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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인 - 알퐁스 드라마르틴
2015년 03월 18일 23시 05분  조회:3197  추천:0  작성자: 죽림

 

  

알퐁스 드라마르틴

1790~1869

 

시인인 동시에 정치가. 낭만주의를 처음으로

작품화하였으며 시의 기교를 멸시하여 항상

풍요한 시상을 조화롭고 음악적인 리듬에 실었다.

 

테마는 주로 사랑,자연,죽음,추억으로 시속에서

자연을 발견, 찬미하고 또한 죽음의 관념에 늘 사로잡혀

 

그 너머의 영생을 꿈꿔 작품속에 종교적 명상을

불어넣은 작가다. 수많은 여행으로 인해 빛에 쪼들려

억지로 작품을 써야하는 만년을 보냈다.

 

 

호 수

 

 

이렇게 항상 새로운 여울을 향해 밀리고,

돌아올 길도 없이 끝없는 어둠에 휩쓸려

 

넓은 세월의 바다 위에

단 하루만이라도 닻을 내려 정박할 수가 없을까?

 

 

오, 호수여 ! 이제 겨우 한 해가 지나 갔는데,

그이가 다시 와야 할 이 사랑스런 물가에

 

일찍이 그이가 앉았던 바로 그 바위 위에

보라, 이젠 이렇게 나만 홀로 와서 앉았다.

 

 

너는 지금처럼 깊숙한 바위 밑에서 울부짖었고

지금처럼 그 울퉁불퉁한 바위에 마구 부딪쳤었지.

 

그 날도 지금처럼 바람은 네 물결을 튕겨

사랑스런 그이의 발 위에 거품을 끼얹었었지.

 

 

호수여, 그 밤을 너는 기억하는가 우리는 말없이

노를 젖고 있었다.

 

위로 하늘, 아래로 물결, 그 사이엔

가락맞춰 조화롭게 물결을 헤쳐 나가는 노소리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었지.

 

 

그때 갑자기 지상의 소리 같지 않은 음성이

매혹된 호수가에 메아리쳐 울렸었다.

 

물결은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내게 지극히 사랑스런

그 음성이

이런 말들을 남겼다.

 

 

시간이여, 날음을 멈추어라.

그리고 너 행복된 시절이여, 운행을 중지하라.

 

우리 생애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의

이 덧없는 희열이나마 우리 좀 맛보게 해다오.

 

 

이 세상의 많은 불행한 이들은 너를 애원하노니,

그들을 위해 어디 흘러가거라.

 

그들을 괴롭히는 근심들까지 그 시간과 더불어 가져가거라

그리고는 행복한 사람들을 잊어다오.

 

 

아직 몇 분 더 머물기를 바래도 소용없구나!

시간은 나를 빠져나가 자꾸 도망쳐 간다.

 

이 밤이 제발 느리게 지나가라 간청하지만

새벽이 와서 어둠을 흐트러 놓으리라.

 

 

그러니 우리 서로서로 사랑하며

서둘러 이 덧 없는 세월을 즐겨 보자구나.

 

인간에겐 항구가 없고 시간엔 기슭이 없다.

시간은 흘러가고 인간은 사라지고!

 

 

시기에 찬 시간들이여,

사랑의 행복에 함뿍 취한 이 기쁜 순간을

 

불행한 날들과 그렇게 똑같은 속도로

우리 한테서 앗아갈 수 있단 말인가?

 

 

진정 우리는 행복된 순간의 흔적조차 남길 수가

없단 말인가.

 

영원히 지나가 버리고 영원히 사라져 버리고 만단

말인가.

 

즐거움을 주었다가, 그리고 그것을 앗아간 시간이

이제 다시는 그 즐거움을 돌려줄 수 없단 말인가.

 

 

영원이여, 허무여, 과거여, 너희들의 심연이여!

너희들이 사켜 버린 그 시간은 무엇에 쓰려느냐?

 

우리에게서 앗아간 그 숭고한 도취를

언제 돌려주려하느냐?

 

 

오, 호수여, 말없는 동굴이여, 어두운 숲이여!

시간이 아껴두고 또다시 젊게도 해줄 수 있는

 

너희들, 아름다운 자연이여,

이 밤의 추억만이라도 간직해다오.

 

 

아름다운 호수여, 네 휴식 속에, 네 폭풍 속에

그리고 물 위로 불쑥 솟은

험한 바위 사이에 그 추억을 간직해다오!

 

살랑거리며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네 물결가에 연방 부딪치는 파도 소리에

 

보드라운 빛으로 수면을 희게 비추는 은빛 별들 속에

그 추억을 간직해다오!

 

 

탄식하는 바람, 한숨짓는 갈대,

향기로운 대기의 가벼운 향기,

 

들리고, 보이고, 숨쉬는 그 모든 것이 다같이 말해주길,

'그들은 서로 사랑했다!' 라고.

