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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ATORIUM 조향
SANATORIUM
옷도 벳드도 벽도 창장(窓帳)도 모두 희어 무섭게 깨끗해얄 곳인데두 이 무슨 악착한 병균(病菌) 살기에 이리 외론 곳이냐
저승으로 갈 채비를 하얗게 하였구나 병동(病棟) 유리창에 오후의 햇볕이 따가워 간호부 흔드는 손이 슬프기만 하여라
죽순, 1948. 3
`쥬노'의 독백 조향
`쥬노'의 독백
참 우습지 커튼(curtain) 렉처(lecture)는 언제나 복숭아 빛깔인데 선생님들은 어두운 로비에서 케라라의 라라라 그렇지 라오스에서는 무엇을 자꾸 포기한다고 한다 고부랑깅 강아지는 낮 열한 시를 바라보고 한없이 울지 않았다 미인은 바크테리아를 기르는 선수들인데 낭자한 테블 위에는 자빠진 마네킹의 허벅지 네 살난 아들놈이 그 치마 밑으로 손을 넣어 보더니 왜 이러냐고 갸웃이 묻는다 UP는 네루 수상의 찌푸린 표정을 보도하고 죄들이 옥수수처럼 알알이 영글어가면 붉은 발톱이 국경선을 할퀸다 목쉰 영감이 죽으면서 남겨 놓은 기침 소리가 겹쳐진다 기분 나쁜 오브제가 수세미의 모양 조랑조랑 달린 골목길에서 나는 낡은 황제의 모자를 쓰고 있다 석양은 녹색으로 물들어 가는데 영금을 보는 소녀의 외마디 소리 하품을 뱉으니까 트랜지스터 라디오 소리가 나더니 비둘기가 한 마리 어깨에 와서 오후 여섯 시를 구구거린다 셈본 성적이 좋지 않았지 그럼 팔랑고렁거리는 치마 자락은 어젯밤의 검은 빛을 갑자기 회상한다 되씹어 보면 사랑스러운 죄들이 시척지근한 트림과 더불어 꽤 생산될 것이니라 아아멘 자멘호프 박사의 암호 말씀인가요? 순정이 십자가에서 말라 죽었으니 말야 오늘 밤 골고다에서는 축구 시합이 있을 것이다 밤 곁에서 회색 기침 소리가 난다 손바닥에서 네가 수없이 멸해 간다
사상계, 1959. 10
가을과 소녀의 노래 조향
가을과 소녀(少女)의 노래
하이얀 양관(洋館) 포오치에 소박한 의자가 하나 앉아 있다
소녀(少女)는 의자 위에서 지치어 버려 낙엽빛 팡세를 사린다 나비처럼 가느닿게 숨쉬는 슬픔과 함께……
바람이 오면 빨간 담장이 잎 잎새마다가 흐느낀다 영혼들의 한숨의 코오러스!
시집(詩集)의 쪽빛 타이틀에는 화석(化石)이 된 뉴우드가 뒤척이고,
사내는 해쓱한 테류우젼인 양 커어텐을 비꼬아 쥐면서 납덩이로 가라앉은 바다의 빛을 핥는다
먼 기억의 스크린처럼 그리워지는 황혼이 소녀(少女)의 살결에 배어들 무렵
가을은 대리석(大理石)의 체온을 기르고 있었다.
문예, 1950. 1
검은 SERIES 조향
검은 SERIES
□ 1
(C․U) 유리창에 시꺼먼 손바닥 따악 붙어 있다. 지문(指紋)엔 나비의 눈들이……. (M․S) 쇠사슬을 끌고 수 많은 다리[脚]의 행진. (O․S) M 아카시아 꽃의 계절이었는데…… W 굴러 내리는 푸른 휘파람도…… ―― 밝은 목금(木琴) 소리 ――
□ 2
(M․S) 윤전기에서 쏟아지는 지폐의 더미. 그 더미 속에서 도오는 지구. (C․U) 지구는 잠시 정전(停電).
―― 권총 소리 ―― (O․S) W 오 소레 미오! M 찢어진 EO S의 로비에서……
□ 3
(L․S) 사막의 뉴드 거기 한 쌍의 벌거숭이 실루에트 사뭇 내닫는다. 기일게 그리매가 따라간다. W 옌 어디메에요! M 죽음이 뵈는 언덕에서…… ―― 흑인 영가(黑人靈歌) ――
□ 4
(L․S) 기울어지는 성교당(聖敎堂) (M․S) 비스듬히 십자가. 탄도탄이 십자가에 명중. (L․S) 검은 태양. ―― 바람 소리․사이 사이로 코오러스 ――
□ 5
(C․U) 유리창에 시꺼먼 손바닥. 파충류처럼 따악 붙어 있다. 그 손바닥 가운데 외눈동자가 꺼무럭. (B․C․U) 공포공포공포의 외눈동자. ―― 허탈한 여인의 웃음 소리 ――
□ 6
(M․S) 정전된 지구의(地球儀) 도온다. 지구의 복판에 공포공포의 외눈동자. (B․C․U) 외눈동자. 외눈동자에서. 무수한 독나방 흩 어지며 날 아 난 다. ―― 명랑하게 구르는 목금 소리 ――
□ 7
(L․S) 아무 것도 없는 회색 하늘. 참 광막하다. (O․S) 너희는 잘못 걸어 왔느니라! ―― 그레고리아 성가(聖歌)․처량하게 풀룻 소리 꿰뚫고 나간다 ――
사상계, 1958. 11
검은 신화 조향
검은 신화(神話)
지하(地下)로 통하는 층층계. 물이끼 번져 가고. 아아라한 옛날의 Hierogramme들이에요. 죽어간 문명(文明)의 영광(榮光) 위에. 굴러떨어지는 세피아의 태양(太陽). 갸륵한 파국(破局)을 위한 Ceremony의. 싸이크라멘이 살랑 흔들리는데. 영구차(靈柩車)의 행렬(行列) 뒤에 물구나무선 최후의 인간(人間) 대열(隊列).
