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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시인의 ‘봉숭아 편지’를 읽으니 어렸을 적 고향집 마당가에 하얗게, 붉게 피었던 봉숭아가 생각난다. 그 시절 봉숭아, 채송화, 맨드라미는 집집마다 마당가나 장독대 옆 작은 뜰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바쁜 농사철에 잡풀 속에서도 환하게 피고 지고 하며 농사꾼의 마음에 여유와 다사로움을 안겨주던 꽃이다. 가을철이면 파랗던 봉숭아 씨주머니가 누래지면서 탱탱하게 여물어, 엄지와 검지로 살짝 누르면 툭 터진다. 씨주머니가 바짝 오그라들고 작은 씨앗들이 툭 튀어나와 손바닥에 모일 때의 그 감촉이 너무 좋아서 나는 자꾸 씨주머니를 터뜨렸었다.
시인은 전주 한옥마을에 갔다가 봉숭아 씨를 받아 온다. 그 씨를 잘 간직하고 있다가 봄에 화단에 심었다. 봉숭아는 햇볕 받고 비바람 맞으며 무럭무럭 자라 여름에 색색깔로 꽃을 피운다. 아하, 전주에서 충주로 이사 왔으니 전주의 벌과 나비에게 소식을 전하려는 것이구나. 봉숭아는 “여름내 하양 분홍 빨강/편지지 꺼내” 편지를 쓰고 또 쓴다. 꽃이 피고 벌과 나비를 부르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지만, 시인의 눈은 전에 살던 곳에서 꽃을 찾아왔던 벌과 나비 친구들에게 봉숭아가 전하는 애틋한 마음을 본다. 야들아, 봉투에 쓴 주소를 보고 그리로 한번 와 줬으먼 좋겄다잉. 자기가 살았던 전주 사투리로 썼다. 그런데 어쩐다? 편지를 누가 전하지?
시인은 우체부가 되어 편지를 전하러 간다. “손톱에 받아쓴 봉숭아 편지”는 봉숭아 꽃잎을 따서 손톱에 얹고 싸매주어 분홍물을 들인 거다. 아하, 지난가을에 만났던 전주 친구가 보고 싶어 다시 가는구나. 편지를 받은 전주 친구는 벌과 나비 소식을 갖고 봉숭아를 보러 올 테고.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 아름다운 우정이로고. 곱디고운 핑계로고.
입춘 지나며 하늘을 보니 햇살에 부쩍 생기가 돈다. 고향에 가서, 시골에 가서 부모님의 손도 잡아보고 친구를 만나 꽃씨 같은 마음 한톨 건네야겠다.
/ 김이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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