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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와 "괜찮다"의 시인 천상병
전 태 익 (문단잡기/예술인들의 괴벽과 기행) 中
1967년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여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그 일이 화근이 되어 극도로 피폐해진 시인, 천상병 ! 그가 길가에 쓰러진 행려병자로 취급되어
정신병원에 누워있을 때 동도 시인들이 유고시집을 낸바 있다.
막걸리로 끼니를 때우던 그의 기행은 상상을 초월한다.
술에 취해 친구의 신혼 단칸방에서 오줌을 싼 일, 여류 소설가의 집에 기거하면서
한밤중에 부부가 자는 방에 몰래 들어가 양주병으로 잘못 알고 향수를 마신 일,
동가식 서가숙하며 만나는 친구마다 "백원만, 이백원만"하며 막걸리 값을 구걸하던 일,,,,
이 땅의 마지막 순수 시인이었던 그는
"소능조", "귀천", "새"등 주옥 같은 시를 남겼다.
(아버지 어머니는/고향 산소에 있고/외톨배기 나는/서울에 있고/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여비가 없으니/가지 못한다/저승 가는데도/여비가 든다면/나는 영영/가지도 못하나?)
그런데 그는 몇해 전에 여비 한 푼 없이 잘만 갔다.
"귀천"이란 시에서 밝혔듯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이 세상 소풍 끝내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는 아름다운 새로 환생하여"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고 시에서 읊었듯이
생전의 약속처럼 그렇게 말하고 있다.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새 한 마리 새"가 되어
이 가지에서 저가지로, 서울에서 부산으로 아니 가는 곳이 없다.
그는 저승에서도,
"언덕에 서서 내가 짐승처럼 서러움에 울고 있는 까닭은 강물이 모두 바다로만 흐르는
까닭은 아니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돈과 권력과 명예, 세속적 가치는 하찮게 여기고 장주壯周처럼 초월적 세계에서 유유자적했던 시인,
언제나 순수하고 천진난만했던 일곱살짜리 천상병 !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를 연발하며 입을 씰룩거렸던 그 모습 !
그는 일찍이 용庸을 터득하여 이 것을 따랐을 뿐, 그런 까닭조차 의식하려 하지 않았다.
인사동 골목, 목순옥 여사가 경영하는 "귀천"이라는 찻집은 지금도 손님이 많은지 궁금하다.
천상병[千祥炳]
일본 효고현 히메지시에서 출생. 1955년 서울대학교 상과대 4년 중퇴.
1949년 마산중학 5학년 때, 《죽순(竹筍)》 11집에 시 《공상(空想)》 외 1편을 추천받았고, 1952년 《문예(文藝)》에 《강물》 《갈매기》 등을 추천받은 후 여러 문예지에 시와 평론 등을 발표했다.
1967년 7월 동베를린공작단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가난 ·무직 ·방탕 ·주벽 등으로 많은 일화를 남긴 그는 우주의 근원, 죽음과 피안, 인생의 비통한 현실 등을 간결하게 압축한 시를 썼다.
1971년 가을 문우들이 주선해서 내준 제1시집 《새》는 그가 소식도 없이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용되었을 때, 그의 생사를 몰라 유고시집으로 발간되었다. ‘문단의 마지막 순수시인’ 또는 ‘문단의 마지막 기인(奇人)’으로 불리던 그는 지병인 간경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주막에서》 《귀천(歸天)》 《요놈 요놈 요 이쁜 놈》 등의 시집과 산문집 《괜찮다 다 괜찮다》, 그림 동화집 《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 등이 있다.
미망인 목순옥(睦順玉)이 1993년 8월 《날개 없는 새 짝이 되어》라는 글모음집을 펴내면서 유고시집 《나 하늘로 돌아가네》를 함께 펴냈다.
소풍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아름다운 이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 다웠더라고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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