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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作初心 - 타령조詩를 알아보기
2016년 03월 12일 03시 49분  조회:3752  추천:0  작성자: 죽림

슬픔을 기쁨으로 전이시키는 미학-이시환의 ‘타령조’시

-제 2시집 『白雲臺에 올라서서』에 부쳐-

 

 

 

심종숙(시인/문학평론가)

 

 

 

1

 

살다가 상처로 인한 슬픔과 서러움이 많이 쌓이면 여러 가지로 심적인 병이 든다. 특히 우리 한국사회는 인내의 미덕을 중시하다 보니 많은 부분 참는 것을 권유 받거나 강요되는 사회라 할 수 있겠다. 심인성 울화병은 많이 참고 지낸 결과 생기는 마음의 반란일 것이며 그것이 주로 중년의 여성들에게 많이 일어나는 증상인 걸 보면 가족을 위해 자신을 버리고 살았던 여성들의 아픔일 것이다. 이것은 가족주의 제도 아래서 겪어야 하는 여성들의 입장에만 그치지 않는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많은 외세의 침략에 시달려야 했고 조선 말기에는 탐관오리들의 학정으로 백성들이 고통을 겪었고 제국주의 시대에는 일본에 강점되어 36년간 피식민 백성의 고통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와 같은 어려운 시기를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은 역경을 넘어 순경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살아가기 위한 방편을 강구했다. 민간에서는 민요, 판소리, 가면극, 마당놀이, 사물놀이, 농악, 굿 등을 통해 이런 감정들을 풀어내었고 여기에는 타령조의 노래가 가미되었다.

이시환의 제 2시집 『白雲臺에 올라서서』에는 우리 민족의 아픔을 타령조라는 전통의 민요곡조에 실어 노래하였다. 이는 그의 제 1시집 『안암동 日記』에서 보여준 세계와는 차별화된 형식과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암동 日記』가 시인이 세계와 자신이 길항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산문시 형식으로 다채로운 비유와 이미지를 통해 드러내었다면 『白雲臺에 올라서서』는 우리 민중의 수난과 그 아픔을 타령조라는 형식을 빌어 노래함으로써 읽는 시이기보다 노래로 부르는 시의 형식으로 변모를 꾀했다. 그러므로 다양한 시적 기교들과 산문풍의 문장이 재단되고 있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가 노래가 되기 위해서 거치는 과정으로 생각된다.

이 시집은 시인 자신의 자서인 머리말, 차례, 시인의 모습, 시인 자신의 후기로 구성되어 있고 시의 본문 부분에 해당하는 차례에서는 ‘1984년부터 1989년 사이에 창작된 시들 가운데에 일부’라고 밝힌 30편의 시가 실려 있다. 그 체재를 보면 머리글 다음에 ‘打令을 아시나요’라고 하여 타령조의 시가 나오게 된 배경과 타령이 무엇인지에 관하여 시인이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쓴 자서가 있다. 그 다음에 30편의 시편들이 ‘첫째마당’(9편), ‘둘째마당’(5편), ‘세째마당’(9편)이라는 마당놀이의 형식에 따른 구성 하에 수록되어 있다. 이 구성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의 시들은 마당놀이에서 불리워질 수 있는 타령조 시인 것이다. ‘첫째마당’의 특징은 주로 전통 악기인 아쟁, 꽹과리, 징, 북을 시제임과 동시에 소재로 하여 타악기, 즉 두드리는 기능을 가진 그 특성으로 창작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노래의 내용으로 엮은 시들과, 어깨춤, 탈춤, 살풀이춤, 풀이와 같이 동작, 행동을 통해 풀어내는 갖가지 춤의 동작적 특성으로 그 시적 내용을 구성하였다. ‘둘째마당’은 손돌바람과 아버지의 일기를 뺀 잡풀 1, 잡풀 2, 잡풀 3은 연작시적 구성을 가지고 있고 이 5편의 시편들이 모두 시름에 겨운 삶을 살아온 사람들에 관한 시이다. 마지막으로 셋째마당도 호미와 낫과 같은 농기구의 특징을 노래하면서 이것을 쓰고 사는 농부들이나 달동네와 같은 가난하고 수탈의 대상이 된 민초들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므로 ‘슬픔’의 미학은 이시환의 시의 기저를 이루는 중핵적인 정서임은 제1시집에서와 같이 제 2시집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하겠다.

