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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대표작으로 보는 광복이전 시: 김영랑 - 모란이 피기까지는 / 내 마음을 아실 이
2015년 12월 11일 03시 35분  조회:4139  추천:0  작성자: 죽림
 

모란이 피기까지는/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五月)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三百)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해설>1934년 [문학(文學)]에 발표하였으며, 1935년 간행된 [영랑시집(永郞詩集)]에 수록되었다.

시인은 이 작품에서 ‘기다리는 정서’와 ‘잃어버린 설움’을 대응시키고 있다. ‘모란’은 그의 정신적 거처로서 이상(理想)의 실현에 강한 집념을 보여주는 대상이다. 그가 참고 기다리고 또 우는 것도 모란이 피고지는 까닭이다. ‘삼백 예순 날’은 모란이 피는 날과 그것이 피기를 기다리는 시간의 연속으로 보람있는 날이지만, 그 감정의 밑바닥에는 무엇을 잃은 상실감과 허무의식이 깔려있다. 향제(鄕第: 고향집)의 뜰에 정성들여 가꾼 수많은 모란과 그것들이 피기를 기다리는 ‘오월’, 시인이 기다리고 또 보내기를 꺼려하는 ‘봄’의 상징적 의미는 무엇일까? 모란이 피는 오월이 가면, 또 다시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는 ‘봄’은 시인이 살던 시대상황으로 식민치하의 지식인들이 가졌던 실의와 좌절감에서 벗어나 그들의 보람과 이상이 꽃 피어나기를 기다리는 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여기서 ‘봄’의 상징적 의미는 어느 하나로만 한정할 수는 없다. 
보다 더 큰 이상과 가치의 세계로까지 확대되는 보람과 목적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 시는 ‘슬픔’이나 ‘눈물’이 겉으로 노정되어 있지 않고, 그것들을 곱고 아름다운 율조에 의해 순화하고 있는 것이다. 영랑은 여기서 우리 말이 갖는 율조를 다듬고 깎은 시행의 정돈으로 서정시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현대문학대사전)

* 이 시의 화자는 간절한 기다림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그가 기다리는 것은 모란이 만발하는 순간, 즉 봄이 절정에 이르는 때이다. 그러나 이 순간이 지나면 봄은 끝이 나고 모란의 지극한 아름다움 역시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데, 화자의 슬픔이 여기에 자라잡고 있다. '모란'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모란이 개화하여 절정에 이르는 시간은 설렘과 기대를 동반하지만, 절정의 아름다움은 그 상태를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 그 찰나의 순간이 지나면 이후는 하강과 소멸의 과정이 뒤따르게 되는 것이 지상의 모든 존재가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속성인 것이다. 이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화자에게 봄의 찬란한 순간은 기쁨의 순간인 동시에 슬픔의 순간이기도 하다. (한권에 잡히는 현대시)

* ​김영랑의 시세계

​ 영랑의 시는 순수 서정시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의 많은 시가 의미를 크게 강조하거나 관념에 비중을 두기보다는 언어의 미적 구조와 음악성에 치중한다는 점에서는 순수시라고 볼 수 있으며, '내 마음'이라는 주관적 감정의 표출에 몰두한다는 점에서는 서정시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시는 순수 서정의 세계에만 함몰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시는 상징시로서의 면모와 이미지즘의 측면이 드러나기도 하며, 또한 존재론적인 생의 인식이 발견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그의 시에 비관적인 현실 인식과 부정적인 세계관이 일관되게 흐른다는 것은 중요한 점이 아닐 수 없다. 다만 그러한 것들이 보다 적극적, 투쟁적으로 강조되어 나타나지 않을 뿐이며, 이것조차 언어 미학적인 섬세한 배려가 시의 표면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약화되어 보일 뿐이다. 그러나 그의 시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시야말로 시의 의미와 가락, 그리고 형식이 유기적으로 잘 통합됨으로써 현실 인식이 미의식으로 탁월하게 상승된 예술시의 한 모델이 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시가 당대 현실의 참상과 민중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직접적으로 표출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오히려 영랑이 시종일관 언어 미학에 끈질긴 집념을 가진 것은 당대 일제의 포악한 파시즘에 시인이 대처할 수 있는 예술적 응전 방식이라는 점에서 고무적인 일로 판단된다. 그가 보여 준 한국의 정통적 서정과 가락에 대한 뜨거운 애정, 향토적 정감의 소중함에 대한 재발견의 노력, 그리고 그에 따른 한국어의 시적 가치와 그 예술적 가능성에 대한 깊이 있는 신뢰와 실천적 탐구야말로 바람직한 시인의 사명 완수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재홍, 한국현대시인연구)

 

 

 

<김영랑(金永郎): 1903-1950>

 

 

* 1903년 전라남도 강진에서 출생. 본명은 윤식(允植). 영랑은 아호.

* 1915년 강진보통학교를 졸업.

*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

* 1919년 휘문의숙 재학중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 강진에서 거사하려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6개월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중학부를 거쳐 같은 학원 영문학과에 진학하였다.

*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였다.

* 1945년 광복 후 은거생활에서 벗어나 사회에 적극 참여하여 강진에서 우익운동을 주도하였고, 대한독립촉성회에 관여하여 강진대한청년회 단장을 지냈으며,

* 1948년 제헌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여 낙선하였다.

