 마음의 작업이 〈무색여름〉입니다.≫ 라고 밝히고 있다. 

밤마다/대들보마다/목메는 바줄마다/죽어도/거슨 눈으로/구멍 든 별빛/우러러/낑낑 죽는다/. 삭막한 들녘 어디에서/언젠가 아니면 오늘인가/심장은 빼앗겨/시뻘건 혀마저 빼물고/죽어야만 하는걸가/. 뚜껑 같은 하늘아래/불이라도 질러야 할/습관된 죽음이 흘러넘친다. (전편) 〈습관된 죽음〉 

우선 이 시를 살펴보면 한마디로 말해서 광란의 밤이요, 악마적인 이미지의 시어들로 장식되여 있다. 서정적주인공은 밤마다 바줄에 목을 메고 혀를 빼물며 죽음의 련습까지 한다. 

캄캄한 밤/저의 마음은/무색여름에/먹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울지를 마세요/다만/계절의 무덤에 핀 꽃을/큰 발로 힝힝 짓밟아/피를/흔건히 내고싶습니다/, 밝은 한낮도 좋고/ 우거진 기분도 좋지만/신물나는 뺑뺑 돌림만이/ 죽도록 싫은건/어찌합니까. (전편) 〈무색여름〉 

역시 캄캄한 밤이다. 아울러 여름은 오색령롱한 색체의 조합으로 응당 아름다워야 하겠지만 서정적주인공에게는 무감감하게 안겨오고 모든 것이 단조로운 나머지 신물이 날 지경이다. 
두편의 시는 일관된 권태와 허무, 나아가서는 죽음의 예고가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시적화자는 외로운 밤의 죽음속에서 마지막 광란과 발악과 같이 불을 지르고 꽃을 밟아 피를 낸다고 하다싶이 불이나 피는 진붉은 색으로 강렬한 생명적 충동과 욕구를 나타내고 있다. 
필자는 그의 시에서의 첫 단계는 바로 삶의 허무와 권태로움에 대한 시인의 분노와 반항의식을 보여주었다고 본다. 하지만 이 분노와 저항은 결코 허무라는 유령을 다스리지 못하였고 맹목적이였을뿐이였다. 파괴라는 폭력을 사용함으로써 잠시간 울분해소의 마음은 가져오지만 결코 시적화자의 몸부림은 허무의 심연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시인은 이제 허무를 다스리기 위한 려행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것은 아늑하고 몽롱한 〈몽경〉으로의 려행이였다. 지친 나머지 허무라는 보따리를 허위허위 질머지고 어머니의 모태처럼 편안한 요람의 몽경속으로 안주하고저 한다. 

황혼이 깃들 때/ 한그루 나무의/날개 없는 꿈이/안개에 묻힌다/, 기러기 우는 시절/강물은/락엽 싣고/멀리도 가누나/, 네가 한그루 시인이라면/고독은 한수의 시/바다는/어째서 그곳에 있을가. (전편) 〈몽경2〉 

