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돌에
그늘이 차고,
따로 몰리는
소소리바람.
앞서거니 하여
꼬리 치날리어 세우고,
종종 다리 까칠한
산(山)새 걸음걸이.
여울 지어
수척한 흰 물살,
갈갈이
손가락 펴고.
멎은 듯
새삼 듣는 빗낱¹
붉은 잎 잎
소란히 밟고 간다
1) 원문 : '새삼 돋는 비ㅅ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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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인상화
수박냄새 품어 오는
첫여름 저녁때.....
먼 해안 쪽
길옆 나무에 늘어 슨
전등.전등.
헤엄쳐 나온듯이 깜박어리고 빛나노나.
침울하게 울려 오는
축향의 기적 소리... 기적소리...
이국정조로 퍼득이는
세관의 깃 발.깃 발.
세멘트 깐 인도측으로 사폿사폿옮기는
하이얀 양장의 점경!
그는 흘러가는 실심한 풍경이여니..
부질없이랑쥬 껍질 씨비는 시름....
아아, 에시리. 황
그대는 상해로가는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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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말아, 다락 같은 말아,
너는 점잔도 하다마는
너는 왜 그리 슬퍼 뵈니?
말아, 사람 편인 말아,
검정콩 푸렁콩을 주마.
이 말은 누가 난 줄도 모르고
밤이면 먼 데 달을 보며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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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동(九城洞)
골작에는 흔히
유성(流星)이 묻힌다.
황혼에
누뤼가 소란히 쌓이기도 하고,
꽃도
귀양 사는 곳,
절터 드랬는데
바람도 모이지 않고
산 그림자 설핏하면
사슴이 일어나 등을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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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류동玉流洞
골에 하늘이
따로 트이고,
瀑布 소리 하잔히
봄우뢰를 울다.
날가지 겹겹히
모란꽃닙 포기이는듯.
자위 돌아 사폿 질ㅅ듯
위태로히 솟은 봉오리들.
골이 속 속 접히어 들어
이내(晴嵐)가 새포롬 서그러거리는 숫도림.
꽃가루 묻힌양 날러올라
나래 떠는 해.
보라빛 해ㅅ살이
幅지어 빗겨 걸치이매,
기슭에 藥草들의
소란한 呼吸 !
들새도 날러들지 않고
神秘가 한끗 저자 선 한낮.
물도 젖여지지 않어
흰돌 우에 따로 구르고,
닥어 스미는 향기에
길초마다 옷깃이 매워라.
귀또리도
흠식 한양
옴짓
아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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紅椿(홍춘)
椿나무 꽃 피뱉은 듯 붉게 타고
더딘 봄날 반은 기울어
물방아 시름없이 돌아간다.
어린아이들 제춤에 뜻없는 노래를 부르고
솜병아리 양지쪽에 모이를 가리고 있다.
아지랑이 조름조는 마을길에 고달펴
아름 아름 알어질 일도 몰라서
여윈 볼만 만지고 돌아 오노니.
실린 곳:정지용전집 1 시/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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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에 쓴 글
나비가 한 마리 날러 들어온 양하고
이 종이ㅅ장에 불빛을 돌려대 보시압.
제대로 한동안 파다거리오리다.
── 대수롭지도 않은 산 목숨과도 같이.
그러나 당신의 열적은 오라범 하나가
먼 데 가까운 데 가운데 불을 헤이며 헤이며
찬비에 함추름 휘적시고 왔오.
── 서럽지도 않은 이야기와도 같이.
누나, 검은 이밤이 다 희도록
참한 뮤─ 쓰처럼 주무시압.
해발 이천 피이트 산봉우리 위에서
이젠 바람이 나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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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
장미꽃처럼 곱게 피어 가는 화로에 숯불,
입춘 때 밤은 마른 풀 사르는 냄새가 난다.
한 겨울 지난 석류열매를 쪼기어
홍보석 같은 알을 한 알 두 알 맛보노니,
투명한 옛 생각, 새론 시름의 무지개여,
금붕어처럼 어린 녀릿녀릿한 느낌이여.
이 열매는 지난 해 시월 상ㅅ달, 우리 둘의
조그마한 이야기가 비롯될 때 익은 것이어니.
작은 아씨야, 가녀린 동무야, 남몰래 깃들인
네 가슴에 조름 조는 옥토끼가 한 쌍.