* 1949년 공보처 출판국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 1950년 9·28수복 당시 유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 주요저서로는 [영랑시집] 외에, 1949년 자선(自選)으로 중앙문화사에서 간행된 [영랑시선]이 있고, 1981년 문학세계사에서 그의 시와 산문을 모은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있다. 시비는 광주광역시 광주공원과 고향 강진에 세워졌다.

 

 

 

 

<전남 강진군 강진읍 김영랑생가 김영랑 시비, 시제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전남 강진군 강진읍 영랑로타리 김영랑 동상>

 

 

<전남 광주시 광주공원 김영랑 박용철 쌍둥이 시비, 시제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제주도 제주조각공원 신천지미술관 김영랑 시비, 시제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충북 음성군 큰얼굴조각공원 김영랑 시비, 시제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경북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문화공원 김영랑 시비, 시제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전남 강진군 강진읍 영랑현구문학관>

김영랑 생가 방문기

'북은 소월, 남은 영랑'이라 하여 '진달래꽃'을 쓴 김소월(1902.8.6~1934.12.24) 시인과 더불어 우리 시문학사에 쌍벽을 이루는 시인 김영랑(金永郞, 1903.1.16~1950.9.29). 그는 갔지만 그가 남긴 시는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가치' 우리 곁에 영원히 남아 시린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져주고 있다.

영랑생가의 안채 오른 편에 딸린 자그마한 마당에 들어서자 영랑이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란 시를 쓴 장독대가 놓여 있다. 그 장독대 주변에 보란 듯이 감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이 시는 1930년 어느 날 영랑이 누이가 장독을 열 때 단풍 진 감나무 잎이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고 '오-메 단풍 들것네'라고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 쓴 시다.

지금은 장독 기능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시가 되어버린 장독대 뒤편에는 몸뚱이를 이리저리 뒤틀어 꼰 동백나무가 몇 그루 서 있다 그 중 가운데, 가지를 비스듬하게 장독대 쪽으로 엎드리고 있는 동백나무가 한 그루 있다. 이 동백나무가 영랑이 우리나라 최고 춤꾼이었던 최승희와의 사랑을 부모님 반대로 이루지 못해 목을 매달고 죽으려 했다는 나무다. 
"첫 부인과 사별한 영랑은 2년 뒤 18세 때 이화여전을 나와 하숙하던 강진보통학교 여교사마재경과 열애에 빠진다. 하지만 그 사랑은 영랑이 일본 유학길에 오르면서 끝을 맺는다. 그 뒤 귀국한 영랑은 22세 되던 해 정지용 등과 만나며 최승일의 누이동생인 숙명여학교 2학년 최승희(13세)와 약 1년 동안 목숨을 건 사랑에 빠진다."

김선태 교수는 "영랑은 1년 중 6개월을 서울에서 머물렀다. 하지만 최승희와의 사랑도 양가 부모들의 반대에 부딪쳐 결실을 맺지 못했다"며 "영랑의 집안에서는 '그런 경성 신여성은 우리 가문에 필요 없다'는 이유로, 최승희 집안에서는 영랑의 지방색을 들어 각각 반대했다"고 설명한다. 
김 교수는 "이때 영랑이 자살을 시도했으나 다행히 발각되어 목숨을 건진다"며 "영랑은 그 다음 해 숙부의 중매로 개성 호수돈여고를 나와 교편생활을 하던 김귀연과 재혼해 슬하에 7남3녀(2남인 김현복은 생후 1년 뒤 사망)를 두게 된다. 김귀연이 호적상 본부인이 된 셈"이라고 밝힌다.

김 교수는 "영랑은 사실 일본 유학 때 음악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딴따라' 운운하는 부모님 반대로 어쩔 수 없이 영문학을 했다. 그의 시에 음악성이 깔린 것도 이 때문"이라며, "부유한 지주집에서 태어난 영랑은 고향에서 친구들과 중등학교(금릉중학교)을 설립하기도 하고,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낙선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사랑채로 가는 마당 한 귀퉁이에는 '모란이 피기까지는'에 나오는 그 모란이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리며 바싹 마른 열매를 을씨년스럽게 매달고 있다. 영랑의 시혼이 담긴 모란 열매를 오래 바라보며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읊다가 오른쪽에 있는 사랑채로 향한다. 사랑채 안에는 마네킹이 된 영랑이 지금도 시를 쓰고 있다.

 

(발췌)(이종찬/기자)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테요

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머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오매 단풍 들것네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 붉은 감잎 날아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니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디나 계실 것이면,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 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 밤 고이 맺는 이슬 같은 보람을

보밴 듯 감추었다 내어 드리지.


아! 그립다.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향 맑은 옥돌에 불이 달아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 듯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 내 혼자 마음은.

 

 

 

 

강 물                                                    


잠 자리 서뤄서 일어났소

꿈이 고웁지 못해 눈을 떳소


벼개에 차단히 눈물은 젖었는듸

흐르다못해 한방울 애끈히 고이었소


꿈에 본 강물이 몹시 보고 싶었소

무럭무럭 김 오르며 내리는 강물


언덕을 혼자서 지니노라니

물오리 갈매기도 끼륵끼륵


강물은 철 철 흘러가면서

아심찬이 그꿈도 떠실고 갔소


꿈이 아닌 생시 가진 설움도

작고 강물은 떠실고 갔소.

