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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作初心 - 詩로 상처를 어루만지기
2016년 03월 12일 03시 56분  조회:3936  추천:0  작성자: 죽림

이시환의 제1시집 『안암동日記』

-이미지를 통한 위무의 시학

 

 

심종숙(시인, 문학평론가)

 

 

1

 

어디를 둘러보아도 서울의 길거리에는 크고 작은 빌딩을 뒤에 세운 상가(商家)들이 즐비하게 서있고 그 상가들 앞을 언제나 사람들이 바삐 오가고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발아래 딛고 있는 땅이나 저 높은 빌딩 어디에도 자신의 소유물은 없이 살아가고 있다. 지금의 50대 중반에서 60대 초반의 베이비붐세대 사람들은 이 서울에 꿈과 일자리를 찾아 정든 고향을 등지고 객지생활, 삶의 순례 여정을 시작한 것이다. 이른바 70, 80들의 심정을 ‘여기 길 떠나는/저기 방황하는 사람아/오늘도 어제도 나는 울었네/이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잃은 것은 무엇인가’라며 소외와 상실과 이별과 방황, 그리움을 우울하게 노래로 불렀다.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은 자신과 세상의 틈바구니에서 끊임없는 줄다리기를 하면서 때로는 절망으로 울면서 그 울음의 밑바닥에서 뜨거운 눈물 속에서 희망을 한 가닥 이끌어내며 저린 가슴을 쓰다듬고 다시 일어서서 한강의 기적을 일구었던 것이다. 한강의 기적 뒤에는 한국전 이후 잿더미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일구어낸 눈물의 결실이다. 분단 70년 휴전 60년을 맞이하면서 이 한반도의 남쪽의 삶도 북녘의 삶 못지않게 팍팍하였다.

 

 

2

 

이시환의 첫시집 『안암동 日記』(초출, 1992, 잠꼬대)는 이런 세대들의 정서와 삶을 잘 대변해주고 그런 의미에서 어느덧 노년기로 접어드는 인생의 길목에서 젊은 시절 그들의 인간 소외와 노년기로 접어든 그들에게 상실의 허무감을 쓸어주는 시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이 시집이 이 세대들만이 아니라 지금-여기의 우리들 80년대를 살아온 세대들에게나 소통이 부재하고 성과나 스펙 위주의 노동시장에서 청년 실업으로 희망이 요원한 이들의 상처감을 위무해 주리라 믿는다. 시인은 스스로 이런 사람들에게 위무자의 역할을 하는 데에 불림을 받은 존재임을 시「함박눈」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듯하고 거기에 충실한 종으로서 존재하길 원한다.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당신에게로 곧장 달려 갈 수 있다는 그것과 당신을 위해서라면 당신의 이마에, 손등에, 목덜미 어디에서든 입술을 부비고 가녀린 몸짓으로 나부끼다가 한 방울의 물이라도 구름이라도 될 수 있다는 그것뿐이옵니다. (중략) 당신의 가슴에 잠시 머물 수 있다는 그것과 당신을 위해서라면 충실한 從의 몸으로 서슴없이 달려가 젖은 땅, 얼어붙은 이 땅 어디에서든 쾌히 엎드릴 수 있다는 그것뿐이옵니다. 나는 언제나 그런 나에 불과합니다. 나는 나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함박눈」 p.46)

 

