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名詩 공화국
새 壹.
1 박남수 하늘에 깔아논 바람의 여울터에서나 속삭이듯 서걱이는 나무의 그늘에서나, 새는 노래한다. 그것이 노래인 줄도 모르면서 새는 그것이 사랑인 줄도 모르면서 두 놈이 부리를 서로의 쭉지에 파묻고 따스한 體溫을 나누어 가진다.
2 새는 울어 뜻을 만들지 않고, 지어서 교태로 사랑을 가식(假飾)하지 않는다.
3 ㅡ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그 순수(純粹)를 겨냥하지만,
매양 쏘는 것은 피에 젖은 한 마리 상(傷)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새 貳.
이른녘에 넘어오는 햇살의 열의(熱意)를 차고, 산탄(散彈)처럼 뿌려지는 새들은 아침 놀에 황금의 가루가 부신 해체(解體). 머언 기억에 투기(投企)된 순수의 그림자.
새 參.
나의 內部에도 몇 마리의 새가 산다. 은유(隱喩)의 새가 아니라, 기왓골을 쫑, 쫑, 쫑, 옮아 앉는 실재(實在)의 새가 살고 있다. 새가 뜰로 나리어 모이를 쫓든가, 나무 가지에 앉든가, 하늘로 날든가,
새의 意思를 죽이지 않으면, 새는 나의 내부에서도 족히 산다.
새는 나의 내부에서도 쫑, 쫑, 쫑, 기왓골을 옮아 앉으며 조그만 自然이 된다.
새 四.
바람에 갈대가 우는 발 밑으로는 물이 흐르고, 포인타는 코를 저으며 갈밭을 허비다가 코를 들었다. 코의 방향으로 뚫린 포수(砲手)의 총구, 새는 투망(投網)처럼 하늘에 뿌려지고, 펑, 울린 맑은 공기의 구멍. 구멍에서 그려나가는 파동의 끝에 날개는 너울 너울 기울며, 떨어져간 한 마리의 새.
펑, 소리의 에코. 새들의 Vie는 진공지대에 울린 총소리 속에 있었다.
갈밭이 갑자기 물결치더니 머리를 내어민 포인타의 입에 물리인 피 묻은 총소리 키가 넘는 갈대가 우는 발 밑으로는 역시 물이 흐르고 있었다.
ㅡ 박남수, 『 신의 쓰레기 』, 모음출판사, 1964.
<해설 > 이 시에 등장하는 새는 애써 꾸미지 않은, 가식이 없는 절대 순수로 표상된다. 또한 천상과 지상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존재로 새는 외연적 의미를 넘어 순수 실제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위의 시에서 포수는 순수한 존재로 남아 있는 '새'에게 한 덩이 납이 담긴 총으로 그 절대순수를 위협한다. 하지만 포수가 매번 쏘는 것은 순수 그 실체가 아닌 '한 마리의 상한 새'에 불과한 더러운 현실, 비순수에 지나지 않는다. 즉 순수한 '새'는 파괴될 수 없는 이데아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의 새가 순수의 실체라면 그러한 순수를 깨뜨리고 파괴하는 자인 포수, 인간은 비순수의 비유로 대립을 보여주고 있으며, 한 마리 상한 새 등의 이미지를 통해 인간과 현대문명이 순수가치를 파괴하고 있다는 공포감을 느끼게 한다. 실제에 있어 포수는 '한 마리 상한 새'만을 손에 쥐게 되고 결국 부패를 순수로서 그리고 부조리의 진리로서 포획하고 있는 것이다. 박남수는 '새'라는 시를 통해 순수라는 것이 얼마나 다다르기 힘든 것인가라는 것에 대해 자연과 인간의 대비를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인생무상을 느끼고, 욕심버리며 있는 그대로 살아가야 됨을 다시 느낀다.
박남수(朴南秀, 1918∼1994)
평안남도 평양(平壤) 출생.