 

 

 


5월 아침                                                


비 개인 5월 아침

혼란스런 꾀꼬리 소리

찬엄(燦嚴)한 햇살 퍼져 오릅내다


이슬비 새벽을 적시울 즈음

두견의 가슴 찢는 소리 피어린 흐느낌

한 그릇 옛날 향훈(香薰)이 어찌

이 맘 홍근 안 젖었으리오마는

이 아침 새 빛에 하늘대는 어린 속잎들

저리 부드러웁고

발목은 포실거리어

접힌 마음 구긴 생각 이제 다 어루만져졌나보오


꾀꼬리는 다시 창공을 흔드오

자랑찬 새 하늘을 사치스레 만드오

사향(麝香) 냄새도 잊어버렸대서야

불혹이 자랑이 아니 되오

아침 꾀꼬리에 안 불리는 혼이야

새벽 두견이 못 잡는 마음이야

한낮이 정밀하단들 또 무얼하오


저 꾀꼬리 무던히 소년인가 보오

새벽 두견이야 오-랜 중년이고

내사 불혹을 자랑턴 사람.

 

 

 


언덕에 바로 누워                                      


언덕에 바로 누워

아슬한 푸른 하늘 뜻없이 바래다가

나는 잊었습네 눈물 도는 노래를

그 하늘 아슬하여 너무도 아슬하여


이 몸이 서러운 줄 언덕이야 아시련만

마음의 가는 웃음 한때라도 없더라냐

아슬한 하늘 아래 귀여운 맘 질기운 맘

내 눈은 감이였데 감기였데.
 

 


 

지반추억(地畔追億)                                  


깊은 겨울 햇빛이 따사한 날

큰 못가의 하마 잊었던 두던길을 사뿐

거닐어가다 무심코 주저앉다

구을다 남어 한 곳에 쏘복히 쌓인 낙엽

그 위에 주저앉다

살르 빠시식 어쩌면 내가 이리 짖궂은고

내 몸 푸를 내가 느끼거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앉어지다?

못물은 치위에도 달른다 얼지도 않는 날세

낙엽이 수없이 묻힌 검은 뻘 흙이랑 더러

들어나는 물부피도 많이 줄었다

흐르질 않더라도 가는 물결이 금 지거늘

이 못물 왜 이럴고 이게 바로 그 죽음의 물일가

그저 고요하다 뻘흙속엔 지렁이 하나도

꿈틀거리지않어? 뽀글하지도 않어 그저

고요하다 그 물 위에 떨어지는 마른 잎

하나도 없어?

햇빛이 따사롭기야 나는 서어하나마 인생을 느꼈는데.

여나문해? 그때는 봄날이러라 바로 이 못가이러라

그이와 단 둘이 흰 모시 진설 두르고 푸르른

이끼도 행여 밟을세라 돌 위에 앉고

부풀은 봄물결 위에 떠노는 백조를 희롱하여

아즉 청춘을 서로 좋아하였었거니

아! 나는 이지음 서어하나마 인생을

느끼는데.

 

 

 


발 짓                                                    


건아한 낮의 소란소리 풍겼는듸 금시 퇴락하는 양

묵은 벽지의 내음 그윽하고

저쯤에사 걸려 있을 희멀끔한 달

한자락 펴진 구름도 못 말어놓은 바람이어니

포근히 옮겨 딛는 밤의 검은 발짓만 고되인

넋을 짓밟누나

아! 몇날을 더 몇날을

뛰어본다리 날아본다리

허잔한 풍경을 안고 고요히 선다.

 

 

 


풀 위에 맺어지는 이슬                               


풀 위에 맺어지는 이슬을 본다

눈썹에 아롱지는 눈물을 본다

풀 위엔 정기가 꿈같이 오르고

가슴은 간곡히 입을 벌린다.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 (발표 당시의 제목은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날 빛이 빤질한

은결을 도도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오월(五月)                                              
 
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

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진다.

바람은 넘실 천(千) 이랑 만(萬) 이랑

이랑 이랑 햇빛이 갈라지고

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

꾀꼬리는 엽태 혼자 날아볼 줄 모르나니

암컷이라 쫓길 뿐

수놈이라 쫓을 뿐

황금빛 난 길이 어지럴 뿐.

얇은 단장하고 아양 가득 차 있는

산봉우리야, 오늘 밤 너 어디로 가 버리련?


 

 

 

독(毒)을 차고                                           
 

내 가슴에 독을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害)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흩어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 위협하고,


독 안 차고 살어도 머지 않아 너 나 마주 가버리면

억만 세대(億萬世代)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虛無)한듸!' 독은 차서 무엇하느냐고?


아!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않고 보낸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듸!'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 날 내 외로운 혼(魂) 건지기 위하여.

