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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는 무력하기에 위대한것... 내가 詩가 된다는것...
2016년 01월 06일 05시 30분  조회:4097  추천:0  작성자: 죽림



무엇인가가 그립고 무엇인가에 위로 받고 싶을 때 우리는 그 빈칸을 채워줄 무엇인가를 그리워한다. 그 빈칸은 당장 현실적인 경쟁력이 되어주지는 않지만 우리를 존재하게 해주는 그 어떤 것들이다. 사랑이나 우정, 아름다움과 감동이 그런 것들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의 중심에 ‘시(詩)’라는 것이 있다.
 - <내가 시가 된다는 것> 프롤로그 중에서

시를 통해서 말하고 듣는 법, 울고 웃는 법, 사랑하고 미워하는 법, 쓰러지고 일어나는 법을 모두 배웠다”고 말하는 시인 허연에게 시는 현실을 넘어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를 통해 삶을 배우고 익혔다’는 그 말을 자신의 삶을 통해서 시를 끌어낸 것이라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그는 등단 이후 첫 시집 <불온한 검은 피>(1995)를 출간하고는 시 쓰기를 멈추었지만 십수 년이 지나서 <나쁜 소년이 서 있다>(2012)를 들고 시의 세계로 돌아왔다. 시를 거부할 수 없다는 선언과 같았던 이 시집을 통해서 시인은 시와 분리될 수 없는 자신의 삶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곧 <내가 원하는 천사>(2014)를 펴내면서 시인으로서의 행보를 이어간다.

세 권의 개인 시집뿐 아니라 다수의 책을 낸 그가 이번에 낸 <내가 시가 된다는 것>은 국내외 시 100편을 엮은 것으로 필사집의 형태를 띤다. 이 중 스무 편은 자신의 시 중에서 기획 취지와 맞는 시를 함께 엮었다. 시인은 세상의 수많은 시 중에서도 인간의 여러 감정에 공명하는 시들을 꼽아 실었으며, 특히 리듬이 살아 있는 시를 선택했다. 또한, 시인이 신중하게 선정한 시들은 독자들에게 잠시 멈추어 생각하기를 요청하고, 또 위로가 되기를 기대한다. 허연 시인과 만난 자리는 이번 책에 대한 소개뿐만 아니라 그의 시 세계와 시와 관계된 여러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 시인은 질서로 환원된 시의 언어보다는 자신의 삶과 경험과 감정을 충실히 표현하는 시의 언어에 천착하고 있으며,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보다 지나간 것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 어쩌면 그가 이 책에 소개하는 100편의 시는 시인의 감성을 대변하는 것이자 그의 시가 지향하는 바와 일정 부분 공유되는 지점을 반영하는 것일 게다.


"내 첫 시집은 반항 혹은 절규 같은 것이었다"



Q 작가님께서는 대학 재학 시절 등단한 이후, 첫 시집 <불온한 검은 피>를 1995년에 출간하였습니다. 당시의 작가님은 지금과 비교해 어떻게 달랐나요?


첫 시집은 시집이 무엇인지, 문단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낸 것이었어요. 세상과 화해하지 못한 한 청년이 세상과 대결한다는 심정으로 시를 썼어요. 그래서 시에 평화로움보다는 절규, 도전, 현실에 대한 분노가 많이 표현되었죠. 파랗고 뾰족하게 살아 있었고, 그즈음의 제 자화상이었어요. 그 시집을 내고는 직장에 들어가게 되어서 오랫동안 시를 쓰지 않았어요. 시를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고, 또 시를 통해 유명해지거나 돈을 벌어야 한다고는 아예 생각하지 않았죠. 첫 시집은 반항 혹은 절규 같은 것이에요. 외톨이처럼 떨어져 나온 문제아의 공화국 같은 것이었죠.



Q 이 시집이 나왔을 때 독특하다는 평가도 받았지만, 비판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의 반응은 어떤 것이었나요?


시집이 나온 후에 왜 시의 후렴이나 제목이 영어냐는 비난을 받았어요. 시를 쓰는 순간 마음속에서 외쳤던 감상이나 느낌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여겨서 영어를 쓴 것이었는데,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욕을 먹었어요. 그리고 ‘아버지를 그렇게 욕을 하느냐’는 비판도 받았죠. 

그 시기에 향토적인 정서를 담은 시가 많았어요. 저는 서울 토박이고, 서울 한복판에 살았기 때문에 미루나무도, 동구 밖도, 소를 모는 아버지도 보지 못했어요. 시인들이 그리워하는 것은 고향이거나 어머니였을 텐데, 제가 그리워할 수 있는 고향은 만원 버스이고, 아파트이니깐 그런 시를 쓰는 것은 당연했어요. 세월이 흘러서 그 시집이 2000년대에 젊은 시인들에게 회자되고 많이 읽혔다는 것을 알았어요. 90년대 도시적 감수성을 담은 시집이라 평가하더라고요.