생애 및 활동사항
1937년 평양의 숭인상업학교를 거쳐, 일본에 유학하여 1941년 쥬오대학(中央大學)을 졸업하고 돌아와 곧바로 조선식산은행(朝鮮殖産銀行) 진남포지점에 입사하였다. 1946년에는 조선식산은행 평양지점장으로 승진, 1·4후퇴 당시 국군을 따라 월남하였다.
1954년 《문화예술》 편집위원, 1957년 한국시인협회 창립회원 및 심의위원회 의장, 1959년 《사상계》 상임편집위원, 한양대학교 문리대 강사(1973) 등을 역임하였다.
그는 가족들을 미리 미국으로 보내놓고, 국내에서 일자리를 찾아 전전하다가 구하지 못하고 1975년 가족들이 있는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살다가 1994년 9월 17일 미국 뉴저지주 자택에서 사망했다.
그의 작품 발표는 1933년 《조선문단》에 희곡 〈기생촌 妓生村〉이 입상된 것에서 비롯된다. 그 뒤 그는 시작(詩作)으로 전환하여 《시건설 詩建設》과 《맥 貘》 등의 시 전문지와 신문에 작품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가 문단에 본격적으로 데뷔한 것은 1939년 《문장 文章》에 3회에 걸쳐서 정지용(鄭芝溶)의 추천으로 〈심야 深夜〉·〈마을〉·〈주막 酒幕〉·〈초롱불〉·〈밤길〉·〈거리 距離〉 등 6편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시작된다.
이후 그가 사망할 때까지 《초롱불》(동경 삼문사, 1940)·《갈매기 소묘(素描)》(춘조사, 1958)·《신(神)의 쓰레기》(모음사, 1964)·《새의 암장(暗葬)》(문원사, 1970)·《사슴의 관(冠)》(문학세계사, 1981)·《서쪽 그 실은 동쪽》(인문당, 1992)·《그리고 그 이후》(문학수첩, 1993)·《소로 小路》(시와 시학사, 1994) 등 8권의 시집을 발간하였다.
그리고 1982년 김종한(金鍾漢)과 함께 지식산업사에서 ‘한국현대시문학대계’ 21권째로 펴낸 시집과 1991년 미래사에서 출간한 《어딘지 모르는 숲의 기억》 등 2권의 시선집, 그리고 같은 해 삼성출판사에서 간행된 재미 3인 시집 《새소리》 등을 통해 총 350여 편의 시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이밖에 〈현대시의 성격〉을 비롯하여 몇 편의 평론과 잡문이 있으나, 그 수에 있어서 극히 제한된 것으로 보아 그는 일생을 통하여 오로지 시작에만 몰두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훌륭한 표현만이 예술가의 특권이며, 사상을 사상으로만 제공한 것은 예술작품이 아니다.”라고 한 그 자신의 말과도 같이, 박남수는 실지 시작에서도 청각(聽覺이나 시각(視覺)을 통한 선명한 이미지와 시어구사로서 표현을 가다듬고 있다.
흔히 그를 일컬어 ‘새’의 시인이라 하고 있듯이, 그는 선명한 이미지와 그것을 통한 순수성의 지향이 시적 특색이 되고 있다. 한마디로 박남수의 시세계는 ‘빛’과 ‘어둠’, ‘삶’과 ‘죽음’이라는 대립적 심상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적 지향은 ‘새’의 상징적 이미지로 형상화되고 있다.
그는 말년에 미국으로 이민하여 낯선 땅에 살면서도 민족시를 통해 삶의 의미와 가치를 획득하려고 부단히 노력한 시인으로 이미지의 조형성(造形性)과 현대적 지성(知性)을 바탕으로 한 주지적 서정시를 쓴 것이다. 수상경력으로는 제5회 아시아자유문학상(1958)과 공초문학상(空超文學賞, 1992)을 수상했다.