 

 

2

 

이시환은 시집의 머리말에서 타령조의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들 작품은 눈으로 읽는 것보다는 소리 내어 읽는 쪽이 효과가 있는, 그것도 간간이 무릎을 치거나 북을 치면서 읽어야 제 맛이 나는 시들이다. 이름하여 打令調라.(머리말)

 

시인이 말한 대로 이 시는 눈으로 읽는 시가 아니라 소리를 내어서 심지어 전통의 타악기를 두드리면서 읽어야 제 맛이 나는 시라는 의미이다. 이 타령조는 원래 민간에서 주로 서민들이 많이 부르던 노래로 금강산 타령, 도라지 타령, 신고산타령, 는실타령 등의 굿거리, 자진모리 장단이나 3박자, 중모리12박자 민요풍 등의 노랫가락에다 북이나 장구를 치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이들 노래는 주로 3‧4조, 한 구절이 4‧6‧6‧3‧3‧3조 등의 4‧4조와 4․6, 3‧3, 4‧3, 3‧5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북이나 장구와 같은 타악기에 맞추어 부르면 흥이 고조되는 노래들이다. 다음으로 타령에 대한 시인의 자서에서 그 의미를 알아보자.

 

우리 민간음악에서 聲樂으로 분류되는 唱劇調나 雜歌 등에서는 ‘打令’이라는 곡조가 근간을 이루고 있는 사실이 전제한 나의 판단을 간접적이지만 입증해 주리라 믿는다. 이 타령이라는 것은 이론적으로야 채 12에 북 8번을 치는 조금 느린 4박자이지만 조금 빠른 ‘중중몰이’ 등과 어울려 ‘두들긴다’는 단순성 이상의 비밀스런 힘을 느끼게 한다. 곧, 슬픈 사연을 얘기하고 슬픈 감정으로 노래하는 데에도 이 타령은 그 슬픔을 슬픔으로 머물게 하지 않고 오히려 샘솟는 힘을 느끼게 하니 이것이 바로 타령의 생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하면 타령은 침몰하는 기운을 일으켜 세우는 상승하는 힘이요, 슬픔을 기쁨으로 전이시키는 흥이다.

 

이시환은 왜 이 타령조라는 전통의 형식을 현대시에 접목하려고 했는가? 그것은 그가 시 창작 이유를 밝힌 ‘30편의 시는 나의 개인사적인 슬픔의 무게와 우리 역사 속에서의 한민족이라는 존재의 빛깔을 한 몸으로 하여 담아보려’ 했기 때문이다. 즉 시인의 개인사적 슬픔과 운명공동체인 한민족의 슬픔을 일체화(한 몸)하려 했기 때문이다. 시인 자신이 쓴 ‘打令을 아시나요’에는 서브타이틀로써 ‘-침몰하는 기운을 일으켜 세우는 힘이요, 슬픔을 기쁨으로 전이시키는 흥이다’-라고 붙여둔 걸로 보아 이 타령이 슬픔에서 기쁨으로 전이시키는 힘을 가졌기에 현대시에 전통의 형식을 접목시켰던 것이다. 이 슬픔을 기쁨으로 전이시키는 우리 민족의 심성에 대해 이시환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어쩌면, 기쁨보다는 슬픔을 몸에 오래 담아두고 살아온 우리에겐 무언가 두들기고 쳐대는 몸짓과 동작 속에서 나오는 흥을 통해 그 슬픔을 삭이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분명 우리의 ‘슬픔’을 풀어내는, 극복하는 일종의 적극적인 행동양식이지만 비폭력적이어서 더욱 아름답고 큰 의미가 있지 않는가. 이 모든 것이 대립과 갈등보다는 화해와 조화를 추구하는 우리의 타고난 심성 탓일 게다.