내 과거(過去)의 계제(階梯)에서 사태지는 시꺼먼 자장노래. Lu lul―la Hash a bye 난립(亂立)한 마름쇠를 넘어서 휘청거리는 군화(軍靴)들의 패잔(敗殘). 시간(時間)이 옴짓 않는 이 공동(空洞)을 너의 su―awl처럼 새까만 수실을 흔들며 바람들이 연신 회돌아 나간다. 그 속에 네 팔이 하나 떨어져 있다. 하아얀 수화기(受話器). 자꾸만 멀어지는 성가대(聖歌隊). halation 저쪽에서 나를 부르는 너의 하얀 소리. 나는 이 수많은 스산한 바람 속에 서 있다.
머리, 가슴이 세모진 Basedow 씨병(氏病) 환자(患者)들이 누워 있는 습지대(濕地帶). 돋아난 눈알들. 버슷버슷버슷버슷. 4444. 아아. 나의 가슴에도. 사막(砂漠)에는 바알갛게 반란(叛亂)이. 운하지대(運河地帶)의 계엄명(戒嚴命). 나쎌 씨의 낮잠을 위하여. italio처럼 늘어선 목내이(木乃伊)의 숲 속에서. 서궁남내다추초(西宮南內多秋草) 낙엽만계홍불소(落葉滿階紅不掃). nomos의 폐허. 석양에 지나는 객(客)이 눈물겨워 하노라!
갑자기 3 반규관(半規管)의 좌초(坐礁). Mi Primavera! ¿Quien sera aquel hombre que nos mira? 평범한 밤은 처마 밑에 웅크리고 앉아서 이나 잡고 있다. 세상이 어떠냐고 물어보니까 모두들 자고 있더라고. 육체(肉體)를 고발(告發)당한 투명인간(透明人間)들이 G․M․C에 자꾸 실려 가고. 그 위에서 인환(寅煥)이 손을 흔든다. 그랜드 쇼처럼 인간(人間)의 운명(運命)이 허물어지고 Mi Primavera! 너는 시꺼먼 바람의 border line 저쪽에 언제나 있으면서. 몬마르뜨르도 아닌 거릴 이렇게 걷고 있어요! 미친 오필리아의 웃음소리 아스팔트 위에 동댕이쳐지면. 젊은 교수(敎授)의 독백(獨白)의 회색(灰色). 인제 지구(地球)의 visa는 무효(無效)다.
문학예술, 1956. 12
검은 전설 조향
검은 전설
하얀 종이 조각처럼 밝은 너의 오전의 공백(空白)에서 내가 그즘 잠시를 놀았더니라 허겁지겁 하얀 층층계를 올라버린 다음 또아리빛 달을 너와 나는 의좋게 나눠 먹었지 옛날에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고대(古代)의 원주(圓柱)가 늘어선 여기 내 주름 잡힌 반생을 낭독하는 청승맞은 소리 밤이 까아만 비로오드의 기침을 또박또박 흘리면서 내 곁에 서 있고 진흙빛 말갈(靺鞨)의 바람이 설레는 하늘엔 전갈이 따악들 붙여 있다 참새 발자국 모양한 글자들이 마구 찍혀 있는 어느 황토 빛 영토의 변두리에서 검은 나비는 맴을 돌고 아으 다롱디리! 안타까비의 포복(匍匐)이 너의 나의 육체에 의상(衣裳)처럼 화려하구나 나는 골고다의 스산한 언덕에서 마지막 피를 흘린다 나의 손바닥에서 하얀 네가 멸형(滅形)하고 나면 물보라 치는 나의 시커먼 종점에서 앙상하게 걸려 있는 세월의 갈비뼈 사이로 레테의 강물이 흐른다 나는 검은 수선꽃을 건져 든다 쌕스폰처럼 흰 팔을 흔드는 것은 누굴까! 팔목에 까만 시계줄이 감겨 있다 인공위성 이야길 주고 받으면서 으슥한 골목길로 피해 가는 소년들의 뒤를 밟아 가니까 볼이 옴폭 파인 아낙네들이 누더기처럼 웃고 섰다 병든 풍금이 언제나 목쉰 소리로 오후의 교정을 괴롭히던 국민학교가 서 있는 마을에 아침마다 파아란 우유차를 끌고 오던 늙은이는 지금은 없다 바알간 석양 비스듬히 십자가 교회당 하얀 꼬리를 흔들면서 지나가는 바람결에 항가리아 소녀 탱크에 깔려 간 소녀들의 프란네르 치맛자락이 명멸한다 소롯한 것이 있다 아쉬운 것이 있다 내 어두운 마음의 갤러리에 불을 밝히러 너는 온다 지도를 펴 놓고 이 논샤란스의 지구의 레이아웃(layout)를 가만히 생각해 보자 내일이면 늦으리 눈이 자꾸 쌓인다.
자유문학, 1958. 12
그날의 신기루 조향
그날의 신기루(蜃氣樓)
형장(刑場) 검은 벌판. 쭈빗쭈빗이 늘어선 말목에 턱 괴고 붉은 달은 야릇이 웃었더니라. 귀곡(鬼哭)은 수수(愁愁) 기인 그리매들만 일렁였고.
우리 외삼촌의 콧날을 날려 놓고 펄럭이는 3․1의 깃발 꿰뚫어 놓고 서른 아홉 층층계를 굴러서 여기 내 앞에 동댕이쳐지는 총알. 한 개. 기기기기기기(旗旗旗旗旗旗)이천만개(二千萬個)가기기기인(旗旗旗人)마다기기기(旗旗旗)방촌(方寸)의인(刃)을회(懷)하고기기기(旗旗旗) 천백세조령(千百歲祖靈)이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旗旗旗旗旗旗旗旗旗旗旗)오등(吾等)을음우(陰佑)하며기기기기기(旗旗旗旗旗)
조선건국(朝鮮建國)사천이백오십이년(四千貳百五十貳年) 삼월일일(參月壹日)
피의 이끼 만발한 층층계 자꾸 올라가면 우리 모두의 마음의 하늘에 의젓한 그날의 신기루(蜃氣樓). 왁자악히 만세(萬歲) 소리만 쏟아지면서. 탄피(彈皮). 두개골(頭蓋骨). 또 외삼촌의 코가 떨어져 있고. 귀한 눈알들이 조선(朝鮮)의 하늘 우러르며 누워 있다. 피. 주검 겨레.