참고문헌 『현대시해설』(조남익, 세운문화사, 1977) 「박남수론」(김춘수, 『심상』, 1975.6.) 「새와 순수」(박태수·정한모·김재홍 편저, 『한국대표시평설』, 문학세계사, 1983)
/(한국학중앙연구원)
|
이미지의 시인, 새의 시인,빛의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박남수는 1930년대말 문단에 데뷔한 이래로 1994년 타계하기까지 약 50여년 동안 여러 편의 시집 간행과 활발한 문학활동을 전개해 왔다. 습작기 때부터 이미 이미지즘에 경도되어 이미지의 순수성을 추구하는 감각의 세계와 언어표현의 암시성을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노력을 지속했던 박남수는 1939년 "심야","마을","밤길", "거리" 등이 정지용에 의해 추천되어 <문장>지를 통해 정식으로 문학활동을 시작한다. |
시인박남수의 시세계(2)
마을
박남수
외로운 마을이 나른나른 오수(午睡)에 조을고
넓은 마음에 솔개미 바람개비처럼 도는 날...
뜰 안 암탉이 제 그림자 쫓고 눈알 대룩대룩 겁을 삼킨다.
-제재:정오의 농촌마을 -주제: 한가롭고 평화로운 농촌 마을의 정경 -출전; 문장 9호 1939년
종소리
박남수
나는 떠난다. 청동(靑銅)의 표면에서 일제히 날아가는 진폭(振幅)의 새가 되어 광막한 하나의 울음이 되어 하나의 소리가 되어.
인종(忍從)은 끝이 났는가. 청동의 벽에 '역사'를 가두어 놓은 칠흑의 감방에서.
나는 바람을 타고 들에서는 푸름이 된다. 꽃에서는 웃음이 되고 천상에서는 악기가 된다.
먹구름이 깔리면 하늘의 꼭지에서 터지는 뇌성(雷聲)이 되어 가루 가루 가루의 음향이 된다.
한국의 명시[종로서적]에서
박남수 시인의 시의 이미지는 詩想이 시각과 청각의 의미를 언어화 하는 기교 면에서 탁월한 발상이 전제되여 있다 그 만큼 많은 생각을 갖었엇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이 "종소리"에서 나는 바람을 타고/ 들에서는 푸름이 된다./꽃에서는 웃음이 되고/천상에서는 악기가 된다/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소리 그 자체를 두고 탐미하는 마음은 종소리에 대한 청각적 이미지를 시각적 이미지화 하여 보다 깊은 사실성을 이끌어 내고 있다 종소리는 아픔의 크기 만큼 더 멀리 퍼진다 참고 견디는 아픔에서 소리가 증폭되어 가루 가루 가루가 되여 보이는 종소리는 삶의 여정이리라.
새
박남수
(1) 하늘에 깔아 논 바람의 여울터에서나 속삭이듯 서걱이는 나무의 그늘에서나, 새는 노래한다. 그것이 노래인 줄도 모르면서
새는 그것이 사랑인 줄도 모르면서 두 놈이 부리를 서로의 죽지에 파묻고 따스한 체온을 나누어 가진다.
(2) 새는 울어 뜻을 만들지 않고 지어서 교태로 사랑을 가식하지 않는다.
(3) 포수는 한덩이 납으로 그 순수를 겨냥하지만 매양 쏘는 것은 피에 젖은 한 마리 상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분석과 감상 이 시의 문화적 맥락은 몇 가지로 접근할 수 있다. 흔히 이 시는 '인간과 자연'이라는 맥락에서 '새'를 순수한 자연, '포수'를 인간.'납'을 인간의 문명, '상한 새'를 파괴된 자연으로 해석하여, 순수한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의 문명을 고발하는 시로 해석한다. 일리 있는 해석이지만,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이 시를 '존재와 인식'이라는 맥락에서 '새'를 인식 대상, '포수'를 인식 주체, '납'을 인식 수단인 언어로 해석하여, 언어를 수단으로 해서는 결코 존재의 본질에 도달할 수 없다는 인식론적 한계를 노래한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흔히 그를 일컬어 ‘새’의 시인이라 하고 있듯이, 그는 선명한 이미지와 그것을 통한 순수성의 지향이 시적 특색이 되고 있다. 한마디로 박남수의 시세계는 ‘빛’과 ‘어둠’, ‘삶’과 ‘죽음’이라는 대립적 심상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적 지향은 ‘새’의 상징적 이미지로 형상화되고 있다.
