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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시인 산문 쓰다
2016년 03월 19일 03시 38분  조회:4390  추천:0  작성자: 죽림
정지용은 이른바 1930년대 한국 시단을 주도한 거장시인으로, 그의 재지(才智)는 산문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의 산문으로는 국토기행에서 산생된 기행문류와 시론, 추천평 등을 소개할 수 있다.

지용의 산문집은 『지용 문학독본(文學讀本)』과 『산문(散文)(부역시附譯詩』등 두권이 있다. 이 두 산문집은 8.15 해방 후에 간행된 것들로, 전자는 1948년 2월 박문출판사에서 후자는 1949년 1월 동지사에서 각각 펴낸 것이다. 그동안 신문이나 잡지에서 발표된 평문과 기행문 및 수필류를 모아 엮은 것들이다. 이 두 산문집에 실려 있지 않은 산문들도 상당량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또 이 책들의 출판 후에 발표된 글도 많다.
당시에 『동아일보』나 『조선일보』에서는 그에게 국토순례의 여정을 도와 기행문을 쓰게 했다. 「백록담」이나 「장수산」 및 금강산의 시편들이 모두 이여정을 통해서 산생된 것이라 할 때, 그의 국토순례의 의미는 자못 큰 것이다. 이때 쓰여진 글 가운데 「남유(南遊)와 다도해기(多島海記)」는 김영랑과 김현구와 관련된 그들의 교유기라 할 수 있다. 「화문행각(畵文行脚)」, 「화문점철(畵文點綴)」은 화가 길진섭의 그림을 곁들인 기행문이다. 「백록담」의 표지에 그린 사슴도 바로 길진섭의 그림이다. 「남해오월점철(南海五月點綴)」을 비롯한 그 밖의 많은 산문들은 정지용의 시 세계와 삶의 모습을 살피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들이다.
지용은 그 유려한 문체와 대상의 선명한 묘사로 아름다운 산문세계를 펼쳐 가는 가운데 시인의 진솔하고 겸허한 삶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 그의 산문 가운데 짧은 글들을 몇편 소개한다.
 

천북동(川北洞) 뒤가 대목산(大睦山), 눈 우에 낙엽송이 더욱 소조하야 멀리 보아 연기에 짜힌 듯하다. 이 산줄기가 좌우로 선천읍을 히동그란히 싸고 돌아 다시 조그만한 내를 흘리워 시가지 중앙을 뀌뚫었으니 서남에서 동북으로 흐른다.
삼동(三冬)내 얼어붙은 냇물도 제철엔 제법 수세(水勢) 좋게 흘러 차라리 계곡수답게 차고 맑기까지 하다. 그러나 청천강 줄기같이 큰물이라곤 없는 곳이 들이랄 것이 없어 안윽한 분지로 되었다. 겨울에 바람은 없지만 여름에 무더위가 심한 편이요 아침에 밥들 지어먹은 연기가 열한시 열두시까지 서리고 있어 빠져나갈 틈이 없다니 이 골 사람들이 자칭 산골사람이로라고 하는 것도 그저 겸사의 말도 아닐가 한다.
그러나 호수(戶數)로 4천이 넘고 2만 인구가 호흡하는데 초가라곤 별로 없고 계와집 아니면 양옥이다. 산골에서 여차직하면 양옥을 짓고 사는 이곳 사람들은 첫눈에 북구인 같은 심중한 기질을 볼 수 있다. 별장지대 풍의 소비적 소도시인지라 소매상가를 지날 때 양식 식료품, 모사(毛絲) 의류, 화장품, 약품, 과자 등이 어덴들 없을가 잡다하다느니보다 많은 진열 배치된 品이 착실하기 Quality street 다운 데가 있으니 물건 팔기 위한 아첨이라든지 과장하는 언사를 들을 수 없고 등을 밖으로 향하야 앉어 성경(聖經)읽기에 골독하다가 손님이 들어서면 물건을 건늬고 돈을 받은 후에 별로 수고로운 인사도 없이 다시 돌아 앉어 책을 드는 女主人을 볼 수 있는 것이 예사다.
장로교가 거진 풍속화하였다는 것을 이 일단(一端)으로도 짐작할 만하니 내가 새삼스럽게 장로교 경영의 남녀 학교라든가 병원, 양로원, 고아원이라든가를 열거해야만 할 것도 없이 선천은 사회시설의 모범지다. 개인으로 공회당, 도서관, 학관을 겸한 선천회관을 제공한 이가 없겠나 동, 서, 남, 북 교회 등 4대 예배당이 읍을 4소교구로 분할하야 주사 청루(酒肆 靑樓)에 배당한 토지가 없이 되었다. 더욱이 남교회라는 예배당은 거대한 이층 연와(煉瓦) 건축인데 일천수백명을 앉칠 만한 호울이 2개가 있다. 1소교구의 신도의 각자 의연(義捐)으로 된 것인데 건축 경비 6만원이라는 거액이 어떠한 방법으로 판출(判出)되었는가 하면 일례를 들건대 월급 50원의 가족을 거나리는 신도가, 一口 50원을 의연하되 불과 3,4 삭(朔)에 완납하였다.
남교회 건축에 관한 부채는 깨끗이 청산되고도 여유가 있었다. 여자 사회가 얼마나 발달되었는지 청년회 합창대 등은 물론하고 춘추로 그네뛰기와 때로 대회를 열되 순연히 여자만으로서 주최하며 시어머니 며누리가 2人3脚(2인3각)으로 출전하야 우승하였고 상품으로 평안도 놋쟁반 크다마한 것을 탔다고 했다.
-「화문행각(畵文行脚)1 - 선천(宣川)1」전문

