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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作初心 - 바람이미지
2016년 03월 12일 03시 05분  조회:3713  추천:0  작성자: 죽림

이시환의 시법 : 부드럽게 생동하는 이미지들

-②바람 이미지

 

심종숙(시인/문학평론가)

 

 

바람이 인다. 바람이 일 때에는 모든 이동이 일어난다. 포자를 가진 꽃들의 열매들은 날아갈 준비를 한다. 많은 꽃들의 열매는 씨를 바람에 실어서 퍼트린다. 바람이 내려다 놓은 꽃들의 씨앗들은 여기저기에 산재하여 대지에 스미어 있다가 봄이 되면 정체를 드러낸다. 여기에 날아와서 있었노라고 보란 듯이 대지의 어머니 흙의 품속에서 싹을 틔우고 연한 떡잎과 줄기를 삐죽 밀어낸다. 그 하나의 생명은 바람이 실어온 것을 대지의 어머니 흙이 품어준 결과이다. 대양에 바람이 일면 파도가 치고 저 심해의 밑바닥까지 모든 생물들이 이동한다. 이동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머물러 있는 것이 없다. 이렇게 바람은 한 번씩 크게 바다를 뒤엎어 갈아놓는다. 농부들이 겨울에 묵어있는 딱딱한 밭을 봄이 되면 쟁기의 보습으로 갈아엎어서 새롭게 씨를 뿌리듯이 말이다. 바다가 갈아엎어지면 새로운 숨결 속에서 바다의 동식물이 안정을 찾아 한동안 머물게 된다.

따뜻한 남풍은 춥고 메마른 겨울의 북풍을 이동시킨다. 밀어낸다. 지구가 태양의 궤도를 자전하면서 이 한반도는 뚜렷한 사계절의 변화 속에서 계절마다 다양한 바람이 불어온다. 따뜻한 남풍과 고온다습한 여름바람, 시원하고 청량한 가을바람, 메마르고 추운 겨울바람이 쉼 없이 불어온다. 거기에 따라 이 땅의 농부들은 적절하게 농사를 지어왔다. 초여름과 초가을의 짖꿎은 태풍은 농사를 망쳐놓을 때도 있지만 농부들은 이 짖꿎은 바람의 장난에도 익숙하다. 천지운기가 하는 일이니 인간이 어쩌랴 라며…. 이 체념은 인간이 대자연 앞에서 무력하기도 하지만 대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일 터이다.

바람은 우리 인간사에 소문을 물어온다. 바람을 타고 인간의 마음도 움직인다. 봄바람이 불면 마음이 들뜬다. 산으로 들로 나가고 자연과 햇살을 즐기면서 도시인들은 한 때의 여가를 보낸다. 메마르고 추운 겨울바람이 불면 마음이 추워진다. 가난했던 이 땅의 사람들은 이 바람이 야속했으리라. 그러나 더운 여름의 땀 흘리는 농사일 속에서 인내의 극한에 다다르면 입추를 고비로 문득 귀뚜라미가 울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지면서 드높은 가을 하늘에 시원하며 청량한 바람으로 여름의 고통을 잊는다. 그러니 바람은 원래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데 인간사로 인해 좋게도 나쁘게도 생각될 뿐이다. 풍차, 풍력발전소는 바람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이다. 물레방아가 물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이듯이 말이다. 이 바람이나 물을 이용하여 인간은 많은 도구를 만들었다. 그러니 자연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고마운 일을 했는가. 때로는 인간에게 천재지변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인간은 자연과 벗하며 자연의 심술을 슬기롭게 대처하면서 살아왔다.

사람의 마음에 바람이 일 때는 언제인가? 단조롭고 권태로운 일상이 반복이 될 때 무언가 새로운 것을 보면 강력한 끌림을 느낀다. 인간에게 중년에 이는 바람은 거의 반생을 살아왔기에 전환점에 이르러 그 전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20․30대는 빛나는 꿈을 향하여 숨 가쁘게 달려왔기에 잠시 머물러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이 때 잘 되새김질하게 되면 남은 반생은 더욱 빛나는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인간은 신체와 정신의 쇠퇴와 더불어 변화된 삶을 꿈꾼다. 삶을 리모델링하는 시간인 것이다. 남은 반생에 지녀왔던 것들 중 끝까지 지녀야 할 것은 지니되 부담스러운 것들은 버린다. 그렇게 하여 비교적 가볍게 의미 있는 일을 찾아서 남은 생을 살고자 한다. 왜냐하면, 100년의 반을 살았기 때문이다.

