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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u城의 시론 연구
2015년 04월 05일 22시 46분  조회:4406  추천:0  작성자: 죽림

顧城의 詩論 硏究

金泰成*

Ⅰ. 들어가는 글

Ⅱ. 顧城 詩와 詩論의 背景

Ⅲ. 顧城 詩 內容上의 範疇

1. 自然

2. 幻想

3. 生命

Ⅳ. 맺는 글

Ⅰ. 들어가는 글

中國의 當代詩歌는 ‘10년간의 동란’으로 규정되는 문화대혁명(이하 ‘文革’으로 약칭함)이 막을 내리고 이른바 社會主義 新時期가 시작되는 시점인 1976년을 기점으로 하여 청년시인들을 중심으로 자유와 번영에 대한 謳歌, 개인과 사회의 모순 및 文革의 상처와 사회의 어두운 현실에 대한 폭로,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대한 정신적 충격 등 다양한 내용의 詩歌가 대거 창작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부흥기를 맞게 되었다. 이에 따라 진정한 문학정신이 소생하고, 정치에 종속되어 위축되고 왜곡되었던 문학의 부정적 현상들이 일소되어 중국 시단에 새로운 백화제방의 활기가 넘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중국 當代 新時期 詩歌를 특징지워주는 대표적인 思潮로서 이른바 ‘朦朧詩 論爭’을 불러일으켰던 朦朧詩派를 들 수 있는데 北島, 顧城, 舒婷, 江河, 芒克 등을 대표적 시인으로 하는 이 新詩의 흐름은 단순히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몇몇 청년시인들의 현대적 기법을 사용한 창작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文革시기에 北京에서 비밀리에 이뤄졌던 살롱문학과 70년대초 ‘上山下鄕’ 시기에 知識靑年들의 주요 문학활동 거점 가운데 하나였던 ‘白洋淀詩群’, 그리고 1976년의 천안문 詩歌運動으로 이어지는 문학의 역량이 결집되면서 지하간행물인「今天」을 중심으로 풍부한 문학적 토양을 형성함으로써 이뤄지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혹자는 이들의 詩를 개혁 개방에 따라 유입된 서구 문학사조의 반영으로 보기도 하지만 이는 中國 當代 詩歌의 경향을 세분화하지 않고 개괄적으로 서술한 것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이들의 詩에 담긴 진지한 문학정신과 역사의식, 인간에 대한 애정 등을 근거로 하여 이들의 詩를 역사의 특정한 단계와 이를 견뎌낸 문학역량의 결정으로 보는 보다 구체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혁명의 실패와 왜곡된 역사에 대한 실망, 그리고 자아에 대한 처참한 억압을 체험한 이들 청년시인들의 작품 경향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그 대표적인 유형으로 초현실주의 상징수법을 통해 정치성과 자아의식을 동시에 표출한 北島의 시와 낭만적이고 여성적인 색체의 詩語로 이성적 사고와 감성의 융합을 시도하면서 왜곡된 현실의 고통을 폭로하고 인간에 대한 휴머니즘적 애정을 토로한 舒婷의 敍情詩, 동양신화의 원형을 매개로 한 陰柔의 美와 군체의식을 바탕으로 한 영웅 서사시로 대표되는 江河의 시세계, 主知的인 思辨과 화려한 낭만성을 겸비한 楊煉 詩의 主知性, 아이들의 천진한 눈동자로 純粹의 美를 추구하며 몽상을 통한 영혼의 시각으로 모순이나 갈등이 없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지하여 현실에 실현하려고 시도했던 顧城의 시세계를 들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이 같은 朦朧詩를 現代主義 또는 現代派 詩로 단정하면서 서구의 현대시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려는 시각을 지양하고 이들의 詩가 주로 현대적 기법으로 쓰여지긴 했으나 그 창작의 바탕은 특수한 역사현실에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동시에 이를 위한 수단으로 朦朧詩派의 대표적 詩人이면서도 국내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顧城의 詩와 詩論에 대해 초보적인 분석을 가하고자 한다. 이 같은 작업은 국내에서는 전체적인 분석과 이해가 미흡한 채 中國當代文學史의 한 章으로 정리되고 있는 中國 當代 朦朧詩에 대한 종합적이고도 체계적인 분석과 정리를 위한 기초적인 시도로서, 우선 그 一環으로 1993년에 이미 사망함으로써 창작활동을 마감했고 대부분의 詩歌 작품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른 경향성의 굴곡을 보이지 않았던 顧城의 散文과 對談, 講演錄 등에 나타난 詩에 관한 편린들을 분석, 정리함으로써 그의 시세계를 개괄하고, 이를 통해 보다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작품의 이해를 위한 視覺의 형성을 꾀하고자 한다. 제목에 ‘詩論’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나 여기서는 문학적 기교나 詩作의 당위성, 작품의 사상성 등을 체계적으로 서술한 일반적 개념의 詩論이 아니라 그가 지향하는 문학행위의 전체적인 방향을 의미하는 것임을 밝혀둔다.

Ⅱ. 顧城 詩와 詩論의 背景

먼저 顧城의 창작배경을 一覽함으로써 그의 詩와 詩論을 보다 쉽게 조명할 수 있는 관점을 마련하기로 한다. 그의 창작배경은 크게 文革이 초래한 기형적 역사현실과 이에 대한 반응, 자연에의 경도, 어린시절부터 계속된 남다른 독서력, 그리고 이 과정에서 체득한 道家的 세계관을 들 수 있다.