'아침이미지'/박남수
1.머릿말 이미지의 시인, 새의 시인, 빛의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박남수는 1930년대말 문단에 데뷔한 이래로 1994년 타계하기까지 약 50여년 동안 여러 편의 시집 간행과 활발한 문학활동을 전개해 왔다. 습작기 때부터 이미 이미지즘에 경도되어 이미지의 순수성을 추구하는 감각의 세계와 언어표현의 암시성을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노력을 지속했던 박남수는 1939년 "심야", "마을"," 밤길", "거리" 등이 정지용에 의해 추천되어 <문장>지를 통해 정식으로 문학활동을 시작한다.
|
《마을》
외로운 마을이 나른나른 오수(午睡)에 조을고 넓은 마을에 솔개미 바람개비처럼 도는 날…… 뜰안 암탉이 제 그림자 쫓고 눈알 대록대록 겁을 삼킨다. ({문장} 9호, 1939.10) 이 시는 그의 첫 번째 추천작으로 평화로운 농촌의 여름날 오후 풍경을 순간적으로 포착해 낸 서경적 경향의 서정시이다. 향토적 분위기의 간결한 시어와 '나른나른'·'대록대록'과 같은 의태어를 3연 7행의 짧은 형식에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효과적인 표현을 이루고 있다. 1연은 작품의 배경이 되는 부분으로 시골 마을의 정경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느낀 이미지를 평화로움으로 제시하고 있다. 2연에서는 무대를 하늘로 옮겨, '솔개'가 바람개비처럼 빙빙 돌고 있는 원경을 그리고 있으며, 3연에서는 시선을 땅으로 이동하여 솔개에게 겁먹고 뜰안 한구석에 숨어서 눈알만 대록대록 굴리고 있는 암탉의 모습을 근경으로 나타내고 있다. 겁을 삼킨 '암탉'의 눈알을 클로즈업시켜 생동감 있는 표현을 이루는 한편, 오수에 잠겨 있는 외로운 마을 속으로 녹아들게 함으로써 이 작품을 더욱 평화롭고 한가로운 분위기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와 같이 평화로운 농촌의 정경을 풍경 그 자체로 표현해 낼 수 있었던 시작 능력이 있었기에 박남수는 후일 주지주의 시인으로 변모한 후에도 그만의 독특한 이미지를 기반으로 하여 <새>, <종소리> 등과 같은 훌륭한 작품을 창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초롱불》 별 하나 보이지 않는 밤하늘 밑에 행길도 집도 아주 감초였다. 풀 짚는 소리 따라 초롱불은 어디로 가는가. 산턱 원두막일 상한 곳을 지나 무너진 옛 성터일쯤한 곳을 돌아 흔들리는 초롱불은 꺼진 듯 보이지 않는다. 조용히 조용히 흔들리던 초롱불 ……. ({문장} 10호, 1939.11) 이 시는 박남수의 두 번째 추천작으로 그의 초기시가 지향했던 섬세한 서정과 토속적인 시세계를 짐작하게 해 주는 작품이다. '초롱'이란 대나무를 잘게 잘라 만든 살 위에 종이를 씌우고, 그 속에다 촛불을 켜는 기구이다. 그것을 막대기에 매달아 들고 다닐 때면, 촛불이 꺼질 듯 흔들린다. 이 '초롱불'은 문명의 발달로 인해 점차 사라져 가는 모든 전통적인 것의 대유로, 시인은 이것을 통해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초롱불'·'원두막'·'옛 성터' 등과 같은 향토적 정서를 드러내는 시어로써 효과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또한 2·3·4연을 모두 산문투의 문장으로 배치시킴으로써 유장한 리듬감을 부여하는 동시에, 일반적 산문시와는 달리 간결한 느낌을 주고 있다. 1연에서는 별 하나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 풍경을 제시하여 초롱불을 잃어버린 화자의 정황을 드러내고 있으며, 2연에서는 '초롱불은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과 '풀 짚는 소리 따라'라는 구절을 통해 소멸되어 가는 우리의 향토적인 것에 대한 아쉬움을 말하고 있다. 3·4연에서는 초롱불이 사라져 가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산턱 원두막'이나 '무너진 옛 성터'를 찾아갈 때면, 언제나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해 주던 초롱불이었지만, '꺼진 듯 보이지 않는다.'