Q <불온한 검은 피> 이후 13년 만에 낸 두 번째 시집이 <나쁜 소년이 서 있다>(2012)였죠. 오랫동안 시를 쓰지 않다가 다시 쓴 계기는 무엇인가요?


직장에서 일만 하다가 어느 날 깨달음이 오더라고요. 너무 일찍 시를 만났고 등단했지만, 제가 무슨 일을 하든 시를 통해 말하는 것, 웃는 것, 욕하는 것, 화내는 것을 배운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도망칠 수 없겠다 싶어서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출간했던 시집이 <나쁜 소년이 서 있다> 에요. 이 시집은 단적으로 ‘나 시를 다시 쓴다, 나 도망치지 않겠다, 나 돌아왔다’와 같은 선언 같은 시집이었어요.



Q 시집 제목의 ‘나쁜 소년’은 작가님의 모습이 투영된 것이라 볼 수 있을까요?


출판사에서 ‘나쁜 소년이 서 있다’라는 시를 시집의 제목으로 하자고 제의했어요. 당신은 철들지 않은 어른 같은 데가 있다, 나이에 맞게 성숙한 모습보다 삐죽삐죽 튀어나온 게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어요. 어쩌면 잘못 늙은 어른인데, 좋게 이야기하면 나쁜 소년일 거예요. 나이 먹으면서 제가 시정잡배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 깨달음을 인정한 시집이었어요. 어린 시절부터 문학 하는 사람은 소위 자기가 천재일 수 있겠다, 우아하다, 특별하다는 생각으로 잘난 맛에 시를 쓰는 것인데, 알고 봤더니 결국은 시정잡배였구나, 그래서 시정잡배의 시를 쓴 것이죠.



Q 2014년에 세 번째 개인 시집 <내가 원하는 천사>를 출간하였습니다. ‘내가 원하는 천사’는 더욱 두드러지게 작가님의 어떤 바람이 표현된 제목이라 여겨집니다. 이 시집에 담고자 한 문제의식은 무엇이었나요?


만약 어떤 현실적인 용도나 쓰임새를 생각하면 저는 시를 쓰지 말아야 해요. 나아가 제가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시를 쓰면 안 됐던 거예요. 왜냐하면, 시를 쓰면 불행으로부터 도망치는 법을 배우지 못하게 되죠. 그 불행을 맞상대하면 지는 것은 저예요. 어떻게 불행을 이기겠어요? 정신이나 육체의 건강을 위해서나 세상이나 현실을 위해서도 시를 쓰면 안 되거든요. 그런데 쓸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됐으니까, 시는 저만의 병든 공화국인 거예요. 심지어 ‘누군가 내 시를 읽어주든 읽어주지 않든 중요하지 않다, 나는 시를 쓸 수밖에 없는 몸이 되었다’는 생각마저 했어요. 시에 무릎 꿇은 자의 고백, 시의 언어로 구성된 부족의 외로운 부족장이 된 심정으로 썼어요. ‘내가 원하는 천사’는 시에 지치고 눌리고, 시 없이는 못사는 삐딱해지고 나이 든 제가 생각하는 천사를 그린 거예요. 제가 생각하는 사랑, 제가 원하는 천사는 다른 누군가가 생각하는 것과 무조건 다를 수밖에 없다는 마음으로 시를 썼어요.



Q 이번 출간한 시 모음집 <내가 시가 된다는 것>은 ‘성찰의 시, 사랑의 시, 깨달음의 시, 위로의 시’로 챕터를 나누어 국내외 시인들의 시 80편을 소개하고, 마지막 챕터 ‘나에게 말해달라’에서 작가님의 시 20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어떤 기획을 담고 있나요?


요즘 필사집 형태로 시집이 발간되는데요, 시를 읽고 따라 쓸 수 있도록 한쪽 면에 시가 있고, 반대쪽은 비어 있어요. 이 시집도 그런 형태를 띠고 있고, 시들 사이에 제가 쓴 몇 편의 에세이가 들어있어요. 엄밀히 따지면 이 책은 제가 엮은 것이고, 이 책의 저자는 여러 명인데 그 중 저도 한 명이죠. 니체도 있고, 소동파도 있고, 백석도 있고요.

기본적으로는 제가 좋아하고 감흥을 느낀 시를 선택했고, 국가, 언어, 감정 등을 안배했어요. 특히 그리움, 절망, 희망 등 여러 감정을 아우를 수 있도록 나름대로 구성하는데 신경을 많이 썼어요. 그리고 번역된 지 오래된 외국 시는 사전에 의존해 연구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다듬었어요.



