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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國文學〔槪說〕미국문학은 17-18세기에 걸쳐 영국 식민지문학으로서 시작됐다. 초기 식민지시대에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들은 뉴잉글랜드에 정착한 청교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여 생활의 터를 잡기 위해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야 했으며 따라서 예술적인 문학은 성장할 여지가 없었고, 다만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 대륙에 대하여 신대륙의 실황을 전하는 기행문, 일기, 자서전, 전기와 그들의 종교생활을 중심으로 한 설교·명상과 약간의 시가 있었을 뿐이었다. 이렇게 잡다한 소산들은 그러나 신세계에 착륙한 사람들의 희망과 포부를 반영하고 거기에 약간의 과장도 가미되어 전반적으로 낙관적인 경향을 가졌으며 그 후의 미국문학의 특징처럼 간주되는 미국적 낙관주의의 시초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원주민들인 아메리칸 인디언들간에 원시적인 가요류(歌謠類)가 있었으나 미국문학에 직접적인 기여를 하지는 못하였다. 뉴잉글랜드에 정착한 영국이민들의 종교는 칼뱅교를 기조로 하는 청교였다. 이것은 인간감정의 자연스러운 발로를 억압하고 죄악시하여 종종 위선적인 생활태도를 유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종교가들간에 지적인 신념과 진지한 신앙심을 심어 주어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품위 있는 문장을 낳게 하였다. 에드워즈나 프랭클린 등의 산문은 그 좋은 예이다. 미국이 독립국으로서의 면모를 새로이 한 것은 1783년의 독립전쟁보다도 오히려 1812년부터 14년에 걸친 영국과의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으며, 문학도 1830년경부터 비로소 본격적인 발전을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어빙, 브라이언트, 쿠퍼 등이 나온 것이 이 무렵이며 1850년대에 올 아메리칸 르네상스를 전조하는 여명이기도 했다. 미국문학의 전성기인 아메리칸 르네상스가 오기까지에는 광신에 흐르기 쉬웠던 청교사상이 점차로 완화되어 인간능력에 대한 자신과 인간성에 대한 감성이 사람들 마음속에 싹트기 시작한 사조상의 변화가 중요한 여건이 됐다. 멜밀, 에머슨, 롱펠로, 호손, 소로, 포 등의 중요한 작가들이 연달아 등장한 것은 바로 이때이며, 영혼·죄·악의 본질을 추구하는 우수한 작품들이 문단을 장식했다. 이 무렵부터 동부인 뉴잉글랜드에 거의 한정되다시피 했던 미국문학은 점차 범위를 넓히기 시작했다. 휘트먼은 남북전쟁(1861-65)을 유발한 노예제도에 대한 격렬한 논쟁 속에 살면서도 그의 시 <풀잎>이나 <나 자신의 노래>를 통하여 자아의 발견을 시도했고, 나아가서 범국민적인 미국인으로서의 자기 인식을 촉구했다. 남북전쟁 후부터 19세기말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자본주의는 공업의 발달로 말미암아 급속도로 발전하여 현대적인 미국이 탄생했으며 문학은 지금까지의 낭만주의적인 경향을 벗어나 사실적인 색채가 짙어지는 동시에 미국에 독특한, 참으로 미국적인 작품이 나오게 되었다. 마크 트웨인, 웰스, 제임스 등이 배출되는가 하면 1890년대에 이르러서는 크레인이나 노리스와 같은 자연주의 작가가 나오고 1900년에는 자연주의파의 거장이라 할 수 있는 드라이저의 <시스터 캐리>가 나왔으며 모순된 사회제도를 고발하는 싱클레어나 런던 같은 작가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1910년경부터는 더욱 문단의 움직임이 활발해졌으며 시, 소설, 비평, 연극 각 분야에 걸쳐 새로운 운동이 벌어지고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20년대에 들어서자 본격적인 미국의 성숙한 현대문학이 출현했다. 이 무렵을 주름잡은 작가들로서는 시에 파운드, 샌드버그, 마스터스, 엘리엇, 소설에 피츠제럴드, 앤더슨, 캐서, 루이스, 비평에 멘컨, 브룩스, 희곡에 오닐 등이 있다. 미국문학이 세계적인 수준을 가지고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헤밍웨이와 포크너의 출현 이후의 일이며 그들의 작품은 현대문학의 최고봉에 달했다. 1930년대의 불안의 시대와 제2차 세계대전의 시련을 거친 미국은 기성가치의 재검토 과정에서 역량있는 작가들을 속출시켜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이제 세계문학은 미국을 빼고는 이야기하기 힘들게 되었다. 세계의 시단에서 활발하게 새로운 기법을 실험하는 일군의 시인들, 미국사회 속에 인간의 고뇌를 짜넣은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 아서 밀러, 미국이 안을 구원의 문제를 정면으로 들고 나온 흑인작가군(群), 대학교직자를 중심으로 한 뉴크리티시즘 등 다채로운 중, 요즈음에 와서는 노만 메일러 같은 작가에 의해서 현대 미국의 재발견이 시도되는가 하면 샐린저, 벨로 등과 같은 유대계 작가들도 그들의 문제를 보편성 있게 제시하는 데에 만만치 않은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또 미국의 다른 지역과는 문화·경제·제도·전통 제반에 있어서 판이하게 다른 남부에서는 그 특이한 풍토의 소산으로서의 남부문학이 존재하고 있다. 많은 남부 작가들은 포크너의 영향을 받아 가난하고 추방된 사람들, 또는 기괴한 인물들에 초점을 맞추어 작품을 발표했다. 대표적으로 카슨 매컬러스와 오코너(Flannery O’Conner) 등을 들 수 있다. 매컬러스는 <결혼식의 멤버>(1946)와 <슬픈 카페의 노래>(1951) 등의 작품에서 외로움의 고통을 묘사했고 오코너는 단편소설과 <현명한 피>(1952) <난폭한 자가 가져가다>(91960) 등의 장편소설에서 괴상한 인물들과 그들의 산만한 행동을 블랙 코미디풍으로 나타냈다. 웰티(Eudora Welty)는 출생지인 미시시피주를 배경으로 재치있고 풍자적인 급진전으로 이상한 인물들과 폭력적인 순간의 충격을 완화하는 작품을 했다. 퍼시(Walker Percy)는 유럽 철학, 특히 개개인이 자신의 삶의 길을 선택하여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한 실존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영화 팬>(1961)과 <재림>(1980) 등의 장편소설에서 소외와 자기완성의 추구라는 실존적인 문제를 재치 있게 다루었다. 현대 미국이 당면한 문제는 다기(多岐)하다. 문명성과 원시성의 대립, 기계문명으로 말미암은 인간소외와 순수의 상실, 인종문제와 그에 관련된 죄의식·죽음·폭력 등등. 이러한 문제들이 미국 고유의 청교적 사상과 프론티어 정신 및 상업주의와 낙관주의 등과 어떻게 혼합되어 작품으로서 만들어져 나아가는가가 미국문학의 발전과정이 될 것이다. 〈羅 英 均>
植民地時代·革命時代-文學 영국인이 신대륙 미국에 식민(植民)을 시작한 것은 17세기 초기이며, 미국 독립전쟁이 일어난 것은 1775년이기 때문에 미국문학의 식민지시대란 1775년경까지를 말한다. 미국 독립전쟁은 1783년의 파리 강화조약으로 종결은 되었으나, 미국 건국(建國)의 대사업은 18세기 말경까지 걸렸기 때문에 혁명시대란 18세기 최후의 4반세기를 말하는 것이다. 1800년까지의 2세기 미만의 시대였으나 유럽에서 온 이주자(移住者)의 대부분은 개척사업에 다망(多忙)하여 예술에 전념할 여유가 없었다. 17-18세기를 통하여 문학사상 위대한 작품이 적었던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단지 북부 뉴잉글랜드에는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영국 본토에서 피해 온 퓨리턴이 식민했기 때문에, 대학 출신의 목사나 관리가 학예(學藝)를 중시하는 기풍을 일으켜서 자제(子弟)의 교육에 유의하여 1636년에는 하버드 대학을 설립했다. 목사들은 설교·교회론 등을 저술하고 관리나 목사가 자기 반성으로서의 역사나 전기를 썼고, 또한 활자화되지는 않았으나 대단히 많은 일기(日記)를 남겼다. 이리하여 퓨리턴 신앙과 사상은 하나의 미국적 전통을 형성하기에 이르렀고, 19세기에 들어와서도 문예면에서 영향력이 있었다. 목사이자 시인인 E. 테일러(1642?-1729)의 작품은 훌륭한 종교시로서 17-18세기를 통해서 미국 최대의 문학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식민지시대가 종교가의 시대였던 데 비해서, 혁명시대는 정치가의 시대이며, <독립선언> 등의 훌륭한 정치문서가 적지 않다.
Jonathan Edwards (1703-1758) 미국 목사·신학자. 퓨리턴 신앙을 계승하여 초대 퓨리턴의 이상(理想)을 회복하려고 활약하는 한편, 정치(精緻)한 논리에 뒷받침된 수많은 신학서적을 저술하여 미국의 신학을 순이론(純理論)의 면에서 높인 공적은 크다. 지옥의 공포에 호소하여 신앙생활을 권장하는 설교로서 유명했기 때문에 애정이라든지 풍부한 감성(感性)의 소유자라는 점이 망각되어 있었으나, 철인(哲人)이요, 훌륭한 목사였으며 동시에 자연미에 취하는 시인이기도 했다. 주저로는 <자유의 지론>(1754)이 있다.
Benjamin Fran-klin (1706-1790) 미국 인쇄업자·과학자·정치가·문필가. 매사추세츠주(州) 보스턴에서 출생. 형이 경영하는 인쇄소에서 연기고용인(年期雇傭人)으로 일했고, 후에 인쇄업자로서 성공하자 차차 정치가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독립선언서의 기초위원 가운데 한 사람이다. 퓨리턴 집안에 태어났으나 소년시절부터 이신론(理神論)이라는, 신앙보다도 이성(理性)을 존경하는 입장을 취했고, 전형적인 18세기인으로서 교육·과학의 분야를 비롯하여 정치·외교 사회 개량 등에 폭 넓은 활동을 했다. 속담(俗談)으로 유명한 <가난한 리처드의 잠언일기>(1732)에 있어서는 문필의 재능과 인쇄업자로서의 기술도 대단하였지만 실업가로서의 재능도 발휘하고 있다. 반생(半生)을 이야기한 <자서전>(1818, 완본 1868)은 성공담으로서 소설과 같이 재미있고 세계의 자서전 문학의 걸작이다.
John Woolman (1720-1772) 미국 퀘이커 설교자. 양복점 직공으로 들어갔었으나 23세 때 퀘이커 전도자가 되어 각지를 순회여행했다. 노예제도 반대나 노동·교육 문제의 논문도 있으나, <일기>(1774)는 소박한 문체로 퀘이커 설교자로서의 체험을 기술하고 있으며, 일기문학의 고전이라고 불리고 있다. 영국 수필가 램의 울맨 예찬은 유명하다.
浪漫主義·國民文學-成立 이 시대는 19세기 초부터 남북전쟁(1861-65)까지를 말하며, 1850년 전후의 10년은 미국문학의 황금시대가 되었다. 1830년대까지는 작가·시인들이 영국문학으로부터의 독립을 의식적으로 유의하고 있었는데 그 반면 식민지 열등감도 강하여 어빙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영국에서 유명해지는 것이 성공에의 지름길이었다. 에머슨의 강연 <미국의 학자>(1837)는 미국의 지적(知的) 독립선언이라고 불리었고, 포의 시와 산문, 호손의 <주홍글씨>, 멜빌의 <백경(白鯨)>, 소로의 <월든>, 휘트먼의 <풀잎>등이 문학적 독립의 성과를 보이는 작품이 되었다. C. B. 브라운(1771-1810)을 필라델피아, 어빙이나 쿠퍼를 뉴욕으로, 포나 심스(1806-70), 티므롯 등을 남부(南部)라는 식으로 말해서 각지에 문학의 꽃이 만발했던 것인데 가장 오랜 문화적 전통을 자랑하고 있었던 보스턴 중심의 뉴잉글랜드 문학은 에머슨, 소로 등 콩코드 사람들의 자연과 종교를 중심으로 한 사상을 근저로 하여 개화(開花)했다. 호손의 소설도 퓨리턴의 전통이 없이는 생겨나지 못했을 것이고, 멜빌의 작품도 종교에 깊이 연관되어 있는 것이었다. 2세기에 걸친 역사를 갖는 퓨리턴의 토양(土壤)에 독립혁명기의 이상(理想)인 민주주주의가 뿌리를 박고, 19세기 초 이래 유럽 대륙을 풍미(風靡)하고 있던 낭만주의의 자극을 받아 문학의 꽃이 백화 난만하게 피었던 것이다. 미(美)의 순교자 포에서 민주주의 시인 휘트먼에 이르는 5명의 문인은 각각 개성이 풍부한 작품을 남겼는데, 표현수단으로서 무엇보다도 상징(象徵)을 중시한 점에 공통되어 있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멜빌이 재(再)발견되고 호손이 재평가 된 것은 특히 그들의 상징주의 때문이었다.
Washington Irving (1783-1859) 미국 수필가·소설가. 뉴욕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변호사를 지망했으나 문학으로 전향, 네덜란드령 시대 때 쓴 <뉴욕사(史)>(1809)가 출세작이 되었다. 그러나 영국 풍물사적(風物史跡)을 우아한 문체로 수필식으로 엮은 <스케치 북>(1819-20)이 대표작이며 이 작품으로 미국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 밖에 단편집, 전기, 여행기 등이 많고 비상한 다작가였다.
The Sketch-book (1819-1820) 어빙 대표작. <웨스터민스터 사원> <존 불> 등 영국에 관한 수필이 많고, 이 때문에 영국인에게 애독되었으나 현대에는 오히려 <립 밴 윙클> 등의 미국에 관한 것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 작품의 우아한 문체가 사랑을 받아 영어교과서로서 채택되기도 했다.
James Fenimore Cooper (1789-1851) 미국 소설가. 뉴욕주(州)의 대지주 아들로 태어나 생활을 위해 노동을 할 필요도 없이 오직 창작에 전념할 수 있었고 더욱 인기작가까지 된 행운아이다. 이 다작가는 역사, 해양(海洋), 변경(邊境), 사회 등 광범한 분야에 걸친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내티 범포(Natty Bumppo)를 주인공으로 하는 5편의 변경 로맨스가 가장 유명하며 ‘미국의 스콧’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모험적 로맨스의 이야기에 능했다.
The Last of the Mohicans (1826) 쿠퍼 대표작으로 ‘가죽 각반(脚絆)이야기’로 총칭되는 5편의 변경 로맨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 미국의 독립 이전이 무대로 영국군 장교의 두 딸을 영국군 기지에 호송하는 일대(一隊)가 프랑스군을 지원하는 인디언의 습격을 받아 악전고투한다. 영국군을 지원하는 변경 개척자 내티 범포와 그의 친구인 모히칸족의 추장 및 그 아들이 크게 활약한다. 쫓고 쫓기는 스릴이 넘치는 작품으로 서부극의 원조(元祖)라 할 수 있다.
William Cullen Bryant (1794-1878) 미국 시인. 16세 때 쓴 죽음의 명상시 <새너토프시스(Thanatopsis)>와 21세 때의 작품 <물새에게>가 걸작이며 <시집>(1832)에 그의 대표작이 모두 수록되어 있다. 퓨리턴 신앙에 입각한 윤리감과 자연애(自然愛)를 장중하게 노래한 시가 많다. 1829년 이후, 뉴욕시 신문의 주필을 지냈고, 만년에는 호메로스의 뛰어난 번역을 남겼다.
Edgar Allan Poe (1809-1849) 미국 시인·단편소설가·비평가. 배우를 양친으로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태어났으나 3세 때 고아가 되어 리치먼드의 상인 앨린 부처의 양자가 되었다. 1815-1820년까지 영국에서 교육을 받고 귀국 후 버지니아 대학에 입학했으나 도박과 술 때문에 1학기에 퇴학하고 말았다. 그 후 사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그곳에서도 곧 퇴학을 하고 양부모 앨린과도 인연을 끊은 후 볼티모어로 옮겼다. 이즈음까지 몇 편의 시를 썼는데 1833년 잡지의 현상모집에 응모한 단편소설 <병(甁)속에서 찾은 원고>의 단선이 인연이 되어 여러 잡지의 편집에 관계하게 되었고, 단편소설도 쓰게 되었다. 1838년 13세밖에 안 되는 사촌 누이동생 버지니아 크렘과 결혼하여 세상의 비난을 받았다. 그녀는 가난에 쪼들리는 가운데 1847년 세상을 떴고, 포우도 2년 후 볼티모어의 노상에서 숨진 시체로 발견되었다. 포는 시란 “리듬으로 만드는 미의 창조”라고 정의를 내리고 <갈까마귀> <헬렌에게>등 많은 시를 썼고, 그러한 생각을 <시의 원리>등에서 밝혔다. 그는 미국에서보다 외국에서 높이 평가되었고 특히 보들레르, 말라르메, 랭보 등의 프랑스 상징파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단편소설 장르를 확립했고 특히 추리소설의 원조로 불리는 <검은 고양이> <도둑 맞은 편지>등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The Fall of the House of Usher (1839) 포의 산문시적인 공포와 환상의 단편소설. 달빛, 늪, 어셔가(家)의 건물, 건물내부의 가구 등의 묘사가 주인공 로더릭 어셔의 정신 붕괴과정과 호응하도록 치밀하게 계산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포가 지성에 의해 파악된 세계를 배격하고 상상력에 의해 하나의 진실을 파악하려 했던 시도라 볼 수 있다.
The Murders in the Rue Morgue (1841) 포의 추리소설 가운데 하나로 ‘세계최고의 탐정소설’로 꼽힌다. 어머니와 딸의 살해사건에 아마추어 탐정 듀팡이 나타나서 경찰에 그 해결방법을 가르쳐준다. 포가 중점을 두는 것은 범죄 그 자체나 단순한 상상에 의한 사건의 해결이 아니라 탐정의 분석 및 추론이라는 점에 있다. 듀팡은 <마리 로제의 불가사의(不可思議)>나 <도둑맞은 편지>에서도 나타나는, 포가 창조한 유명한 주인공이다.
The Black Cat 포 단편소설. 마음이 곱고 특히 동물을 좋아하는 ‘나’는 평소 ‘황천의 국왕’이라는 이름을 가진 검은 고양이를 침대에서 기르고 있다. 그런데 ‘나’는 어는 날 술에 만취되어 발작적으로 그 검은 고양이의 한쪽 눈을 없애고 급기야는 도끼로 죽이려 한다. 그러다가 이것을 말리려는 아내를 죽이고 만다. 경찰이 와서 지하실에 숨겨 놓은 시체를 찾고 있는데, 그 검은 고양이가 머리 위에 앉아 있다는 괴기 소설이다. 거간꾼으로 겨우겨우 생활해가는 마음씨 좋은 주인공 ‘나’는 풀트라는 이름의 검은 고양이를 오랫동안 길러 오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술을 마신후 발작적으로 검은 고양이의 한쪽 눈을 없애고 만다. 검은 고양이는 곧 원기를 되찾게 되나, ‘나’의 비뚤어진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어느 날 그는 그 검은 고양이의 머리를 나무에 매달아 죽인다. 그 날 밤, 그의 집은 화재가 일어나 타버리고 만다. 다만, 검은 고양이의 시체를 감추고 새로 바른 벽만 불에 타지 않고 남아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 벽에 목이 매인 검은 고양이의 모습이 보인다. 가난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타락하고 있는 주인공 ‘나’는 고양이의 환영을 보고 괴로워하게 된다. 그런데 새로 이사해 들어간 집에 외눈으로 목을 매단 그 검은 고양이를 연상하게 하는 흰 털의 검은 고양이가 들어오게 된다. 이 고양이는 검은 가슴 한 가운데에 단 하나의 흰 반점이 있는데, 그것이 공교롭게 교수대의 형태를 만들고 있다. 어느 날, 이 고양이의 모습에 혐오를 느낀 ‘나’는 도끼를 들고 그 고양이를 죽이려다가 아내가 뛰어들어 말리는 바람에 고양이 대신 아내를 죽이게 된다. 당황한 ‘나’는 아내의 시체를 지하실의 벽에 감추고 새롭게 깨끗이 벽을 발라 놓는다. 경찰이 와서 조사를 할 때 벽 속에서 고양이의 울음 소리가 들려 온다. 경찰관이 벽을 바른 모르타르를 벗기고 벽 속을 조사해 보니 아내의 시체가 벽 속에 있었고, 그 시체의 머리 위에 검은 고양이 풀트가 앉아 있다. 이 장면을 본 주인공 ‘나’는 기절하지만, 곧 체포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만다. 1843년 작품이다.
