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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作初心 - 한편의 시가 태여나기까지...
2016년 03월 12일 03시 43분  조회:3907  추천:0  작성자: 죽림
바람의 밀어 -‘너와 나’

- 이시환의 제3시집 『바람序說』에 부쳐-

 

 

 

심종숙(시인, 문학평론가)

 

 

 

1

 

시인은 끝없이 꿈을 꾸는 자이다. 시인이 꾸는 꿈은 때로는 흑백사진이나 칼라사진의 이미지로 시인의 뇌수를 건드린다. 시인은 왜 꿈을 꿀까. 시인이 꾸는 꿈은 우리가 일상에서 꾸는 프로이드식의 무의식을 전치나 은폐, 자리바꿈으로 나타내는 그런 꿈일까? 여기에서 이야기 해 보고자 하는 것은 시인이 바라보는 대상들에 대하여 끝없이 꿈을 꾸고, 그 꿈은 우리가 잘 때 꾸는 일상적인 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시인은 자신을 둘러싼 대상들에게 깊이 함몰하기 위하여 꿈을 꾼다. 이 때 시인이 꾸는 꿈은 대상들에 함몰하기 위한 통로나 공간의 역할을 하고, 그 꿈에서 시인은 대상들과 밀어를 나눈다. 밀어가 밀담이 되고 그것이 때로는 일방적이기도 상호적이기도 하면서 끝없이 꿈을 꾼다. 시인이 한 대상과 밀어를 나누어 갈 때 그는 대상을 몽상하는 것이며, 고요하면서 집중적이고 부드러운 긴장과 여유 속에서 이미지들을 불러 오는 것이다. 시인이 우주 만물과 밀어를 나누는 우주적 몽상은 우리를 일상의 시간에서 도피케 하며, 하나의 상태요 더 본질적으로는 ‘넋의 상태’일 것이다. 시인은 대상들과 밀담을 나눌 때 그만의 언어로 나눈다. 그러나 그 밀어가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불가해한 것이 아니라는 데에 경이를 금치 못한다. 분명히 시인은 은밀하게 고요히 대상을 몽상하면서 밀어를 나누지만 독자들이 그 경험을 읽을 때는 불가해하지 않다. 오히려 시인은 우리를 대상들에게 함몰할 수 있도록 데려가 준다. 거기에서 고요하게 대상들과 또 다른 밀담을 나눌 수 있게 공간을 넓혀준다. 좋은 시라면 시인이 독자들을 우선 우주 만물들과 밀어를 나누는 곳으로 데려가 주되 시인 자신이 나눈 대화는 물론 독자 각자들이 새로운 밀담을 나눌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 면에서 프랑스 상징시가 가지는 위력은 언어가 지니는 다양한 울림을 통하여 의미를 확대하고 독자들에게 더 많은 창조적 감성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을 것이다. 시는 단지 시인의 감정, 정서, 생각, 사상을 간결하게 정리하기보다 함축된 언어를 통하여 다의성을 띨 때 그 틈입을 열어주고 그 세계를 확장해 갈 것이라 생각된다.

