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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시인 심련수 유작시의 정리와 출판을 두고 / 그의 대표작 시 해설
2015년 12월 05일 01시 28분  조회:4678  추천:0  작성자: 죽림
 

문학유산

 

심련수 유작의 정리와 출판을 두고

 

권 철

 

 

 

중국조선족문학자료를 발굴하고 정리 , 출판하는 것은 겨레의 문화유산을 참답게 계승, 발양 하는데 있어서 자못 중요한 의의가 있는 사업이며 또한 본민족의 문학연구에 있어서도 가장 필수적이고 기초적인 작업이다. 다년래 중국조선족문학자료의 발굴과 정리사업은 우리 문학연구자들의 고심한 노력에 의하여 가시적인 성과들을 거두었다 . 그리고 근년에 이르러서는 일제 《암흑기》에 시단에 나섰던 우리의 시인 심련수의 유작을 발굴하여 해빛을 보게 하였는데 이는 중국조선족문학자료건설에서 이룩한 또 하나의 성과로 된다.

 

이번 발굴된 시인 심련수의 유작은 그 분량이 많고 그 보존상태가 완정하기로 특징적이다. 관계연구자의 소개에 따르면 발굴된 시인의 유작에는 《시 300여수 , 만필과 소설 7편 평론1편 ,기행문 1편,일기 300여편 ,편지 200여통》이 포괄되어있다.이제 이 발굴된 유작들은 다시 소생되여 우리 시단의 이목을 끌게 될것이며 중국조선족문학발전사에도 한페지를 장식하게  될것이다. 시인 심련수의 유작이 발굴되자 연변인민출판사에서는 그같이 경제적여건이 어려운 상황하에서도 자금을 조달하고 거기에 《한국중국조선족문화예술인후원회》의 도움까지 받아가면서 《20세기 중국조선족문학사료전집》 제1집으로 《심련수문학편》을 간행하였다.그러나 이 《심련수문학편》은 그토록 각광을 한몸에 안으며 출간되였지만 정리자들의 시인에 대한 불경과 주관의지의 개입으로하여 구경에는 시인 심련수를 여지없이 모독하고 그 유작을 마구 짓밟아 놓는 결과를 빚어내게 되었다.하여 이 《심련수문학편》은 문학사료집으로서의 신빙성을  잃었으며 또한 문학자료정리에서 그 류례를 볼수 없는 사례를  조성하기까지 하였다.

 

주지하는바와 같이 문학사료의 발굴과 정리,출판은 서로 유기적으로 련관되고있다.비록 발굴의 환절에서는 더없이 잘하였었어도 그 발굴한 원전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다면 곧 허황한 것으로 되고 말며,원전의 의의를 말살하는 결과를 빚어내게 된다.《심련수문학편》은 이를 단적으로 실증하여주고 있다.

우선 문학자료의 정리자는 무엇보다 먼저 원작자를 존중하고 원작에 충실하는 자세로 그 작업에 림하여야한다. 그런데 이번 심련수 유작 정리자들은 말로는 시인 심련수를 《문단에 솟아난 또 하나의 혜성》이며 《시인 윤동주와 쌍벽을 이룰수 있다》고까지 높이 추대하였으나 실제 작업에 들어가서는 시인 심련수를 시단에 갖 들어선 초학자보다도 못하게 여겼으며 그 유작을 마치도 소학생의 작문을 다루듯 마구 고쳐놓았다. 아래에 그 구체적 사례를 간추려 들어본다.

 

우선 《문학자료의 정리사업은 마땅히 충실한 기록과 신빙성있는 판본을 그 기초로하여 작품의 원래의 모양과 생동한 언어,서술방식,결구와 예술적풍격을 보지하기에 힘써야한다.》 이것은 문학자료정리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적 원칙이며 요구이다.여기서 가장 본질적으로되는 것은 반드시 객관기록에 충실하여야하며 정리자의 주관의지가 개입되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그것은 정리자는 어디까지나 정리자이지 창작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련수 유작의 정리자들은 상기 기본적 원칙을 무시하고 시인의 유작에 기탄없이 손을 대였다.근간 필자가 시인의 유작(원전 복제본) 60여편을 얻어가지고 《심련수문학편》에 수록된 시와 대조하여 본데 의하면 그 원시들을  거개 다 자기 생각대로 첨삭증보하여 놓았었다.그중 시 《로인공동묘지》,《길》,《숲속에서 나는 음악소리》,《우정》,《폭상》,《행복》,《잊지 못할 그 눈》등은 어떻게 모질게 란도질을 하여놓았는지,실로 이럴수가 !하고 아연함을 금할수 없게 하였다. 이제 더 그 실상에 대한 서술을 략하고 그 진상의 실제를 보기위하여 우에서 례를 든 시편중에서 지면의 제한도 있고 하여,보다 짧게 씌여진 시 《로인공동묘지》와 《숲속에서 나는 음악소리》를 택하여 서로 대조하여 본다.

 

露人共同墓地 (유고)

 

하루빈 온 사람은 이곧을 와 본다니

바쓰에 몸을 싣고 墓地를 찾아갓오

入口에 많은 거지 머리숙겨 경예하더라

 

異域에 □인 무덤 외롤손 그靈이 

파란과 싸호다가 죽은이 이 세상을 

남은일 다 못하고 異域에 □ 어지다.

          

            1940년 5월 20일        로천공원묘지(露天共園墓地)(문집 300쪽)

 

하르빈사람들 이곳을 다 본다니 

뻐스에 몸을 싣고 묘지를 찾아갔소 

많은 거지 입구에서 머리숙여 경례했소.

 

이역에 묻힌 무덤 외롤선 그 령(靈)이

파란과 싸우다가 죽은이라오 

가엾어라 남은일 다 못하고 이역에 

묻히였구나

          1940년 5월 20일 

 

숲속에서 나는 음악소리(유고)

 

맑은 하늘 밑 욱은 숲속에서

들려오는 싱싱한 소리

무장야 한쪽에서 울고있는 꾀꼬리떼

네 울음은 울어도 웃는 소리요

틀림없는 天使들의 부름같이 

넋을 찾어 헤매는 귀에 울려주더라.