바람이 분다. 마음에 수런수런 잎들이 자기네들끼리 이야기를 나눈다.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지만 심상치 않다. 바람과 잎은 공모한다. 휭휭 불어오는 바람은 새콤한 모과를 노랗게 물들인다. 사과를 붉게 물들인다. 이 바람은 수상하다. 이 바람은 서로 의견을 나누고 사람들끼리 한 무리를 짓게 한다. 그런 무리가 수없이 많이 만들어진다. 지하에서는 더 큰 일을 비밀리에 진행한다. 지상에서는 많은 이들과 공모한다. 이들의 공모가 불온하다. 이 불온함도 바람의 탓이지 인간의 탓이 아닐 게다. 저 대기에서 산으로 불어 내려오는 한 줄기 바람은 지상의 썩은 것들을 밀어낸다. 그 바람이 지상과 지하의 바람과 만나서 큰 바람을 일으킨다. 바람이 파도를 일으켜 거대한 인간의 바다를 갈아엎는다. 농부가 그의 묵은 밭을 보습으로 갈아엎듯이 갈아엎는다. 이 갈아엎지 않으면 생명력을 잃은 바다나 밭은 갈아엎어야 한다. 인간세계도 생명력을 잃어 거기에 사는 인간들이 고통으로 몸부림을 치면 스스로 떨쳐 일어나 갈아엎듯이 엎어야 새로운 생명이 움트고 깃든다. 인간사회를 바꾸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가슴에는 늘 바람이 일고 있다. 그들은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는 머물러 있기를 원하지 않는다. 바람을 일으켜 사람들이 서로 손에 손을 잡고 꿈꾸는 세상을 만드는 데 전진한다. 이들은 바람의 방향을 늘 가늠한다. 그리고 그 바람이 부는 쪽으로 몸을 던지면 된다. 바람의 촉수가 그들의 뇌리에 닿고 온 몸과 마음을 깨우면 그들은 움직인다. 바람의 배경을 믿고 움직인다. 준동하는 그들은 허파에 바람이 꽉 찼다. 바람과 함께 그들의 몸이 가볍게 날아오를 때 세상은 이미 한바탕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이시환의 시에서 바람은 아주 중요한 이미지이다. 이 바람은 우주의 근원의 생명력이다. 바람 속에서 시인은 바람이 전하는 말을 듣는다. 제3시집 속의 「바람 序說」을 읽어보자.

 

바람이 분다

부는 것이 아니라

머물러 있는 것이다.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훨훨 타는 것이다

훨훨 타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것이다

갯뻘의 진흙 내 혈관 속을

돌멩이마다 내린 뿌리 네 몸

속속들이 흐르고 흘러

시방 억새꽃을 흔들고

내 가슴 네 가슴을 흔들어대며

머물러 있는 것이다

부는 것이다

눈이 부시게.

 

-「바람 序說」전문

 

바람은 운동성을 가지고 있다. 바람은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다. 불어왔다가 스쳐지나 간다. 이것이 바람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 시인은 바람이 부는 것을 보고 부는 것이 아니라 머물러 있다가 훨훨 타다가 흘러서 갯뻘의 진흙, 돌멩이 속에 속속들이 흐르고 억새꽃을 흔들다가 나의 가슴과 너의 가슴을 흔들어대다가 머물러 있다가 눈이 부시게 분다. 그러니 바람은 자연물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준다. 이런 바람은 만물을 생멸을 관장하는 근원적인 생명이다. 태초에 하늘과 땅이 그 형상을 갖추지 못했을 때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물 위를 감돌았다고 창세기 제1장 2절은 말한다. 이 하느님의 영은 곧 하느님의 입김이요 얼이며 강한 바람이다. 이 바람으로 하느님은 심연에 궁창(구멍)을 내어 아래 물인 땅과 위의 물인 하늘을 만든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은 파라오의 군사들을 피하여 홍해를 건널 때 하느님의 영, 즉 강한 하느님의 숨, 입김인 바람이 바다에 구멍을 내어 갈라놓음으로써 그 마른 바다의 바닥을 밟고 건너갔다. 이렇게 바람은 태초에 하늘과 땅을 창조한 창조주의 숨결이었다. 시인의 바람의 이미지는 우주의 형상이 빚어지는 태초의 생명력인 바람을 인식한 바탕 위에서 창조된다.