이시환은 그의 제3시집 『바람의 序說』(1993)에서 대상들과 고요하고 아름다우며 때로는 사랑하는 연인에게 다가가듯이 끝없이 그 거리를 좁히면서 자신을 몰입하고 아낌없이 던진다. 이 시집은 그가 밝히듯이 1977년부터 1992년 사이에 창작 된 시들 중에 산문시와 타령조시를 제외한 순수서정시를 묶은 것으로 47편이 실려 있다. 시인 자신의 후기에서 밝히듯이, 이 시집은 첫째마당과 둘째마당 그리고 셋째마당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째마당을 새김조, 둘째마당을 斷章調, 셋째마당을 長江調라 하여 비교적 긴 3편의 시를 배치하였다. 새김조의 시편들은 ‘미의식이라든가 감정의 노출이라든가 표현위주의 기교 등의 감각적 요소보다는 단순히 의미기술에 더 많은 비중이 주어진 것들’이라고 하여 의미중심의 삶의 ‘진실’에 닿고자 하였다. 단장조의 시편들은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직관이나 상상력’에 기반을 둔 ‘직감적’인 요소가 시의 전문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시인이 설명한 바와 같이 ‘어떤 대상이 전제 되면서 그에 대한 사유 활동이 순간적 혹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얻어지는 이미지들로서 그 자체가 시인의 메시지를 대신하고 있는 형태’이다. 다음으로 장강조는 3편의 장시로서 ‘삶의 본질을 총체적으로 보려는’ 시인의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다. 이 세 부분의 다소 차이를 가지는 시편들을 한 권의 시집에 세 갈래로 나누어 실은 것은 시인이 분명 의도, 기획하고 있으며, 시인이 시라는 문학적 형식을 통하여 우주 만물에 대한 몽상을 삶의 진실에다 접합하여 결코 문학이 미적 표현의 집적물에 머물지 않고 삶의 현실에 뿌리를 둠으로써 모두가 공감하는 데로 이끌어가기 위한 시적 전략으로 해석된다. 그러면서도 대상에 대해 이미지로서 시인의 메시지를 대신하려는 시법은 시적 표현을 극대화 하여 신선함을 주고 독자는 시인의 감성을 통하여 제2의 제3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는 여지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삶의 진실에 대한 의미 추구 의식과 미적 표현 의식이 만날 때 독자는 시에서 더 큰 감동을 느낀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셋째마당의 삶의 본질을 총체적으로 아우르려는 시인의 작업을 통해 공감의 가능성을 넓혀가고 있다고 하겠다.

한 편의 시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시인은 끝없는 몽상에 젖는다. 그 몽상이 때로는 시인에게 즐거움도 기쁨도 가져다주지만 때로는 시인 자신의 심부 깊은 곳으로부터 그날 그날의 단순한 기분이나 감정으로부터 시작될 수도 있고, 어느 날 문득 시인의 뇌수를 자극하는 어떤 사물이나 사건일 수도 있고, 과거의 아픈 기억 속의 상처일 수도 있다. 또는 과거의 아픈 기억이 현재까지 되풀이되는 트라우마나 현재의 현실과의 사이에서, 또는 현재의 것으로 미래에 귀결될 어떤 것을 두고 일으키는 고뇌나 번민일 수도 있다. 그것이 시인의 개인적인 것이나 시인에게 관계되어진 어떤 공동체의 운명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한 시인의 사유를 통하여 독자는 한 세계를 접하는 것이다. 한 운명을 접하기도 하고 그것이 찰나이거나 영원이거나 시인이 몽상하는 사물과 우리가 직접 대화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시인은 시인으로서 역할을 다한 것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2

 

 

우리는 누군가와 끝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침묵을 한다고 하여도 그것은 밀어를 나누기 위한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침묵은 엄밀히 말해 말소리를 내지 않고 하는 끝없는 대화일 것이다. 서방의 성인성녀들이 남기고간 영적 일기나 서적들을 보면 신과 밀어를 나누기 위해 그 자신이 경험한 것을 기록으로 남겨주고 있고, 많은 이들이 그렇게 밀어를 나누는 데로 초대하고 있다. 관상(觀想)이라는 것은 신과의 밀어를 나누는 것이다. 그 밀어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그들은 신의 은총이라 여기며 기꺼이 거기에 응한다. 때로는 신의 말을 듣기 위하여 자기를 완전히 포기도 하면서 그 밀담에 집중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상대방의 말을 들으려 한다면 자신의 귀를 열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귀를 연다는 의미는 그 대상인 신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어야 하고 그 이유로 자신을 포기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시환이 그의 제3시집에서 보여주는 자세는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방법만이 대상이 전해주는 모든 것을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알아듣기 위해 자신의 생각이나 말하고자 하는 욕구를 꺾고 그의 말을 들어주는 상담사는 남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다 들어 주기 위해 있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시환의 시가 상담사의 그것과 다른 점은 이시환의 시에서는 서로 끊임없이 밀담을 나눈다는 점이다. 이시환이 대상을 향해 끊임없는 독백만을 하지 않고 대상에다 자신을 투신하려는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독자들도 함께 밀담에로 초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바람이 밀담으로 이끄는 동인(動因)이 되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바람은 무엇인가? 현상학적 의미로 바람은 모든 힘의 근원이며 우주가 공기, 물, 불, 바람으로 이루어져 있는 까닭이다. 이시환에게 바람은 시심을 일으키는 지속적인 힘이며 사물을 몽상하여 지속적인 대화를 할 수 있게 하는 근원이다. 그러므로 그는 바람을 ‘머물러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다음은 「바람의 序說」전문이다.

