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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전 / 률원소적
2015년 04월 05일 22시 38분  조회:3957  추천:0  작성자: 죽림
남영전은 신화가 아니다 


률원소적 
(중국 백족) 





착실하게 시를 읽는 사람이거나 진지하게 시를 담론하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지명도가 아주 높은 당대 시인의 이름과 그의 시작품에 서먹해 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일부러 회피하는 경우는 제외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도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시인은 과연 누구인가? 그가 바로 백의겨레의 후예이고 조선족의 우수한 시인의 하나인 남영전 선생이 아니겠는가. 
시인 남영전은 년초(1999년초­역자 주)에 자기의 시집 몇 부 특히는 그의 ꡐ토템시ꡑ 시리즈를 수천리 떨어져 있는 동북의 장춘에서 서남의 성도에 있는 나에게 부쳐왔을 때 그의 이 묵직한 창조결실은 나의 열독 시선을 한껏 끄당겨서 저도 모르게 말해야 하겠다는 시심, 격정이 불시에 나를 사로잡았다. 
무어라 할 것인가? 내 생각에는 가지가지 허황한 색채로 충만된 중국의 당대시단에서 남영전은 마술을 부려 ꡐ인위적인 부각ꡑ을 해낸 그런 시가 신화인물이 아니다. 이를테면 북도(北島), 서정(舒停)이라든가, 왕국진(汪國眞), 석모용(席慕容)이라든가, 떠, 이를테면 우견(于堅), 이사(伊沙) 등등이 아니라 남영전은 질박하고 구체적이며 감득하고 감지할 수 있는 시인이며 진정한 의미에서의 계관시인이다.(비록 계관시인이란 칭호가 중국에는 없고 구미시단에만 있지만서도) 남영전의 계관이 직조된 것은 전적으로 그의 순수한 시인적인 정회를 포함한 시가예술에 대한 참된 탐구에 의한 것이지 사회에서 선사하였거나 그 어떤 외재적 신분 예컨대 박사, 교수, 잡지주필, 행정직무 등등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ꡐ직함ꡑ에 의한 것이 아니다. 
요컨대 남영전은 시가란 이름을 빌어 세상을 떠도는 예술떠돌이가 아니며 더구나 시인이란 간판을 내걸고 국록을 타먹는 벼슬길의 브로커는 더욱 아니다. 시인 남영전의 시가창작성취와 갈수록 높아가는 시단에서의 명망에 대해 나는 양자침 선생이 「역사의 부각 시혼의 굴기」란 글에서 시인 남영전에 대한 적중한 평어를 내린 그 말에 아주 찬동한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ꡒ영전은 엄숙하고도 참된 시인으로서 민족과 인류와 시대에 대해 높은 책임감이 있는 시인이다. 그는 시단에 그 어떠한 미로와 경망이 나타나든 끝끝내 자기의 길을 꾸준히 걸었다. 그의 시는 시행마다 어렵게 산출되었기에 비로소 이런 진실한 성공이 있게 된 것이다.ꡓ(「길림일보」 1998년 3월 24일부) 의심할 바 없이 이는 시인 남영전이 시단에 나타나고 우뚝 서게된 데 대한 설득력이 크고 필요 불가결한 주석으로 여겨진다. 
이제 나 자신이 시인 남영전을 계속 담론하려 한다. 
만일 우리가 시인 남영전의 시문학의 발자취를 더듬어 본다면 어쩔수 없이 가슴을 들먹이게 하는 스냅(掠影)이 우리의 눈시울을 축축히 젖게할 것이다. 20세를 갓넘긴 남영전은 70년대초로부터 조선민족 고유의 문명과 견정불이한 성결한 영혼과 조선민족의 전통적 문화 그러면서도 새로운 창조를 향한 시가의 등짐을 지고 착실하게 시가왕국에서 시의 예술을 탐구하는 먼길에 들어섰다. 그동안의 고초와 간난신고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시인 남영전에게서는 그것이 의지를 구현하는 필연의 길이였다. 시인이 「호태왕비」에서 은유한 것처럼 