顧城은 1956년 北京에서 태어났다. 文革이 시작되었을 당시 겨우 10세의 소년이었던 그는 1969년에 詩人인 아버지 顧工과 함께 ‘下放’되어 山東省 古黃河道의 황량한 해변에서 외로운 생활을 하면서 항상 접하는 대자연에 대한 감응을 소재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이 때에 쓴 시들은 주로 자연을 통해 감지된 인간적 친밀감을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후에 「이름없는 작은 꽃들(無名的小花)」이란 제목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1974년 다시 北京으로 돌아온 그는 설탕제조공, 운반공, 도장공 등 다양한 임시직을 전전하다가 이른바 朦朧詩 詩人들과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시가창작에 몰두하게 된다. 文革 초기부터 그는 당시의 혼란한 정치상황과 왜곡된 삶에 대한 민감한 반응을 絶句 형태의 짧은 시구로 표현해내곤 했는데 이러한 기록들은 매우 특수한 역사의 한 단계에 처한 한 ‘조숙한 아이’의 기형적 심리와 주변 세계에 대한 상념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특히 이처럼 특수한 역사상황이 顧城 개인에게는 ‘꿈의 파멸’이란 형태로 반영되고 있다.

 

꿈이 파멸되고 있다.

꿈은 항상 파멸에 대해 관대하다.

그러나 파멸은 오히려 꿈을 그냥 놔두지 않는다.

幻想在破滅着; 幻想總把破滅寬恕, 破滅却從不把幻想放過.

 

그는 자신이 체험한 일단의 역사전개 과정에서 개인과 사회 사이의 극복될 수 없는 대립의 모습을 보았고 이에 대해 모종의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분노를 근거로 오히려 理想에 대한 강한 긍정과 확신을 갖게 되었다.

 

어둔 밤은 내게 검은 눈동자를 주었으나

나는 오히려 그것으로 빛을 찾는다

黑夜給了我黑色的眼睛 / 我却用它尋找光明

 

그리하여 顧城에게는 詩가 한 마디로 말해 ‘이상의 나무에 매달려 반짝이는 물방울’로 정의되었다. 그는 시 창작의 모티브를 ‘마음속의 純銀으로 열쇠를 주조하여 천국의 문을 여는 것’으로 비유하면서 예술의 목표를 ‘순수한 아름다움’의 실현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낭만적 색채의 詩歌觀念은 현실세계의 갖가지 갈등과 분열, 부조화 등으로 인한 고통이 모두 詩속에 용해되어 하나의 해결점을 찾으면서 꿈 또는 환상의 세계라는 형식을 통해 인간영혼의 절대적 자유를 찾게 된다는 신념에 기초하고 있다.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시의 세계는 예술창조의 범주일 뿐만 아니라 인간생활 전체의 범주이기도 한 것이다.

이처럼 특수한 역사상황에 대한 적극적인 반응은 顧城뿐 아니라 대부분의 몽롱시 시인들에게 커다란 창작동기로 작용하여 몽롱시의 전체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되고 있는 人本主義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수한 역사현실에 외에 그의 詩를 만들어낸 또 하나의 배경으로 어린 시절부터 잠시도 그치지 않았던 왕성한 독서력을 들 수 있다. 특히 문혁과정에서 대부분의 책들이 走資派의 노선에 물들어있다는 이유로 압수되었을 때 우연히 남아서 그를 사로잡았던 책이 바로「파브르 곤충기」였고 이것이 자연에 대한 경도를 더욱 가중시키면서 그의 의식 속에 몽환의 세계를 가져다주는 동시에 자연과 생명과 꿈의 和諧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동화적 작품세계를 형성해주었다고 볼 수 있다.

 

운 좋게 살아남은 이 책이 그날 밤 나를 열광적인 동물애호가로 만들어주었다. 수백만 가지의 곤충들이 무한히 신기한 세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중략) 점벌레와 호랑나비의 몸에는 이상한 도안이 그려져 있어 매일 밤 내 꿈속을 날아다녔다.

 

就是這本幸存的「昆蟲記」, 使我一夜之間, 變成了狂熱的昆蟲愛好者. 上百萬種昆蟲, 構成了一個無限神奇的世界, (中略) 飄蟲和蛺蝶身上愧誕的圖案, 每夜都在我的夢中浮動…

 

山東을 떠나 北京으로 오자마자 그는 ‘책을 쌓아 만든 산’을 만나게 된다. 이 때 그가 책을 통해 접할 수 있었던 예술가들은 屈原, 陶淵明, 李白, 杜甫, 曹雪芹 등 중국 고전문학의 작가들뿐만 아니라 빅톨 위고, 발작, 안델센, 하아디, 도스또옙스키, 잭 런던, 시모노프, 로망 롤랑, 휘트먼, 헤밍웨이, 다빈치, 미켈란젤로, 롬바르트, 레빈, 로뎅 등 서양의 문인, 예술가들이 두루 망라되어 있다. 이처럼 광범위하고 집중적인 독서력이 그의 詩作에 있어서 서양 현대시의 영향을 거론하는 근거가 되기도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집중적이고 폭넓은 독서를 통해 시인의 의식 속에 비범한 정신세계가 형성될 수 있었고 이것이 그의 詩作의 배경으로 크게 작용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셀 수 없이 많은 태양의 조명 속에서 검은 밤은 사라져버렸다. 나는 잠을 거의 잊어버린 것 같았다. 한 시간도 쉬지 않고 읽고 보면서 미친 듯이 위인들의 땅을 향해 달려갔다. (중략) 이것은 곤충학에 이어 두 번째로 내게 찾아온 ‘열애’였다.