 
 

"바쁜 삶에서 잠시 멈춰 순간을 사유할 수 있다면"



Q 작가님께서 선택한 시 대부분이 읽기 어려운 시가 아닌 것 같아요. 시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염두에 둔 기준이 있다면요?


시를 포함해서 제가 생각하는 좋은 글은 리듬이 담겨 있는 글이에요. 잘 기억되는 말이나 문장은 좋은 문장일 거예요. 좋은 문장에는 리듬이 있을 텐데, 그것을 호흡이라 말할 수 있어요. 좋은 문장은 막히지 않고 발 빠르게 읽을 수 있고, 나쁜 문장은 아무리 짧더라도 한 번에 읽을 수 없어요. 예를 들면 김소월의 시는 금방 외워지는데, 그의 시에 리듬이 많이 장착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현대 시로 넘어오면서 시는 리듬을 많이 잃어버렸고, 외국 시는 번역되면서 리듬을 잃어버렸죠.

시에서 드러나지 않는 것이 내재율인데, 철저하게 내재율이 갖춰진 시 위주로 골랐어요. 단어가 어렵더라도 호흡과 함께 흘러가면 쉽게 읽을 수 있어요. 외국 시를 고칠 때도 리듬을 고려해서 옮겼어요. 물론 지나치게 실험적인 시를 빼기는 했어요. 이 시들을 보고 독자들이 위로를 받았으면 했고, 새로운 고민을 던져 주고 싶지는 않았어요.



Q 이 시들을 공통으로 묶어낼 만한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책 전체를 관통하는 것을 문장으로 이야기한다면, ‘인간의 모든 감정을 100편의 시에 담았다’고 보면 돼요. 슬픔, 분노, 기쁨, 좌절, 희망, 그리움, 포기, 외로움, 긍정 등 인간의 모든 감정을 한 권의 책에 담으려고 했기 때문에 다양한 시를 골랐어요.



Q 여러 시를 꼽으셨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작가님께서 좋아하는 시의 경향을 꼽는다면 어떤 것인가요?

개인적으로는 낭만적이고 표현주의적인 시를 좋아합니다. 우리는 배운 언어로만 표현하는데, 표현의 방식과 선택된 표현의 한계가 없는 것을 좋아해요. 물론 무조건 그런 시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도 그런 시를 썼고 좋아했어요. 이 책에서는 딜런 토머스의 ‘밤의 어둠 속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말라’와 셰이머스 히니의 ‘땅파기’를 꼽을 수 있겠네요.



Q 책의 마지막 챕터 ‘나에게 말해달라’는 작가님의 이전 시를 모아둔 것인데, 이 시들은 어떻게 추려졌나요?


제가 발표한 시 중에서 리듬이 느껴지고, 여러 감정을 담은 시를 골랐어요. 오래 시를 쓰다 보니 저의 시중에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가 무엇인지 알게 돼요. 사람들이 많이 좋아해 주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독자들이 사랑해 준 ‘7월’이나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등이 포함되어 있어요.



Q 이 책을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어요?


바쁘게 살면서 잠시 멈춰 서서 감상에 빠지거나 순간을 사유할 수 있다면 괜찮은 것 같아요. 시는 감상에 빠지게 하는 힘이 있잖아요. 감상에도 빠져보고 가슴이 뭉클해져 보기도 하고, 콧날이 찡해져 보기도 하고, 바쁘게 살면서 느끼지 못했던 추억도 떠올리고, 하늘도 올려다보고, 몇 줄의 씨를 써보기도 했으면 좋겠어요.



Q 책의 여는 부분에서 “생존의 반대편에 놓인 슬픔, 외로움, 그리움을 채우는 것이 사랑, 우정, 아름다움, 감동이며 그 중심에 시가 있다”고 하면서도, “시는 무력하기 때문에 위대하다”고 표현하였습니다. 이 무력함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시가 현실 대응력을 가지고 무언가를 할 수 있었다면, 시는 지금 있지 않거나 변질되었거나 다른 것으로 발전했을 거예요. 시는 현실에 대해 직접 아무것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18세기에도 19세기에도 지금도 그 형식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향수와 행복을 줘요. 국가, 나이, 성별 등에 상관없이 시는 모든 것을 초월하는 아름다움이 있고, 감성, 감흥, 낭만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시를 읽는 사람에게는 시만 한 친구가 없죠. 비용도 들지 않고, 짧고, 마음대로 해석할 여지가 있고, 결론을 내려주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현실이 아닌 것에 감동하게 하는 힘을 주는 것이죠.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정직한 비명이다"



Q “나는 시를 씀으로써 쓸려 내려간 것들을 노래하고 싶었고, 쓸려 내려간 것을 증거 하고 싶었다. 나는 오늘도 시가 내게 말을 걸어주길 기다린다”고 썼습니다. 작가님께 시란 자신을 증거하는 것이라 보이는데요, 자신의 실존적 측면이 부각된 것이라 볼 수 있을까요?