 

목포서 아홉시반 밤배를 탔읍니다. 낮배를 탔더라면 좀도 좋았으리까마는 회사에서 제주 가는 배는 밤배 외에 내놓지 않았읍니다. 배에 올르고 보니 제주 가는 배로는 이만만 해도 부끄러울 데가 없는 얌전하고도 예쁜 연락선이었읍니다. 선실도 각등(各等)이 고루 구비하고도 청결한 것이었읍니다. 우리는 좀 늦게 들어갔드랬는데도 자리가 과히 뵈좁지 않을뿐외라 누을 자리 앉을 자리를 넉넉히 잡았읍니다. 바로 옆에 어떤 중년 가까이 된 부녀(婦女) 한분이 놀라웁게도 풀어헤트리고 누워 있는데 좀 해괴하고도 어심에 괘씸한 생각이 들어 무슨 경고 비슷한 말을 건늬어 볼가 하다가 나그네 길로 나선 바에야 이만 일 저만 꼴을 골고로 보기도 하는 것이란 생각이 나서 그만 잠자코 있었읍니다. 등산복을 훌훌 벗어버리고 바랑 속에 지니고 온 갈포 고의 적삼으로 바꾸어 입고 나니 퍽도 시원했읍니다. 10년 전 현해탄 건늬어 다닐 적 뱃멀미 앓던 지긋지긋한 추억이 일기에 댓자곳자 들어눕고 다리를 폈읍니다. 나의 뱃멀미라는 것은 바람이 불거나 안불거나 뉘(파도)가 일거나 안일거나 그저 해협을 건늘적에는 무슨 예절처럼이라도 한통 치러야 하는 것이었읍니다.
이번에도 멀미가 오나 아니오나 누어서 기다리는 체재(體裁)를 하고 있노라니 징을 치고 호각을 불고 뚜ㅡ가 울고 하였읍니다. 뒤통수에 징징거리는 엔진의 고동을 한시간 이상 받았는데도 아직 아무렇지도 않었읍니다. 선실에 누어서도 선체(船體)가 뉘(파도)를 타고 오르고 나리는 것을 넉넉히 증험할 수가 있는대 그럴 적에는 혹시 어떤 듯하다가도 그저 그대로 참을 만하게 넘어가는 것입니다 병 중에 뱃멀미는 병 중에도 연애병과 같은 것이라 해협과 청춘(靑春)을 건늬어 가랴면 의례히 앓을 만한 것으로 전자에 여긴 적이 있었는데 나는 이제 뱃멀미도 아니 앓을 만하게 나이를 먹었나 봅니다. 실상 그럴 수 바께 없는 것이 지금 내가 누어서 지나는 곳이 올망졸망한 무수한 큰섬 새끼섬들이 늘어선 다도해 위가 아닙니까. 公海가 아니요 바다로 치면 골목길을 요리조리 벗어나가는 셈인데 큰 바람이 없는 바에야 무슨 큰 뉘가 일 것이겠읍니까. 天成으로 훌륭한 방파림을 끼고 나가는데 멀미가 나도록 배가 흔들릴 까닭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고 보면 누어 있을 까닭이 없다고 일어날가 하고 망사리노라니 갑판 위에서 통풍기를 통하여
『지용! 지용! 올라와! 등대(燈臺)! 등대(燈臺)! 』하는 영랑(永郞)의 소리였읍니다(우리 일행은 영랑과 현구(玄鳩), 나, 세 사람이었읍니다). 한숨에 갑판 우에 오르고 보니 갈포 고의가 오동그라질 듯이 선선한 바람이 수태도 부는 것이 아닙니까.
-「다도해기(多島海記)2 -해협병(海峽病)1」전문