 

在數不淸的太陽照耀下, 黑夜消逝了. 我幾乎忘記了睡覺, 一刻不停地看着, 讀着, 向着偉人的陸地狂奔. (中略) 這是繼昆蟲學之後, 我的第二次‘熱戀’.

 

물론 詩를 단순한 讀書의 産物로 볼 수는 없지만 顧城에게 있어서 讀書는 그와 그의 同時代人들이 처했던 특수한 역사현실 속에서 정신세계의 파괴와 왜곡을 막아주고 문학적 자양을 제공해줄 수 있는 유일무이한 수단으로서 매우 중요하고 커다란 의의와 기능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셋째로 顧城 詩와 詩論의 배경으로 거론할 수 있는 것은 상술한 자연에의 경도와 몽환의식을 바탕으로 그의 왕성한 독서력이 가져다준 道家的 세계관과 문예관이다. 儒家와 더불어 중국인의 사유체계에 있어서 커다란 줄기를 이루고 있는 道家的 세계관의 흔적은 顧城 詩의 詩論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1992년 11월에 베를린에서 있었던 기자들과의 대담에서 그가 자주 언급해온 ‘동양적 의미’와 ‘靈性’에 대해 설명하면서 자연상태의 직관과 無爲로써 서양예술과 구별되는 동양예술의 정신을 천명한 바 있다.

 

동양예술의 주체는 있음(有) 또는 존재가 아니라 없음(空無), 즉 어떤 心境하에서의 자연적 觀注입니다. 이를 서양문화와 비교하면 달빛이나 공기와 같다고 할 수 있지요. 어떤 기운이 새떼를 날게 할 때 새들은 자연상태 그대로 입니다. 비행의 일정한 방향이 없고 자유롭습니다. 어디든지 마음대로 날아갈 수 있는 것이지요.

靈性의 靈動이 동양예술로 하여금 無에서 有가 생성되게 하고 일정한 격식에 구애됨이 없이 저절로 천연의 상태를 이루게 합니다.

동양정신은 지리적 개념이 아닙니다. 靈性 역시 文字의 형식이 아니라 일종의 관계입니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하늘의 관계이지요. 이것은 對象이 아니라 일종의 바램, 즉 선택방식의 자유입니다. 이러한 바램이 있기 때문에 저는 어디 있든지간에 저의 歸宿과 來源을 느낄 수 있는 것이지요.

 

作爲東方的藝術精神, 與西方不同, 它的主體不是有, 存在, 而是空無, 一種心境下的自然觀注, 與西方文化相比, 它更像月光和空氣. 一種氣息使鳥群飛翔, 它是自然的, 沒有旣定的方向, 又是自由的, 它可能飛向任何地方. 靈性的靈動使東方藝術無中生有, 不拘一格, 自成天然. 東方精神並不是一個地理的槪念, 靈性也不是一種文字的形式, 它是一種關係; 人與人, 人與天; 它不是一個對象, 而是一種愿望-選擇方式的自如. 這愿望與我同在, 不論我走到哪裡, 都可能感悟到我的歸宿和來源.

 

또한 그는 이러한 자연상태의 直觀과 無爲의 결과는 예술품이 아니라 예술유희가 만들어내는 일종의 志向 또는 心境이라고 규정하면서 莊子가 말한 庖丁解牛의 비유를 들어 동양의 예술을 ‘뜻을 얻고 형태를 잃어버리는’(得意而忘形) 전형적인 관념예술로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그 전형적인 예로 도가적 경향이 강했던 위진 남북조 시기의 竹林七賢의 예술을 제시하고 있다. 이같은 점으로 미루어 顧城이 道家에서 추구했던 무위자연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의 시 전체가 추구하는 환상과 자연, 그리고 이를 통한 생명의 체현은 다분히 道家的 傳統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3, 4세기경에 중국에서 가장 추앙받던 예술은 詩詞文章이나 繪畵彫塑가 아니라 일종의 風度, 이른바 魏晉風度였습니다. 이러한 풍도는 갖가지 형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데 그 예로 시인 阮籍을 들 수 있습니다.

在中國公元三, 四世紀時, 最受推崇的藝術不是詩詞文章, 繪畵彫塑, 而是一種風度, 所謂魏晉風度. 這種風度可以表現爲各種形式, 比如詩人阮籍.

 

또한 그는 언어의 규칙이 마음 속의 느낌을 표현하는 데는 부족하기 때문에 순수정신의 상태에서의 自然流露를 제시하면서 언어의 한계를 주장하고 있다.

 

언어사용의 규칙은 실용적 정보를 전달하는 데 있습니다. 예컨데 제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를 전달할 수 있게 해주지요.(여러 차례의 분명한 전달을 통해 思路는 곧 관념이 됩니다.) 그러나 언어로 마음속의 느낌을 표현하거나 詩를 쓰고자 할 때는 그 규칙의 도움을 받을 수 없고 오히려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인간은 순수한 정신의 상태에서 호흡과 맥박에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이것이 소리에 영향을 미쳐 文字와 節奏를 선택하는 데도 상응하는 변화를 일으킵니다. 이것이 바로 자연의 전달입니다.