자세히 살펴보면 은유와 상징적이미지 원형적이미지로 전편이 화려하게 장식된 시이다. 1련은 허무의 상황속에서 희망이란 기대할수 없고 자신인 시적화자는 안개가 묻힌 꿈으로 숨는다는 것이다. 2련에서의 강물은 시간의 상징으로 죽음을 의미하는 락엽은 싣고 가며 이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무상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제 시적화자는 3련에서 바다를 만나지 않으면 안된다. 다수의 ≪몽경≫계렬의 작품들에는 바다가 등장한다. 
그렇다/이야기는 흐린 꿈일가/하늘, 바다 그리고 수평선/이는 그중 ≪몽경1≫에서 나오는 마지막 구절들이다. 바다의 원형은 모든 생명의 어머니, 정신적신비, 무의식의 세계이다. 아늑하고 요람같은 몽경속에서 바다를 만나지 않으면 안되는 리유가 여기 있다. 허무의 이야기는 꿈과 하늘, 바다와 아득한 수평선의 몽롱함속에서 잠간은 희석되고 무마될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잠간일뿐 그닥 여의치가 않다. 자기 움추림에 젖어들어 아늑함과 허무를 달랜다는 것은 시인의 말처럼 /너와 나는 /잃은 것은 없다만/찾음의 비겁은 있다. (3련) 〈몽경6〉는 것이다. 
/가자, 손잡고/바다가에 서보자/낮과 밤의 교역을/웃어보자. (마지막 련) 〈몽경8〉이제 시적화자는 곤곤한 요람의 꿈속에서 깨여나 기지개를 죽 펴며 현실을 바라본다. 그러나 아늑함의 관성을 벗어버리지 못한채 허무의 극복을 이제는 여유로운 사랑에 안주하려는 마음가짐을 기루고 있다. 
동서남북이 사랑 한자로 빛나고/그것을 가슴 뿌듯이 받아안으며/만경창파에 돛이 하얗게 날리고/별하늘엔 무지개 찬연히 걸린다. 〈동서남북〉(2련)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이상 시적화자가 즐겨 애용하던 악마적이미지나, 과격한 남성적인 용어는 잠간 유보된채 부드럽고 원순한 이미지의 시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여직껏 음침하고 냉소적이였던 우리의 시적화자에게도 마음 한구석은 살뜰학 로맨틱한 부분이 없지 않고 있다는점이 자못 신기하다. 또한 이 사랑은 ≪비속의 코스모스≫에서 〈잘 번진 모습 청초하다〉는 〈목이 긴 가시내〉, 〈호령이 쩡쩡 울리고〉〈저만을 지켜주는〉어머님, 다정다감하고 어여쁜 안해, 〈봄이 막 오는 창가에 서면〉〈흰 돛 타고 어여삐 오신〉다는 누나, 어머니가 계시고 시적화자에게 그리움을 알뜰이 심어주는 고향이 미소하며 서정적주인공을 아기같이 포옹하고 달래주는 폭넓은 사랑이다. 때문에 이 시편들에서 역시 몽경속의 아늑함과 같은 정서와 부드러운 이미지의 전개, 무성한 동년의 추억과 전설들이 내포된 속에서 시적화자는 따스한 안위를 받는다. 상응한 시편들은 ≪비속의 코스모스≫외에 ≪장식≫, ≪동서남북≫, ≪어머님전상서≫, ≪남쪽≫, ≪고향≫, ≪마음에 닿는 풍경≫, ≪누나≫등이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서정적주인공은 항상 삶의 허무의식에 사로잡히고 있다. 그가 고민하는 것은 이제 여직껏 허무극복의 려행을 통해서, 그리고 보다 성숙된 의식차원에서 고려되는 인간실존의 본질에 대한 문제였다. 모든 사랑은 유한된 사랑이고 마음이 움직인다는 자체 역시 마음의 표면현상이라고 불자는 말하는만큼 이러루한 사랑은 결국은 흘러서 흔적없이 사라지고 남은 것은 죽을때까지 인간을 괴롭히는 허무라는 유령이였다. 따라서 작품 ≪함정≫제목자체는 깊은 상징적의미를 띠고 있다. 시적화자는 닫힌 마음이라는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무성한 꿈과 옅은 눈물로 보내고 있다. 
북풍이/색잃은 손수건처럼/영글지 못한 하늘 귀퉁이에/떠온다/닫힌 마음은 열리지 못하고/꿈은 무성하나 눈물은 옅다/ (1련) /그러나 할배야/성인 된/지금은/네가 죽던 광경만이 보고싶다/할배야, 내 할배야/너는 어떻게 죽었나/나는 또 어떻게 죽어야 하나. (3련) 〈함정〉 주지하다싶이 닫힌 마음 그 자체는 자재적인 존재요, 타인과의 거리감이 유보되는 존재이다. 그리고 시인은 작품의 결말에서 /너는 어떻게 죽었고/나는 또 어떻게 죽어야 하나/ 라는 물음을 련속 제기함으로써 인간의 존재와 더불어 인생의 허무에 대한 이의와 회의를 제출하고 있다. 
그렇지만 시적화자는 물음만 제기하였을뿐 아직도 본질의 깊이에는 이르지 못하였고 극복하고저 하면 할수록 허무의 심연은 더욱 깊기만 하였다. 
굶주린 늑대의 무리같이/낮과 밤 등어리를 타고 넘어/넘치고 있다/ 삼키고 있다/, /구월은 손들어/ 종을 울리려 하나/귀가 없다/슬픈 잠꼬대의/무지만 껑충하다/, /주여, 버리나이까/애들의 죽음은 애원뿐/칼점 같은 통곡은 어디로 갔을가. (전편) 〈범람〉 보다싶이 시적화자는 그 어느때보다 고통스러워한다. 〈굶주린 늑대〉, 〈칼점 같은 통곡〉, 〈죽음〉, 〈삼키다〉등 악마적 이미지는 제목 그대로 시전편에 범람하고 있다. 악착같이 달려드는 허무와 권태의 습격속에서 애들이라는 이미지를 사용함으로써 더 무기력하고 고립무원한 상황을 제시한다. 〈주여, 버리나이까〉라는 용어를 사용하기까지 심각하게 되어있다. 
또 결말부분에서 〈애들의 죽음은 애원뿐/칼점 같은 통곡은/어디로 갔을가〉라는 반문을 제기함으로써 그 이상 더 나아갈수 없는 인간의 허무, 고독의 극한 상황을 제시한다. 실로 시적화자에게 인간실존에 대한 의미가 문제시되였던만큼 그에 정비례하여 허무에 대한 시적화자의 체험도 극점에 도달하게 되었던것이다. 이것을 얼마나 잘 설명해주냐하는 것은 큰 편폭을 차지하는 ≪밤의 시≫로서도 알수 있다. 