 

바람 속으로 알몸을 눕혀 보게나.

네 알몸의 능선을 핥고 지나가는

그 놈의 혀끝이 감지되면서

무거운 몸뚱이조차 티끌처럼 가벼워지나니.

 

영영 바람 속으로 누워 버려

그 놈의 정령과 입 맞추어 보게나.

누추한 몸뚱이조차 바람이 되어

백 년이고 천 년이고 흘러가나니.

 

붙잡아 두려하면 사라져 버리고

풀어놓으면 다가오는 바람이여.

하늘과 땅 사이 만물이 다

네 품에서 비롯되고

네 품에서 끝이 나는 것을.

 

-「바람 속에 누워」전문, 『상선암 가는 길』에서

 

제1연에서 시적 화자는 바람 속으로 알몸을 눕혀 보게나, 제2연에서 그 놈의 정령과 입 맞추어 보게나라고 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생명의 바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기를 권하고 있다. ‘-~해 보게나’라고 그는 넌지시 독자를 유인한다. 그가 바람과 맺어왔던 그 친밀하고 농밀한 만남의 격정을 홀로 간직하기엔 벅찼던 것일까. 좋은 것은 나누고 싶은 법이다. 그러니 시인은 바람과의 나눔을 권하고 있다. 그의 바람과의 관계 맺기가 그저 겉껍데기뿐이 아닌 것은 ‘알몸의 능선을 핣고 지나가는/그 놈의 혀끝이 감지되면서’와 ‘그 놈의 정령과 입 맞추어’에서 알 수 있다. ‘너’는 이 시에서 여성인 듯하며 바람은 ‘그 놈’이라고 지칭 하고 있어 남성으로 의인화되어 있다. 그러니 이 시는 바람과의 정사를 농밀하게 권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산 위에 서서 불어오는 바람을 양팔을 벌리고 한참을 느낄 때 옷의 올과 올 사이를 투과하여 오는 바람을 알몸으로 느끼는 것은 다를 것이다. 그러니 시인은 그저 옷을 걸치지 않고 알몸으로 진실한 몸으로 바람을 느껴보라고 권한다. 그럴 때에 한해서 무거운 몸뚱이도 티끌처럼 가벼워지고 누추하여 생명력 잃은 몸도 바람처럼 동적으로 백년이고 천년이고 흐를 수 있다고 한다. 남녀의 교합으로 생명이 잉태되듯이 바람과의 교합은 생명의 숨으로 충만하게 된다. 그래서 제3연에는 붙잡으려고 하면 사라지고 풀어놓으면 다가오는 바람은 속성은 하늘과 땅 사이 만물이 바람의 품에서 비롯되고 끝이 난다고 말한다. 그러니 이 바람은 바로 인간을 비롯한 우주만물의 생멸을 관장하는 바람이며, 이시환의 바람이다.

 

간밤에 마음과 마음이 통했는가?

 

아주 가벼웁게 바람의 잔등을 올라타는

저 수수만의 꽃잎들이 추는 군무(群舞)가

마침내 반짝거리는 큰 물결을 이루어 가는 것이,

 

그 모습 눈이 부셔 끝내 바라볼 수 없고

그 자태 어지러워 끝내 서 있을 수도 없는

나는, 한낱 대지 위에 말뚝이 되어 박힌 채

그대 유혹의 불길에 이끌리어 손을 내어 뻗는 것이,

 

간밤에 마음과 마음이 통했는가?

 

아주 가볍게 몸을 버려서 하늘을 나는 꿈을 꾸는,

저 흩날리는 꽃잎들의 어지러운 비상(飛翔)!

그 마음 한가운데에서 일어나 소용돌이치는

법열(法悅)의 불길을 와락 끌어안는다, 나는.

