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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학의 미래를 생각하며
2015년 04월 20일 18시 13분  조회:3875  추천:0  작성자: 죽림

한국 시문학의 미래는 어둡다

 

  다시 말한다. 한국 시문학의 미래는 어둡다

문예지의 수, 등단자의 수, 전체 시인의 수를 보면 양적으로는 분명히 풍요로워졌다. 시집을 시리즈로 펴내던 유명 출판사에서 연간 시집 발행 권수를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집은 여전히 엄청나게 많이 출간되고 있다. 인터넷상의 시 동호인 모임이 활성화되고 있으며 인터넷 온라인을 통한 작품 공모가 붐을 이루고 있다. 문예창작학과가 있는 대학이 50개 정도로 늘어났으며 정규 학제가 아닌 대학 사회교육원을 비롯한 각종 문학 사숙도 번창 일로에 있다. 이러한 양적 풍요가 질적 심화를 가져오지 않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1970~80년대에 비해 90년대의 시집 판매량은 뚝 떨어졌고, 2000년대에 들어서서 서점가에서 시집은 거의 팔리지 않는 품목이다. 설사 팔린다 하더라도 이른바 ‘베스트셀러 시집’과 류시화나 김용택 같은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시인이 선정하여 해설을 붙인 시선집에 국한되어 있다. 오늘날 시단에는 별다른 화제가 없고, 문학평론가들의 담론은 맥을 잃고 있으며, 독자와 평론가들한테서 특별히 주목받는 정통문학권의 시집도 없는 듯하다. 작품은 많이 생산되고 있지만 좋은 작품이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 활발한 비평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 독자의 호응이 사라졌다는 것은 삼박자를 이루어 총체적인 위기 상황이 야기되고 있다. 여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활자 문화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영상 문화가 잠식함으로써 오늘날의 대중은 시집 같은 데서 마음의 양식을 구하지 않고 재미있는 영화․텔레비전․비디오․만화를 보고 있으며, 컴퓨터 앞에 앉아서 게임을 하거나 채팅을 하거나 정보를 검색하는 데 여념이 없다. 책을 읽더라도 실생활과 처세술에 관련된 책이 아니면 황당무계한 판타지 소설을 주로 본다.

 

  노벨문학상이 발표되는 때가 오면 간혹 나는 이런 생각에 잠기곤 한다. 수상의 여부와 관계없이,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는 시인․소설가를 배출한 나라에 비해 우리 문학이 무엇이 부족한가 하고. 20세기 100년만 놓고 보더라도 프랑스, 영국, 미국, 러시아, 일본, 중남미 여러 나라 등과 견주어 우리에게 부족한 요소가 도대체 무엇일까. 국력의 문제? 번역의 문제? 문학적 토양의 문제? 세계어가 아닐 뿐만 아니라 외국인이 배우기에는 어려운 언어인 한국어의 특수성 때문? 시대적 환경의 문제? 어느 한두 가지 문제라기보다는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우리 문학이 세계 문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적절한 처방을 내릴 자신이 내게는 없다. 그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며, 이 자리에서 제법 그럴듯한 처방전을 제시한다고 한들 그것이 우리 문단에 큰 파문을 일으켜 하루아침에 왕성한 피돌기를 할 리가 없다. 나는 다만 내가 써온 시를 반성하며 더 좋은 시를 쓰기 위해 자성록을 써볼까 한다. 그럼 이제까지보다 조금 나은 시를 쓸 수 있는 해법도 도출되지 않겠는가. 희망 사항일 뿐일지도 모르지만.

 

  1. 우리 시단은 참으로 완고하다

 

  우리 문단은 장르를 넘나드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시와 소설을 겸하는 이가 있다고 했을 때, 그는 한 우물이라도 제대로 파지 않으면서 욕심만 많다고 욕을 많이 들을 것이다. 내가 바로 그 장본인이다. 나는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하고 나서 5년 뒤에 운 좋게 다시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었다. 그때 어떤 문학평론가가 “이형, 다음엔 문학평론이나 희곡을 써 또 상금 타 먹을 거죠?”라고 놀려 퍽 당황한 적이 있다. 소설 쓰지 말라는 말을 여기저기서 적어도 스무 번 이상은 들었다. 어느 장르로 등단한 뒤에 다른 장르의 글을 쓰면 대뜸 외도를 한 것으로 간주하는데, 이는 우리 문단의 완고함을 말해주는 사례이다.