語言使用規則, 便於傳導實用的信息. 比如我們將在甚麽地方, 甚麽時間內做甚麽. (經過多次淸哲的傳導, 思路也就變成了觀念) 但是想要用語言表達你心裏的感覺, 寫詩的時候, 規則不能總是幇助你, 它還會使你誤入歧道. 人在一種純粹的精神狀態中, 呼吸和心跳都會發生變化, 這會影響到人的聲音, 使人在選擇文字和節奏時發生相應的變化, 這是自然的表達.

 

이는 “道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참 道가 아니다”, “진실한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진실하지 않다”라고 하여 언어의 완벽한 표현능력을 부정했던 道家의 언어관을 그대로 반영하는 견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 외에 1950년대 초반부터 문예창작을 시작하여 희곡, 평론, 소설 등 여러 장르에 걸쳐 20여권에 달하는 작품집 낸 바 있는 중견시인인 아버지 顧工과 顧城 스스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인물이자 정신적 지주였다고 술회한 바 있는 모친, 그리고 어려서부터 가장 가까운 詩友로서 현재 동화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누나 顧鄕 등 가정 내의 문학적 분위기와 가족들의 영향도 그의 審美觀 형성과 詩歌創作에 있어서 무시할 수 없는 배경요소라 할 수 있다.

Ⅲ. 顧城 詩 內容上의 範疇

상술한 詩作의 배경으로 인해 顧城 詩의 내용상의 범주는 매우 다양하고 풍부하여 하나의 개념으로는 개괄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하면서도 그의 문학과 삶 전체에 절대적인 동기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바로 自我意識이고 이것은 다시 ‘꿈’, ‘幻想’, ‘夢幻’ 등의 어휘로 표현되는 상상적 요소와 숭배에 가까울 정도의 자연에의 경도, 그리고 자연을 매개로 하는 생명의식의 추구로 요약될 수 있다. 曹文軒은 중국 80년대의 문학현상을 논하는 글에서 당시의 문학현상을 ‘낭만주의의 부활’로 규정하면서 이 세 가지 요소를 그 특징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顧城이 浪漫主義 詩人으로 설명되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1. 幻想

顧城의 다양한 詩的 범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 특히 80년대의 작품들은 현대적 自我가 발붙일 곳 없는 현실에 대한 도피의 형식으로서의 환상과 자연에의 경도를 통해 나타나기도 했다. 비교적 현실성이 강했던 초기 몽롱시 단계에도 顧城의 현실도피적 경향은 두드러진 편이었다. 소년의 감수성으로 잘 이해되지 않는 현실로부터 탈피하여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또 다른 환상의 세계를 찾아낸 것이다. 顧城의 시와 시론에 ‘幻影’, ‘幻想’, ‘꿈’, ‘夢幻’ 등의 어휘로 셀 수 없이 자주 등장하는 상상적 세계는 그의 자아의식의 핵심을 이루며 詩와 詩論의 骨幹이 되고 있다.

 

내 환영과 꿈을

좁고 길다란 조가비 안에 넣어둔다

버들가지로 엮어 만든 돛은

아직도 여름매미의 긴 울음을 맴돌고 있다.

바람이 새벽 안개를 일으키면

나는 돛대의 밧줄을 팽팽하게 당기고

항해를 시작한다.

(중략)

잠들어버리자! 두 눈을 꼭 감으면

세상은 나와 무관해진다.

 

把我的幻影和夢 / 放在陜長的貝穀裏 / 柳枝編成的船蓬 / 還旋繞着夏蟬的長鳴拉緊椬繩 / 風吹起晨霧的帆 / 我開航了 / …… / 睡吧! 合上雙眼 / 世界就與我無關.

 

그러나 顧城은 꿈과 환상의 세계 속에서 自足하면서 이것이 단순한 현실도피가 아닌 순수한 아름다움의 추구이며 또 다른 자아의 실현방법이라고 주장한다.

 

만물과 생명, 인간은 모두 자기만의 꿈을 갖고 있다. 모든 꿈이 바로 하나의 세계이다. (중략) 나 역시 나만의 꿈이 있다. 그것은 요원하면서도 분명하다. 그것은 하나의 세계일 뿐만 아니라 세계 위에 존재하는 천국이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아름다움, 가장 순정한 아름다움이다. (중략) 그것을 향해 나아가다 보면 나는 점점 투명해지고 내 뒤의 어둔 그림자는 사라진다. 길만 있을 뿐이다. 자유의 길만이 있을 뿐이다.

萬物, 生命, 人, 都有自己的夢. 每個夢, 都是一個世界. (中略) 我也有我的夢. 遙遠而淸晰. 它不僅僅是一個世界, 它是高於世界的天國. 它就是美, 最純淨的美. (中略) 我向它走去, 我漸漸透明, 抛掉了身後的暗影, 只有路, 自由的路.

 

현실을 떠나 환상의 세계에서의 순정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자아의 완전한 자유를 謳歌하려는 試圖가 그의 詩를 다른 朦朧詩人들의 작품과 차별화시키는 주요 특징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경향은 지나치게 抽象的인 觀念의 遊戱로 빠지기 쉬운 일면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몽롱시 전체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비평가 洪子誠도 이점에 대해서만은 부정적인 지적을 놓치지 않는다.