 

-2003. 4. 22. 00:5

「벚꽃 지는 날」전문

 

누가 바람의 잔등을 보았는가? 아니 볼 수 있겠는가, 바람과의 관계가 얼마나 친밀하면 바람의 잔등이 보일까. 비트겐슈타인의 이미지 이론의 핵심은 ‘ ~로서 보는 것’으로 관계 맺기의 지각이 곧 이미지라고 하였다. 바람과 친밀한 관계가 맺어지지 않으면 이런 것들이 과연 보일까, 느껴질까, 언어로 표현될 수 있을까? 이것이 필자의 의문이다. 시인이 바람을 보는 것은 우주만물의 생멸을 관장하는 창조주의 숨결로서 바라본다. 그리고 자신을 거기에 던져 관계를 맺는다. 그렇게 관계가 맺어져 길들여지지 않으면 이런 농밀한 감각과 지각이 작용하여 이미지로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시인이 바람을 그렇게 보아서 관계가 맺어져 친밀하게 농밀하게 지각되어 이미지를 만들듯이 시 평론가는 시인이 바람과의 정사를 통한 관계맺기를 철저히 관음(?)하지 않으면 이 관계맺기의 긴밀도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한 편의 시를 이해하는 것이 평론가에게는 늘 두렵다. 이시환 시인이 바람을 이토록 느낄 수 있는 이유는 그의 감각과 지각 속에 창조주 하느님의 얼(spiritus)이 내재하는 특수한 감각의 문이 열려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불교에서 말하는 색계의 감각이 아니라 영적인 것, 심안에서 오는 영적인 감각이다. 그것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될 수가 없다. 불교에서 말하는 불성이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느님 영의 임재는 모두 이런 영이 인간에게도 내재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그것이 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정화와 재생이 되지 않고는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 분야의 전문가인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영혼의 성 7궁방을 말해주고 있다.

데레사의 7궁방은 제1궁방/독충과 벌레들이 우글대는 방으로서 독충은 죄이고 벌레는 상처와 악습이라고 말한다. 즉 상처와 악습에 가려서 영안이 어둡고 마음이 깨끗지 않으며 부정적 의미의 어둠 속에 갇혀있는 상태이다. 제2궁방은 작은 독충과 벌레가 남아서 영적 갈등을 일으키는 방으로 내 뜻과 하느님의 뜻이 서로 부딪쳐서 나오는 갈등으로 여전히 자기 뜻을 고집하고 완전한 비움에 이르지 못한 단계이다. 제3궁방은 정화를 마치고 조명(照明)의 문에 들어서 빛이신 주님을 직접 뵈옵는 영적인 시기이다. 이때부터 마음의 부정적인 독충과 벌레들이 비워져서 영안이 열리고 주님이 마음에 깃들어 계신다. 제4궁방은 초자연적 기도로 은총의 수도관에 입을 대고 마시는 시기로 주부적 덕행의 시기로서 모든 것은 그 분의 은총으로 이루어져 나가기 시작하는 단계이다. 제5궁방은 하느님과 맞선을 보는 단계로 일치되기 위한 준비의 때이다. 제6궁방은 수녀로서 예수님과 약혼하는 시기로 하느님께서 주도권을 드러내는 시기이며, 제7궁방은 신비적인 혼인의 시기로 깊은 일치를 이루는 최고의 단계에 이르는 정점의 상태이다. 성녀는 이렇게 7궁방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 마음의 영적 단계의 이미지일 것이다. 상처와 악습으로 젖은 육신은 「바람 속에 누워」에서 ‘무거운 몸뚱이’, ‘누추한 몸뚱이’로 표현되고 있다. 이 부정적인 것들이 바람에게 몸을 던짐으로써 상처와 악습을 생명의 바람이 날려 버리고 티끌처럼 가볍게 백년이고 천 년이고 바람처럼 흐르게 한다니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바람에 지는 벚꽃을 바라보면서 벚꽃이 바람의 잔등에 올라타서 군무를 춘다고 상상한다. 이 군무가 절정에 오르면 바람과 벚꽃은 하나가 된다. 그러니 간밤에 바람과 벚꽃은 마음이 통했는가하고 시적 화자는 자문한다. 그런 군무가 마침내 반짝이는 물결이 되어 흘러간다고 한다. 지는 벚꽃이 바람의 잔등에 올라타서 군무를 추고 그 절정에서 반짝이는 물결이 되어 흘러간다는 이 표현은 영적인 눈인 심안으로 보지 않으면 결코 관상할 수 없는 세계이다. 그러니 벚꽃이라는 식물의 생명을 상징하는 꽃이 바람을 만나서 군무를 추고, 그 절정에서 하나가 되어 생명의 강으로 흘러넘친다는 의미이다. 그 많은 벚꽃들이 생명으로 강이 되어 흘러가는 이 영적 지각은 이 광경을 보는 시인으로 하여금 눈이 부셔서 바라볼 수 없게 하고 현기증을 일으키면서도 그 유혹으로 이끌리어 손을 뻗게 한다. 마치, 벚꽃과 바람의 군무가 가져오는 일치를 바라보는 시인은 환시를 보듯 이끌리어 손을 뻗는다. 몸을 버리고 하늘을 꿈꾸는 꽃잎들의 어지러운 비상을 보며 시적 화자 나는 가슴 한가운데에 소용돌이치는 법열의 불길을 와락 끌어안는다고 한다. 시인은 이 불길을 ‘법열’의 불길이라고 하였다. 법열은 열락이라고도 하며, 불교적 신비에서 오는 즐거움이며, 기쁨이다. 그 도그마를 아주 잘 살았을 때에 오는 기쁨을 말한다. 창조주 하느님과의 영적 관계를 설명하는 데레사 성녀가 제시한 제7궁방의 경지와 유사하다.