밤의 창문을 닫고/낮의 이름을 부르면/낮도/천근 호흡과/피의 처절썩 흐름으로/대답한다. (15련) 〈밤의 시〉 

허무가 극점에 도달하였을 때 그 체험이 철저함으로써 시적화자는 이제 허무에 대한 대응자세가 다르게 변화되는 계기를 안아온다. 마치 체념이 철저해질 때 삼라만상의 근원을 바라볼수 있는 관조의 눈이 열리는것과 같다. 

지치여서 부르던 배노래는/띠염띠염 사라지고/천년을 헤매이던 돛배는/닻을 내린다/ (략) /가슴에 얹은 손이 떨림은/ 퇴색된 빛이 여직 날림은/세월의 지꿎은 돌아봄이다/찬란한 벽화를 깨여보자. (1련의 부분) 〈연역시대〉 

천년을 헤매이던 돛배가 닻을 내림으로서, 돌아다 보는 세월의 지꿎은 벽화를 깨여봄으로써 시적화자에게서 우리는 무언가의 변화와 기대를 가져보아도 바람직한 것이다. 

네가 이야기하는 바다는 물이다/ 세월이 가면/어떤 매듭이든지 풀려지고/어떤 고집이든디 녹는다는/아름다운 내용을/밤낮으로 설레이는 바다/ (2련) 네가 들려주는 바다는 이미지다/ 날이 밝으면/밤에 키운 고독과/깊이 품어온 아픔을/빨간 해살사이 갈매기 울음아래/곱게도 물들이는 바다. (3련) 〈바다이야기〉. 

시적화자는 내면의 고름덩이같은 고독과 아픔을 표면화시킨다. 그 고독과 아픔을 바다에 빠알갛게 물들이고 바다는 또 어떠한 매듭이나 고집의 옹이를 녹여주며 아름답게 설레이고 있다. 여기서 역시 바다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지나온 모든 허무와 고독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바다같이 포용하려는 슬기로운 지혜의 눈이 약간씩 트이고 있다. 허무에 대한 거부의 격렬한 몸부림이나 회피보다도 넓은 포옹으로 다스릴 때 시적화자에게는 무색여름이 아닌 ≪봄의 깊이≫를 즐기는 여유로움도 다소간 생긴다. 시적화자는 무진한 깊이를 가지고 있는 봄의 깊은 정서속 호흡속으로 첨벙첨벙 아이처럼 자맥질을 하고 싶어한다. 이밖에도 상응한 작품 ≪눈이 오던 날≫, ≪무제(6)≫등이 있다. 허나 수시로 침습하는 허무의 음영과 그림자는 소실되지 않은채 간헐적으로 시적화자에게 그늘을 드리우고 음침하고 섬뜩한 ≪백양정의 추억≫을 안겨드리기에 충분하다. 
이제까지는 이 시집의 제 1집으로부터 제 6집까지 대부분 그가 대학교 시절에 쓴 시들을 단계적으로 고찰하였다. 지금까지는 우리 역시 서정적주인공과 더불어 허무와 외로움 극복의 려행을 함께 하여 온셈이다. 제 7집 ≪순례≫는 시인이 근간에 려행하면서 쓴 시이다. 
이 시기는 아마 시인이 란주에서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업상의 여건으로 여기저기 려행을 하면서 쓴 시들일 것이다. 대학이란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생활과 함깨 사회인의 역할을 다하며 쓴 시들이라는 점에서 필자의 흥미를 자아내고 있다. 
그렇다면 이 순간도 우리는 서정적주인공과 함께 광대무변한 자연의 려행과 순시를 통하여 그가 대학시절에 그렇게 뼈저리게 체험하였던 삶의 허무와 외로움은 어떻게 극복의 그라프를 그려나가며 그가 오늘의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어떤 또다른 육성을 가졌는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시기에 와서는 시인은 상당히 변모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종종 생활에서 마음이 답답하고 생활에 실증을 느낄 때 주변사람들로부터 려행을 권고받는다. 려행을 통하여 대자연의 운치를 마음껏 감상하고 그 초연함에 마음도 따라서 넓어지며 자연의 심성을 닮으려는 마음도 있는 것이다. 허동식 시인의 경우 대학이란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생활을 한다는 자체와 사업상의 리유로 주어진 려행생활은 그에게 드넓은 시야를 트여주는 동시에 시적변모의 양상을 가져오기에 충분한 것이다. 
서정적주인공은 순례 편에서 자연의 심성 그대로 생활을 대하고 차분한 자아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밤이면/화석은 무너지는 고독속에서/두터워지는 먼지속에서/흙이 나무로 되고 나무가 돌이 되고 돌이 흙으로 되는/이미지를 도란도란 이야기하여/외로운 마음을 잘도 달래주었다. (1련의 부분) 〈화석〉 