 

바람이 분다

부는 것이 아니라

머물러 있는 것이다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훨훨 타는 것이다

훨훨 타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것이다

갯벌의 진흙 내 혈관 속을

돌멩이마다 내린 뿌리 네 몸

속속들이 흐르고 흘러

시방 억새꽃을 흔들고

내 가슴 네 가슴을 흔들어대며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렇게 부는 것이다

눈이 부시게.

 

바람은 원래 무형, 무색, 무취한 것으로 우리가 눈으로 잎사귀나 사물들이 흔들리는 것을 보거나 심하게 불 때 나는 소리로써 감지한다. 바람은 불어왔다가 지나가 버리면서 일회성으로 다가오지만 이 바람으로 하여 강할 때는 심해의 바다를 뒤집거나 하여 생태계를 재정비하기도 하며 때로는 파괴하기도 한다. 그 강도에 따라 하는 일이 다양한 바람은 분명히 모든 힘의 근원이다. 그런데 시인은 그 바람을 부는 것이 아니라 머물러 있다고 한다. 이 시를 감상해보면 시인은 문득 어느 날 자연적으로 부는 바람을 접하여 바람이 분다고 한다. 그러다가 그 부는 바람을 한참을 맞고 있으면서 바람이 부는 것이 아니라 머물러 있는 것처럼 느낀다. 그리고 그 머물러서 계속 부는 바람은 훨훨 타는 것이다. 이것은 시인 자신의 심상 세계에 불어온 바람에 대해 이야기한다. 바람이 시인의 심상세계로 먼저 들어오고 시인은 그것을 감지하고 처음에는 분다고 생각하여 한 때 지나가리라 생각하지만 그러지 않고 자신의 심상 안에 머무는 것으로 인식한다. 그런 연후에 바람은 마음에서 훨훨 타는 불이 되는 것이고 불타던 바람도 이윽고 물처럼 흘러가는 것으로 인식한다. 흐르는 바람의 줄기는 갯벌의 진흙, 혈관, 돌멩이, 네 몸이라는 사물과 인간의 몸의 내부를 속속들이 마치 물처럼 흘러들어서 적시고 억새꽃과 나의 가슴, 너의 가슴을 흔들면서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 과정은 바람과 같은 어떤 성질의 것들이 시인이 자신이 그것을 끌어들이기보다 그것들이 먼저 온 것이다. 그것들은 잠시 스쳐 지날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시인에게 오랫동안 머물면서 불이 되어 훨훨 타는 것이다. 그러더니 갯벌, 진흙, 돌멩이와도 같이 부드럽고 미끄러운 것에서 딱딱하고 까칠까칠한 돌까지 침투하여 흐르고 갯벌의 억새꽃을 흔들고 각각의 방을 이루고 있는 너의 가슴과 나의 가슴을 흔들어대며 머물러 있고, 그 자태가 눈부시다는 의미로까지 지각되었다. ‘분다 → 머문다 → 탄다 → 흐르다 → 흔든다’라는 동사들을 나열하여 바람의 동태적 이미지를 구가하고 있고, ‘분다’와 ‘흔든다’가 어떤 매개물을 통하여 감지되는 것이라면 ‘머문다’ ‘탄다’ ‘흐르다’는 매개물을 통하지 않는 내밀한 바람의 작용이며, 시인이 은밀하게 바람과 대화하고 바람과 한 몸이 될 때 작용되는 현상들에서 추출된 동사들이라고 하겠다. 이 동사들의 변이에서 얻어지는 것은 바람이 물기를 품지 않은 ‘메마름’에서 머물러 불을 일으켜 훨훨 태우고 흐른다는 의미는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의 어떤 일치에도 비유되어 ‘내 가슴’과 ‘네 가슴’을 흔들어대며 머물러 있는 것이다. 시인이 바람을 통해 얻은 것은 ‘흐름’이라는 유동적인 이미지로 물이나 액체, 땀방울, 비, 파도, 가랑비, 봄비, 바다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와 같이 시인은 자신을 둘러싼 삼라만상을 마치 은밀한 만남의 대상으로 여기며 ‘당신’ ‘그대’ ‘너’로 부르고 있다. 작품 「그리움」에서는 너와 나의 관계를 ‘산’과 ‘언덕 너머 바다’를 통하여 나타내고 있다.

