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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약속
/ 문정희(1947~)
창밖 감나무에게 변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풋열매가 붉고 물렁한 살덩이가 되더니
오늘은 야생조의 부리에 송두리째 내주고 있다
아낌없이 흔들리고 아낌없이 내던진다
그런데 나는 너무 무리한 약속을 하고 온 것 같다
그때 사랑에 빠져
절대 변하지 않겠다는 미친 약속을 해버렸다
(중략...)
감나무에게 변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부분. 『카르마의 바다』 . 문예중앙. 2012)
사랑에 빠져 당신은 절대 변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버린 사람이다. 사랑에 빠져 당신은 이 시처럼 ‘미친 약속’을 해버린 자이다.
해질 무렵 놀이터의 비어 있는 그네에게 당신은 조용히 가본 사람이다. 빈 그네를 밀어주며 ‘너는 절대 떨어지지 않을거야’라고 말해버린 사람이다.
이제 사랑 때문에 변하지 말자는 말보다, 사랑 때문에 변하고야 말았다는 누군가의 고백에 더 뜨거워지는 사람이다.
다시는 변하지 않겠다는 누군가의 다짐처럼 쓸쓸한 것이 있겠는가? 감나무도 잔정이 많아 이파리에게 기울었고, 잔정이 많아 감나무도 수만 번 머리 위의 하늘 때문에 흔들렸다. 잔정이 많아 그 사람은 얼마나 많은 ‘미친 약속’을 해버린 사람인가.
그때 당신과 내가 몰래 훔치고 싶었던 세상이 한 뼘 있어서, 우리는 변해야만 했다. 그게 거짓인줄 알면서, 세상이 우리를 다 속여버리기 전에, 몇 개는 미친 약속을 하고 싶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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