 


 

 

춘향(春香)                                               
 

큰 칼 쓰고 옥(獄)에 든 춘향이는

제 마음이 그리도 독했던가 놀래었다

성문이 부서져도 이 악물고

사또를 노려보던 교만한 눈

그 옛날 성학사(成學士) 박팽년(朴彭年)이

오불지짐에도 태연하였음을 알았었니라

오! 일편 단심(一片丹心)


원통코 독한 마음 잠과 꿈을 이뤘으랴

옥방(獄房) 첫날밤은 길고도 무서워라

서름이 사무치고 지쳐 쓰러지면

남강(南江)의 외론 혼(魂)은 불리어 나왔느니

논개(論介)! 어린 춘향을 꼭 안아

밤새워 마음과 살을 어루만지다

오! 일편 단심(一片丹心)

        
사랑이 무엇이기

정절(貞節)이 무엇이기

그 때문에 꽃의 춘향 그만 옥사(獄死)한단말가

지네 구렁이 같은 변학도(卞學徒)의

흉칙한 얼굴에 까무러쳐도

어린 가슴 달큼히 지켜주는 도련님 생각

오! 일편 단심(一片丹心)


상하고 멍든 자리 마디마디 문지르며

눈물은 타고 남은 간을 젖어 내렸다

버들잎이 창살에 선뜻 스치는 날도

도련님 말방울 소리는 아니 들렸다

삼경(三更)을 세오다가 그는 고만 단장(斷腸)하다

두견이 울어 두견이 울어 남원(南原) 고을도 깨어지고

오! 일편 단심(一片丹心)


 
 

 

두견(杜鵑)                                               
  

울어 피를 뱉고 뱉은 피 도로 삼켜

평생을 원한과 슬픔에 지친 작은 새,

너는 너른 세상에 설움을 피로 새기러 오고,

네 눈물은 수천(數千) 세월을 끊임없이 흐려 놓았다.

여기는 먼 남(南)쪽 땅 너 쫓겨 숨음직한 외딴 곳,

달빛 너무도 황홀하여 호젓한 이 새벽을

송기한 네 울음 천(千) 길 바다 밑 고기를 놀래이고,

하늘가 어린 별들 버르르 떨리겠구나.

 

몇 해라 이 삼경(三更)에 빙빙 도는 눈물을

씻지는 못하고 고인 그대로 흘리웠느니,

서럽고 외롭고 여윈 이 몸은

퍼붓는 네 술잔에 그만 지늘꼈느니,

무섬증 드는 이 새벽까지 울리는 저승의 노래.

저기 성(城) 밑을 돌아나가는 죽음의 자랑 찬 소리여,

달빛 오히려 마음 어둘 저 흰 등 흐느껴 가신다.

오래 시들어 파리한 마음마저 가고지워라.

 

비탄의 넋이 붉은 마음만 낱낱 시들피느니

짙은 붐 옥 속 춘향이 아니 죽었을라듸야

옛날 왕궁(王宮)을 나신 나이 어린 임금이

산골에 홀로 우시다 너를 따라 가시었느니

고금도(古今島) 마주 보이는 남쪽 바닷가 한 많은 귀향길

천리 망아지 얼렁 소리 쇤 듯 멈추고

선비 여윈 얼굴 푸른 물에 띄웠을 제

네 한된 울음 죽음을 호려 불렀으리라.

 

너 아니 울어도 이 세상 서럽고 쓰린 것을

이른 봄 수풀이 초록빛 들어 풀 내음새 그윽하고

가는 댓잎에 초승달 매달려 애틋한 밝은 어둠을

너 몹시 안타까워 포실거리며 훗훗 목메었느니

아니 울고는 하마 지고 없으리, 오! 불행의 넋이여,

우거진 진달래 와직 지우는 이 삼경의 네 울음

희미한 줄 산(山)이 살풋 물러서고

조그만 시골이 흥청 깨어진다.

 


 

 

북                                                         
 
자네 소리 하게 내 북을 잡지

진양조 중머리 중중머리

엇머리 자진머리 휘몰아보아


이렇게 숨결이 꼭 마저사만 이룬 일이란

인생에 흔치 않어 어려운 일 시원한 일


소리를 떠나서야 북은 오직 가죽일 뿐

헛 때리면 만갑(萬甲)이도 숨을 고쳐 쉴밖에


장단(長短)을 친다는 말이 모자라오

연창(演唱)을 살리는 반주쯤은 지나고

북은 오히려 컨닥타 - 요


떠받는 명고(名鼓)인데 잔가락을 온통 잊으오

떡 궁! 동중정(動中靜)이오 소란 속에 고요 있어

인생이 가을 같이 익어 가오


자네 소리 하게 내 북을 치지


 

 

 


물소리                                                   


바람따라 가지오고 멀어지는 물소리

아주 바람같이 쉬는 적도 있었으면

흐름도 가득 찰랑 흐르다가

더러는 그림같이 머물렀다 흘러보지

밤도 산골 쓸쓸하이

이 한밤 쉬어가지

어느 뉘 꿈에 든 셈 소리 없든 못할소냐  

새벽 잠결에 언뜻 들리어

내 무건 머리 선뜻 씻기우느니

황금소반에 구슬이 굴렀다

오 그립고 향미론 소리야

물아 거기 좀 멈췄으라

나는 그윽히 저 창공의 銀河萬年을 헤아려보노니  

 

 

 