는 표현을 통해 이제는 더이상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문명의 이기(利器)에 밀려 사라져 버리는 현실 상황을 드러내고 있다. 5연에서는 조용히 흔들리던 초롱불의 아련한 모습을 제시하는 한편, 그것을 바라보는 화자의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말없음표 속에 함축하고 있다. 《밤 길》 개구리 울음만 들리던 마을에 굵은 빗방울 성큼성큼 내리는 밤 …… 머얼리 산턱에 등불 두 셋 외롭고나. 이윽고 홀딱 지나간 번갯불에 능수버들이 선 개천가를 달리는 사나이가 어렸다. 논둑이라도 끊어져 달려가는 길이나 아닐까. 번갯불이 스러지자 마을은 비 내리는 속에 개구리 울음만 들었다. ({문장} 12호, 1940.1) 청록파 세 시인이 등단 초기에 주로 자연을 노래한 것과는 달리, 박남수는 그들과 같은 {문장}지 출신이면서도 특유의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표현 기법을 사용하여 일제 식민지 하의 농촌을 소재로 현실 상황을 암시하는 시를 발표하였다. 이 시는 그의 세 번째 추천작으로 그의 초기시 세계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멀리 산턱에 등불 몇 개가 보이는 어느 농촌 마을의 여름 밤,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개구리들이 요란스럽게 울어댄다. 한 사내가 논둑이 끊어진 탓인지 번개치는 개천 길을 달려가고, 번개가 그치자 조용하던 논에서 다시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려온다는 서경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는 단순히 여름 밤의 서경만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시제가 '여름 밤'이 아닌 '밤길'로 된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작품 전편에 깔려 있는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는 당시의 암울한 현실 상황을 상징하고 있다. 전반부의 동적 이미지와 후반부의 정적 이미지를 대립시키는 방법을 통해 더욱 짙은 어둠을 느끼게 하고 있으며, 2행으로 구성된 연과 1행만으로 구성된 연을 교차시키는 시행 배열 방법으로 교묘한 리듬감을 조성하고 있다. 또한 과거 시제의 종결 어미를 사용하여 주관적 감정에 치우치지 않은 객관적 상황으로 시상을 제시하고 있다. 《아침 이미지》 어둠은 새를 낳고, 돌을 낳고, 꽃을 낳는다. 아침이면, 어둠은 온갖 물상(物象)을 돌려 주지만 스스로는 땅 위에 굴복(屈服)한다. 무거운 어깨를 털고 물상들은 몸을 움직이어 노동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즐거운 지상(地上)의 잔치에 금(金)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 아침이면, 세상은 개벽(開闢)을 한다. ({사상계}, 1968.3) 이 시는 제목이 말해 주듯 아침에 대한 근원적 본질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박남수는 모든 사물의 원초적 세계로 돌아가, 그 본질적 건강성을 회복하는데 주력하는 시작(詩作) 방법의 하나로 이미지를 중시하였다. 그는 "감각적 체험과 관련 있는 모든 단어가 이미지가 될 수 있으며, 그것들이 생명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상상력에 호소하도록 의도된 것이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창작된 이 시는 결백한 서경적 조소성(彫塑性)에 의한 생생한 이미지로써 건강한 아침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이미지의 신선한 감각은 이 시의 최대 장점이지만, 이 시는 가슴에서 나온 감흥(感興)의 시가 아닌, 두뇌로 쓰는 지적(知的)인 시로 분류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시가 논리적이라거나 작품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전 12행의 단연시인 이 시는 시간적 흐름에 따른 추보식 구성으로 기·승·전·결의 네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1∼2행의 첫째 단락에서는 물상의 생성을 어둠 속에 있던 '새'·'돌'·'꽃'이 아침이 되어 제 모습을 드러내는 모습을 통해 보여 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부정적 이미지로 쓰이는 어둠을 이 시에서는 '낳고'·'낳는다'라는 표현을 통해 '온갖 물상'을 잉태하는 생명의 모태라는 긍정적 이미지로 그리고 있다. 3∼5행의 둘째 단락에서는 어둠이 아침과 자리를 바꾸는 모습을 서술함으로써 어둠의 소멸을 보여 주고 있다. 