 

10.1.5江古田武藏野音樂學校앞에서        숲속에서 나는 음악소리(문집176쪽)

 

맑은 하늘 밑 묵은 숲속에서

들려오는 심심한 소리

무장야 한쪽에서 들려오는 

꾀꼬리 울음소리

네 울음은 울어도 웃음소리요

틀림없는 천사들의 웃음이라

넋을 찾아 헤매는 귀에 들려주려무나

   소화 17년 10월 15일 

   강룡전무영(江龍田武永)에서

 

실로 유작을 정리한다는 이들이 이렇게까지 마구 손을 댈수 있는가! 이는 시인에 대한 더없는 불경과 무례를 단적으로 보여준 례증으로 된다.

다음 ,《심련수문학편》의 작품선록에서도 그들은 마구 주관의지를 개입하였었다.그들은 마음대로 ,거기에 하등의 주명도 없이 발굴한 유작중에서 시 60여편을 마구 빼버리었다.살펴보면 편폭의 제한을 받아 그런것도 아니다.그것은 《부록》150여쪽중에서 그 일부를 할애하면 발굴한 시작을 다 수록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작품선록에서도 주관의지가 개입되여서는 결코 안된다.그 유작을 넣고 싶으면 넣고 빼고 싶으면 빼버리는 소위를 절대 용허할수 없다.

그러면 그들은 선록시 어떤 시편을 골라 빼버렸는가? 필자가 그 시인의 유작원전을 다 소지하지 못한 상황하에서 빼버린 시를 다 렬거할수는 없다. 다만 그 중의  일부를 살펴본데 의하면 동흥중학 재학시절에 지은 시와 일본에 갖 이르렀을 때 읊조린 《리상의 나라》와 같은 시들이 빠져있다.이제 그 추려버린 례로 《리상의 나라》를 들어본다.

 

해돋는 아츰바다

맑고 깨끗한 섬땅

섬은 섬이나 섬아닌나라

맑은 내 흐른곧에 대숲이 있고

논 밭이있는 곧에 사람이 산다.

車中의 사람 車外의 自然

모다가 처음보다는 珍景

朝靄에 싸인데는 마을이 있고

마을있는데는 생기가 있다.

瀨戶海 고흔물에 

松島가 띄여있고

白帆이 움직이는데는 

하늘이 맑게 개였다.

自然도 그렇고 人力도 그렇다

人力이 빛나는곧에 理想鄕있나니

                      沿線에 일하는 모든 哲士는  

理想鄕을 建設하는  鬪士들이니

나도내려가 팔을 걷고 땅을 파고싶다.

                        二月九日 車中에서

 

무슨 연유로 이런 시를 뺐을까. 일본을 理想의 나라라고 찬미하였다는데서일까? 이 시를 솎아버린 그 의도를 딱히는 알수는 없으나,정리자가 만일 이 시를 그 어떤 문제를 안고있는 시로 간주하였더라도 유작의 전모를 연구가들에게 제공하기 위하여서는 다 수록하여야하지 마음대로 빼버려서는 안된다. 만일 부득이 하여 그 작품을 추릴 경우 그 빼는 리유를 명백히 하는 주석을 가첨하였어야 할것이다.

 

그 다음,문학자료의 정리,출판작업은 한낱 엄숙하고도 세심한 작업이기에 정리자는 이에 충분한 주의를 돌리고 참답게 소임을 다하기에 진력하여야 한다. 그런데 이 《심련수문학편》의 정리자들은 아주 무책임한 태도로 정리작업에 림하다보니 그 유작을 깨끗하게 제대로 옮겨 놓지조차 못하였다.이를테면 문학사료는 반드시 그 원작에 좇아 그 표기거나 행,련 등을 원모대로 복원하여야 하였으나 그들은 임의로 현재 통용하는 표기법을 채용하였고,또한 정리중 그 루락과 오기는 너무 많아 그 정오표를 만들기도 힘들정도이다. 아래에 그 일반을 보기 위하여 《심련수문학편》을 보면서 대강 주어낸 오기 중의 일부분을 그 례로 들어본다.

     

    이를 테면 《심련수문학편》에서는 《破響》을《破鄕》으로 《佩物》을 《敗物》로 (이는 시제를 오기한 례임),《逐神》을 《遂神》으로, 《貝殼》을 《具殼》으로 《大膽》을 《大瞻》으로 《淚腺》을 《漏腺》으로  《旅愁》을 《旅悉》으로 《祀願》을 《所願》으로  《銳利》를 《脫離》로 《塵境》을  《塵世》로 《暮巷》을 《暮蒼》으로 《玉璽》를 옥패로 《武藏野》를《무사시》로  적었다.

    그리고 유작중의 방언 ,력사사실 , 난해한 언어나 사실등에 대하여도 주해를 다는 것은 정리작업에서 하여야 할 필수 사항의 하나다 .그런데 《심련수문학편》에서는 주해를 달아야 할 곳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다 외면하여 버렸는데 이에서도 정리자들의 성심의 부족과 무책임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부록》에 넣은 《문단에 솟아난 또 하나의 혜성》은 시인 심련수와 그의 유작을 소개한 론문인데 이에서도 시인 심련수에 대한 불경과 더불어 그의 시작의 소개에서도 착실하지 못한 소위를 보아낼수 있다. 글세 이 글에서는 시인의 시 19수(시조 포함)를  인용하였는데 그중 17수에서 임의로 첨삭하였거나 ,소홀로하여 일부 단어를 루락,오기하고있다.좀치라도 시인을 존경하는 마음을 가졌고 그의 유작을 우리 겨레의 소중한 유산으로 간주하였다면 이런 착오는 피면할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부록》에 실린 글에서의 시인 심련수의 사인 (死因)에 대한 진술도 명석하지 못하다.론문 들에서는 《도보로 룡정으로 오던중 왕청현 춘향진에서 일본놈들에게 피살되였다.》(624쪽)라고 하였는가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광복전 집으로 돌아오던중 살해된다》라고 쓰고 있다.시인 심련수는 애석하게도 그렇게 고대하던 광복의 날을 눈앞에 두고 불행하게도 자기의 일생을 마감한다. 그런데 이 론문들에서는  그 구체적 사인에 대한 그 서술들이 서로 엇갈리고 있는바 마땅히 세밀한 조사를 거쳐 그 사인을 명백히 밝혔어야 하였다.

 

이상에서 언급한바와같이 오랫동안 파묻혀있던 시인 심련수의 유작을 보다 완정한 상태로 발굴해낸 것은 중국조선족문학자료건설에서 한낱 기여이나 그 정리작업의 한 고리마디에서 엄수하여야 할 객관성원칙을 무시하고 기탄없이 주관의지를 개입함으로써 시인 심련수와 그의 유작을 여지없이 모독하고 외곡하는 악과를 조성하였다.그리하여 출간된《심련수문학편》은 문학사료집으로서 가치를 상실하였을 뿐만아니라 일반 문학독물로도 제공할수 없는 악과를 조성하였다.