나도 너도 길이는 괼 3․1의 탑(塔). 꼭대기에. 훨훨 비둘기떼 오늘을 날고. 흰 구름 탑 허리에 감기며. 소년들. 하얀 장미꽃다발. 합장(合掌). 창가(唱歌) 소리. 만세 소리. 탑 너머 아아라히 깔려 있는 샛파란. 하늘. 하늘. 하늘.
고려(高麗)의 빛깔이다. 청자(靑磁)빛 우리 하늘 아래. 언제나 살아 있는 것. 맥맥(脈脈)히 영원히 흐르는 줄기. 하나만 하나만 있다.
자유문학, 1958. 4
나는야 뱃사공 조향
나는야 뱃사공
나는야 뱃사공 어제도 오늘도 배움의 강 건너주는 나는야 뱃사공 어기어차 나룻배 사공이다!
이 언덕에 날 찾아온 그대들을 지혜의 노를 저어 수울렁 배를 띄워
저어쪽 언덕에 넘겨주곤 다시 돌아오는 나는야 뱃사공 어기어차 나룻배 사공이다!
동으로 서으로 헤쳐지는 그대들의 뒷모양 바라보며 돌아보며 잘 가라고 잘 되라고 비는 사람 나는야 뱃사공 어기어차 나룻배 사공이다!
조선교육, 1947. 9
날아라 구천에 조향
날아라 구천에
학이드냐 봉이드냐 너희들 날아라 구천 그 높은 위에 눈부시는 눈이 부시는 궁궐 향해서 나의 너희들 높다랗게 날라도 보라! 머얼리 옛집 돌아보며 내려다보며 맑은 은하 건너 너희들 가는 곳 알고지라! 허구 많은 나라에도 배달의 피를 받아 태어난 젊은 너희들 가는 곳 진정 알고도지라! 구름 첩첩으로 머흘어도 뚫어라 빗줄기 거칠게 쏟아져도 참아얀다. 헝클어진 이 나라 바로잡고 겨레 위하여 젊은 너희들 피 끓어 올라라 곱게 고웁게…… 학이드냐 봉이드냐 날아라 너희들 구천 그 높다란 위에 싸움 없고 모자람도 없는 터전 닦으러 하얀 빨간 장미꽃 송이 송이 사철로 필 줄 아는 그런 나라 세우러 나의 너희들 구만리 창공 끝없이 날아라 날아보자!
조선교육, 1947. 9
녹색 의자가 앉아... 조향
녹색(綠色) 의자(椅子)가 앉아...
원제 : 녹색(綠色) 의자(椅子)가 앉아 있는 베란다에서
찐득찐득하다 진한 내출혈(內出血)․커피 냄새 밤이 뭉게뭉게 내 입 에서 기어나온다 나의 여백(餘白)이 까아맣게 침몰(沈沒)해 간다 이끼가 번성하는 계절 늪지대(地帶)에는 송장 들의 눅눅한 향연 파충류(爬蟲類)와 동침하는 여인(女人)들의 머리 위 황혼 짙어 가는 스카이 라인에 비둘기떼만 하야니 박혀박혀박혀 가고가고 너도 아닌 나도 아닌 저 검은 그림자는 누구냐! 올빼미의 것처럼 횟가루 벽에 박히는 두 눈 점점 클로즈업 되어 오는 것 이윽고는 점점 멸형(滅形)되어 가는 저것 그 언덕길 오리나무 수우(樹雨) 듣[滴]는 소리 마구 풀냄새도 풍기더니 ․ 향수(鄕愁)야 네바다이 우글거리는 뒷골목에서 기적 소리가 나면 어디론지 떠나야 하는 유령 들이 술렁거린다 가만히 입을 쪽! 맞춰 줄라치면 뽀오얗게 눈을 흘기 면서 `깍쟁이!' 하더니 너는 지금 빈 자리에 너의 투명한 것만 남겨 놓고 녹색(綠色) 의자(椅子)가 앉아 있는 나의 베 란 다 에서 동화(童話)의 주인공이 들어갔 다는 죽음의 돌문을 바라보고 나는 있다 삶의 뒤란에서 죽음들은 하아얀 수의를 입고 놀고는 있다 낙엽이 한 장 고요를 가로 지른 다
자유문학, 1957. 12
녹색의 지층 조향
녹색(綠色)의 지층(地層)
나뭇가지를 간지르고 가는 상냥한 푸른 바람 소리도 들리고. 거기에 섞여드는 소녀의 한숨 소리 계집의 시시덕거리는 소리가소리가소리가. 나는 사람들과 화안한 웃음들이 살고 있는 세계가 무던히는 그립다. 내 머리 위로 지나간 검은 직선(直線) 위엔 짙은 세삐아의 밤이 타악 자빠져 있는데. 그 밑창에 가서 비둘기들은 목을 뽑아 거머테테한 임종(臨終)을 마련하고 있다. 참 많기도 한 세삐아 빛 밤밤밤밤. 밤의 꾸부러진 지평선엔 바아미리온이 곱게 탄다. 그럼. 너는 까아만 밤에만 내 앞에서 피는 하아얀 사보텐 꽃이다. 참 아무도 없는 밤의 저변(底邊)에서. 메키시코의 사막 지대, 너와 나와 사보텐 꽃과. 행복한가? 그럼요! 포근하고 따뜻한 이불 밑에서 이렇게 당신이 내 곁에 누어 있고. 그럼요! 비쥬! 너는 박꽃처럼 밤을 웃는다. 특호(特號) 활자(活字)를 위하여. 오오. 오오. 디엔․비엔․푸우. 수상(首相)들의 비장(非壯)한 연설. 전파(電波). 파아란 전파(電波)가 지구(地球)에 마구 휘감긴다. 가이가 계기(計器)는 파업한다. 애인(愛人)들은 바닷가에 있다. 엘시노아의 파도 소리. . 끊임 없이 회상(回想)의 시제(時制)가 맴을 도는 여기. 녹색(綠色)의 지층(地層)에서. 화석(化石)이 되어 버린 나는 아아라한 고대(古代)처럼 잠자고 있다. 있어야 한다. 나는 영원을 산다. 개울 물 소리.