여기서 '굴복한다'는 표현은 어둠이 사라져 버린다는 뜻이다. 6∼10행의 셋째 단락에서는 물상의 잔치를 노래하고 있다. 밤새도록 어둠 속에서 '무거운 어깨'로 있던 물상들이 마침내 아침 햇살을 받음으로써 자연적 생의 율동을 회복할 뿐 아니라, 나아가 의욕적인 삶의 움직임으로까지 확대된 건강한 모습을 회화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금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이라는 구절은 시각을 청각으로 전이시킨 공감각적 이미지의 표현이다. 11∼12행의 넷째 단락은 아침의 신비로움을 '개벽'이라는 시어로 집약하여 시상을 응결시키고 있다.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삼라만상이 아침 햇살이라는 생명수를 받아 먹고 긴 잠에서 깨어나 힘차게 날개를 퍼덕거리는 것 같은 아침의 생동감이 '아침이면, / 세상은 개벽을 한다'는 시행 속에 함축되어 있다. 이같이 생동감 넘치는 아침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형상화하기 위해 많은 동사(動詞)를 사용하는 한편, 이러한 아침에서 얻어진 밝고 신선한 느낌을 회화적 이미지로 그려냄으로써 이미지스트로서의 박남수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종소리》 나는 떠난다. 청동(靑銅)의 표면에서 일제히 날아가는 진폭(振幅)의 새가 되어 광막한 하나의 울음이 되어 하나의 소리가 되어. 인종(忍從)은 끝이 났는가. 청동의 벽에 '역사'를 가두어 놓은 칠흑의 감방에서. 나는 바람을 타고 들에서는 푸름이 된다. 꽃에서는 웃음이 되고 천상에서는 악기가 된다. 먹구름이 깔리면 하늘의 꼭지에서 터지는 뇌성(雷聲)이 되어 가루 가루 가루의 음향이 된다. (시집 {새의 암장}, 1970) 이 시는 박남수의 후기 대표작으로 관념의 표상으로만 인식하기 쉬운 '종'을 세련된 감각과 심상의 조형(造形)으로 형상화하여 자유를 향한 비상(飛翔)과 확신을 노래하고 있다. 주지적 계열에 속하는 이 작품은 표현 형식면에서도 시인의 지성적 통제가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전 4연이 모두 4행씩인 질서 있는 구성과 함께 각 연의 종결 방법이 동일하다. 즉, 1·2연과 3·4연을 각각 부사형과 서술 종결 어미로 끝맺고 있어 주지주의 시인으로 변모한 그의 후기시 세계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시인은 '청동의 벽'인 종의 몸체를 '칠흑의 감방'으로, 울리지 않는 상태의 종소리를 어두운 감옥에 가두어 놓은 '억압'으로 보고 있을 뿐 아니라, 그로부터 울려 나오는 종소리를 '푸름'·'웃음'·'악기'·'뇌성' 등으로 변신하며 퍼져 나가는 '자유'의 모습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리하여 종소리는 '청동의 표면'에서 떠난 한 마리 '진폭의 새가' 된 다음, 마침내 '광막한 울음'을 우는 거대한 '하나의 소리'가 되어 인간의 삶과 꿈, 그리고 역사를 잉태하고 무한한 자유의 공간으로 퍼져 나는 것이다. 《훈련》 팬티 끈이 늘어나 입을 수가 없다. 불편하다. 내 손으로 끈을 갈 재간이 없다. 제 딸더러도 끈을 갈아 달라기가 거북하다. 불편하다. 이제까지 불편을 도맡았던 아내가 죽었다. 아내는 요 몇 해 동안, 나더러 설거지도 하라 하고, 집앞 길을 쓸라고도 하였다. 말하자면 미리 연습을 시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성가시게 그러는 줄만 여기고 있었다. 빨래를 하고는 나더러 짜 달라고 하였다. 꽃에 물을 주고, 나중에는 반찬도 만들어 보고 국도 끓여 보라고 했다. 그러나 반찬도 국도 만들어 보지는 못하였다. 아내는 벌써 앞을 내다 보고 있었다. 