 

  문학적 역량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학연과 지역 연고, 등단 지면, 그리고 활동 범위라고 한다면 그렇지 않다고 부정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리고 우리 시단은 새로운 목소리에 귀를 잘 기울이지 않는다. 1980년대 초반의 우리 시단에는 실험 정신이 충일한 세 명의 시인이 있었다. 이성복ㆍ박남철ㆍ황지우의 시에는 해체시니 실험시니 형태파괴시니 하는 명칭이 따라다녔다. 그들의 시를 어떻게 통칭하든 간에 그 이전의 시들과는 변별되는 요소가 확실히 있었다. 전통적인 서정시의 문법으로는 체제 수호적인 작품밖에 더 쓰겠냐는 이들의 반항 정신(혹은 부정 정신)은 우리 시를 무척 풍요롭게 하였다. 이들의 시정신은 80년대 후반에 장정일ㆍ김영승 등이, 90년대에 유하ㆍ함민복ㆍ장경린ㆍ박서원ㆍ박상순 등이 잇는다. 시에서의 실험 정신을 용인하지 않는 90년대 시단의 풍토는 이들의 팔에서 힘을 앗아간다. 실험 정신이 충만한 작품과 더불어 이른바 민중시의 위세도 꺾여 순수서정시가 득세한 시대가 바로 90년대였다. 서정시를 쓰는 시인들에게는 비평적 조명이 따뜻하게, 아니 뜨겁게 내리쬐었으나 실험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아류로 취급되면서 매도당했다. 한편 민중시는 소련 연방의 해체와 동구 공산권의 자본주의 체제 도입 이후 갑자기 맥을 놓아 서정시로 자리바꿈을 하였다. 그러자 앞서 거론한 시인 중 혹자는 불교의 세계의 귀의하여 현실로부터 떠나버렸고, 혹자는 시를 버리고 산문의 세계로 갔으며, 혹자는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을 근본으로 하는 서정적 자아 탐색의 길로 떠나버렸다. 90년대 시단에는 그래서 새로운 형식의 시(형식은 정신을 낳는다)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과거 신동엽이나 김수영 같은 치열한 정신과의 만남도 어렵게 되었다. 시대의 이단자가 새로운 사조를 창조하는 법이다. 우리네 문단 풍토에서는 보들레르도 랭보도 나올 수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성귀수 시인의 시집과 평론집이 나오지 않는 데 대해 많은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는데 등단 십수 년 만인 2004년에 첫 시집이 나왔다. 이 시집은 너무 늦게 출간되는 바람에(내 생각에는 그렇다) 비평적 조명을 전혀 받지 못하고 묻혀버렸다. 그리고 시대의 변화를 어쩔 수 없이 반영한 결과이겠지만 박노해ㆍ백무산ㆍ김신용ㆍ유용주 등 몇 분 시인의 작품이 근년에 들어 현실에서 벗어나 관념화되어가고 철학적 사변이 늘어난 데 대해 다소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2. 우리 시에는 ‘서사’가 많지 않다

 

  과거 정족(鼎足)의 관계를 이루던 실험시ㆍ민중시ㆍ서정시는 90년대에 들어 어느덧 서정시만 살아남아 승승장구하게 되었다. 내 내면 세계에 대한 정밀한 탐구가 주류를 이룬 것은 우리 시문학 전체의 진폭을 생각할 때 그리 환영할 일이 못 된다. 일반 독자들로부터 오늘날 이 땅의 시는 별 재미도 없고 큰 감동도 없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서구의 시, 특히 프랑스 상징주의, 독일 표현주의, 엘리엇으로 대표되는 영미 주지주의의 시를 읽다 보면 ‘서정’이 ‘서사’의 자리를 빼앗은 것이, ‘정감’이 ‘지성’의 세계를 빼앗은 것이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고 자꾸만 생각된다. 김동환의 「국경의 밤」 이래 서사시가 많이 씌어지지 않은 우리네 특유의 문단 풍토도 그렇거니와, 풍자시가 크게 환영받지 못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가 아닐까. 우리를 일상적 삶을 옥죄고 있는 정치와 경제, 사회구조와 인간관계를 따져볼 때, 서사시와 풍자시가 많이 나와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회를 향한 목소리는 완전히 잦아든 느낌이 든다. 신동엽의 「錦江」이나 김지하의 「五賊」 같은 시를 읽고 싶어하는 사람이 나 혼자뿐일까. 한때 이야기시론을 주창하며 시 속에다 이야기를 담고자 애썼던 최두석의 작업이 나는 무척 그립다. 백석의 시가 점점 더 좋아지는 이유도 ‘서사’에 대한 갈망 때문일 것이다.

