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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촨(西川)과 구마(古馬)의 두 지류
김 금용(시인)
1976년 문화혁명이 끝나고 등소평의 경제개방이 이뤄지면서 중국시단도 영락없이 한바탕 새 물결에 휩쓸렸다. 종전의 정치찬양 일색에서 문혁文革 중 노동개조소로 내몰렸던 아이칭艾靑같은 귀거래파歸去來波시인들이 대거 도시로 돌아오면서 진정한 개인의 사고와 감정을 표현하는 시풍이 꽃을 피우기 시작, 80년대엔 몽롱시파朦朧詩波가 시단의 중심이 되었다. 즉, <4.5천안문>시가운동에 의해 지하로부터 지상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이뤄졌던 것이다. 더욱이 1978년 12월 23일 민간 간행물로는 처음으로 《오늘(今天)》이 등장하면서 문인들의 통로가 열려 이로부터 막 부상한 몽롱시파의 대표시인인 北島베이다오, 多多둬둬, 顧城꾸청, 舒婷수팅의 시들이 빛을 보기 시작, 많은 독자층을 얻어냈다. 그러나 얼마 뒤 《오늘今天》도 폐간되고 베이다오는 망명 중이라 중국내 활동이 금지상태이고 꾸청은 아내를 사살한 후 자살을 하면서 몽롱시파는 이제 몇몇에 그치고 있다. 오히려 지금은 이들의 터전 위에서 ‘신생대 시인’들과 ‘포스트모더니즘 시인’들이 등장, 각가지 외국사조를 받아들여 몽롱시파 시인들에게 패스를 외치며 나름의 개성 있는 시풍을 이뤄내고 있다. 그런 까닭에 중국시단도 지금은 우리나라처럼 시의 춘추전국시대에 휘말린 느낌이다. 특히나 2008년 올림픽을 치루면서 더더욱 그 현상은 고조되어 최근엔 조시組詩라는 새 형태가 도입, 시전문지마다 발표가 쏟아지고 있다. 조시組詩는 그러나 내용이나 시 경향상의 차이가 아니라 형태상의 차이일 뿐이다. 즉, 짧은 단시를 여럿 합친 연시 같은 시 형태로 長詩와는 구분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보이는 시 형태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엔 한 주제 안에서 몇 개의 소재를 선택, 그리 길지 않으나, 중국의 조시는 5페이지 이상 되는 시가 많다. 또한 일상생활에 중점을 두고 쓰는 현실주의 시가 많이 나오면서 산문시도 쉽게 보게 된다. 그런가 하면, 서구화 영향을 받은 시풍에 반론을 내세우며 중국전통시를 가미한 새로운 신시가 최근 주목을 끌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젊은 유망주 시인들이 바로 시촨(西川)이나 구마(古馬)같은 시인들이다. 이 두 시인은 모두 60년 대 출생한 30대 젊은이들이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중국의 젊은이들이 시만을 쓰면서 살아간다는 건 참 쉽지 않은 결단을 요구한다. 물밀듯이 들이닥친 시장경제는 젊은이들에게 특히 상당한 유혹과 압박을 주는 게 현실인 만큼 상당수 시인들은 이미 등을 돌려 사회로 나갔다. 그만큼 이들 두 시인의 각오와 의지, 그들에게 거는 독자들의 기대가 남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시촨(西川)의 시는 관용과 개방, 산문화 경향을 갖고 있다. 내용적으론 일상생활을 낯설게 하거나 불확실한 것으로 만들고, 세세하게 시대를 재단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우화 형식의 이야기와 잠언식 어귀는 순수고전에 대한 회귀와 심미적 자주의 정신과 창작의 이념을 형성하고 있다. 반면 구마(古馬)의 시에선 칭하이성과 간쑤성甘肅省이라는 서역 밖 특수한 환경 아래서 성장하고 지금까지 거주하면서 얻어낸 그 만의 독특한 빛깔과 냄새가 있다. 마치 사막 아래 모래밭을 뒹굴며 사는 회색표범의 공격성과 낙타의 인내와 양떼의 회귀본능의 향수까지 느껴진다. 그의 시엔 중국 <시경>으로부터 이어져 온 전통 동양시가의 정수가 뿌리 깊게 박혀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한 답습이나 예찬이 아닌, 새로운 신시 형식의 도입을 통한 탈바꿈을 모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나 중국내에서도 제일 문명 발전이 더디고 가난한 서역의 신장新藏 주민들의 삶과 애환을,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가축이며 자연과 합일시키며 순환시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 점이 이 시인의 시가 그리도 많은 독자를 확보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이에 이 젊은 중국의 유망주 두 시인의 대표적인 시 두 편과 시평을 각기 옮겨 소개한다.