 

현실세계에 대한 그의 일방적 관찰과 현실세계에 대한 지나친 부정은 그의 동화세계를 허황되게 만든다. 독자는 물론 시인 자신에게 있어서도 꿈에 의해 만들어진 천국 속에서 오래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마침내 저 세상을 떠나 현실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순수하지 못하고 모순에 가득차 있긴 하지만 진실한 생명과 활력의 땅으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對現實世界過多否定, 也越發使他的“童話世界”陷於更多的虛幻. 不論對於讀者來說, 還是對於詩人自己, 都將不可能長久生活在這個夢幻來編造的“天國”裡, 他們終究要離開“彼岸”, 回到現實, 回到這塊雖不純淨, 而且充滿矛盾, 但却有眞實生命和活力的土地上來.

 

하지만 顧城에게는 꿈에 의해 만들어진 천국이 결코 추상적 관념의 유희로 국한되지 않는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이는 물질에 대비되는 정신세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정치의 출발점과 귀착지는 이익, 즉 경제적 이익인 데 반해 예술의 출발점과 귀착지는 아름다움, 즉 이상주의적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政治的出發點和歸宿是利益 ― 經濟利益. 而藝術的出發點和歸宿則是美 ― 理想主義的美.

 

또한 顧城은 詩가 이뤄지기 위해선 이러한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 뿐 아니라 정련된 언어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과 정련된 언어가 결합되어야만 비로소 시가 만들어질 수 있다. 감각이 아름다울수록 언어도 더욱 정련된다. 양자의 결합이 조화로울수록 시는 더욱 詩 다워질 수 있다. 詩人은 美的 感覺과 精鍊된 言語를 위해 혼례를 치러주는 사람이다.

 

只有美好的感覺和精練的語言相結合時, 詩才可能出現. 感覺越美, 語言越精, 二者結合得越和諧,(矛盾, 不平衡也能構成一種和諧)詩則越成爲詩. 詩人, 就是爲美感和精練的語言擧行婚禮的人.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과 정련된 언어의 결합을 위해 顧城은 시의 독립을 요구한다. 시를 위해선 어떠한 습관이나 ‘합법적 사유방식’, ‘공인된 표현방식’에도 길들여지지 않는 완전한 자유의 공간이 필수적이며 이는 참된 詩精神의 소생을 의미한다. 그의 이 같은 주장은 신시기 이전에 정치에 완전히 종속되어 ‘典型 환경 속의 전형 인물’을 묘사한다는 현실주의의 고전적 원칙이 무너져버리고 극도로 획일화되었던 문학현실에 대한 반작용이라 할 수 있다.

 

습관은 정신의 감옥이요 담벼락이라 세계를 관통하는 믿음의 바람과 사랑, 이해, 그리고 신뢰를 단절시키고 마음의 바다에 조수를 단절시킨다. 습관은 정체요, 늪이요, 노쇠함이다. 나는 습관이 또 다른 습관에 의해 포위 당해 생기를 잃고 심지어 생명마저 잃어버리는 것을 쉽게 발견한다. 시인이 참신한 시편과 심미의식으로 습관을 부숴 버린 다음에야 비로소 시인과 독자는 함께 소생의 환희를 누릴 수 있고 다시 한 번 자신과 세계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習慣是精神的獄墻, 隔絶了橫貫世界的信風, 隔絶了愛, 理解, 信任, 隔絶了心海的潮汐. 習慣就是停滯, 就是沼澤, 就是衰老. 習慣的終點是死亡. 我感到, 習慣於習慣的包圍, 詩會失去了血色甚至生命. 當詩人用他嶄新的詩篇, 嶄新的審美意識, 粉碎了習慣之後, 他和讀者都將獲得一次再生 ― 重新地感知自己和世界.

 

想像이라는 詩의 본질은 시로 하여금 영원히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새로운 정신세계를 건설해나가도록 결정지워 놓았기 때문에 변하지 않으면서 모든 변화에 적응하는 철학만이 역사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詩的幻想天性決定了它永遠要開拓新的領域, 建築新的精神世界. 以不變應萬變的哲學, 終究會成爲歷史.

 

물론 다양한 시의 내포에 근거하여 顧城은 시의 본질을 想像으로 규정하면서 시의 사회적 기능도 매우 다양하고 중요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나는 사회문제를 직접 반영하는 정치시도 긍정하고 영혼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창조적으로 표현하는 서정시는 특히 더 좋아한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시에는 적극적인 사회의식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장미와 劍은 결코 대립하는 존재가 아니고 투쟁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이 세계를 보다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중략) 결국 정치가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없듯이 물질도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我贊成有直接反映社會問題的政治詩, 更喜歡創造性地表現靈魂和自然美的抒情詩. 我以爲一切眞正美的詩, 都具有積極的社會意識. 玫瑰和劍並不對立, 鬪爭並不是目的, 鬪爭是爲了使世界變得更美好的手段.(中略) 政治不能代替一切, 物質也不能代替一切.

