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몸이 하나니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한참을 서서
낮은 수풀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
멀리 끝까지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 생각했지요
풀이 무성하고 발길을 부르는 듯했으니까요
그 길도 걷다 보면 지나간 자취가
두 길을 거의 같도록 하겠지만요
그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놓여 있었고
낙엽 위로는 아무런 발자국도 없었습니다
아, 나는 한쪽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 놓았습니다!
길이란 이어져 있어 계속 가야만 한다는 걸 알기에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거라 여기면서요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시를 말하다
정끝별 l 시인
“샘을 치러 나가 볼까 합니다;/ 그저 물 위의 나뭇잎이나 건져내려구요/ (물이 맑아지는 걸 지켜볼는지도 모르겠어요)/ 오래 안 걸릴 거예요. 같이 가시지요.// 엄마소 옆에 있는 어린/ 송아지를 데리러 가려구 해요. 너무 어려서/ 엄마소가 핥으면 비틀거리지요./ 오래 안 걸릴 거예요. 같이 가시지요”(‘목장’). 이런 청혼의 시를 받고 결혼하려 했으나 정작 그럴 듯한 청혼도 없이 결혼하고 말았다. “나는 자작나무 타듯 살아가고 싶다./ 하늘을 향해, 설백(雪白)의 줄기를 타고 검은 가지에 올라/ 나무가 더 견디지 못할 만큼 높이 올라갔다가/ 가지 끝을 늘어뜨려 다시 땅 위에 내려오듯 살고 싶다.”(‘자작나무’) 야곱의 사다리를 연상케 하는 이 아름다운 시에 버금가는 시를 써 보려 했으나 이 구절들을 몽타주한 시 한 편을 썼을 뿐이다. ▶로버트 프로스트, 1910
한때는 ‘프로스트’와 ‘프루스트’를 헛갈려 했던 적도 있으나, 다른 한때는 프로스트의 시들이 내 시의 교본이었던 적도 있다. 누군가 말했듯 “프로스트는 프로스트(frost, 서리)”다. 그의 시가 은유의 교본이었듯 이 말 또한 은유다. ‘자연’과 ‘사실’과 ‘순간’에 집중했던 프로스트의 시는 담백하면서도 그윽한 깊이가 있으며, 서늘한 계시처럼 우리의 정신을 청량하게 한다. 그러니까 아침의 서리인 듯, 햇살을 반사하면서 녹아드는 흰빛의 그 무엇인 듯, 어렴풋한 순간 속의 깊은 속삭임인 듯, 작고 평범한 사실 속에 숨어 있는 충만한 기쁨을 선사하곤 한다. 그가 좋아했던 ‘낫’과 ‘펜’으로 그는, “생각을 일구는 행위”이자 “행위가 된 언어”로서의 시의 씨앗들을 일구었던 것이다.
프로스트는 내게 가장 미국적인 시인이기도 하다. 프로스트는 존 F.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되어 “우리가 이 땅의 우리이기 전 이 땅은 우리의 땅”으로 시작하는 축시를 낭독했다. 그리고 2년 후, 암살되기 열 달 전의 케네디는 프로스트의 죽음에 부쳐 “‘오늘, 로버트 프로스트를 추모하는 이날은”으로 시작하는 추모사를 전했다. 그는 또한 미국적인 삶과 정서와 정신을 가장 잘 표현한 시인이었고 무엇보다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었다. 젊은 시절의 실의와 방황을 거쳐 구두점 주인, 주간지 기자, 농장 경영 등을 섭렵했던 삶의 편력, 노동과 전원과 종교를 터전으로 삼아 대자연의 긍정을 지향했던 성찰과 예지, 일상생활에서 발견한 은유의 언어 등이 모두 그가 대중성을 체화하고 ‘대중 시인(public poet)’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가지 않은 길’은 프로스트가 실의에 빠져 있던 20대 중반에 쓴 시이다. 변변한 직업도 없었고 문단에서도 인정받지 못했던 시기였고, 이 대학 저 대학에서 공부는 했으나 학위를 받지는 못한 채 기관지 계통의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당시 집 앞에는 숲으로 이어지는 두 갈래 길이 있었는데 그 길과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며 이 시를 썼다고 전한다. 원제인 ‘The road not taken’은 가지 않은 길, 가지 못한 길, 가보지 않은 길, 걸어보지 못한 길 등으로 번역되는데, 나는 선택적 의지가 강조된 ‘가지 않은 길’로 번역된 것을 좋아한다. 세상 모든 길은 두 갈래 길로 나뉜다. 간 길과 가지 않은 길, 알려진 길과 알려지지 않은 길, 길 있는 길과 길 없는 길! 삶이라는 이름 아래, 선택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한 길만을 걸어야 한다. 그 누구도 두 길을 걸을 수는 없다. 평등한, 인간의 조건이다. 한 길에 한번 들어서는 순간, 결코 되돌아올 수도 없다. 시간을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다.