Ralph Waldo Emerson (1803-1882) 미국 시인·철학가·수필가. 보스턴에서 태어나 후에 콩코드에 옮겨 영주했다.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한 후에 처음에는 유니테리언의 목사가 되었으나 교회의 자세에 의문을 품고 3년 반 만에 목사직을 그만두었다. 그해 유럽에 건너가 칼라일과 평생 변치 않는 친교를 맺었고 귀국 후에는 문학가로서 출발했다. 소로 올컷, 호손 등 몇몇의 천재를 배출한 콩코드의 중심적 존재가 되어 사회개혁, 노예 폐지운동에도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 콩코드의 성인(聖人)으로 널리 존경받게 되었다. 1836년 처녀작 <자연(自然)>을 발간하여 미국의 회고적(懷古的) 유럽 의존의 폐풍을 일변시키고 미국에 르네상스를 가져오는 대사업을 전개했다. 이듬해 <미국의 학자>는 미국문학계의 각성을 부르짖는 이른바 ‘미국의 지적 독립선언’이다. 또한 이듬해 <신학교 강연>은 미국 종교계 부활의 절규였다. 그 후 수필집 7권, 시집 2권을 발간했는데 이 가운데 <자기 신뢰> <보상><신(神=The Over Soul)>은 에머슨 사상의 정수(精髓)로서 전기의 세 저서와 함께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이 세상은 살아 있는 신의 것으로 만인은 어느 곳에서든지 신의(神意)를 읽을 수 있는 빛의 혜택을 받으며 그 내심의 빛에 순종하는 데에서만 참된 행복과 구원이 있다는 종파·인종·국적의 경계를 초월, 인류를 하나로 묶는 퀘이커리즘(Quakerism)에 통하는 신념에 투철했으며 그의 영향은 세계적으로 지대한 바 있다.
Henry Wadsworth Longfellow (1807-1882) 미국 시인. 메인주 포틀랜드에서 태어나 보드윈 대학에서 수업. 약관 22세에 모교 교수, 이어 하버드 대학 교수가 되어 하버드 문인들의 중심점 존재가 되었다. <인생찬가> <동네 대장간>, 장시<에반젤리>등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유럽 숭배, 회고 취미의 경향은 있었으나 미국시인 중 이 사람만큼 일반 민중과 친밀하고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시인도 없을 것이다.
Evangeline, an idyll of Acadia (1847) 롱펠로의 대표적인 산문시로서 영국이 캐나다를 획득했을 때의 실화에서 취재하였다. 영국 강제이주 명령으로 아카시아에 사는 약혼 중인 순박한 두 사람이 서로 멀리 떨어지게 된다. 긴 세월을 찾아 헤맨 끝에 처녀 에반젤리가 약혼자와 재회했을 때 그는 임종의 자리에 있었다. 감상적이긴 하나 역사적 대사건을 배경으로 묘사되는 애정의 아름다움은 만인의 심금을 울려 전세계에 걸쳐 번역, 극화, 영화화되었다.
Oliver Wendell Holmes (1809-1894) 미국 의학자·시인·수필가·평론가. 뉴잉글랜드의 명문 출신으로 다방면에 걸쳐 활동하여 각분야에서 뛰어난 명성을 떨쳤고 문단에서는 중심적 인물의 한 사람이었다. 기지가 풍부한 <아침 밥상의 독재자(The Autocrat at the Breakfast Table)> <아침 밥상의 교수> <아침 밥상의 시인>등이 유명하다. 그의 작품은 “변명은 특히 이기주의를 뒤집은 것” “남자는 마음먹은 것을 주장하고, 여자는 마음먹은 것을 행한다” 등의 경구로 차 있다.
Henry David Thoreau (1817-1862) 미국 철학자·시인·수필가. 콩코드에서 태어나 콩코드에서 죽었으며, 하버드 대학에서 수업했다. 그의 일생은 물욕과 인습의 사회 및 국가에 항거해서 자연과 인생의 진실에 관한 파악에 바쳐진 과감하고 성스러운 실험의 연속이었다. 홀로 월든의 숲에서도 살고, 투옥도 당했으며 후에는 노예해방운동에 헌신, 일찍 세상을 떴다. 에머슨과 함께 위대한 초절주의(超絶主義) 철학자이며 미국 르네상스의 원천이었다. 그는 또한 자연과학자이기도 하며 주요 저작으로는 <월든> <시민의 저항>(1849)이 있다.
Walden, or Life in the Woods (1854) 소로 대표적 수필집. 그는 물욕·인습의 사회와 인연을 끊고, 월든의 숲속에서 살면서 1845년에서 1847년까지 홀로 철저하고 청순 간소한 생활을 영위하며 자연과 인생을 직시했다. 이 책은 그 생활기록으로서 그의 인간과 사상의 정수를 엿볼 수 있다. 문체 또한 절묘하여 미국 수필문학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 애독되며 특히 톨스토이와 간디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Nathaniel Hawthorne (1804-1864) 미국 소설가. 매사추세츠주 세일렘에서 출생. 보스턴 대학 졸업 후, 다시 세일렘에 돌아와 1837년 그를 일약 유명케 한 단편집 <트와이스 톨드 테일스(TwiceTold Tales)를 출판했다. 1846년의 단편집 <옛 목사관(牧師館)의 이끼>에 이어 <주홍글씨> <일곱 박공의 짐>(1851). <블라이드데일 로맨스>(1852), <대리석의 반수신(半獸神)>(1860) 등의 장편소설을 썼는데 단·장편을 통해 호손이 다루고 있는 테마의 하나는 죄에 관한 것이다. 유명한 세일렘의 마녀재판에 관계했던 판사의 후예(後裔)인 그는 엄격한 퓨리턴의 생활과 그들이 품고 있던 죄의식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죄 그 자체보다는 죄의식이 인간의 심리에 어떻게 작용하는가 하는 점에 예술가로서의 관심을 지녔던 것 같다. 또한 작품에서는 고독한 인간의 온갖 양상이 추구되고 있는데 이것 또한 죄에 대한 관심과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테마는 호손이 이어받은 퓨리턴의 사고 자세에서 오는 유산(遺産)이라 할 수 있으며, 그것을 표현하는 데 사용한 상징적·우화적 수법도 또한 모든 사상(事象)의 배후에서 의미를 찾으려 했던 퓨리턴의 유산을 활용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호손은 또한 사물을 리얼리스틱하게 쓰는 소설형식을 쓰지 않고 상상력을 살려서 쓰는 로맨스를 택했다고 말하는데, 예술소재의 빈곤에 고민하는 미국작가로서의 자각을 표시한 것으로 흥미가 있다.
The scarlet Letter (1850) 호손 작품. 17세기의 세일렘을 배경으로 해서 소설의 첫머리·중간·끝부분에 나타나는 처형대가 그 구성을 밑받침하고 있다. 간통죄로 A(adultery)라는 주홍글씨를 가슴에 붙여야만 했던 헤스터 프린, 그녀의 남편, 그녀의 애인, 애인과 그녀 사이에 태어난 딸인 펄 등을 뒤섞어, 죄가 각기 주인공에게 어떠한 작용을 하는가를 묘사한 상징적인 이야기이다. 주홍글씨는 한 여자의 간통을 나타내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인간 모두에게 공통되는 죄의 상징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夫人 Harriet Beecher Stowe (1811-1896) 미국 여류소설가. 코네티컷에서 목사의 딸로 태어났다. 1832년에 오하이오주의 신학교 교장이 된 부친과 함께 신시내티로 옮겨 동교의 스토 교수와 결혼하였다. 그녀를 제일 유명하게 한 것은 <엉클 톰스 캐빈>이다. 그 밖에도 많은 소설과 지리학 교과서, 그리고 바이런 부인을 동정해서 쓴 <바이런 부인의 일생> 등의 저작이 있다.
Uncle Toms Cabin (1852) 스토 부인의 대표작으로, 처음에는 <내셔널 이러>지(誌)에 연재된 소설. 고귀한 정신을 가진 흑인노예 엉클 톰이 백인사회의 매매물이 되어 온갖 고생을 겪다가 마침내는 백인의 잔인한 처사로 죽게 된다. 출판 후 1년도 못 되어 30만 부가 팔렸고 각국어로 번역되었으며, 많은 북부인들에게 노예제도의 죄악을 확신시켰다. 링컨 대통령은 저자에게 이 책이야말로 남북전쟁을 유발시킨 것이라고 농담삼아 말했다고 한다. 늙은 흑인 톰은 셀비 집안의 노예로, 마음씨가 착하고 일도 잘해 주인은 그를 매우 아꼈다. 그러나 주인 셀비의 사업 실패로 톰은 가족과 떨어져 다른 곳으로 팔려 간다. 도중에 물에 빠진 소녀를 구해 준 인연으로 그 소녀의 집에 가서 일하게 되지만, 그 주인이 죽자 톰은 또다시 남부의 목화 재배 농장으로 팔려 간다. 새 주인은 노예들을 혹독하게 다루었기 때문에 톰은 거기에서 짐승만도 못한 생활을 한다. 동료의 잘못을 감싸 주려던 톰은 주인에게 심한 매를 맞고 결국 쓰러진다. 옛 주인 셀비의 아들 조지가 톰을 다시 데려가기 위하여 찾아왔지만 그 때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Herman Melville (1819-1891) 미국 소설가·시인. 미국에서 실업가를 아버지로 하여 태어났으나 부친의 사업실패, 이어 부친의 죽음으로 상선선원이 되었다. 1841년에는 포경선을 타고 항해 도중, 마르케이사스 군도에서 탈주했다. 타이티섬에서 1개월간 식인종과 살았으며 미국군함으로 귀국했다. 이러한 경험이 <타이피> <오무> <화이트 자켓> 등의 소설에 반영되어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문명과 칼뱅주의에 회의적이었던 멜빌은 ‘숙명과 자유의사’의 문제를 추구하기 시작, 우주와 세계의 악(惡)의 존재를 생각했고 이에 덧붙여 동시대의 작가 호손의 ‘어둠의 힘’에 마음이 끌린 그의 작풍은 철학적·상징적 성격을 지니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그의 최대걸작 <백경(白鯨)>(<모비 딕>)과 그 다음의 소설 <피어>(1852) 등은 세상의 환영을 받지 못했다. 1850년대에 <베니토 세리노> <바틀비> <마(魔)의 군도(群島)> 등의 저명한 단편을 썼고 1860-1870년대에는 철학적이며 신학적인 장시 <클라렐>을 포함한 많은 시를 썼다. 1891년에 탈고한 중편소설 <빌리 버드>는 이와 같은 멜빌의 일생에 걸친 진리추구의 결산이라고 할 만한 것으로 인간·세계·우주의 악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의 어두운 면과 심각한 면은 낙천주의적인 당시의 미국인에게는 평이 좋지 않았으나, 서양세계의 위기, 전쟁 등을 통해 악의 문제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던 20세기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켜 높이 재평가 되기에 이르렀다.
Moby Dick (1851) 멜빌 소설. 에이허브 선장의 백경에 대한 편집광적(偏執狂的)인 복수가 그려져 있으나 에이허브 선장의 추적은 단지 고래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우주의 악의(惡意)’에 대한 도전인데, 그것이 작품에 비극성과 웅대함을 부여하고 있다. 얼른 보기에는 짜임새 없는 산만한 구성과 줄거리의 발전에 관계가 없는 듯한 <고래학(學)> 장이 있기도 하나, 실은 멜빌의 치밀한 구상이 배후에 있다.
James Russell Lowell (1819-1891) 미국 시인·비평가. 뉴잉글랜드의 명문 출신으로 노예제도에 강력히 반대하고 링컨 대통령의 위대함을 최초로 인정한 사람 중의 하나다. 북부인 사투리를 사용한 대화시 <비글로우 페이퍼즈>, 당시의 문인을 비평한 <비평가의 우화>로 유명하며 미국문학의 보수파 원로인데 후에 하버드 대학 교수, <아틀랜틱 먼들리> <북미평론>지의 편집장을 지냈다.
Walt Whitman(1819-1892) 미국 시인·수필가. 뉴욕주 웨스트힐스 태생. 교사와 신문발행인 생활을 거쳐 1840년에 저널리스트가 되어 남부와 서부 등 각지를 전전했다. 이 여행이 확대되는 미국의 모습을 그의 마음에 아로새겨서 그것이 1855년의 <풀잎>의 내용형성에 도움이 되고 있다. 1871년에는 <민주주의 전망>이라는 산문을 출판, 물질만능의 세상에 대해 개인의 인격향상과 지도력으로서의 문학의 역할을 논하여, 민족주의는 정치체계라기보다는 훌륭한 남녀를 배출시키는 ‘훈련의 학교’라고 주장했다. 이 수필은 윌리엄 제임스나 존 듀이의 프래그머티즘의 선구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중시인으로서 유명한 휘트먼은 아무렇게나 입고 턱수염을 그리며 모자는 뒤통수에 걸쳐 쓰고 무학자에 애착을 느꼈으나 한편 이탈리아 오페라를 좋아하고 셰익스피어나 호메로스를 암송하는 지식인으로, 시인은 예언자라는 그의 설에 알맞게 민중의 정신적 지도자로 자처했다. <풀잎>의 저작으로 그가 유명해짐에 따라 찾아오는 사람도 많아졌으며 오스카 와일드, 에드먼드 고스 등 영국문인들이 많이 방문했다.
Leaves of Grass (1855-92) 휘트먼이 초판 이래 죽을 때까지 개정증보(改訂增補)를 계속한 시집. 권두의 <자기를 노래하다>에서 자기에의 찬가는 즉 민중을 노래하는 것이라 주장하고 그 동일성을 미국이라는 국가, 그리고 세계전반, 나아가서는 우주전체에까지 넓히는 신비주의와 철저한 민주주의, 또한 그때까지 문학에서 취급하는 것을 삼갔던 성(性)을 자유로이 구가했다. 당시까지의 전통을 무시한 자유시 등으로 영시(英詩)에 획기적인 세계를 개척했다.
Emily Dickinson (1830-1886) 미국 여류시인. 매사추세츠주 애머스트에서 태어났다. 휘트먼의 자기확대나 대담하게 전통을 무시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녀는 일생을 애머스트에서 조용히 지냈다. 그녀의 시는 자기 마음속에 깊이 숨겨진 것을 표출하는 것이 많았는데 이들 두 시인은 19세기 미국의 가장 뛰어난 시인으로 평가된다. 그녀의 시는 자연, 신, 영원, 사랑, 죽음 등을 주제로 하고 있으나 이들이 각각 정열을 가지고 대상 속으로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냉정하게 자기와 외계, 그리고 우주를 바라보고 있다. 생전에는 물론 20세기에 들어와서도 계속 무시되었던 그녀의 시는 1955년 토머스 존슨 편집의 <디킨슨 시집> 전3권의 출판과 더불어 비상한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그녀의 시가 극히 20세기적인 신선미와 참신한 기교를 지녔다는 사실이 인정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時代 미국의 국토 넓이는 19세기 중엽, 건국 당시(1776)의 3배 이상이 되어 남북전쟁 후는 경제의 기초도 그때까지의 전원적인 농업중심에서 산업중심으로 변모해 갔다. 대륙 횡단철도의 건설, 공장의 기계화, 전화기 및 타이프라이터의 발명, 강력한 노동조합의 발달 등이 원인이 되어 19세기 말의 미국은 이제 지방적인 국가가 아니었다. 문학가, 특히 소설가는 원래가 소재에 대해서는 사실적(寫實的)인 태도를 취하기 마련인데 마크 트웨인 등 변경(邊境)을 묘사하는 작가의 이념은 차치하고라도 표현은 변경의 세부(細部)에 관한 충실한 관찰이었다. 스토우 부인, 브레트 하트(1836-1902) 및 주이트 등은 색다른 풍습을 강조하면서 지방색 짙은 작품을 썼으며, 이러한 풍조는 남부와 중서부 및 북부를 막론하고 미국 각지의 작가들에게서 엿보였다. 그러나 리얼리즘이 확실한 문학운동이 된 계기는 1880년대에 호웰스가 프랑스의 플로베르, 발자크, 졸라의 이론을 소개하면서 스스로도 이를 실천하고, 제임스나 위튼이 이를 특수한 사회환경에 응용하여 풍습 희곡으로 확대시키면서부터였다. 호웰스의 정의에 의하면 리얼리즘이란 소재를 충실히 다루는 것으로, 유럽의 졸라나 도스토예프스키의 노골적인 추악한 자연주의와는 다른 것이다. 영웅적인 것이나 우발적인 것은 일상 생활과는 과히 관련이 없기 때문에 진실이 되는 것은 곤란하며 그것들을 피해야만 한다. 성문제도 품위를 잃기 때문에 제외시켜야만 한다. 미국의 리얼리즘은 미국생활의 밝은 면을 다루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의 산업화가 진전되고, 비참한 생활현상이 많이 눈에 띄게 됨에 따라 리얼리즘은 비관적인 결정론을 기조(基調)로 하는 자연주의 쪽으로 점차 이행하면서 20세기 문학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Louisa May Alcott (1832-1888) 미국 여류소설가.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났으나 소녀시절을 보스턴과 콩고드에서 보냈다. 초절론자(超絶論者)이자 아동교육론자인 부친에게서 철저한 정신교육을 받았다. 여우(女優)지망도 결혼도 단념하고, 일찍부터 집안살림을 돕고 천부의 문학적 재능을 살려 남북전쟁 당시의 후방인 뉴잉글랜드의 가정을 묘사한 <작은 아씨들>과 그 밖에 30여 편의 소녀소설을 썼다.
Little Women (1868-69) 올콧 장편소설. 뉴잉글랜드에 사는 마치가(家)의 네 자매―모성적인 메기, 의지가 강한 조, 명랑한 베스, 천진난만한 에미는 종군목사로서 남북전쟁에 종군하는 부친의 부재 중에 모친을 도우면서 여러 가지 사건을 올바르게 극복하여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었다는 줄거리이다.
Mark Twain (1835-1910) 미국 소설가. 본명은 S. L. 클레멘스 (Samuel L. Clemens). 미주리주의 한촌(寒村) 플로리다에 빈한한 개척자의 아들로 태어나, 4세 때 미시시피 강변의 한니발로 옮겼다. 12세 때 부친과 사별하고부터는 인쇄소의 견습기술자가 되었다가 다시 신문기자가 되어 각지를 방랑하고, 남미에 갈 것을 꿈꾸었으나 미시시피강의 수로 안내인(水路案內人)이 되었다. 남북전쟁 때는 남군에 가담했으나 2주간 정도로 그만두고 서부로 가서 광산의 채굴이나 신문에 관계했는데, 이때 처음으로 마크 트웨인(물 깊이 2尋의 뜻)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1865년에 단편 <뛰는 개구리>로 국내적으로 유명해졌고, 동부로 나가 실업가의 딸과 결혼한 후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왕자와 거지> 등의 작품을 잇달아 발표하여 세계적인 유머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만년은 가정의 불행과 사업의 실패 등으로 해서 비관적인 인생관을 지니게 되었다.
The Adventures of Tom Sawyer (1876) 마크 트웨인 장편소설. 톰은 부랑아 친구 헉크 핀과 함께 밤중에 묘지에서 고양이 시체로 사마귀를 고치려고 하다가 살인을 목격하게 되고 증인으로서 법정에 서서 무고한 죄인을 구해준다. 그 후 범인이 감춘 보물을 동굴 속에서 발견하여 둘 다 부자가 된다. 미시시피강 연안에서 보낸 한가로운 소년시절의 목가적 생활에 대한 향수가 전편에 넘치고 있다.
The 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 (1884) 마크 트웨인 장편소설. 주정뱅이 아버지에게서 탈출한 헉은 잭슨섬에서 도망친 노예 짐과 만나 그를 돕기 위한 의협심에서 둘이서 뗏목을 타고 미시시피강을 떠내려간다. 도중의 온갖 사건을 통해 헉은 짐으로부터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배우고 도덕적으로 크게 눈뜬다. 단순한 소년소설이 아니라 미국문학 최대의 고전 가운데 하나이다.
William Dean Howells (1837-1920) 미국 소설가·비평가.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났다. 부친의 신문사에서 식자공, 기자생활을 보내면서 독학으로 문학가로서의 재능을 연마하였으며, 이탈리아 영사를 지내고부터는 보스턴의 유력한 문학잡지의 편집을 맡아보았다. 유럽의 새로운 리얼리즘 이론을 소개하는 한편 <사일러스 래펌의 출세>등 50여 편의 소설을 썼다. 그의 리얼리즘은 미온적이라는 평도 있으나 공적은 크다.