일월의 성스런 빛발 
하백의 영험한 서기 
은장도 날카론 서리 
활궁의 강인한 탄력 
피타는 부르짖음과 
지성의 향불들이 모여 모여 
웅위로운 비석으로 우뚝 솟았다 

이 돌비석은 분명 일종의 상징이다. 그것으로 무얼 표현하려는가? 두 말할 것 없이 풍상고초를 겪었으나 쇠망하지 않는 위대하고도 고귀한 민족의 정신적인 거대한 기둥을 부각하려 함이다. 또한 새로운 역사적 비석을 우뚝 세우려는 것이다. 

우뚝 솟아 세상을 굽어보고 
우뚝 솟아 세상을 깨우치며 
우뚝 솟아 불굴의 넋을 기른다. 

장하고 벌묘하다! 한 민족의 정신품격과 이미지가 풋풋이 살아난다. 이로부터 알 수 있는 바 시인 남영전은 천박하게 일반적으로 옛일을 회고하여 읊조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심혈, 절실한 체험의 시로 백의겨레의 사라질 수 없는 장려한 재생의 시를 생동하게 표출하였다. 얼마나 기백 있는가! 
이러한 시적 경지는 흉금이 좁고 사유가 경직된 시인은 절대 이루어내지 못한다고 나는 단언한다. 
시인 남영전은 민족정신의 신념과 개체생명의 신앙, 게다가 넓고 큰 인류의식을 밑바침으로 하였기에 시종여일하게, 쇠소리나게 시가왕국에로 끊임없이 매진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시인 남영전이 알려지지 않은 시골의 조선족 마을에서 걸어나오고 줄기뻗은 장백산맥의 원시림에서 걸어나와 중국 시단의 앞자리를 걷고 세계 시단을 걷고 있는 모습을 보다 똑똑히 볼 수 있게 된다. 
특히, 그리고 주로는 새로운 역사 시기 시인 남영전은 더더욱 혈기왕성해 범에게 날개 돋친듯 격정 드높이 공전의 활약을 하고 있다. 그는 예민하고도 능란하게 「두 자루의 검」(조선민족 모어와 제2언어 한어)을 사용해 시가의 왕국에서 「남정북전」하면서 부단히 자신의 사유관념을 쇄신하는 동시에 독자들에게 한묶음 또 한묶음 시가의 ꡐ미끼ꡑ를 던졌다. 이를테면, 『산혼』, 『백학』, 『해와 달』, 『신단수』, 『뻐꾹새』,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들』, 『백의혼』, 『남영전시선집』 등등이다. 국내외에서 선후로 출판된 이러한 시집들은 하늘땅 뒤번지는 기세로 세찬 물결 파도치듯이 시의 애독자들을 정복하고 있다. 거듭 지적해야 할 것은 시인 남영전이 86년부터 창조해낸 특산품­ꡐ토템시ꡑ 시리즈인데 예컨대 신령토템의 「곰」, 생명토템의 「물」, 각성의식을 상징한 「사자」, 불굴의 의지를 표현한 「솔개」, 민족운명을 제시한 「백학」, 생존상태를 보여준 「백조」, 망령을 기리는 「뻐꾹새」 그리고 이상 세계에 잠긴 「거북」 등등은 더구나 감탄을 금할 수 없게 한다. 
상술한 바와 같이 시인 남영전은 어찌 공적이 탁월하고 성취가 뛰어났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사람들이 경모하고 보편적으로 칭찬함도 뜻밖의 일은 아닌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떳떳히 말할 수 있는 즉 그것은 시인 남영전이 수십차 시가의 수상대에 올라 자기에게 마땅한 창조의 보답을 받은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우리에게 더욱 흥취를 느끼게 하는 것은 시인 남영전이 자신의 성취와 영예 앞에서 내내 침착하고 냉정하여 스스로 만족하지도 않고 속세의 욕망도 강구하지 않는 점이다. 이는 바로 내가 여태껏 인정해 온 것처럼 진정한 시인과 진정한 시품은 거개가 다 군림하는 기개와 우주같이 넓은 도량이 있어서 그 시와 그 사람이 혼연일체를 이루는데 일종의 초종교와 가깝다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시인은 독자들이 포기하거나 파기할 수 없게 한다. 동시에 시인 남영전이 「신단수」에서 암시한 모종의 힘을 구유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크나큰 기백으로 얼음산 이겨 
아늑한 인간낙원 펼쳤습니다 