수풀 아래 작은 샘                                    

 

수풀 아래 작은 샘

언제나 흰구름 떠가는 높은 하늘만 내어다보는

수풀 속의 작은 샘

넓은 하늘의 수만 별을 그대로 총총 가슴에 박은 작은 샘

두레박을 쏟아져 동이 가를 깨지는 찬란한 떼별의 흩는 소리

얼켜져 잠긴 구름 손결이

온 별나라 휘흔들어버리어도 맑은 샘

해도 저물녁 그대 종종걸음 훤듯 다녀갈 뿐 샘은 외로워도

그밤 또 그대 날과 샘과 셋이 도른도른

무슨 그리 향그런 이야기 날을 세웠나

샘은 애끈한 젊은 꿈 이제도 그저 지녔으리

이밤 내 혼자 나려가볼꺼나 나려가볼꺼나

 

 

 


사랑은 하늘                                            

 

사랑은 깊으기

푸른 하늘 맹세는 가볍기 흰구름쪽

그 구름 사라진다 서럽지는 않으나

그 하늘 큰 조화 못 믿지는 않으나 

 

 


숲향기                                                   

 

숲향기 숨길을 가로막았소 
발끝에 구슬이 깨이어지고 
달따라 들길을 걸어다니다 
하룻밤 여름을 세워버렸소

 

 

 


거문고                                                  


검은 벽에 기대선 채로 해가 스무번 바뀌었는데

내 麒麟은 영영 울지를 못한다

그 가슴을 퉁 흔들고 간 노인의 손

지금 어느 끝없는 향연에 높이 앉았으려니

땅 우의 외론 기린이야 하마 잊어졌을라

바깥은 거친 들 이리떼만 몰려다니고

사람인 양 꾸민 잔나비떼들 쏘다니어

내 기린은 맘둘 곳 몸둘 곳 없어지다

문 아주 굳이 닫고 벽에 기대선 채

해가 또 한번 바뀌거늘 이 밤도 내 기린은 맘놓고 울들 못한다

 


 

 

미움이란 말                                            


미움이란 말 속에

보기 싫은 아픔 미움이란 말 속에

하잔한 뉘침

그러나 그 말씀 씹히고 씹힐 때

한 꺼풀 넘치어 흐르는 눈물 

 

 

 

 

 

 

김영랑 金永郞 (1903. 1. 16 - 1950)                                                             


본명은 윤식(允植)이다. 전라남도 강진(康津)에서 출생하였다.

부유한 지주의 가정에서 한학을 배우면서 자랐고,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 3·1운동 때에는 강진에서 의거하려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6개월 간 옥고를 치렀다. 이듬해에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靑山]학원에 입학하여 중학부와 영문과를 거치는 동안 C.G.로세티, J.키츠 등의 시를 탐독하여 서정의 세계를 넓혔다.

 

1930년 박용철(朴龍喆)·정지용(鄭芝溶) 등과 함께 《시문학(詩文學)》 동인으로 참가하여 동지에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언덕에 바로 누워〉 〈쓸쓸한 뫼 앞에〉 〈제야(除夜)〉 등의 서정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시작(詩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어 《내 마음 아실 이》 《가늘한 내음》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의 서정시를 계속 발표.

 

1935년에는 첫째 시집인 《영랑시집(永郞詩集)》을 간행하였다. 잘 다듬어진 언어로 섬세하고 영롱한 서정을 노래한 그의 시는 정지용의 감각적인 기교, 김기림(金起林)의 주지주의적 경향과는 달리 순수서정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창씨개명(創氏改名)과 신사참배(神社參拜)를 거부하는 저항 자세를 보여주었고, 8·15광복 후에는 민족운동에 참가하는 등 자신의 시의 세계와는 달리 행동파적 일면을 지니고 있기도 하였다. 6·25전쟁 때 서울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은신하다가 파편에 맞아 사망하였다.

 


.................................................................................................................................. 

 

[작품 및 경향]

 

1930년 3월 박용철(朴龍喆), 정지용(鄭芝溶), 이하윤(異河潤) 등과 창간한 동인지 [시문학]에
시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언덕에 바로 누워> 등 6편과 <사행소곡(四行小曲)> 7수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시작활동 시작. 

초기 -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이나 인생태도에 있어서 회의 같은 것을 찾아볼 수가 없다. '슬픔'이나 '눈물'의 용어가 수없이 반복되면서도 비애의식(悲哀意識)은 영탄이나 감상(感傷)에
기울지 않고, '마음'의 내부로 향해 정감의 시세계를 이룩하고 있다. 

1940년 전후 - <거문고>, <독을 차고>, <망각>, <묘비명> 등 일련의 시작품에서는 형태적인 변모와 함께 인생에 대한 깊은 회의와 '죽음' 의식이 나타남. 이러한 죽음의식은 초기시에서와 같이 감상적인 차원이 아니라 일제 치하의 민족관념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해방 후- <바다로 가자>, <천리(千里)를 올라온다> 등은 일제 치하의 제한된 공간의식과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새나라 건설의 대열에 참여하려는 강한 의욕으로 충만되어 있다. 

시집으로는 <영랑시집>과 자선시집 <영랑시선> 이 있다.  
 


