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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 우리 글 즉, 훈민정음(訓民正音) 은 어떻게 만들어 졌을가?
2015년 12월 05일 21시 13분  조회:6394  추천:0  작성자: 죽림
  • 네,안녕하세요?

    훈민정음을 정확히 알아보는 시간ㅡ
     

    훈민정음(訓民正音)은 찰흙과 같다.
     

    찰흙은 무엇이든 원하는 데로 만들기 쉽다. 기본 형태도 그렇고, 세밀한 다듬기도 그렇다. 그래서 미술가들의 기본 소재가 찰흙이다. 훈민정음은 글을 짓는데 있어서 기본 형태를 잡기도 그렇고, 세밀히 다듬는 데도 더 이상 없다. 조각이나 글이나, 다듬질 하는 만큼 정교해진다.
     

    알파벳도 소리기호이지만, 훈민정음만큼 정확하고 자유자제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소리를 감각적으로 정확하게 표기하는 효과만큼은 훈민정음이 우수하다 할 것이다. 훈민정음의 창제 바탕은 중국어, 즉 한문이다. 훈민정음 이전에는 이두 라고 하는 음기호도 쓰였다.
     

    훈민정음의 목적 중의 하나가 중국어 발음을 정확하게 표기하는 데 있다. 조선어와 중국어는 직접 연결되지 않고, 이두 라고 하는 표기를 통해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훈민정음은 그런 중국어 발음을 정확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사라진 4개 음소를 찾아내어 사용해야 한다.
     

    한국어 단어의 80% 정도가 중국어에서 나왔다고 한다. 따라서 중국어를 알면 어휘력이 풍부해지는 것이다. 1000단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10000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정보력의 차이가 있듯이 중국어-한자를 바탕으로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정보력 차이는 크다.
     

    한글을 처음 배울 때는 한자를 모르고 배우는 것이 쉬울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한자와 훈민정음을 함께 가르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무엇이든 연관된 짝이 있어야 안정되기 때문이다. 훈민정음은 중국어 라는 거대하고 오랜 문명의 바탕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 바탕을 모르고 무언가를 세운다는 것은 사상누각처럼 빈약하게 된다.

    중국어와 조선어를 둘 다 잘 하는 중국-조선족의 경우 자기들끼리 말 할 때 중국어와 조선어를 반씩 섞어 쓴다. 이것은 어떤 규칙이 아니라 편리와 효과를 따르는 것이다.
     

    한자는 말과 글이 동시적인 만들어진 것이며, 전 세계의 모든 언어에 영향을 미쳤다. 한자는 복잡하지만 중국 언어는 간결하다. 한자의 근간은 상형문자이며, 문학적 상징이 발달하였다.

    따라서 한자와 훈민정음은 서로에게 필연적인 요건을 가진 관계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실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알파벳과 훈민정음 중에 어느 것이 ‘소리기호’로써 더 우수할까? 영어에는 발음기호가 별도로 있어야 할 정도로 미비하다. 그런데도 중국은 70년대에 알파벳을 발음기호로 채택하였다. 왜 그럴까? 훈민정음을 채택하였을 경우, 한자를 써야 할 필연성이 매우 적어지게 된다는 것….

    해석하자면,

    '나라의 말이 중국과는 달라 (중국의) 문자와 서로 맞지 아니하므로

    이런 이유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이르고자 할 바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펼쳐보지 못할 사람이 많다.

    내 이를 위하여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노니,

    사람들마다 쉽게 익혀 날로 쓰는데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결과 유생들의 반대를 얻었지만 평민들도 쉽게 글자를 깨우치고 알게 되었습니다. 후에 평민들의 문학으로 등장한 사설시조도 이런 일이 있었기에 가능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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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민정음이 만들어진 이유ㅡ

    훈민정음 창제

    1. 창제 동기

    우리말과 한자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고유의 글자가 필요하였습니다.

    한자는 익히기 어려워서 일반 백성이 사용하기에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2. 창제 원리

    사람의 몸 중에서 소리를 내는 기관(입, 혀, 입안, 목구멍)과 하늘, 땅, 사람의 모양을 본 떠 자음17자와 모음 11자, 총 28자를 만들었습니다.

    3. 의미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라는 뜻입니다.

    4. 우수성

    한자에 비해 배우기 쉽고, 모든 소리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5. 창제 의의

    양반이 아닌 백성도 글을 쓸 수있게 되었습니다.