일상의 포기에서 나오는 시촨의 신시
시촨은 1963년 출생으로 본명은 류쥔刘军이다. 1981년 베이징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시단에 발을 들여놓았다. 베이징대 54문학사에 있을 때 시촨은 시인 하이즈海子와 뤄이허骆一禾와 함께 셋이서 베이징대의“삼검객”이라 불리웠다. 85년 졸업 후, 시촨은 신화사 소속 《환구环球》잡지에 근무하였으며, 1988년 친구들과 함께 “지식분자 시쓰기”라는 개념적 시잡지 《경향倾向》을 창간하였다. 1991년에는 민간잡지 《현대한시现代汉诗》의 편집을 맡아보며 출판에도 관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다양한 문화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1993년 시촨은 신화사에서 중앙미술학원의 교수로 자리를 옮겨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다. 1992년 여러 간행물에 연속하여 장시「존경을 표하며 致敬」을 발표한 것이 작품 활동의 중대한 전환이 되었다. 1995년, 시촨은 자살시인인 하이즈海子를 기념하여 『하이즈시海子的诗』를 편집, 정리하여 2009년 3월에 재출판했다. 2006년에는「존경을 표하며 致敬」이래 시작의 성과를 반영한 시문록詩文錄 『심천 深淺』을 출판하였다. 그의 시집으로는『은밀한회합 隐秘的汇合』(1997)、『허구의족보 虚构的家谱』(1997), 『대체로 그러하다 大意如此》(1997),『시촨의시 西川的诗』(1999)가 있으며 산문집으로 『복면인에게 말하게 하라 讓蒙面人說話』『물자국 水漬』(1997), 평론집에 『외국문학 명작독본 시집편 外國文學名作导讀本.詩歌卷』(2001), 번역 작품으로 『보르게스 회고(Jorges Louis Borges, 1899-1986, 알젠틴 시인, 소설가, 번역가)』, 『밀로스사전(Czeslow Milosz, 1980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리투아니아의 시인)』 등이 있다。1994년에 ‘현대한시漢詩상’, 2001년에 ‘루신魯迅문학상’과 1997년 ‘UNESCO장학금’, 2002년 ‘미국 브리만 기금회’의 상금 등을 받았다.
일부 시촨의 작품세계에 대해 보르게스 Borges 등 세계 대시인들의 시풍을 이어받았다고 하지만, 그는 국제화의 배경 아래 중국의 시인은 어떠한 시를 써야 하는가? 이 문제에 골몰하는 시인이다. 그만큼 중국적인 시를 쓰고 싶어하는 시인이다. 어쩜 이런 고민은 현 중국에 머무는 작가, 화가, 영화감독들이 모두 겪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 그만큼 더 시촨은 순수지향이며 더 현실화된 소박한 심리를 갖고 있다. 시촨은 인텔리 시인이라고도 불린다. 나날이 물질화, 세속화 되어가는 현실 속에서 “순수한 시정”을 갖고 생명, 영혼, 정신에 주력, 그것들을 정화하기 위해 생명의 의의와 참뜻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시촨의 시에서 우리는 단번에 펼쳐지는 무궁한 상상력, 감수성, 창조력으로 축적시킨 심령의 고지를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시쓰기는 때론 일상이 만들어내는 현상으로부터의 “포기”같다. 자연과 사랑, 도덕 등의 전통주제가 아닌 것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고 있다. 순간의 포착을 통한 우화성과 시인의 풍부한 관용과 자비와 연민의 종교적 심정이 나타나는가하면 우주본체에 대한 시인의 심오한 탐색도 보인다. 그의 대표적인 최근의 시 두 편을 보자.