옛 못 속에 헤엄치는 흰 고기의 손가락, 손가락,
외롭게 가볍게 스스로 떠는 은실, 은실,
아아 석류알을 알알이 비추어 보며
신라천년의 푸른 하늘을 꿈꾸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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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면
손바닥 울리는 소리
곱드랗게 건너간다
그 뒤로 흰게우가 미끄러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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湖水(호수) 1
얼골 하나 야
손바닥 둘 로
폭 가리지 만,
보고 싶은 마음
湖水(호수) 만 하니
눈 감을 밖에
시집 : 정지용전집 1 시/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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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너머 저쪽
산너머 저쪽에는
누가 사나?
뻐꾸기 영우 에서
한나절 울음 운다.
산너머 저쪽 에는
누가 사나?
철나무 치는 소리만
서로맞어 쩌르렁!
산너머 저쪽에는
누가 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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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햇살
불 피어오르듯하는 술
한숨에 키여도 아아 배고파라.
수저븐 듯 놓인 유리컵
바쟉바쟉 씹는 대로 배고프리.
네 눈은 고만스런 혹 단초
네 입술은 서운한 가을철 수박 한점.
빨어도 빨어도 배고프리.
술집 창문에 붉은 저녁 햇살
연연하게 탄다, 아아 배고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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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琉璃窓) 1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정지용시집>, 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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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 2
내어다보니
아주 캄캄한 밤,
어험스런 뜰 앞 잣나무가 자꾸 커 올라간다.
돌아서서 자리로 갔다.
나는 목이 마르다.
또, 가까이 가
유리를 입으로 쪼다.
아아, 항 안에 든 금붕어처럼 갑갑하다.
별도 없다, 물도 없다, 쉬파람 부는 밤.
소증기선처럼 흔들리는 창
투명한 보랏빛 유리알 아,
이 알몸을 끄집어내라, 때려라, 부릇내라.
나는 열이 오른다.
뺨은 차라리 연정스레이
유리에 부빈다, 차디 찬 입맞춤을 마신다.
쓰라리, 알연히, 그싯는 음향―
머언 꽃!
도회에서 고운 화재가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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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반
내 무엇이라 이름하리 그를?
나의 영혼 안의 고문 불,
공손한 이마에 비추는 달,
나의 눈보다 값진 이,
바다에서 솟아 올라 나래 떠는 금성,
쪽빛 하늘에 흰꽃을 달은 고산 식물,
나의 가지에 머물지 않고,
나의 나라에서도 멀다.
홀로 어여삐 스스로 한가로워 항상 머언 이,
나는 사랑을 모르노라.오로지 수그릴 뿐,
때없이 가슴에 두 손이 여미어지며
굽이굽이 돌아 나간 시름의 황혼 길 위
나 바다 이편에 남긴
그의 반임을 고이 지니고 걷노라.
** <시문학> 3호 19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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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똥
별똥 떨어진 곳,
마음에 두었다
다음날 가보려,
벼르다 벼르다
인젠 다 자랐오.
별똥은 본 적이 없다
난 아직 다 자라지 않았다
별똥 떨어진 곳에 가보고 싶다
내 눈에도 보였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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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간 기관차
으으릿 느으릿 한눈파는 겨를에
사랑이 수이 알어질가도 싶구나.
어린아이야,달려가자.
두뺨에 피여오른 어여쁜 불이
일즉 꺼져 버리면 어찌 하자니?
줄 달음질 쳐 가자.
바람은 휘잉. 휘잉.
만틀 자락에 몸이 떠오를 듯.
눈보라는 풀. 풀.
붕어새끼 꾀여내는 모이 같다.
어린아이야, 아무것도 모르는
새빨간 기관차처럼 달려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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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바람.
바람.
바람.
늬는 내 귀가 좋으냐?
늬는 내 코가 좋으냐?
늬는 내 손이 좋으냐?
내사 왼통 빨개졌네.
내사 아무치도 않다.
호호 칩어라 구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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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에 맞는 이
당신은 내맘에 꼭 맞는이.
잘난 남보다 조그마치만
어리둥절 어리석은 척
옛사람 처럼 사람 좋게 웃어좀 보시요.
이리좀 돌고 저리좀 돌아 보시요.
코 쥐고 뺑뺑이 치다 절 한 번만 합쇼.
호.호.호.호. 내맘에 꼭 맞는이.
큰말 타신 당신이
쌍무지개 홍예문 틀어세운 벌로
내달리시면
나는 산날맹이 잔디밭에 앉어
기를 부르지요.
[앞으로----가.요.]
[뒤로--가.요.]
키는 후리후리. 어깨는 산고개 같어요.
호.호.호.호. 내 맘은 맞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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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 설
문 열자 선뚝! 뚝 둣 둣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雨水節) 들어
바로 초하로 아침,
새삼스레 눈이 덮인 뫼뿌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 하다.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기롭워라.