 

이에 우리들은 시인 심련수의 유작 정리작업에서 빚어낸 요류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그 교훈을 참답게 흡취하여 우리의 문학자료건설의 수준을 높이기에 진력하여야 할것이다.

그리고 출간된 《심련수문학편》이 국내국제학술계와 사회에 끼친 영향을 홀시하지 말아야 한다.이미 시인 심련수와 그의 문학을 론한 글들이 적지 않게 나갔는데, 이 론문의 작자들은 기간 《심련수문학편》을 텍스트로 간주하고 그에 의지하여 연구한 성과물들을 내고있다.필자는 이미 간행한 《심련수문학편》이 학계와 사회에 끼친 악영향을 보다 빨리 제거하기 위하여서는 시인 심련수에 대한 경의를 지니고 무엇보다 먼저 그의 유작을 객관성원칙에 쫓아 참답게 기록한 신빙성있는 신간 《심련수문학편》을 하루 속히 출간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밖에 이번 시인 심련수유작의 정리작업에서 요류를 빚어낸 그 칙임을 정리자에게 다 돌려서는 안된다.그것은 문학자료건설사업에서 출판도 한낱 중요한 고리마디가 되기 때문이다.이번 비록 출판사에서 《심련수문학편》의 출판을 위해 그같이 중시를 돌린 것은 그 의의가 크지만 인식과 준비사업이 따라가지 못하여, 가히 피면할수 있는 오류를 피면치 못하였음을 교훈으로 받아 들이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20세기 중국조선족문학사료전집》편집위원회의 구성,감수조치의 강구 등 면에서 허점을 안고있음을 자인하여야 할것이다.이 밖에 어떻게 되어 《심련수문학편》을 제1집으로 내게 되었는가,사료전집 50권의 총적 편찬기획,《서문》에서 피력한 작가작품의 수록범위와 기준 등에 대하여도 필자나름의 이견을 갖고있는바 이에 대하여서는 일후 기회에 토론하기로하고 여기서는 이만 끝인다.

                                                  

                                                                                                      2004년 2월

 

민족시인 심련수의 대표시 해설 

- 일제 암흑기와 심련수 문학의 개요 - 

 

이 재 호(시인 . 한국언어철학연구회장) 

 

 

 

 

20세기 중국조선족 문학사료전집 제1권으로 심련수문학전집이 발간되었다는 것은 

우리 문학사에 있어 일제 시대를 조명할수 있는 획기적인 자료라 할수 있을 것이다. 

비록 뒤늦긴 했지만 국내에서도 주요 일간지와 방송 등에 소개된 암흑기의 시인 심련수는 

한국문학사를 다시 정리하는데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1930년대 후반 중일전쟁을 기점으로 점점 가혹하기만 했던 일제의 폭압은 친일문학을 양산케 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들 친일 문학은 문학이라 할수 없을만큼 질량적으로 함량미달이었다. 

 

 

우리 국내와는 다르게 비교적 민족의식을 고취할 수 있었던 당시 간도지역에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이곳에서 순수한 한글 문학 세대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우리 언어연구에 있어 새로운 조명을 받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심련수는 재학중 문예반장이었다는 것이고 그 당시 중학생 신분으로 만선일보에 이러한 작품을 발표한다. 

 

 

 

시 : 대지의 봄 

 

 

봄을 잊은듯하던 이 땅에도/소생의 봄이 찾아오고/ 

녹음을 버린듯이 얼었던 강에도/얼음장 내리는 봄이 왔대요. 

눈 위의 마른풀 뜯던/불쌍한 양의 무리/새 풀 먹을 즐거운 날/ 

멀지 않았네/넓은 황무지에단/신기루 궁을 짓고/ 

새로 오신 봄님 맞이/잔치놀이 한다옵네 

옛 봄이 가신 곳/내 일 바빠 못 왔길레/ 

올해 오신 이 봄님은/ 누구더러 보라 할꼬 

  

시 : 여창의 밤 

 

 

길손이 잠못 이루는/이 한밤/ 

호창의 희미한 등불/더욱이나 서글퍼요 

갈자리 튼 눈에는/뭇손의 여진이 절어 있고/ 

칼자리 난 목침에는/여수가 몇천번 베어졌댔나 

지난 손 홧김에/ 애꿎이 태운 담배 꽁다리/ 

구석에 타고 있어/마음 더욱 설레인다 

어두운 이 밤길에 달리는 여차/왈그럭 덜그럭/ 

호마의 발굽과 무거운 바퀴/이 마음 밟고 넘어 가누나 

 

 

 

여기 이 시를 발표한 만선일보란 우리 민족의 서러운 역사가 스며있던 치욕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 신문은 원래 용정에서 나왔고 간도일보와 신경에서 나왔던 만몽일보를 합쳐 중국어와 한국어로 낸 신문이었다. 

일제가 대륙침략의 교두보로 1907년 만주철도 주식회사를 설립, 1931년 만주사변을 유발 시키고 괴뢰 만주국을 세워 꼭두각시 부의를 황제로 삼아 길림성 장춘을 수도로 정해 신경이라 개칭한 것이다. 

이때 일제는 식민통치를 위해 각 지역에 살고 있는 민족어로 된 신문을 일제 기관지로 내게 되는데 이것이 한글판 만선일보였다. 

모든 실권을 일본놈이 잡았으며 신문사 고문에는 최남선, 편집국장은 소설가 염상섭, 

사회 학예부장에 시인 박팔양 등이 몸담기도 했다. 

 

 

후일 해방이 되고 작가 안수길,홍양명,이갑기,손소희 등 여러 문인들이 인연을 맺은 신문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 국내보다 이곳 문학이 더 왕성하고 자유로웠다 할수도 있다. 

이것은 심련수문학이 발굴되지 않았다면 확인되지 못하였을 것이다.(자료:연세대학 도서관) 

심련수의 조부 심대규는 강릉 일대 호남으로 술을 즐긴 의리파였다고 한다. 