 

* 병상에 누워 있는 엘뷔르를 기다리며 그녀와 거닐던 호수가에서

이제는 과거가 되고 만 즐거움을 추억하여 읊은 것.

 

다시 되 찾을 수 없는 과거를 지워지지 않는 과거로 만들어

무상한 세월에서 짧았던 사랑의 추억을 영원토록 간직코자 한 것이다.

 

 

 

골짜기

 

내 마음은 모든 것에 지쳐, 희망에도 지쳐서,

소망을 품어 운명을 더는 괴롭히지 않으리.

 

내 어린 시절의 작은 골짜기여,

이제는 다만 죽음을 기다릴 잠시의 안식처를 빌려다오.

 

 

여기 어둑한 골짜기의 좁은 오솔길이 있다.

무성한 나뭇잎들이 그 둔덕에 기울어져 있다.

 

그 나무들은 내 이마 위에 뒤얽힌 그늘을 드리무며,

내 온 몸을 침묵과 평화로 뒤덮여준다.

 

 

저기 녹음으로 엉킨 다리 밑에 감춰진 두 시냇물이

골짜기 주위를 굽이 돌아 흐른다.

 

냇물은 한순간 물결과 속삭임이 한데 뒤섞이더니

내 인생의 원천도 그 냇물처럼 흘러버렸다.

 

소리도 이름도 없이, 다시 돌아올길 길도 없이 지나가버렸다.

그러나 냇물의 물결은 맑고 투명한데

혼탁한 내 영혼은 아름답던 날의 광명을 비치지도 못한다.

 

 

서늘한 냇물 바닥과 그 곳에 드리운 그늘이

온종일 나를 시냇가에 묶어 놓았다.

 

단조로운 노랫가락에 고이 잠드는 어린래처럼

내 영혼은 냇물 흐르는 소리에 잠이 든다.

 

 

녹음이 성벽처럼 둘러싸이고

바라보기 아름다운 내 눈앞 지평선에 싸인곳

 

아, 그 곳에서 나는 즐겨 걸음을 멈추고 자연속에 홀로 서서

물결소리만을 듣고 하늘만 바라본다.

 

 

살아오는 동안 너무 보고 너무 느끼고 너무 사랑을 해본

나는 이제 레떼의 정적을 찾으러 왔다.

 

아름다운 고장이여, 내게 망각의 언덕이 되어다오.

이제부터는 망각만이 나의 지복이 된다.

 

 

내 마음은 휴식을 얻었고, 내 영혼은 침묵을 찾았다.

세상의 먼 소음은 바람에 실려

 

먼 곳에서 들려오는 약한 소리처럼,

명확하지 않은 내 귓가에 들려왔다가는 곧 사라져버린다.

 

 

이곳에서 나는 구름 저 너머로

나의 생이 과법의 그늘 속에 사라져가는 것을 본다.

 

잠에서 깨웠을 때 지워진 꿈 속에 커단 영상만이

남아있듯이

남은 것은 오직 사랑뿐이다.

 

 

희망을 가슴 가득히 품은 한 길손이 마을에

들어가기 전 그 문턱에 앉아

 

잠시 저녁의 향기로운 공기를 들이마시듯

나의 영혼이여, 마지막 이 안식처에 편히 쉬어라.

 

 

그 길손처럼 우리 이 행로의 막바지에 서서

영원한 평화의 전 인 이 정적을 흠뻑 들이마시자.

 

 

가을날처럼 우울하고 짧은 너의 일생은

언덕에 드리운 그늘처럼 기울져 간다.

 

우정도 너를 배반하고, 동정도 너를 버려

너는 혼자서 무덤의 오솔길을 내려간다.

 

 

그러나 너를 부르고 너를 사랑하는 자연이 거기에 있다.

항상 네게로 열려있는 자연의 품속에 가서 안겨라.

 

너의 모든 것이 변할지라도 자연은 항상 변함이 없고

변함없는 태양이 항상 네 인생 위를 떠돈다.

 

 

자연은 언제나 광명과 그늘로 너를 감싸준다.

잃어버린 허망한 행복에 대한 애착에서 벗어나

 

피다고르가 사랑하던 메아리를 사랑하라.

그리고 천상의 향연 그와 함께 귀를 귀울여보라.

 

 

하늘의 광명을 보라. 지상의 그늘을 보라.

넓고 넓은 창공에선 북풍을 따라 날으고

 

부드러운 달빛을 받으면서

숲을 헤치고 골짜기의 그늘로 소리없이 들어서렴.

 

 

신은 인간이 자기를 알 수 있도록 지성을 부여하셨다.

그러니 자연 앞에서 그 창조자를 발견하여라.

 

자연은 침묵 속에 한 목소리로 영혼을 가진 자에게 말을 하노니

그 누가 가슴 속에 이 목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 1819년 초여름, 죽은 애인에 대한 추억과 상처가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으나 건강이 회복됨에 따라

차차 마음도 자연에 의해 진정된 시기에 씀.