 

꾀꼬리도 사투리를 쓰는 것이온지 강진(庚津)골 꾀꼬리 소리는 소리가 다른 듯하외다. 경도(京都) 꾀꼬리는 이른 봄 매화 필 무렵에 거진 전차길 옆에까지 나려와 울던 것인데 약간 수리목이 져 가지고 아담하게 굴리던 것이요, 서울 문밖 꾀꼬리는 아까시아 꽃 성히 피는 철 이른 여름에 잠깐 듣고 마는 것이나 이 곳 꾀꼬리는 늦은 봄부터 여름이 다 가도록 운다 하는데 한놈이 여러가지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바루 장독대 뒤 큰 둥그나무가 된 평나무 세거루에서 하로 종일 울고 아침 햇살이 마악 퍼질 무렵에는 소란스럽게 꾀꼬리 저자를 서는 것입니다.
꾀꼬리 보학(譜學)에 통하지 못하였고 나의 발음 기관이 에보나이트판이 아닌 바에야 이 소리를 어떻게 정확하게 기록하여 보내 드리리까?
이골 태생 名唱 함동정월(咸洞庭月)의 가야금병창 「상사가(相思歌)」구절에서 간혹 이곳 꾀꼬리의 사투리 같은 구절이 섞이어 들리는가 하옵니다.
그도 그럴사하게 들으니 그렇게 들리는 것이지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꾀꼬리도 망녕의 소리를 발하기도 하는 것이니 쪽쪽 찢는 듯이 개액객거리는 것은 저것은 표독한 처녀의 질투에서 나오는 발악에 가깝기도 합니다.
-「남유(南遊) 제1신(第1信) - 꾀꼬리」전문

 