뉴햄프셔 데리에 있는 로버트 프로스트 농장. 프로스트는 이곳에서 많은 명시들을 썼다.
아침, 가을 단풍이 노랗게 혹은 붉게 든 숲 속으로 난 두 갈래 길은 유혹적이다. 두 길이 모두 못지않게 아름답고, 쌓인 낙엽 위에 그 어떤 발자국도 없다면 더욱! 자,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시인은,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고 그 선택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한다. 그러니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사람들이 적게 갔었기에 선택할 수 있었던 길인 동시에, 그 길을 택함으로써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이기도 하다. 그 선택이 아름다운 선택이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러나, 선택보다 우연 혹은 운명이 앞선 것이었다면? 그 선택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은 것은 것이 아니라, 실은, 예정된 우연이나 운명의 길을 간 것이었다면?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다./ 하지만 지켜야 할 약속이 있어,/ 잠들기 전에 가야 할 길이 있다,/ 잠들기 전에 가야 할 길이 있다.”(‘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매일 매일이라는 그리고 가야 할 길이라는 약속이 있기에 우리는 가야만 한다. 인생의 강자는 간 길에 대해 말이 없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서는 더더욱! “문에 다다르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문에 다다르게 되”(‘반드시 집에 가야지’)는 것처럼, 한 길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한 길을 걷게 되었을 뿐… 단지, “어느 가지에는/ 따지 않은 사과가 두세 개는 있을 것이”고, “아직도 나의 두 갈래 긴 사닥다리는 나뭇가지 사이로/ 천국을 향하여 뻗어 있”(‘사과를 따고 나서’)을 것이다. 또 한 해가 저물고 있다.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3.26-1963.1.29) 187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10세 때 아버지가 변사하여 뉴잉글랜드로 이주, 오랫동안 버몬트의 농장에서 청경우독(晴耕雨讀)의 생활을 계속하였다. 이때의 농장 생활 경험을 살려 소박한 농민과 자연을 노래해 현대 미국 시인 중 가장 순수한 고전적 시인으로 꼽힌다. 그 후 교사, 신문기자로 전전하다가 1912년 영국에 건너갔는데, 그것이 시인으로서의 새로운 출발이 되었다. 에드워드 토머스, 루퍼트 브룩 등의 영국 시인과 친교를 맺었으며, 그들의 추천으로 첫 시집 <소년의 의지>가 출간되었고, 이어 <보스턴의 북쪽>이 출간됨으로써 시인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1915년에 귀국하여 미국에서도 신진 시인으로 환영받았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에 자작시를 낭송하는 등 미국의 계관시인적(桂冠詩人的) 존재였으며, 퓰리처상을 4회 수상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위 두 시집 외에 <보스턴의 북쪽>, <산의 골짜기>, <뉴햄프셔>, <자비의 가면> 등이 있다.
글 정끝별 1988년 <문학사상>에 시가,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된 후 시 쓰기와 평론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시집으로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 <삼천갑자 복사빛>, <와락>, 시론과 평론집에 <패러디 시학>, <천 개의 혀를 가진 시의 언어>, <오룩의 노래>, <파이의 시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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