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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소중히 여기는 삶의 자세가 바르다
2016년 03월 12일 05시 23분  조회:5121  추천:0  작성자: 죽림
한국인의 호(號) 와 멋
                                   남 홍 진

생명보다 소중한 이름

우리 한국 사람은 예로부터 이름 석자를 생명처럼 소중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姓을 갈 놈'이란 욕이 가장 치욕적인 욕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도 이름을 소중히 여기는 속성에서 비롯된 격언이다. 한때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우리의 이름을 총칼로 바꾸려다 민족감정을 크게 자극시켰다. 그때 창씨 개명을 시도한 후유증이 아직도 배일 감정의 한 원인으로 남아 있다. 물론 일본 사람들은 이름을 지을 때 조상의 뿌리를 중시하지 않는 그들 나름의 풍속을 기준으로 우리 한국 사람의 성과 이름을 뜯어고칠 수 있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금강산에 가보았더니 거기에도 이름을 중시하는 우리 겨레의 속성을 볼 수 있었다. 금강산의 자연은 그런데로 잘 보존(보호) 되어 있었다. 그런데 특정인의 이름을 새기느냐고 자연을 훼손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김일성의 이름을 영구히 돋보이기 위해 명산의 절경을 훼손했는가 하면 그의 아버지 김형직과 어머니 강반석과 아내 김성애와 아들 김정일의 이름을 길리 이현(以顯)하기 위해 바위를 마구 훼손한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외에도 '한글'을 사용하지 못하던 왜정시대에 우리 선배들이 남긴 낙서도 많이 볼 수 있었다. 구룡폭포를 향해 올라가는 계곡의 손닿는 바위마다 한문(漢文)으로 새겨 놓은 수많은 이름을 볼 수 있었다. 역시 어느 시대에나 자기 이름을 세상에 길이 드러내고 싶어하는 우리 감정의 단면을 실감할 수 있었다.
대체로 우리 한국인의 이름은 족보에서 비롯된다. 어느 집안이나 이름을 지울 때는 학렬에 따라 金 水 木 土의 순서로 짖는 것이 통례이다. 그래서 성과 이름 석자만 대면 금세 뉘집 자손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때로는 이름 석자로 그 집안의 오랜 내력까지도 집어 볼 수 있는 것이 우리 이름의 유래이다. 이름을 소중히 여기는 것만큼 이름을 지을 때는 인생의 哲學 敎訓 座右銘 人生觀등 자기 도야(陶冶)의 뜻이 내포 되어있다. 그래서 한국인의 이름에는 나름의 철학이 담겨 있는 것이 특색이다. 그러나 사람의 이름뿐만 아니라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반드시 이름과 유래가 따른다. 가령 임금님이 나들이 나갔다가 칼(刀)을 씻었다 해서 '세검정(洗劍亭)'이란 지명이 생겼는가 하면, 홍수가 낫을 때 범람하는 물결에 밀린 배가 닿았다 해서 '배다리' 또는 화살이 꽂혔다 해서 '살 꽃이 다리' 또는 폭포에서 광대가 제주를 부렸다해서 '才人瀑布'라는 이름이 생긴 것처럼 존재하는 것에는 이름이 있고 그 이름 뒤에는 유래와 동시에 이름에 걸맞은 실상이 있다.

(이)
명성(名聲) 과 호(號)