열두 마리의 백조
찬란하게 호수위로 날아드는 열두 마리 백조는 그림자가 없습니다
서로 의지하며 사랑하는 열두 마리의 백조는 가까이 가기가 어렵습니다
열두 마리의 백조가 열두 개의 악기가 되어 노래를 할 때
그들이 백동전 같은 날개를 펴고 춤을 출 때 공기는 그들의 큰 몸을 떠받쳐 줍니다
한 시대는 한쪽으로 물러나고 그의 비웃음도 함께 사라집니다
생각해 보면, 나와 열두 마리의 백조는 한 도시에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저 호수 위 찬란하게 빛나는 열두 마리의 백조는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물오리들 가운데에서 그들은 순결한 야성을 지켜나갑니다
물은 그들의 밭입니다 물거품은 그들의 보석입니다
우리가 꿈에 열두 마리의 백조를 보면 그들의 오만한 긴 목은 물속으로 굽히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들은 가라앉지 않는 걸까요 물갈퀴 때문인가요? 깃털의 관상만 갖고 그들은 계속 잃어버린 호신부를 찾고있는 걸까요
호수는 덧없이 넓고, 하늘은 높고 멀으니: 시는 덤이라 할 밖에요
난 아흔아홉 마리 백조가 정말 보고 싶습니다 달빛아래 탄생하는 !
반드시 백조가 되어야만 그들 몸 뒤를 따라서 별자리를 보고 운행할 수 있을 겁니다
혹은 연꽃과 물박나무 잎새로부터 깜깜한 밤을 빨아들일 수 있을 겁니다
十二只天鹅 那闪耀于湖面的十二只天鹅 /没有阴影 /那相互依恋的十二只天鹅/难于接近// 十二只天鹅——十二件乐器—— /当它们鸣叫 //当它们挥舞银子般的翅膀 /空气将它们庞大的身躯 托举 //一个时代退避一旁,连同它的/讥诮//想一想,我与十二只天鹅/生活在同一座城市!// 那闪耀于湖面的十二只天鹅/使人肉跳心惊//在水鸭子中间,它们保持着/纯洁的兽性 //水是它们的田亩/ 泡沫是它们的宝石//一旦我们梦见那十二只天鹅/它们傲慢的颈项便向水中弯曲//是什么使它们免于下沉?/是脚蹼吗?//羽毛的占相 /它们一次次找回丢失的护身符//湖水茫茫,天空高远:诗歌 是多余的//我多想看到九十九只天鹅/在月光里诞生!//必须化作一只天鹅,才能尾随在/ 它们身后—— /靠星座导航//或者从荷花与水葫芦的叶子上/将黑夜吸吮// 윗 시는 일단 형식면에서도 종전의 중국시와는 다르다. “열두 마리의 백조”는 왠지 이상의 시 「오감도」를 떠올리게 한다. 두 행이 하나의 연으로 단락을 나눈 것이며 백조가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하게 한다. 왜냐면, 중국 도시 한복판에서 기실 백조를 본다는 것은 무리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12마리씩이나,.., 이 시어에 감춰진 은유는 무엇일까, 앞에서도 비췄지만, 이 시인은 경계를 스스로 깨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어느 한 순간에 초점을 맞춰 비극적인 현실을 희극적으로 때론 우화적으로 과장하여 때론 황당하게 한다. 이런 그의 시도는 이 시에서도 어김없이 저질러진다. 공해로 찌들린 도시 한복판 위로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백조들이 날아든다. 반짝이는 호수 위에서 12 마리의 백조가 한 점 그림자도 없이 서로 사랑한다. 차마 가까이 갈 수도 없게 말이다. 특히 12 마리의 백조가 12 개의 악기가 되어 물오리 가운데서도 순수한 야성을 지켜나갈 땐 더 그렇다. 그들은 우리 인간과는 다르다. 도도한 빛이 있다. 물에 떠서 가라앉지 않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분명 그들에겐 우리에겐 없는 호신부라도 갖고 있는 것이다. 그 오만한 긴 목이며 찬란한 은빛날개며,..그렇다면 정말 그들의 존재는 현실에서 있기나 한 것일까? 결국 백조는 그의 환상의 대상일 뿐이다. 아니면 맑고 순수한 백조라는 존재로 태어나지 않고는, 그들 꼬리를 붙잡지 않고는 도저히 저 밤하늘 너머 별자리를 찾아갈 수도 없는 거다. 여기에 시인의 아픔이 있다. 이뤄질 수 없는 소망을 갖은 자의 슬픔이 있다. 그에게도 12 명의 형제가 있고 가족이 있지만, 한데 모여 백조처럼 군중 무리 안에서도 자신들만의 가족애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던가. 어둔 밤을 밝게 빛나는 힘이나 세상 밖으로 날개짓 한 번 제대로 발휘해 본 적이 있던가. 도대체 이 세상으로부터 견뎌낼 물갈퀴는 갖고 있던가. 그의 세상을 향한 아픔이 나름대로 수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한 무리 백조에게로 쏠린다.