우리가 타고 달리는 기차 뒤를 따르는 딴 열차를 나는 의논할 수가 없다. 내 뒤통수를 내 눈으로 볼 수 없드시 나는 하루종일 한 열차 밖에 모른다. 편히 앉아 다리 뻗고 천리를 가는 동안에 더욱이 나는 고도의 근시안을 가졌기 때문인지, 내 생각이 좁았던 것을 인제 발견했다. 생각이 좁아서 시야가 열리지 않았던 것이다. 시야가 될 자연한 환경 그 자체가 좁았던 것은 아니었다.
또 나는 기차 전면 화통 앞을 볼 수가 없다. 그것은 괴롬이 되지 않는다. 순시로 바루바루 전개되겠기에! 나는 나의 좌우로 열려나가는 풍경을 모조리 관상하고 음미할 수 있는 기쁨을 기차 타고 얻는다. 바로 나의 옆을 지나가는 기차들을 여러 차례 졸며 보았다. 열차가 면목 일신해진 것을 보았다.
유리 한 장 깨진 차창 하나 보지 못했다. 차체가 모두 맑게 닦이어 제비깃처럼 윤이 나고 쾌속하게 역시 제비와 나란히 날러간다. 나는 흥이 난다. 내가 설령 삼등 말석에 발을 뻗고 앉았을망정 나는 검찰관과 같이 정확하고 엄밀한 차체의 구조와 모든 장식과 도포와 배치와 질서와 봉사를 조사하기 위해 일어선다.
나는 슬리퍼 대신 집세기를 끌고 전망차로부터 일일이 삼등실과 식당차 변솟간까지 모조리 답파한다. 완전히 파스로구나. 일제말기 내지 미군정시절의 비절애절한 열차가 아니다. 완전하게 깨끗하고 구비하고 아름다워졌다. 나는 현직 교통부장관의 방명이 누구신지 마침 잊었다. 나는 남쪽의 대소교통 동맥에 주야근로하는 수만 종업원 조원께 감사해야한다. 나는 일본 사람 하나 없는 기차를 탔다. 양인을 겨우 한 두 사람 볼 수 있을 뿐, 우리끼리 움직이고 달리는 기차를 탔다. 나는 쇄국주의자가 아니다. 다만 우리 겨레끼리 한번 실컷 살아보아야 나는 쾌활하다. 야밋보따리 끼지 않은 세상에도 깨끗하고 아름답게 늙으신 경상도할머니 앞에서 나는 감개무량하다. 나는 이 할머니를 배워 어여쁘게 앞으로 이십년 늙으면 좋을 뿐이다.
- 「남해오월점철(南海五月點綴)1 - 기차(汽車)」전문

 

통영읍안 뒷산 밑 명정리(明井里)라는 한적한 동리에서도 뒤로 물러나 예로부터 유명한 일정월정(一井月井) 두개의 우물물이 한곳에서 솟는다. 이를 합하여 명정(明井)이라 이른다. 明井 우물물이 맑고 달기 비와 가물음에 다르지 않고 수량이 풍족하기 읍면을 마시우고도 고금이 일여하다. 우리는 먼저 손을 씻고 이를 가시고 시인 청마 두준 두 벗의 안내로 명정에서 다시 올라 동백꽃 고목이 좌우로 어우러진 길과 석계단을 밟는다. 역대 통제사들의 기념비석이 임립한 충렬사(忠烈祠) 정문에 든다. 한 개의 목공옛품과 같이 소박하고 가난하고 아름다운 중문에 든다. 감개무량이라고 할가. 우리는 미물과 같이 어리석고 피폐한 불초 후배이기에 설다고도 할 수 없는 눈물이 질금 솟는다. 살으셔서 가나하시었고 유명천추 오늘날에도 초라한 사당에 모시었구나! 웬만한 시골 향교보다도 규모가 적고 터전이 좁은데 건물이 모두 적고 얕어 창연하다. 인류역사상 넬슨 이상의 명 제독인 우리 민족 최대의 은인 지충 지용의 충무공 이순신의 충혼 영령을 모시기에는 너무나도 가난한 사당이다. 유명한「맹산(盟山)」「서해(誓海)」의 목각 대액(大額)이 좌우로 사념 망상 일체를 습복시키는 사당 정전문이 신엄하게 열린다. 우리는 분향하고 재배하되 과연 이마가 절로 마루바닥에 다었다. 이대로 수시간 배복하기로 우리는 마음 속속드리 에누리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종교적 신앙 혹은 사생관 영혼유무관에서 전해온 여러 종류의 의식배례를 떠나 단 한가닥 민족적 통절한 실감에서 대충무공께 배복하기에 조금도 에누리가 없어진다. 우리는 일어나 영위좌우 전후로 키를 펴고 돈다. 절을 마치고 난 어린 손자가 자애로운 할아버지 무릎과 수염에 가까이 굴 듯이, 명나라 천자가 사당에 바치었다
는 몇개의 도검과 기치를 본다. 사당문을 고요히 닫고 나와 석계에 앉아 멀리 한산도를 조망한다. 충무공은 순국하시고도 이렇게 겸손한 사당에 계신다.!
- 「남해오월점철(南海五月點綴)10 - 통영(統營)3」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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