Ambrose Gwinnett Bierce (1842-1914?) 미국 소설가. 오하이오주의 가난한 농가에서 출생. 남북전쟁 종군으로 인생관이 아주 바뀌어버린 듯하다. 후에 샌프란시스코로 나가 작가활동에 들어가서는 냉혹한 야유의 솜씨를 보였다. <생의 한가운데>같이 죽음의 공포를 제재로 한 소설집이나 초자연주의 현상을 다룬 작품집 외에 통렬한 문명비평의 <악마의 사전(辭典)>이 유명하다.
Henry James (1843-1916) 미국 소설가. 뉴욕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형은 후에 저명한 철학자가 된 윌리엄 제임스인데, 이들은 어릴 때 유럽으로 갔다. 국제2적인 교양을 터득한 그는 1875년에 미국을 떠나 파리·런던에서 생활했으나, 1915년에는 영국에 귀화하고 말았다. 처음에는 미국의 작가로서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단편을 썼으나, 파리에서 투르게네프나 플로베르 등과 알게 되면서부터는,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줄거리가 아니라 인물 그 자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한 미국보다는 바로 유럽에 소설의 주제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유럽과 미국의 대비(對比)라는 독자적 테마를 발전시켰다. <로데릭 허드슨> <미국인> <데이지 밀러> <귀부인의 초상(肖像)>등 이른바 국제소설은 테마의 구체적 표현이어서, 세상물정을 모르는 미국인이 유럽의 전통을 중시하는 관습 속에서 어떻게 좌절되어 버리는가를 밝혀 주고 있다. 그 후 희곡을 수편 썼으나 어느 것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극작에서 익힌 기법을 그 후의 소설에 응용하여, 한 사람의 눈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활동 및 심리를 묘사하는 <나사의 회전> 등을 썼다. 후기의 대작 <비둘기의 날개> <황금의 잔>은 여기에 덧붙여 난해한 표현이 첨가되어 치밀한 심리분석을 특색으로 하고 있다. 그는 또한 평론가로서도 일급이며 전집에 붙인 서문과 그 밖의 평론은 말하자면 근대비평의 선언이기도 하다.
The Portrait of a Lady (1881) 헨리 제임스의 장편소설. 미모의 미국 아가씨 이사벨 아처는 유산상속을 받아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귀족으로부터 구혼을 받는다. 그러나 그 후 유럽 생활을 많이 한 미국 태생의 홀아비 길버트 오스먼드와 알게 되어 그와 결혼한다. 세련된 가면 밑에 숨겨진 남편의 추악함을 곧 알게 되나 이미 때는 늦었고, 그녀의 강한 자존심과 어찌할 수 없는 의붓딸 판지에 대한 애정 때문에 불행한 결혼생활을 계속한다. 제임스 특유의 신구 양대륙(新舊兩大陸)을 대비시키는 테마가 잘 부각되어 있다.
The Ambassadors (1903) 헨리 제임스의 장편소설. 뉴섬 부인은 아들인 차드가 파리에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약혼자 랜버트 스트레저를 ‘대사(大使)’로서 보내나 그 또한 파리의 매력에 사로잡혀 귀국하지 않는다. 유럽과 미국의 대립이라는 개념 외에, 자아(自我)를 어떻게 하면 실현시킬 수 있는가 하는 테마가 교묘하게 다루어져 있다.
Frances Eliza Burnett (1849-1924) 미국 여류소설가. 영국에서 태어나 16세 때 양친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영국 탄광지대를 그린 첫 소설을 내놓은 후 로맨틱한 소설을 많이 써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자기 아들 비비안을 모델로 한 <소공자 폰틀로이> <소공녀> <비밀의 화원>등이다.
Ernest Thompson Seton (1860-1946) 미국 동물소설가·화가. 본명은 어니스트 시튼 톰슨. 영국에서 태어나 캐나다의 온타리오에서 자라면서 근처의 삼림에서 새와 동물의 생태를 연구했다. 폐결핵으로 인해 쇠약해진 건강도 야외생활을 통해 회복되었고, 런던에서 그림을 공부했다. 뉴욕으로 나와 그때까지 자기 스스로 삽화를 그려 넣어 발표했던 박물지(博物誌)를 모아서 <내가 아는 동물들>을 발표하여 일약 유명해졌다. 자연과 야생동물에 대한 애정을 깊이 간직한 그의 소설은 세계 여러 곳에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다.
O. Henry (1862-1910) 미국 소설가. 본명 윌리엄 시드니 포터.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즈버러에서 태어나 처음에는 숙부의 약국에서 일했다. 20세 때 텍사스주로 나가 여러 가지 일을 거쳐 은행에 입사, 틈틈이 신문 및 잡지에 작품을 썼으며, 공금횡령 혐의로 고발되어 남미로 도주했으나 체포되어 3년간 옥고를 치렀다. 옥중에서도 단편을 12편 가량 썼으며, 출옥 후에는 뉴욕으로 나가 저널리즘의 수요(需要)에 맞춰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뉴욕의 서민층을 다룬 것이 가장 유명하며, 강한 애정으로 결합된 가난한 부부의 자기 희생을 아름답게 묘사한 <크리스마스 선물> <마지막 잎새>등이 특히 유명하다. 그러나 다소 센티멘털한 그의 작품은 문학적으로 높이 평가되지는 않는다고 하겠다.
Edith Wharton (1862-1937) 미국 여류소설가. 뉴욕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가정교사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23세 때 보스턴의 은행가와 결혼했으나 유럽에서의 생활이 많았고, 헨리 제임스와 친해지면서부터는 그 영향하에 많은 소설을 썼다. 1870년대의 뉴욕 상류사회를 풍자한 <천진난만한 시대>나, 황량한 뉴잉글랜드의 자연을 배경으로 남녀의 애증(愛憎)을 그린 <이던 프롬>등은 인상에 남는 걸작이다.
現代文學(-世紀文學) 19세기 말의 미국문학은 리얼리즘이 중시되어 헨리 제임스, 워튼, 캐서 등이 출현했고, 유전과 환경을 결정론으로 하는 노리스, 스티번 크레인과 런던 등이 활약했다. 20세기로 접어들면서 기계문명의 발달이 생활과 의식, 사고활동에 영향을 끼쳤다. 물량(物量)·스피드·매스커뮤니케이션이 비인간적 사회를 만들었고, 문학은 이에 비평을 가했다. 우선 드라이저는 산업주의사회에서 파멸하는 인간을 자연주의적 수법으로 묘사했고, 싱클레어는 사회주의가 노동자 편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셔우드 앤더슨은 그로테스크한 인간의 무리를 프로이트적 방법으로 해명했으며, 루이스는 속악(俗惡)한 사회에서 이상주의를 추구하는 개인을 크게 부각시켜 노벨상(賞)을 받았다. 또한 시인 샌드버그는 사회의식을 주제로 했고, 로빈슨은 고독과 유머를, T. S. 엘리엇은 개성(個性)으로부터의 도피를 노래했다. 극단(劇團)에서는 오닐이 자연주의 수법을 도입했고, 엘머 라이스나 로슨은 사회적 관심이 강한 극작을 발표했다. 1917년에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했다. 젊은이들은 대학에서 전장으로 뛰쳐나갔다. 그들은 전쟁에 환멸을 느꼈고, 허무함을 느낀 끝에 향락사상을 지니게 되었다. 1919년에 금주법이 성립되자 밀주가 횡행하고 젊은이들은 파리로 몰려갔다. 당시 파리에 있던 스타인 여사는 전후의 미국을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라 칭했는데 피츠제럴드, 헤밍웨이, 포크너, 도스 패소스 등이 그 대표로서 활약했고, 시인으로서는 커밍스, 제퍼스가 허무적 상황을 집요하게 추구하여 미국문학을 개화시켰다. 1929년 가을에 시작된 주가(株價)의 대폭락은 미국사회를 일변시켰다. 은행은 도산되고, 실업자는 1천 500만에 달하여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 정책을 실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와 함께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해서 미국 사회주의사상이 민중 속으로 침투되어 도스 패소스, 헤밍웨이, 스타인벡 등이 빈농(貧農) 및 노동자의 실체를 묘사했고, 시인 해럴드 크레인은 자살하였으며, 랜섬, 테이트, 워렌은 남부의 경제와 사회에 관심을 나타냈다. 극단(劇壇)에서도 맥스웰 앤더슨은 사회주의를, 킹슬리, 그린은 백인 빈농(貧農)을, 오데츠는 노동자의 파업을 주제로 택했다. 당시 포크너는 남부사회의 몰락을 묘사하였으나 1940년대의 후반에 이르기까지 인정을 받지 못했다. 1939년에는 제2차 세계대전을 맞게 되었다. 전후 메일러를 비롯하여 다수의 전쟁소설이 발표되었고, 시인으로는 샤피로, 에버하트, 제럴이 종군하여 전쟁과 인간을 시의 주제로 하였다. 한편 1947년의 매카디 선풍으로 공산당 작가는 좌절되고, 도스 패서스, 흑인인 라이트 등은 전향했다. 1950년의 한국동란으로 미국은 호경기를 맞이하나, 50년대 중엽에는 긴스버그, 케루악을 중심으로 비트 문학이 발흥하여 사회에 저항했다. 극단에서는 아서 밀러가 상업 메케니즘의 부정(不正)에 도전했고, 테네시 윌리엄스는 포크너와 함께 남부의 퇴폐적 세계를 묘사하여 호평을 얻었다. 포크너, 헤밍웨이는 노벨문학상을 탔고, 케네디 대통령의 등장으로 흑인시민권이 약속되어 흑인 볼드윈이 활약하게 된다. 그러나 메일러, 베로는 고독한 인간을 묘사하고, 시인 판첸, 로웰은 행동에 호소했으며, 극작가 인지, 오베르트는 현대정신의 비애를 논하고 있는 데 불과하다. 20세기의 미국문학은 절망과 불안, 그리고 초조감의 연속이었다. 상업주의의 압박, 인간성의 상실 등 여러 문제는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공통의 주제가 되고 있다.
現代美國小說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엽에 걸쳐 다윈이나 스펜서의 영향은 현저하여 스티븐 크레인, 노리스, 런던 등이 속속 등장했고, 드라이저에 의해 미국 자연주의 문학은 결실을 보았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셔우드 앤더슨, 싱클레어, 루이스 등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뇌하는 인간을 포착했고, 전후에는 전쟁에 환멸을 느껴 허무적인 사상이 만연하여 이른바 ‘잃어버린 세대’가 태어났는데 피츠제럴드, 헤밍웨이, 포크너 등이 이 시대를 대표하고 있다. 1929년 주가(株價) 대폭락으로 미국은 강대국으로서의 기반이 뒤흔들렸다. 1930년대는 사회주의 사상이 지배적이었고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 정책을 단행, 자본주의 경제를 재건했다. 스타인벡, 콜드월 문학이 이 시대를 증명하고 있으며, 한편 흑인 차별대우는 여전히 계속되어 라이트가 백인을 규탄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전쟁문학이 탄생, 특히 메일러는 반전소설을 써서 인정을 받았다. 50년대 후반에 비트 문학이 등장하여 기성사회에 대항한다. 1960년대 초기에 헤밍웨이와 포크너가 세상을 뜨고, 흑인작가 볼드윈이 논객으로서 등장하였다. 이와 함께 메일러, 샐린저, 배로, 말라무드, 업다이크, 로드 등 유대계(系) 문학자들이 주류가 되어 현대에 있어서의 인간소외를 집요하게 추구하고 있다. ‘읽어버린 세대’에 등장한 헤밍웨이, 패소스, 포크너는 프랑스 실존주의 문학에 영향을 주면서 20세기에 있어서의 허무와 실존의 의미를 파헤칠 필요를 절감한다. 과학적 힘이 개인에게 미쳐, 인간을 소외시키는 공허감이 절감되며, 인간은 자신이 발명한 기계에 의해 스스로 그 노예가 된다. 메일러의 실존주의도 인간정신의 붕괴와 광기에서 탈출하여 모든 것을 지배하는 권력에의 욕망에 불과한 것이다. 20세기 미국문학은 절망과 고독의 물결에 씻겨 그 속에서 가냘픈 빛을 찾고 있다. 작가는 문학의 주제를 알면서도 그것을 작품 속에서 표현하지 못하는 불만을 느끼며, 또한 사회의 부정·악·위선에 대해 분노하기보다 자신에 대한 분노가 강하다. 현대사회에 순응해서 기만 속에 사는 것은 쉽다. 그러나 미국문학은 순응주의에 편승하는 인간의 비극을 파헤쳐 준다. 현대는 지성의 시대가 아니라 행동의 시대이다.
Benjamin Franklin Norris (1870-1902) 미국 소설가. 시카고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와 하버드 두 대학에서 수업. 재학시절부터 졸라, 키플링의 영향을 받아 처녀작 <먹티그>(1899)를 발표, 크레인, 런던 등과 함께 환경과 유전문제를 중시하여, 미국 자연주의 문학의 선구가 되었다. 이 밖에 <낙지>(1901) <곡물거래소(穀物去來所)>(1903) 등에서 농민의 경제적 빈궁을 묘사했다.
Stephen Crane (1871-1900) 미국 소설가·시인. 뉴저지주 뉴어크에서 태어나, 시러큐스 대학 중퇴 후 신문기자가 되었다. <거리의 여자 매기>로 미국 최초의 자연주의 소설을 완성. <붉은 무공훈장>에서 남북전쟁을 묘사하여 명성을 얻었다. 또한 디킨슨의 시에 자극을 받아 시집 <검은 기수(騎手)>(1895)와 <전쟁은 친절하다>(1899)를 발표했다.
Maggie:A Girl of the Street (1893) 스티븐 크레인의 장편소설. 졸라풍의 작품으로서 타락한 여자에 관한 이야기여서 출판을 맡을 출판사가 없어 자비로 출판하였다. 뉴욕의 바와리가(街)에 사는 소녀 매기가 남자에게 속아 후에 매춘부가 되어 거리로 나가며, 마침내 자살하고 만다. 인생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는 자연주의적 수법을 써서 드라이저 문학의 선구가 되고, 20세기 문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The Red Badge of Courage (1895) 스티븐 크레인 중편 전쟁소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및 남북전쟁의 체험담을 바탕으로, 자신의 상상력으로 완성했다. 전쟁의 영웅적 기분을 동경하여 전쟁에 나갔던 헨리 플레밍의 공포감을 묘사하고, 이와 함께 전쟁의 어리석음을 풍자했다. 예리한 심리분석은 높이 평가되며, 특히 헤밍웨이에게 영향을 주었다.
Theodore Dr-eiser (1871-1945) 미국 소설가. 가난한 독일 이민의 아들로 인디애나주 테레호트에서 태어났다. 형제 13명 중 열두 번째로 태어나 가난 때문에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작곡자로서 성공한 형 폴은 창녀집 포주 애니 블레이스와 동거하고 누나 엠마는 남자에게 농락당했다. 드라이저는 17세 때 시카고로 가서 접시닦이, 철물점의 점원이 되었다가, 고등학교 교사였던 밀디레드 필딩의 원조로 인디애나 대학에 들어갔으나 학업에 흥미가 없어 퇴학했다. 1892년 시카고 신문 <데일리 글러브>를 비롯하여 여러 신문의 기자가 되었으며, 이때에 발자크와 졸라의 문학을 애독했다. 처녀작 <시스터 캐리>는 시골처녀의 명예욕을 주제로 한 것이었으나 잘 팔리지가 않아 드라이저의 생활은 파탄 직전에 이른다. 어떤 출판사 편집을 맡아보면서 <제니 게어하트>(1911), <자본가>(1912), <거인(巨人)>(1914), <천재(天才)>(1915)를 발표했으나 평이 신통치 못했다. 성(性)과 물욕을 그린 <천재>는 발매금지까지 당했으나 정신적·경제적 고통을 극복하고, <아메리카 비극>을 발표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미국에서의 자연주의 문학은 드라이저에 의해 완결되었다. 돈·지위·명예의 포로가 된 드라이저는 가장 미국적인 문학자로서 재평가되어 가고 있다.
Sister Carrie (1900) 드라이저 장편소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드라이저의 출세욕이 작품의 주제가 되고 있다. 18세의 시골처녀 캐리는 시카고로 가는 도중에 알게 된 남자와 동거하다가 술집의 지배인 허스트우드와 뉴욕으로 사랑의 줄행랑을 친다. 그러나 남자는 사업에 실패하는 반면 캐리는 대배우가 되고, 부랑자로 전락한 허스트우드는 자살한다. 드라이저는 자연주의적 방법으로 환경이 지배하는 힘을 묘사하고 인간이 공통적으로 지닌 물욕과 고독한 정신을 묘사했다.
An American Tragedy (1935) 드라이저 장편소설. 1906년에 있었던 어느 익사사건을 소재로 해서 썼다. 지위와 돈을 얻기 위해 도회에 나온 클라이드 그리피드는 공장에서 자기와 함께 일하는 여공 로바타를 임신시켰으나, 그 후 부잣집 딸과 사귀게 되자 로바타를 보트에 태우고 호수로 유인 익사케 한다. 클라이드는 체포되어 전기의자에서 22세의 일생을 마친다. 보스턴에서 발간 금지를 받았으나 세평은 좋아 널리 읽혔다. 클라이드와 로바타의 비극은 유전과 환경으로 해서 일어난 비극이며, 벌을 받는 것은 미국 자신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미국 자연주의 소설의 최고 걸작의 하나이다. 물욕·지위·명예를 추구하는 클라이드의 모습은 오늘날의 젊은이와 크게 공통되는 점이 있다.
Willa Cather (1873-1947) 미국 여류소설가. 버지니아 윈체스터에서 태어나 1883년(10세) 네브래스카로 이주했다. 고교시절부터 문학에 흥미를 지녀 네브래스카 대학 재학시절부터 단편소설이나 극평(劇評)을 썼고, 졸업 후 교사와 잡지 편집을 하면서 시집 <4월의 여명>(1903), <단편집>(1905)을 발간하여 주목을 끌었으며, <오, 개척자여!>로 워튼과 함께 일류 여류작가로 인정받았다. 그 후 <종달새의 노래>(1915), <나의 안토니오>(1923) 등에서 네브래스카를 무대로, 개척시대의 희망에 찬 생활과 웅대한 자연을 묘사하고, <교수의 집>(1925), <대사교의 죽음>(1927), <바위 위의 그늘>(1931) 등은 유럽 문명에서 소재를 구해 미국적 야심과 프랑스 문화의 대비에서 탈피, 프랑스적 생활감정을 묘사함으로써 20세기의 중요한 여류작가가 되었다.
O,Pioneers! (1913) 캐서 장편소설. 소녀시대를 네브래스카에서 보낸 1880년대의 캐서는 광대한 초원을 사랑하고 있었다. 이 소설은 스웨덴의 이민(移民) 존 베르그송이 죽은 후, 딸 알렉산드라가 대불황(大不況)에도 굽히지 않고 동생들을 격려하면서 대농장주로서 군립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위대한 인내력은 토지를 사랑하는 소녀로부터 생겨난다는 승리감과, 대자연을 음악적 율동과 간결한 문장으로 엮고 있다. 제목은 휘트먼의 시에서 빌어온 것이다.
Jack London (1876-1916) 미국 소설가·사회평론가. 부친없는 사생아로 샌프란시스코에서 가난하게 출생. 신문팔이·선원 등을 전전 충분한 교육도 받지 못했다. 1895년(19세), <공산당 선언>에 공명하여 사회노동당에 입당, 1901년(25세) 사회당에 입당했다. 이즈음에 다윈, 스펜서, 마르크스를 읽고 니체를 애독했다. <은세계의 처녀>(1902)에서 노동자계급을 묘사하나 신통치 못했고, <황야의 부름> <해랑(海狼)>(1904)에서 유전문제를 다루어 명성을 얻었다. 1904년에는 노일전쟁의 종군기자로 방일(訪日)했다가 귀국 후 <시합(試合)>(1905) <하얀 어금니>(1906), <마틴 에덴>(1909) 등 자신의 체험담에서 나온 작품을 잇달아 발표하여 자연주의 문학을 완성하고, 동시에 사회평론도 썼다.
