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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에서 새로운 화제 찾기
2016년 01월 09일 04시 28분  조회:3787  추천:0  작성자: 죽림

새로운 화제 찾기



그러나, 어떤 때는 아무리 생각해도 시로 쓸 화제가 떠오르지 않을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원고 청탁을 수락하고, 써둔 것이 없는데 부득부득 마감 기일이 다가올 때는 피가 마릅니다.
하지만 쓸 싶은 게 없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우리의 두뇌는 마치 컴퓨터가 기억의 용량을 줄이기 위해 압축(壓縮)하여 저장하듯, 누구나 많은 밤을 지새워 고민했던 문제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일단 시간이 흐르면 유사한 것들끼리 분류하고, 구체적인 사실을 생략하여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쓰고 싶은 화제를 찾아내려면 기억하는 과정에서 고정관념화(固定觀念化)된 것들을 풀어내야 합니다.
이와 같은 고정관념화된 것들을 풀어내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알아보고, 실제로 연습해봅시다.

■ 윤리적 기준 덮어두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자면 먼저 윤리적 기준에 따라 부적합하다고 덮어둔 화제를 다시 한번 생각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윤리적 기준은 우리의 많은 생각과 욕망을 부도덕한 것으로 간주하면서 그 자체의 모습을 볼 수 없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화제를 다룰 경우 자칫하면 독자로부터 비난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진실한 이야기라면,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문제는 좀 더 생각해보되, 덮어둬서는 안 됩니다.

제 경우를 예로 들어볼까요? 저는 젊은 시절 내내 인간의 행동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은 사랑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런 작품들을 써왔습니다. 그러다가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우리의 사랑은 정말로 참다운 사랑인가’라는 의문이 떠오르고 ‘그런 사랑은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몇 년 전부터는 ‘선(善)이 오히려 패배하기 쉽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하니까 가슴이 싸아 해지면서 슬프대요. 그러나 암만 생각해도 그런 것 같아서 그걸 테마로 삼아 작품을 쓰려고 했습니다. 시인의 의무는 관습과 위선에 가려진 인간이 본성을 발견하여 제시하는 것이고, 그러자면 자신이나 타인에게 정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럭 겁이 나더군요. 그리고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왜 결혼했는가’라는 아내를 비롯한 무수한 독자들이 항의가 떠오르대요. ‘사랑’이니 ‘선’이니 하는 것들에 대한 윤리성은 인류가 수천 년간 지켜온 종교 같은 것이라서 이를 훼손하려는 사람에게는 모든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보복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좀더 생각해 보면 우리가 누군가를 정말로 사랑하는 것은 순간   순간일 뿐, 자기를 위해 살면서 너는 나를 사랑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또 악한 자들은 악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서로 결집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 선을 옹호하고 실현해주기 기다리면서 자신은 꼼짝하지 않아 온 게 인류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악한 자들은 자기의 악을 가리기 위해 선이니 문화니 하고 위장해 왔습니다.
몇 년 전 중국의 만리장성과 천안문 광장과 자금성을 가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유럽일대의 박물관들을 구경했습니다. 대부분의 박물관들은 대충 보려고 해도 일주일은 걸리겠더군요. 

그런데 그 그 박물관들은 뭐로 채워진지 아십니까? 이집트, 바빌론, 터키, 그리스 등지의 성곽까지 뜯어 모아온 것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빼앗긴 자의 피와 눈물과 죽음은 보지 않고 그 엄청난 전시물의 외형에 압도되어 약탈자를 문화 대국이라고 찬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당신은 결혼 생활을 지속하고,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느냐고 요? 왜 남이 알까 두려운 짓을 되풀이하면서, 반성하고, 선을 논하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느냐구요? 네에. 아직 완성하지 못한 사랑과 선을 완성하기 위해서입니다. 선하지는 못해도 선하려는 노력조차 포기하면 더 이상 인간이 아니고,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자아를 인간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력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테마를 바꿔 우리가 꿈꾸는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절대 사랑을 테마로 삼은 연작시(連作詩)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썼는가 한 번 인용해 보라구요? 네에. 곧 인용할 테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이와 같이 윤리적 기준을 접어두면 아주 진지하고도 새로운 생각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위선과 제도에 가려진 역사의 참 모습과 인간다운 인간의 얼굴을 발견하여 형상화하면 불휴의 명작(名作)이 되는 겁니다. 
예컨대 우리 소설사(小說史)에서 백미로 꼽는 「홍길동전(洪吉童傳)」만 해도 그렇습니다. 신분 세습제(世襲制)의 세상에 노비의 뱃속에서 태어난 사람이 호형호부(呼兄呼父)하지 못하는 게 한이 되어 반역했다는 이야기는 당대 윤리적 기준으로는 용서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허균(許均)은 노비도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형을 형이라고 부르고 싶어한다는 발견을 작품으로 썼고, 그래서 그 작품은 한때 금서(禁書) 목록에 올라갔지만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아주 당연한 이야기로 들리는 겁니다.