자유문학, 1956. 6
대연리 서정 조향
대연리(大淵里) 서정(抒情)
□ 1 가을
여기는 마구 고요만 하구나 노오란 오후의 햇볕 어깨에 받으며 신문질 그러듯이 나는 바다를 앞에 척 펴 놓고 이렇게 쓸쓸한 시간 가운데 있구나 바다는 마구 칠한 부륫샨 부류우 오 바다는 굼실거리는 영원의 그라비유어! 바다여 너는 찬란한 생명을 가졌느냐?
수평 건너는 외대배기 예 제 어쩌면 가버린 이 모습처럼 저리는 희미한 애달픔이냐? 바다야 나는 너의 한없이 푸르른 역사를 모른다
온통 코스모스가 한밤 벌떼처럼 흩어진 여기 고추잠자리 능난한 곤두박질이 긋는 선(線)을 따라만 가다가 나는 그만 짙푸른 하늘의 애정에 현기증이 나 버리곤 한단다
소릴 치면 메아리가 돌아올 듯이 마주 다가앉은 솔이 푸른 산 그 너머가 해운대라는구야! …… 그래 은이 네가 너의 가제 결혼한 서방을 내버리고 미친 듯이 날 찾아와 눈에 이슬만 맺던 어쩌면 제법은 슬프기도 한 그 해운대의 이야길 너는 지금 어디메서 쓰다듬고 있느냐? 참으로 신기론 수수꺼끼가 아니냐 인생이란? 나는 네가 그리워라 나는 네가 그립지도 않아라
꾸겨질 적마다 솨아 하며 하얀 잇발들을 추껴 들고 내달아 오는 바다 이 손님도 없는 향연을 외로워란 듯이 흰 구름이 지나며 그림잘 떨어뜨려 놓는다 소년처럼 돌팔매도 쳐 보면서 돌아오다가 잔디에서 뒹구는 학생과 공연히 마주 웃었다 게으른 엿장사 가위 소리가 지나간 다음 오후의 한 나절은 옴짓 않는 고요가 뼈에 저린다
□ 2 봄
바닷물이 차츰 물러서노라면 젖은 모랫벌이 햇볕을 쬔다. 기다렸더란 듯이 조갤 호비려 달려드는 마을 가수내들 젊은 아낙네들 걷어 붙인 치마 밑에 볼통이 알밴 건강한 만져 보고도 싶은 다리 다리들에 연한 바람이 휘감긴다 홰홰 감기누나 간지럽게 감기는구나
이층 창 밀어 올리고 동해 푸른 바다 여인인 양 살뜰히 안아 들여 본다 가슴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발끝이 홰끈 들린다 바람이 마고 내 숨통을 막는구나 보리밭 거름 냄새 복숭아꽃 냄새 바다 냄새 남쪽 냄새 조개 잡는 아가씨 땀 냄새 살결 냄새 문주리 내 허파로 밀려 든다 나는 자꾸 숨이 막힌다 그래도 나는 연방 섰다 바람에 불리우며 이쪽으로 오는 여학생의 남빛 보레로가 눈에 스민다 그 위로 노랑 나비가 휘영휘영 하늘로 당기어 간다
눈이 아찔하게 노란 장다리꽃 길을 헐레벌떡 지나고 나면 복숭아도 오얏도 개나리도 버들 잎도 마구 피어 무르녹은 마을이 활짝 열린다 풀피리 소리가 가물어지자 송아지도 게으름을 피우면서 등골에 쪼르르 땀방울도 구르며 목구멍에 감기는 감기는 이 갈증! 봄은 갈증이냐 갈증은 봄의 행복이냐 아 포실한 이 갈증이여!
모자를 제껴라 이마를 솔솔 바람에다 맡긴다 내 게슴츠레 뜬 눈망울에 비최는 신작로 거기 해운대로만 달아나는 뻐스 뒤통수에 이는 뽀오얀 먼지 먼지 사라진 다음 아슴한 하늘 끝에 떠 오르는 네가 있다 참으로 있구나 십년 전의 네가 있구나 너도 이 길을 해운대로만 달렸었을 게 아니냐? 은아! 다시 오월 콧노래 부르던 오월 나란히 거닐던 오월이다 시간의 비석(碑石)에 아로새겨진 내 사랑의 생채기는 훈장(勳章)인 양 풍화(風化)되어 가는구나! 어쩌면 한바탕 비극 같은 게 그렇구나 그렇구나 그렇구나…… 말이다
영문(嶺文), 1949. 11
디멘쉬어 프리콕스의 푸르른 산수 조향
디멘쉬어 프리콕스의 푸르른 산수(算數)
당나귀 등에 검은 신(神)들의 모꼬지. 신데렐라의 하늘에 다갈색(茶褐色) 코러스가 번져 나가면 너는 검은 화요일을 자맥질하면서 바람과 함께 스산히 서만 있다. 무례한 송충이 가든 파티를 꾀하고 나분이 내려앉은 헬리콥터는 호랑나비과(科)에 속하는데 멀거니 서서 광야(曠野)에 붙박힌 내 귀에 소리가 야릇한 소 리가 있어 소스라치는 소라들 계엄령은 검은 굵은 네모진 안경테이니라 시시하게 시시덕거리는 정치꾼들, 가 는 눈 실눈을 뜨고 얄밉게 교활을 피우면 군중들의 노호(怒號)는 세종로에 촘촘하고 요긴한 까마귀들은 한천(寒天)의 오점(汚點)이다. 평생이 굴비처럼 엮어져 있는 발코니에서 생명들은 모개흥정에 바쁜데, 은방울꽃들 을 주섬주섬 챙겨서 마지막 계단을 오르자. 인간은 모욕당한 강아지다. 간헐적으로 간힐이 솟구치는 디멘쉬어 프리콕스를 거느리고 의사(醫師)의 손가락을 잘라서 옥상 정원에다 심었다. 관상용(觀賞用) 식물(植物). 자자브레한 고독들이 골목 으슥한 데로 몰려드는 황혼 무렵 유럽에서는 총상(銃傷)을 입은 대통령이 바래진 연설을 되뇌고 있는데, 그를 따르던 오뚝이들은 배신을 컴퓨터 출력(出力)에서 찾고 있다. 위스키 잔 위에 위기가 윙윙거리고 해해거리는 백노(白奴)들은 백로지 가면(假面)이다. 