시인 자신이 ‘27편의 산문시는 세상 사람들을 향해 내놓은 나의 공개적인 첫 시집’이라고 밝히고 있듯이, 이시환의 시집 『안암동日記』에는 자서인 머리글(2페이지), 차례, 27편의 산문시, 후기에 해당하는 ‘덧붙임-나의 허튼 소리-(10페이지), 시인의 모습(사진), 나의 散文詩集 「안암동 日記」에 부치는 詩作노트(2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산문시 중에 대개는 평서체의 문말 표현을 택하였으나 「살 속에 모래알 하나」, 「함박눈」이 두 편은 ‘-ㅂ니다.’의 경어체를 선택하고 있어서 의도적으로 변별성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두 편의 시에서 전해져오는 것은 시인 이시환이 자신과 세상, 자신과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때로는 대결도 하고 다쳐서 절망의 밑바닥을 가면서까지도 그것들을 지속적으로 밀어내기보다는 유연하게 삭이는 과정을 살아오면서 자신을 다듬어온 내면의 겸허한 낮은 고백을 통하여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더 감동으로 다가오고 있다. 불완전함을 완전함으로 바꾸고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고 절망을 희망으로, 이원의 세계를 일원의 조화지경으로 바꾸는 역설의 힘은 그것을 품어서 곰삭일 때만이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미 이 시에서 그것을 체관하고 있기에 스스로 충실한 종의 몸으로 젖은 땅, 얼어붙은 땅 그 어디에도 서슴없이 달려가서 쾌히 엎드리겠으며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임을, 그것이 전부임을 고백하고 있다.

이 시가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자연 현상인 함박눈과 나를 동일시하여 시인은 그 함박눈처럼 온 세상에 낮게 나리어 ‘당신’의 이마와 손등, 목덜미와 입술을 부비고 가녀린 몸짓으로 나부끼다가 한 방울의 물이나 구름으로 변형되는 그것으로 족하다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는 함박눈인 내가 당신으로 부르는 애인을 연상시킬 수 있으나 시의 말미 부분에 그 당신은 젖은 땅, 얼어붙은 땅에도 존재하는 당신이기에 존재의 영역이 확장되어 가고 있어서 당신이 함의하는 바는 넓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함박눈이 내리는 자연 만상들과 사랑하는 여인, 그 이외에 사랑하는 대상, 절대자, 무(無), 신(神), 이시환이 기꺼이 충실한 종으로서 낮게 엎드릴 수 있는 모든 대상임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에 이 시는 그 울림이 크다고 하겠다. 이와 같이 시인은 시인으로서 부도 명예도 권력도 없이 그저 겨울에 내리는 풍성하고 메마른 영혼들에게 기쁨의 감동을 안겨주는 함박눈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기에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다. 시인으로서 독자들에게 안겨줄 수 있는 최대의 것이 바로 이 함박눈과 같은 것이기에 그는 이 역할을 자처하고 충실한 종이 되고 그럴 때 바로 시인인 ‘나’의 정체성이 자리매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할은 ‘함박눈’이나 「바람素描」의 ‘바람’이나 「살 속에 모래알 하나」의 ‘살’, 「북」의 북 이미지를 통하여 표현하고 있다고 하겠다. 다음으로 「바람素描」의 전문을 보자.

 

문득, 찬바람이 분다. 내 살 속 깊은 곳 어둠의 씨앗을 흔들어 깨우며 바람이 불어 일렁일 때마다 기지개를 켜는 혈관 속 어둠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따라 나는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 떠돌다 지쳐 빈 손으로 돌아올지라도 나는 시방 떠나야 한다. 나의 귀여운 어둠이 곤히 잠들 때까지는 그렇게 어디론가 쏘다녀야만 한다. 그것이 나의 잠꼬대 같은 오늘의 전부일지라도, 차츰 이목구비를 갖추어가고 더러는 짓궂게 꿈틀대기도 하면서 자라나는 내 자궁 속 또 하나의 어둠을 쓰다듬으면서 나는 바람이 되어 돌아와야 한다. 내 살 속 깊은 곳 어디 또 다른 나를 흔들어 깨우며.(「바람素描」, p.47)

 

삶에서 마주치는 어둠에 대해 이시환은 ‘귀여운 어둠’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어둠에 대해 친구처럼 연인처럼 부를 수 있는 것은 이시환 시인이 지닌 유연함의 시학에서 나오는 표현일 것이다. 누가 어둠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한 시인이 있었던가. 그러나 이시환은 이렇게 부르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어둠이 이미 어둠으로 존재하지 않기에 가능한 명명법일 것이다. 어둠과 고통이 이미 시인에게 단순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계륵(鷄肋) 같은 존재를 넘어 특유의 유연함과 여유의 시학, 삶을 짓궂게 하는 요소마저도 품어서 삭혀보려고 하는 그의 포용의식과 인내심이 일구어낼 승리가 아닐 수 없다.