 

멀찌감치 서서 바라보는

언덕 너머

바다가 좋다

 

한 발짝 다가서면

한 발짝 물러서는

 

그렇듯 하루가 멀다고

밤마다 가슴 속 속속들이 파고드는

불면의 그 뿌리 사이로

조용한 혁명이 꿈을 꾸고

 

차라리

멀찌감치 서서 바라보는

산 너머 있는 그대로

네가 좋아

 

한 발짝 물러서면

한 발짝 다가서는

 

 

너와 나의 관계는 한 발짝 다가서면 한 발짝 물러서고 한 발짝 물러서면 한 발짝 다가서는 관계이기 때문에 그냥 멀찌감치 바라보거나 있는 그대로의 ‘너’가 좋다고 토로한다. 있는 그대로의 너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은 나의 비움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하겠다. 바로 거리 두기는 나의 비움에서 출발하며 이시환의 시가 일인칭 화자 ‘나’ 드러내기보다 ‘너’라는 대상에 더 비중이 두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이 ‘너’에 대한 집중과 드러냄은 ‘나’를 버림으로써 가능해지는 시법이라 하겠다. 그의 시가 1인칭 화자의 넋두리에 빠지지 않는 것은 바로 이 점에 있다. 「봄비」에서는 너에 대한 그리움을 건조주의보 후의 봄비로 표현하고 있다.

 

발뒷꿈치 살짝 들고

숨소리마저 즈려 밟고 오는구나

나는 시방 건조주의보

 

속 타는

눈물이 되어 흐르는 그리움 그리움은

 

마른 잎 하나에

목을 놓아 더욱 빛나는.

 

속이 타는 그리움을 건조주의보라 하여 그 때 내리는 봄비로 그리움의 목마름이 해갈이 되어 눈물이 흐르는 것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백목련 2」에는 ‘낮게 낮게 깔리는 내음/줄기를 타고 거슬러 올라가면/그대가 벗어놓은/그 빈 자리/내 서슴없이 빠져 죽을/하늘이 거기’라 하여 백목련을 ‘그대’라고 부르면서 나의 투신을 노래하고 있다. 또「죽음」에서는 ‘내 처음/이 세상을 나온/길을 따라/되돌아가는/삶//차례를 좇아/몸을 벗는다/저 무서운 파아란 하늘에/알몸으로 가/맞닿고 싶어’라고 하여 하늘과 죽음을 동일시하면서 몸을 벗고 알몸으로 자신을 던져 넣고 싶은 욕구를 드러내고 있다. 몸을 벗는다는 의미는 육탈을 의미하고 있고 3연의 알몸으로 가서 맞닿고 싶은 욕망은 파아란 하늘과 흰 몸둥아리의 색채대비를 통하여 허위와 가식 없이 처음 세상 나온 그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시인의 소원을 담은 것이라 하겠다. 시인의 이러한 긍정적 주체 파괴 욕망은 「항아리」에서 무너져 질퍽한 ‘흙’이 되고 싶고, 깨어져 질주하는 ‘바람’이 되고 싶고, 세계를 묶어두는 하나의 ‘뜨거운 몸짓’이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완전한 자기 열기/긍정적 자기 파괴는 「월척」에서 ‘마음 門을 열어놓자/안겨드는 바람덜미/아자차, 휘어당기면/퍼덕퍼덕 초승달’이라고 하여 마음의 문을 열어둠에서 시작하여 대상을 낚아 올린다는 의미의 시로 형상화 되고 있다고 하겠다. 이어 장강조의 시라 명명한 장시 「바람꽃」에는 그런 너와 나의 관계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홀로 존재하여/홀로 설 수는 있어도/온전할 수는 없어/다른 하나를 꼭 필요로 하는,/그리하여 서로가 서로를/ 받치어 주고 받들어 주는/너와 나의 관계는/ 물이지만 불같고/불이지만 물 같은/하늘과 땅과 같은 자리요,/안과 밖과 같은 바탕이요,/빛과 어둠 같으니라.//이 땅 위 하늘 아래/두 빛깔 두 존재의 어우러짐은/안과 밖이 소통(疏通)하고/음과 양이 교섭(交涉)하여/크고 작은 만물이 생기는 것과 같은/이치이자 원리여서/존재하는 모든 것은/신묘한 아름다움 그 자체니라./