 

  3. 현대시는 운문을 버리고 산문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 시의 상당수가 산문시가 아니고 그냥 산문이다.

 

산문이 산문시가 되지 않으면 잡문이 된다. 시라는 것이 행과 연 구분은 대충 되어 있지만 문장들이 길고 난삽하기 이를 데 없다.

 

어떤 시는 한 개의 문장이 5~6행까지 이어지고 심지어는 7~8행까지 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 문장도 우리 구문법에 어긋나는 것이 많고 영어와 일어 번역체 분장까지 있다.

 

 산문시이지만 정진규의 산문시는 오히려 내재율을 갖추고 있다. 문장이 짧아 속도감이 있고 은유와 상징이 적절히 깔려 있어 읽는 맛이 난다. 그런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문예지상의 수많은 시가 외양은 시 같지만 분명한 산문이라 잘 읽히지도 않을 뿐 아니라 시다운 맛이 없다.

 

반면에 독자의 사랑을 듬뿍 받아 베스트셀러가 된 시집은 운율을 적절히 지니고 있어서 잘 읽힌다. 많은 말을 하지 않고 단순 소박하되 내용은 사실상 별 볼 것이 없다.

 

 잃어버린 운율을 되찾아야만 시가 산문과 다름을 보여주어 우리 시의 활로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4. 시인은 우리말의 파수꾼이 아닌가

 

  시인은 모국어를 사수하고 잘 가꾸어 후손에 물려주는 역할을 하는 언어의 파수꾼인데 여기에 대한 자각이 부족한 것도 문제이다. 참으로 심각한 것은 시어 구사에 있다. 비어ㆍ속어ㆍ욕설ㆍ육담ㆍ유행어ㆍ외래어 등은 우리 현대시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지만 순 우리말은 발견하기가 정말 어렵다. 그래서 시집 그 자체가 우리말의 보고인 영랑과 백석의 작업이 참으로 위대한 것이었다고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다. 그 어떤 형식에 구애됨이 없는 실험시건, 민중의 언어를 사용하고 민중에게 어필한다는 민중시건, 감정의 자연스런 발로인 서정시건 상관이 없다. 시인들이 나서서 우리말 파괴 공작에 열중하고 있다. 시대 상황이나 주제 의식을 배제하고 시어만을 보자.

 

미군이 없으면

삼팔선이 터지나요

삼팔선이 터지면

대창에 찔린 깨구락지처럼

든든하던 부자들 배도 터지고요.

 

       ―김남주, 「다 쓴 시」 전문

 

총칼 한번 휘둘러

수천 시민을 살해한 놈은

대통령이 되어 청와대로 가고

 

주먹 한번 휘둘러

뺨 한 대 때린 놈은

폭력배가 되어 가막소로 가고.

 

       ―김남주, 「깡패들」 전문

 

쳐라 쳐라 폭력테러로

좌경용공 구속조치 탄압의 쇠망치로

네놈들이 미쳐 날뛰어 치면 칠수록

나는 시퍼런 칼날로 일어설 것이다

이제 무너져야 할 것은 네놈들의

자본의 황금탑이다

 

네놈들이 짓밟고 치면 칠수록

시퍼런 칼날 되어 내가 일어서고

내 아내가 일어서고 우리 동지가 일어서고

이 공장 저 공단 전국의 노동자가

우뚝우뚝 일떠서 손을 치켜드는 날

공고한 자본가 세상은 모래성처럼 무너져

피 비린 총칼은 수수깡처럼 흩어져

끝내 한줌 먼지로 화하고 말 것이다

 

       ―박노해, 「무너진 탑」 부분

 

     ―WXY 그려진 W.C 入口

     非常口 같은 膣口

     都市는, 아 고녀석 자지도 굵다

     까만 데만 25㎝네, 이젠, 凱旋門도

     疥癬, 改善, 개, 個個, 砲門도 이젠

     이젠 揷入 以前에 끝난단다, 少女야

     찢어지지 않아서 좋겠다, 좆 컸다

 

美童들아

脚뜬 유방과 히프 한 사라

※ 사라 : dish․皿․접시

200₩어치는 안 판다고요?

 

      ―김영승, 「반성 784」 부분

 

  때로는 과격하게, 때로는 적나라하게 쓸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인 이유가 있긴 했었지만 시를 꼭 이렇게 써야 했던가 하는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언어의 조탁이나 퇴고의 힘든 과정은 고사하고 폭언이나 욕설처럼 난폭하기 짝이 없는 이런 시의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다. 그런 점에서 홍명희ㆍ박경리ㆍ김주영ㆍ최명희ㆍ김소진 등 소설 쪽에서의 작업이 많이 부럽다. 시인이 우리말을 사랑하고 돌보지 않는다면 누가 그 역할을 할 것인가.