The Call of The Wild (1903) 런던 장편소설. 다윈 및 스펜서의 영향을 받은 런던의 출세작으로 많은 독자를 얻었다. 1897년 캐나다의 클론다이크에서 금광이 발견되자 사람들은 황금을 얻기 위해 쇄도했다. 명견(名犬) 버크는 캐나다로 팔려가서 다른 개들과의 치열한 생존경쟁 끝에 살아 남는다. 그 후 주인도 바뀌고 숲에서 울려퍼지는 황야의 부르짖음에 끌려 버크는 그곳으로 질주해 간다. 런던은 명견(名犬) 버크라는 주인공을 통해 생물학적 법칙을 사회문제에 적용시켰다.
Sherwood Anderson (1876-1941) 미국의 소설가. 오하이오주 캔든에서 마구(馬具)직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학교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1896년(20세) 시카고로 가서 노동자가 되었다. 한때 에스파냐 전쟁에 참가했다가 귀국하자 카피 라이터(Copy writer)가 되는 한편, 문학에 흥미를 갖고 샌드버그 드라이저, 델 등의 시카고 그룹에 참여하여 소설을 발표했다. 앤더슨을 유명하게 한 <와인스버그 오하이오>는 스타인의 영향을 입은 것이라 하는데, 당시 그로테스크 소설로서 호평을 받았으며, 헤밍웨이, 울프 사로얀, 콜드월 등에 영향을 끼쳤다. 현대 미국소설의 원조라 불리는 앤더슨은 <가난한 백인>(1920), <어두운 웃음>(1925), <욕망의 언저리>(1932)를 비롯해서 시와 평론도 발표하여 1920년대에 있어 문학의 원로적 존재가 되었다. 포크너의 작가로서의 데뷔는 앤더슨의 노력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그는 기계문명이 가져온 인간의 욕구불만과 고독을 묘사하는 데 프로이트적 심리분석을 시도했으나, 명석한 문학적 이상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포크너나 헤밍웨이로부터 부정(否定)되었다.
Winsburg, Ohio (1919) 앤더슨 단편소설집. 작가가 소년시절을 보낸 오하이오주(州) 클라이드가 모델이라 한다. 25개의 단편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조지 윌라드 소년의 편력이 중심이 되어 있다. 인간이 진리를 만들고 그 진리가 인간을 그로테스크한 모습으로 변모시킨다. 그러한 그로테스크한 젊은 남녀 군상을 그려 인간의 내면적 세계를 추구하고, 헤밍웨이, 울프, 사로얀, 스타인벡, 콜드월에게 영향을 주었다.
Upton Sinclair (1878-1968) 미국 소설가.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몰락한 명문에서 태어나 16세 때부터 문필활동에 들어갔다. 뉴욕 시립대학 재학중 좌익으로 기울어져 베불렌의 영향으로 <밀림>을 발표, 당시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숙정정치(肅正政治)를 촉진시켰다. 그 후 <석탄왕>(1917)에서 탄광파업을, <브라스 체크(Brass check)>(1919)에서 신문업계의 부패를 폭로하고, <석유>(1927)에서 하딩 정부의 부정을, <보스턴>(1928)에서 사코 번제티 사건의 위선(僞善)을, <술>(1956)에서 알코올의 유해설을 제창하는 등, 그의 전작품에 흐르는 것은 정의에의 외침인 동시에 전체주의의 불합리에 항의하고 지상에 참된 자유를 추구하는 영원의 소리이다. 그러한 것의 집대성이 1949년 완성된 대작으로서, 레니 버드 이야기로 불리는 <세계의 마지막>이라는 전10권, 6천866페이지에 달하는 대장편이다. 제1권의 출판(1940)부터 10년의 세월을 소비해서, 또다시 세계대전의 희생을 대중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피력하고 있는데, 역사적 가치를 지닌 불멸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密林 (1906) 싱클레어 장편소설. 26세 때 시카고의 도살장을 조사하여 <이성에의 호소>라는 사회주의 계열의 주간지에 발표했다. 리투아니아인 유르기스 루독스가 미국으로 이주, 시카고 도살장에서 일하는데, 손씻을 물조차 없는 비위생적인 노동환경에서 병에 걸려 실직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사회주의를 계몽하고, 미국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고발하여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으로 하여금 정치적 해결을 촉진시켰다.
Sinclair Lewis(1885-1951) 미국 소설가. 미네소타주 소크센터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오하이오주의 오버린, 예일 두 대학에서 수업했다. 학생시절부터 싱클레어의 사회주의에 공명했고, 그 후 월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대학졸업 후 문필생활에 들어가 <우리들의 미스터 렌>(1914)에서 어떤 신사의 로맨틱한 모험을 그렸고, <일>(1917)에서 부인의 결혼과 일의 문제를, <메인 스트리트>에서는 인습에 얽매인 속됨과 이상에 불타는 여성을 그려 호평을 얻었다. 그 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 <배빗>(1922), <애로스미스>(1925)에서 이상적인 인간정신의 방향을 제시했다. <애로스미스>는 퓰리처상으로 결정되었으나 명예욕을 부정하는 루이스는 이를 거절했다. 이 밖에 시골의 신앙부흥 운동을 다룬 <엘머 갠트리>(1927), 유럽에서의 휴일을 취급한 <도스워드>(1929) 등의 걸작을 남겼다. 또한 시작 및 평론활동도 하여 1930년 미국에서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드라이저의 자연주의, 싱클레어의 사회주의에 물들지 않고 시니컬한 이상주의자로 자처했다.
Main Street (1920) 싱클레어 루이스 장편소설. 고향 소크센터를 모델로 인습적인 시골문화의 속됨을 비판하여 루이스를 일약 문단의 총아로 만든 작품이다. 의사 케니코트는 대학을 나온 인텔리 여성 캐롤과 결혼, 고향으로 내려온다. 시골의 단조로운 생활을 개혁하려던 캐롤은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워싱턴으로 출발했으나 재차 시골로 돌아온다. 시골의 속된 인습과 여성의 이상주의를 대비시켜 지방의 미국적 협량과 비관용(非寬容) 및 자기 만족을 암시했다.
Katherine Anne Porter (1890-1980) 미국 여류소설가. 텍사스주 인디언크리크에서 태어나, 남부의 어느 수도원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후 기자생활 등을 하면서 유럽을 방랑했다. 그 후 노스캐롤라이나 여자대학 및 미시간 대학에서 공부하고, 처녀 단편집 <꽃피는 유대의 나무>(1930)에서 호평을 얻자 이듬해 구겐하임 장학금을 얻어 본격적인 작가생활에 들어갔다. <꽃피는 유대의 나무>는 어떤 여성혁명가의 심리적 형태를 그린 작품이다. 포터는 멕시코를 비롯한 남부를 무대로 해서 <농장>(1924)에서는 러시아인 영화 제작자들, <낮술>(1937)에서는 자살과 살인문제를 다루어 주목을 끌었고, 포크너와 함께 미국 남부를 대표하는 문학자가 되었다. 최근작 <어리석은 자의 배>(1962)는 본격적인 장편으로 화객선(貨客船) 베러호를 타고 유럽으로 건너가는 인간의 정치적·종교적 반응을 예리하게 다루어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Henry Miller (1891-1980) 미국 소설가. 뉴욕주 요크빌에서 출생. 소년시절부터 독서에 열중했고, 해거드, 콜레리, 쿠퍼, 마크 트웨인 등을 애독했다. 1909년(18세) 뉴욕 시립대학에 입학했으나 규칙이나 제도에 반발하여 퇴학. 그 후 시멘트 회사나 웨스턴 유니온 전신회사 등에 근무했고, 1924년(33세) 두 번째 아내 준 스미스와 결혼했다. 밀러의 많은 작품 가운데 준을 모델로 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일생을 통해 그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930년에는 단신 유럽으로 건너가 많은 학자들과 교제, <북회귀선(北回歸線)>(1934) 이후 대부분의 작품은 유럽에서 출판되어 이국(離國) 작가라 불리기도 했다. <검은 봄>(1936), <남회귀선(南回歸線)>(1939)에서는 현대의 허망(虛妄)에서 탈출한 인간정신을 다루어, 성(性)을 신성시하지 않은 채 인간의 본질과 그것이 자유로이 개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자신의 체험을 통해 예술 속에 재생시키려 했다. <섹서스>(1949), <프렉서스>(1953), <넥서스>(1960)는 미국에서 수입이 금지되었으나 세계의 주목을 끌었으며, 휘트먼, 랭보 등의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1967년(74세) 일본의 재즈 피아니스트 호키 도쿠타와 여덟 번째 결혼을 했다.
Pearl Buck (1892-1973) 미국 여류소설가. 웨스트 버지니아주(州) 힐즈보르에서 태어나 생후 4개월에 목사인 부친과 중국으로 건너가 상하이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 후 랜돌프 메이콘 여자대학과 코넬 대학에서 수업했고, 목사와 결혼하여 난징(南京)에서 살았다. 중국의 광대한 토지에 무한한 애정을 쏟으면서 문필생활에 들어가 <동풍서풍>(1930), <대지(大地)>를 발표해서 호평을 받았다. 1934년 이후에는 출판사의 편집자와 재혼해서 미국에 정주. 불행한 정신박약아를 돕는 자선사업이나 문화활동을 하는 한편 창작활동도 계속하여 <이 자랑스러운 마음>(1938), <용자(龍子)>(1941), <향토>(1949), 한국을 무대로 한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1964), <때는 한낮>(1967) 등을 발표. 1938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자전(自傳)·평론 등 다방면에 많은 작품을 남겼다.
The Good Earth (1931) 펄벅 장편소설. 원제는 <좋은 토지>. 생후 4개월에 중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교육을 받은 작가가 중국의 풍토를 사랑하고, 중국민족의 성쇠에 마음이 끌려 이 대작을 완성시켰다. 농민인 왕룬과 오란 부부가 오랜 가뭄으로 아사(餓死) 직전의 궁지에 몰렸다가 온갖 고난을 극복하여 호농(豪農)이 되기까지의 이야기이다. 영고성쇠(榮枯盛衰)는 인간세상의 상정이나, 인간은 흙으로 돌아가서도 잡초와 같이 생명의 신비를 발휘하고 있음을 주제로 삼고 있다. <자식들> <분열된 집안>과 함께 3부작을 이루고 있다.
John Phillips Marquand (1893-1960) 미국 소설가. 델라웨이(州) 월밍턴에서 태어나 소년시대는 매사추세츠주에서 자랐고 하버드 대학에 다녔다. <고(故) 조지 아플리 씨>(1937)에서는 방약무인격의 남자를 그려 퓰리처 상을 탔고, <풀맨 선생>(1942). <윌리스 웨어드>(1955) 등에서 미국 산업계에 부침하는 비즈니스맨을 그려 대중작가의 왕좌를 차지했다.
Francis Scott Fitzgerald (1896-1940) 미국 소설가. 미네소타주(州) 세인트 폴에서 출생. 13세 때부터 탐정소설을 써서 문필의 재능을 발휘했다. 1913년(17세)에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했고 제1차 세계대전에 출전했다. 전후의 퇴폐적 무드에 스스로 도취, 단편소설을 마구 쓰면서 음주에 빠졌다. 프린스턴 대학시절을 그린 자전적 소설 <낙원의 이쪽>(1920)으로 유행 작가가 되어, 1920년대에 있어서 ‘잃어버린 세대’의 대표적 소설가가 되었다. 청춘의 절망을 작품의 주제로 택하면서 이른바 재즈 시대의 세태를 교묘히 그렸다. <위대한 개츠비>는 뉴욕 사교계에서 취생몽사하는 벼락부자 개츠비의 청춘과 꿈을, <밤은 상냥하다>(1934)에서는 정신과 의사 딕 다이버의 패배를 그렸다. 순수하고도 열렬한 로맨티시스트로서 1920년대에 활약했고, 헤밍웨이를 적극 천거하고 이끌어 주었으나 마침내는 배신당했다. 유교집 <붕괴>(1945)가 지적하는 것처럼 돈과 명예욕 때문에 파멸한 시대가 낳은 상징적 문학자이다.
Great Gatsby (1925) 피츠제럴드 중편소설. 1920년대의 유행작가가 자신에 넘쳐 발표했으나 평은 신통치 못했다. 서부의 벼락부자 개츠비가 뉴욕 사교계에서 연일연야 파티로 지새우다가 우연한 기회에 옛 애인과 만났으나 어처구니 없이 살해된다. 이것을 서부출신의 니크가 일인칭 형식으로 이야기한 것인데 경박한 친구의 무정함과 서부에의 향수가 부각된 가작(佳作)이다.
John Dos Passos (1896-1970) 미국 소설가. 시카고에서 태어나 어릴 때 모친과 함께 유럽 각지를 전전하였다. 하버드 대학 재학 중 휘트먼, 애미 로웰을 애독했고, 또한 영국 프랑스 문학도 탐독했다. 1915년에 <하버드 먼들리>의 편집자가 되었고, 1917년에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하여 프랑스로 건너갔다. 제대 후 프랑스 생활을 주제로 한 <3인의 병사>(1921)로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했다. <맨해튼 역(驛)>(1925)을 발표한 후에는 급속도로 좌익적 경향으로 흘러 <북위 42도선>(1930), <1919년>(193 2), <큰 돈>(1935)의 3부작 로 1930년대의 미국을 대표하는 사회주의적 작가가 되었고, 노동자를 옹호하면서 미국을 고발했다. 그 후 전향하여 제2차 세계대전에는 보도기자로서 세계 각처를 돌아다니며 전쟁에 협력, 르포르타주 <세계 전선을 가다>(1946)를 썼다. 그 후 자전소설 및 르포르타주를 발표했고, 역사연구 <힘에 의한 자유의 구속>(1966), 자전 <최고의 시대>(1966) 등 활발한 집필활동을 하였다.
(1938) 도스 패소스 장편소설. <북위 42도선> <1919년> <큰 돈>의 3부작을 개정해서 출판하였다. ‘뉴스 영화’ ‘전기(傳記)’ ‘카메라의 눈’이 병행해서 사용된 실험적 소설. 직업을 구하는 미국인이 전국을 방랑하는 가운데 좌절되어 가는 모습을 그려, 미국 자본주의의 횡포를 고발하려 했다. 1930년대 미국사회의 거짓없는 증언이 된 대작이다.
William Faulkner (1897-1962) 미국 소설가. 미시시피주(州) 뉴올바니에서 4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토착사상이 몸에 배어 평생 남부사람을 묘사하게 되었다. 학교교육에는 흥미가 없어 옥스퍼드시(市)로 이주, 문학청년 필 스턴의 영향을 받았고, 1918년(21세) 영국공군에 입대하여 같은 해에 제대했다. 한편 미시시피 대학에 적을 두고 시 및 평론을 발표했다. 스턴의 원조로 시집 <대리석의 목신(牧神)>(1924)을 출판. 1925년 앤더슨과 만나 소설가가 될 것을 결심하고, 제1차대전에서 기억상실증에 걸린 병사의 귀환을 그린 <병사의 보수(報酬)>(1926)를 앤더슨의 소개로 출판. 이 작품은 피츠제럴드, 헤밍웨이와 함께 ‘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그 후는 <모기>(1927) <사토리스(Sartoris)>(1929), <음향과 분노> <내가 누워서 죽어갈 때> 등에서 남부의 허무한 세계를 그려 사르트르 등 프랑스 실존주의 문학에 영향을 끼쳤으나 국내에서는 무시되었다. 여기에서 순전히 돈벌이를 목적으로, 상상의 한계를 넘어서는 간통소설 <성단(聖壇)>을 내놓아 독자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8월의 양강(陽光)> <압살롬, 압살롬!> <모세여, 내려오라>(1942) 등 중요한 남부의 전통과 유산을 ‘요크나파토파군(郡)’(포크너가 살았던 옥스퍼드군의 모델인 가공의 지방)을 신화의 세계로서 묘사했다. 1930년대의 사회주의 사상의 침범을 받는 일 없이 남부의 토지를 집요하게 제재로 하였는데 1940년 후반부터 정당한 평가를 받아 1949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남부의 피를 받은 인간의 죄·분노·소음(騷音)·허망(虛妄) 등 모든 것은 인간을 신뢰함으로써 구제를 받는다는 만년의 심원한 사상을 일관시켜 20세기 미국의 최대 문학가로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The Sound and the Fury (1929) 포크너 장편소설. 이 소설의 제명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가운데 나오는 “그것은 백치의 이야기로서 음향과 분노에 차 있고 아무 뜻도 없다”에서 뽑아낸 것이다. 이야기는 남북전쟁 후 몰락한 컨슨 집안에 관한 것인데, 1928년 4월을 중요한 현실의 시간적 배경으로 해서, 장남 쿠엔틴은 누이동생 캐시와 근친상간했다고 망상하는 한편, 그녀는 누구 아이인지 모를 아이를 밴다. 또 한편에서는 백치인 형을 위해 헌신적으로 모은 돈을 쿠엔틴이 훔치는 등 허무한 이야기가 시간적 질서도 없이, 조이스적인 ‘의식의 흐름’을 교묘히 이용해서 인간정신의 심오한 면을 파헤친 걸작이다.
Sanctuary (1931) 포크너 장편소설. 과거의 작품이 거의 독자의 관심을 끌지 못했기 때문에 상상할 수 있는 한도까지 무서운 소설을 시도, 순전히 돈벌이를 위해 3주 만에 완성시켰다. 그러나 초고는 주의깊게 퇴고(推稿)되었다. 무대는 현대의 남부. 성불구자 포파이가 17세의 여학생 템플을 강냉이대로 욕보인다. 이를 방해한 토미를 포파이는 사살하고 템플을 매음굴에 가둔다. 그 후 리가 토미 살해범으로 체포되나, 이미 허무주의자가 되어 버린 템플이 증인대에 나와 예의 강냉이대를 앞에 놓고 리가 범인이라 증언한다. 노한 시민들은 템플을 불태워 죽인다. 포파이는 다른 사건으로 체포되어 사형을 당한다. 성·폭력·살인이라는 시점에서 인간의 허무한 불행의 총화를 그렸다.
八月-陽光 (1932) 포크너 장편소설. 포크너가 남부사회의 몰락을 그린 일련의 소설인 <음향과 분노> <압살롬, 압살롬!>과 함께 3대 걸작의 하나이다. 해산 달이 임박한 젊은 여인 리나가, 8월의 어느 날 제퍼슨으로 가는 길을 걷고 있다. 자기와 관계를 맺은 조 크리스마스를 찾아가는 길이다. 조는 흑인혼혈아로, 사회에서 소외되고 살인사건을 일으켜 체포된 후 거세당한 끝에 살해된다. 바로 그날 리나는 어린애를 낳는다. 그러나 그 후 중년남자의 사랑을 얻어 그곳을 떠난다. 인종적 편견, 종교적 반역, 살인 등의 비극과 함께 불행은 끝나고 리나의 평화로운 미래가 암시되고 있다.
(1936) 포크너 장편소설. 포크너가 남부사회의 몰락을 묘사한 일련의 소설 <음향과 분노> <8월의 양광>과 함께 3대 걸작의 하나. 제명은 근친상간으로 배다른 형을 죽인 다윗의 아들 압살롬(구약성서)에서 따온 것이다. 흑인의 피가 섞인 아내를 버린 사토펜이 1833년 제퍼슨에서 대농장주가 되고, 지금의 아내에게서 헨리와 주디스를 얻는다. 어느 날 아들이 데리고 온 친구 본은 전처 소생의 딸 주디스와의 결혼을 간청하고, 헨리는 본을 살해한다. 남북전쟁 후에 사토펜 일가는 몰락하고, 집은 불타버린다. 가난뱅이 백인 사토펜의 비참한 좌절을 그리스 비극적인 구상 아래 그린 수작(秀作)이다.
Thornton Wilder (1897-1975) 미국 소설가·극작가. 위스콘신주 매디슨에서 태어났다. 1920년 예일 대학을 졸업하고 프린스턴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전공. 로마의 이교(異敎) 신(神)들을 그린 <비밀교(秘密敎)>(1926)로 주목을 받고,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The Bridge of San Luis Rey)>에서 페루 최고의 유서 깊은 다리의 춘사(椿事)로 죽은 인간의 사랑과 고독을 그려 퓰리처상(賞)을 받았다. 그 후 시카고 대학에서 창작과 극작강의를 담당(1930-36), <우리 마을>(1938), <위기일발을 피하여>(1942) 등을 발표하여 각각 퓰리처상을 받았다. 인간의 사랑과 죽음이 신의 뜻과 우연에 의하여 좌우되는 모습을 고전적 스타일로 추구하여 미국극단(劇壇)에서는 이색적인 존재가 되었다. <제8일>(1967)도 평범한 탄광기사의 죽음으로부터 구제와 그 자녀들의 건전한 생활을 묘사하여 호평을 받았다.