삼촌 심우택은 독립운동가로 이동휘 등과 함께 활동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심련수 아버지는 심운택이며 심련수시인의 남동생 심학수는 당시 흑롱강성 벌리현으로 가서 

북한 김일성 이종사촌 항일투사 박관순과 친하면서 동서지간이 되었으며 큰 누나는 학생 때 글짓기 대회에서 항상 1등을 했으며 심련수시인 막내 동생 심해수는 해방 후 연변작가협회 회원으로 문학활동을 한 것도 밝혀졌다. 

심련수가 동흥중학 재학시 여류작가 강경애의 남편 장하일이 동흥중학 교무주임이었다는 것도, 

또 심련수시인과 가까웠다는 것도 확인이 되었다. 심련수의 일기는 1년분량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 소중한 자료는 수학여행 일정과 당시 풍물을 담은 사료적 가치가 충분한 기행시 뿐 아니라 

용정에서 도문-원산-금강산-서울-개성-평양-신의주-봉천-대련-신경-하얼빈-목단강 등을 돌아본 

수학여행 일정 등 조국순례 대행진을 할 수 있는 민족애를 여실하게 보여 주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 가운데 윤동주는 무엇을 했느냐이다. 

윤동주 동생 윤광주와 심련수 동생 심해수는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자료에 따르면 윤동주 동생은 심해수에게 윤동주가 보고 읽었던 것 가운데 중요한 것이라 

여겨지는 자료들을 전해 주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 자료들 속에는 윤동주가 스스로 스크랩해서 만든 일제 당시 우리 국내주요 일간지에 실린 

각종 문학기사와 저명한 문인들의 글이 비교적 깨끗한 상태로 보관되어 있었다. 

윤동주 스스로가 부농의 아들이었기에 문학을 하는 가난한 심련수를 알고 있으면서도 

고의적으로 멀리했다는 것이 자료에서도 나타나고 있음이다. 

 

 

윤동주는 당시 용정 광명학원을 졸업하고 1938년 연희전문(현 연세대학)을 입학하여 

1941년 졸업하면서 1942년 일본으로 가서 릿교대와 동지사대를 다녔다. 

일본에서도 윤동주와 심련수는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왜 이들은 단 한번도 만났다고 하는 기록이 없는지 필자로서는 그것이 참으로 궁금했던 것이다. 

 

 

 

l. 심련수 시인을 중심으로 

 

 

 

1936년 일본은 총독 미나미 지로를 앞세워 <내선융화, 선만일여, 일시동인>이라는 통치방침을 표방한다. 

 

보다 철저한 우리 민족말살과 황민화 정책을 강행하는데 면 단위마다 신사 설치를 하게 하고 l937년부터는 

신사참배와 황국신민의 서사 제창을 강요할 뿐 아니라 이듬해에는 국체명징, 내선일체, 인고단련의 강령에 따라 한국 학생의 황국신민화를 꾀하고 조선과 만주의 교육령을 개정, 학교의 명칭, 교육 내용을 일본 학교와 동일하게 했다. 

우리말의 사용을 금지했으며 l939년, 창씨개명 제도를 실시 우리의 이름까지 일본식으로 고칠 것을 강요하면서 한국인들을 강제로 징용 전쟁터와 탄광 등지로 끌고 갔다. 

l940년부터 일제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한국말 신문을 폐간시키고 조선어학회, 진단학회 등을 강제 해산시켜 민족문화의 말살을 꾀했다. 

 

 

심련수 시인은 이러한 시기에 우리말 우리의 정신인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동흥중학을 2l살의 나이에 졸업하고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발굴된 민족시인 심연수 선생의 작품들은 l939년부터 l943년까지 5년 동안의 미발표작들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일제는 l940년 국민총력조선연맹을 만들었고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을 전개했으며 l94l년 3월, 사상범예방구금령을 공포, 언제라도 감금이 가능한 체체를 갖추였으며, l942년 학도동원체제, 국민근무체체 등 징용의 강제력을 비상수단화했다. 

l943년과 l944년에는 징병제와 학병제를 실시, 대학생들도 강제 소집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필자는 심련수 선생이 l943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용정에 돌아오면서부터 일제의 학도병 강제소집을 피해 신안진으로 가 

초등학교에서의 교원생활을 통해 반일사상을 학생들에게 고취한 사실과 이로 인해 두 번이나 유치장에 갇힌 것과, 일본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된 사실을 알고 신안지에서 용정까지 걸어서 오던 중 l945년 8월8일 일본군에 의해 마침내 확인 사살된 근거가 학병제에 의한 것이라 주장하고 당시 일제강점기의 자료를 일본정부에 요청했으나 묵살된 바 있음을 밝히는 바이다. 

 

 

따라서 필자는 l944년 일제가 아베 노부유키 총독으로 하여금 전쟁 지속을 위해 비협조적인 한국 지식인들에 대한 대규모의 가혹과 탄압과 검거에 이어 1945년부터 발견 즉시 확인사살을 명령한 바 있음을 문제로 제기하고자 한다. 

이러한 문제의 제기는 l944년 8월 여자정신대 근로령과 l945년 애국반, 경방단 등의 조직적인 한국인 통제가 주 원인으로 일본의 군국주의 체제가 패망하기 전까지 계속된 만행임을 심연수 시인의 발굴 과정에서 밝혀냄으로 민족 시인의 자리매김을 재정립하고자 하는 데 있다. 

 

 

2. 심련수 시문학의 특징 

 

 

 

심련수 시인의 문학적 어휘력은 다시 연구되어야 할 것이긴 하지만 그 시적 주제는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선구자적 언어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이 시기에 흔히 나타나기 쉬운 무슨 애련이나 자연을 감상하는 감각적 시풍이 아니라 암울한 현실에서 문학혼을 불태울 삶의 결연한 사실주의적 경향이 시의 주조를 이룬다. 

 

 

또한 강인하고 비타협적이며 생명력 넘치는 정의와 신념, 그리고 남성적 삶의 지조를 견지하는 서정적 자아의 지사의식과 주의시적(主意詩的) 기법이 모던하고 비장하다. 

심련수 시인의 시적 특징 가운데 또 다른 현상은 약소 민족에 의한 현실적 고민을 문학을 통해 초월하는 진실과 자유와 생명력의 서정적 자아의지 극복이라 할 것이다. 

 

 

이는 적극적 정서의 측면이 강렬한 만큼 선생의 시가 르포르타주한 기법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심리적 리얼리즘을 시의 한 축으로 하고 있다는 것에서 문학을 통한 투쟁의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시적 언어의 리얼한 비유와 은유의 씀씀이가 모던하게 내면의 주제의식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심리적으로 한계의식에 의한 초월조건을 차용하는 것인데 아러한 정신적인 힘이나 시적 경향은 내적 관조보다는 능동적인 자기의 생각을 표출하는 데 중심적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거창성과 모호성을 유발하기도 한다. 