신비론 신단수 
천년 간들 만년 간들 
칼바람에 찍히우랴 
불갈기에 먹히우랴 
물사태에 쓰러지랴 
눈보라에 얼어 죽으랴 
언제나 그 언제나 
창천을 떠받치고 
대지를 거머쥐고 
떳떳이 떳떳이 솟았습니다 

혹시 권내의 어떤 사람이 즉각 일어나 질문할 수도 있다. 시인 남영전과 그 시가는 그래 완전완미하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는 이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시가의 거장으로 되었단 말인가? 
내가 듣건대 질문에 일리가 있으나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설사 세상이 공인하는 이른바 시가의 거장들도 꼭 완벽하지는 않다. 하물며 시가의 스찔에 구별이 있음에랴. 시인 남영전으로 말할 때 시가의 거장으로서의 상황이 이미 이루어졌는가에 대해서는 너나없이 목전에는 단정하기 어렵다. 시간과 역사가 검증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물론 객관적 입장에서 말하면 남영전의 시가에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일부 흠집들이 있고, 또 적어도 나 개인이 인정하는 ꡐ흠집ꡑ이 있다. 이를테면 한문시에서의 ꡐ之ꡑ. 이 허사는 적당히 사용할 때 어감의 역도를 증강하고 어태의 변화가 선명하고 이미지의 효과적인 면접에 훌륭한 역할을 할 수 있으며 더구나 음운에서 절주감을 풍부화하게 된다. 하지만 ꡐ之ꡑ가 시인 남영전의 시에서 눈길 끄는 ꡐ섬광ꡑ으로 매수 매행 매구에 다 있어 거의 초부하상태이다. 그러다나니 밀집화된 ꡐ之ꡑ는 도리어 뜻의 캐리어(裁體)의 발휘를 약화시켜 의경의 공간에 막히는 감이 있게 되고 마땅히 있어야 할 장력이 뻗치지 못하는 듯하고 많이 읽으니 외려 격막이 생긴다. 본래는 아주 현대적인 시구인데 도리어 현대문에 고문이 섞인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 시가는 언어구사에 대한 요구가 아무튼 높고 또 높아서 일자천균(一字千鈞) 즉 글자마다 매우 중요하니 옳게 쓰느냐 그르게 쓰느냐는 시인에게서 각별히 중요시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또 내가 지나치게 남의 흠집을 캐내는 까닭이 아니겠는가고도 생각해 본다. 다른 독자나 평자들은 아마도 나와 같은 느낌이 없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고 생각해 보기도 한다. 시인 남영전이 탐구의 수요로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겠는가고도 생각한다. 세 가지 가능성이 각기 성립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글을 마무리 지으면서 나는 다시 한번 귀띔해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시인 남영전과 그의 시작품에 관하여 우리는 신문잡지에서 자주 평론이나 보도를 보게 되지만 내가 인정하건대는 그 관심하는 측면이 아직은 너무도 부족하고 그 평가의 폭도가 아직은 너무도 미달이다.(나 자신을 포괄하여 평만하고 론하지는 않는다는 잠정적인 전제를 설정하였으므로 깊이있는 발굴과 유력한 선양을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더 많은 문학평론가 주로는 시평, 시론분야의 전문가들이 전반 한어문시가 건설의 대업에서 그에 대하여 종횡관조, 전면결부, 겉에서 속으로, 속에서 겉으로 그 연구가 벌어지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시인 남영전과 그의 시가 앞에서 우리는 이제 할말이 더 없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말하느냐는 과제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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