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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여, 똥을 싸라... 시는 詩치료로 쓰자...
2015년 10월 20일 22시 06분  조회:4322  추천:0  작성자: 죽림

시여 똥을 싸라

글 / 유병근 (시인, 수필가)

시를 두고 콩이니 팥이니 말에 토를 다는 사람은 많다. 심지어는 시집 한 권 읽어볼 생각조차 없는 사람도 시는 무엇이다 하며 지나가는 투로 입을 댄다.

하기에 시의 가슴은 저마다 주절거리는 입에 이리 뜯기고 저리 뜯기는 처참한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게 뜯길수록 시는 오히려 더 건강해짐을 볼 수 있으니 주절거림과의 끈질긴 인연이라고 하겠다. ​ 시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도 시 속에는 무엇이 있을 것이라며 어림짐작으로 말한다. 그 '무엇이'라는 것에 끌려 심심풀이로나마 시나 읽어볼까 하고 도시철도 승강장에 걸린 시 앞에서 우두커니 서기도 한다.

그런데 읽어도 알 수 없는 구절에 걸려 그냥 발길을 돌린다. 시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다. 시는 고상한 척 멋을 부리는 자의 장식품이다. 시는 생각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호사가의 악취미다. 시는 허무맹랑한 말장난이다. 그런즉 시인은 요상한 거짓말쟁이다. 이런 생각들을 혹 가슴 깊이 깔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를 하면서 들을 수 있는 갖가지 언사들은 그래도 시에 관심을 가졌다는 증표이기도 하다. 관심이 없으면 시 따위에 입을 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시인을 추방하라고 한 플라톤 역시 시에 관심을 가졌기에 시인 추방이란 폭언을 거침없이 내뱉었으리라.

생각해 보면 시는 똥이다. 몸에서 빠져나가는 배설물을 시에 끌어댄다는 것은 어쩌면 시를 지나치게 비하하는 일이다. 그러나 막혔던 시가 마음에서 빠져나갈 때의 후련함과 배설물인 똥이 몸에서 빠져나갈 때의 시원함은 엇비슷하다. 막힌 젖이 빠져나갈 때 느끼는 희열은 한 편의 시를 완성했을 때의 희열에 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시는 똥이다. 이런 말이 새삼스런 것은 결코 아니다. 똥은 거름이 되어 인간이 필요로 하는 작물 성장에 도움이 된다. 시는 인간 정서에 거름이 된다. 거름이란 처지에서 볼 때 시이건 똥이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 건 분명하다.

시는 돈이 되지 않는다고 경제지상주의 사회에서 주눅이 든다. 하지만 돈 이상의 값어치를 시가 한다면 혼자만의 착각일까. 음악치료 미술치료가 있듯이 시치료에 의하여 피폐한 인간 정서를 보다 기름지게 할 수 있을 것이니 착각만은 아니겠다. 꿈에 똥을 주무르면 황금이 생긴다는 해몽을 시에 끌어들여도 좋을 성싶다.

그래 시를 하면서 용기를 내어보자는 것이다. 남이야 뭐라고 하던 귀를 기울이지 않는 옹고집쟁이가 되자. 기왕 시작한 고집이니 죽이든 밥이든 끝나는 날까지 가보자는 오기로 나가는 길 밖에 딴 도리는 전혀 없다는 일방적이 융통성 없는 아집에 칵 닫힌다. 그것이 때로는 어리석고 괴로운 짓이기는 하다. 오죽 못났으면 하필이면 그런 서툰 오기나 부리는가 하고 손가락질을 받을 것은 뻔하다.

시는 소중한 보물이다. 하루도 만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가슴 태우는 어여쁜 애인이다. 이리 쓰다듬고 저리 쓰다듬으며 밤을 새도 싫증 나지 않는 사랑스런 모습니다. 처음 시를 할 때의 생각은 늘 이랬다.

그러나 세월이 지날수록 마음의 빛깔이라는 것이 조금씩 빛을 바래는지 때로는 시에 없는 투정을 부렸다. 시를 만나지 않았으면 더 눈부신 일로 호의호식하면서 보다 위풍당당하게 지낼 것인데 하고 마음으로 시를  쿡쿡 쥐어박았다. 차라리 결별하자. 이런 생각으로 한동안 시에 눈을 두지 않았다. ​

다정하다고 하는 부부 사이도 때로는 이런저런 언성을 높이는 권태기라는 것이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시와의 권태기는 그다지 오래가지 못 했다. 뭔가 놓치고 산다는 허전한 생각이 들어 그 이유가 뭘까 하고 잔머리를 굴렸다. 그랬더니 아주 철저히 잊고자 했던 시의 끈이 엉뚱하게도 떠올랐다. 그때 탁 머리를 치는 것이 있었다. 시와 조금 더 가까이 지내라며 타이르는 죽비소리였다. 다소 쑥스럽기는 하지만 시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랬더니 마음에 따뜻한 약발이 섰다. 토라져 있던 시 역시 한 걸음씩 돌아와 주었다. 그것은 웅숭깊은 기쁨이며 소통이었다.