광대들은 아직 메이컵이 끝나질 않았어. 야! 뒤통수에다 구멍을 내고 똥물을 붜 넣어 줘얄 놈들! 나 를 보라! 나는 암흑(暗黑)의 십자가(十字架)다. 달이 지고 나면 모두들 층계참에 서서 울상을 짜 내면서, 몰 려 오는 아우성들을 일일이 체크한다. 온도계에서 빠져 나온 온기(溫氣)들은 빙판에 쓰러져 있고 당장에 잎사귀들을 뒤집어 놓을 듯이 노대바람이 지랄을 하는데 신들린 사람들처럼 퀭한 눈으로 이상한 색깔의 하늘을 핥고들 있구나. 아슴히 사라져 가는 것은 내 안에서 몰래 빠져 나간 너의 하얀 곡두지? 이로니는 로니고 로 니는 니컬이고 니 컬은 컬컬하구나. 컬럭 컬럭. 지구가 앓고 있다. 하아프가 유혹의 계절을 쓰다듬고 있는데 게으름은 녹색으로 칠해진 캔버스다. 도로아미타불은 구겨진 웃음거리판인데 한 마리 새가 되어 조촐하게 날아가자 우리는. 마지막 정거장에서 너를야 잃으면, 그 리운 새들을 위해서 나 의 기도를 다듬는 나는 멀쑥한 세공사(細工師). 집집마다에 등불이 매달려 가면 짐승들은 옹기종기 달빛을 받으며 모여 앉아서 승냥이의 거머퇴퇴한 강의를 듣고 있다. 의치(義齒)는 뽑아서 목걸이로 하고 감람나무 밑에 매달린 플래스틱 다리 시늉을 해 뵐까? 짓고땡이다. 나 를 밀치고 달아나는 키다리들을 비아냥거리지 말자! 받아쓰기를 잘 하는 물푸레나무 는 푸른 오르가슴을 걸치고 다닌다는 것이다. 아무렴! 을축년 건방축이지! 같이 갈까 하다가 관 뒀어. 이런 멍청이 바보 청맹(靑盲)과니 도 없을 거야, 쯧쯧! 뵈오려 가려다가 못 가서 기뻐요. 곤히 잠든 할렐루야를 깨우지 말도록. 해바라기는 고호의 전설을 제본중(製本中)인데 요즘은 요사스런 인충(人蟲)들이 창궐하는 계절인가 봐! 어험! 위엄을 꾸며 보는 어릿광대들이 처마 밑에서 난잡․난삽한 짓거리들을 하고 있으니 말예요. 지 구의 축제일이 해반주그레하게 다가오 니까 떠나도 괜찮다는 거지. 가야금 시울 소리는 청승맞기만 하고 없는 것이 있는 것이고 있는 것이 곧 없는 것이니 어떻게 합니까 요다각형(凹多角形) 같은 거지요 뭐! ……………
전환, 1982
문명의 황무지 조향
문명(文明)의 황무지(荒蕪地)
손을 번쩍 들면 내 앞에 와서 쌔근거리는 개쁜히 정지하는 크라이스라. 길들은 사냥개.
빽․미러 안에다 창백한 내 표정을 영상(映像)하며 주검의 거릴 내닫는다. 나는 약간 흔들린다.
죽어 쓰러진 엄마 젖무덤 파고드는 갓난애. 버려진 군화(軍靴)짝. 피 묻은 가제. 휘어진 철조. 구르는 두개골(頭蓋骨). 부서진 시계탑(時計塔). 전쟁이 쪼그리고 앉았던 광장(廣場)에는 누더기 주검들이. 탄환(彈丸) 자국 송송한 교외(郊外)의 병사(兵舍). 줄 지어 낙역(絡繹)한 제웅의 무리. 참 낙막(落寞)한 것.
유리창 바깥엔 돌아가는 지구의(地球儀). 옛날의 옛날의 나의 무랑루즈. 그 곁엔 찢어진 동화(童畵) 한 장 팔락이고. 동화(童畵) 가운데서 넌지시 포신(砲身)이 회전한다. 내 가슴을 시꺼멓게 겨냥해 온다. 이따금씩 킬킬거리는 웃음소리도 들리고 살갗엔 또야기도 돋아나고. 레스링처럼 씩씩하던 도시(都市)에는 이제. 넘어져 가는 기업(企業)들의 지붕 위를. 까마귀만 맴을 돌고.
지친 사상(思想)의 애드․바룽이 히죽이 걸려 있는 붉은 닥세리. 타다 남은 쇠층층계 황토빛 하늘을 괴고 섰는 문명(文明)의 폐허를 지나. 천둥․비바람 차장에 요란한 광야(曠野)로. 먹빛 저항(抵抗)이 치렁치렁 가로놓인다. 허줏굿 소리 자꾸만 들려 오는 여기. 아직도 운하(運河)의 언덕에선 모두들 새벽을 기다리고 있는데. 무당아씨, 어떻거고 싶지? ꡒShe answered : I would die.ꡓ 나는 죽고만 싶단다
내일을 잃은 지구(地球)엔 이윽고 까아만 막(幕) 이 나린다.
영문(嶺文), 1957. 11
밀 누름 때 조향
밀 누름 때
밀 누름 때 하늘은 떨궈버린 행복처럼 눈이 부신데 가슴 활활 달고 등골에 땀도 송송 배는데 나는 구비치는 밀밭 머리에 섰다 섰구나! 이삭이 무르익은 냄새란 이렇게도 고소한게냐! 나는 무너져가는 청춘을 안고 계절의 한복판에서 영영 기절해 버린다
밀밭 두던 황토 사태 난 그늘에 호젓히 외로워라 하얀 오랑캐꽃 한떨기 나는 허수아비처럼 얄궂은 포―즈로 섰고 싶어라 나는 그 어느 불행히 미쳐 죽은 화가인 양 무르녹는 밀밭 머리 누른 에―텔의 파동에 취한다
푸르른 계절 그 황홀한 울고 싶은 풍경화 속에서 나는 나를 잃어 버린다 풍성히 탄력스러운 포곤한 숲 저어쪽에 바다가 호수처럼 게을음처럼 잠자코 누워 있다
간지러운 풀피리 소리에 재우쳐 깬 나는 짓궂은 소요정(小妖精)들인 양 휘파람을 날려라. 에나멜 느린 듯이 고운 하늘에 구멍이나 구멍이나 송 송 뚫어라!