 

 

 

심련수 시인의 시적 자아가 비교적 직설적이며 작품이 생경하기도 하고 투박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서정적 자아의 내면적 여과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그 예술성에 있어서는 감칠맛이 덜 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시어의 선택과 배열, 배합을 보면 단순미와 함께 절대생활용 어미의 변용을 보편적인 일상용어로 다스려나가고 있다. 사물에 대한 내적 의지를 본질로 하는 순수함이나 긴요한 정직성과 그 독창적인 시작법은 시적 공감에 따른 윤리적 교훈뿐 아니라 고귀한 의지의 언어 경험을 감득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심련수 시인의 문학적 특징 가운데 또 다른 경향이 있다면 그것은 문학을 통한 근대정신이라 할 휴머니즘의 시적 주제의식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련수 시인의 문학 밑바탕에 흐르고 있는 사상이나  그 의식구조가 인간 중심적 문제를 고민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성적 존재자로서 자립해야 한다는 민족의 중심성을 실현코자 하는 시적 휴머니티가 돋보인다. 

 

 

시대적 피지배 현상에 따른 합리적 휴머니스트로 민족 구성원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음을 선생의 문학은 웅변한다. 

그러므로 20세기 중국 조선족 문학사료전집에 수록된 선생의 시와 시조가 보고 읽는 이에 따라 다소 편차를 나타낼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이유를 큰 관점에서 볼 때 심련수 문학의 초기시와 후기시의 영향 때문이리라. 

 

 

 

또한 일본 유학 시기와 유학 후에 창작된 시편에서도 이러한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 중국에서 문학 공부를 하던 것과 일본대학 예술학원 창작과에서 공부한 문학의 정보 역량에 따른 차이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급격한 문학에의 변화는 일본에서 친구 이기형(생존) 선생과 함께 몽양 여운형 선생을 만나고 나서 심리적으로 충격을 받은 것이 주된 원인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갖는다. 

 

 

심연수 시인의 지사적 열정이 때로는 강인한 신념에 의한 시적 체험으로 다소 엇갈리게 우리와 만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민족의 독립을 위한 문학적 정의가 아름다운 것은 심연수 시인이 사후 50여 년이 지난 지금에야 발굴되어 우리들에게 그 책임을 되묻고 있다는 것이다. 

 

 

3. 심련수 시인의 시적 언어 

 

 

 

민족시인 심연수 선생은 시의 종결어미에 있어 남다른 언어 씀씀이를 보이고 있다. 

 

들으라, 부르라, 보라 할꼬. 배였구나, 설레인다, 가누나, 가버린다, 주려무나, 스며든다, 찾더라오, 

 어찌한담, 왠일인고, 나이다, 주었소, 으리니, 오리다, 얻노라, 쉬다니, 소이다, 오지요, 자란다, 큰다, 굶어라, 네것이다, 로다, 납소, 소서, 는고, 세라, 으리라, 더이다, 졌구나, 일이냐, 맞노라, 스럽다, 것이다, 봐라, 하여라, 들이다, 었다, 알리라, 다녔다, 하구나, 였구나, 싶구나, 좋겠소, 하나니, 이냐, 하라, 한다, 간다, 썼다, 란다 

 

 

 

이러한 언어의 씀씀이는 주의시적 의지의 시풍을 형성하는 데 있어 사용되는 시적 용어임을 알 수가 있다. 

선구자적 언어의 배열을 몸에 익힌 듯한 이 종결어미의 사용은 심연수 시인의 시 도처에서 발견될 뿐만 아니라, 왜 이러한 주의시적 시관을 통해 역사적 격변과 충격을 시적 위안으로 삼았는지 그 심층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흥미 있는 관조일 것이다. 

 

 

시인은 그의 시적 대상으로 민족의 생활양식을 가장 먼저 꼽고 있다. 우리 민족이 늘 꿈꾸는 지평선이며, 대지며, 나무며, 들이며, 바다와 강, 그리고 아침과 낮과 밤이며, 새벽을 주제로 노래했다. 

‘나와 너’와 ‘우리들’과 ‘나그네’를 통해 민족의 동질성을 일깨우고자 하는 한편 

‘소년’을 시적 대상으로 하여 민족해방 의식을 고취하고 있다. 

 

 

 

심련수 시인의 또 다른 시적 특징은 시의 직설적 표현 기법을 쓰고 있음이다. 이러한 모더니즘적 시풍이 주의시적 경향과 맞물리면서 나타나는 시어의 선택이란 목적시의 유형을 벗어나기 어려운데도 블구하고 서정성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아 그 문학적 깊이를 느끼게 한다. 

 

 

선생의 시 <불탄 자리>, <빨래>, <만주>, <등불·l>, <들꽃>, <한야기>, <잃어버리는 글>, <우주의 노래>, <거울 없는 화장실>, 

<소지>, <육화>, <귀한 그들>, <인류의 노래>, <들불>, <벙어리>, <폭상>, <기적>, <새>, <파향>, <추락한 명상>, <돌아가신 할아버지>, <세기의 노래>, <소녀>, <폭풍>, <밭머리에 선 남자>, <지구의 노래>, <님의 넋>, <환마>, <너는 나와 같더라>, <밤>, <벽>, <편지>, <밤이 새도록>, <지설>, <가난한 거리>, <심문>, <좁은 문>, <전차>, <나그네·1>, <고독·1>, <샘물>, <봄의 뜻>, <고독·2>, <맨발·l>, <새벽>, <기다림>, <밤은 깊었으련만>, <대지의 겨울>, <소년아 봄은 오려니>, <고집>, <턴넬> 등을 내용으로 한 시적 언어 구성은 심연수 시인의 정신적 지조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데 있어 바로미터가 된다. 

 

 

여기에서 필자는 l943년 당시 일제의 탄압과 우리 언어말살정책에 의한 검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심연수 선생의 시 대부분이 직설적이며 주의시적(主意詩的)임으로 목숨을 건 시작 행위를 서슴치 않았던 이 위대한 민족시인을 일본이 몰랐다는 것은 이해 밖의 일이었다. 일제의 확인된 학살임이 분명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민족시인들에 대한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 필자의 심연수 시인에 대한 애착은 시인이 자신의 민족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생명의 위험으로부터 문학이라는 정신적인 무장으로 일본에 저항한 그 숭고함 때문이다. 