 

슬픔의 정서를 관리하며 살아가는 이 땅의 민초들에게 타령을 통하여 슬픔을 풀어내는 것은 역경을 극복하려는 의지이며 대립과 갈등에서 화해와 조화를 추구하는 민족성에 기인한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해석은 시인이 자신의 삶의 기록인 시편들에서 슬픔이 시의 중핵을 이루지만 희망을 예시하기 때문이다. 슬픔이 슬픔으로만 고착되면 희망이 사라지고 병이 든다. 그러나 그의 시는 타령을 통하여 슬픔을 풀어냄으로써 희망의 기쁨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더불어 눕고/더불어 일어서는/우리들의 어제와 오늘 속속/그 어느 곳이 얕고/어디쯤이 병 깊은 곳인지/짚어내기 어려운/반도땅 손금/드러누운 골골이/어찌하여 안개만 안개만/이 놈의 죄 없는 눈과 귀를/비비고 쑤셔보아도/침침한 바깥 시상은 여전해/그렁저렁 일고 잦는 바람에/시방 몸을 던지는/왼 들엔 풀뿌리/어깨를 풀지 아니허고/잠기어 가는 건 목,/목마른 이들의 몸부림뿐/아쟁 아쟁 아쟁의 걸음마/절며 오르고 올라// 못내 속구치다가/거꾸로 떨어지는 가락은/더불어 눕고/더불어 일어서는 땅/가는 허리 쥐어짜기 (「아쟁」p.16-17)

 

이 시를 읽으면 우리의 귓가에는 시인이 어느 새 아쟁 연주가가 되어 지나온 시간들에서 쌓인 병 깊은 곳을 활을 켜면서 더듬어 찾기도 하고 그 활이 병 깊은 곳에 이르면 때로는 부드럽게도 때로는 강하게도 강약의 풀무질을 통하여 불을 일으키듯이 아픈 곳을 치유한다. 아쟁 아쟁 아쟁의 느린 걸음마로 오르고 올라가는 동안의 삶의 고단함과 상처를 노래하여 그것이 정점에 이르러서는 거꾸로 떨어지는 가락에서 더불어 눕고 더불어 얼어서는 이 땅의 민초들을 위무한다. 이는 민초들의 기억 속에, 시인 개인의 기억 속에 뿌리 박혀 있는 깊은 슬픔의 뿌리가 결국 별개의 것이 아니라 동일한 뿌리를 가진 슬픔이라는 공동체적 의식에서 발로 되었고 시인은 이 개별자로서의 자신과 타자를 하나로 보며 치유자로 나서는 것이다. 그의 시가 지닌 이 위무와 보살핌의 미학의 바탕에는 그 깊은 슬픔 뒤에 희망이 오리라는 신념이 굳게 자리 잡고 있으므로 여유롭게 슬픔을 바라보는 힘이 생긴다. 그가 시를 쓴다는 것도 부정적인 요소들과 대립보다는 여유를 가지고 마주보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에 대한 굳은 신념은 슬픔의 부정적 정서를 걷어낼 수 있는 강력한 동인이다. 그는 시를 쓰면서 슬픔을 노래하지만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희망을 노래하고 상처와 아픔으로 폐쇄되어 있는 이들을 깨우고 마음의 어두운 방을 나와 빛으로 나오길 원한다. 그가 그들을 위무하기 위해 아쟁, 꽹과리, 징, 북 등의 타악기를 동원하여 그들을 심장을 두드려대는 것이다. 그래서 「꽹과리」에서는 ‘있는 두 눈 바로 뜨고/있는 두 귀 열어놓아/살자허니 살자허니/미어지는 이 가슴 폭폭해/(중략)자지러지게 조지러지게/두들겨야 맛이 난다’라고 말하면서 꽹과리 소리가 가진 특성을 잘 표현한 ‘앞서거니 뒤서거니 몸을 사뤄/간간히 뿌리는 소금/목구멍 속속들이/적실 곳을 적시고’라고 하여 다투듯이 들여오는 꾕과리 소리에 긴장을 하면서도 그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메마른 목구멍을 촉촉이 젖게 함으로써 목마른 자에게 생수를 주고 있다고 하겠다. 「징」에서는 이 때리고 두드리고 치는 행위의 끝에서 얻어지는 빛과 말씀으로 병든 상처와 슬픔을 딛고 일어서게 하는 신비로운 도구인 징을 노래하고 있다.