옹송거리고 살어난 양이
아아 꿈 같기에 설어라.
미나리 파릇한 새순 돋고
옴짓 아니기던 고기입이 오믈거리는,
꽃 피기전 철 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칩고 싶어라.
정지용시선<향수>.깊은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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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프랑스
옮겨다 심은 종려(棕櫚)나무 밑에
빗두루 선 장명등
카페 프랑스에 가자.
이놈은 루바시카
또 한 놈은 보헤미안 넥타이
삣적 마른 놈이 앞장을 섰다.
밤비는 뱀눈처럼 가는데
페이브먼트에 흐늘기는 불빛
카페 프랑스에 가자.
이놈의 머리는 빗두른 능금
또 한놈의 심장은 벌레먹은 장미
제비처럼 젖은 놈이 뛰어간다.
* * *
“오오 페롯(鸚鵡)서방! 굿이브닝!”
“굿이브닝!”(이 친구 어떠하시오?)
鬱金香 아가씨는 이 밤에도
更紗 커-튼 밑에서 조시는구료!
나는 子爵의 아들도 아모 것도 아니란다.
남달리 손이 희어서 슬프구나!
나는 나라도 집도 없단다.
대리석 테이블에 닿는 내 뺨이 슬프구나!
오오 異國種강아지야
내 발을 빨아다오
내 발을 빨아다오
<1926년, 학조>
황해문화, 2000년 여름호,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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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수(鄕愁)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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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돌
조약돌 도글도글...
그는 나의 혼의 조각 이러뇨.
앓은 페에로의 설움과
첫길에 고달픈
청제비의 푸념겨운 지줄댐과,
꾀집어 아즉 붉어 오르는
피에 맺혀,
비 날리는 이국 거리를
탄식하며 헤매노나,
조약돌 도글도글....
그는 나의 혼의 조각 이러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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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1
오.오.오.오.오. 소리치며 달려가니,
오.오.오.오.오. 연달아서 몰아 온다.
간밤에 잠 살포시
머언 뇌성이 울더니,
오늘 아침 바다는
포도빛으로 부풀어졌다.
철썩, 처얼썩, 철썩, 처얼썩, 철썩
제비 날아들 듯 물결 사이사이로 춤을 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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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2
한백년 진흙 속에
숨었다 나온 듯이,
게처럼 옆으로
기어가 보노니,
머언 푸른 하늘 알로
가이없는 모래밭.
*정지용시집, 시문학사,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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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3
외로운 마음이
한종일 두고
바다를 불러---
바다 우로
밤이
걸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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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4
후주근한 물결소리 등에 지고 홀로 돌아가노니
어데선지 그누구 쓰러져 울음 우는듯한 기척,
돌아서서 보니 먼 등대가 반짝 반짝 깜박이고
갈매기떼 끼루룩 비를 부르며 날어간다.
울음 우는 이는 등대도 아니고 갈매기도 아니고
어덴지 홀로 떨어진 이름 모를 서러움이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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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7
바다는
푸르오,
모래는
희오, 희오,
수평선 우에
살포-시 내려앉는
정오 하늘,
한 한가운데 돌아가는 태양,
내 영혼도
이제
고요히 고요히 눈물겨운 백금 팽이를 돌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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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꽁이 알을 품고
뻐꾹이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고향 진히지 않고
머언 港口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끝에 홀로 오르니
한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나고
메마른 입술이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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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기차
우리들의 기차는 아지랑이 남실거리는 섬나라 봄날 온 하루를
익살스런 마도로스 파이프를 피우며 간 단 다.
우리들의 기차는 느으릿 느으릿 유월 소 걸어가듯 걸어 간 단 다.
우리들의 기차는 노오란 배추꽃 비탈밭 새로
헐레벌떡거리며 지나 간 단 다.
나는 언제든지 슬프기는 슬프나마 마음만은 가벼워
나는 차창에 기댄 대로 휘파람이나 날리자.
먼 데 산이 군마처럼 뛰어오고 가까운 데 수풀이 바람처럼 불려 가고
유리판을 펼친 듯, 뇌호내해 퍼언한 물 물. 물. 물.
손가락을 담그면 포도빛이 들으렷다.
입술에 적시면 탄산수처럼 끓으렷다.
복스런 돛폭에 바람을 안고 뭇 배가 팽이처럼 밀려가다 간,
나비가 되어 날아간다.
나는 차창에 기댄 대로 옥토끼처럼 고마운 잠이나 들자.