    훈민정음의 특징

    * 자음과 모음의 결합으로 누구나 쉽게 읽고 쓸 수 있음.

    * 표현할 수 있는 소리 영역이 세계 어느 문자보다 넓고 다양함.

    * 발음 기관을 본떠 만든 과학적인 글자임.

    훈민정음 해례본

    1446년(세종 28년)에 정인지 등의 집현전 학자들이 세종의 명에 따라 새로 창제된 훈민정음을 설명한 한문 해설서임, 전권 33장 1책의 목판본이며,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어 있음.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

    1. 자음

    * 기본 글자는 ㄱ, ㄴ, ㅁ, ㅅ, ㅇ의 다섯 자임.

    * ㄱ은 혀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 ㄴ은 혀가 입천장에 붙는 모양, ㅁ은 입모양, ㅅ은 이의 모양, ㅇ은 목구멍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음.

    * 기본 글자에 획을 더해 만든 글자 가 ㅋ(ㄱ), ㄷ·ㅌ(ㄴ), ㅂ·ㅍ(ㅁ), ㅈ·ㅊ(ㅅ), ㆆ·ㅎ(ㅇ)이고, ㄹ, △, ㆁ을 더해 17자가 되었음.

    2. 모음

    * 기본 글자는 ·, ㅡ, ㅣ로 하늘과 땅, 사람의 형상을 본떠 만든 것임.

    * 기본 글자에 획을 덧붙여 만든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를 합쳐 11자가 됨.

    3. 사용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모두 28자였으며 현재는 ·, △, ㆁ, ㆆ이 없어지고 24자만 사용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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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민정음이 만들어진 이유는 훈민정음 에 자세히 나타나 있습니다 

    나라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로 서로 통하지 못해 

    새로 28자를 만들었으니 백성들이 쉽게 배우고 익혀 

    널리 사용케 한다 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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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민정음(訓民正音)은 찰흙과 같다

    찰흙은 무엇이든 원하는 데로 만들기 쉽다. 기본 형태도 그렇고, 세밀한 다듬기도 그렇다. 그래서 미술가들의 기본 소재가 찰흙이다. 훈민정음은 글을 짓는데 있어서 기본 형태를 잡기도 그렇고, 세밀히 다듬는 데도 더 이상 없다. 조각이나 글이나, 다듬질 하는 만큼 정교해진다

    알파벳도 소리기호이지만, 훈민정음만큼 정확하고 자유자제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소리를 감각적으로 정확하게 표기하는 효과만큼은 훈민정음이 우수하다 할 것이다. 훈민정음의 창제 바탕은 중국어, 즉 한문이다. 훈민정음 이전에는 이두 라고 하는 음기호도 쓰였다.

    훈민정음의 목적 중의 하나가 중국어 발음을 정확하게 표기하는 데 있다. 조선어와 중국어는 직접 연결되지 않고, 이두 라고 하는 표기를 통해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훈민정음은 그런 중국어 발음을 정확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사라진 4개 음소를 찾아내어 사용해야 한다.

    한국어 단어의 80% 정도가 중국어에서 나왔다고 한다. 따라서 중국어를 알면 어휘력이 풍부해지는 것이다. 1000단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10000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정보력의 차이가 있듯이 중국어-한자를 바탕으로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정보력 차이는 크다.

    한글을 처음 배울 때는 한자를 모르고 배우는 것이 쉬울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한자와 훈민정음을 함께 가르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무엇이든 연관된 짝이 있어야 안정되기 때문이다. 훈민정음은 중국어 라는 거대하고 오랜 문명의 바탕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 바탕을 모르고 무언가를 세운다는 것은 사상누각처럼 빈약하게 된다.

    중국어와 조선어를 둘 다 잘 하는 중국-조선족의 경우 자기들끼리 말 할 때 중국어와 조선어를 반씩 섞어 쓴다. 이것은 어떤 규칙이 아니라 편리와 효과를 따르는 것이다.

    한자는 말과 글이 동시적인 만들어진 것이며, 전 세계의 모든 언어에 영향을 미쳤다. 한자는 복잡하지만 중국 언어는 간결하다. 한자의 근간은 상형문자이며, 문학적 상징이 발달하였다.