[김영랑論]

 

* 서정시의 본령을 보여 준 김영랑

 

김영랑(1903-1950)의 본명은 김윤식으로 1903년 전라남도 강진에서 출생하였다. 강진 보통 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올라와 휘문 의숙을 다니다가 3.1운동으로 6개월간의 옥고를 치렀으며, 이 일로 휘문 의숙을 중퇴한 김영랑은 일본으로 건너가 학업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관동 대지진이 일어나 다시 학업을 중단하고 강진의 자택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강진에서 무료한 생활을 하고 있던 영랑에게 송정리의 벗 박용철이 찾아와 시 전문지를 같이 내자고 제안했다. 박용철은 오랜 숙의 끝에 사재를 털어 [시문학] 창간호를 1930년에 발간하게 된다.

 

1930년은 김영랑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그 해 3월에 간행된 [시문학] 창간호에 13편의 시를 한꺼번에 발표하며 시단에 화려하게 등장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5월에 나온 [시문학] 2호에 9편의 시를 발표하였다. 말하자면 그는 20편이 넘는 작품을 1930년 두 달 동안에 한꺼번에 발표했던 것이다.

 

김영랑의 시는 당시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1920년대 중반 이후 카프를 중심으로 쓰여진 경향시는 생경한 사상성과 경직된 목적 의식을 주로 드러냈기 때문에 당시의 시단은 서정시의 본령을 보여 주는 김영랑의 시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이다. 이로써 시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변화하였고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방법적 자각을 가지고 시를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경향시 위주였던 당시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시에 대한 인식 변화시켜 김영랑의 시에는 '내 마음'이라는 어휘가 유달리 많이 보이는데 그가 이 말을 많이 사용한 것은 내면의 순결성을 표현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마음의 상태를 직접 제시하지 않고 대부분 자연의 이미지를 통하여 표현하였다.

 

그의 초기 시에 반복되어 나타나는 맑고 깨끗하고 고요한 자연의 정경은 그의 내면 세계를 표현하는 것들이다.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에 제시된 아침 햇살처럼 빛나는 은빛의 강물, [제야]에 제시된 맑은 샘물과 밤의 심상, [가늘한 내음]에 제시된 보랏빛 노을의 고요한 아름다움, [내 마음 아실 이]에 나오는 향맑은 옥돌의 심상 등은 모두 마음의 순결성을 나타내는 예들이다. 이렇게 맑고 깨끗하고 고요한 자연의 정경을 통하여 자신이 추구하는 순결한 마음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김영랑 서정시의 출발은 바로 이 순결성에 있었다. 이 순결성이 그의 시를 아름다운 해조와 서정주의의 극치로 몰아간 것이다. 그 순결한 마음은 자연의 미묘한 변화와 대응되므로 분명히 파악되지는 않는다. 순결성은 꽃가지의 은은한 그늘이나 봄날의 미미한 아지랑이처럼 모호한 상태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영랑은 자연의 맑고 깨끗한 정경을 통해 마음의 순결성을 보여 주었는데, 자연의 정결한 모습에 집중하게 되면 자연히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황홀감을 갖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본래 자연을 통한 순결성의 추구는 현실 세계의 추악함을 인식하는 데서 오는 경우가 많다. 이때에 자연은 현실과 대립적 위상에 놓이게 된다. 현실은 고통과 비애가 교차되는 장소로 인식되는 반면, 자연의 아름다움과 순결함은 이 모든 현실적인 것을 망각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의 많은 시들에서 보이는 것처럼 자연의 어느 한 순간이 가져다주는 극치의 아름다움은 그의 정신을 몽롱케 할 정도로 황홀감을 안겨 준다. 저녁놀이 물드는 보랏빛 하늘, 밤 깊이 흐르는 물소리와 찬란한 별떨기, 은색으로 황홀히 빛나는 달빛, 맑은 가을날의 고요한 정경, 이 모든 것이 자연미의 한 정점을 보인 것이어서 시인은 그 황홀감에 가슴 설레며 몸둘 바 몰라 한다.

 

그런데 이 황홀한 순간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모란이 한번 흐드러지게 피어 그 찬란한 빛을 불태웠다가 천지에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지상의 모든 아름다움이란 얼마나 쉽게 소멸하는지 모른다. 자연의 순결성도 현실 세계의 혼탁함 때문에 그 모습을 확연히 드러내지 않으며, 자연의 황홀한 아름다움 또한 자취 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라면 영랑의 자연 인식은 비극적인 모습을 띨 수밖에 없다. 그 비극성이 그의 심혼을 긴장시키고 그의 서정시를 가능케 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예컨대 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은 모란이 사라져 버리고 자신의 마음에 비탄과 상실의 감정이 남는 과정을 자세히 묘사해 놓았다. '뚝뚝'이라는 시어를 통해 모란이 무정히 사라져 버리는 정경을 소리로 나타내는가 하면, '떨어져 누운 꽃잎마져 시들어버리고'라는 시행을 통해 처절한 상실의 순간과 상실 뒤에 오는 형언할 수 없는 비탄의 정서를 표현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삼백예순 날을 계속 울고 지낸다는 과정적 표현을 배치하여 그리움의 정도가 대단하다는 사실을 드러내고자 했다.

