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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현실 참여
2015년 06월 12일 21시 37분  조회:3683  추천:0  작성자: 죽림
시의 현실 참여

한국 현대시는 4․19 학생혁명과 함께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다. 이 시기에 문학에 대한 인식이 크게 전환되고 있는 것은 사회적 체제변동에 따른 현실인식의 방법의 변화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 자체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시인의 태도 역시 변모되기에 이른다. 시는 오로지 시일뿐이라고 믿었던 순수시에 대한 관념이 무너지면서, 생명력과 의지와 감동을 지닌 시가 요구되기도 한다. 시단의 일부에서는 전후시가 보여준 정서적 폐쇄성을 거부하면서 이른바 ‘현실 참여’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다. 여기서 말하는 참여는 진실한 삶의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김수영은 시의 현실참여를 실천적으로 보여준 시인이다. 그는 김경린, 박인환 등과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1949)을 간행하면서 모더니스트로의 면모를 드러낸다. 그의 첫 시집 「달나라의 장난」(1959)은 전후 현실에서 살아가는 소시민적 비애와 슬픔을 모더니즘적인 감각으로 노래하고 있는데, 이 시기의 작품으로는 「헬리콥터」, 「폭포」 등이 대표작이다. 김수영의 시 세계는 1960년 4‧19혁명 이후 상당한 변화를 드러낸다. 그의 전후시에서 자주 드러나던 냉소적인 어조와 허무의식이 사라지고, 현실에 대한 자기주장이 적극적으로 시를 통해 표출되기 시작한다. 「육법전서와 혁명」, 「푸른 하늘을」 등은 이러한 시적 경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시에서 궁극적으로 노래하고 있는 것은 사랑과 자유이다. 그가 노래하고 있는 사랑과 자유라는 주제가 자기 내면으로 응축될 경우 「나의 가족」과 같은 시편을 낳았고, 사회적 현실로 확대될 때에는 「절망」,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와 같은 작품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김수영의 시에서 드러나게 되는 참여 의지는 자유의 개념에서부터 비롯된다. 그는 한국문화의 다양성과 활력을 깨치는 무서운 폭력을 정치적 자유의 결여라고 규정하고 있다. 자유의 참뜻을 4․19 혁명을 통해 현실적으로 체득했던 그는 4․19 혁명이 군사정권에 의해 좌절되는 것을 보면서 짙은 회의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는 자유의 실현을 불가능하게 하는 ‘적’에 대한 증오와 그 적을 수락할 수밖에 없는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그 방을 생각하며」, 「적」 등을 쓰고, 역사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을 노래한 「거대한 뿌리」, 「현대식 교량」, 「사랑의 변주곡」 등을 발표한다. 그의 시 「풀」은 1970년대 민중시의 길을 열어놓은 대표작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김수영의 시적 참여에 관한 주장은 「시여, 침을 뱉어라」(1968), 「반시론」(1968)과 같은 평론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김수영은 시를 쓰는 것은 ‘머리’와 ‘심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참여시라는 것이 정치적 자유와 개인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시적 대응방법임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내용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형식의 자유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시 쓰기는 모험의 의미를 띤 ‘자유의 이행’이 된다. 이러한 주장은 사실상 시인으로서 자기 풍자의 극단적인 진술에 해당하는 것인데, 혁명의 좌절을 초래한 소시민들의 소극성을 겨냥하고 있다. 

신동엽은 전통적인 서정성과 역사의식의 결합을 시를 통해 실현한다. 그의 첫 시집 「아사녀」(1963)에 수록되어 있는 「진달래 산천」, 「그 가을」, 「내 고향은 아니었었네」 등을 보면 한국 민족이 유지해온 전통적인 공동체적 삶의 양식이 역사의 격변으로 붕괴되고 있는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그는 서사적 장시 「금강」(1967)을 발표하기까지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조국」, 「껍데기는 가라」 등을 썼다. 특히 「껍데기는 가라」는 한스러운 역사를 노래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한의 역사를 극복하기 위한 의지를 구현하기 위해 역사와 현실의 허구성을 폭로하면서 민중적 이념의 실현을 주장한다. 그는 역사의식과 예술적 형상이 가장 절정의 상태에서 통합된 서사적 장시 「금강」(1969)를 발표하면서 현실의 한복판에 서게 된다. 이 시는 동학농민혁명운동을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식민지 시대의 역사로부터 4‧19 혁명에 이르기까지의 한국 근대사의 흐름을 민중적 관점에서 조망하고 있다. 물론 이 작품은 서사적인 요건으로서의 객관적인 거리의 문제라든지, 시적 주제의 전개방식의 불균형이라든지, 어조의 변화문제 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거기에 시적인 긴장과 균형을 부여하고 있는 상상력의 힘을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김수영과 신동엽은 서로 다른 시적 출발을 보이면서 그 지향을 같이했던 특이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김수영의 도회적 풍모와 지적인 언어는 토착정서에 뿌리를 두고 있는 신동엽의 서정적 속성과 전혀 다른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 두 시인은 구체적인 삶의 현실을 발견하고 그것을 자기 내면으로 끌어들여 형상화함으로써, 결국은 하나의 귀착점에 도달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도달한 시적 지표를 중심으로 새로운 시인들이 모여들어 시적 현실참여의 실천에 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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