청만틀 깃자락에 마담 R의 고달픈 뺨이 불그레 피었다, 고운 석탄불처럼
이글거린다. 당치도 않은 어린아이 잠재기 노래를 부르심은 무슨 뜻이뇨?
잠들어라.
가여운 내 아들아.
잠들어라.
나는 아들이 아닌 것을, 웃수염 자리 잡혀가는, 어린 아들이 버얼써 아닌 것을.
나는 유리쪽에 갑갑한 입김을 비추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름이나 그시며 가 자.
나는 느긋느긋한 가슴을 밀감쪽으로나 씻어 내리자.
대수풀 울타리마다 요염한 관능과 같은 홍춘이 피맺혀 있다.
마당마다 솜병아리 털이 폭신폭신하고,
지붕마다 연기도 아니 뵈는 햇볕이 타고 있다.
오오, 개인 날씨야, 사랑과 같은 어질머리야, 어질머리야.
청만틀 깃자락에 마담 R의 가여운 입술이 여태껏 떨고 있다.
누나다운 입술을 오늘이야 실컷 절하며 갚노라.
나는 언제든지 슬프기는 슬프나마,
오오, 나는 차보다 더 날아가려지는 아니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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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마차(幌馬車)
이제 마악 돌아나가는 곳은 時計집 모롱이, 낮에는 처마끝에 달어맨
종달새란 놈이 都會바람에 나이를 먹어 조금 연기 끼인 듯한 소리로 사람
흘러나려가는 쪽으로 그저 지줄거립데다.
그 고달픈 듯이 깜박깜박 졸고 있는 모양이-가여운 잠의 한점이랄지요-
부칠 데 없는 내맘이 떠올릅니다. 쓰다듬어 주고 싶은, 쓰다듬을 받고 싶은
내 마음이올시다. 가엾은 내 그림자는 검은 喪服처럼 지향없이 흘러나려갑니다.
촉촉히 젖은 리본 떨어진 浪漫風의 帽子 밑에는 金붕어의 奔流와도 같은
밤경치가 흘러나려갑니다. 길옆에 늘어슨 어린 銀杏나무들은 異國斥候兵의
걸음세로 조용조용히 흘러나려갑니다.
슬픈 銀眼鏡이 흐릿하게
밤비는 옆으로 무지개를 그린다.
이따금 지나가는 늦인 電車가 끼이익 돌라나가는 소리에 내 조고만 魂이
놀란 듯이 파다거리나이다. 가고 싶어 따뜻한 화로갛을 찾어가고 싶어.
좋아하는 코-란 經을 읽으면서 南京콩이나 까먹고 싶어, 그러나 나는 찾어
돌아갈 데가 있을나구요?
네거리 모퉁이에 씩 씩 뽑아 올라간 붉은 벽돌집 塔에서는 거만스러운
12시가 避雷針에게 위엄있는 손까락을 치여들었소. 이제야 내 목아지가
쭐 삣떨어질 듯도 하구료. 솔닢새 갚은 모양새를 하고 걸어가는 나를
높다란 데서 굽어보는 것은 아주 재미있을 게지요.
마음놓고 술술 소변이라도 볼까요.
헬멧 쓴 夜警巡査가 필일림처럼 쫓아오겠지요!
네거리 모통이 붉은 담벼락이 훔씬 젖었소. 슬픈 都會의 뺨이 젖었소.
마음은 열없이 사랑의 落書를 하고 있소.
홀로 글성글성 눈물 짖고 있는 것은 가엾은 소-니야의 신세를 비추는
?안 電燈의 눈알이외다. 우리들의 그 전날밤은 이다지도 슬픈지요.
이다지도 외로운지요. 그러면 여기서 두 손을 가슴에 념이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릿가?
길이 아조 질어터져서 뱀눈알 같은 것이 반쟉 반쟉어리고 있오.
그두가 어찌나 크던동 거러가면서 졸님이 오십니다.
진흙에 ? 붙어 버릴 듯하오. 철없이 그리워 둥그스레한 당신의 어깨가 그리워.
거기에 내 머리를 대이면 언제든지 머언 따뜻한 바다 울음이 들려오더니......
......아아, 아모리 기다려도 못오실 니를 ......