또 늙은 학자가 어린 소녀를 유혹한 괴테의 「파우스트」, 아무 대책 없는 주부에게 가출을 부추기는 입센의 「인형(人形)의 집」, 자기가 무슨 정의의 사도라고 고리대금 노파를 살해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햇살이 눈부셔서 살인했다는 카뮈의 「이방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햇살이 눈부셔서 살인했다는 것은 어느 시대의 윤리적 기준으로 재도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근본적으로 부조리(不條理)한 존재이고, 그래서 논리나 윤리적 기준에 맞지 않는 행동도 할 수 있다는 인간의 어느 일면을 드러낸 작품이기에 명작으로 꼽히는 것입니다.

■ 관점 바꿔 생각하기

그러나 윤리적 기준을 덮어두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교육을 받아왔고, 그래서 그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무의식이 ‘야, 벌받아, 벌받아!’ 하고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에서 벗어나려면 관점을 바꿔봐야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한 한 가지만 질문해 볼까요? 두 점 사이 최단(最短)의 거리는 뭡니까? 직선이라고요? 좋습니다. 그럼 하나 더 질문해보겠습니다. <1+1>은 얼맙니까? <2>이라고요? 그럼 힌트를 드리지요. 서울에서 뉴욕까지 비행기를 타고 갈 때 비행의 궤적(軌跡)은 직선입니까, 곡선입니까? 그리고, 2진법에서 <1+1>은 얼마입니까? 

그렇습니다. 둥근 지구 위에서 살고, 일년 단위는 12진법, 하루와 절후(節侯) 단위는 24진법, 일주일 단위는 7진법, 한 달 단위는 30진법을 사용하면서 유크리이트 평면기하학(平面幾何學)과 10진법만 고집하는 게 우리 인간입니다. 
이와 같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모든 것들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관점을 바꿔 생각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①그일이 벌어진 시간과 공간을 바꿔 생각해보기
②내 입장과 남의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기
③서로 다른 것은 동정화(同定化)하고 같은 것은 분리하여 생각해보기
④사소한 것은 확대(擴大)하고, 중대한 것은 축소(縮小)하여 생각해보기  
⑤생명체는 무생명체로, 무생명체는 생명체로 바꿔 생각해보기

다시 말해 과거는 오늘의 시점에서, 오늘은 과거의 시점에서 생각해보는 겁니다. 그리고 내 일은 네 입장에서, 네 일은 내 입장에서, 전혀 다른 것은 하나로 합치고, 같은 것은 분리하고, ‘뜨락에 낙엽이 지는 소리로 천하에 가을이 오는 걸 알 수 있다’식으로 사소한 것은 확대해 보고, 죽고 사는 일 같이 심각한 문제는 인생을 뜨락의 낙엽 위에 내린 서리쯤으로 바꿔 생각해 보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허균의 「홍길동전」을 오늘날의 관점으로 바꿔 생각해보면 결코 이상하거나 대단한 제재가 아닙니다. 그 시대에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대단하고, 그런 작품을 썼기에 오늘날 적서차별이 없는 사회가 된 것입니다. 
왜 자꾸 소설의 예만 드느냐구요? 그럼 시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는 시를 쓸 때 흔히 아름다운 여인을 장미로 비유합니다. 그러나 결코 <여인 = 장미꽃>이 아닙니다. 그런데 시인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기에 그렇게 바꾸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사람이고, 꽃은 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아름다운 여인의 손등에서 화득화득 피어나는 장미꽃도 보고, 음악소리도 듣고, 천천히 그녀의 계단을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이렇게 재미있는 시 쓰기를 하지 않는지  이상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 연상하고 중간 단계 자르기

윤리적 기준을 풀어헤치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면 우리의 상상력은 아주 슬슬 풀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안 풀린 분이 있다면 어느 하나를 실마리로 삼아 <연상(聯想, association)>을 하고 그렇게 연상한 것들의 중간 단계를 잘라보십시오. 그야말로 신기한 마법의 나라가 열리기 시작합니다.
이를 위해 우선 연상하는 방법부터 알아보기로 합시다.

①연접(延接) 연상 : 분필을 보면 선생님을 떠올리고, 바다를 보면 비키니 수영복을 떠올리는 것처럼 연결된 것을 떠올리는 방식.
②유사(類似) 연상 : 한라산을 보면 백두산을 떠올리고, 축구공을 보면 배구공을 떠올리는 것처럼 비슷한 것을 떠올리는 방식.
③대비(對比) 연상 : 검은콤을 보면 흰콩을 생각하고, 훌쭉한 아이를 보면 뚱뚱한 아이를 떠올리는 것처럼 서로 다른 것을 떠올리는 방식.
④자유(自由) 연상 : 어떤 법칙에도 얽매이지 않고 떠올리는 방식.