    따라서 한자와 훈민정음은 서로에게 필연적인 요건을 가진 관계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실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알파벳과 훈민정음 중에 어느 것이 ‘소리기호’로써 더 우수할까? 영어에는 발음기호가 별도로 있어야 할 정도로 미비하다. 그런데도 중국은 70년대에 알파벳을 발음기호로 채택하였다. 왜 그럴까? 훈민정음을 채택하였을 경우, 한자를 써야 할 필연성이 매우 적어지게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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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민정음이 만들어진 이유

     

    한국인이 한자로 말을 적으려면 소리를 한자로 바꾸어 적어야만 했는데, 이 때문에 의사소통이 결코 쉽지 않았다. 한자로 의사소통하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인들은 이두(吏讀)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이두는 조정의 관리와 평범한 백성이 한자를 이용하여 한국말을 기록하는 문자 체계였다. 한자로써 한국말을 순서대로 적고, 심지어 한국말의 조사와 어미까지도 적었다. 그러나 이두는 한자를 사용하여 표기하는 것이므로 한국말의 소리를 특징적으로 나타낼 수 없을뿐더러 조사와 어미의 미묘한 차이를 반영할 수도 없었다. 이런 이유로 세종대왕이 한국말의 음운체계를 반영하는 문자를 창제하였고, 이로써 한국인은 말을 글로 온전히 적을 수 있게 되었다.

     

    이 혁신의 두 번째 측면은 한국인이 글자를 아주 쉽게 배우고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표의문자(表意文字)인 한자는 각각의 개념을 나타내는 문자를 일일이 배워야 했기에 매우 어려웠다. 또한 글자의 획이 복잡하여 쓰기도 쉽지 않았다. 이런 한자를 배운다는 것이 한국인과 같은 외국인에게는 매우 어려워서 대부분의 한국인은 한자를 비실용적이라고 생각하였으며, 문자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세종대왕이 창제한 문자는 단 28자이며 그 획도 단순했기 때문에 배우고 사용하기가 쉬웠다.


     

    훈민정음 창제 과정

     

    세종의 훈민정음 제정이 언제부터 구상되었고 착수되어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는지에 대하여는 기록이 전혀 없어 알 수 없다. 다만, '세종실록(世宗實錄)'에 의하면 세종 25년 12월조에 "이달에 상께서 언문 28자를 친히 제정하였다(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라고 기록했을 뿐, 그 경과에 대하여는 전혀 언급이 없다. 다만, 처음에는 세종 단독으로 구상하였다 하더라도 여러 신하의 중지(衆智)를 모아 상당한 기간에 걸쳐 추진되었을 것으로 추측될 따름이다. 이리하여 훈민정음이 제정되자 문자 창제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집현전과는 별도로 궁중에 언문청을 설치하고, 훈민정음의 보급과 이에 부수되는 문헌의 간행 등을 추진하는 한편, 해례와 같은 원리면의 연구도 여기에서 나온 듯하다.

     

    이후 훈민정음과 관련된 기사는 1444년 2월 《운회(韻會)》를 언해하고 같은 달에 최만리(崔萬理) 일파의 반대 상소에 부닥친다. 반대의 골자는 한자를 버리고 새 문자를 만듦이 사대모화(事大慕華)에 어긋날 뿐 아니라 선인이 만들어 놓은 운서를 뜯어 고치고 언문을 다는 것이 모두 무계(無稽)한 짓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1445년 4월 《용비어천가》가 완성되고, 이듬해 3월 《석보상절(釋譜詳節)》의 언해를 명하였으며, 그 해 9월 책으로서의 《훈민정음》이 이루어져 반포되고, 1447년 9월 《동국정운》의 완성 및 《용비어천가》의 반포, 1448년(세종 30) 11월 《동국정운》 반포, 1455년(단종 3) 봄에 《홍무정운》 역훈(譯訓) 완성 등, 사업은 매우 의욕적으로 추진되었다.

     

    먼저 《운회》를 번역한 것은 곧 《동국정운》의 편찬을 뜻하므로 그 사업은 이 무렵부터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훈민정음 해례의 작성은 아마도 1444년 최만리 일파의 반대 상소가 있은 직후부터 착수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이 동안에 중국 운학(韻學)의 이론을 연구하고, 한편으로는 《용비어천가》와 《석보상절》 등의 찬정(撰定)을 통하여 그 실제적 효용성을 실험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훈민정음 해례 본문에 나타나는 모든 자류(字類)를 추려 보면 처음 1443년에 제정하였던 28자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

     