The Bridge of San Luis Rey (1927) 와일더 장편소설. 퓰리처상을 받고 넓게 호평을 받았다. 1714년 여름, 남미 페루의 유서 깊은 산 루이스 레이 다리가 부서져 다섯 명의 통행인이 죽었다. 이것을 목격한 신부(神父)가 5인의 과거를 살펴보며, 인간의 기구한 운명을 더듬으면서 사랑·죽음·고독의 문제를 묘사한다. “모든 것은 산 사람의 세계와 죽은 사람의 세계가 있고, 그것을 잇는 다리는 사랑이다”라고 작자는 술회하고 있다.
Ernest Hemingway (1899-1961) 미국 소설가. 시카고 교외 오크파크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네 자매와 두 형제의 장남. 음악을 즐기는 어머니와 낚시와 사냥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창작활동의 배경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문예에 흥미를 가지는 한편, 전쟁을 동경하여 1918년(19세)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 이탈리아 전선에서 다리에 중상을 입었다. 제대 후 전상(戰傷) 때문에 얻은 불면증으로 괴로워하지만 그 무렵부터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1921년 어떤 신문사의 특파원으로 유럽에 건너가지만, 앤더슨의 소개장으로 파리에 있는 스타인 여사를 만나게 되고, 시인 에즈라 파운드와 알게 된다. 이 두 사람은 헤밍웨이의 문학적 교사다. 몇 개의 단편을 발표한 후,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파리에서 방랑하는 미국의 젊은이들을 그려 베스트 셀러가 되고, 피츠제럴드, 포크너 등과 함께 ‘로스트 제너레이션’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이탈리아 전선에서의 체험으로 <무기여 잘 있거라>를 발표하고, 사랑과 죽음의 궁극을 그려 작가로서의 지위를 획득. 1930년대에 <오후의 죽음>(1932)을 내놓은 후, 아프리카 수렵여행의 체험에서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1935)을 출판하였다. 그리고 1936년 에스파냐 전쟁에 참가한 체험으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내놓았고, 그동안 일시적으로 좌익사상으로 기울어져 <가진 것과 안 가진 것>(1937)을 발표. 제2차 대전에는 특파원으로 근무하고, 귀국하여 <노인과 바다>로 퓰리처상을, 또 1954년도의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여 포크너와 더불어 미국 문단의 으뜸이 되었다. 20세기 문학에 참신미를 가하여 비정(非情)한 문체를 구사, 인간의 절망이나 허무감을 기교적으로 묘파(描破)했다. 만년엔 창작활동도 약해졌고 노이로제 증세로 자기의 엽총으로 자살했다.
The Sun Also Rises (1926) 헤밍웨이 장편소설. 파리시절에 스타인 여사에게 문학상의 지도를 받고 이 작품으로써 결실을 맺었다. 34세의 전쟁 미망인 브레트 아쉬리에게 매혹당한 젊은이들이 파리나 마드리드에서 향락적 생활에 미치는 이야기이다. 목적도 없이 정열이 원하는 대로 남녀가 음주에 정신을 잃는다. 육체도 정신도 불모(不毛)가 되어 다만 허무감만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잃어버린 세대’의 대표적 작품으로서 호평을 받았다.
A Farewell to Arms (1929) 헤밍웨이 장편소설. 19세 때 헤밍웨이는 이탈리아군 야전병원에 의용군으로서 참가했다. 다리에 부상을 입고, 또 전쟁에 대한 절망감을 스스로 깨달았다. 주인공 프레데릭 헨리는 야전병원의 운전수로서 전선에서 두 다리에 부상, 입원한 이래 간호원 캐서린 버클레와 서로 사랑한다. 캐서린의 임신을 안 두 사람은 탈주하여 스위스에서 겨울의 목가적 생활을 즐기고 봄에 출산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제왕절개 수술을 받고 낳은 사내 아이는 사산(死産)이었다. 캐서린도 많은 출혈로 불행한 죽음을 맞는다. 전쟁에 절망하고 사랑에 유일한 희망을 걸고 발버둥치는 남녀의 패배감을 허무주의적인 수법으로 묘사하였다. ‘잃어버린 세대’의 대표적 작품으로 등장하여 훼밍웨이를 미국 최고의 문학가로 올려놓았다. 사랑과 죽음의 한계 정황(情況)을 한 줄의 군말도 없이 묘사하여 20세기 실존철학에 영향을 주었다.
For Whom the Bell Tolls (1940) 헤밍웨이 장편소설. 1936년 에스파냐에 내란이 일어나 프랑코 장군 일파가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지원으로 공화정부를 넘어뜨리려고 했다. 헤밍웨이는 공화정부측을 지지하여 스스로 의용군으로 참가했다. 이 체험에서 작품이 쓰여졌으며, 당시 세력을 떨치고 있던 나치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미국인은 이 소설을 애독하여 금방 50만 부가 팔렸다. 정부군에 참가한 로버트 조단이 적중에 잠입하여 골짜기에 놓인 다리를 폭파한다. 그 사이에 파시스트에게 능욕을 당한 마리아와 사랑을 하게 되며, 적진으로부터 탈출할 때 로버트는 적의 포탄에 맞아 허벅다리를 부상당한다. 이 작품에서 필자는 전쟁을 체관(諦觀)하고, 여기에 절망하기보다는 이를 오히려 영웅시하고 있다. 스스로의 정의감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전쟁과 죽음을 극히 통속적으로밖에 바라보지 않는다.
The Old Man and the Sea (1952) 헤밍웨이 중편소설. 작자는 젊은 시절에 스포츠를 좋아했고, 장년시대부터 사냥이나 낚시가 취미였다. 멕시코만(灣)은 작자가 알고 있는 해도(海圖)이다. 주인공 산차코는 84일간의 흉어(凶漁)로 인하여 어부로서의 생활고를 겪고 85일째 늙은 몸을 채찍질하여 바다에 나갔다. 마침내 1천500파운드의 돛새치를 잡았다. 그러나 늙은 영웅은 육지로 돌아오는 도중의 잠깐 사이에 큰 상어떼에게 습격을 받아 뼈만 남은 돛새치를 배에 묶어가지고 돌아온다. 노년에 이른 작가의 인생에 대한 체관(諦觀)이 그려지고 있다. 노인 산차코는 용기와 힘의 상징인 사자의 꿈을 꾸지만 인간의 생명은 짧고 세상은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고 이 작품은 암시하고 있다. 퓰리처상을 받았다.
Thomas Wolfe (1900-1938) 미국 소설가. 노스캐롤라이나주 아사빌에서 8남매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1916년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 입학했다. 학생시절부터 극작가를 지망, 스스로 배우로서 주연했다. 1920년 하버드 대학 대학원에서 조지 베이커 교수의 지도를 받지만, 극작품의 평판(評判)이 좋지 않아 소설가로 전향했다. 일시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6년 유럽 여행과 동시에 집필하기 시작한 <천사의 교향을 보라>로 호평을 받지만 자전적(自傳的) 요소가 강해 고향사람들의 반감을 샀다. 그러나 조이스의 영향을 받은 이 한 작품으로 울프는 포크너와 더불어 남부문학의 일익(一翼)을 짊어졌다. 이에 루이스는 그를 격찬(激讚)했고, 포크너는 그의 순수한 생명감과 미래에의 학신에 공명하여 울프를 20세기 최대의 문학자로서 존경했다. 울프의 문학적 성공은 출판 편집자 맥스월 퍼킨스의 조력에 힘 입은 바가 크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훨씬 능가하는 울프의 원고는 퍼킨스에 의하여 정리되고 <시간과 강>(1935), <거미의 집과 바위>(1936) 등이라 하여 발표되었다. 다시 유고(遺稿)가 <너는 다시 고향에 돌아갈 수 없다> 라는 제명으로 출판되었다. 이 작품들의 대부분은 울프의 자전적 청춘상(靑春像)이었으며, 그 풍부한 감수성과 서정성 때문에 높이 평가 되고 있다. ‘로스트 제너레이션’ 작가보다는 몇 년 늦게 세상에 나와 절망이나 허무감 없이, 그리고 1930년대의 사회주의 사상에도 물들지 않은 채, 미국 미래를 늘 확신하면서 폐결핵으로 죽었다. 미국의 시대정신을 무시하여 휘트먼적 거대한 미래를 암시하고, 인간정신 속에 감추어진 무통일(無統一)의 사상에 통일을 찾고 있었다.
Look Homeward, Angel! (1929) 토머스 울프 장편소설. 작자의 조부 때부터 현대에 이르는 자전적 대하소설(大河小說). 제명(題名)은 밀턴의 <리시다스>에서 취하고 있다. 주인공 유진 간트가 하버드 대학에 진학하기까지의, 사춘기의 고뇌와 고독을 섬세한 감수성을 가지고 그려, ‘요마(妖魔)와 신들과 작은 천사들의 합창’이라고 하는 미국생활사(生活史)이다. 아름다운 서정적 세계가 전개되어 포크너로부터 격찬(激讚)을 받았다.
You Can’t Go Home Again (1940) 토머스 울프 장편소설. 작자의 유고(遺稿)를 정리·편집하여 출판한 자전소설(自傳小說). 1929년의 처녀작이 성공한 후, 조지 웨버는 런던이나 독일에 건너가 작가로서 독립하여 간다. 그가 기대한 독일은 히틀러가 지배하는 야만적인 전체주의 때문에 실망하고, 귀국 후 위대한 불멸의 국가는 미국의 재발견에 있다고 생각한다. 조국에의 신뢰감이 작품의 주조(主調)를 이루고 있다.
Margaret Mitchell (1900-1949) 미국 여류소설가.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변호사를 아버지로 하여 태어났다. 의사를 지원하여 스미스 대학에 입학했으나 어머니의 죽음으로 중퇴. 애틀란타 저널지(紙)의 기자로 근무하는 한편 남북전쟁을 주제로 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1937년 퓰리처상을 획득. 작품은 18개 국어로 번역되어 호평을 받았다. 그 후는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으며 자동차 사고로 허무한 일생을 마쳤다.
Gone with the Wind (1936) 미첼 장편소설. 남북전쟁에 조예가 깊은 아버지와 오빠를 비롯, 많은 역사적 자료를 구사하여 남북전쟁과 재건시대의 고향 애틀랜타의 모습을 남부측의 입장에서 그렸다. 퓰리처상을 받고, 다시금 18개 국어로 번역되어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았다. 조지아주 타라의 호농(豪農)의 딸 스칼렛 오하라는 자존심이 강하고 의지가 굳은 여성으로 애슐리에게 실연당하고 그 반항심에서 찰스와 결혼한다. 그렇지만 남편은 전사하고 싫어하던 버틀러와 재혼하여 몰락한 남부를 구제하려고 한다. 그러나 열렬했던 버틀러의 사랑은 식어버린다. 오하라는 좌절되는 일 없이 타라로 돌아간다. 비록 남부의 전통도 질서도 ‘바람과 함께’ 사라졌어도 오하라는 자기의 운명의 가능성을 찾아 줄기차게 살아 간다. 현대인의 공감을 부른 명작이다.
John Steinbeck (1902-1968) 미국 소설가. 캘리포니아주 살리나스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교사를 지낸 어머니의 영향으로 독서를 즐기고, 스탠퍼드 대학에서 그리스 고전·영문학·생물학에 흥미를 가졌고 밀턴, 브라우닝, D. H. 로렌스, 플로베르 등을 애독했다. 작가를 지망하여 대학을 중퇴, 1925년 뉴욕에 가서 잡다한 직업에 종사했다. 그 후 <황금의 술잔>(1929)을 출판했으나 평이 좋지 못했다. 1932년 로스앤젤레스로 옮겼다. <하늘의 목장>(1932)으로 목가적 자연과 가열(苛烈)한 인간을 그렸고, 다시 <알려지지 않은 신(神)에게>(1933), <토틸러 대지(臺地)>(1935)를 내었으나 무시되었다. 당시의 사회주의적 풍조에 마음을 두어 파업(罷業) 소설 <승산 없는 싸움>(1936), 백인 빈농의 좌절과 허무를 다룬 <생쥐와 사람>으로 호평을 받고, 그해에 단편집 <붉은 망아지>로 인간성의 선의(善意)를 찬양하였으며, <분노의 포도>로 토지를 빼앗긴 농민의 비극적 파탄과 불멸의 사랑을 묘사하여 퓰리처상을 받았다. 그 후 <달은 지다>(1942), <에덴의 동쪽> <불만의 겨울>(1961)을 출판. 1962년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1930년대의 미국사회와 인간을 주제로 한 고도의 서사적 소설과, 캘리포니아를 무대로 한 서정적 소설이 문학적 생명을 가지고 있다. <찰리와의 여행>(1962)이나 <미국과 미국인>(1966)에서 미국을 비판하고 있으나 평가되지 않고 있다.
Of Mice and Men (1937) 스타인벡의 중편소설. 캘리포니아주 살리나스의 백인 빈농 조지는 약간 어리석은 레니와 우정을 주고받는다. 동물을 좋아하는 레니는 생쥐를 귀여워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부주의로 유부녀를 죽인다. 쫓기는 레니를 조니는 권총으로 죽이고, 따라서 둘이서 농장을 가지려던 꿈은 사라진다. 생쥐와 인간의 계획은 재차 깨어지고 슬픔과 고통을 남긴다고 하는 번스의 시에서 제명이 붙여졌다.
The Grapes of Wrath (1939) 스타인벡의 장편소설. 1929년 10월에 일어난 주가(株價) 대폭락, 여기에 이어 1930년대의 경제적 불황(不況), 더욱이 1933년부터 2년간 중서부와 서남부를 휩쓴 큰 모래바람(大砂嵐)으로 20만의 농민이 농토를 잃고 난민이 된 사실이 소재로 쓰여졌다. 오클라호마의 조드 일가(一家)가 토지를 자본가에게 빼앗기고 직업을 구하여 캘리포니아로 패주(敗走)해 간다. 가족은 도중에서 죽기도 하고, 동행이었던 정신적 지주인 목사 케이시도 죽는다. 캘리포니아에 도착했으나 그곳은 홍수가 휩쓸었다. 마침 그곳에 있던 아사(餓死) 직전에서 허덕이는 생면부지(生面不知)의 남자에게, 사산(死産)한 로자산은 그녀의 유방(乳房)을 내민다. 제명은 줄리아 하우의 시에서 땄다. 인간의 절망과 구제를 그려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의 자본주의를 비판, 1940년도 퓰리처상을 받았다.
East of Eden (1952) 스타인벡의 자연소설. 제명은 구약성서 중에,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여 신의 분노를 사서 ‘에덴의 동쪽 노도의 땅’으로 옮긴 데에서 나왔다. 캘리포니아주 살리나스의 골짜기를 무대로, 해밀튼 일가와 트라스크의 아들 아담과 찰스를 중심으로 인간의 애증(愛憎)을 묘사했다. 선과 사랑, 죄악감, 인간 신뢰, 토지에의 애착 등 작자의 전부를 투입한 대작이다.
Erskine Caldwell (1903-1987) 미국 소설가. 목사인 부친과 고교교사를 모친으로 조지아주 화이트오크에서 태어났다. 순회(巡廻) 목사라는 부친의 직업으로 인하여 초등학교 때부터 전학을 많이 했으며 대학도 버지니아 대학, 펜실베이니아 대학에 적을 두었고 그 후 <사생아>(1929)를 발표하였지만 평판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터배코 로드>에서 백인 빈농을 그려 다음해에 극화(劇化)되고 7년반이란 미증유의 장기흥행에 성공하여 명성을 날렸다. 그 후 <신의 작은 토지> <순회 목사>(1935), <7월의 소동>(1940)에서 주로 조지아주를 무대로 빈농의 경제문제·흑인·섹스를 웃음속에 그려서 성공했다. 포크너, 울프 등과 같이 남부문학의 주역을 맡아 <사랑과 돈>(1954), <클로델 잉글리시>(1957) 외에 단편소설을 발표하여 대중의 인기를 모았다. 대표적 통속작가의 한 사람이라 할만하다.
Tobacco Road (1932) 콜드웰 장편소설. 조지아주의 백인 빈농(貧農) 지터 레스터는 담배를 재배하고 있다. 토지가 토박하여 모든 농민은 방적공장으로 들어가지만 레스터는 토지를 지킨다. 농민 일가의 탐욕과 성욕을 묘사하고, 최후에 레스터 부처는 소사(燒死)한다. 1933년에 극화(劇化)되어 7년반이란 경이적인 상연(上演)을 계속했다. 1930년대 미국사회의 불황(不況)을 줄거리로 하는 동시에, 휴머니즘과 유머가 작품의 기조를 이루고 있다.
God’s Little Acre (1933) 콜드웰 장편소설. 백인 빈농(貧農)의 사욕(私欲)과 성본능(性本能)을 노골적으로 묘사, 미국사회와 윤리를 비판했다. 종교에 열심인 타이 월덴은 농장 한쪽 구석의 작은 토지를 신에게 바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금광맥을 찾아 15년 동안 목화밭을 파 헤친다. 자식들은 자라고, 처참한 애욕행각을 전개시키고 있다. 성(性)과 유머가 이 작품의 어두운 이면을 지워버리고 있다. 6백만 부를 돌파한 초 베스트 셀러이다.
Richard Wright (1908-1960) 미국 소설가. 미시시피주 나체스 출신의 흑인작가. 양친의 불화로 교육도 받지 못하고 식당 종업원 노릇을 했다. 어느날 신문지상을 통하여 멘켄을 알게 되고 그 후 크레인, 톨스토이에게 마음이 끌렸다. 백인에의 항의소설 <흑인의 아들>(1940)로 인정을 받고, 자서전<흑인 소년>(1945)으로 흑인 차별의 현실을 폭로하여 흑인의 권리를 주장했다. 그러나 <아웃 사이더>(1953), <오랜 꿈>(1958)에서 항의문학으로부터 보편적 세계를 다루게 되었다. 그러나 에세이 <검은 힘>(1954), <백인이여 들어라>(1957)등 끝까지 흑인으로서 평등의 권리를 주장한 명작을 썼다.
William Saroyan (1908-1981) 미국 소설가·극작가. 캘리포니아주 플레스노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신문·전보 배달이나 신부름꾼 노릇을 하며 중학교 교육을 2년 동안 받은 뒤에는 독학을 했다. 단편소설 <용감한 청년>(1934)으로 문단에 데뷔, 이후 5백 편의 단편을 발표했다. 한편 극작 <나의 마음은 고원(高原)에>(1939), <그대의 일생 최고의 날>(1939) 등으로 인생의 페이소스를 그려 퓰리처상이 결정되었으나, 예술이 저널리즘에 침범됨이 마음에 들지 않아 수상을 거부했다. 소설 <인간 희극>(1943)에서 낙천적인 인간의 비애를 묘사하고, <웃음거리>(1953)에서는 사랑의 파멸·고독·열등의식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엄마 나는 좋아요>(1956), <아빠 싫어요>(1958)에서 인간심리의 복잡한 내면을 통찰했다. “죽음은 아름다운 여로의 끝이다. 나는 인생을 사랑하며 죽음 앞에서 겸허하다”고 사로얀은 말하고 있다.
Jerome David Salnger (1919- ) 미국 소설가. 유대계(系) 미국인으로 뉴욕에서 태어났다. 일시 뉴욕 대학에 적을 두고, 작가를 포함하여 빈으로 여행을 떠났으며 귀국 후 컬럼비아 대학에서 청강했다. 제2차 대전에서 노르망디 작전에 참가했다. 그 후 잡지 <뉴요커> 편집위원을 지냈다. 처녀작 <호밀밭의 파수꾼>(1951)에서 미국의 고독과 정의(正義)를 분석했으나 외설적(猥褻的)인 단어를 사용했다 하여 비난을 받았다가, 사회학자 리스만의 지지를 얻어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단편집 <아홉 개의 이야기>(1953)는 어느 정도 선(禪) 연구의 성과가 있으며 고독한 인간의 좌절과 명상의 세계가 암시되어 있다. <프래니와 주이>(1961)로 세속적 지성중심(知性中心)의 세상에 반발하고, <목공아, 들보를 높이 올려라>(1955), <시모아 소개>(1959) 등으로 작자의 자서전적(自敍傳的)이라고 생각되는 그라스가(家) 일대기의 완성을 꾀하고 있다.