죽순, 1947. 8
바다의 층계 조향
바다의 층계
낡은 아코오뎡은 대화를 관 뒀습니다.
― 여보세요?
폰폰따리아 마주르카 디이젤엔진에 피는 들국화
― 왜 그러십니까?
모래밭에서 수화기(受話器) 여인의 허벅지 낙지 까아만 그림자
비둘기와 소녀들의 랑데―부우 그 위에 손을 흔드는 파아란 깃폭들
나비는 기중기(起重機)의 허리에 붙어서 푸른 바다의 층계를 헤아린다.
신문예, 1958. 10
BON VOYAGE! 조향
BON VOYAGE!
□ 1.
BARCELONA 아 BARCELONA로
□ 2.
은빛 꼬마 스푸운을 조심스레 잠글라치면 짙은 세피아의 물결이 가울탕 잔(盞) 전에 남실거리며 소녀(少女)가 마악 부어 주고 간 우유(牛乳)가 가라앉았다간 송이송이 구름이 되어 피어 오른다
유리창 바깥엔 수많은 전옥(典獄)들처럼 거니는 어스름이 와 있는데 다시 가슴팍을 후비는 뱃고동이 울거들랑 버릇마냥 낡아 버린 항해도(航海圖)에다 애라(愛羅)! 불을 켜기로 하자
파아카아드 빨간 미등(尾燈)이 미끄러진 뒤 나의 에크랑에 굴절(屈折)하는 이십세기(二十世紀)의 서정(抒情)의 포제(Pose)
빌딩 모롱이에서 예각(銳角)을 그리는 검푸른 바람과 콱! 마주쳐 놓니까 개자(芥子)국을 홀짝 마신 때처럼 씽! 하고 콧잔등에까지 눈물이 팽그르르 괼 뻔한다
바다의 난간(欄干)에서 훈장(勳章)일랑 잃어버리고 별을 뿌리며 밤의 검은 팔에 휘감기는 나를 봐라 바다에서 바람이 오더니 내 넥타이를 만져 보곤 가버린다 바람은 검은 망토를 (★★) 있구나
애라(愛羅)! 나는 너를 보내러 왔다 항구로 왔다.
□ 3.
해협(海峽)은 출렁거리는 한 잔(盞) 페피아민트가 아니겠니? 데크에서 한쪽 다리를 지팡이처럼 짚고 서서 푸름이 사뭇 쏟아지는 하늘에 눈이 아프도록 박혀지는 빨간 기폭(旗幅)일랑 청춘(靑春)의 도안(圖案)으로 접어 두면서 너는 아슴히 넘실거리는 수평선(水平線) 위에다 가느다란 구역질을 뱉어 놓을 게 아닌가?
이방(異邦) 사투리 낙엽처럼 굴러 다니는 술렁거리는 부두(埠頭)에서 신데렐라(CINDERELLA)의 빨간 비드로(VIDRO)의 장화(長靴)를 신고 나도 너를 찾아야 할 날이 올 것을 안다.
애라(愛羅)! 새로운 것을 위하여 승화(昇華)의 닻줄을 감자 우리들의 태양(太陽) 우리들의 신기루(蜃氣樓)를 위하여……
오 아침 파아란 기항지(寄港地) 빨간 망토의 소녀(少女)들 새로운 신사록(紳士錄) 우리들의 공화국(共和國) 펼쳐지는 지도(地圖) 기어간 산맥(山脈)들
나는 너를 보내러 왔다 담배를 피워물면서 흐르는 바람 속에 서 있다 자꾸만 투명(透明)해지는 나의 육체(肉體)!
애라(愛羅)!
□ 4.
BARCELONA 아 BARCELONA로
백민, 1950. 3
붉은 달이 걸려 있는 풍경화 조향
붉은 달이 걸려 있는 풍경화(風景畵)
But who is that on the other side of you? T. S. Eliot : The Waste Land
가로등이 갑자기 꺼져들 가고 나면. 페이브먼트 위엔. 여름처럼 무성해 가는 붉은 독버섯들. 독버섯들은 생쥐 귀처럼 생겼다. 거기 뱀 같은 외눈들이 차갑게 꺼무럭거리고. ꡒ좀생이 같은 놈들?ꡓ
외눈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 몸뚱어릴 핥아온다. 내 몸에선 옴두꺼비의 혹이 쏙소그레 돋아나고. 모가지도 없는 붉은 망토자락의 그림자. 나는 뭬라고 연신 되뇌면서. 거리 모롱일 황급히 돌아 버린다.
검은 발자욱 소리가 내 뒤를 밟는다. 망토자락의 일으키는 바람이 차갑게 날 쫓아오면서. 나는 갑자기 고발(告發)당한다.
네거리. 아직도 분수는. 소록소록. 솟고 있는데.
무장(武裝)한 어휘(語彙)들을 거느리고. 계엄령(戒嚴令)이 버티고 섰다. 비둘기의 광장(廣場)엔 주검만 널려 있고. 캐스터네츠를 울리며 지나가는 누더기 곡두의 행렬.
돌연 엄습해 오는 아고라포비아(agoraphobia)!
찢어진 탬벌린 소리가 요란하고. 허탈한 웃음소리들이 한바탕 소나기지고 나면. 수많은 상실(喪失)들이 줄지어 간다. 붉은 생쥐들이 내 발뒤꿈칠 와서 갉작거린다.