    그것은 그 동안 운서 편찬과정에서, 또는 국어 표기를 통해서 거기에 필요한 자류가 더 요청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보완하기 위하여 더 많은 글자를 만들어 내는 방법을 강구하였던 까닭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하여 훈민정음은 더욱 갈고 다듬어졌으며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흠이 없는 것이 되었다고 믿기에 이르러 언문청에서 곧 간행에 착수, 46년(세종 28) 9월에 완성·반포하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훈민정음(Hunminjeongum, 訓民正音) -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유네스코한국위원회(번역 감수)
     

     

    훈민정음의 배경과 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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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3. 해례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이름 《훈민정음》 해례본
    Hunminjeongeum Manuscript / 
    Hunminjeongeum
    국가·소장 대한민국 서울 간송미술관
    등재유형 기록유산
    등재연도 1997년
    제작시기 1443년

    한글, 즉 훈민정음이라는 문자 체계의 사용 방법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책의 제목. 국보 제70호이며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참고로 해례본 책이 등재된 것이지, 무형의 훈민정음이라는 문자 체계 자체가 등재된 것이 아니다.

    1.2.3.1. 어떤 책인가?

    1940년에 와서야 비로소 다시 발견된, 한글이 어떤 원리를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설명이 실려 있는 책. 말하자면 한글의 설계도가 실려있는 책이다. 한글의 제작 원리에 대해서 밝혀져 있는 책은 이것이 유일하다. 현재 지구상에서 쓰이고 있는 모든 문자 가운데 창제 원리가 기록된 문서[5]가 있는 문자는, 한글이 유일하다.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된 것도, 바로 이 때문.

    언해본에는 제작원리 내용이 실려있지 않았기 때문에 해례본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한글의 창제에 대한 여러 가지 구구한 억측이 존재했다. 심지어는 창문살을 보고 본따 만들었을 거라는 추측까지 있었다.[6] 한글이 이런 얼토당토 않은 폄하를 겪던 와중에, 해례본이 발견되었기에 엄청나게 독창적이고, 매우 높은 수준의 언어학, 음성학적 지식과 철학적인 이론이 한글에 적용되어 있다는 것이 만천하에 확인된 것이다.

    해례본의 발견으로 인해 한글 창제의 원리에 대해 많은 것들이 확인되고 알려지긴 했는데, 사실 그 내용이 꽤 어려워서 아직도 대해 학자들 사이에 한글 원리에 대한 해석에 분명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도 있다. 특히 모음자와 관련된 부분.

    2014년 현재 알려져 있는 판본은 간송본과 상주본 단 둘뿐이다. 그나마도 소재가 알려져 있는 것은 간송본뿐이다. 다행히 간송본을 토대로 영인본이 제작되었기 때문에 열람이나 유실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2014년에 제3의 판본의 파편(...)이 궁중에서 쓰던 모자 속에서 발견되었다. 아래 항목 참고.

    1.2.3.2. 해례본의 구성

    • 임금의 글
      • 어제 서문
      • 본문(예의): 세종이 간략히 해설한, 글자의 운용 방법
    • 신하의 글
      • 해례(다섯 '해설'과 한 '예시'가 실렸기에 '해례'이다)
        • 제자해: 글자 창제에 관한 해설
        • 초성해: 초성 글자에 관한 해설
        • 중성해: 중성 글자에 관한 해설
        • 종성해: 종성 글자에 관한 해설
        • 합자해: 초중종 글자를 합한 글자에 관한 해설
        • 용자례: 글자를 활용한 예시
      • 정인지 서문 - 정인지 서문의 위치를 따지면 '서문'이 아닌 '발문'[7]이 되겠으나, 세종이 서문을 쓰기 전에 정인지가 이미 썼던, 굳이 말하자면 원조 서문이 정인지 서문이며, 세종의 서문이 추가되면서 이것이 뒤로 밀려났을 뿐이기에 편집상의 위치와 무관하게 '서문'으로 불린다. '정인지 후서'라는 표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후서는 보통 책이 쓰이고 나서 한참 훗날에 추가적으로 쓰인 글을 의미하는바, 정인지는 창제와 거의 동시에 이 글을 썼으므로 적합하지 않은 표현이다. 《훈민정음》의 후서에 해당하는 것은 이하에서 설명할 숙종의 글.