 

내리치면 칠수록 징징/굽는 허리 한 평생/잘려나간 귀 밑/스치는 바람으로 살면서/마디마디 사이사이 속속/깊고 얕은 어둠 흔들어/잠든 풀뿌릴 깨우고/다시 고쳐지면 칠수록/속으로 곪는 응어리랴/빛으로 터지면서/말씀으로 일어서는 아침/신 내리는 놋쇠 항아리/숨 고르고 채 놓으면/궁상각치우 5음계로/날아오르는 새떼/서쪽 하늘 무지개로 걸리고 (「징」p.20-21)

 

치면 칠수록 한 평생의 고단한 삶에서 마디마디 속에 내재해 있는 어둠과 곪아 있는 응어리를 빛으로 터지고 말씀으로 일어나게 하는 신묘한 ‘놋쇠 항아리’에 비유한 이 징은 거룩하고 경외스러움마저 자아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생활이 결코 아름답지 못하더라도 인간에게 징과 같은 신을 감지하게 하는 악기를 통하여 슬픔으로 어두워진 안의 세계에 한 줄기 빛이 들어와 신의 말씀으로 우리 존재 자체가 신을 닮은 거룩함을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원래 인간은 신을 닮은 존귀한 존재이기에 거기에 맞갖은 삶을 살아야 하지만 우리 민초들이 살아온 역사적 환경은 결코 삶을 편안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환경들 속에서 민초들은 세상을 바꾸어 보려고도 발버둥을 쳤고 그 행동으로 일어서기까지 고난이 쌓이고 쌓인 것이 「북」에서 터져 나오는 것이다. 북은 곧 이러한 슬픔의 내압을 터져 나오게 하는 악기이다. 둥둥둥 치면 칠수록 슬픔의 망울망울들이 봄꽃 망울처럼 부풀어 터져 나오는 모양은 고체의 도구가 둥근 채로 치면 소리의 청각으로 변하고 그것이 가슴 속 쌓인 슬픔의 꽃망울을 터지게 하여 시각을 사로잡는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의 변화 단계들은 이시환 시가 보여주는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때가 되면 터지리라/터지리라 때가 되면/그대 봄날 하늘의 햇빛이/열꽃으로 파고들면/가슴 속 구석진 곳마다 맺힌/꽃망울이 터지듯 터지리라/ (중략) 아픔뿌리 더욱 깊어지고/깊어져 삭을대로 삭으면/터져야 할 것이 터지듯/이 밝은 땅 하늘을 두들기며/맺힌 슬픔 웃음으로 터지리라/(「북」p.22)

 