 

이 같은 詩論을 바탕으로 顧城은 한 시대의 인간들이 함께 조우하고 당면해있는 현실을 외면하고 부정할 것이 아니라 이를 함께 추구하는 이상을 통해 용해하고 승화시켜야 하며 詩는 이를 위한 훌륭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조국을 생각하고 있었다. 조국이 우리에게 준 것과 우리가 조국에게 주어야 할 것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조국의 역사와 위대함, 그리고 조국의 불행을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내 모든 직각적 인상과 생각의 편단들을 정리하여「백주의 달」이라는 시적 필기로 엮었다.

 

我在想祖國. 在想她給予我們的, 和需要我們給予的. 在想她的歷史, 她的偉大和不幸. 我把我的一切直覺印象和思想偏斷, 整理成了一本詩體筆記 ―「白晝的月亮」.

 

하지만 그가 말한 적극적인 사회의식 역시 환상적 요소를 통한 현실의 개조를 의미한다. 결국 顧城 詩의 내포는 인간의 삶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이를 아름답게 승화시키려는 의지를 기본 원칙으로 하여 현실을 회피하지 않는 ‘현실의 또 다른 이름’으로서의 환상과 이를 통한 현실비판까지 망라하고 있으며 이 같은 의지를 강한 자아의식의 표출과 묘사로 일궈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처럼 단순하지 않은 그의 시세계를 顧城 자신은 ‘주체적 진실’과 ‘현대적 자아’의 표현으로 요약하고 있다.

 

새로운 이론에 따르면 (朦朧이란) 시의 상징성과 암시성, 깊고 어두운 관념, 중첩되는 인상, 그리고 잠재의식에 대한 의식 등을 지칭한다고 합니다. 이런 해석도 어느 정도의 의미는 있겠지만 이것들만으로는 아직 이 新詩(朦朧詩)의 중요한 특징들을 완전히 파악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 신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진실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객체의 진실에서 주체의 진실로, 피동적 반영에서 주동적 창조로의 전이를 말하는 것이지요. 근본을 놓고 따지자면 이 신시는 ‘몽롱’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심미의식의 소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按新理論是指詩的象徵性, 暗示性, 幽深的理念, 疊加的印象, 對潛意識的意識等等. 這有一定道理, 但如果但但指這些, 我覺得還是沒有抓主這類新詩的主要特徵. 這類新詩的主要特徵, 還詩眞實 ― 由客體的眞實, 趨向主體的眞實, 由被動的反映, 傾向主動的創造. 從根本上說, 它不是朦朧, 而是一種審美意識的蘇醒.

 

과거 우리의 문예와 시는 줄곧 내가 아닌 또 다른 유형의 ‘나’, 즉 자아취소, 자아회멸의 ‘나’를 선전하는 데 이용되어 왔다. 예컨데 나는 상황에 따라 모래알이 되기도 하고 길에 깔리는 돌이 되기도 했다. 때로는 톱니바퀴가 되거나 나사못이 되기도 했다. 한 마디로 말해 칠정육욕을 갖고 있고 思考와 懷疑를 할 줄 아는 인간이 아니었다. (중략) 새로운 자아는 바로 이 같은 파멸의 깨어진 기와와 벽돌조각 위에서 탄생한다. 그는 자신을 강제로 소외시켰던 거푸집을 깨뜨리고 꽃향기라고는 조금도 섞여있지 않은 바람 속에 자신의 몸을 내뻗는다. (중략) 그는 자신을 사랑하고 ‘자아’가 된 자기 즉 인간이 된 자기를 사랑한다. 때문에 그는 모든 사람과 민족, 생명과 대자연을 사랑한다. (억압과 파멸을 기도하는 기계들을 제외한 모든 것을 사랑한다.) 그는 표현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바로 현대적 특징을 갖춘 ‘자아’이고, 그것이 또한 현대 新詩의 내용이다.

 

我們過去的文藝, 詩, 一直在宣傳另一種非我的‘我’, 卽自我消失, 自我毁滅的‘我’. 如:‘我’在甚麽甚麽面前, 是一粒沙子, 一顆鋪路石子, 一個齒輪, 一個螺絲釘. 總之, 不是一個人, 不是一個會思考, 懷疑, 有七情六欲的人. (中略) 新的‘自我’, 正是在這一片瓦礫上誕生的. 他打碎了迫使他異化的模殼, 在並沒有多少花香的風中伸展着自己的軀體. (中略) 他愛自己, 愛成爲‘自我’, 成爲人的自己, 因而也就愛上了所有的人, 民族, 生命, 大自然.(除了那些企圖壓抑, 毁滅這一切機械) 他需要表現. 這就是具有現代特點的‘自我’, 這就是現代新詩的內容.

 

이처럼 顧城은 인간존재인 ‘나’로부터 출발하여 시대와 사회에 대한 자신의 사고를 표현하면서 영원히 민족의 일원으로서 노래하는 것임을 잊지 않으려 했다. 때문에 顧城의 시를 포함한 몽롱시에서 표현되는 자아는 결국 시대적 자아와 상통하는 것이다.

환상적 요소가 그의 시와 詩論 전체를 관통하는 기조이긴 하지만 이를 만족시키는 필수적이고도 상호보완적인 요소로서 自然과 生命이 수반된다.