이 가운데 자유 연상이 가장 새로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미국인들이 즐겨 먹는 <청키 수프>를 만들어낸 경우만 해도 그렇습니다. 이 수프를 만든 캠블사(社)에서는 신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직원들을 불러모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개발 책임자가 사전(辭典)에서 임의로 ‘손잡이’라는 단어를 골라 제시했다고 합니다.
왜 수프와 관계없는 ‘손잡이’라는 단어를 제시했느냐구요? 그렇게 엉뚱한 것에서 출발해야 기발한 결과가 나오니까요. 
그러자 한 직원이 ‘도구’를 떠올리고, 또 다른 직원이 그 도구에서 ‘포크’를 떠올리고, 그러다가 누군가 ‘포크로 먹는 수프는 어떨까’하고 농담하자, 또 다른 직원이 ‘채소와 고기를 듬뿍 넣은 수프’라고 해서 포크가 없으면 먹기 힘든 청키 수프가 탄생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자유 연상도 연상과정을 다 표현하면 낡은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원숭이 똥구멍 빨개(①)→빨간 건 사과(②)→사과는 맛있어(③)→맛있는 건 사탕(④)→사탕은 둥굴어(⑤)→둥근 건 지구(6)…’라는 식으로 연상을 되풀이하고, ‘원숭이 똥구멍은 맛있어’나, ‘원숭이 똥구멍은 지구’라고 처음과 끝을 연결하고, 그걸 집중적으로 묘사하면서 독자들이 유추할 수 있는 실마리를 마련해주면 아주 새로운 것이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연결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없을 때는 새롭기는 하지만 말장난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그래서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콜리지(S. Coleridge)는 상상력의 유형을 <제1 상상력(primary imagination)>과 <제2 상상력(secondary imagination)>으로 나누고, 시를 쓸 때는 <제2상상력>을 이용하라고 권유합니다. 그가 말하는 제1 상상력은 어떤 사물을 접할 때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상상력을 말합니다. 그리고 제2 상상력은 서로 다른 것에 대해 상상한 결과를 이성의 힘으로 통합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각기 다른 것을 상상하고 그걸 하나로 합치는 방식이 가장 좋다는 겁니다.
자아, 그럼 콜리지가 권유한 방법대로 작품 한 편을 써보기로 할까요? 제가 지금 독일에서 쓴 이 원고를 다시 다듬는 서재 창문 너머로는 제주도의 푸른 바다가 쫘악 열려 있으니 ‘바다’에서 출발하기로 합시다.

바다가 파랗군요. 파도가 남실거리는 게 꼭 목장(牧場)의 목초들이 흔들리는 것 같습니다. 어떼요? 여러분들도 이 정도는 연상할 수 있겠지요? 
그럼, ‘목장’하니까 뭐가 떠오릅니까? 저는 하이얀 말(馬)이 떠오르네요. 한 마리 말이 되어 달리고 싶어집니다. 어느 덧 네 굽을 놓고 짓달리고 있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하이얀 풀꽃들이 눕네요. 제 발굽에서는 풀꽃과 싱그러운 흙냄새가 진동합니다. 


이렇게 연결하면서 정서적인 언어로 표현하면 한편의 시가 탄생됩니다. 그럼 연결하면서 좀더 섬세하게 표현해볼까요?

  오후 2시
  바다는 푸른 목장
  바람이 불 때마다 하이얀 풀꽃들이 줄지어 눕고
  나는 한 마리 망아지가 되어 짓달린다.
  내 네 발굽에서는 오후 두 시의 바람과 풀꽃과 흙냄새가 진동한다.

어떻습니까? 재미있지요? 아직 부족하다고요? 그럼 다시 연상을 되풀이하여 중간 부분을 자르고, 너무 낯설어 독자들이 잘 이해하지 못할 것   같으면 그 앞 단계에서 합쳐보세요. 아주 재미난 시가 될 겁니다.

 인과 관계 비틀기와 풍경 바꾸기 

우리가 새롭게 느끼는 것은 그것이 새롭다기보다 그걸 그렇게 받아들이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은 대상을 낯설게 만들었을 때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내용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독자들이 유의해서 받아들이도록 낯설게 만드는 방식을 찾는 것도 중요합니다.
예컨대, 부부간의 대화만 해도 그렇습니다. 결혼 전에는 상대방의 눈빛만 달라져도 무슨 일이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세월이 흐르면, 힘들다고 하소연해도 그냥 스쳐 듣기가 일수입니다. 함께 사는 동안 그런 소리를 너무 자주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을 바라보며 하이얗게 웃는다던가, 한 1분쯤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방식을 택하는 게 현명할 겁니다. 
러시아 형식주의자(形式主義者)들은 시를 쓸 때 이와 같은 <낯설게 만들기(defamilarization)>를 하라고 권합니다. 낯설게 비틀어 말하면 독자들이 ‘어, 이게 무슨 소리야?’하고 유의해서 읽고, 그렇게 읽음으로서 시인이 말하려 의도를 생각해보고, 그래서 시인이 말하려는 장면을 떠올리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런 방식은 작품을 이루는 모든 요소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화제를 고르는 단계이니, 앞 뒤 모티프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배경을 낯설게 만드는 방법만 알아보기로 합시다. 다음 작품은 앞 뒤 모티프(motif)들의 인과관계를 단절시켜 낯설게 만든 예에 속합니다.