 

한편으로 영랑의 자연에 대한 인식이 시인 자신의 내부에서 우러나오는 음악적 장단과 호응을 이루며 하나의 정경으로 표현될 때 그것은 오롯한 미의 원광을 두르게 된다. 가령 영랑의 [오월] 같은 시는 봄 들판의 약동하는 아름다움을 표현한 작품인데 시각적 이미지를 적절히 구사하여 심미감을 높이고 운율의 변화를 통하여 흥겨운 율동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서정적 표현의 한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 시는 우리 시의 역사에서 귀중히 간직하고 전수해야 할 표현 상의 백미(白眉)에 해당하는 작품이라고 판단한다.

 

* 맑고 깨끗한 자연의 정경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순결한 마음의 세계 표현

 

김영랑의 시에서 인생과 사회에 대한 발언이 중심을 이룬 작품은 아주 적다. 현실에 대한 반응을 보인 예로는 [거문고]라든가, [독을 차고], [우감(偶感)], [춘향] 등의 작품을 들 수 있을 정도이다. 이런 점 때문에 현실주의적 시각을 가진 사람은 김영랑의 시가 우리에게 어떤 효용이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앞에서 말한 [오월]처럼 자연의 정경을 묘사하는 것으로 일관한 작품은 그런 지적을 많이 받고 있다.

 

그러나 인생과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발언만 우리의 삶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과는 관련이 없는 듯한 자연에 대한 상상도 우리의 감정을 풍요롭게 하며, 새로운 비유와 표현의 구사도 언어사용의 폭을 넓힘으로써 실제의 삶을 윤택하게 가꾸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자연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아름다운 언어와 절묘한 기법으로 표현하였다는 사실만으로도 김영랑의 시는 그 나름의 충분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내 마음을 아실 이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1) 작품 선정의 취지와 지도 방법

 이 시는 여성적인 어조로 임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여성적 어조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우리말 시어와 어우러지면서 섬세한 정서를 자아내는 한편 시의 음악성을 두드러지게 하고 있다. 부드럽고 다양한 어미와 압축된 시어를 사용하여 서정적 운율을 형성하고 있는 이 시를 학습함으로써 학생들은 운율을 형성하는 자질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시를 지도할 때는. 학생들 스스로가 시의 운율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낭송 테이프를 미리 준비하거나 시의 분위기에 맞는 배경 음악을 준비하고 학생들이 음악에 맞춰 시를 낭송하도록 하여 우리말의 미묘한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지도한다.

2) 작품 지도안

1. 내용 구성

제재 : 내 마음

주제 : 임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

출전 : <시문학>(1931)

 1연 : ‘내 마음을 아실 이가 있다면'이라는 상황을 가정함.    -      가정제시

 2연 : 내 마음을 아실 이에게 내 마음을 내어 드리겠다는 다짐.  -  다짐

 3연 :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없을까 봐 두려움.         -                    회의적 물음 제기

 4연 : 내 마음을 아실 이는 없다는 단정을 내림.       -                   그리움

2. 이해와 활동의 길잡이

 이 시는 시인이 추구한 서정성과 음악성을 ‘그리움’이라는 전통적 정서와 결합시킴으로써 맑고 투명한 감성의 세계를 구현하고 있다. 우리말의 부드러움과 아름다움은 여성적 정조(情調)와 어울려 임을 간절히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언어적 장치를 이루고 있다. 모음과 유음 계통의 시어가 음악성을 두드러지게 하고 있으며,‘이슬 같은’의 영롱한 이미지와 ‘향 맑은 옥돌에 불이 달아’의 열정적 이미지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시적 화자의 내적 독백으로 전개되는 이 시는 스스로에 대해 묻고 대답하면서 시상을 전개시키고 있다. 1연에서는‘내 마음을 아실 이가 있다면’이라는 가정의 이면에 내 마음을 알아주는 임을 찾기가 어렵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2연에서는‘티끌’, '눈물', '보람' 등의 시어를 사용해 내 마음을 아실 이에게 내어 드릴 ‘내 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3연에서는 그러한 '내 마음'을 알아줄 임을 만나고 싶은 충동과 함께 그러한 임을 꿈에서나마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회의적 물음을 제기한다. 4연에서 '향 맑은 옥돌', ‘불'의 이미지는 다시 시적 화자의 사랑을 선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요컨대 이 시는 꿈과 현실, 소망과 좌절의 갈등구조로 되어 있으며, 가정과 자문자답(自問自答)은 그러한 갈등 구조를 표현하는 시적 장치가 되고 있다.

어구풀이 :

날 같이 : ‘나 같이'의 방언.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 : 마음 속에 나타나 자신을 깨우치는 조그마한 잘못이나 가책.

속임 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뉘우침의 눈물.  

푸른 밤 ~ 같은 보람 : 맑은 날 밤에 곱게 내려앉는 이슬처럼 아름다운 삶의 보람.  

향 맑은 옥돌에 불이 달아 : 맑고 순수한 사랑이 변함 없고 은근하게 타오름을 뜻한다.