2. 自然

顧城은 자신의 의지에 관계없이 생의 수많은 시간들을 자연과 교우하면서 살아야 했다. ‘감수성이 예민한 조숙한 아이’였을 때부터 그에겐 자연이 교사였고 친구였으며 삶의 보금자리이기도 했다. 때문에 그의 詩에는 바람, 들풀, 강, 바다, 각종 곤충과 동물, 눈, 태양, 나무 등이 주요 詩語로 자주 등장하고 있고 산문 작품도 크게 詩論的 편단과 자연과의 교감을 묘사한 우화, 또는 동화적 이야기로 대별되고 있다. 그는 천성에 의해, 또는 갈망에 의해, 아주 자연스럽게 속세를 떠나려는 바람을 갖고 있었으며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사회의 가장자리로 빠져나가 절대적 자연의 세계로 몰입하려 했다.

 

나는 자연에 감사한다. 자연이 내게 자아를 느끼게 해주었고 무수한 생명과 그 생명의 역사를 깨닫게 한 것에 대해 감사한다. 나는 자연에 감사하고 자연이 계속해서 내게 가져다주는 모든 것 ― 시와 노래에 대해 감사한다. 이것이 현실의 긴박한 전쟁 속에서, 기계의 굉음속에서 내가 여전히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자연에게) “나는 네꺼야”라고 속삭일 수 있는 이유이다.

 

我感謝自然, 使我感到了自己, 感到了無數生命和那生命的歷史, 我感謝自然, 感謝它繼續給我的一切 ― 詩和歌. 這就是爲甚麽現實緊迫的征戰中, 在機械的轟鳴中, 我仍然用最美的聲音, 低低的說我是你的.

 

顧城에게는 自然이 그의 이상세계를 건설하는 조감도가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시세계를 건축하는 주요 자재가 되고 있다. 실제로 시에 대한 감각과 감지능력, 영혼과 정신공간에 대한 천착 등이 모두 시골의 자연환경에 둘러싸여 조형된 것이다.

 

철새가 내 머리 위에서 울고 커다란 기러기가 강가에서 잠든다. 이 때 나는 길을 상상하기도 하고 직접 태양과 바람, 그리고 海灣의 한결같이 깨끗한 색갈을 마주하기도 한다.

 

候鳥在我的頭頂鳴叫, 大雁在河岸上睡去, 我可以想像道路, 可以直接面對着太陽, 風, 面對着海灣一洋干淨的顔色.

 

이 같은 자연의 음성과 빛깔 속에서 그는 자연계만이 자신의 신선하고 미묘한 감각을 환기시키고 자연으로부터 무한한 계시를 받을 수 있음을 인식한다. 이리하여 자연과의 밀착은 物我一體의 경지를 이루면서 그의 독특한 정신세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모든 빗방울마다 안에서 유영하는 무지개를 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모든 빗방울들이 정교하고 아름다운 파란색 공간을 지니고 있었고 그 안에 나와 나의 세계가 들어 있었다.

 

我看見每粒水滴中, 都有彩虹遊泳. 都有一個精美的藍空, 都有我和世界.

 

이 같은 자연과 인간존재와의 일체감은 앞에서 설명한 환상, 즉 이상세계의 실현을 위한 결정적인 수단이자 통로가 되고 있다.

3. 生命

환상과 자연에 대한 천착과 더불어 顧城 시의 주요 내용이 되고 있는 것이 생명이다. 시와 생명의 二爲一體가 바로 그의 문예관이자 인생본체론이기도 하다. 지난 10여년 동안의 新時期 文學에 있어서 생명의식에 대한 각성은 비교적 보편적인 현상이었으나 顧城이 추구하는 생명은 일반적 의미의 외재적 생존상태나 내재적 생명력의 개념과는 달리 생명 본원에 대한 깨달음에 집중되어 있다. 顧城의 생명의식은 다른 同時代 사람들에게서보다 훨씬 먼저 나타나는데 이는 ‘生의 畏敬’을 선전하는 서양 철학의 영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시인의 천부적 悟性에 의해 영혼을 의식하고 인간과 세계의 동일성을 체험하면서 생명의 내원과 귀착에 대해 숙고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생명’이라는 詩語는 그가 12살 때 부친을 따라 山東省의 해안 마을로 ‘下放’되어 황량한 해변에서 돼지를 키우며 고독한 세월을 보내고 있을 당시에 지었던「生命幻想曲」에 처음 나타나 그의 시 전체를 관통하는 주요 詩語로 자리잡는다.「生命幻想曲」은 사회로부터 유기된 한 소년의 의지할 데 없는 처량함과 함께 세계에 대한 연약한 생명의 선험적인 감각을 묘사하고 있다.

 

내가 내 발자욱을

도장인 듯 대지 위에 두루 찍어대면

세계도 내 생명 속으로

녹아들어 온다

 

我把我的足迹 / 象圖章印遍大地 / 世界也就溶進了 / 我的生命

 

이 같은 표현은 理性에 역행하는 어두운 사회에 대한 완곡한 항의이자 현실을 초월한 인간과 세계의 관계에 대한 이해라고 할 수 있다. 顧城은 이 때 이미 생명을 위한 또 다른 존재방식을 설정해두었다.

 

나는 부르리라

인간의 노래를

천백 년 후에

우주 한가운데 울려퍼지도록

 

我要唱 / 一支人類的歌曲 / 千百年後 / 在宇宙中共鳴

 

顧城에게 있어서 詩作은 생활에 대한 발언이라기보다는 生命의 內在的 完成이며 일종의 자아실현의 방법인 것이다.