나는. 숨이. 가쁘다. 진땀이. 흐른다. 검은. 발자욱. 소리. ꡒ……저건. 대체. 누구냐?ꡓ
나는 간신히 미야(Miya)의 방문을 드윽 연다. ꡒ얼굴이 창백하시네요!ꡓ 미야(Miya)의 방 유리창에 가서 열없이 붙어 서 본다. 세모꼴 하늘엔 바알간 달이 걸려 있고. 달은 문둥이처럼 문드러진 얼굴을 하고 있다. 미야(Miya)는 내 손을 꼬옥 쥐면서. ꡒ무서워요!ꡓ
먼 데서 총소리. 검은 고요를 뚫어 놓고. 흔들어 놓고. 아우성소리 점점 스러져 가고. 장송(葬送)의 코오러스도 들리지 않으면서. 꼭두서니빛으로 타오르는 마그나 카르타(MAGNA CHARTA)
소파에 가서 털썩 주저앉는다. 나는 하 심심해서 달리(Dali)의 그림책이나 펼쳐 보자
`내란(內亂)의 예감(豫感)'
현대문학, 1967. 12
성바오로 병원의…… 조향
성(聖)바오로 병원(病院)의……
성(聖)바오로 병원의 때묻은 우울한 석고상(石膏像)을 왼편으로 흘겨 보면서. 나는 아침마다 펼쳐진 서울의 퀴퀴한 내장(內臟) 속으로 들어가곤 한다. 그래도 화려한 액센트 서콘플렉스(accent circonflexe)를 쓰고 다니는 요족(凹族)들의 계절은 와 있는데. 산상(山上)의 수훈(垂訓)은 일평생(一平生) 식물성(植物性)이다. 허무(虛無)를 한없이 분비(分泌)하는 곤충(昆蟲)들의 미학(美學)이 빌딩문을 드나드는 오후면. 푸른 수액(樹液)이 흐르는 너의 얼굴은 크로포트킨(Kropotkin)의 자연지리학(自然地理學) 교과서(敎科書) 곁에서 무던히는 심심하다. 반사경(反射鏡) 안에 고즈넉히 갇혀 있는 나비는 왕자(王子)의 체온을 지니면서. 아아. 나의 세인트 헬레느. 거무죽죽한 골목엘 들어서니까, 젖가슴을 내밀고 느런히 서 있는 여체(女體)의 톨소들이 일제히 웃어댄다. 성원자력원(聖原子力院) 앞에서 이족수(二足獸)들은 누더기 훈장을 달고. 실직(失職)한 강아지는 거울의 숲 속에서 절망을 잴강잴강 씹으면서. `나는, 나를 매혹하는 이 절망에 의하여 살고 있다.' 파아란 수목의 생리 속에 피어난 야외(野外) 조각전(彫刻展) 곁을, 연두빛 바람이 지나가면. 팅게리가 댕그렁거리고. 나의 연초점(軟焦點)에 와서 잠시 머무는 하아얀 너는 메론의 공화국이다. 도시(都市)는 이젠 사막이다. 붉은 닭세리. 이윽고, 하늘이 내리쉬는 검은 입김. 그 가운데 네온이 켜져 가면. 성당(聖堂)의 종소리. 이 검은 샤마니즘의 거창한 체계(體系). 에로이 에로이 라마 사바크타니. 구나방들의 군화에 짓이겨져 가는 장미랑 비둘기랑 모두모두……. 전갈좌(座)는 나의 성좌(星座)다. 미래(未來)는 시궁창에 쳐박혀서 궂은 비나 맞으면서 있고. 그리하여 지구(地球)의 레이아우트는 검은 빛이다 검은 빛이다.
현대문학, 1968. 8
장미와 수녀의 오브제 조향
장미와 수녀(修女)의 오브제
하얀 아라베스크 짖궂게 기어간 황혼 낙막(落寞)이 완성된 꽃밭엔 수많은 수녀의 오브제.
인생이라는. 그럼. 어둠침침한 골목길에서 잠깐 스치며 지나 보는 너를…….
영구차가 전복한 거리거리마다에서 비둘기들은 검은 가운을 휘감고 푸른 별이 그립다.
네가 서 있는 소용도는 상황(狀況)에 짙은 세피아의 바람이 분다. 까맣게 너는 서 있다.
모의포옹(模擬抱擁)의 세레모니이! Psychose d'influence의 네거리에서.
네가 사뿐 놓고 간 검은 장미꽃. 내 이단(異端)의 자치령(自治領)에 다시 꽃의 이교(異敎)를 떨어뜨려 놓고. 들국화빛으로 하늘만 멀다.
taklamakan nakamalkata 사막의 언덕엔 갈대꽃 갈대꽃밭 위엔 파아란란 이상(李箱)의 달.
달밤이면 청우(靑牛) 타고 아라비아로 가는 노자(老子).
꽃잎으로 첩첩 포개인 우리 기억의 주름주름 그늘에서 먼 훗날 다시 서로의 이름일랑 불러볼 것인가!
패배의 훈장을 달고 예상(豫想)들이 줄지어 걸어가고 하면…….
포르말린 냄새만 자꾸 풍기는 새까만 지구 위에서 어린애들의 허밍 소리만 나고……. 메아리도 없이 하 심심해서 나는 요오요오나 이렇게 하고 있다.
현대문학, 1958. 12
조개 조향
조개&
부제: 박생광씨(朴生光氏) 화(畵) `조개'에 제(題)함
내 귀는 조개껍질인가 바다 소리만 그리워라 ― JEAN COCTEAU, 「귀」
그믐 새까만 밤 하늘에 달 차라리 파아랗게 질리는 꿈이다
어린 양떼처럼 어디로들 몰려 갔느냐 별 별 푸른 별들아 하늘의 목동의 군호 소리도 없는데……
밤 새까매질수록에 하얘만 지는 바다 모랫벌 뱅뱅 꼬인 나선(螺旋) 주류에 앵 우는 바람이 그리워 허울 좋게 소라는 누었다
조개도 불퉁이도 아가미 벌려 밤을 마시고 바닷지렁이 길게 늘어져 있네
한 오리 불어 넘는 로망(ROMAN)의 바람도 없이 바다의 어린 겨레는 칠같은 밤에 차겁다 한사코 외롭다
자꾸만 멀어지는 바다 우짖음 싸아늘히 회도는 향수(鄕愁)야!
유성(流星)이려거든 동쪽으로 흘러라
밤이 한 고개 넘어 소연(騷然)한 새벽엔 굵은 행동의 곡선 다시는 늘이어라 바다는 짙푸른 생명의 영원에로 닫는다 4281년 정월, 진주(晋州) 다방(茶房) `화랑(畵廊)'에서
영남문학, 1948
초야 조향
초야(初夜)
일찌기 오욕(汚辱)을 배우지 못한 박날나무 처녀림(處女林)이래도 좋겠소!