  남자와 여자의
  아랫도리가 젖어 있습니다.
  밤에 보는 오갈피나무,
  오갈피나무의 아랫도리가 젖어 있습니다.
  맨발로 바다를 밟고 간 사람은 
  새가 되었다고 합니다.
  발바닥만 젖어 있었다고 합니다.
                         - 김춘수, 「눈물」에서

이 작품은 <남자와 여자의 젖은 아랫도리>, <오갈피나무의 젖은 아랫도리>, <맨발로 바다를 밟고 간 사람의 젖은 발바닥>라는 세 개의 모티프로 이뤄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이 병치된 상태입니다. 그로 인해 독자들은 자기 나름대로 의미를 만들어내기 위해 이들을 연결시키려고 상상력을 발휘합니다. 그러니까, 이 방법은 독자의 상상력을 빌려 새롭게 만들려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면 새로워진다는 것은 아래처럼 인과관계를 마련해준 것과 비교해보면 금방 드러납니다.

(밤에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의/아랫도리가 젖어 있(었)다./밤에 (사랑하다가 창문 너머로)보는 오갈피나무,/(그) 오갈피나무의 아랫도리(도 서로 사랑하는 자기들처럼) 젖어 있(었)다./(누군가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그 사람의 영혼의 바다를 건너는 것)/맨발로 바다를 밟고 간 사람은/새(처럼)가 되었다고 한다./(새처럼 가벼워)발바닥만 젖어 있었다. 

원작에 추가한 것은 ‘있다’를 ‘있었다’로 고치고, ‘처럼’을 삽입한 다음 ‘사랑하다가’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영혼의 바다를 건너가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이런 말들을 삽입해도 우리는 같은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남의 말을 빠롤(Parol)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랑그(Langue)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고치고 나니까 원작에 비해 아주 친숙한 것으로 바뀌고 말아버렸습니다. 그것은 삽입한 말들로 인하여 인과관계가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독자가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길 바라는 사람은 군데군데 인과관계를 잘라 낯설게 만드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분들은 제가 자꾸 ‘독자, 독자’하니까 섭섭하지요? 저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나는 시인이다, 독자들은 내가 이야기하는 대로 들어야 한다는 식이었습니다. 하지만, 문학은 담화입니다. 그리고 담화는 청자를 전제로 탄생됩니다. 그리고 문학사회의 소비자는 독자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내 작품을 읽지 않으면 아무리 써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비위를 맞추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독자들이 오히려 건방져져 ‘히이, 그 정도는 나도 알아!’하고 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간혹 시치미를 뚝 떼고 ‘너 이거 알아?’하는 식으로 아주 어렵게 만들고, 그들이 당혹스러워하면 다시 쉽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낯설게 만들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건방떠는 독자들을 길들이기 위한 방법입니다.
자아, 그럼 배경으로 낯설게 만드는 방법을 알아볼까요? 배경은 작중 인물이나 화제와 마찬가지로 의미를 만들어내는 요소 가운데 하나라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다른 모습으로 바꾸면 대상을 아주 새롭게 만듭니다. 우선 다음 문장들을 읽고 비교해보기로 합시다.

○차가운 가을비가 내린다. 
→비가 내린다/내 마음 들판 한 구석/엇슥엇슥 엇베인 마른 수수대궁 밑으로/차가운 가을비가 내린다
○네 웃음은 참 아름답다
→네가 웃는다/네 웃음 속/이름 모를 풀꽃들이 피어 하늘하늘 손짓한다.

어떼요? ‘어? 내 마음 들판에 비가 내리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하며 읽고 싶어지지 않습니까? 
그래요. 이렇게 조금만 낯설게 만들어도 상대가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마련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네 웃음 속에는 이름 모를 풀꽃들이 피어 하늘하늘 손짓하는 거 같애’라고 해보세요? ‘정말?’하고 아주 환하게 웃을 겁니다.
여러분들은 아주 재미난 화제들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들이 고정관념에 묶이어 있을 뿐입니다. 자아, 그럼 고정관념에 묶인 것들을 하나 하나 풀고 그 가운데 어느 하나를 골라 작품으로 써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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