Norman Mailer (1923- ) 미국 소설가·평론가. 유대계(系) 미국인. 뉴저지주 롱 브랜치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후 1944년 제2차 대전으로 레이테와 루손섬의 전투에 참가했다. <나자(裸者)와 사자(死者)>에서 군대란 조직의 악(惡)을 통렬히 묘파하고, 반전사상(反戰思想)을 표명하여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바바리의 기슭>(1951)으로 혁명가를 탄압하는 미국정부를 야유하고, <녹원(鹿園)>(1955)으로 헐리우드의 상업주의적 메커니즘을 추구하였으며, <아메리카의 꿈>(1965)으로 애증(愛憎)을 넘어 권력을 갈망하는 사나이를 그려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스스로 네오 마르크스주의를 제창하고, 정치·경제·문화활동을 모두 이 속에 결합시키려 하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한 광고>(1959)에 들어 있는 평론 <하얀 흑인> 이 증명하고 있다. 처녀작 이래 철저한 평화주의자로서 <대통령을 위한 백서>(1963)나 <식인종과 크리스찬>(1966)으로 대통령이나 우익을 공격하고, 또 월남전쟁 반대운동을 국내에서 추진하였다. <우리들은 무엇 때문에 월남에 있는가?> (1967)는 메일러의 휴머니즘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The Naked and the Dead(1948) 메일러 장편소설. 제2차 대전에 참가한 메일러는 전후 일본 지바현(千葉縣)에 주둔했다. 이 작품은 그동안에 구상된 것으로, 가공적인 남태평양의 섬 아노포페이를 무대로, 커밍스 장군이 인솔하는 사단이 일본군을 괴멸(壞滅)시키는 이야기이다. 그 격전 속에서 권력자 커밍스 장군, 지배욕에 사로잡힌 클로프트 중사를 비롯하여 비인도적인 군대조직을 폭로, 전쟁의 잔학성(殘虐性)을 실감있게 포착한 전쟁문학의 최고 걸작으로서 온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미국은 잠재적 에너지를 전쟁으로써 해결하려고 하지만, 병사는 누구 하나도 전쟁을 인정하지 않는다. 국가적 폭력에 의한 강박관념(强迫觀念)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설파하고 있다.
Truman Capote (1924-1984) 미국 소설가.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조숙하여 10세 때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때를 찾아서>나 플로베르의 소설을 읽었다고 한다. 학교를 싫어하고 17세 무렵부터 단편소설을 써서 <밀리엄>으로 오 헨리상을 획득하고, 일시 <뉴요커>지(誌)에서 근무하였으며, <딴 음성, 딴 방(房)>(1948)에서 13세 소년의 동성애와 몰락한 남부의 귀족계급을 그려 호평을 받았다. 다음 작품 <풀의 하프>(1951)에서 색다른 집단을 환상적 세계로 묘사하였다. 포크너의 후계자로서 남부 출신의 중요한 문학가로 지목되었으나, 뉴욕으로 옮겨 가서 <티파니에서 아침을>(1958)을 가지고 화려한 로맨티시즘의 세계를 펼쳤다. 이 외에 <지방색>(1950)을 비롯하여 단편집 <밤의 나무>(1956), <뮤즈의 소리를 듣는다>(1956)가 있다. 또 선량한 농민 일가의 사살(射殺) 사건을 모델로 한 <냉혈(冷血)>(1965)에서는 교수대(絞首臺)에서 사라지는 범인의 심리를 묘사하여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Saul Bellow (1915- ) 미국 소설가. 캐나다 퀘벡주 출신. 9살 때 시카고로 이주, 시카고 대학,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인류학을 공부하였다. 브리태니카 백과사전 편집에 참여하기도 했으나, 시카고 대학으로 복귀하고, 그 후 미네소타·프린스턴·뉴욕 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했다. <훔볼트의 선물>(1975)로 1976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뿐 아니라 세 번이나 미국도서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그의 첫 장편 <허공에 매달린 사나이>(1944)는 입대하기 전의 한 청년의 심정을 일기체 형식으로 쓴 것이며, <희생자>(1947)는 유대인과 이교도(異敎徒)와의 관계를 그린 그의 출세작이다. <오기 마치의 모험>(1953), <하츠오그>(1964), <비의 왕 헨더슨>(1959) 등은 사회가 개인에게 가하는 압력의 실체를 철저하게 추구하여 인간의 허무성을 표백(表白)했다. 중편소설로는 현대인의 고경(苦境)을 그린 <현재를 놓치지 마라>(1956)가 있고, 1964년에 공연된 희곡 <마지막 분석>이 있다. 이 밖에도 <새믈러 씨의 행성>(1970)과 여행기 <예루살렘을 다녀오다>(1976)가 출판되었다.
John Cheever (1912-1982) 미국 보스턴 출생. 세이아 아카데미를 졸업한 후에 작가를 지망하여 뉴욕으로 갔다. 4년의 군대생활과, 여대생들에게 작문을 가르친 기간을 제외하고는 작품활동에 전념하였다. 작품은 거의 <뉴요커(New Yorker)>지(誌)에 발표하였다. <커다란 라디오>, <몇 사람의 인생길>, <세니 힐의 강도> 등의 단편집들은 이를 모은 것들이다. <왑숏 연대기>(1958)와 <왑숏의 스캔들>(1964)은 성공적이고 탁월한 장편인데, 전자는 내쇼날북상을 받았다. 또한 사랑과 이해의 부족, 이에 따른 즉흥적 광기로 가정과 결혼이 파탄을 이룬다는 미국 물질문명을 드러낸 <사과의 세계>(1973)를 발표했다.
Brenard Malamud (1914-1986) 미국의 대표적인 유대계 소설가. 뉴욕에서 출생. 뉴욕 시립 대학과 컬럼비아 대학을 졸업하였고 후에 오리건 주립대학의 영문학 교수를 역임했다. 첫 장편 <천재 선수>(1952)로 문단에 데뷔했다. 그러나 작가로서의 명성과 지위는 다음 장편 <점원(店員)>(1957)을 발표한 후이다. 이것은 유대인 가게 주인과 이탈리아계 가게 점원과의 관계를 심리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또 <새로운 생활>(1961)과 <수리공>(1967)을 발표했다. 특히 후자는 러시아에 있어서 유대인 학대를 다룬 문제작으로 절망을 극복하고 희망에 눈을 뜨는 투옥된 한 수리공을 통해 인간적 성숙의 적나라한 면을 철저하게 파헤치고 있다. 단편집으로 <마법(魔法)의 통(桶)>(1958)과 <바보들이 먼저>(1963)가 있다.
Jack Kerouac (1922-1969) 미국 비트 제너레이션의 대표적 작가. 메사추세츠 출신. 컬럼비아 대학을 다니다가 시인이 되기 위해 남부를 방랑하고, 해군에 입대했다가, 2개월 만에 다시 학교로 복귀하는 등, 젊은 시절을 파란과 방랑으로 보냈다. 특히 대전 중에는 상선을 타고 대서양과 지중해를 방랑하고, 도보로 서부와 멕시코를 여행하였다. 이런 생활 속에서 질서도 의미도 상실한 사회의 획일적 부품에 지나지 않는 인간생활에 반발하여 현재의 감각적 도취에서 자아(自我)의 충족을 포착하려는 전후 미국 젊은 세대를 주제로 하여 <고을과 도시>(1950)를 발표했다. 그 후 7년간의 방랑생활을 결산하는 <노상에서>는 케루악 자신의 자전적(自傳的) 소설로써 도취의 세계를 찾아 전국을 표류하는 비트족의 바이블로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긴스버그 등과 교유(交遊)하면서 비트 제너레이션 문학의 대변자가 되었다. 이 밖의 작품으로 <다르마의 구걸>(1958), <지하생활자>(1958)로부터 <닥터 섹스>(1958), <매기 캐시디>(1959), <트리스테샤>(1960), <빅서>(1962), <제럴드의 꿈>(1963), <페허의 천사들>(1965) 등이 자연 발생적인 문장으로 구성과 체계를 갖추지 않고 쏟아져 나왔다. 시집으로는 <멕시코시티 블루스>(1959)가 있다.
Chandler Brossard (1922- ) 미국 소설가. 아이다호 출신. 워싱턴에서 소년시절을 보내고 동부 여러 도시를 전전하였으며, 유럽에서도 상당 기간 머물렀다. <뉴요커(New Yorker)> 및 <아메리칸 머큐리(American Mercury)> 등의 기자생활을 하였다. <누가 어둠 속을 걷는가?>(1952)는 미국 재즈광을 소재로 한 최초의 장편소설이다. <뻔뻔스런 방해자>(1953) 외에 몇 개의 장편을 냈고, <내 앞에 펼져진 광경>(1955)이란 수필집이 있다.
黑人作家小說 케네디 대통령의 등장으로 흑인시민권이 약속되어 일어난 흑인 인권운동으로 대중적 인기를 누린 자서전들이 많이 나오게 되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헤일 리가 펴낸 <말콤 X>(1965)와 브라운(Claude Brown)의 <약속의 땅에 있는 남자 아이>(1965), 그리고 클리버(eldrige Cleaver)의 <얼음 위의 영혼>(1968) 등이 있다. 헤일 리가 쓴 <뿌리>(1976)는 선조들의 아프리카에서의 삶부터 미국의 노예가 되기까지 이어진 작가의 가족사이다. 흑인 소설가 모리슨은 <술라>(19730, <어쩔 수 없는 일>(1981), <애인>(1987) 등의 소설에서 북부 흑인 여성들의 인생을 그렸다. 흑인 작가 워커(Alice Walker)는 <컬러 퍼플>(1982)을 써서 이름을 얻었다. 그는 영웅적인 흑인도 등장시키지만 결정적인 흠을 지닌 인물, 특히 여성을 부당하게 다루는 흑인 남성을 그리기도 했다. 모리슨처럼 워커의 문체도 점차 화려하고 창조적인 언어와 서술로 나아갔다.
James Arthur Baldwin (1924-1987) 미국 흑인작가. 뉴욕의 할렘에서 목사의 아들로 출생하였으며 유럽 각지를 여행하고 프랑스에 장기간 머물기도 하였다. 엘리슨과 함께 현대 미국 흑인의 대표적 작가. <그것을 산에서 말하다>(1953), <기요바니의 방(房)>(1956) 등에서 흑인의 고뇌와 체험을 기교적으로 그리고 있다. 대륙에 있어서의 미국인묘사는 특출하다. <시골아이의 노트>(1955) 등의 에세이가 있다.
John Updike (1932- ) 미국 시인·소설가. 10대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하버드 대학 재학시절에는 이미 서너 편의 장편을 썼다. 졸업 후 화가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옥스퍼드에 진학했다가 귀국 후 잡지 <뉴요커>의 편집을 맡으면서 계속 작품을 발표했다. 권태와 고독에 가득 찬 도회생활 속에 반복되는 인간의 잡다한 행동에 아무런 충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젊은이를 그리고 있다. 무엇을 할 것인지, 어디로 갈 것인지를 모르는 자들은 죽음의 입맞춤을 뿌리면서 헤매는 피에로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처량한 현대인을 다루는 업다이크는 섬세한 인내로써 이를 형상화하고 보편화한다. 1959년에 나온 처녀작 <구빈원(救貧院)의 축제날>(1959)은 미국 예술원상을 받았다. 그 후 <똑같은 문>(1959), <반수인(半獸人)>(1964), <달려라 토끼>(1960), <비둘기의 날개>(1962), <음악학교>(1966), <농장에서>(1965) 등을 발표했다. 1970년 국제 펜클럽 대회 때 한국을 방문하였다. <일요일들의 달>(1975)과 성(性)과 하늘이 내려준 보다 높은 의미와의 관계에서 허덕이는 남과 여의 사고와 행동을 벗겨 낸 <나를 즐겁게 해주오>(1976) 등의 문제작을 계속 발표했다.
美國詩 20세기의 초두까지도 고상하고 피상적인 경향만을 가지고 있던 미국시에 돌연스럽게 꽃이 피기 시작한 것은, 1912년 H. 먼로가 시지(詩誌) <포이트리>를 시카고에서 창간하여,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은 시인이나 유파(流派)를 소개한 것이 실마리가 되었다. 새로운 시가 사람들의 마음에 호소한 하나의 이유는 그것이 전통적인, 소위 ‘시적 용어’에서 스스로를 해방하여 강력한 생명이 넘치는 민중의 언어를 사용한 때문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등장한 주목되는 시인은 오랫동안 신문학운동의 선두에 서게 된 파운드, 음유시인적(吟遊詩人的) 인지, 심리적 통찰로 실패자를 그린 로빈슨, 자연주의적 수법을 가진 마스터스 등이다. 이 밖에 특히 눈에 띄는 사람으로서 뉴잉글랜드의 자연을 노래한 프로스트, 시카고의 소음을 시로 표현한 샌드버그 등이 있다. 파운드는 시에 있어서의 이미지를 중시하는 ‘이미지즘 운동’을 일으켜 A. 로웰, 둘리틀, 플레처나 영국 시인 D. H. 로렌스 외에 여러 사람을 한 무리로 하여 시단에 파문을 일으켰다. 1920년대가 되면 세련의 극에 도달한 고도(高度)의 시를 쓰는 스티븐스를 비롯하여 생생한 미국어를 구사하는 W. C. 윌리엄스, 문학적 실험을 시도한 커밍스, 어두운 인생관을 강력히 표현한 제퍼스, 서정시인으로서 S. 티스데일이나 E. V. 밀러 등이 나타났고, 1930년대에는 요절(夭折)한 천재 시인 H. 크레인, 사회의식이 강한 머클리스, 대중에게 친숙한 S. V. 베네 등이 나와 미국시를 살찌게 했다. 1940년대에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의 공백 기간을 거쳐 장로 시인(長老詩人)들의 활약상이 다시 빛을 내게 되었으며, 영국으로 귀화(歸化)한 T. S. 엘리엇은 예외로 치더라도 프로스트, 무어, 윌리엄스, A. 테이트, R. P. 워렌 등은 눈부신 업적을 쌓았다. 제2차 대전 후의 미국 시단은 백화만발(百花滿發)한 양상을 보여 R. 로웰, 레스크 등 세계적 명성을 가진 시인을 비롯하여 사피로, 비숍, R. 월버, R. 에버하트에서 비트 시인 A. 긴스버그에 이르기까지 유력한 시인군(詩人群)의 배출로 미국문학의 활력을 보여주고 있다.
Edwin Arlington Robinson (1869-1939) 미국 시인. 미국 신시운동의 선구자. 동부 메인주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에서 배웠다. “지나치게 강한 운명에 반항하여 허무한 노력을 되풀이하는 하나의 인간에게 비극의 세계가 있다”고 하는 그의 말에 근대의 어두운 인생관이 있다. <시집>(1921), <두 번 죽은 사나이>(1924), <트리스트람>(1927)으로 세 번 퓰리처상을 획득했다. 알기 쉽고 분명한 전통적 형식 속에 섬세한 뉘앙스와 암시적 효과를 거둔 시인이다.
Edgar Lee Masters (1869-1950) 미국 시인. 캔자스주에서 태어나 루이스타운과 시카고에서 변호사를 개업했다. 일약 세인의 주목을 끈 <스푼 리버 사화집(詞話集)>(1915)은, 지금은 죽고 없는 2백 여 명이 각기 묘소(墓所)에서 생전의 비밀을 말하는 형식의 시집으로서, 폭로적인 자연주의의 수법 때문에 논의의 대상이 되었으나 대성공을 거두고, 미국문학의 도표(道標)가 되었다. <신(新)스푼 리버>(1924)는 그 속편이다.
Amy Lowell (1874-1925) 미국 여류시인. 매사추세츠주 명문 출신으로 파운드가 중심이 되어 주창한 ‘이미지즘 운동’에 참가, 곧 이어 지도자가 되었다. <칼날과 양귀비 열매>(1914), <남자와 여자, 그리고 유령>(1916) 등의 시집이 있으며, 주로 자유시 형식을 사용했다. 평론으로서는 <존 키츠전(傳)>(1925), <근대 미국시(詩)의 여러 경향>(1917) 등이 있다.
Gertrude Stein (1874-1946) 미국 여류작가·시인.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출생. 1902년 런던으로 건너갔고, 다음해 파리로 옮겨가 살았다. 이른바 ‘로스트 제너레이션’의 이름을 붙인 장본인이며, 파리에 있는 그녀의 살롱에서 많은 작가와 화가들이 모였다. <3인의 여성>(1908), <미국인의 형성>(1925) 등 소설과, 자서전 <앨리스 B. 토클라스의 자서전>(1933), 시집 등이 있으며, ‘자동 기술(自動記述)’이라 일컬어지는 새로운 문체로써 알려졌다.
Robert Frost (1874-1963) 미국 시인. 뉴잉글랜드의 시인으로 알려졌지만 태어난 곳은 샌프란시스코이다. 아버지가 죽은 후 동부로 이사하여 다트머드, 하버드 양 대학에서 배웠으나 중퇴하고 시작에 몰두했다. 38세에 영국으로 건너가 조지 왕조의 시인과 교제하고, <소년의 마음>(1913), <보스턴의 북쪽>(1914) 두 개의 시집을 런던에서 출판, 시단에 데뷔하였다. 1915년에 귀국, 미국에서도 신진시인으로서 인정받았다. 뉴햄프셔주 농장에서 시작을 계속하여 <산(山)의 기간>(1916)을 간행, 그 후 애머스트 대학의 특별대우 교수로 지내면서 <뉴햄프셔>(1923), <시집>(1930)을 거쳐 <개척지에서>(1962)에 이르는 많은 시집을 세상에 내놓아 국민시인으로서 경애(敬愛)를 받고 만년에는 각지에 강연여행(講演旅行)을 했다. 퓰리처상을 네 번이나 탔다. 고(故)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에 자작시를 낭독하여 화제(話題)가 되었다.
Carl Sandburg (1878-1967) 미국 시인. 일리노이주 출생. 스웨덴계(系) 미국인으로서 소년시대부터 여러 가지 종류의 노동에 종사했고 후에 시카고의 <데일리 뉴스>지(紙) 신문기자가 되어 한편으로는 야성적(野性的)인 시를 썼다. <시카코의 시편(詩篇)>(1916), <옥수수 껍질을 벗기는 사람>(1918), <매연(煤煙)과 강철>(1920), <굿모닝 아메리카>(1928), <민중이여 옳습니다>(1936) 등 뛰어난 시집에 산업미국(産業美國)의 여러 양상(樣相)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일견하면 거친 소재를 다루고 있는 경우에도 밑바탕에는 섬세한 감수성과 유연(柔軟)한 정신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또한 그가 30년을 소비하여 집필한 1939년에 완성된 향토의 영웅전기 <에이브러햄 링컨전(傳)> 6권은 퓰리처 역사상을 받은 역작이다. 그는 앞에 보인 1918년의 시집에서도 퓰리처 문학상을 받았는데, 반(半)세기 이상에 걸쳐 미국시단의 제일선에서 활약한, 오랜 작품활동을 한 생명이 긴 시인이다.
Vachel Lindsay (1879-1931) 미국 시인. 일리노이주 태생. 흑인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또한 흑인들의 색채가 풍부한 표현이나 공상적인 미신, 기묘하게 끊겼다 이어졌다 하는 음악 등에서 영향을 받았다. <부츠 장군 천국에 들어가다>(1913)가 <포이트리>지(誌)에 게재되어 주목을 끌고, <콩고강(江), 그 밖의 시>(1914), <중국의 나이팅게일>(1917) 등에서 민중의 마음을 리드미컬하게 노래하여 유명하게 된 이색적인 민중시인이다.
Wallace Stevens (1879-1955) 미국의 시인. 펜실베이니아주 출신. 하버드, 뉴욕 양 대학을 졸업, 변호사가 되고, 그 후에 코네티컷주 하트퍼드의 재해보험회사에 입사, 부사장까지 되었다. 비즈니스와 시를 양립시킨 특별난 시인이다. 그는 자기 비평에 엄했으며, 44세 때 처음 간행한 시집 <소풍금(小風琴)>(1923)에 의해서 그의 천재성을 비평가에게 인정받았다. 그 밖에 <질서의 관념>(1935), <푸른 기타를 가진 사나이>(1937) 등을 출판, 영국에서 간행된 <선시집(選詩集)>(1954)도 있으며, 다시 75세 탄생을 기념하여 <전시집(全詩集)>(1954)이 출판된 후 곧 죽었는데, 그의 명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언어를 단지 의미 전달의 도구로 삼지 않고 언어 그 자체의 모양이나 음조(音調)를 효과적으로 써서 이 세계의 음영(陰影)을 나타내는 그의 시는 세련의 극에 달한 고도(高度)의 것으로 1950년에 볼링겐상(賞), 1955년에 퓰리처상을 획득했다.