한자옥 들여놓기도 못미쳐 끝까지 수줍고 정결(淨潔)한 훈향(薰香)에 마음 되려 허전할까 저윽이 두려워―.
쌍촉대(燭臺) 뛰는 불빛! 둘리운 병풍(屛風)엔 원앙(鴛鴦) 한 쌍이 미끄럽게 헤이고 속삭이고―.
댕그렁! 밤이 깊어가도 벽만이 그렇게 한결 정다웠던지 신부(新婦)는 순박(純朴)을 안고 그만 면벽(面壁) ― 마치 한 개 백고여상(白膏女像)!
원앙금침(鴛鴦衾枕)이 하마터면 울었을걸 신랑(新郞)의 서투른 손이나마 고즈넉이 쓰다듬었기에―.
매일신보, 1941. 4
크세나키스 셈본 조향
크세나키스 셈본
불 붙는 구레나룻. 직선은 구우텐베르크다. 하아얀 월요일. 혹독한 계절에. `모든 동맥의 절단면에서 검은 아스팔트의 피를 떨어뜨리는 도시(都市)' 아자(亞字) 창(窓). 백 밀러. 까아만. 눈동자가. 안으로. 에메랄드의 층계. 내려 가면. 메스카린의 환각(幻覺)이. 가시내 냄새도. 어휘는 낙엽인데. 붉은 닥세리. 찢어진 밤의 주름 사이에 켜지는 육체들. 크세나키스의 셈본. 회회청 하늘엔. 총탄 자국이. 글쎄. 난만한 회색이다. 칠십(七十) 년대. 그리고. 동요(童謠)만 피어 나는데. 동빙고동은 도둑의 마을 동빙고동은 도둑의 마을 안개. 그리고. 검다.
신동아, 1970. 3
태백산맥 조향
태백산맥(太白山脈)
날짐승 길짐승 박달나무 산딸기 더덕순 도라지에 풀잎 넌출 이리저리 얽혀서, 시냇물 소리 졸졸 이슬도 하무뭇이 생명의 풍성한 씸포니
웃음도 울음도 가난함도 외로움도 모주리 겨레와 함께 겪어 온 세월에, 별처럼 아른아른 추억의 조각 조각들, 돌아볼쑤록 꿈인 양 머언 날이 있어라
날개 활활 치려무나 독수리! 너 그리는 너그러운 창공의 원(圓)! 그 써―클 밑에 아슴히 구비쳐 솟은 머언 산맥, 남으로 남으로만 벋어 나린 산줄기야!
초록 눈부시게 부풀어 오르는 계절 돌아오면, 너의 완연한 모습은 영원을 노래하는 줄기찬 리듬! 활활 풍기는 산정기 박하냄새 짐승의 발자국 냄새 얽혀진 너의 야성의 생리―그 송가 높이 부르렴!
태곳적 이곳에 첨으로 빗방울 떨어져 내려 한 방울은 동으로 또 한 방울은 서쪽 사태를 굴러 내려, 아! 여기 위대한 분수령(分水嶺)― 너는 조선(朝鮮)의 등성이뼈로 충성의 역사를 살아 왔고
다시 그 옛날 아득한 그 무렵에, 이 나라의 젊은 넋, 청춘의 군라상(群裸像)이 츨ㄱ잎 뜯어 몸 가리우고 굵다란 로망(ROMAN)의 산허릴 넘던 날, 우렁찬 그 민족의 코러스에 동해도 우쭐거려 퍼더기었다, 울릉도는 머언 하늘 갓에 사뭇 흐려만 보였다
달 밝은 밤, 별 송송 푸른 밤, 칠백리 구비구비 돌아 흐르는 낙동강 잔물결 위에, 골작마다 깃들인 흰 겨레의 평화론 숨소릴 조심조심 새겨 왔으나
아 언제부터 불행과 슬픔은 너의 옷자락을 핥기로 했으며 그 어느 원한의 때로부터 이 강토의 운명은 너의 허리 춤에다 사슬을 감았던가?
오늘 다시 불길한 일식(日蝕)의 그늘에서 귀신처럼 히히! 웃으며 너의 순결을 짓밟고 영원해야 할 연륜(年輪)에다 붉은 도낏날을 넣는 반역의 형제들 있어, 큼을 섬기는 슬픈 습성이 인민의 앞길에다 암담을 수놓는 이날
태백아! 모진 짐승인 양 굵게 사납게 몸부림 쳐라. 엄한 부성(父性)처럼 추상같이 꾸짖어라! 그리하여 천년 묵은 침묵을 찢고 화산 그러하듯이 인젠 진정 터져라!
죽순, 1947. 10
파아란 항해 조향
파아란 항해(航海)
가뱝게 꾸민 등의자는 남쪽을 향하여 앉았다. 앞에는 바다가 신문지처럼 깔려 있고…… 바다는 원색판 그라비유어인 양 몹시 기하학적인 각선(脚線)을 가진 테―불 위에는 하얀 한 나프킨이 파닥이고 곁에는 글쎄……글자를 잃어버린 순수한 시집(詩集)이 바닷바람을 반긴다.
꽃밭에는 인노브제크티비테*의 데사잉! 당신의 젖가슴엔 씨크라멘의 훈장이 격이세요.
석고빛 층층대를 재빨리 돌아 올라 가면 거기 양관의 아―취타잎 유리창 여기선 푸른 해도(海圖)가 한 핀트로만 모여 든다.
IRIS OUT! 렌즈에는 해조(海鳥)의 휘규어!
―― 그대는 인민의 항구가 그립지 않습니까? ―― 새로운 로맨티즘의 영토로…… 그렇죠? 수평선 위에 넘실거리는 새 전설의 곡선! 나는 산술책을 팽개치고 백마포(白麻布) 양복 저고릴 입는다. 나는 파아란 항해에 취한다. 나는 수부처럼 외롭구나.
19××년 향그런 무역풍 불어 오는 밝은 계절의 그 어느날 그대는 여기서 내 사상의 화석을 발견하시려는 건가?
나는 언제나 조선이 사뭇 그리울게니라.
ADIEU!
*인노브제크티비테: 비대상성(非對象性)
죽순, 194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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