 

 

 

가을

 

 

아직 변색하지 않은 녹음에 덮인 숲이여,

잔디 위에 마구 흩어져 있는 노릇한 낙엽들이여,

 

아름다운 가을의 날들이여 ! 안녕 !

자연의 슬픔은 내 괴로움과 어울려 내 눈길에 정다웁다

 

 

나는 명상에 잠겨 한적한 오솔길을 따른다.

약한 햇살로 내 발밑의 어두운 숲을 희미하게 밝혀주는

 

이 창백해 가는 해를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보고 싶구나.

 

 

그렇다. 자연이 숨져 가는 이 가을날,

베일에 싸인 듯 몽롱한 그의 시선 속에서 나는 더 한층 매력을 느낀다.

 

가을은 사랑하는 친구의 이별이며

죽음으로 영원히 닫혀지려는 입술에 떠도는 미소이다.

 

 

이처럼 인생의 지평선을 떠날 준비를 갖추고,

내 오랜 생애에 품었던 희망이 이제 스러져감을 한탄하면서

 

나는 다시 한번 몸을 돌려 선망의 눈초리로

내가 즐겨보지 못한 인생의 아름다움을 생각해 본다.

 

 

천지여,태양이여,계곡이여, 아름답고 다정스런 자연이여,

나는 그대들로 인해 죽음에 임해 눈물을 흘린다.

 

대기는 너무도 향기롭고 빛은 너무도 맑다.

숨져가는 이의 시선엔 태양은 진정 아름답고나.

 

 

나는 이제 단맛 쓴맛이 함께 뒤섞인 이 술잔을

마지막 한방울까지 몽땅 비우련다.

 

내가 생명을 들이마시던 이 잔 밑바닥에

어쩌면 한 방울의 굴이 남아있을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어쩌면 아직도 미래가

희망이 다 없어졌던 행복을 내게 다시 돌려줄지도 모른다.

 

어쩌면 군중 속에 내가 알지 못하는 한 영혼

내 영혼을 이해해주고 그리고 내게 응답해줄지도 모른다.

 

 

미풍에 향내를 풍기며 꽃잎이 떨어진다.

그것은 바로 생과 태양에 대한 이별.

 

내가 여기 죽어가는데 숨이지는 그 순간에

슬프고도 가락진 음향처럼 내 영혼이 퍼진다.

 

 

 

 

나 비

 

 

봄과 함께 나서 장미와 함께 죽는다.

서풍의 날개를 타고 나른다. 맑은 하늘을.

 

몇송이 안핀 꽃들의 가슴에 흔들리며

향내에 햇살에 창공에 취하여

어린 몸을 흔들며 분가루를 뿌린다.

 

한숨처럼 가없는 하늘을 난다.

정녕 홀리인 나비의 숙명

 

이승의 욕망처럼 휴식도 없이

꽃이란 꽃에 닿아도 마음은 그 모양

열락을 찾다 끝내는 되돌아간다. 하늘로!

 

 

아듀 그라치엘라

 

 

안녕! 눈물에 젖은 입술 위에 감도는 말.

기쁨의 문을 닫고, 사랑을 가르는,

 

환희에서 우리를 떼어놓는

그리하여 어느 날인가 영원 속으로 지워져 가는 말 안녕!

 

 

안녕!.....내 생에서 사랑했던 여인들과 헤어지며,

의미도 모른 채, 흘려 뱉어냈던 말.

 

돌아와 줘! 인간이 탄식할 때, 결코 안돼! 신의

대답이 메아리칠 때,

 

그 말 안에 담겨 있는 슬픔과 도취의 찌꺼기를 나는

몰랐어라, 안녕!

 

 

허지만, 오늘 나는 느낀다.

그 말밖에 할 수 없음을,

 

그 말은 바로 너로 인해 채워졌기에

심연을 안고 뒹구는 말,

 

나와 내 사랑의 영상 사이에

가로놓인 영겁의 이 침묵만이

오직 대답이 될 뿐인 말!.....

 

 

그걸 알면서도 마냥 그 말만을

되풀이하는 나의 마음

 

숨죽인 흐느낌에 드문드문 끊겼다가도

터져나오는 모든 소리는

 

오로지, '진정 안녕!'이라는 의미 안으로

쌓여가는 것인 양,

되풀이하는 나의 마음.

 

 

 

*그라치엘라; 1816년에 쓰여진 시 엘비르(Elvire)라는

신비로운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라마르틴느의 첫 번째 사랑의 대상.

 

이태리 나폴리 태생의 소녀. 그러나 1816년 12월 16일 그가

친구 비리유에게 써보낸 편지에서의 그녀의 이름은

마리 안토니아 이아코미노로 되어 있으므로

 

'그라치엘라'라는 이름도 역시 신비의 베일에 싸여 있다 할 것이다.

아듀(안녕)이라는 말은 라마르틴느가 즐겨 사용하는 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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