William Carlos Williams (1883-1963) 미국 시인. 뉴저지주 라자퍼드에서 태어나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의학을 수업, 유럽에 유학한 후 계속 고향 마을에서 소아과를 개업하고 있었다. 병원 일을 보는 한편 많은 시를 써서 <시집>(1909), <봄과 모든 것>(1923), 장시<패터슨>(1946-58) 외에 많은 시집이 있으며, <초기 시집>(1951)과 <후기 시집>(1950)에는 훌륭한 단시(短詩)가 수록되어 있다. 이 밖에 소설 <이교국(異敎國)에의 뱃길>(1928), <흰 노새>(1937), 단편집 <시대의 검(劍)>(1928), 희곡<사랑의 꿈>(1948), <자서전>(1951) 등에서도 왕성한 필력을 보여주고 있다. 시에서는 이미지즘의 영향을 보이지만 후에는 스스로 ‘아메리카의 리듬’이라 이름 붙인 무운형식(無韻形式)으로, 일상 사물을 객관적으로 독자적 감각을 가지고 제시하는 수작(秀作)을 썼다. 그의 영향은 근년 급속하게 상승해 가고 있다.
Ezra Pound (1885-1972) 미국 시인. 20세기의 새로운 문학운동의 지도자. 아이다호주에서 태어나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배우고 중세문학과 프로방스 문학 등에 통달하고 있던 그는 1908년 이탈리아로 갔고, 그 후 런던·파리 등지에서 살면서 국적 이탈자가 되었다. 이미지즘이나 보티시즘(Vorticism) 등의 지도자가 되고, 또한 T. S. 엘리엇이나 조이스 등을 출세시키는 일에 진력했다. 시집으로서는 <꺼져버린 빛을 향하여>(1908), <환희(歡喜)>(1909)를 비롯하여 과거의 문화적 유산을 시에다 짜넣어 표현한 특이한 시풍을 가지고 명작 <휴 셀륀 모벌리(Hugh Selwyn Mauberly)>(1920)에 이어 생전에 필생의 작업으로서 계속 쓴 <칸토스(詩編>(1925-59)는 20세기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그 속의 <피사시편>에 대해서는 1948년도 볼링겐상이 주어져 화제가 되었다. <독서법>(1931), <독서입문>(1934), <품위 있는 논문>(1937) 등 평론, 중국 등 동양의 고전을 영역(英譯)한 것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이탈리아에서 파시시트의 선전 방송을 했던 까닭으로 전후 반역죄로 문책을 받았으나 후에 석방되어 만년을 이탈리아에서 보냈다.
Hilda Doolittle (1886-1961) 미국 여류시인. H.D. 라는 필명으로 시를 쓴 시인으로,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나 브린 모어 칼리지를 중퇴했다. 1911년 유럽으로 건너가 영국 시인 오르딘턴과 결혼(후에 이혼)했다. ‘이미지즘 운동’의 중심인물이 되었으며 주로 스위스에서 살았다. 그리스의 시를 사랑하고 조각한 듯한 정교(精巧)한 스타일의 시풍을 가졌다. <바다의 정원>(1916), <꺾인 꽃가지>(1946), <이집트의 헬렌>(1961)등의 시집이 있다.
John Gould Fletcher (1886-1950) 미국 시인. 아칸소주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후 수년이 지나서 1916년 영국으로 건너가 ‘이미지즘 운동’에 참가하였다. 1933년 귀국하여 <발광(發光)>(1915), <요마(妖魔)와 탑(塔)>(1916) 등 순수시의 음의 효과를 중시한 초기의 시집에서 차츰 시풍이 변하여 인간성에도 관심을 보였다. <인생은 나의 노래>(1937)라고 하는 자서전과 시집<불타는 산>(1946)이 있다.
Robinson Jeffers (1887-1962) 미국 시인. 피츠버그에서 출생. 캘리포니아의 해안에서 살면서 그곳을 배경으로 하는 서사시를 썼다. <캘리포니아 사람들>(1916)로 인정받고 <타머와 그 밖의 시(詩)>(1924), <얼룩 종마(種馬)>(1925)에서 <처음과 나중>(1963)에 이르는 약 15권의 시집 중에서 어두운 인생관을 강력한 가락으로 노래하였으며 긴 행(行)을 자유롭게 구사하여서 벅찬 테마를 기교적으로 표현했다.
Marianne Moore (1887-1972) 미국 여류시인. 미주리주에서 태어나 브린 보어 칼리지를 졸업한 후, 펜실베니아 학교에서 속기(速記)를 가르치기도 하고 뉴욕 공립도서관에 근무하기도 했다. 그 후 <다이얼>지(誌)의 편집자도 지냈다. 시집 <관찰>(1924)로 다이얼상을 받고, T. S. 엘리엇의 서문이 든 <선시집(選詩集)>(1935), <세월이란 무엇이냐>(1941), <그럼에도 불구하고>(1944) 등을 내었다. <전시집(全詩集)>(1951)은 볼링겐상과 퓰리처상을 받았다. 지적인 관찰, 정확한 이미지, 특이한 시형(詩形) 등으로서 그녀는 가장 독창적인 미국 시인의 한 사람으로 지목되고 있다. 라 퐁테느의 <우화(寓話)>를 영역하기도 하고, 평론집 외에 근래의 시집에는 <성채(城砦)처럼>(1957), <용이 되고파>(1960)가 있다.
Archibald Macleish (1892-1982) 미국 시인. 일리노이주 태생. 예일, 하버드 양대학에서 배우고 제1차 세계대전으로 프랑스에 출정(出征). 귀국 후 변호사를 개업한 후 문학에 전심했다. <상아탑(象牙塔)>(1917) 이후 장시 <정복자>(1932)로 퓰리처 상을 수상했다. 그의 사회적 관심은 <뉴펀들랜드>(1930)나, 몇 개의 방송국에서 엿보인다. 국무차관보나 유네스코 파리 주재 미국대표 등의 직에도 종사했다.
Edward Estlin Cummings (1894-1962) 미국 시인. 실험파 시인. 매사추세츠주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후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한다. 스파이 혐의로 프랑스 감옥에 들어가서 얻은 체험이 전쟁소설 <거대한 방>(1922)이 되어 나왔다. <튤립과 굴뚝>(1923)를 비롯하여 20여 권의 시집에 새롭고도 기이한 제목을 붙이기도 하고 색다른 활자를 사용하기도 해서 주목되었는데 시의 내용에는 서정적인 것이 많다. 통상 서명의 두문자(頭文字)에도 소문자를 썼다.
Hart Crane (1899-1932) 미국 시인. 오하이오주 태생. 랭보 또는 라폴그를 읽고, 16-17세기의 영국문학에서도 많이 섭취하여 빠른 성장을 이룩했으나 젊은 나이에 몸을 바다에 던져 자살했다. <하얀 빌딩>(1926)에서는 프랑스 상징시의 수법에다 날카로운 언어감각을 보여 서정과 형이상적(形而上的) 사고를 짜넣은 가작(佳作)이 많고 또 <다리>(1930)라고 하는 야심찬 대작은 미국정신의 서사시로서 가장 주목할 만하다.
Langston Hughes (1902-1967) 미국의 흑인작가·시인. 미주리주에서 나서 멕시코에서 영어교사를 지낸 후 컬럼비아 대학에 재학, 그 후 유럽을 방랑하고 귀국하고부터는 대체로 흑인이 하는 직업을 거의 경험했다. 제1시집 <피로한 브루스>(1926)로 호평을 받고 그 후 많은 시집 외에 <웃음없지 않다>(1930) 등의 소설이나 <큰 바다>(1940) 등의 자서전도 쓰고 다채로운 활동을 했다.
Theodore Roethke (1908-1963) 미국 시인. 미시간주 출생. 미시간 대학 졸업 후 하버드 대학의 대학원에서 학문을 닦았다. 각지의 대학에서 가르친 후 워싱턴 대학 영문학 교수가 되었다. 테니스의 명선수이기도 하다. <열린 집>(1941), <잃어버린 아들>(1949), 퓰리처상을 받은 <목표>(1953)에 이어 <바람을 위한 언어>(1958)로 볼링겐상을 포함한 7개의 시상(詩賞)을 받았다. 원초적인 분위기를 가진 시적 세계를 표현하고 유년시절을 보낸 농장이나 온실도 소재가 되고 있다. 그가 죽은 후 <먼 들판>(1964), <전시집(全詩集)>(1966)이 출간되어 이 시인의 재능을 다시 한 번 애석하게 했다.
Elizabeth Bishop (1911-1979) 미국 여류시인. 매사추세츠주 출신. 바사 칼리지를 졸업한 후 유럽을 여행했다. 제1집 <북과 남>(1946)은 비상한 주목을 받고 호튼 미플린 시상(詩賞)을 받았다. 과작(寡作)하는 시인으로 그 후의 시집으로는 앞의 것을 보충한 <북과 남 ― 추운 봄>(1955) <나그네의 문제>(1965) 정도밖에 없으나 그 모든 작품이 쉬르레알리즘과 이미지즘의 양자의 특색을 살린 작품으로서 그녀의 명성을 확고하게 하고 있다.
Karl Shapiro (1913-2000) 미국 시인. 메릴랜드주(州) 출신으로 버지니아, 존스 홉킨스 양(兩)대학에서 배우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남서(南西) 태평양 여러 곳에서 전투에 참가하였다. 그 사이 시작을 계속하였으며 <사람과 장소와 물건>(1942) 이후 많은 시집을 발표하고 작품 <군사우편>(1944)으로 퓰리처상(賞)을 받았다. 시카고의 <포이트리>지(誌)의 편집자로서 민완을 발휘하기도 하였으며, 반체제적인 유대계 시인으로 활약하고 있다. 또한 평론분야(評論分野)에도 활약을 보여 현대 미국시단의 추진력이 되어 있다.
Robert Lowell (1917-1977) 미국 시인. 현대 미국 시단의 중심적 시인의 한 사람. 보스턴의 명문 출신으로 하버드, 캐니언, 루이지애나 주립(州立) 각 대학(各大學)에서 공부하였다. 퓨리터니즘이 강한 지방의 출신이나 카톨릭으로 개종하여 이 양자의 요소가 작품에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제1시집 <상이(相異)한 나라>(1946)에 이어 <위어리 경(卿)의 성>(1946)으로 퓰리처상(賞)을 받았고, <인생연구>(1959)로는 전미국도서상(全美國圖書賞)이 수여되었다. 작품 스타일은 대담하며 극적 요소를 가지고 있고, 기발한 것을 찾지 않는 전통적인 맛이 있으나 우화(寓話)의 풍부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프랑스 시 등을 영역한 <모방(模倣)>(1961)도 있다. 그는 또한 반전 사상가(反戰思想家)로도 알려져 있다.
Allen Ginsberg (1926-1997) 미국 시인. 미국 뉴저지주의 페티슨 출신. 컬럼비아 대학과 버클리 대학에서 수학하였다. 부친은 유대계이며 모친은 소녀시절에 러시아로부터 이민 왔다. 유럽·라틴 아메리카·인도 등을 여행하고, 여러 가지 직업에 종사하기도 했다가,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했다. 인생의 안정과 영달의 길을 버리고 술과 마약과 재즈 속에서 반지성·반문화적 생활을 하면서 시를 썼다. 예술이야말로 말살당하는 인간상의 유일한 방위수단이라고 생각하면서 인간성의 원점에서 영혼과 밀착한 소박한 육성으로 부르짖는 것이 그의 시라고 할 수 있다. 비트 제너레이션 문학의 성전(聖典)이라고도 할 수 있는 <포효(咆哮)>(1955)를 비롯하여 <카디쉬>(1961), <텅 빈 거울>(1961), <리얼리티 샌드위치>(1963), (1967), <혹성(惑星) 뉴스>(1969) 등이 있다.
美國―演劇 식민지시대의 미국은 청교도사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연극은 바람직한 것이 못 된다 하여 발달을 보지 못하였다. 그래도 뉴욕, 필라델피아 그 밖의 도시에서 연극은 상연되고 있었으나, 영국이나 대륙 여러 나라의 수입 작품일 뿐 미국사람의 손으로 된 것은 거의 없었다. 이런 경향은 18-19세기를 통하여 변함이 없어 연극이라면 모두 스타 중심의 멜로드라마이거나 법석을 떠는 희극이었다. 19세기 후반에 들어서 조금씩 그 질(質)이 향상되고 사실극(寫實劇) 중에 다소 볼 만한 것이 등장하였으나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도 저수준(低水準)의 것이었다. 그러나 금세기에 들어와서 유럽의 근대극운동 등에 자극을 받아 1915년경부터 미국에도 실험적인 소극장운동이 일어나 그때까지의 대중적인 상업극(商業劇)에 대립하여 예술적으로 뛰어난 작품도 상연이 되도록 노력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등장한 오닐에 의해 미국연극은 비로소 세계적 수준에 달하게 되었다. 오닐은 1920-1930년대에 걸쳐 눈부신 활약을 하였고 그에 이어 M. 앤더슨, 라이스 등 우수한 극작가(劇作家)가 등장하였다. 오닐에게 있어 특출(特出)하였던 실험적 심리극(心理劇)뿐만 아니라 희극과 시극(詩劇)에서도 주목할 만한 작품이 출현하였다. 1950년대에는 불경기(不景氣)를 반영한 사회적 테마의 작품도 나왔다. 제2차 세계대전의 공백기(空白期)가 지나간 후 1940-1950년대에 걸쳐서는 T. 윌리엄스와 A. 밀러에 의해 대표되는 신세대(新世代) 작가가 바톤을 이어받아 각기의 작풍(作風)속에서 미국연극의 수준을 고수하였다. 윌리엄스 희곡의 특징은 시적인 개인들이 잔인하고 조잡한 현대의 삶 속에서 갈등하는 모습이다. 그의 희곡은 기본적으로 사실적이고 심리적인 것인데, 대표작으로는 <유리 동물원>(1945)과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47)가 있다. 밀러는 <세일즈맨의 죽음>(1949)에서 윌리 로먼이라는 세일즈맨의 고통을 비극적이고 엄숙하게 표현했다. 에드워드 올비는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라>(1962)에서 결혼과 우정 속의 애증을 신랄한 재기와 묘한 유머로 깊이 있게 다루었다. 올비는 또한 부조리극 형식의 <동물원 이야기>(1959)로 사회와 개인의 문제를 탐구했다. 이러한 부조리극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일어난 극운동으로 현대인의 삶에 깃든 부조리와 의미의 부재를 강조한 운동이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흑인 극작가들이 정치적인 주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핸즈버리(Lorraine Hansberry)는 <햇볕에 쬐어 말린 포도>(1959)에서 백인 거주 지역으로 이사한 흑인 가족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그렸으며 볼드윈(James Baldwin)은 <찰리 씨를 위한 블루스>(1964)에서 흑인과 백인 모두에게 정신적인 덫으로 작용하는 인종에 관한 신화를 주제로 삼았다. 시인 배러카는 희곡 <네덜란드 노예선>(1964) <노예>(1964), <노예선>(1967) 등의 작품을 써서 흑인 민족주의를 촉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윌슨(August Wilson)은 20세기 미국 흑인들의 경험을 힘찬 필치로 희곡에 담아 <피아노 교습>(1987)을 발표했는데, 피아노를 가족의 유물로 간직하느냐 파느냐를 두고 싸우는 남매를 그렸다. 레이브(David Rabe)는 <홈멜의 기초 교육>(1971)과 <막대기와 뼈>(1971) 등의 작품에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이 환상에서 깨어나는 모습을 그렸다. 셰퍼드(Sam Shepard)는 <진정한 서부>(1980)와 <사랑을 옹호하는 바보>(1983)에서 가족관계와 미국 사회의 정치를 지배하는 가치관에 대하여 신랄한 탐색을 시도하였다. 그 후 브로드웨이의 지나친 상업화에 따라 뮤지컬 이외에는 질적 저하가 현저하여지자 ‘오프 브로드웨이(Off Broadway)’라 불리는 새로운 소극장운동이 대두하여 체질개선을 꾀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Eugene O’Neill (1888-1953) 미국 극작가. 뉴욕에서 배우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중퇴 후 수년간 방랑생활을 보내다가 결핵으로 입원 중에 극작에 뜻을 두게 되었다. 그 후 피서지에서 요양(療養)중 소극장 운동에 참가하였다. 우수한 단막극을 계속 발표하여 주목을 받았다. 최초의 장편 <지평선 너머>(1920)로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후 많은 작품을 계속 발표하여 극단(劇壇)의 제1인자가 되었다. 초기작품은 자연주의 색채가 농후하나 <황제 존스>(1920)와 같은 대담한 실험적 작품도 많다. <느릅나무 그늘의 욕망>은 그러한 것들을 집대성(集大成)한 걸작이다. 그리고 그 후에는 점차 철학적 경향을 더해 갔다. 그리고 수년이 걸린 대작 <이상한 막간극(幕間劇)><상복(喪服)이 어울리는 엘렉트라>(1931)등이 발표되었다. 후자는 현대의 그리스극(劇)이라고 할 웅대한 구상(構想)의 작품이다. 1936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후 점점 병에 시달려 계획중인 야심작도 완성을 보지 못하였다. 어두운 전쟁 기간에는 <얼음장수 오다>(1946)와 같은 허무적(虛無的) 작품과 적나라(赤裸裸)하게 부모나 형을 묘사한 자서전적인 작품 <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s Journey into Night)>(1956) 등을 발표하였다. 개인적으로는 비참한 말년이었으나 사후에도 그 유작이 계속 발표되어 화제(話題)를 낳았다. 격렬한 인간탐구(人間探究) 의욕이 고도의 극작술로 뒷받침된 오닐의 작품들은 오래도록 세계 연극사상기념비로 남아 있을 것이다.
Desire Under the Elms (1924) 오닐 희곡. 1850년경의 뉴잉글랜드의 농가를 무대로 70세된 아버지 카보트, 그의 젊은 세 번째 아내 아비, 전처 소생(所生)의 아들 에벤 등 세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물욕과 정욕의 갈등을 묘사한 작품이다. 3부 12장(場)으로 된 긴밀한 구성은 작가의 원숙한 극작술을 나타내는 것이다. 모성(母性)의 상징인 느릅나무와 엄격한 뉴잉글랜드의 농부생활을 암시하는 돌울타리, 이것으로 둘려있는 2층으로 된 농가 등은 효과적인 배경을 이루고 있다. 숨막히는 애욕의 싸움이 영아살해라는 무서운 죄로써 청산되는 종막까지 촌분(寸分)의 여유도 주지 않고 고도의 긴장을 계속하며 전개되는 역작이다.
Strange Interlude (1928) 오닐 희곡. 여주인공 니나는 전쟁으로 약혼자를 잃고 결혼한 남편에게 정신병의 피가 흐름을 안다. 억압된 그녀의 욕정은 남편 몰래 의사의 아이를 갖는다고 하는 비뚤어진 해결책을 구한다. 마침내 남편은 급사하고 자식도 성장하여 어머니 곁을 떠난다. 고독한 니나는 아버지뻘 애인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그 품에 얼굴을 묻는다. 20여 년에 이르는 여주인공의 애욕의 심리를 상연(上演)에만 5시간 이상이 걸리는 대작(大作)으로 만든 작가는 통상적 대사와 내심(內心)의 소리를 따로따로 구사하는 대담한 실험(實驗)을 시도하여 화제를 모았다.
Elmer Rice (1892-1967) 미국 극작가. 뉴욕에서 출생하여 법률을 전공하나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 극작에 전념하였다. 영화의 컷백(cut back) 수법을 응용한 처녀작을 위시하여 초기의 작품에는 표현주의적 기교를 이용하여 성공을 거두고 있다. 계산기의 등장으로 실직한 늙은 사원을 주인공으로 하여 인간의 로봇화(化)를 풍자한 <계산기>(1923)가 유명하다. <거리 풍경>으로 그 지위를 굳혔으나 그 후의 작품은 그에 필적할 만한 것이 드물다. 공상적인 여성의 의식의 흐름을 다룬 <꿈꾸는 처녀>(1945)가 다소 주목을 받고 있다. 전후(2차대전)에는 극단의 지도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Street Scene (1929) 라이스 희곡. 잡다한 국적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뉴욕의 변두리에 있는 아파트를 배경으로 대도시의 한 단면을 묘사한 작품이다. 극장의 장치계원(裝置係員)이 그의 아내와 아내의 정부(情夫)인 우유배달부를 살해하는 사건을 중심으로 하나, 극적 흥미는 오히려 아파트 전체를 맴돌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정념(情念)의 갈등에 있다. 라이스의 그때까지의 작품과는 달리 사실(寫實)로 일관하고 있고 다수의 인물을 교묘히 구사하고 있다. 퓰리처상(賞)을 받았다.