하느님의 마을
난 하느님이 필요해요, 한밤에 내 방에 자면서 꿈결에 별빛과 바다를 보며 베들레헴의 마리아를 만나요 어둑한 등잔불 아래 옷을 벗는
난 하느님이 필요해요, 입법자 모세보다 더 자유로워 등잔 속 기름을 탐하고 나의 기도를 들어주어요 그리고 우리 가족 12 형제를 사랑하는 무너지지 않는 봉선화가 가득한 마을에 개 짖는 소리가 목 쉰 이방인을 맞이하는 봉선화가 그의 발 아래 무릎을 꿇는 한 송이를 꺾어 품속에 넣는
그리고 난 멀리 떠나지 않는 하느님이 필요해요 그의 고집으로 분명히 폐쇄가 되기도 하는 그의 빛이 구멍난 벽을 뚫고 내 마루바닥에까지 비추는 마치 내가 주울 수 없는 금화 한 잎처럼
천둥번개가 번갈아 치는 늦은 밤, 난 필요해요 저 노하는 노인, 아버지가 내 앞에 가면서 옥수수를 주고 상처를 감싸주고 동틀 무렵 파수꾼을 보내주는
그는 결코 정복하려 하지 않고 피를 빠는 태양으로 로마와 신전을 불태워요 :그리고 사실상 그가 세계를 전복시키는 건 식은 죽 먹기에요 그는 우리들의 안식을 위해 관을 만들거든요.
上帝的村庄 我需要一个上帝,半夜睡在 /我的隔壁,梦见星光和大海 /梦见伯利恒的玛利亚/ 在昏暗的油灯下宽衣 //我需要一个上帝,比立法者摩西/ 更能自主,贪恋灯碗里的油 听得见我的祈祷/ 爱我们一家人:十二个好兄弟 /坚不可摧的凤仙花开满村庄 狗吠声迎来一个喑哑的陌生人/所有的凤仙花在他脚旁跪下/他采摘了一朵,放进怀里 // 而我需要一个上帝从不远行/用他的固执昭示应有的封闭 /他的光透过墙洞射到我的地板上 像是一枚金币我无法拾起 // 在雷电交加的夜晚,我需要/ 这冒烟的老人,父亲/ 走在我的前面,去给玉米/ 包扎伤口,去给黎明派一个卫士// 他从不试图征服,用嗜血的太阳/ 焚烧罗马和拜占庭;而事实上/ 他推翻世界不费吹灰之力/他打造棺木为了让我们安息 //
이 시 역시 현 중국 현실로서는 쓰기 힘든 소재이다. 종교를 사실상 인정한 지가 얼마 안된 정치현실 속에서 드러내기가 조심스럽고도 망설이게 되는, 그러나 갈구하는 맘이 부정적인 시각 속에서도 은연중에 드러나는 작품이다. 우선 하느님 마을은 현실적이지가 않다. 너무 멀리 있다. 필요할 때 다가와주지 않는다. 그래서 시인은 불만이고 빈정거리는 모양새도 눈에 띄인다. 그러나“우리들의 안식을 위해 관을 만드는” 하느님이라고 비아냥거리면서도 하느님은 절실하게 내 곁에 있었으면, 하는 본능적인 바램을 묵과할 수 없다. 천둥번개가 치거나 아픔이 있거나 현실은 늘 하느님이 가까이 있기를 갈망하고 있음을 어찌 하랴. 감춰도 보이는 그 눈물과 삶의 고통이 12 형제가 사는 마을 속에, 나라 속에, 세계 속에, 웅크리고 있음이 보인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시촨과 프레드.와(Fred Wah)의 인터뷰
1985년『 Saskatchewan을 기다리다 (Waiting for Saskatchewan)』로 캐나다 대통령 문학상을 받은 프레드.와(Fred Wah)캐나다 시인과의 인터뷰에서 시촨은 현 중국시단의 문제점과 함께 자신의 시에 대한 방향 및 시풍의 발전 변모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토로한 내용을 옮겨본다. 이는 축사 위주의 평론보다는 이 인터뷰 글을 옮김으로써 좀더 현 중국시단의 실황을 알리며 또한 그의 시적 욕구와 중국 시단을 이끌어나갈, 동양 철학에 기반을 둔 새로운 신시의 새 경지를 밝히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이다. 이 인터뷰 글은 《중국예술비평中国艺术批评》1996년 8월호에 게재된 것으로 재편집했다.