'내 마음을 아실 이'

3. 작가 사전

김영랑(金永郞, 1903~1950) : 시인. 전남 강진(康津) 출생. 부유한 가정에서 한학을 배우면서 자랐다. 1930년 박용철·정지용 등과 함께 <시문학> 동인으로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전개하였다. 섬세하면서도 깨끗한 언어 감각과 예민한 감수성, 잘 다듬어진 시어로 고독한 내면 세계를 노래한 그의 시는 순수 서정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된다. 시집에 <영랑 시집>, <영랑 시선> 등이 있다.

3) 자료실 돋보기

1. 김영랑과 '시문학파'

 김영랑은 1930년대 일제의 문화적 탄압이 강화되는 상황 속에서도 모국어의 가치를 보존하고 다듬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그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던 시기인 1930년대의 시단은 많은 시인들이 새로운 시적 가능성을 찾아 다양한 실험을 거듭하던 시기로, 그는 섬세한 서정을 세련된 언어와 율동적인 음조로 표현하였다. 그는 전라도 지방의 서정을 수용하면서 토속어와 의성어, 의태어 및 부사어와 사투리를 사용함으로써 시어의 가능성을 넓혔다.

 1930년 박용철에 의해 창간된 순수시 동인지 <시문학(詩文學)>은 순수시 운동의 모태로, 3호까지 간행되었으며 <문학>, <문예 월간>으로 계승되었다. 김영랑은 이 <시문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박용철, 정지용 등과 함께 ‘시문학파’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이들은 우리말을 조탁(彫琢)하여 시어의 음악성을 살리고 시적 정서와 표현 기교를 섬세하게 가다듬어 시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시사적 의의를 갖는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와 사회 현실을 외면했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함께 받고 있다.

2. 더 찾을 거리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작품 해제 : 이 시는 '봄' 과 그 봄의 막바지에 피어나는 '모란'을 결합시켜 모란이 피어 있는 시간의 기쁨을 강조하고 있다. 시인은 봄과 모란을 함께 잃게 되는 순간을 절정의 순간으로 포착하고 있으며, 따라서 봄은 찬란함의 세계인 동시에 슬픔의 세계가 된다. 이러한 역설적 인식이 '찬란한 슬픔의 봄'으로 축약되어 제시되어 있다.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詩)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머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작품 해제 : 시의 각 연 1행과 2행은 모두 '-같이'로, 마지막 행은 '-고 싶다'로 끝나고 있다. 이 시는 하늘을 우러르고 싶고 바라보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 소박한 소망은 역설적으로 시적 화자가 처해 있는 현실이 불행한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4) 참고 자료

 김영랑의 시가 발휘한 음악성의 탁월함은 다양한 사건의 반복 현상이 시의 음악성을 살리는데 얼마나 효과적인 것인지를 시인이 인식하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리듬이란 본래 등시성을 가진 사건의 반복적 재현으로 만들어지는 것인데, 영랑의 시에는 바로 이와 같은 사건의 반복이 다양한 측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김영랑의 시에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건 단위의 반복으로 말미암아 음악성이 고조된다. 첫째, 음소 단위의 반복적 재현, 둘째, 음절 단위의 반복적 재현, 셋째, 단어 혹은 어절 단위의 반복적 재현, 넷째, 문장 구조의 반복적 재현, 다섯째, 시행과 연 단위의 반복적 재현, 여섯째, 다양한 음수의 반복적 재현 등이 그것이다.

 - 정효구, ‘1930년대 순수 서정시 운동의 시대적 의미’, 김은전 외, <한국 현대시사의 쟁점>(시와 시학사, 1991)

참고문헌  

김은전 외, <한국 현대시사의 쟁점> (시와 시학사, 1991)

김학동, <한국 현대 시인 연구> (민음사,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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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 다시 대표작으로 보는 1960년대 이후 시: 박용래 - 저녁눈 2015-12-22 0 4232
356 다시 대표작으로 보는 1960년대 이후 시: 천상병 - 귀천 2015-12-21 0 6014
355 다시 대표작으로 보는 1960년대 이후 시: 강은교 - 우리가 물이 되어 2015-12-21 0 3745
354 다시 대표작으로 보는 1960년대 이후 시: 김종길 - 성탄제 2015-12-20 0 3201
353 다시 대표작으로 보는 1960년대 이후 시: 허영자 - 자수 2015-12-20 0 4207
352 다시 대표작으로 보는 1960년대 이후 시: 정한모 - 나비의 려행 2015-12-20 0 3262
351 다시 대표작으로 보는 1960년대 이후 시: 이형기 - 폭포 2015-12-19 0 4133
350 다시 대표작으로 보는 1960년대 이후 시: 김광섭 - 성북동 비둘기 2015-12-19 0 4403
349 다시 대표작으로 보는 1960년대 이후 시: 신동엽 - 껍데기는 가라 2015-12-19 0 3179
348 다시 대표작으로 보는 1960년대 이후 시: 고은 - 머슴 대길이 2015-12-18 0 3523
347 다시 대표작으로 보는 1960년대 이후 시: 박재삼 - 흥부 부부상 2015-12-18 0 5684
346 다시 대표작으로 보는 광복以後 시: 신석초 - 바라춤 2015-12-18 0 4212
345 다시 대표작으로 보는 광복以後 시: 김남조 - 정념(情念)의 기(旗) 2015-12-18 0 3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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