 

나는 내 일을 완성하고 싶다. 생명이 다할 때쯤 과실을 남기고 싶다. 나는 내 생명에 정해진 일을 완수하고 싶다. 즉, 생명으로써 세계를 건설하고 그 세계로써 내 생명을 완성하고 싶다.

 

我要做完我的工作, 在生命飄逝時, 留下果實. 我要完成我命裡注定的工作 ― 用生命建造那個世界, 用那世界來完成生命.

 

그가 건설하고자 하는 세계는 자신이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는 ‘세계보다 높은 天國’, ‘詩를 위한 童話의 樂園’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예술세계는 다분히 외향적이고 이타적이며 인류의 이상을 반영하는 성질을 갖는 동시에 내향적이고 自愛的이며 인생의 자아실현의 경로가 된다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한편 생명의식에 대한 천착은 영혼에 대한 문제와 아울러 피안의 세계, 즉 죽음의 문제로 귀결되지 않을 수 없다. 이점에 대해 顧城은 생명의 필연적 歸宿을 인식하고 있다.

 

아무도 그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태양에 뜨겁게 달궈진 모든 생명은

멀리 가지 못한다는 것을

곧 다가올 어둔 밤을 멀리 피하지 못한다는 것을

죽음은 세심한 농부처럼

한 알의 보리도 놓치지 않는다는 것을.

 

被太陽曬熱的所有生命 / 都不能遠去 / 遠離卽將來臨的黑夜 / 死亡是位細心的收穫者 / 不會丢下一穗大麥.

 

죽음은 아무도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顧城에게는 이것이 생명의 종말이 아닌 ‘歸宿’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는 자연의 일부인 인간의 생명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또 다른 형태의 자연으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顧城 詩의 주요 내용이자 소재가 되고 있는 自然과 幻想과 生命은 서로 분리된 개념이 아니라 서로 밀접한 순환 내지 의존관계를 갖는 三位一體的 요소이다. 자연은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생명의 구현체요, 환상은 생명으로 향하는 통로이자 수단이며 생명은 환상과 자연의 속성이 되는 것이다. 사실 幻想과 自然, 生命은 한 가지 실체에서 나타나는 세 가지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자연, 환상, 생명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顧城의 詩世界를 이루는 골간이며 이것이 서론에서 열거한 다른 朦朧詩人들과 작품에 있어서 확연한 차별성을 갖게 해주면서 그를 新詩潮에 있어서 ‘浪漫主義의 復活’을 상징하는 대표적 시인으로 부각시키는 근거가 되고 있다.

Ⅲ. 맺는 글

顧城은 37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함으로써 20여년의 창작생활을 마감하긴 했지만 北島, 舒婷, 江河, 楊煉, 芒克 등과 더불어 중국의 80년대 詩壇을 대표하는 주요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그가 생명과 환상에의 천착이라는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통해 중국 當代詩歌史에 이른바 ‘新詩潮의 前衛詩人’ 의 하나로 기록되면서 문혁 이전의 관료주의 문학을 타파하고 진정한 의미의 문학정신을 회복하는 데 한 몫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그가 뉴질랜드에서의 의문의 죽음으로 인해 그간 쌓아놓은 문학적 성취에 대한 평가마저 잠식당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의 문학세계에 대한 다양한 각도의 평가와 해석이 부단히 시도되고 있고 중국 당대문학사에서의 위상도 상당한 비중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顧城은 초기 작품에서 소년적 감수성으로 왜곡된 역사현실이 가져다준 고통과 좌절을 정확히 읽어냄으로써 어느 정도의 현실참여 경향을 보이다가 시적 내포의 확대와 더불어 80년대로 들어서면서 환상에의 천착으로 인해 다소 현실도피적이고 추상적인 관념의 유희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그에게 있어서의 환상 또는 꿈은 진실을 구현하는 하나의 방법이며 결국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아름답게 실현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그의 산문에 나타난 詩論的 편린들에서 잘 나타나있듯이 역사현실에 의해 소외되지 않은 주체적 진실의 표현과 자유를 본질로 하는 현대적 자아의 추구,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한 생명과 환상에의 천착으로 요약할 수 있다.

중국에서 문혁이 끝나고 개혁, 개방 정책이 실시된 지 20여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정치경제의 안정과 더불어 문예를 비롯한 문화 전반에 안정적인 발전추세를 보이고 있으나 文革이라는 특수한 역사현실이 가져다주었던 청년시인들의 분노와 감정, 그리고 시적 상상력이 위축되면서 변화된 현실에 대한 文學的 解釋이 80년대처럼 그렇게 활발하진 못한 실정이다. 한편 이미 시단 일각에서는 ‘後朦朧’이라는 시파가 나타나 초기 몽롱시의 진지한 문학정신을 희석시키면서 치열한 문학정신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몽롱시’가 이제 정리의 단계에 이르렀음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 국내에서도 그 동안 이루어져왔던 중국 當代詩歌에 대한 부분적인 해석과 이해를 종합하고 다소 미진했던 부분들에 대한 연구를 서둘러 중국 新詩史에 굵은 획을 그었던 몽롱시파의 작가와 작품에 대한 정확한 자리 매김을 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먼저 作家別 심층연구가 이루어져야 하고 아울러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하나의 ‘文統’으로 整理해냄으로서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의 中國 當代詩歌에 나타난 文學現象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작업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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