알타이산에서 주었다는 계수나무 화석쪼각이 흙이 다시 흙으로 되는 이야기를 하며 시적화자의 외로움을 달래준다. 〈흙-나무-돌-흙〉이 된다는 자연의 소리없는 륜회, 바다가 륙지가 될 오랜 시간동안 너무나 고요히 변화하는 모습, 절로절로의 자아변모와 초연스런 자연의 모습앞에 인간의 허무나 외로움이란 한갖 보잘것없는것에 불과하다. 기나긴 세월동안 온갖 고행을 겪어온 수행자와 같이 화석이 들려주는 지혜의 육성에 시인은 귀를 기울인다. 따라서 시인은 ≪타클라마칸≫사막에서 진한 감동을 느끼며 장엄한 선언서를 랑독하고 있다. 
타클라마칸은 도고한 탄생이다/온갖 습기는 하늘에 날리고/령혼의 흉터를 지워주는/새롭게 시작되는 탄생이다. (4련) ≪타클라마칸≫ 이는 다름아닌 시인의 새로운 탄생지이다. 자연의 태고연하고 타클라마칸의 드넓은 심성을 닮고있는 시인의 새로운 탄생인 것이다. 
순례편에서는 인간삶의 허무나 외로움은 더 이상 기승을 부리지 않는다. 웅장하고 거대한 자연물들인 고원이나 산맥, 호수, 사막, 하천 등 이미지를 사용함으로써 주제상으로도 자연의 태고연함과 웅위로움을 노래하였고 그 자연의 심성에 취해 서정적주인공은 진한 감동은 적고 있다. 상응한 시편들로는 ≪파미르≫, ≪돈황≫, ≪타클라마칸≫, ≪진령산맥≫, ≪청해호≫, ≪황하≫ 등이 있다. 허나 전반 정서적흐름을 놓고 볼 때 허무와 외로움, 고독의 정서는 작품의 밑바닥에 깔려 무언가의 묵직하고 침울한 분위기를 조성해주고 있다. ≪내가 사는 도시≫, ≪상형문자≫ 등 시편들은 이 점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특히 ≪내가 사는 도시≫에서는 현대문명의 발전과 더불어 자연과는 동떨어진 도시인들의 찌든 심태를 상징의 수법을 빌어 함축성있게 그리고 있다. 
허동식시인은 유난히도 인간삶의 허무와 외로움에 모대기였던 시인인 것 같다. 그의 시는 대체로 파괴적이미지나 악마적이미지, 상징적이미지를 창조함으로써 특정한 시대 썩기 시작한 가난의 송장을 해부한다고 말하다싶이 그는 날카로운 메스를 들고 삶의 허무를 철저하게 해부하고 극복하고저 한다. 또한 오늘의 시대를 살아감에 있어서 허동식시인은 나름대로의 생활을 영위하는 지혜를 터특하였고 그것을 시상에 용해시켜 나만의 독특한 모습, 이 시대의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허동식 시인은 함축되고 칼날같은 시어의 구성과 함경도지방의 거센 사투리를 사용하여 남성적인 야성의 미적세계를 개척하였고 거치른 언어구사에 의한 각종 이미지 창조에 주력하고 있다. 
필자가 흥미롭다고 여기는 것은 시인의 작품전편을 걸쳐 절대적인 밤의 세계가 펼펴져 있는 것이다. 밤이라는 것은 어둠과 흑색을 의마하며 흑색의 원형은 혼돈, 신비, 미지, 죽음, 우울, 무의식의 세계이다. 따라서 허동식시인의 작품에서 서정적주인공은 왜 죽음의 의식에 사로잡혔으며 정서적으로 처절한 슬픔과 우울, 그에 따르는 파괴적인 행위와 격렬하고 공격성적인 행위조차도 서슴없이 저질렀는가에 대해서도 해명이 된다. 물론 이것은 외부적으로부터 오는 허무에 대한 치렬한 대항과 몸부림으로 여직껏 설명되여 있지만 다른 한 측면으로 시인 자신의 심층깊이 내재한 무의식측면을 관조하는것도 전반 시작품에 대한 해석에 도움이 될수 있는 것이다. 뿐더러 이런 현상들은 비단 그의 시의 결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시창조의 근원적인 원동력과 생명력을 발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잡아 비틀면/너의 숨기가/검은 피같이/뚝뚝 흐를 것이다/, /거리에 활개치는/악의 부름속에/바람이/온갖 탈을/훌렁 벗긴다/, /그러면 너는/머리숙여 합장하고/너무나 억울하다/고웁게 인사한다. 