‘나의 귀여운 어둠이 곤히 잠들 때까지는’ 시인은 바람이 되어 쏘다니며 다시 바람으로 돌아오길 원한다. 설사 그에게 어둠에 대한 흔들림이 있을지라도 그에게 비틀거림은 없다. 그는 다만 그 귀여운 어둠이 곤히 잠들 때까지 쏘다니고 바람이 되어 살 속 깊이 존재하는 ‘쏘다니고 바람이 되어 다시 돌아오는 나’가 아닌 다른 나를 깨우러 오는 것이다. ‘나’는 오로지 하나의 존재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의 나 안에 나의 복수들이 있다. 이 복수들의 ‘나’를 통하여 하나의 ‘나’로 다시 귀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며 여기에서 그는 나의 역설을 보여주는 것이다. 시인은 여성화자 ‘나’의 이미지 연결고리를 통하여 자궁 속에서 자라나는 어둠을 쓰다듬는다는 표현을 함으로써 어둠을 방조하지 않고 어둠의 성장을 바람이 되어 돌아와 재회하길 원한다. 왜냐하면 자궁 안에서 자라는 어둠은 ‘또 다른 나’의 분신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어둠과 나는 하나가 된다. 어둠과 내가 대상화가 될 때, 즉 어둠이 타자로만 존재할 때 나는 결코 그 불협화음을 견딜 수 없고, 그 불협화음을 넘어 끊임없이 안아 들일 때 어둠은 친구가 되어주고 어둠이 아닌 또 다른 나로 성장함으로써 승화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어둠을 이미지화한 「살 속에 모래알 하나」에는 살 속에 박힌 모래알과의 불협화음을 ‘차라리 온몸, 온몸으로 껴안아 사랑이란 것을 해야’ 견딜 수 있는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나는 둘째 셋째 손가락 사이 살 속에 박힌 모래알 하나를 흔들어 흔들어도 보았지만 그는 좀처럼 깨어나질 않았습니다. 흐르는 피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거친 모래알 주위를 맴돌면서 차디찬 그의 몸을 적시면서 뜨거운 체온을 나누어 가졌지만, 그의 몸을 일으켜 세워도 보았지만 이미 돌아앉아 있는 그는 살아나 살이 되질 아니 하였습니다. (중략) 우리는 그렇게 뜬 눈으로 날을 새곤 했지만 부위 살은 점점 퇴색해 갔으며 피는 지쳐 살밑으로 시퍼렇게 죽어 고였습니다. 끝내 살 속 모래알은 모래알로 남았지만 이 몸은 썩어가면서도 그들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온몸, 온몸으로 껴안아 사랑이란 것을 해야 했습니다. 애당초 살이 될 수 없었던 모래알이었지만 그렇게라도 얼싸안아 품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살 속에 모래알 하나」p.38-39)

 

시인에게 손가락 사이 살 속에 박힌 모래알은 삶 속에서 조우하는 고난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원망하거나 미워하며 부정적 감정을 키우기보다 인내와 사랑으로써 오히려 온몸을 던져 껴안음으로써 그 고난의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 시집의 제목인 「안암동日記」에는 ‘눈부신 유리와 빌딩과 자동차, 아스팔트로 城을 쌓고 있는 이 밀림 속’으로 상징되는 대도시 서울에서 ‘우리 세 식구가 누우면 꽉 차는 방’에 세 들어 살면서도 ‘우리 세 식구의 별이요 꿈’인 방벽 속에 박힌 채 ‘깨어있는 깨알만한 사금조각 하나’는 손가락 살 속에 박힌 모래알의 반대급부에 있는 어떤 것이다.