나도 현실 문제에 관심이 있다. 중국 현대시는 이미 몽롱시, 후기몽롱시에서 벗어나 현실주의로 회귀하는 중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솔직히 현실주의로 회귀하는 것이, 또한 현실생활로 돌아오는 것이 두렵다. 80년대 초 중국엔 많은 시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시인들이 이미 시를 쓰지 않고 장사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나도 현실 문제에 관심이 있다. 어쩌면 현실주의자 보다 더 관심이 있을 거다. 우리는 선악관에 대한 상식에 부족함이 없고, 시인으로서 우리는 반드시 일정한 사유방식을 갖고 있다. 몇 몽롱시인이나 몽롱시에 동조하던 시인들이 나중에 방향을 바꿨다. 이는 물론 일종의 심미적 선택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선택이기도 하지만, 창조력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어떤 이들은 나를 만족스럽게 안 본다. 몇 년 전, 사천성에서 시인회의를 개최했을 때, 한 시인은 나를 가리켜 “ 시촨을 보면 이도저도 아냐“ 라고 했다.
근래 중국 청년시인들의 작품은 비교적 구체적이다 몽롱시인들은 문화대혁명 중 나온 슬로건에 반대하고 비교적 구체적인 시를 썼다. 그것은 정치수요, 언어수요였고 그들의 영향은 지금까지 존재한다. 또한, 최근 많은 시인들이 이상을 노래하는 시를 쓰고, 거기에 서사적인 요소가 더 증가, 강조되고 있어서 시는 더 구체적이 되고 있다. 특히 몽롱시 이후 위지엔于坚과 한동韩东 같은 시인들은 일상생활을 쓰기 시작, 새로운 시의 재료로 구체성을 띄게 되었다. 아울러, 서양의 시 특히 에즈라 파운드의 이미지즘은 중국의 당대시에 큰 영향을 주었다. 어떤 비평가들은 한자와 중국 당대시가의 관계를 탐구했다. 흥미로운 건 그 비평가는 바로 시인이 아니라 싱가폴의 스후石虎라는 화가라는 것이다. 그림은 공간감이고 문학은 시간의 예술이라 좀 복잡한데, 한자는 중국인의 사유방식으로서 중국시를 지배한다. 상형문자는 회화처럼 간단하지는 않다. 시는 문화의 일부분이고 문화는 역사, 사상, 학술, 종교, 예술, 생활방식을 포함한다. 중국현대시인 중 이미지를 사용하여 시를 구체적으로 쓰는 데 관심을 갖지 않은 사람이 많지 않으나, 자살한 시인 하이즈海子가 그 좋은 예다. 대다수 시인과 다른 점은 하이즈가 받아들인 영향이 서방으로부터 온 게 아니라 옛 중앙아시아로부터 온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언어의 어감과 감정, 리듬을 강조했다. 난 100% 시인이 아니다. 50%만 시인이다. 난 본래 내가 쓴 시가 시든 아니든 관심이 없다. 단지 내가 관심 있는 건 “문학”이라는 큰 개념이다. 동시에 난 사회와 역사, 철학, 종교, 문화에도 관심이 있다. 현재의 중국은 역사적 이유로 해서 철학도 종교도 없다. 그러므로 현대 시인들은 아주 곤란하다. 시인이 동시에 철학가이고 사상가이고 신학자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에서는 “시는 언어로 마무리 된다”라는 말이 있는데, 난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면, 침묵은 사유의 또 다른 반이기 때문이다. 언어가 침묵을 만들 수 있다지만, 불교를 통해 보면, 언어는 믿을 수 없다.