 

 

4. 대표시의 감상과 이해 

 

주의시적 표상과 끈질긴 서장적 자아 

 

 

 

..........이 재 호시인 선정 심련수 대표작............ 

 

 

 

소년아 봄은 오려니 

 

 

 

 

 

봄은 가까이에 왔다 

말랐던 풀에 새움이 돋으리니 

너의 조상은 농부였다 

너의 아버지도 농부였다 

전지는 남의 것이 되었으나 

씨앗은 너의 집에 있을 게다 

가산은 팔렸으나 

나무는 그대로 자라더라 

저 밑의 대장간 집 멀리 떠나갔지만 

끝 풍구는 그대로 놓여 있더구나 

화덕에 숯 놓고 불씨 붙여 

옛소리를 다시 내어 보아라 

너의 집이 가난해도 

그만한 불은 있을게다 

서투른 대장장이의 땀방울이 

무딘 연장을 들게 한다더라 

너는 농부의 아들 

대장의 아들은 아니래도… 

겨울은 가고야 만다 

계절은 순차를 명심하자 

봄이 오면 해마다 생명의 환희가 

생기로운 신비의 씨앗을 받더라 

 

 

 

우리 민족에게 희망을 안겨준 시가 별로 없었던 시기에 <소년아 봄은 오려니>와 같은 시를 쓸 수 있었다는 것은 눈물겹도록 감동적이다. 

 

 

무엇보다 민족의 아픔을 온몸으로 불태운 청년 심련수 시인의 짧고 위대한 영혼이 문학을 통해 지조를 지킨 몇 안 되는 우리 민족의 저항 시인이었음도 그의 시 도처에서 밝혀지고 있다. 

당시 대부분의 문학인들이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거나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일제에 아부하지 않을 수 없는 길을 선택받아야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문학을 일제로부터 저항의 탈출구로 삼았던 심련수 선생은 오히려 일본을 알기 위해 유학길에 오르고 이를 바탕으로 일제의 패망을 예언하는 한편, 선생의 수많은 유작 가운데 <소년아 봄은 오려니>와 <고집>, <턴넬>, <전차> 등 이미 앞에서 열거한 시작들이 가장 극명하게 선생의 저항정신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이 시는 제목에서 보듯이 소년과 봄을 주제로 하고 있으나 시구 풀이는 민족의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리얼하게 암묵적 은유기법을 이용하여 명시하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할 것이다. 

“봄은 가까이에 왔다(=일제로부터 민족 해방)”는 전제를 통해 “말랐던 풀에 새움이 돋”는다고 예견하는 자연의 이치를 시적 바탕에 내재하고 있으므로 그 이미지의 대상을 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너의 조상은 농부”였고, “너의 아버지도 농부”라 말하는 시적 언어 속성에서 보듯이, 일제에 강점당한 우리 민족의 역사성을 비유할 뿐 아니라 농부가 뜻하는 경작의 형상화를 교훈조로 통찰케 한다. 

 

 

제5행에 이르러 시인은 봄과 소년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은유하면서 직관을 차용한 극복의 의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농사를 지을 “전지(땅)는 남의 것(=일제에 빼앗김)이 되었으나 / 씨앗(=민족해방을 위한 국권 회복)은 / 너의 집에 있을” 

것이라며 예언자적 저항성을 표현하고 있음이 실로 놀랍기만 하다. 

 

 

 

이 시에서 백미를 장식하는 6행에서 16행까지의 시적 긴장감은 투사적 언어 씀씀이가 그 위대성을 발휘하고 있다. 

“가산은 팔렸으나 / 나무는 그대로 자라더라”에서 가산과 나무의 역할 분담을 이중화시킨 것은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목숨을 내건 사건이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저 밑의 대장간 집 멀리 떠나 갔다"는 시적 진술은 선생 자신의 고백임이 분명하다고 하겠다. “끝 풍구는 그대로 놓여 있더구나(=민족의 구성원은 빼앗긴 땅에서 그대로 살고 있구나) / 화덕에 숯 놓고 불씨 붙여 

옛소리를 다시 내어보아라(=여기에서 화덕과 숯의 역할은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뿐 아니라 

3·l 독립 징신을 시적 내용의 화두로 삼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너의 집이 가난해도 / 그만한 불은 있을게다(=이 지사적 통찰력은 민족 해방의 깨달음을 염두에 둔 선생 

특유의 시적 기법으로 다시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 서툰 대장장이의 땀방울이 / 무딘 연장을 들게 한다더라 

(=선생의 시적 정서와 의지적 언어관은 보편적 민족성을 획득하고 있다. 모국어에 담겨 있는 문학의 전통성을 

선생께서 후세에까지 교감케 한 그 민족적 체취는 경건한 것이기도 하다) / 너는 농부의 아들 / … / 겨울은 가고야 만다 

(= 일제 시대는 겨울과 같아서 패망할 것이다) / 계절의 순차를 명심하자 / 봄이 오면 해마다 생명의 환희가 / 생기로운 신비의 씨앗을 받더라 (=자연의 이치를 이 시 속에 도입한 선생의 내적 고백성은 역동성을 갖기에 더욱 선명하다. 선생의 내적 의지의 발현 또한 민족의 자아를 찾는 데 목숨 건 비장함을 동반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현실에서 비타협적이며 시적 생명의 의지를 민족애 하나로 견지하다 일본 헌병의 조준된 흉탄에 젊은 청춘을 버린 민족시인의 숭고한 시정신을 우리는 다시 찾아 기려야 할 일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에게 잘못 알려진 민족시인들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 있어야 할 것으로 전망한다. 

심련수 시인이 이육사 선생과 이상화 시인과 같은 분들에 비해 한치도 손색이 없다는 것은 이 작품 이외에도 선생께서 남기신 수많은 유작들이 증명하고 있다. 

 

 

 

고집 

 

 

 

고집을 써라 끝까지 

티끌만한 순종도 보이지 말고 

타고난 엇장을 굽히지 말라 

벽을 문이라고 우기고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우기고 

소금이 쉬여 곰팡이 낀다고 뻗치라 

우기고 뻗치다 꺾어지건 통쾌해도 

뉘게다 굽석거리는 꼴은 

보기 싫도록 역겨웁더라 

 

 

 

이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선쟁의 의도는 절개와 같은 것이다. 