    그리고 한문으로 쓰여 있다. 흔히 말하는 '나랏말싸미…'는 언해본의 서문이고, 《훈민정음》의 서문은 '國之語音、異乎中國…'로 시작한다. 당대의 문자 언어는 한문이었고, 새로 만든 문자를 설명하는 문자언어가 한문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최초로 발견된 《훈민정음》은 맨 앞 부분 두 장이 고의적으로 찢긴 상태였다. 이 낙장 두 장은 실록본을 베낀 가짜 페이지로 메꿔져 있었다[8]. 찢긴 이유에 대해, 학자들은 연산군의 한글 탄압 때 책을 감추기 위해서 표지를 뜯어 내고 다른 표지냈기 때문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연산군의 한글 탄압 때문에 표지를 뜯은 게 아니라는 정황적 근거가 있다. 최초 발견된 《훈민정음》의 종이 뒷면에는 가난하여 종이가 없어 기존의 책을 재활용했을 한 선비가 필사한 것으로 보이는 《십구사략언해》가 있었는데[9], 이 내용 역시 초반부가 등장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책을 필사할 때 처음부터 쓴다는 점을 감안하면, 표지를 뜯어낼 때 이 필사 내용 역시 같이 뜯겨져 나간 것으로 보인다. 이 《십구사략언해》는 내용상 약 18세기 후기에 필사된 것으로 보이니, 결국 책 표지를 뜯어낸 것은 18세기 이후라는 얘기가 된다. 16세기의 연산군 한글 탄압과 연관지을 수 없다.


     
     
     
     
     
     
     
     
     
     

    1.3. 조선시대 훈민정음 취급에 관하여

    1.3.1.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든 이유

    한글을 창제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국문학계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문제이다. 한 예로 한글 창제 이후로는 양반들이 한문을 공부할 때, 우리말과는 체계가 애초에 다른 한문글의 구절마다 한글로 된 토를 달아서(현토) 훨씬 배우기 쉽게 하는 등 양반들에게도 무척 유용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양반은 한문을 모르는 부녀자[16] 및 평민들[17]과 글로 소통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에 기본 소양으로 한글을 모두 알고는 있었다. 물론 연암 박지원처럼 끝내 한글을 배우지 못했던 경우도 있었다.

    실제 조선시대에 쓰인 한글은, 글 읽기보다 생계에 바빴던 평민층에 비해 오히려 양반 부녀자층이나 중인층에게 유용하게 쓰였으며, 특히 실질적인 행정 실무를 담당했던 중인층에게 유용했다는 점에서 통치 체제 강화에 적지 않게 일조하였음이 눈에 띈다. 세종이 오로지 백성들을 위해 한글을 지었다면, 정작 그의 치세에 한글로 번역되거나 반포된 책들이 《월인천강지곡》 같은 불교언해나, 아니면 이성계의 역성혁명[18]을 정당화하는 《용비어천가》 등의 책들 말고는 왜 그다지 주목할 만한 것이 없는지에 대해서도 고려해 봐야 할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훈민정음》의 주된 창제 이유를 지배 체제 강화에서만 찾는 것은 성급한 오류이다. 애초에 양반들을 비롯한 지배층의 편의성이 주된 이유였다면 만들 때 반포 이유로도 그것을 내세우는 편이 훨씬 설득력 있고 반대에 부딪힐 이유도 훨씬 줄어든다. 더욱이 훈민정음의 창제는 이후 양반 지배층 이외의 계층들 사이에서도 문화를 꽃피우는 근본이 되었다는 점에서, 단지 시간이 오래 걸렸을 뿐 세종의 근본적인 의도가 관철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언어학자 노마 히데키는 저서 《한글의 탄생》에서, 당대 조선에서 사용되던 기록은 모두 붓을 사용하여 한자로 쓰여진 것이었음을 지적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바로 붓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붓으로 글씨를 쓸 때에 생기는 획의 삐침이나 획 사이의 여백, 그리고 글씨를 이어서 쓰는 연서 등은 필연적인 것이자, 동시에 글씨의 형태를 완성하는 데 있어서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오늘날 한자는 연필 등의 다른 필기구로 쓰여지지만 이러한 삐침은 사라지지 않고 획 자체에 포함되어 유지되고 있다. 만일 사대부들의 통치를 쉽게 하기 위해서 글씨를 만들었다면 당연히 그들이 사용하는 필기구인 붓을 사용할 것을 전제로 자형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물론 《훈민정음》 책 자체는 붓으로 쓰여졌지만) 훈민정음의 자모만큼은 그러한 삐침 등이 완전히 생략된, 다시 말해 나뭇가지와 같은 원시적 도구로도 충분히 쓸 수 있는, 선과 원으로 이루어진 간결함의 극치를 보인다.