시「刻印」에서는 ‘나와 눈을 마주치는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나를 향해 독이 묻은 화살을 겨누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목도하면서 그럴 때 시인은 ‘안암동으로 마포로 옮겨 다니며 대낮에도 문을 잠그고 꼭꼭 숨어 살아야만 했다’고 어둠의 원인이 된 폐쇄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러한 어둠 이미지들의 연결고리로써 시「강물」에 더 구체화되어 있다.

 

이제야 겨우 보일 것만 같다.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한 나의 눈이 정말로 뜨이는 것일까. 그리하여 볼 것을 바로 보고 안개숲 속으로 흘러 들어간, 움푹움푹 패인 우리 주름살의 깊이를 짚어낼 수 있을까. 달아오르는 나의 밑바닥이 보이고 굳게 입을 다문 사람 사람들의 가슴에서 가슴으로 흐르는 강물의 꼬리가 보이고, 을지로에서 인현동과 충무로를 잇는 골목골목마다 넘실대는 저 뜨거운 몸짓들이 보일까. (중략) 그런 우리들만의 출렁거리는 하루하루 그 모서리가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칼날에 이리저리 잘려나갈 때 안으로 말아 올리는 한 마디 간절한 기도가 보일까. 언젠가 굼실굼실 다시 일어나 아우성이 되는 그 날의 새벽놀이 겨우내 얼어붙었던 가슴마다 봇물이 될까. 그저 맨몸으로 굽이쳐 흐르는 우리들만의 눈물 없는 뿌리가 보일까. (「강물」p.8-9)

 

어둠 이미지들은 주름살의 깊이, 밑바닥, 무거운 칼날, 눈물 없는 뿌리로 표현되고 있으며 이것들이 강물의 물 이미지로 형상화되어 유동적이며 유연한 이시환의 시학을 보여주고 있다. 시인 자신의 밑바닥과 입을 굳게 다물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가슴 가슴들에서 한없이 흐르는 어둠의 강물은 흘러가고 시인은 그것을 보는 내면의 눈이 열리며 그 깊이를 가늠하고 그들의 절망과 간절한 기도를, 다시 일어나 외치는 아우성을 보는 것이다. 시「서울의 예수」 전문을 보자.

 

십자가를 메고 비틀비틀 골고타 언덕길을 오르는 예수 그리스도는 끝내 못 박혀 죽고 거짓말 같이 사흘만에 깨어나 하늘나라로 가셨다지만 도둑처럼 오신 서울예수는 물고문 전기고문에 만신창이가 되고 쇠파이프에 두개골을 얻어맞아 죽고 죽었지만 그것도 부족하여 온몸에 불을 다 붙였지만 달포가 지나도 다시 깨어날 줄 모른다. 이젠 죽어서도 하느님 왼편에 앉지 못하는 우리의 슬픈 예수, 서울의 예수는 갈라진 이 땅에 묻혀서, 죽지도 못해 살아남은 우리들의 밑둥 밑둥을 적실꼬.(「서울의 예수」p.32)

 

이 시에서는 시대적 어둠과 고통을 성경의 인물인 예수 그리스도에 비유하여 성경에서의 실재인물 예수 그리스도와 도둑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는 시대의 불의에 맞서 정의를 외치다가 권력의 폭압에 고문당한 70년대‧80년대 투사들을 상징하고 있다. 그래서 성경적 의미를 뒤집어 ‘하느님 왼편에 앉지도 못하는 우리의 슬픈 예수’라고 하여 분단된 이 땅에 묻혀서 우리의 밑바닥의 고통을 적셔준다고 한다. 우리 곁에 임재하는 임마누엘 서울 예수가 죽지 못해 살아남아 허깨비처럼,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의 남자 주인공처럼 외부와 차단한 채 권태로움과 의욕을 상실한 우리들의 어두운 삶의 밑둥을 적셔준다는 의미로 변형시키고 있어 이미지의 전환을 가져오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어둠 이미지들이 물 이미지와 결합하여 자유롭게 공간이동을 하고 그러한 운동성을 통해 어둠은 그 변모를 꾀한다. 시 「잠」을 보자.