겨우내 굶주림과 추위에 내몰리면서 살았던 이들에게 봄은 얼마나 또 눈물나는 것이랴. 그 봄 햇살이 열꽃처럼 가슴을 파고들면 맺힌 곳마다 꽃망울로 터지는 슬픔은 이제 슬픔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이시환은 ‘슬픔 웃음으로 터지리라’하고 외치는 것이다. ‘슬픔 웃음’이란 시어야말로 이시환의 시가 역설적 세계관을 드러내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렇게 주체를 슬프게 하는 원인에는 「돈」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세상에/못나빠진 사람 사람/가슴마다 눈물 뿌리 내리고/웃음씨를 말리는 돈돈/한눈 파는 너와 나/혼줄을 속속 다 빼가는/돈 돈 돈이로구나 돈돈’이라고 하여 돈의 물신주의를 들고 있다. 전통타악기를 소재로 하여 슬픔을 노래하다가 그 슬픔의 원인에 놓인 것이 돈임을 밝히고 그 돈은 다른 타악기와 달리 두드리고 치고 때릴 수 없으며 오로지 끝없이 돌고 돌면서 사람들의 가슴마다 눈물 뿌리 내리게 하고 웃음씨를 말리게 하는 것으로 쓰일 뿐임으로 대립되는 도구로 병치해 놓았다고 할 수 있겠다.

 

 

3

 

악기를 때리고 두드리고 쳐서 슬픔이 터져 나오면 우리는 가만히 있기만 하는가? 그렇지 않다.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고 어느 듯 가락을 몸에 실으면서 몸은 움직인다. 그냥 흔들다가 어깨를 궁싯거리고 팔다리를 크게 벌리거나 올리거나 하면서 춤을 추게 된다. 그의 시 「어깨춤」, 「탈춤 」「살풀이춤」「풀이」는 모두 악기들을 대동하고 나와 벌이는 한바탕 춤판의 시학인 것이다. 이 춤은 혼자만 추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춤꾼이나 살풀이를 하는 무녀가 타령조의 노래나 춤을 추기 위한 널찍한 공간이 마련되고 화톳불이 주위의 어둠을 밝히고 굿판에서는 가지가지 음식이 놓인 단에 촛불이 켜지고 마을 사람들은 그것을 구경하려고 소문을 듣고 뉘집 넓은 마당에 모인다. 형편에 따라 크게도 작게도 마련되는 춤판이나 굿판에 사람들은 일상의 단조로움과 고단함을 풀기도 하고 타인에게 말할 수 없는 가슴 속 사연을 춤꾼이나 무녀가 읊어대는 주사와 그것이 더 깊어진 노래와 그 가락에 기대에 저마다 고통과 슬픔을 위무 받으면서 함께 울고 웃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는 춤꾼과 무녀와 같이 모두들 어우러져서 춤을 추면서 판은 막을 내리는 것이 우리네 민초들의 생활 깊이 뿌리내린 우리네만의 소통과 교감을 통한 공동 위무의 장이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주체와 타자가 노래와 춤을 통하여 하나가 되는 장(場)인 것이다. 이시환의 제 2시집의 세계는 전통적인 우리의 슬픔의 정서를 노래와 춤을 통하여 열어 보인 춤판이거나 굿판이며 그는 거기에 걸맞는 체재로 시집을 구성하였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는 그의 시가 타령조의 3.4음으로 이루어져 있음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으며 슬픔의 개인적 정서를 마당놀이와 같은 광장으로 불러내어서 공간을 확장함과 동시에 공동체적 정서로 확대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맺힌 가슴 풀어내어/휘휘 둘둘 온 몸으로 감는구나/궁딱 궁딱 궁궁딱/취하지 않고는 살맛이 안나/취하지 않고는 살맛을 몰라/살아 생전 못다한 말/구석구석 풀어내어 한마당/웃음 아닌 웃음으로/모두 모두 하나 되어 우는구나.(「탈춤」p.28-29)

 

할 말이 있네/할 말이 있네/해야 할 말/못다한 말/많으면 많을수록/이렇게 저렇게 돌아앉아/옷고름 속에 묻어두고/ (중략) 옷자락을 여미듯/살며시 몸을 흔들어/두 눈을 재우듯/앉아 휘젓는 이 몸은/뒤엉킨 한 타래 실이련가/타오르는 불덩이/타고나면 타고나면/엉긴 매듭 풀리어/장단과 장단 사이로/숨찬 바람이 되어/걸어 나오는/너는 나이고/나는 너이고.(「살풀이춤」p.30-31)

