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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 류(유)치환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向)하여 흔드는
영원(永遠)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순정(純情)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理念)의 푯대 끝에
애수(哀愁)는 백로(白鷺)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해설> 1936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유치환의 시 작품이다.
이 시의 원제는 「기빨」이며, 1934년 가을에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발표 당시 제7, 8행은 “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삼가한”이었으나, 1939년 시집 [청마시초]에 수록하면서 “아아 / 애닯은”으로 고쳐 연민과 애수의 분위기를 강화하였다. 9행 단연의 이 시는 진술에 의거한 관념적 표현을 위주로 하는 다른 시들과 달리, 주도적 모티프인 깃발을 다양하게 표상했다.
여기의 깃발은 이상향을 동경하는 순정을 뜻한다. 깃발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매달려 이상이나 이념을 실현하려고 소리없는 아우성을 치며 펄럭이는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즉 ‘해원’이란 표현과 연결되는 이상향에 대해 끝없이 동경하나 끝내 이상향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순정과 애수의 깃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이 시는 실현될 수 없는 이상에 대해 갖는 존재의 허무와 고뇌, 그리고 비원을 연민과 애수의 정서로 제시함으로써 삶에서 비롯되는 애환의 배후를 탐구하려는 초기의 시적 경향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한국현대문학대사전)
* <깃발>은 1939년에 나온 『청마시초』에 수록된 작품으로, 시적 배경이 바닷가임을 볼 때 어린 시절부터 자란 시인의 고향 체험이 이 시를 쓰게된 계기가 된 듯하다.
<깃발>에서 우리는 인간 본성과 인간의 존재 양식이 띤 모순과 부조리를 재발견할 수 있다. 이상향(영원)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시지프스 신처럼 무모하게 이상향에 도달하려는 모순과 부조리를 <깃발>은 인간 존재의 양식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깃발>의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초월적이고 이상적인 세계에 대한 근원적 그리움을 지닌 인간은 힘차게 나부끼며 그곳에 도달하고자 내적 몸부림을 쳐보지만, 이념의 푯대 끝에서만 나부낄 수밖에 없는 숙명을 어찌할 수 없는 비극적 존재로 인식된다. 그래서 가고자 하나 갈 수 없음을 인식한 후에는 그 마음이 '애수'가 되고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이 되어, "하강"의 이미지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마음 상태는 변증법적인 통일을 이룩하지 못하고 대립적 갈등 그 자체로 머물러 있게 된다. 더구나 이상향에 대한 동경이 의지로까지 발전하면서도 결국 좌절의 비애로 귀결지어지게 된다.
한편으로 이 시가 주는 의미를 생각해 보면, 오늘날 일상적인 삶이 우리에게 주는 구속은 견디기 힘들 때가 많다. 그러한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영원한 세계, 죽음이 없는 세계, 제약받지 않는 평화의 세계, 갈등이 없는 세계 등을 그리워하는 것이 인간의 조건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한 조건이 해결될 수 없기에 인간의 존재는 비극적이지만, 그러한 조건으로부터 탈피할 수 없는 것 또한 인간의 비극이다. 이 시는 시인이 지니고 사는 높고 그윽한 이념이 한없이 외롭고 애달픈 것임을 형상화해 놓은 작품인지도 모른다. (현대시 해설, 인터넷)
* 정지용의 '향수'와 유치환의 '깃발'
그리움, 향수를 다룬 시일지라도 정지용의 '향수'와 유치환의 '깃발' 사이에는 확연히 다른 바가 있다. 정지용의 '향수'는 철저히 향토적이며 가족의 체취가 물씬 배어나는, 알뜰한 흙에 묻힌 그리움 그래서 필자는 이를 백(魄)적 넋의 향수라 한 바 있고, 유치환의 '깃발'은 그와 너무나 대조적인 시의 맛을 보여주는 것으로 불안, 허무적이며 정착의 기미라고는 보이지 않는 것, 가볍게 어딘지 모르게 한없이 떠나가야 할 것 같은 표류의 정서, 이를 일러 필자는 혼(魂)적 넋의 향수라 말하고 싶다.
백(魄)은 무겁고 깊이 가라앉는 성격이 있고, 혼(魂)은 가볍고 한번 떠나면 영원히 돌아오기 어려운 철저히 나그네의 나부끼는 옷자락 같은 성격을 갖고 있다. 수행하지 못한 사람이 죽어 혼과 백이 날아가고 땅으로 묻혀 헤어지게 되면 다시 고향 찾기 어렵게 된다. 그러기에 혼과 백이 헤어지기 전에 사람은 알뜰히 수행하여 원래의 고향, 일러 피안(彼岸) 또는 극락정토(極樂淨土)를 찾아가야 한다. (국제신문 '능지스님의 자유')
<유치환(柳致環): 1908 - 1967>
* 1908년 경남 통영 출생. 호 청마(靑馬). 유치진의 동생으로 통영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요야마[豊山]중학에서 4년간 공부하고 귀국하여 동래고보(東萊高普)를 졸업,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하였으나 1년 만에 중퇴하였다.