일제의 수탈이 극심한 시대적 배경을 생각할 때 시 <고집>이 뜻하는 민족정신의 뚜렷한 목적이 근본적인 물음에 접근하고 있다. 

선생은 이 시를 통해 “티끌만한 순종도 보이지 말” 것을 강변하면서, 우리의 “타고난 엇장(비분, 기개, 고집불통, 비타협)”과 같은 절개를 가질 것을 주문한다. 

“벽을 문이라고 우기고(=절망을 희망이라 하고) /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우기고(=일제의 거짓말을 비유하고 있음)”에 유의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선생은 <고집>이라는 이 시에서 그 저항의 본질을 이렇게 표현했다. 

“소금이 쉬여 곰팡이 낀다고 뻗치라” 즉 사랑이 썩어 냄새난다고 뻗치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뻗치다의 말뜻이 갖는 시적 의미는 위에서 말한 절개의 정신과 맥을 잇고 있다. 

 

그러면서 차라리 꺾어질지라도 타협하거나 일제에 순종하지 말 것을 고집이라는 시를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이다. 

*뉘게다(누구에게) 굽석(굽신)거리는 꼴은 / 보기 싫도록 역겨웁더라” 하고 말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일제 치하에서 죽음을 뜻하는 일이었다. 

 

 

턴넬 

 

 

 

길다란 턴넬 

감캄한 굴 속 

자연이 가진 신비를 

뚫어놓은 미약한 힘 

눈을 감고 걸어도 

눈을 뜨고 찾아도 

밟히우는 송장 

바닥 가득 늘어자빠진 꼴 

아, 빛이 없어 죽었나 

그러나 또 무수한 생명이 

레루를 베고 침목을 베고 누워 

지나갈 바퀴를 기다리고 있음을 

또 어찌하리 

싸늘한 송장의 입김에서 들려오는 

울부짖는 소리 

우를 우러러도 

아래를 굽어보아도 

캄캄한 굴 속, 캄캄한 굴 속 

 

 

 

시의 본성, 곧 시란 무엇인가? 시는 어떤 예술인가? 시는 어떤 언어인가? 

 

시는 어떤 역사와 사회적 문화 현상인가? 시는 어떤 심혼의 소산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선생으로 하여금 일제의 흉탄에 돌아가시기까지 계속된 과제였을 터이다. 

시가 당시의 현실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를 알고 있었던 선생으로서는 민족문학을 위한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1943년 일본예술대학을 졸업하고 돌아오던 해에 창작된 것으로 알려진 시 <턴넬>은 선생의 문학적 삶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으나,  이 시를 읽지 않으면 심연수 선생의 문학세계를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되겠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터넬과 선생의 시 터넬이 뜻하는 의미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길다란 턴넬(=일제의 오랜 억압) / 캄캄한 굴 속(=일제 식민 치하에서의 생활) / 자연이 가진 신비를 / 뚫어 놓은 미약한 힘(=일제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우리의 희망) 

 

 

 / 눈을 감고 걸어도 / 눈을 뜨고 걸어도 / 밟히우는 송장(=일제 식민 치하에서 죽어간 백성들의 시체) / 바닥 가득 늘어자빠진 꼴 / 아, 빛이 없어 죽었나 / 빛이 싫어 죽었나(=자포자기한 상태의 암울한 현실을 비유) / 그러나 또 무수한 생명이 / 레루(레일)를 베고 침목을 베고 누워 / 지나갈 바퀴를 기다리고 있음을 / 또 어찌하리” 

 

 

 

일제는 그들의 야욕을 위해 철도를 건설했으나 철로에 놓인 침목의 수만큼이나 많은 우리의 백성들을 무참하게 학살했다는 것은 

이 시는 확실한 증언처럼 증명하고 있음이다. 

 

 

 

“싸늘한 송장의 입김에서 들려오는 / 울부짖는 소리” 

선생께서 턴넬을 바라볼 때마다 일제가 학살한 우리 민족의 귀중한 목숨들과 그 영혼의 처절한 울음 소리를 귀에 쟁쟁 듣지 않았으랴. “우를 우러러도 / 아래를 굽어보아도 / 캄캄한 굴 속, 캄캄한 굴 속” 

 

 

이 시의 자아의지가 턴넬이라는 제목에서 보여주고 있듯이 턴넬 속에 갇혀 있는 우리 민족의 현실을 적극적인 의지로 표현할 수 있었다는 데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선생의 문학은세계를 지성적으로 갈파하고 있음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봄의 뜻 

 

 

 

읽고서 알았쇠다 

님마음 알았쇠다 

보고서 알았쇠다 

님마음 알았쇠다 

글자마다 살았고 

구절마다 뛰더이다 

 

─ 원문(당시 사용되는 언어) 

 

 

읽고서 알았습니다 

님 마음 알았습니다 

보고서 알았습니다 

님 마음 알았습니다 

글자마다 살았고 

구절마다 뛰고 있습니다 

 

─ 수정(현재 사용되고 있는 언어) 

 

 

 

이 시에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 즉, 봄을 뜻으로 풀이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전체 6행의 시적 언어 의미가 ‘알았다’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봄을 읽고 알았다는 것은 님이라고 하는 마음을 말한다. 여기에서 님은 봄이 뜻하는 개화와 해방의 님인 것이다. 보다 더 의미심장한 싯구는 “글자마다 살”아 있다는 것과 그 “구절마다 마음이 뛰고 있”더라고 하는 내적 의미의 완결성이다. 

봄의 뜻이 담고 있는 독창성은 개성이다. 이러한 개성이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시적 언어의 주제의식이 참신해야 한다. 따라서 심연수 시인의 문학적 이원성은 봄이라고 하는 의미를 뜻으로 파악하고 있는 데서 이 작품의 독창성과 함께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비록 짧은 시이긴 하지만 작품의 완성도 또한 충족하고 있다. 봄의 뜻이 말하고자 하는 심미성, 대중성, 상징성이 시의 통일성을 이루고 있어서 살아 있는 정서를 경험케 한다. 

따라서 원문과 수정된 시를 함께 싣는 것은 1940년대 당시에 사용된 우리말의 씀씀이를 이해하기 위한 것으로 참고되어야 한다는 뜻에서이다. 