그러나 권태기라는 것을 겪은 다음 내 안에서 또 다른 이상 증후가 은근히 내다보고 있었다. 시에 굳이 안달복달하지 않아야겠다는 나름대로의 약은 계산이 그것이다. 처음의 열정은 식고 이제 덤덤한 것만이 심중에 들앉아 나를 통제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활화산은 언젠가 식기 마련이다. 시에 성급하게 덤비던 활화산도 이제는 연기나 이따금 솔소 피우는 다소 느슨한 처지로 어느새 변해버렸다.

그런 약은 속셈에 서둘지 말자는 생각이 눈을 떴다. 서둔다고 뭐가 금시 되는 것도 아니다. 그랬더니 세계란 것이 차차 새로운 모습으로 떠오르는 어떤 실루엣 같은 요요현상이 망막에서 일다가 사라지곤 했다. 길을 가도 천천히 가는 걸음에는 사방의 풍경이 조금 더 자세히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서두르며 숨 가쁘게 설치는 걸음에는 어디로 간다는 생각만이 마음속에 들앉아 주변의 것에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하게 한다.

천천히 사는 것이 확실하게 사는 것이다. 확실하다는 것에는 세계를 촘촘하게 볼 수 있는 길이 있다. 가령 길가에 핀 꽃송이에서 꽃의 세계를 보는 재미에 끌리기도 한다. 꽃 속에는 꽃이 가는 길이 있다. 그 길에 꽃바구니를 든 소녀가 꽃을 뿌리고 있다. 진달래로 울긋불긋하던 고향 마을이 길 너머에 보인다. 그것은 나름 새로운 세상 보기라며 혼자 멋없이 들뜨기도 한다. 서둘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이 어느새 물거품이 된다.

누구나 그렇지만 이렇게 꽃을 본다는 것은 꽃의 마음과 눈이 부딪치는 작은 충격이다. 그런데 꽃의 겉모양만 볼 경우 꽃잎이 몇 개, 빛깔은 어떻고 꽃술이 어떻고 하는 것 외는 달리 볼 것도 없는 어제 보던 그대로의 꽃이다. 하기에 꽃을 보면서 꽃그늘에 앉았다 간 사람도 떠올라 꽃을 보는 눈에 지나간 시간을 보고 읽는 새로운 감흥에 젖기도 한다. 고향 까마귀만 보아도 고향 생각에 가슴 설렌다고 하지 않는가.

어느 한 가지에만 시선을 둘 경우 본다는 것의 의미가 제한된다. 시선 돌리기는 시의 주변을 보다 다양하게 표출하려는 의지이기도 하다. 어느 한 개인의 이모저모를 알고자 할 적에도 그 개인만이 아닌 그가 처한 주위 환경을 두루 살피게 된다. 가령 교우관계는 어떠며 특기와 취미는 어떤가 하고 그를 재어 본다. 그렇다고 문제가 순순히 풀리는 것은 아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도 아니 되는 사람 속은 자칫 안개 속이라고 한다.

언젠가 티브이 화면에서 본 허리케인은 거대한 나사못이었다. 지상에 있는 나무며 자동차를 뽑아 다른 곳으로 옮기는 힘을 그것이 갖고 있었다. 건물을 뜯어 옮기고 건물 속에 숨죽이고 있는 온갖 집기什器를 끌어내어 천공으로 삐라처럼 흩뿌렸다. 첨단과학시대라고는 하지만 허리케인의 힘은 막지 못 했다. 안하무인인 허리케인은 세계 어느 독재자보다 더 막강한 싹쓸이를 즐기는 세도가였다.

허리케인 속에는 변용을 시도하려는 힘이 있다.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크든 작든 일단 허리케인이 되어보자는 약은 속셈에 찬다. 그러면 마음 밑바닥에 갈앉아 있던 케케묵은 옹고집이 깨끗이 쓸려 나가고 텅 빈 황무지 같은 자리가 새로 생길 것이다. 그 자리에 새로운 감각 새로운 무장武裝을 갖춘 정신으로 시의 마당에 뛰어들어 보자는 요량에 잠기기도 한다. ​

김현승 시인은 "시여 침을 뱉어라​"며 일갈했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덩달아 "시여 똥을 싸라"고 엉겁결에 토를 달면서 바짓가랑이를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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