 

죽어서도 그 근성 못 버리는/조병갑이 나와라/변학도도 나와라/북관선생 나와라/왜놈 뙤놈 양놈 다 나와라 이잇/네 이놈들/할 말 있으면 하라하니 허허/입은 천이어도 만이어도/가만 먹통이로구나(「풀이」p.33)

 

풀 것을 푸는 데는/이골이 다 나있는/너와 나 우리 우리/다같이 일어나 한 데 엉겨/목판 위 엿가락이 되도록/징을 치고 북을 치고/겨드랑이 사타구니/등줄기 사이사이/흥건하게 젖어/흥건하게 젖어/東과 西,/南과 北을 잇는/우리의 한강이 되고/임진강이 되고/마침내 하나가 되거라/다시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둘도 아닌 하나가.(「풀이」p.35)

 

시적 공간은 개인의 마음의 방에서 마을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행해지는 춤판, 굿판에서 우리는 개인일 때 그 웅크림과 왜소함, 폐쇄성에서 벗어난다. 가슴에 쌓아둔 못다한 말들을 말과 행동으로 쏟아내 주는 무녀와 춤꾼을 통하여 주체와 타자가 하나가 되는 것이 바로 이 공간인 것이다. 그래서 서로 하나 되어 웃고 울고 하면서 '너는 나이고/나는 너‘가 된다. 그렇게 된 우리는 짖눌림, 왜소함, 웅크림에서 벗어서 소리 맞춰 힘을 낸다. 그래서 너와 나를 반 생명으로 착취하였던 부당한 권력과 일제의 압제, 갈라진 조국의 부조리함에 대항하고 그 주모자들을 나오라고 소리치는 것이다. 그렇게 다 같이 한데 엉겨 악기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 몸에서 흐르는 땀이 흥건히 젖고 젖어 가난을 넘고 신분을 넘고(「잡풀」1,2,3) 영남과 호남을 넘고 남과 북을 넘어 한강과 임진강이 하나가 되는 미래의 이 땅을 노래함으로써 슬픔은 어느 듯 희망의 정수박이를 건져 올리는 시적 위업을 완수하고 있다. 이 위업이 가능하였던 것은 시인이 자신의 삶에 진솔하며 그것을 이 땅의 민초들의 그것과 동일시하면서 주체와 객체가 하나 되어 울리는 우리네 보편적 정서로 확장시켰기 때문에 가능했고, 거기에는 ‘바로 거기, 깊숙한 우리의 상처를 어루만져 보라’(「백운대에 올라서서」)에서처럼 위무자의 역할을 자처하면서 공감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이는 그의 이른바 ‘신시학파 선언’에서 밝힌 바대로 ‘주관적인 정서의 객관화’라는 보편적 정서에의 지향이라는 목표에 닿아 있다. 그러므로 이시환의 제2시집『白雲臺에 올라서서』는 시인이 타령조의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무녀와 춤꾼으로 분하여 고단한 삶 속에 유기되거나 방치된 이들을 독방에서 나오게 하여 울고 웃으며 서로를 위무하는 장으로 이끌어 준다. 그의 소리와 춤이 아파트 문화로 대표되는 21세기 현대 한국사회의 저 돈으로 쌓아올린 강고하고 획일화되어 있으며 산을 가리고 병풍처럼 둘러쳐진 채 닭장 속 닫쳐진 마음들을 찢고 한 줄기 따뜻한 햇살을 쪼이며 마를 대로 마른 목젖을 촉촉이 적시다가 온몸을 흠뻑 적셔주는 한 두레박의 시원한 생수로 흘러넘치길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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