 

  5. 전통과의 단절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오래 전부터 전통 계승론과 단절론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지만 ‘골계미’의 측면에서 보자면 단절이 분명하다. 전통과의 단절은 우선 근대문학 성립 과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최남선이 쓴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와 이광수가 쓴 「무정」으로부터 우리 근대 문학이 시작된다고 하자. 두 사람은 그 당시 홍안의 청년이었고, 일본 유학도였으며, 한동안 천상천하를 이 두 사람이 휘어잡았다. 두 사람의 뒤를 이어 동인지 문단 시대를 전개한 사람들도 당대 사회에 있어 최고의 엘리트들이었다. 후일 최남선이 시조부흥운동을 전개하긴 했지만 신문학 초기에 전통의 계승 같은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전통의 계승 따위가 문제가 아니라 계승에 대한 부정의 정신이 우리 신문학의 문을 열고 길을 닦아나갔던 것이다. 인간의 정신세계를 다루는 것이 문학일진대 조선조 후기의 그 좋은 문학적 전통이 근․현대 문학으로 뻗어나가질 못했다. 서양 문물이 쏟아져 들어온 개화기부터 서민 문학이 죽고 귀족 문학이 살아남게 되었다.

 

  조선조 전기와 후기는 어떻게 다른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뒤 정치는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워졌고 국민의 생활은 더욱 궁핍해졌다. 자연히 귀족 계급의 무능은 폭로되었고 평민 계급의 자의식은 싹텄다. 또한 훈민정음 반포 후 100년이 지나는 동안 평민과 부녀자들 사이에 한글이 널리 보급되어 우리말로 인간 생활을 표현하는 일이 아주 자연스럽게 되었다. 이에 따라 귀족 계급의 문학은 쇠퇴해졌고 평민 계급의 문학이 발달하였다. 대표적인 문학은 사설시조ㆍ평민가사ㆍ수필ㆍ소설ㆍ판소리 등이다. 우리의 시조는 조선조 후기, 윤선도의 등장과 사설시조의 성행으로 수많은 수작들이 나왔다. 사가문학은 박인로가 벽두를 장식한 이후 내방가사․평민가사․잡가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나왔다. 설화를 창곡화(唱曲化)한 판소리는 원래 열두 마당이 있었으나 신재효가 여섯 마당을 가려내 독특하게 개작하여 우리 서민 문학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조선조 후기에는 이밖에도 지방마다 들놀음․오광대놀이․산대놀이․탈춤 등 민속극이 행해져 서민들의 애환을 달랬다. 그러나 서구 문예사조의 난입, 특히 낭만주의와 모더니즘의 수입 이래 그런 것은 문학이 아닌 것으로 치부되었다. 자유시는 곧 모더니즘과 상징주의를 표방한 것이어서 우리는 형식에 있어서는 운율을, 미학적 측면에 있어서는 골계미를 잃어버렸다. 김동환과 김소월로 대표되는 민요조 서정시가 있었고, 그 전통이 신경림과 김용택의 시에까지 흘렀지만 후배 시인들에게 끼친 영향력에 있어서는 모더니즘 표방 시의 위력에 당할 수는 없었다.

 

  6. 우리 시는 전반적으로 유약하다

 

  우리 시문학은 일제 강점기 36년 동안 탐스런 열매를 많이 맺었고 아름다운 꽃도 숱하게 피웠다. 그런데 민족의 수난기에 우리 시문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순수서정시가 시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그 때문에 블레이크․워즈워드․콜리지․셸리․키츠․바이런 등으로 대표되는 서구의 낭만주의와는 달리 퇴폐적이고 감상적인 낭만주의가 우리 시문학에 깊게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그 영향은 일제시대 전체를 관류하였고, 해방 이후 오늘날까지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나라를 빼앗긴 상황에서 젊은이들이 부를 수 있는 노래는 비가였다. 밝은 미래를 예감케 하는 웅혼한 기백의 정서, 진취적인 기상의 정서는 한국 현대시의 문맥에서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언젠가 나는 서정주의 「바다」를 논하면서 다음과 같이 개탄한 바 있다.