언어시인들은 어휘의 의미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난 일찍이 각종 경계를 무너뜨리려고 노력했다. 언어의 경계, 시가형식의 경계, 사유방식의 경계, 이는 1989년 전에 내가 쓴 “순수시‘에 들어있다. 많은 시인들의 작법을 바꾸게 한 것으로 나의 시작과 시대생활상을 비교했다. 1992년에 이르러 난 순수시에서 벗어나 한 발 더 나아가 내 시를 하나의 잡탕으로 만들었다. 시가 아닌 것으로, 이론이 안되는 것으로, 산문이 아닌 것으로 뭐라 불러야 할 지 모르겠지만, 난 그런 경계가 싫었다. 매 시인이 모두 새롭게 창조하는 건 아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두 스스로 경계를 부숴야 한다. 언어시인들은 시어와 어구, 어휘의 의미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언어와 의미는 서로 벗어날 수 있다고 보는데, 마치 나무는 목수의 재료로 철은 철쟁이의 재료인 것과 같다. 언어는 일단 시의 재료이고 시인들은 언어를 갖고 놀 수 있다. 대다수 시인들은 정치적으로 모두 좌파이다. 그들은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자이다. 그들은 사회가 변하고 시어 역시 변했다는 걸 인식한다. 그러므로 시인들은 이 장르를 벗어나려 애쓴다. 단 나는 내 방식이 있다. 형식적으로 나의 시는 갈수록 시가로부터 벗어난다. 방금 다 쓴 「액운」이란 글은 역사서의 방식으로 시사있게 쓴 글이다. 많은 이들이 일생에 맞선다. 고통을 맛보며 죄를 지으며, 혹자는 화려하게, 그러나 혹자는 암담하게, 그러나 결국은 그들 생명 모두 역사서의 한 작은 문자로 마감되고 만다. 나 역시 늘 나의 간단한 이력을 제공하도록 요구될 뿐이다. 이 작품은 대중의 이력을 쓴 게 아니다. 시가 아닌 것으로 형식을 빌려 썼다. 역사의 상당부분은 고대 희랍신화이다. 서방의 신은 신화 속의 신이다. 그러나 중국의 신은 역사적 인물이 그 원본이다. 역사는 중국인들에게 상당히 중요하다.
“대화”의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대중시도 유행시도 아니다. 만약, 아마추어가 합당치 않으면, ‘비전문가’라고 하자. 나 역시 독자가 나의 시를 좋아하길 바란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 내 시를 이해하는 가는 다른 문제이다. 독자들은 문학에서 기대하는 게 있다. 작가도 독자에 대해 기대하는 게 있다. 유감스럽게도 양쪽 다 서로 마주치기를 기대한다. 어떤 비평가는 이런 상황을 대중문화와 엘리트 문화의 모순이며 충돌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모순과 충돌은 없다. 왜냐면 양쪽이 기대하는 건 마주치지 않고 서로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홀로”의 시대가 가고 박틴(Bakhtin, 1895-1975, 소련의 문학이론가, 언어 배후의 사회 이데올로기와 역사 관계를 천착하는 역사 시학을 주창)이 말한 “대화”의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왜냐면, 공동의 문화적 배경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배경의 건립은 반드시 현재 시를 쓰는 작가들에 의해, 시인들의 노력에 의존해야 한다. 많은 중국청년시인들은 언어시에 대해 흥미가 없다. 내 생각엔 난징의 장즈칭张子清 교수와 황윈터黄运特 선생이 번역한 『미국언어시선』때문인 것 같다. 내겐 별반 인상적이지 않았지만, 서방언어는 영문을 포괄해서 중문과는 실로 차이가 크다. 유럽어 사이에는 상호전달이 가능하나 중국어로는 완전하게 전달이 되지 않는다. 나는 철학자를 흉내 내어 단어들을 새롭게 다시 해설하고 새로운 함의를 부여하고 있다. 시인과 철학가는 같은 류라고 본다. 난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쓴다. 시가 지향하는 것은 미지이기 때문에, 이것은 산문과 다르다. 산문으로 쓰는 것은 내가 아는 것이다. 내가 이해하는 것이다. 대개 철학이나 산문에서 쓰는 것은 서로 비슷하다. 철학은 많은 것을 배척한다, 모호하고 혼란스럽고, 논리적이지 않고 비이성적인 것들을 배척한다. 그러나 내 맘 깊은 곳에 거대한 암흑의 해양이 있어서 철학으로는 비춰낼 수가 없다. 그러므로 나는 아직도 대부분의 장님들을, 가면을 쓴 사람들을, 두려워한다. 나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난 그들을 쓴다. 새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물이다. 내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최고의 높은 곳으로 날아갈 수 있는 동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지 위를 걸어다니는 큰 동물이 있지만, 대지의 상공을 날아갈 수 있는 건 조류뿐이다. 난 날아가는 새를 보는 것만큼 별을 보지 못했다. 나는 하느님을 새만큼 확실하게 보지 못했다. 날아가는 새는 나와 별과 우주, 하느님의 중간에 있기 때문이다.