* 1931년 [문예월간]지에 시 <정적(靜寂)>을 발표함으로써 시단에 데뷔, 그후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시작을 계속,
* 1939년 제1시집 [청마시초(靑馬詩抄)]를 간행하였다.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깃발>을 비롯한 초기의 시 53편이 수록되어 있다.
* 1940년에는 일제의 압제를 피하여 만주로 이주, 그곳에서의 각박한 체험을 읊은 시 <수(首)>, <절도(絶島)> 등을 발표하였다. 이 무렵의 작품들을 수록한 것이 제2시집 <생명의 서(書)>이다.
* 1945년 광복 후에는 고향에 돌아와서 교편을 잡는 한편 시작을 계속,
* 1948년 제3시집 [울릉도], 1949년 제4시집 [청령일기]를 간행하였고,
* 1950년 한국동란 때는 종군문인으로 참가하여 <보병과 더불어>라는 종군시집을 펴냈다. 그후에도 계속 교육과 시작을 병행, 중·고교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통산 14권에 이르는 시집과 수상록을 간행하였다.
* 제1회 시인상을 비롯하여 서울시문화상, 예술원공로상, 부산시문화상 등을 받았다.
*1967년 부산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 오랜 세월 동안 시조시인 이영도에게 보낸 사랑의 편지 중 200통을 추려 모은 서간집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1967)가 있다.
<경남 통영시 남망산공원 유치환 시비, 시제는 '깃발'>
<경남 거제시 청마기념관 유치환동상과 시비, , 시제는 '깃발', '행복'>
<부산 사하구 에덴공원 유치환 시비, 시제는 '깃발'>
<경북 경주시 불국사 유치환 시비, 시제는 '석굴암대불'>
* 석굴암대불/유치환
목 놓아 터트리고 싶은 통곡을 견디고
내 여기 한 개 돌로 눈감고 앉았노니
천년(千年)을 차가운 살결 아래 더욱
아련한 핏줄, 흐르는 숨결을 보라.
목숨이란! 목숨이란 ㅡ
억 만년을 원(願) 두어도
다시는 못 갖는 것이며
이대로는 못 버릴 것이매
먼 솔바람
부풀으는 동해 연 잎
소요로운 까막까치의 우짖음과
뜻 없이 지새는 흰달도 이마에 느끼노니
뉘라 알랴
하마도 터지려는 통곡을 못내 견디고
내 여기 한 개 돌로
적적(寂寂)히 눈 감고 가부좌하였노니.
◇ 유치환은 4264년(서기 1931년) '문예월간'에 시 '정적·靜寂'으로 등단했다. 시 '깃발'은 그 5년 뒤 '조선문단'에 발표되었다 했으니 시인의 나이 28세 때 일로 작시 경력 길지 않은 시기에 그의 대표적 시를 출산시켰다고 볼 일이다.
유치환의 청년 시대는 일제의 침탈 잔학성이 더 심해지고 그의 가세는 기울어 불안한 생활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시 '정적'이 발표된 다음 해 평양까지 올라가 사진관을 열어보기도 하고 다시 부산으로 내려와 화신연쇄점에 근무하기도 하는 등 삶에 안정을 찾지 못하고 고난의 질곡을 끌고 다녔다. 20대 중반 가난과 고난에 그렇게 이끌려 다니면서도 타오르는 시심을 끊임없이 가꾸어 올렸기에 '깃발'과 같은 걸작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고 본다.
아우성은 외침과는 다르다. 외침은 오로지 개인적이고 작은 소리에 지나지 않지만, 외침과 외침들이 많이 모여 동시에 한마음으로 소리 낼 때 아우성이 되는 것이다. 당연히 전달되는 메시지와 의미가 더 크고 진폭도 큰 것이 아우성이다. 그 아우성이 귀에 소리로 전달될 수 없다면 때로 얼마나 답답하고 기막힌 일이 될 것인가. '소리 없는 아우성' 그것은 그렇게 기막히고 말로 못할 사연을 깃발에 전가하여 표출한 것이다. '노스탈쟈' 곧 그리움이나 향수는 그리는 대상을 만나거나 거기에 도달하게 될 때 해소되기 마련이다. '영원한 노스탈쟈'는 그 해소의 길이 없다는 말이 된다. '해원'은 평원(平原)에 대치되는 말이다. 풀 푸른 평원이 눈앞에 전개되었을 때 맨발로 무작정 아무 생각 없이 내달릴 수 있다면 행복한 순간이 되지 않을까? '해원'은 마음껏 내달려 밟아 달라는 듯 풀 푸른 지평이 아닌, 거부와 경고의 몸짓을 끝없이 내 펼친 물결 푸른 바다 위엔 안타까운 상상만 내달릴 수 있을 뿐 아니겠는가.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그것은 주체할 수 없이 밀어닥치는 유치환의 애상과 그리움의 표상이다. '바람' 그것은 유치환의 시에 단골 격으로 등장하는 허무, 불안정의 대명사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유치환은 올곧은 선비, 소박하면서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의 시인이었다. 소년 같은 순수한 정의 소유자 유치환이 허무의 심회를 벗지 못하고 많은 시간 거기에 매달려 나부끼고 있었다고 보인다. 지사다운 품격의 소유자 유치환이 언제나 내세웠을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의 시심이 백로처럼 날개 펴고 비상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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