이는 ≪밤≫의 전편으로서 그야말로 광란적인 밤이요, 온갖 보이지 않는 음모가 숨어있을 것 같은 밤이다. 서정적주인공은 이 밤의 어둠속에서 격렬한 몸부림과 공격적인 행위를 감행한다. 또한 피의 이미지가 전개되는데 피의 원형은 긍정적인 면에서는 힘의 상징이고 부정적인면에서는 죽음의 상징이다. 이런 죽음이면서도 동시에 재생을 의미하는 원형적상황은 밤의 원형적상황과 더불어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심층적인 심리기반을 말해준다. 
스위스의 심리학자 칼 융은 매개인의 인격중에는 네가지 원형이 있는데 그중의 한가지 원형은 바로 음영(阴影)이라는 것이다. 음영은 인간의 심령중에서 가장 암흑하고 깊숙한 부분으로서 집체무의식중 인류의 조상에게서 유전되여온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인간으로 하여금 가장 원초적인 공격성과 격정을 띠게 하고, 광렬적인 경향에 치우치게 하며 동시에 활력을 불어넣고 창조성과 생명력에 충천되여 있게끔 한다. 음영을 억제하고 배척하는 것은 한 인간으 인격을 창백하고 무력하게 만든다고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시작품의 전편에 걸쳐 전개되는 밤의 이미지나 상황적제시 및 그에 따르는 일련의 공격성적인것과 격정적인 행위가 각종 이미지로 강렬하게 전개되고 활력소를 이루는 것은 시인의 무의식측면인 음영의 조종이요, 투영이라 할수도 있는 것이다. 때문에 그의 시에서 악마적인 시어들로 장식되여 있는것도 그만의 독특한 시적인 풍격이 되는 동시에 우리 개개인 인간들의 무의식의 공동된 부분, 집체무의식을 대변하였다고 하여도 무리는 아닌 것이다. 
허동식 시인은 아직도 청년시인이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그의 시집들에서는 아직 심도깊은 철학적사고가 결여되고 어떤 시는 너무나도 쉽게 씌여지고 관념성에 치우쳤는가 하면 조잡한 시어들과 불필요한 감정과 정서를 류출하고 있다. 이를테면 시 ≪수인≫, ≪별빛≫과 ≪도예≫와 같은 작품들이다. 그리고 보다도 존재적 삶이 가지는 여유로움에서 〈바람맞은 꽃〉이 아니라 생활의 싱싱한 꽃을 노래하였으면 하는 기대도 없지 않다. 

비가 멎은 어느 아침/회색 하늘에 울리던/례베소리 긴 여음이/허공에 던진 돌맹이가/시야에서 사라져 가듯이/툭 끊기여 가면/모스크의 둥근 지붕에 열린/외로운 초생달을 떠나/번뜩이는 해빛속을/살처럼 솟구치는 비둘기에/가슴이 떨린다. (전편) 〈모스크와 비둘기〉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시구이다. 두고두고 음미할수 있는 아름다운 의경과 감동을 읽는이들에게 선물한것에 대하여 마음의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다. 또한 날카롭게 번뜩이는 해빛속을 살처럼 솟구치는 비둘기처럼, 더 아름다운 자유의 사세계로 한번더 번뜩이는 비상을 시도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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