 

 

새벽 

 

 

 

미명의 광야를 

달리는 자 누구냐 

동 터올 새벽을 기뻐 맞을 젊은이냐 

짧아진 희대에 활활 붙는 불 

새빨간 불길이 춤을 춘다 

푹푹 우그러든 자국마다 

땀이 고였고 

대기를 몰입한 듯한 호흡의 율동 

지심을 놀랠 만한 그 무보(武步)는 

피 묻은 싸움의 여세(餘勞)의 연장 

암흑을 익힌 개선장병아 

분투의 앞에 굴복한 과거는 

캄캄한 어둠 속에 쓰러졌다 

승리자여, 

만난을 극복한 투사여 

오래지 않아 서광이 

그의 얼굴을 

그의 몸을 비치리니 

속으로 웃어 마음에 간직하라 

잡고 있는 횃불 아래 

따라오는 무리의 갈 길을 

가르쳐주라 

해 돋는 동쪽 하늘가 

넓고 넓은 그곳으로 

 

 

심련수 시인의 일반적인 시들의 주제가 주의시적이라는 것은 그만큼 어두운 시대에 대한 고뇌와 자아 성찰이 비교적 쉽고 상징적 표현 속에 잘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시인의 회의와 번민, 처절한 고독 속에서의 희망을 잃지 않는 새벽을 꿈꾸는 자세는 예언자적 미명을 기다리고 있다. 

지성의 면모를 보는 듯하지 않는가? 시대의 현실을 통찰하는 이 역사적 자아의 승화는 심연수 시인의 정신적 지향을 의미하기도 한다. 

 

 

새벽이라는 이 시의 주제의식은 우리 민족의 해방에 대한 간절함을 비유와 은유기법을 이용해서 작품화했다. 

시인의 시적 소재는 실제의 사건과 그 일어날 것에 대한 개연성과 필연성을 동시에 갖는다. 

 시가 역사보다 더 철학적일 뿐 아니라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보편성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편성이란 우리 민족의 미명인 해방이라는 

 

현실적인 명제가 내재되어 있으므로 이 가능성을 시인은 노래하고 있다. 

 

 

 

“암흑을 익힌 개선장병아 / 분투의 앞에 굴복한 과거는 / 캄캄한 어둠 속에 쓰러졌다 / 승리자여, / 만난을 극복한 투사여” 

 

오래지 않아 서광이 비칠 것이니, 이때 마음 속으로 웃고 그 섭리를 마음속에 간직하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필자의 견해는 심연수 시인의 시적 의지가 불가능을 가능한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은 것이다. 

일어나지 않은 것의 가능성은 믿을 수 없지만 일어날 것에 대한 가능성이 있음을 필자는 믿고 있다. 

심연수 시인의 시 <새벽>은 민족의 숙원인 해방을 일어날 것에 대한 가능성의 새벽으로 본 것이라는 

점에서 예지적인 시인의 통찰력을 놓이 평가하고 싶은 마음이다. 

 

 

등불 

 

 

 

존엄의 거룩한 등불이 

문틈으로 새어 나오다가 

한줄기 폭풍에 꺼져버렸습니다 

그 옛날 조상께서 

처음 켠 그 불이 

그동안 한 번도 꺼짐이 없이 

이 안을 밝혀 왔습니다. 

그들은 그 빛을 보면서 

옛일을 생각하였고 

하고 싶은 말을 하였으며 

하고 싶은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어둠 속에서 

촛불을 켜는 이 있으니 

또 다시 밝아질 때가 

멀지 않았습니다. 

 

그 등잔에는 기름도 많이 있고 

심지도 퍽으나 기오니 

다시 불만 켜진다면 

이 집은 오래 오래 밝아질 것입니다. 

 

 

 

이 시의 시적 언어의 특성은 함축적인 의미의 서정을 예언자적 목소리로 표출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서정적 

자아는 민족의 역사적 숨결을 느끼게 한다. 

 

 

등불을 일컬어 ‘존엄’이라는 언어를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민족애의 이상을 노래하고 있다. ‘한줄기 폭풍’에 비유되는 일제치하를 시인은 집 안의 촛불이 꺼진 것으로 바라볼 만큼 비범하기까지 하다. 

내면의 토로가 이러할 만큼 내적 의지의 시적 구현이 분노보다 저항보다 더 이상적이다. 

배경지식 없이도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 것 같지는 않다. 

 

 

들불 

 

 

 

임자 모를 불 

거침없이 타는 천리 저쪽 녘 

누가 놓은 블씨이기에 

저토록 꺼짐 없이 

밤하늘을 붉히느뇨 

사정없이 타오르는 

불길! 불길! 불길! 

끌래야 끌 수 없는 위대한 작탄! 

 

언제까지 이 들판에 살아 있을지 

어두운 저녁 혼자 보는 들불 

그 불똥이 이 가슴에 튀어오기를 

삼가 경건히 머리 숙이고 

말없이 숭엄히 바라보노라. 

 

 

 

l945년 2월 16일, 이 날은 윤동주 시인이 옥사한 날이다. 

1945년 8월 8일, 이 날은 심연수 시인이 학살된 날이다. 

여기에서 윤동주와 심련수라는 두 시인 가운데 왜 윤동주 시인은 우리에게 알려졌으며 심연수 시인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가 이토록 뒤늦게 발굴되어야 했는지 그것이 궁금할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윤동주 시인은 비록 고향이 중국 용정이라 하더라도 당시 

서울 연희전문학교에서 공부하였고 심련수 시인은 고향이 강릉일지라도 

중국 용정 동흥중학을 마치고 일본 유학에서 돌아왔기 때문에 일제가 패망한 후 심연수 시인을 알고 있는 문학인이나 연고자가 안타깝게도 서울에 없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윤동주의 동생과 심련수의 동생은 서로 친구 사이였고 그렇다면 윤동주의 집안에서라도 심련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왜 그랬을까? 무엇이 윤동주의 집안으로 하여금 심연수라는 시인의 이야기가 50년이란 세월 동안 묻혀 있도록 했을까? 시 <들불>을 감상하면서 이러한 의문들을 생각해보자. 

 

지사적 시인의 면모가 잘 드러나 보이는 이 <들불>이라는 시에서 시인의 육성을 듣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것은 이 시가 지니고 있는 사상과 시적 호흡의 긴장감이다. 

민족의 들불, 조국 해방을 위한 들불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는 위대한 작탄(炸彈)을 시인은 바라보고 있다. 

그 불길을 가슴에 안고 삼가 경건히 머리 숙이고 숭엄하게 바라볼 줄 안다는 것은 이 시인만이 가질 수 있는 위대한 분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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