팬티 끈이 늘어나 불편할 것도 불편하면서도 끙끙대고 있을 남편의 고충도. (시집 {그리고 그 이후}, 1993) 박남수는 언어 표현의 암시성을 중시하는 이미지의 시인이다. 시사적(詩史的) 측면에서 그는 정지용과 김영랑에 버금가는 언어와 형태미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아울러 언어에 형이상학적 깊이도 부여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철저한 모더니스트인 그의 시적 경향은 암시적인 이미지로 사물의 존재에 대한 관념을 함축시킴으로써 한국의 전통적인 서정성을 지적(知的)으로 극복하고 새로운 서정을 이미지화하였다. 그러한 작품 세계를 일관되게 보여 주던 그가 말년에 이르러 생활시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음을 이 시를 통해 알 수 있다. 이 시는 평범한 사실의 제시로만 그치는 하나의 산문적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지만, 고도의 시적 장치나 비유로 장식되어 있는 그 어떤 작품보다도 생생한 감동의 깊이를 전달해 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시는 인간 존재의 진실을 끊임없이 추구해온 시인이 노년에 이르러, 그것도 아내의 죽음을 체험한 후 더욱 깊어진 삶의 깊이를 담담한 어조로 보여 주고 있다. 아내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후, 시인은 늙어 불편한 혼자몸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생활을 단순히 '불편하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으나, 그것이 어찌 불편함뿐이겠는가? 그러므로 그 '불편함'의 이면엔 그가 아내를 한시도 잊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숱한 부침(浮沈)의 긴 세월을 동고동락한 아내에 대한 사랑이 짙게 배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팬티 / 끈이 늘어나 불편할 것도 / 불편하면서도 끙끙대고 있을 / 남편의 고충'까지를 예견한 아내가 그러한 불편을 대비하여 자신에게 이런저런 집안일을 '훈련'시켰다는 것을 알고 그간 성가시다며 짜증을 냈던 자신의 무지함을 뉘우치는 과정을 통해 아내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는 생의 진솔함이 잘 나타나 있다. 그러한 '불편'을 겪을 때마다 시인은 아내의 빈 자리를 깨닫게 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아내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깊이 인식하고 준비하는 생의 원숙함이 드러나 있다. |
박남수(朴南秀, 1918 ~ 1994)
시인. 1939년 정지용의 추천으로 “문장”지에 ‘밤길’ 등을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감각적 이미지에 의해 대상을 지적으로 포착하는 경향을 보이며, 문명의 비정성을 모더니즘적 기법으로 고발하는 시를 주로 썼다. 시집으로 “초롱불”(1940), “갈매기 소묘”(1958), “새의 암장”(1970), “그리고 그 이후”(1993) 등이 있다.
새 1
이 시는 생명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인간의 인위성과 파괴성에 대립시켜 문명 비판적 주제를 제시한 작품이다. 1 ~ 2연에서 화자는 순수하고 꾸밈과 거짓이 없는 ‘새’의 모습을 통해 자연의 순수함을 보여 준다. 이렇게 자연의 순수함을 반복하여 제시하는 이면에는 인간 문명에 대한 시인의 비판적인 눈길이 자리 잡고 있다. 3연에서는 ‘포수’와 피에 젖은 한 마리 상한 ‘새’의 대조를 통해 사람의 손에 의해 파괴된 자연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처럼 이 시는 인간이 순수라고 느끼는 자연물이나 감각 등은 인위적으로 만들려 하거나 강제로 가지려 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수록교과서 : (문학) 상문
종 소리
이 시에는 '나'는 '종 소리'를 의인화한 것인 바, 오랜 인종 끝에 역사의 질곡을 박차고 나가는 시인의 자유를 향한 비상(飛翔)과 신념을 이 시는 노래하고 있다.