    지식인이라면 당연히 붓을 쓰던 시대에, 훈민정음은 자형을 만드는 단계에서 이미 붓을 쓰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해서 만들어졌다. 노마 히데키는 훈민정음의 극도로 단순한 모양은 붓과 먹, 종이 같은 필기 도구를 살 형편이 안되는 백성들까지도 문자를 쓰게 될 것을 배려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추측했다.

    저자의 말을 덧붙이면...

    '훈민정음은 어리석은 백성이 모래 위에 나뭇가지로 낙서하듯 그리기에 어려움이 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참고로, 훈민정음에 연서와 삐침이 등장한 것은 창제 후 수 세기가 지나고 궁체가 등장하면서부터였다. 이와 비슷하게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많은 문자들이 대개 복잡하면서 장식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는 반면에, 실용성만을 고려하여 장식성을 완전히 배제한 초창기 훈민정음의 모양은 어떻게 보면 당대의 서체 미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전위적인 형태이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거의 근대 모더니즘을 연상케 한다.

    즉, 세종이 한글을 만든 가장 중요한 이유는 《훈민정음》 서문에도 잘 나와 있듯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그 뜻을 펼칠 수 없는 백성들을 위해서였다.[19] 다른 이유가 섞여 있을지라도, 가장 중요한 목적을 덮을 수는 없다. 세종대왕이 공들여 훈민정음을 창제한 덕분에 당대의 많은 백성들은 물론이고 오늘날의 우리들까지도 한글을 잘 사용하고 있지 않는가. 따라서 세종대왕이 뭔가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한글을 만들었다고 폄하할 수는 없을 것이다.

    1.3.2. 왕실 입장에서의 훈민정음

    '언문'이나 '암클'은 구한말에 살았던 한글 학자들의 증언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비하어로 쓰였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조선시대 내내 '왕실의 공식적인 입장'은 한글 비하와는 매우 동떨어져 있다.

    조선 왕실의 공식적인 입장에 따르면, 훈민정음은 하늘이 내린 위대한 성인(聖人)이신 세종대왕이 범인(凡人)을 초월한 성지(聖知)로서 지어낸 글자이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라는 게 함정 거의 최상급의 극찬을 바치고 있는 것인데, 여기에는 까닭이 있다.

    이 극찬은 '하늘→성인=세종대왕→지혜→훈민정음'이라는 도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당연히 세종대왕의 혈통을 이어받은 조선 왕실의 정통성과 신성함을 강조하기 위하여 세종대왕의 업적을 드높이려는 의도가 있다. 바로 지금 이순간에 모든 사람들이 널리 쓰고 있는 문자보다 세종대왕의 위대함을 알기 쉽게 드러내는 업적은 없다. 심지어 현대에 조선왕조를 비판적으로 보는 견해에서도 세종대왕과 한글을 부정하는 사례는 거의 없으며, 조선왕조에 대해서 과도하게 비하, 부정하는 의견에 대해서는 "너 조선 깔려면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 쓰지 마라."는 말까지 공공연히 나올 정도. 민주화된 현대에도 이 같은 상황이니 왕조 시대의 프로파간다 효과는 짐작할만하다.

    한글로 쓰인 문장은 속된 것이며 낮은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문자 자체는 왕조의 위업으로 여겨져 조선시대 내내 극한 칭송의 대상이었다는 점은은 분명하다. 왕족들도 훈민정음을 서슴없이 사용했음은 아래 사진들을 보자.

    여덟 살 정조가 원손이던 시절에 쓴 편지. 언문으로 되어 있다. "상풍(가을 바람)에 건강 평안하신지 문안 알고자 합니다. (외숙모를) 뵌지 오래되어 섭섭하고 그립습니다. 어제 (보내주신) 편지보고 든든하고 반가우며 할아버님께서도 평안하시다 하니 기쁩니다. -원손(元孫)" 악필이다. 여덟 살 어린애가 써봤자 얼마나 잘 쓰겠어 그래도 여덟 살 치고는 잘 쓴 편 아닌가? 게다가 붓과 먹인데

    이외에 다른 왕이나 왕족도 한글로 편지를 보낸 것이 많다. 더 보려면 여기 클릭. 네이버에서 언해본과 같이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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