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위해 관심 없던 악기 곡 만들어
모차르트, 플루트 위해 작곡하고
브람스는 클라리넷 곡 잇따라 발표
영감만으로 훌륭한 작품 탄생 못 해…
친구의 조언과 격려 있어 가능했죠
음악가들이 주로 공부하는 책은 악보가 그 려진 책인데요, 늘 보는 것이지만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 멋진 음악들이 어 떻게 이렇게 일정한 기호로 쓰여 남아 있을 까? 위대한 작곡가들은 어떻게 이토록 아름 다운 소리를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었을까? 경이로움마저 느껴지는 훌륭한 음악 작품들 을 들을 때면 이른바 '영감(靈感)'이란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영감은 어느 순간 번개처럼 스쳐가는 느낌 이자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의미해요. 천재 음 악가들이라면 모두 영감이 떠오르는 순간을 경험해보았겠지만, 아무리 뛰어난 예술가라 도 주변의 도움 없이 위대한 창작품을 만들어 내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흥미롭게도 우리가 오랫동안 사랑해온 음악 작곡가들의 곁에는 소중한‘음악동료’가 늘 함께했답니다.
◇엉뚱하거나, 같은 천재이거나…
특정 악기의 연주자와 음악동료가 되면서, 지금까지 관심 없던 분야의 작품을 작곡하는 작곡가도 있어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 트(1756-1791)는 어찌 된 일인지 플루트라 는 악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22세 때 당대 최고의 플루티스트 요한 벤틀 링과 친해지고, 천재적인 실력을 발휘해 친 구가 연주하는 플루트를 위한 두 곡의 협주 곡과 네 곡의 4중주곡을 쓰게 됐죠. 처음에는 플루트를 그다지 내켜하지 않았던 모차르트 가 결과적으로 플루트를 사랑하는 모든 이를 위한 선물 같은 수작을 남긴 셈이니, 우정의 힘은 대단하지요?
그 후 30대가 된 모차르트는 클라리넷 연 주자인 안톤 슈타들러와 굉장히 친해져요. 1789년 모차르트는 슈타들러를 위해 클라리 넷 연주곡 중 걸작으로 꼽히는 '클라리넷 협 주곡 가장조'를 작곡했어요. 장난기가 많아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성격을 반영한 별명을 붙이던 모차르트가 슈타들러에게는 '엉뚱한 짓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노치비니치비 (Natschibi-nitschibi)'라는 별명을 지어주 었다고 해요. 엉뚱한 슈타들러와 장난기가 많던 모차르트는 기발한 발상을 공유하며 우애를 쌓았다고 전해져요.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거장들이 절친한 음악동료였던 경우도 있어요. 초기 낭만 시 대의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1809-1847) 은 나이가 한 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 로베르 트 슈만(1810-1856)과 친해 서로 여러 분야 에서 도움을 주고받았죠. 두 사람 사이에는 페르디난트 다비트라는 뛰어난 바이올리니 스트도 있었는데, 그는 독일 음악 문화를 이 끈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악장이었어요.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다비트 는 멘델스존과 슈만에게 곡을 연주하는 사람 의 입장에서 여러 가지 조언을 하고 완성된 곡을 처음으로 연주하곤 했어요. 멘델스존의 명작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슈만의 '바 이올린 소나타 2번'이 바로 다비트를 위해 헌정된 곡들이에요.
슈만의 후계자이자 신고전주의 작곡가로 불리는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 역시 음 악친구가 많았던 인물이에요. 슈만의 부인이 었던 클라라 슈만은 음악동료이자, 브람스가 진정으로 짝사랑한 사람이었어요. 클라라 슈 만은 뛰어난 피아니스트로 브람스에게 피아 노곡을 비롯한 거의 모든 곡에 조언을 아끼지 않았죠. 또 브람스는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과도 친했는데요, 요아힘은 많은 사람 이 사랑하는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 조'가 만들어지는 데 큰 공헌을 했어요.
브람스가 말년까지 뛰어난 곡을 많이 쓸 수 있었던 이유는 훌륭한 음악가들과 계속 교류 했기 때문이랍니다. 브람스가 50대 후반에 만난 클라리넷 연주자 리하르트 뮐펠트는 당 대 최고의 연주 솜씨를 지닌 인물이었는데요, 그 덕분에 브람스는 그때까지 쓰지 않았던 클 라리넷곡을 쓰기 시작해 '클라리넷 소나타' '클라리넷 3중주' '클라리넷 5중주' 등의 걸 작을 연달아 탄생시키게 됩니다.
◇거장의 우정, 나이는 중요치 않았다
작곡가와 연주자, 음악가들의 만남에서 나 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듯해요. 러시아 의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1891-1953)는 만년에 뇌진탕 부상을 입은 뒤 건강 이 악화돼 병석에 몸져누웠답니다. 그를 찾 아가 건강을 회복하고 자신을 위해 작품을 써 달라고 부탁했던 사람은 당시 20대 초반이던 젊은 첼리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 치였어요. 그의 응원 덕에 프로코피예프는 다시금 힘을 내, 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첼로 작품 창작에 몰입하지요.
비슷한 시기 활동한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도 자 신이 꿈꾸는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한 참 후배인 피아니스트 타티야나 니콜라예바 (1924-1993)에게 도움을 요청했답니다. 쇼 스타코비치는 니콜라예바를 찾아가 '바흐의 평균율 곡집(전설적인 바흐의 건반악기용 독주곡집)과 같은 작품을 만드는 데 도와달 라'고 했어요. 당시 니콜라예바는 제1회 국 제 바흐 콩쿠르에서 1등을 받은 피아니스트 였어요. 신인이었던 니콜라예바는 쇼스타코 비치의 부탁을 기쁘게 받아들였고, 두 사람 의 공동 작업으로 완성된 작품이 바로 쇼스 타코비치의 걸작 '스물네 개의 프렐류드와 푸가(작품 번호 87)'입니다. 니콜라예바는 훗날 바흐를 가장 잘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로 평가받지요.
훌륭한 작품에는 그에 걸맞은 훌륭한 우정 이야기가 숨어 있는 것 같죠? 아름다운 클래 식 음악을 들으며,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 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주변 동료들을 생각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