소리가 청동의 벽에 갇혀 있는 동안, 즉 종이 울리지 않는 동안은 칠흑의 감옥과도 같다고 화자는 말한다. 오래 인종(忍從) 끝에 '나'는 '진폭의 새'가 되고 '울음'이 되고 '소리'가 되어 청동의 표면을 떠난다. 그 종 소리는 바람을 타고 날아가 들의 '푸름'을 되찾아 주고, 꽃의 '웃음'을 되찾아 주고, 천상의 '악기'를 울리게 하여 역사의 질곡에 갇힌 세상을 자유롭고 평화롭게 한다. 소리가 청동의 벽에서 풀려나는 순간 그 자신이 자유로워지는 것은 물론 세상을 평화롭게 한다는 뜻이 이 시에는 담겨져 있다고 하겠다.
이 시의 어조는 우람하고 그에 걸맞게 포괄하는 세계도 광막하다. 참신하고 질감 있는 심상 속에 삶과 역사의 심상까지 함축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시를 한국 모더니즘 시에서 드물게 성공적인 것으로 돋보이게 한다.
아침 이미지
이 시는 서경적 이미지의 생생한 모습으로 건강한 아침의 모습을 그려 내고 있다. 이미지의 신선한 감각은 이시의 최대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전 12행의 단연시인 이 시는 시간적 흐름에 따른 추보식 구성으로 기·승·전·결의 네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1∼2행의 첫째 단락에서는 물상의 생성을 어둠 속에 있던 새·돌·꽃이 아침이 되자 제 모습을 드러내는 모습을 통해 보여 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부정적 이미지로 쓰이는 어둠을 이 시에서는 ‘낳고’, ’낳는다’라는 표현을 통해 온갖 물상을 잉태하는 생명의 모태라는 긍정적 이미지로 그리고 있다. 3∼5행의 둘째 단락에서는 어둠이 아침과 자리를 바꾸는 모습을 서술함으로써 어둠의 소멸을 보여 주고 있다. 여기서 굴복한다는 표현은 어둠이 사라져 버린다는 뜻이다. 6∼10행의 셋째 단락에서는 물상의 잔치를 노래하고 있다. 밤새도록 어둠 속에서 무거운 어깨로 있던 물상들이 마침내 아침 햇살을 받음으로써 자연적 생의 율동을 회복할 뿐 아니라, 나아가 의욕적인 삶의 움직임으로 까지 확대된 건강한 모습을 회화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금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이라는 구절은 시각을 청각으로 전이시킨 공감각적 이미지의 표현이다. 11∼12행의 넷째 단락은 아침의 신비로움을 개벽이라는 시어로 집약하여 시상을 응결시키고 있다. 어둠 속에 묻혀있던 삼라만상이 아침 햇살이라는 생명수를 받아먹고 긴 잠에서 깨어나 힘차게 날개를 퍼덕거리는 것 같은 아침의 생동감이 ‘아침이면, / 세상은 개벽(開闢)을 한다.’는 시행속에 함축되어 있다.
거리
이 시는 일제 강점기인 1939년에 발표된 시로, 어느 기차 간이역에서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이별하는 상황을 담고 있다. 이별이라는 안타까운 상황을 처절하고 사무치게 표현한 것이 아니라, 아주 담담하고 객관적인 어조로 서술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담담한 어조는 서술자가 상황 밖에서 상황을 관찰하고 있는, 즉 등장인물들과 별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등장인물들이 이별하는 이유는 작품 속에 제시되어 있지 않기에 독자들이 상상해 볼 수 있고, 시대 상황과 연결 지어 생각한다면 일제 하 어려운 생활 속에서 경제적인 보탬이 되기 위해 며느리가 고향을 떠나는 상황으로 추측해 볼 수도 있다. 1, 3, 5연은 상황에 대한 설명으로, 2, 4, 6연은 시아버지의 대사로 교차하여 구성한 점도 특기할 만하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