기다려도 못 오실 니 때문에 졸리운 마음은 幌馬車를 부르노니,
회파람처럼 불려오는 幌馬車를 부르노니, 은으로 만들은 슬픔을 실은 원앙새
털 깔은 幌馬車, 꼬옥 당신처럼 참한 幌馬車, 찰 찰찰 幌馬車를 기다리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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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鄭芝溶)시인】
1903년 충청북도 옥천 출생
1918년 휘문 고보 재학 중 박팔양 등과 함께 동인지 『요람』 발간
1929년 교토 도시샤(同志社) 대학 영문과 졸업
1930년 문학 동인지 『시문학』 동인
1933년 『가톨릭 청년』 편집 고문, 문학 친목 단체 『구인회』 결성
1939년 『문장』지 추천 위원으로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김종한,
이한직, 박남수 추천
1945년 이화 여자 대학교 교수
1946년 조선 문학가 동맹 중앙 집행 위원
1950년 납북
시집 : 『정지용 시집』(1935), 『백록담』(1941), 『지용 시선』(1946),
『정지용 전집』(1988)
*절제된 언어의 구사는 정지용의 시에서 일관되는 특성이지만
그의 시세계가 그리는 궤적은 몇 단계의 변모 과정을 보인다.
정지용 시의 전개 과정을 크게 세 단계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첫째 1923년경부터 1933년경까지의 서정적이며 감각적인 시,
둘째, 1933년 [불사조] 이후 1935년경까지의 카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적인 시,
셋째,[옥류동](1937), [구성동](1928) 이후 1941년에 이르는 동양적인
정신의 시 등이 그것이다.
특히 주목을 요하는 것은 정지용의 종교시가 [카톨릭 청년](1933)의
창간과 관련되어 있으며 이 지면에 대부분 그의 종교시가 발표되었다는 점이다.
초기의 감각적인 시와 후기의 고전적인 시들의 교량적인 역할을
종교시가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지용의 신앙시는 1934년 [카톨릭 청년]에
발표된 [다른 하늘], [또 하나의 다른 태양] 이후 자취를 감추며
4년여의 침묵 뒤에 [옥류동], [비로봉], [구성동] 등이 발표된다.
이를 카톨릭 신앙의 전면적인 포기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겠지만 그가
1930년대 후반에 나름대로 각고의 방향 모색을 시도했으며, [옥류동],
[백록담] 등에서 그 실마리를 찾으려 했고 1939년 [장수산], [백록담]
등에서는 한층 더 정신주의에의 침잠을 시도하면서 현실의 고통스러움을
견인의 정신으로 극복하고자 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
정지용의 대표작으로서 국민들에게 널리 애송되는 작품 한 편을 들라고 한다면,
우리는 [향수]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지용의 [향수]를 노래하는 사람 모두가
언제나 마음의 고향으로 되돌아감을 느낀다.
정지용은 [향수]에서 독특한 감각적 표현을 율격 언어로 응축시켜 한국인들이
마음의 고향에 도달하는 심정적 통로를 열어 보였다.
[향수]가 그려내는 고향의 정경은 누구에게나 있었음직한 추억이며 따라서
강력한 정서적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정서적 호소력에 힘을 더하는 것은
뛰어난 감각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금빛 게으른 울음'이나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전설의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에서 보이는 언어적 환기 효과는 당시로서는 특별한 예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 표현한 [향수]는
뛰어난 감각적 표현으로 온 국민의 사랑 받아
첫째 연의 고향에 대한 공간적 환기와
둘째 연의 전형적인 농가의 풍경에서 제시되는 육친애의 그리움에 이어
셋째 연에서는 화자의 구체적인 성장 경험이 표현된다.
흙에서 자란 마음과 파란 하늘 사이의 화자의 행동 모습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가 생겨나기 이전의 것으로서 유년 시절의 낙원에 대한 믿음을 연상시킨다.
그 정경은 어린 시절의 단순한 반추가 아니라 어린 시절의 이상과 낙원이
괴리되어 떠도는 현재의 상황을 시사한다. 넷째 연은 다시 구체적인 삶의
정경으로 돌아가고 다섯째 연은 계절의 순환과 더불어 포착된 고향집이 그려진다.
고향집이 내포하는 평화롭고 정겨운 감각으로 인해 가난의 어려움마저 넘어서고
있다.
[향수]는 20년대 초반의 젊은이가 고향을 떠나와 고향을 그리는 젊음이 용해되어
있으며, 오늘의 우리들 또한 상실한 낙원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생의 근원에 대한
동경을 담고 있다. 농경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그리고 이를 넘어 정보화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의 한국인들에게 [향수]는 생의 근원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일깨워 준다
- 최동호 / 1948년생, 시인, 고려대 국문과 교수
정지용 생가 / 정지용 문학관
1910년대부터 50년대까지 현대시가 어떻게 변화.발전했는지 한 눈에 볼 수 있으며,
'정지용 시집', '백록담', '지용시선', '문학독본', '산문' 등
정지용 시인의 시.산문지 원본이 전시되어 있습니
줄겁고 행복한시간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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