 

그 하나

 

홀로 설 수는 있어도

온전할 수는 없어

다른 하나를 꼭 필요로 하는

그리하여 서로가 서로를 받들어 주는

너와 나의 관계는

하늘과 땅 같은 자리요

물과 불 같은 바탈이요

빛과 어둠 같은 이치느니라.

 

이 땅 위 하늘 아래

두 빛깔의 어우러짐은

하늘과 땅이 빗대어

크고 작은 만물이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여서

더할 나위 없는 아름다움 가운데

바로 그것이니라.

 

 

그 둘

 

꾸밈이 없는

너와 나의 어우러짐은

우뚝 솟은 산과

길게 흐르는 강물 사이 같은 것

너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우리 서로 존재할 때

비로소 하나가 되어

바로 설 수 있는

아름다움으로 머물지니

그것이 곧 물에 비친 하늘이요

땅에 스미는 물과 같은 이치라.

반드시 그 속에는

일정한 질서와 기운이 자리하는

법.

 

-「바람꽃」부분

 

이시환 시인의 제3시집 『바람 序說』 속에 실려 있는 「바람꽃」은 바람에 관한 시를 완결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주의 생멸을 관장하는 바람은 창조주의 얼이자 질서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궁창을 만든 것이 바람이듯이 너와 나 사이에는 바람이 분다. 이 바람으로 생명이 잉태된다. 그러니 홀로 선 둘이가 만나서 살아가는 것이 세상의 모습이다. 하나로도 부족하다. 둘이 하나 되는 질서 속에 살아갈 때 생명은 끊임없이 잉태되리라. 이 시에서는 너와 나의 어우러짐에 핵심이 있고 그것이 바로 바람꽃이다. 바람이 생명을 관장하기에 바람꽃이라고 시인은 일컬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나는 너를 위해여 존재할 때, 너는 나를 위하여 존재할 때 서로의 바람꽃이 되어줄 수 있는 이치 속에 머무르는 것이 아름다움인 것이다. 그것이 일정한 질서와 기운이다. 이것은 마치 하늘과 땅, 물과 불, 빛과 어둠이 서로 상즉상입하는 세계를 만드는 데는 바람이 일으키는 질서 속에서 끊임없이 작동하는 것이 우주의 이법임을 이 시에서 시인은 말하고 있다.

이시환 시인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는 꽃들이 피어난다. 눈이 부시다. 수런댄다, 춤을 춘다. 그 춤이 절정에 올라 꽃들은 강물이 되어 흐른다. 그 강물은 여래의 품인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인간의 마음속에 눈물이 흘러내린다. 인간의 몸은 흩어지면 한 줌의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여래의 몸에서 인간은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인간이 얼마나 보잘 것 없으며 나약한 존재인지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이다.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기 2장 7절) 이 생명의 숨을 거두어 버리면 인간은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이것이 인간의 삶이다. 이 진리를 직시하며 그 바탕 위에서 생을 창조하고 시를 창작해나가는 시인이 바로 이시환 시인이며, 그는 그 바람이 창조주의 생명의 숨이라는 진리를 아는 시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해맑은 아침햇살(하느님)이 숨 쉬는 모든 것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하느님의 자비의 손길을 노래한다. 그 시편인「화엄사 계곡에 머물며․2」를 인용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

 

이 몸이야 한 덩어리 진흙.

그도 결국 바람이 불면

가볍게 날아가 흩어져 버릴 한 줌의 먼지인 것을.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이 있다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 하나가 반짝거릴 뿐.

 

해맑은 아침햇살이

숨 쉬는 것들의 뽀얀 얼굴을 어루만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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