 

  일제에 의해 목숨을 잃었으며, 저항의 의지가 뚜렷한 시를 남긴 이육사와 윤동주의 시에도 감상과 회한은 조금씩이나마 배어 있었고, 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나 소월의 「招魂」, 영랑의 「毒을 차고」 같은 절창도 그의 전 작품을 통해서 볼 때는 예외적인 작품에 속했다. 유치환의 「생명의 書」와 김춘수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을 줄줄 외울 수 있었던 나는 그런 힘찬 시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니 자연히 「국화 옆에서」「春香遺文」「귀촉도」 등 서정주의 여러 시를 애송하면서도 이들 작품이 지나치게 고색창연하거나 유약하게 느껴져 그다지 만족스럽게 생각되지 않는 것이었다. 일제 강점기 시인들의 나라 잃은 슬픔이 오죽했으랴만 때때로 고구려 사람들의 웅혼한 기백의 정서, 백제 사람들의 진취적 기상의 정서를 보여줄 수는 없었던 것일까. 향가의 박진감, 사설시조와 판소리의 비판정신, 민요의 민중정서, 무가의 상상력, 한시의 선비정신, 선시의 불교정신 중 우리 현대시는 한 가지도 배울 수 없었던 말인가. 도대체 시에 강인함이란 것을 찾아보기 어려웠으니, 서구 낭만주의를 우리는 완전히 왜곡해서 받아들였던 셈이었다.

 

                                                                                                    ―「진취적인 기백의 정서」, 『詩의 아포리아를 넘어서』, 이숭원 외, 이룸, 2001.

 

  지금 읽어보니 지나치게 흥분해서 쓴 감이 있다. 우리 시의 유약함에 대한 평소의 불만이 엉뚱한 자리에서 터뜨려진 것이었다. 남성 시인의 시에 여성 화자가 지나치게 많이 등장하는 것과 센티멘털리즘은 우리 시의 고질이면서 나의 고질이다.

 

  7. 현실 반영만큼 중요한 것이 형이상학이다

 

  존재론적인 시가 드문 것도 한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싶다. 1926년에 한용운이 자비로 출간한 『님의 침묵』이 참으로 대단한 것은, 불교적인 세계관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현실에서 일탈하지 않았다는 점과, 형이상학적인 세계를 지향하면서도 연애시풍으로 써 관념의 세계로 빠져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시 역시도 리얼리즘 소설처럼 현실을 반영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시인의 상상력이 현실에 뿌리내리고 있지 않을 때, 그것은 그야말로 사상누각이다. 하지만 시가 지향하는 세계가 그 어떤 궁극적인 실체를 만나기 위한 힘든 도정일 수 있고,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탐색일 수도 있으며, 우주와 인간의 신비에 대한 치열한 연구일 수도 있다. 한용운 이래 우리는 이 광활한 세계를 너무 무시하고 시를 써온 것이 아닐까. 몇 해 전에 구상 시인과 대담을 한 적이 있는데, 시인의 말씀 중 시를 쓸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 생래적으로, 또 문학적 전통으로 봐도 로고스적인 면보다 파토스적인 면이 강하지요. 감성적인 면이 강하기 때문에 자연 서정이나 정한 같은 것이 흔히 소재가 되지요. 그래서 존재론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인식의 세계가 한국 시인들에게는 결핍된 거라 봅니다. 기독교인들도 불교인들도 시를 쓰고 있지만 독자적인 고뇌, 즉 등가량의 진실과 오뇌(懊惱)가 보여야 하는데 그런 것이 부족해 보여요. 자기가 혼자서 초탈한 체하는 시에는, 또 선사가 법어를 하는 식의 시 속에는 진실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기어(綺語)의 죄에 해당하는 거죠. (……) 말에는 신비한 힘이 있습니다. 겉으로 번드르르하게 외면치레를 할 게 아니라 감동을 주는 말을 해야 하는데, 오늘날에는 시인들조차 말의 치장만을 노리고 있습니다.

 

                                                                                                                       ―「진리의 증득을 위한 몸부림의 문학을」, 『라쁠륨』, 1999. 여름.

 

  노시인의 질타는 우리 시의 취약점에 대한 일갈이면서 사실상 나를 향한 꾸지람이었다. 너는 왜 허구한 날 그런 가벼운 시만 쓰고 있느냐, 이제는 좀 시다운 시를 써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말씀’이어서 속이 뜨끔뜨끔하였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우리 시의 취약점은 이상 일곱 가지 정도이다. 다 시를 쓰고 있는 내가 극복해야 될 문제이므로 그 누구를 탓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영상 매체의 쇄도에 주눅들지 말고 우리 시문학사를 주옥으로 수놓을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체계도 없이, 생각나는 대로 말을 많이 늘어놓았다. 구상 시인의 말대로 나야말로 기어의 죄를 짓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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