 

꾸밈없고 가식 없는/너와 나의 어우러짐은/우둑 솟은 산과/길게 흐르는 강물 사이 같은 것/너를 위하여/나를 위하여/우리 서로 존재할 때에/비로소 하나가 되어/바로 설 수 있는/아름다움이 될지니/그것이 곧 하늘의 기운을 받는 땅이요,/땅의 기운을 머금는 하늘로/물 가운데 불이요,/불 가운데 물이니라./

 

시적 비유나 이미지를 동원하지 않고 오히려 삶의 지혜를 일깨워주는 지혜문학적 요소를 띠는 이 시는 너와 나의 관계가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움으로 머물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깨우쳐주는 명상적인 시라고 할 수 있다. 너와 나의 관계는 우주의 이법에 따라 이원의 세계가 일원의 세계로 귀일되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너와 나는 독립적이면서도 홀로는 불완전하기에 다른 하나를 필요로 하는 존재이다. 그것이 하늘과 땅, 물과 불의 바탕이며 빛과 어둠의 이치라고 말한다. 이 둘이 조화지경에 이르려면 ‘사람의 마음’이 ‘몸에 끌려가는 것’이어서는 안 되며 몸을 이끌어 가는 임자노릇을 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큰 그릇으로 비워두어야 하며, 이는 ‘맞은 편 이의 자리에서/자신을 들여다보는 법에 대한 터득이요/나를 통해서 너의 바탈을 꿰뚫어 보는 눈 뜸’이다. 이시환은 이 ‘자신을 들여다보는 법’에 대해 「어찌하오리까」에서 더 강한 어조로 말한다.

 

그리하여 나를 죽이는 일부터/철저하게 나를 죽이는 일부터/결행하고 감행해야 할지니/이것만이 당신의 품안에서/우리 스스로가 살아남을 수 있는/한 가닥 희망이요, 빛이요, 전부임을,/아니, 인간의 승리가 곧 파멸임을/깨달을지어다./깨달을지어다./

 

그리고 「나의 기도」에서 시인은 절대자 하느님 앞에 ‘오늘 하루 내가/숨을 쉬며 산다는 것은/다른 살아 있는 것들의 목을 조르는 일이고/크고 작은 것들의/보이지 않는 관계를 짓밟고 잘라내어/이 땅 위로/버릴 것을 만들어 내는 일입니다’라고 완전히 가식이나 허울을 벗고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삶이 하잘 것 없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하늘과 땅 사이/조금도 구김살 없이 감도는 기운,/당신은 필연이 아니신가요/조금도 빈틈이 있을 수 없는.’이라고 하여 이시환의 당신은 하늘과 땅 사이에 죽어있는 것과 살아있는 온갖 것들을 다 빚어 놓으신 우주만물의 하느님으로 귀결되고 있다. 그 하느님은 바로 「파도에 부쳐」에서는 파도, 「바다」에서 바다로, 「내장산행」에서 ‘텅 빈 네 눈과 마주친 순간/내 가슴은 콱 숨이 막히고 흘려버린 듯’한 산야와 한 송이 풀꽃의 무념무상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서 만나 밀담을 나누는 영원한 이시환의 ‘임’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시환의 제2시집은 절대자이며 우주 만물을 지은 하느님, 그 하느님의 법신현현인 우주만물과 모든 힘의 근원인 바람을 통해 나누는 밀어이며, 그것도 농밀한 밀담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이시환이 나를 버리고 너와 그대, 당신, 하느님과 하나 되고자 하기에 자기를 버린 그 자리에 우리가 발을 들여놓을 수 있도록 심상(心象)의 문을 활짝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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