그런데 우리 한국사람은 예로부터 이름 석자를 함자(銜字)라고 했다. 웃어른의 이름을 물을 때는 반드시 '함자(銜字)가 무엇이냐? 또는 존함(尊啣)이 무엇이냐? 고 해야지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실례이다. 그러나 함자도 함부로 부르는 것이 경망스럽다하여 호(號)를 만들어 이름을 대신 했다. 명성을 떨치는 사람일수록 여러 개의 다양한 호를 사용했다. 함자와 호 외에도 아호(雅號)와 관명(冠名)이 따로 있었고, 그것도 부족해서 자(字)를 만들어 사용했는가 하면 죽은 후에는 시호(諡號)를 사용했다. 그 중에 사용하기 편리한 호는 한 사람이 여러 개를 동시에 사용했다. 그래서 학자들의 경우 같은 시기에 만든 작품에도 때와 장소에 따라 서로 다른 호로 후대에 전해지고 있다.
우리 겨레가 이름을 얼마나 숭상했는가는 옛 날 분들의 號를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고려의 문신이었던 이제현(李齊賢)은 익제(益齊) 약옹(藥翁)이란 두 가지 호 외에 아명(雅名)이 따로 있었다. 그리고 조선조의 거유(巨儒) 이황(李滉)도 퇴계(退溪) 도산(陶山)이란 호를 사용했고, 이이(李珥)도 율곡(栗谷) 석담(石潭) 등 여러 개의 호를 사용했다. 선조 시대의 대 정치인이었던 이항복(李恒福)은 백사(白沙) 필운(弼雲) 동강(東崗) 등 여러 개의 호를 사용했다. 순조(純祖)때의 명필이었던 김정희(金正喜)는 완당(阮堂) 추사(秋史) 과노(果老) 등 수십 개의 호를 동시에 사용했다.
그러면 우리 조상들은 왜 이렇게 여러 가지 이름을 덧붙여 번거롭게 했을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로서는 쉽게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사람은 누구나 입신양명을 통해 자기의 이름이 길이 기억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되도록 이면 이름을 멋지게 지으려 했다. 깊은 뜻이 담긴 철학과 운이 따르는 이름을 즐겨 사용했다. 물론 서양사람들에게도 애칭이나 별명이 있었다. 특히 존경하는 조상의 이름을 본따 1세 2세 3세라고 짖은 것은 우리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사실 이름을 생명보다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얻어지는 장점도 많다. 우리 사회에서 물질을 도둑을 맞았을 때 마음의 상처를 입고 자살하는 경우는 없지만 이름을 더럽혔을 때는 자살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이름의 가치를 높이 생각한다. 가령 로마 제국의 총독이었던 빌라도가 자기의 이름을 생명처럼 생각했다면 예수에 대한 재판을 그렇게 무책임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오늘날 그의 이름이 기독교 신도들의 입에 매일 오르내리지는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완용(李完用)이도 자기 이름을 생명처럼 여겼다면 영원히 매국노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호는 고사하고 이름 석자를 활자화시켜 보지 못한 채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기 이름에 대한 회의를 한 번쯤 느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때로는 자기의 이름과 운명을 결부시켜 '왜 하필 내 이름은 이렇게 지었을까' 한 번쯤 자기 이름을 바꾸어 보고 싶을 때가 있었을 것이다. 사실 현행 법률이 이름을 함부로 바꿀 수 없도록 되어 있으니까 망정이지 만일 쉽게 바꿀 수만 있었다면 일생 동안 자기 이름을 한 번쯤 바꾸려 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러나 조상이 지어준 이름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그런데로 살아가노라면 좋건 싫건 자기 이름에 정이 들고 주변에서 그렇게 알아주기 때문에 바꾸고 싶었던 감정을 덮어 버리게 되는 것이 또한 인개상정(人皆常情)이다.

(삼)
그러나 아직도 이름 석자에 마치 자기의 운명, 즉 사주팔자가 좌우된다고 생각하는 풍조야말로 생명보다 소중한 이름에 대한 경멸이다. 이름이 좋아야 입신 양명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자기 능력을 포기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좋은 이름을 짖기 위해 작명소를 드나드는 사람들이 있는 한 이름과 운명론은 쉽게 가시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런 생각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에게 만일 이름을 쉽게 바꿀 수 있는 길을 열어 준다면 우리의 이름은 계절 따라 바뀔지도 모른다. 사실 작명소를 찾아가 이름을 짖는 것은 자기 이름을 짖는 것이 아니라 작명인의 이름을 사는 것이다. 왜냐 하면 그 이름은 작명자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이름이 인생의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이름을 소중히 여기는 삶의 자세가 인생의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아무튼 우리의 이름은 집안 유래(학렬)에도 따라야 하지만 우선 부르기 쉽고 쓰기 쉽고 의미도 우리 감정에 젖어야 한다. 가능한 시대적 감정에도 어울려야 한다. 예를 들면 배신자(裵信子)라는 이름은 아무리 의미가 좋아도 부를 때의 어감이 좋지 않다. 그러나 한국인(韓國人)이란 이름은 동양 권에서 그만큼 책임이 따를 것이다.
우리의 이름이 족보에 따라 명명되던 시대에도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편리하게 드러낸 것이 바로 號이다. 우리 조상들이 즐겨 사용한 號야 말로 경색된 삶을 순화 시켜주는 양념이다. 스스럼없이 號를 사용함으로서 삶을 한결 부드럽고 윤기 있게 구현하게 된다. 때로는 똑같은 작품에도 號를 사용함으로서 작품의 분위기를 살려주는 경우도 많다. 특히 나이가 들어 슬하에 자손이 많다거나 사회적 책임이 따르는 사람일수록 이름보다 호를 사용하는 것이 더 운치가 있고 친근감을 주고, 때로는 품격과 풍류 적인 여유도 느낄 수 있다.
돌이켜 보면 우리 겨레의 선이 굵은 족적(足炙)을 남긴 분들 치고 호를 사용하지 않은 분들이 없다. 그 중에도 김구 선생의 白凡이란 호는 음미할수록 감명이 깊다. 물론 그분이었기에 백범이란 호가 돋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호는 부를수록 정겹지만 별명은 부를수록 실례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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