 

내가 살고 있는 나의 이 무거운 몸뚱아리가 당신의 조립품임을 의식하면서 이미 늪으로 빠져버린 나는 손이 묶인 채 더욱 깊은 곳으로 빠져들고 싶었다. 정비공장 기름바닥에 흩어져 뒹구는 녹슨 볼트‧너트‧핀‧축의 숨이 곧 나의 늑골이요 너의 긴 척추의 마디와 마디를 잇는 비밀임을 거듭 확인하면서 나는 영영 깊은 잠 속 어둠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 속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의 시린 관절 속 틈새마다 후줄근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잠」p.10)

 

위의 시에서 어둠은 ‘나는 영영 깊은 잠 속의 어둠이고 싶었다’라고 말하는 바와 같이 잠이라는 고체적인 것 속에서도 나의 시린 관절 속 틈새를 내리는 비와 같은 물 이미지로 변형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나의 몸은 어둠과 손을 잡고 내 관절과 척추 마디마디가 어둠과 접합되어 하나가 됨으로써 어둠은 어느새 어둠으로만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시의 말미에서처럼 ‘어느새 골반 속으로 뛰어 들어온 한줄기 빛살이 어둠의 자궁을 후비기 시작하자 어둠 속으로 길게 뻗은 나의 뿌리가 꿈틀대면서야 깨어나는 너의 의식 속으론 구르는 참새소리만 쏟아지고.’ 라는 한줄기 햇살이 어둠을 와해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 「나사」에서는 이 어둠과 희망의 접합을 나사에 투영시키고 있다.

 

아픈 곳을 잘도 골라 꾹꾹 쑤셔주는, 그리하여 등을 돌리고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꿰어줌으로 바로 서는, 시방 살아 있음의 숨 너는 이승의 풋내나는 알몸 구석구석 깊이깊이 박혀 눈을 뜨고 있는 몸살 (중략) 하양과 검정을 이어주는, 있는 것과 없는 것을 한 몸에 담아두는 아주 구체적인 고리. 무너지며 반짝이는 논리. 어루만지는 곳마다 아슴아슴 안개가 피어오르는 것. (「나사」p.41)

 

여기에서 나사는 이승과 저승, 흑과 백, 반생명과 생명을 이어주는 연결 부위에 박힌 나사일 것이다. 시인은 결코 이 이원의 세계가 영원히 독립적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나사 장치를 통하여 하나로 이어지고 있음을 말한다. 이로써 우리는 그의 산문시가 지니는 유려함과 자유로움 안에서 이미지를 끊임없이 연결지우고 닫힌 세계가 열리고 비생산적이며 반생명적인 세계가 무너지고 생산적이며 생명적인 반짝이는 시적 논리와 이미지의 세계로 끌려들어간다. 그래서 그에게 시는 ‘언제나 꿈같은 현실로 서서 눈부신 알몸의 무지개로 걸려 넋 나간 나를 묶어두고 그 속에서 진정 나를 자유롭게 하고 기쁘게’ 하는 존재이며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며 이젠 내 안 깊숙이 들어와 나를 차지하고 있는 당신’(「詩-그대에게」p.36)인 것이다. 이시환에게 시는 그런 것이다. 또 시는 이시환에게 ‘불안한 자신 베끼기’이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난해한 길을 왔다 갔다 하는 巨人’(「로봇트」p.37)이며 ‘모나고 모난 세상의 가장 깊은 곳의 어둠과 비밀을 흔들어 깨워 가장 뜨겁고 가장 은밀한 한 송이 붉은 꽃을 피워 놓고’자 하는 침이다.(「詩-작은 침술」p.33) 이러한 시인의 자세는 「서 있는 나무」에서처럼 ‘도끼자루 톱날에 이 몸 비록 쓰러지고 무너질지라도 서 있는 나무는 죽어서도 서 있어야 한다’라고 결연한 의지로 직립하고 있는 나무에다 비유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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