그렇게 보셔도 돼요. 내가 없으면 세상이 없잖아요. 내가 없으면 케이크를 먹는 나도, 이야기하는 나도, 지하도를 건너는 나도 없어요. 난 오늘 무엇인가, 지금 무엇인가, 왜 슬픈가 등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파릇파릇하게 생동감 넘치며 곁에 있는 것보다는 초라해져서 떠난 것을 많이 생각하는 편이에요. 사라진 것, 떠나간 것, 기운을 잃고 지층 속으로 걸어간 것, 그러다 보니 추억이야기도 많이 해요. 제 시가 약간 폭력적인 부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는데, 아마도 제가 질서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일 거예요. 태어나고 먹고 살기 위해서 노동하는 것이 질서라면 그런 것은 지키면서 살아가지만, 사랑과 우정 등 나머지 삶에는 어떤 질서가 있다기보다는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지나간 것, 사라진 것에 대한 관심을 표하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나간 것은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죽어버린 것이거나 곁에 없는 것이에요. 지금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그리움을 품는 것이고 거기에 천착하는 것 같아요. 가깝게는 죽은 어머니, 어린 시절 학교 갈 때마다 봤던 나무, 복개 공사로 없어져 버린 하천 등이 있겠죠. 그리움이 무한대라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언젠가 여행 가서 빙하의 단면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기포의 형태로 공기가 있었어요. 그 안에 갇힌 공기는 수십 만 년 전의 공기로 그때 갇혀서 나오지 못한 것이죠. 내 주머니에 넣을 수 없고, 영원할 수 없고, 결국 사라지는 것을 그리워하며 인생은 흘러가고 사라진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래서 사라지는 것은 흔적을 남기는데 누군가는 그런 것을 그리워하죠. 그리움은 힘이 세다고 봐요.



Q 속죄, 상처, 추억 등 자신의 실존을 강조하다 보면, 자기연민이나 자기애에 빠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물론 그에 공감하거나 동의할 부분도 있지만,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예술은 그게 누구든 간에 특정인이나 특정한 목적이나 주장에 복무해서는 안 된다 생각해요. 예술이나 창작은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저는 목적성을 갖기가 힘들어서 저한테 빠지는 것 같아요. 좋은 글을 쓰고 싶지만 제가 쓴 시가 무엇이 된다거나 유명해지거나 그것을 통해 돈을 벌고 싶거나 하지 않아요. 또 세상을 바꾸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저만의 공화국에 누군가 찾아와서 한 편이라도 읽고 어느 순간 분노든 허망이든 느낀다면 고마운 것이죠. 지나친 자기 연민이 저의 한계일 수 있지만 창작하는 사람의 예술 세계 혹은 개성은 사실 그 사람의 한계이기도 해요. 랭보의 문학세계는 랭보의 한계였고, 백석의 문학 세계는 백석의 한계였죠. 그러니까 허연의 문학세계는 허연의 한계이자 허연의 꼴이고 수준이에요.



Q 작가님에게 세상의 어떤 모습을 시라는 예술로 표현한다는 것, 자신의 삶을 시로 기술한다는 것, 시를 쓴다는 행위는 무엇인가요?


한 사람이 그즈음에 쓴 한 편의 시는 그가 내지르는 비명이라 생각해요. 비명은 논리적이지도, 설명적이지도 않고,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설명할 필요가 없어요. 그 비명을 듣고 누군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도 되고 그렇지 않을 수 있고요. 기쁨의 비명이든, 외로움의 비명이든, 아픔의 비명이든, 자기가 미워 지르는 비명이든 논리나 과학이 아닌 것 같고 오히려 주술에 가까워요. 예를 들면, 플라톤은 이성적인 이상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는데 그의 국가 개념 틀 위에 현대사회가 만들어진 것 같아요. 그가 이성을 갖춘 공동체를 구성하고 그 안에 선이 넘치는 곳을 만들고자 했을 때, 예술을 어디에 넣을 것인가를 고민했어요. 혹세무민이고 주술가 같은 사람이 예언처럼 사람들을 홀리는 것 같았기 때문에 이성 국가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이 보았죠. 그래서 처음에는 테크네와 예술을 나누어서 포함하지 않았어요. 나중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새로운 이론을 개발해서 예술을 포함하게 돼요. 그들이 그 과정에서 고민했던 이유는 예술의 이중성 때문일 거예요. 예술은 공동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거든요. 그런데 그 공동체가 바라는 것은 한 개인이 바라는 것은 아니에요. 개개인의 감수성이 모여서 평균점, 무게중심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예술이든 창작이든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정직한 비명이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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