* 이외에 2007年 11月 13日 동방아침신문东方早报에서 발췌한 내용을 역시 일부 재편집해서 옮긴다.
큰 시에 거는 큰 기대
시의 조예와 국내외의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시인 시촨은 당대 중국시가의 가장 두드러진 대명사 중의 하나라고 할 만하다. 20여 년의 시창작 생활에 있어 시촨은 놀랄만한 창조력과 고귀하고도 독특한 시이론을 견지하며, 매우 높은 시의 창작 수준을 유지하였다. 또한 스스로 반복하는 것을 거부하고 가파른 작품 전환을 표방함으로써 1990년대 이래의 시촨은 시단에 경악과 자극, 그리고 새로운 사고를 가져다 주었다. 시촨은 또한 시 창작 이외에 오랫동안 시문의 번역과 시이론 수립에도 종사하여 커다란 성과를 이루었다. 최근에 그는 더욱 시의 한계를 벗어나려 애쓴다. 많은 문체, 심지어 여러 가지 다른 예술형식을 창조하려 한다. 고수하면서도 변화하는 시촨은 시종 땅에 내던질 때 나는 소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 소리는 땅으로 내던지지만 다시 튀어 올라 자신을 물어버리는 소리이다. 『시촨의 시』와 『심천』은 기본적으로 1990년대를 전후로 나뉘는 시촨의 창작적 전변을 대표한다. 『시촨의 시』는 주로 단시를 위주로 어조적으로는 침울하지만, 시적으로는 왕왕 간단하고 명쾌하다. 예를 들어 「체험」,「바람불기」「하얼가이(哈尔盖,칭하이성의 역 이름)에서 별하늘을 보다」등의 대표작품을 보면, 80년대 말과 90년대 초 친구(하이즈 시인)와의 사별에서 오는 정신적 충격과 시대적 변화에 대한 예민한 반응을 용기있게 표현하고 있다. 이로써 「표경」「액운」「매의 말」등 부피 큰 작품을 대표로 하여 시촨의 시적 표현은 잡다하고 이질적이며 이탈적 주제에 대한 편애와 비시적非詩的 요소에 대한 강조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시 창작의 근본이념은 시종일관 같다. 바로 이렇게 변치 않는 것들이 시촨의 시 매력일지 모른다. ‘성경’식 자아에 대한 위엄, 초경험과 철학적 사고의 작품 활동 구상, 광활한 기질, 지성의 강조와 전제를 두지 않는 가치부담 등... 최근 몇 년간 시촨은 범시가적 문화활동에 보다 많이 참가하고 있다. 그 외에 장커(贾樟柯, 1970- ,영화감독)의 영화 “플랫폼”에 성공적으로 출연하였으며, 음악가 궈원징(郭文景)과 함께 장시 “먼여행遠游”를 교향곡으로 작곡하였으며, 실험 연극 감독 멍징후이(孟京輝)와 연극 “경화수월(鏡花水月)”을 제작하였다. 이런 행위는 시촨의 신시를 초월하는 이해 모델에 대한 “대시가大詩歌”적 시도라고 해도 지니치지 않을 것이다. 그는 현재 중국에서 대중의 시에 대한 흥미가 감소하는 징표의 하나는 바로 시를 단순히 문학의 큰 범주에 넣어버리는 경향이라고 본다. 그러나 사실상 전문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시는 여전히 문학 창작의 최첨단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비록 여타 예술 장르에서 장점과 계발을 흡수한다 하지만, 시가 다른 예술에 주는 영향은 깊은 의미에선 항상 있어왔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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