(1920) 오닐 희곡. 농장 울타리 옆 해묵은 느티나무 아래에서 책을 읽던 로버트는 고개를 들어 멀리 수평선을 바라본다. 그는 몸도 약한데다 가정 형편이 넉넉지 못하여 휴학하고 선장인 외삼촌을 따라 항해 생활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가 고향을 떠나고 싶어하는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그의 형 앤드루의 아름다운 애인 루스를 남몰래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떠나기 전 루스를 만나 자신의 감춰두었던 사랑을 고백하는데, 뜻밖에도 루스 역시 로버트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형 앤드루는 두 사람을 축복해 주며 떠나고 만다. 로버트와 루스는 결혼하여 딸 메리를 낳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죽고, 농장 경영의 경험이 없는 로버트는 점점 생활에 쪼들리게 되어 부부싸움도 잦아진다. 3년 후, 앤드루는 늠름한 모습으로 돌아오고, 루스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눈치 챈 그는 다시 먼 곳으로 떠난다. 그로부터 몇해가 지난 뒤, 루스는 앤드루에게 메리는 죽고 로버트는 병세가 약화되었다는 소식을 알린다. 앤드루는 고향에 돌아와 동생을 살리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였으나 동생은 끝내 죽고 만다. 오닐은 미국 최초의 극작가인 동시에 세계적인 극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이상주의자인 형 앤드루와 현실주의자인 동생 로버트의 두 성격을 대비시켜 놓고 그들이 각각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그리고 있다. 그는 흑인을 주인공으로 한 희곡으로 미국 최고의 문학상인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Sidney Kingsley (1906- ) 미국 극작가. 뉴욕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 후 배우 등을 하면서 극작에 힘써 의사의 양심을 테마로 한 <백의(白衣)의 사람들>(1933)은 뉴욕 빈민가(貧民街)를 배경으로 한 사회극이다. 전후의 작품으로는 형사의 인간성을 다룬 <탐정 이야기>(1949)와 독재정치 비판의 <대낮의 암흑>(1951)등이 문제작으로 되어 있다.
William Inge (1913-1973) 미국 극작가. 캔자스에서 출생하여 대학 졸업 후 교사, 기자 등을 하는 한편 극작에 힘을 기울여 <그리운 시바여 돌아오라>(1950)로 성공을 보았다. 중서부의 소도시에 사는 중년부부의 위기(危機)를 묘사한 작품이다. 그 다음 작품인 <피크닉(Picnic)>(1953)도 중서부 시골 소읍(小邑)이 무대로 되어 있고 건장한 떠돌이 청년을 시골처녀들 사이에 등장시켜 그녀들의 심리적 동요상(動搖相)을 부각(浮刻)시킨 작품이다. <버스 정류장(Bus Stop)>(1955)에서는 눈으로 꼼짝 못하게 된 버스 승객들 간에 전개되는 드라마를 희극적인 터치로 처리하여 호평을 받았다. T. 윌리엄스, A. 밀러의 뒤를 이어 극단의 희망으로 지목되었으나 그 후 점차 매너리즘에 젖어드는 경향이 있다.
Tennessee Williams (1911-1983) 미국 극작가. 미시시피주(州)에서 태어나 번민 많은 청춘시절을 보내면서 시·극·소설을 계속 집필하였다. 최초의 희극 <천사(天使)의 싸움>(1940)은 실패로 그치고 오랜 방랑생활이 계속 되었으나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일하면서 집필한 <유리 동물원>이 성공을 거두었다. 다음 뉴올리언스에 가서 집필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電車)>로 퓰리처상을 수상하고 전후(2차대전) 미국연극의 새로운 기수로 지목받게 되었다. <여름과 연기(煙氣)>(1948)에서도 전작(前作)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성(性)의 억압이 테마로 되어 있으나 그 다음의 두 작품에서는 억압에 고통을 받으면서도 좌절(挫折)하지 않고 강하게 자기를 주장하는 야성적 여성이 주인공이 되어 있는 것이 주목을 끈다. <장미 문신(薔微文身)>(1951) 속의 세라피너와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속의 매기가 그런 유형의 여주인공이다. 그러나 매기가 사는 세계는 <장미 문신>의 밝은 남국적인 배경과는 달리 검디검은 인간의 욕망의 흙탕이며 다음에 집필한 세 작품에서는 그 어두운 배경이 한층 더하다. 그리고 극의 중심은 여성에서 벗어나 작자를 대변하고 있다고 보이는 고독한 시인들로 옮겨진다. <지옥의 오르페우스>(1957) 속의 기타의 음산한 음률, <올여름 갑자기>(1957) 속의 시인의 무참한 최후는 이 당시 윌리엄스의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극도의 고독한 세계를 응시(凝視)하는 작자의 자세는 <조절 기간(調節期間)>(1960)이나 <이그아나의 밤>(1961) 등 그 후의 작품에 있어서도 별로 변화를 보이지 않은 것 같다. 희곡 외에 소설·시나리오·시집 등이 있다.
The Glass Menagerie (1944) T. 윌리엄스 희곡. 작자의 청춘시절의 한 시기(時期)에 해당하는 불경기시대의 세인트루이스를 배경으로 하여 남부 출신으로서 옛 추억에 젖는 어머니와, 다리가 불구이고 극도로 내성적인 누이를 등장시키고, 여기에 이야기꾼을 겸하는 문학청년인 동생과 친구이자 누이의 옛 급우(級友)인 ‘방문자’가 서로 얽혀 등장한다. ‘추억의 극’이라고 불리는 것과 같이 감미로운 서정이 넘치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이 극은 무대장치나 음악의 사용에도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는 작품이다.
A Streetcar Named Desire (1947) T. 윌리엄스 희곡. 몰락한 남부 농원의 딸인 노처녀 브랜치가 뉴올리언스에 사는 동생을 찾아 그곳에서 기식(寄食)한다. 동생의 남편인 거친 공원(工員) 스탠리는 귀부인 태(態)를 내며 자기를 깔보는 브랜치의 일거일동(一擧一動)이 비위에 거슬려 친구에게서 전해들은 그녀의 과거의 비밀을 폭로한 후 분만(分娩)하기 위해 입원한 아내를 보내고 난 그날 밤 브랜치를 거칠게 자기것으로 만든다. 마침내 정신에 이상이 생긴 그녀는 의사에게 인도되어 떠나간다. 불나방같이 무른 브랜치의 퇴폐미(頹廢美)를 사랑하면서도 이에 빠져버리지 않고 건강한 상식인(常識人)인 사나이를 등장시켜 그 현실도피의 속임수를 폭로케 하여 고도의 비극성을 달성(達成)한 걸작이다.
A Cat on a Hot Tin Roof (1955) T. 윌리엄스 희곡. 남부 대농원주(大農園主)의 저택을 무대로 암(癌)이란 진단이 내려진 노주인을 둘러싸고 친족들이 추한 물욕을 노출시키는 것을 묘사한다. 노인이 사랑하는 둘째아들은 허무의 세계로 도피하는 알콜 중독자가 되고, 그의 아내 매기는 불안한 아내의 위치에서 고독한 싸움을 계속한다. 억압된 성(性)을 분석하고 인생의 허위와 진실의 본질을 추구하는 역작이다. 극의 결말(結末)을 둘러싸고 작자와 연출자의 의견이 대립하여 문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Herman Wouk (1915- ) 미국 소설가·극작가. 뉴욕에서 출생하여 대학 졸업 후 제2차 세계대전에 해군장교로 출전, 전후에 작가가 되었다. <케인호(號)의 반란>(1951)은 미국의 소해정(掃海艇) 상의 함장과 장교 간의 대립을 묘사한 작품으로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일부를 극화한 <케인호 반란의 군법회의>(1954)도 호평을 받았다. 그 밖에 소설 <메조리 몽그스타>(1955)등이 있다.
Arthur Miller (1915-1980) 미국 극작가. 뉴욕에서 태어나 갖가지 직업을 전전하다 미시건 대학에 입학하여 재학 중에 발표한 희곡으로 상을 받았다. 그 후 뉴욕으로 돌아가 극작을 계속하여 <모두 내 아들>(1947)로 비로소 성공을 거두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불량 군수품(不良軍需品)을 납품하여 사고(事故)를 내고 그 죄를 동료(同僚)에게 뒤집어 씌워 화를 면하는 사업가와 이상주의적인 그의 아들과의 대립을 핵심으로 개인과 사회간의 연대(連帶) 문제를 제기한 작품이다. 이어 발표된 것이 대표작 <세일즈맨의 죽음>인데 이것에 의해 밀러는 T. 윌리엄스와 더불어 미국극단을 대표하는 제1인자로 지목되었다. 입센의 <민중의 적>을 번안(飜案) 상연(1950)한 후 <도가니(The Crucible)>(1953)를 집필하였다. 그 작품은 18세기의 살렘항(港)의 마녀재판(魔女裁判)을 취급하여 광신적(狂信的) 선동이 시민의 양식을 유린(蹂躪)하는 과정을 묘사한 역작이다. 이즈음 밀러 자신도 메카니즘의 선풍에 말려든다. 그 다음 작품 <브루클린교(橋)의 전망>(1955)은 밀입국(密入國)한 가난한 이민가족의 가정을 무대로 인간의 사랑과 책임의 문제를 추구하고 있다. 그 다음해 유명한 영화배우 마릴린 몬로와의 결혼으로 화제를 던진 그는 극작의 붓이 무디어져 있었으나 이혼 후 뉴욕의 새로운 연극 센터의 개관(開館) 기념작품으로 <실추(失墜)의 뒤>(1964)를 제공하였다. 몬로를 모델로 한 여성이 등장하는데 인간의 숙명적인 애증(愛憎) 관계를 응시하는 작자의 눈은 어두운 것이었다. <비시에서의 사건>(1964)에서는 나치스의 유대인 박해(迫害)를 초점으로 하여 이 작가의 중요한 테마인 연대(連帶)의 문제가 재차 취급되고 있다.
Death of Salesman (1949) 밀러 희곡. 주인공 윌리 로만은 이미 60세가 넘은 시대에 뒤떨어진 세일즈맨으로 아직도 보험이나 월부 부금(賦金)에 쫓기고 있으면서도 화려한 과거의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시대의 패배자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전직(轉職)을 희망하였다가 오히려 해고(解雇)를 당하고 아들에게 걸었던 꿈도 깨어진 후, 그는 가족을 위하여 보험금을 타게 하려고 자동차를 폭주(暴走)시켜 죽고 만다. 미국사회에 있어서 성공의 꿈을 지닌 비참(悲慘)한 희생자의 말로(末路)를 묘사한 작품이다. 현실과 과거의 교착(交錯)을 교묘히 무대 위에서 처리하고 주인공 윌리의 의식의 흐름을 묘사한 기교(技巧)는 특히 뛰어난 바가 있다. 전후의 미국연극을 대표하는 명작 중의 하나이다.
美國―文學評論 17-18세기의 미국은 아직 건국의 부산한 초창기에 있었고 또 퓨리터니즘과 실리주의(實利主義)의 중압(重壓) 아래 있어서 문예평론(文藝評論)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수준급(水準給)에 오른 평론은 19세기 중엽 에머슨과, A. 포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에머슨은 <미국의 학자>를 통해 미국의 지적 독립을 주장하였고 포는 미(美)와 문예의 사회적 인습(因習)으로부터의 독립을 역설하는 동시에 후일 미국 평론분야의 중요한 원천(源泉)이 되는 정밀(精密)한 기술평론을 행하였다. 1865년 남북전쟁이 끝나자 미국문학에 리얼리즘이 대두되었는데 그 중심이 된 것은 호웰스였다. 그는 리얼리즘 이론을 주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소설에 있어서 이를 실천하여 그 본보기를 보였다. 동시에 H. 제임스는 리얼리즘을 주장하는 한편 예술적 완성(藝術的完成)의 필요성을 지적하였다. 20세기는 ‘평론의 시대’라고 생각될 정도로 평론이 성황(盛況)을 보이고 있다. 1910년대에 멘컨 등이 진정 미국적인 힘을 간직한 문학의 출현을 갈망(渴望)하였다면, 1920년대에는 파운드, T. S. 엘리엇 등이 심미적인 입장에 입각한 유럽 문학의 재편성을 시도한 시기이다. 1930년대의 대공황 시대에는 휙스(G.Hicks 1901-1982) 등에 의해 행해진 마르크시즘적인 문학평론이 있었으나 심미파(審美派)의 ‘신평론(新評論)’이 랜섬, 테이트 등에 의해 시작되어 1940년대에는 그 정밀한 문예해석(文藝解釋) 방법이 일단 확립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또한 이런 추세에 대해 강력한 저항(抵抗)도 이미 대두되고 있는 데에 복잡다단(複雜多端)한 바가 있다.
Henry Louis Mencken (1880-1956) 미국 평론가. 볼티모어 출신으로 일찍이 저널리즘의 세계에 투신하여 처음에는 잡지 <스마트 세트(Smart Set)>의 문예란을 담당하여 그 능력을 발휘하였다. 1924년 <아메리칸 머큐리(American Mercury)>지(誌)를 창간하여 문단을 지배하는 점잖은 문학과 청교도주의 등에 우상 파괴적인 공격을 퍼부었으며 거친 미국적 힘을 간직한 드라이저, 루이스 등을 후원하며 논단의 중심이 되었다. 그의 이러한 에세이들은 <서언집(序言集)>(1917), <편견록(偏見錄)>(1919-27) 등에 수록되어 있다.
John Crowe Ransom (1888-1974) 미국 평론가·시인. 테네시주(州) 출신으로 남부의 모교(母校)인 밴더빌트 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퓨지티브(Fugitive)>지(誌)를 발행하여 남부 농본문화(農本文化)를 수호하는 운동을 일으켰다. 그 후 캐년 대학으로 전임(轉任)하여, <캐년 리뷰>지를 창간(1939), ‘신평론’운동의 기수(旗手)로서 문학의 자율성 주장과 시어(詩語)의 분석을 추진하여 큰 영향을 주었다. 저술로는 <신평론>(1941), <세계의 본체>(1938) 등이 있으며 시인으로서도 고명(高名)하다.
Allen Tate (1899-1979) 미국 평론가·시인. 밴더빌트 대학을 나와 곧 <퓨지티브>지에 가담하여 남부 농본주의 운동을 개시하고 그 후 여러 대학에서 영문학을 강의하며 <세와니 리뷰> 등 문예지(文藝誌)를 편집, ‘신평론’운동을 추진하였다. 시어(詩語) 분석에서 출발하여 종교·문화론까지 다루었다. 그의 현대 문명비판은 예리한 것이며 그 저술로는 <반동적 에세이>(1936), <미친 이성(Reason in Madness)>(1941) 등이 있고 시인으로서도 유명하다.
Cleanth Brooks (1906- ) 미국 평론가·교육가. 루이지애나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문예지 <사잔 리뷰>를 편집하였으며, 랜섬, 테이트 등의 ‘신평론’을 인정하여 그 방법을 발전시켜 조직화된 대학 교재(大學敎材) <시의 이해(理解)>(1938)를 워렌과 공동저술하여 문학교육에 일대 혁신을 일으켰다. 또 <잘 만들어진 단지>(1947)에서는 ‘신평론’에 의해 영시(英詩)의 재평가(再評價)를 행하고 있다.
Robert Penn Warren (1905-1989) 미국 평론가·소설가·시인. 밴더빌트 대학 학생시절부터 랜섬, 테이트 등의 남부 농본주의 운동에 가담하였다. 후에 루이지애나 대학에서 교편을 잡아 <시의 이해>를 브룩스와 공저(共著)로 출판하였다. 그 밖에 <비평선집(批評選集)>(1958)이 있다. 그리고 소설가로서도 이름이 알려져 <모두 대왕(大王)의 백성>(1946)으로 퓰리처상(賞)을 수상하였다. 이 소설은 그의 걸작으로서 정치문제에 휩쓸려 들어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여러 사람들의 윤리적 심리적 갈등을 극명하게 그린 것이다. 그는 시집 <약속>(1957)으로도 퓰리처상(賞)을 받았다. 그리고 <인종차별>(1956)과 <남북전쟁의 유산>(1961) 같은 깊은 통찰이 담긴 에세이도 있다.
Sidney Sheldon (1917- ) 미국 현대 작가.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시드니 셀던은 가장 재미있고 박진감 넘치는 소재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천부적인 소설가라고 할 수 있다. 시카고에서 태어난 그는 불과 17세의 나이에 헐리우드로 진출하여 시나리오 작가로 명성을 얻었다. 영화 <독신남과 사춘기 소녀>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 많은 TV시리즈 대본도 썼으며 1970년 처녀작 <벌거벗은 얼굴>로 에드가 문학상을 수상, 그해 뉴욕 타임즈가 뽑은 “올해의 최고 추리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언어의 마술사”라는 평을 들을 만큼 그의 유려한 문체는 정평이 나 있고, 현재 그의 저서들은 거의 모두가 40여 개 국어로 번역되어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깊은 밤 깊은 곳에> <게임의 여왕> <내일이 오면> <찬란한 혈통> <천사의 분노> <신들의 풍차> <거울속의 이방인> <마이더스> <영원한 것은 없다> 등이 있다.
Raymond Carver (1939-1988) 미국 현대 작가. 1939년 오레곤 주 크레츠카니에서 태어나, 1988년 8월 2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워싱턴 주 포트 앤젤레스에서 거주. 1979년 구겐하임 펠로우로 선정되었으며, 두 차례에 걸처 내셔날 인도우먼트의 예술기금을 받았다. 1983년 밀드레드 앤드 해롤드 스트라우스 리벙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85년에는 <포이트리> 잡지의 제번슨상 수상, 1988년 아메리칸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하트포드 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소설로는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 <숏컷> <부탁이니 제발 조용히 해줘> 등이 있고 커버는 이들 소설집을 통해 애드거 앨런 포 이후 미국 최고의 단편 작가로 뽑히며 1980년대 미국 문단의 단편소설의 르네상스를 가져온 장본인이다.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영화 <숏컷>은 그가 쓴 여덟 편의 단편과 한편의 시로 구성된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작품을 쓰겠다”고 천명한 미대륙의 국민시인 워즈워스 이후 일상어로 작품을 쓰는 데 성공한 이백년 만의 작가로 미국 문학사는 그를 기록하고 있다.
Michael Crichten (1942- ) 미국 현대 작가. 마이클 클라이튼은 1942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하버드 칼리지와 하버드 의대를 졸업하고 1969년 캘리포니아 라졸라의 솔트 인스티튜트(Salk Institute)에 최고 연구진으로 참여했다. 그 후 <안드로메다 스트레인> <터미널 맨> <대열차 강도>를 비롯한 네 작품의 영화에서 감독의 역할도 훌륭히 해냈다. 1988년부터 크라이튼은 매사추세츠 기술 연구소(M·I·T)의 객원 작가로 활동하던 중 컴퓨터와 유전공학, 현대 물리 등 첨단 과학에 대한 방대한 양의 지식이 동원된 <쥬라기 공원>을 발표했다. 주요 저서로는 <쥬라기 공원>, <잃어버린 세계>, <폭로> 등이 있다.
Stephen King (1947- ) 미국 현대 작가. 1947년 미국 메인주 포틀랜드에서 태어났다. 1970년 메인 주립대학 졸업 후 고교교사를 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1974년 <캐라>를 발표하면서 호러추리작가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쇼생크 탈출> <미저리> <돌로레스 클레이본> 등의 원작자로 잘 알려져 있는 미국 최고의 공포 추리소설 작가이다. 그는 공포소설뿐만 아니라 모험 SF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와 풍부한 상상력을 종횡무진 쏟아아냄으로써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외국에서는 비행기로 장거리 출장을 다니는 여행자들 대부분이 스티븐 킹의 페이퍼 백 소설을 한 권씩 들고 탈 정도라고 한다. 그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장시간의 비행이 결코 지루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유의 화려한 문체와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 구성은, 독자들이 그의 소설을 읽고 난 다음에는 한동안 다른 작가의 소설을 읽지 못할 정도의 흡입력을 지니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캐리> <용의 눈> <늑대인간> <캐슬록의 비밀> 등이 있다. 지금도 몇 편의 작품들은 계속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있는 이 시대 최고의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Robin Cook 미국 현대 작가. 미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메디컬 스릴러의 창시자인 의학박사 로빈 쿡(Robin Cook)은 콜롬비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쳤다. 현재는 아내 바바라와 함께 폴로리다에 살면서 의사로서, 또 작가로서 현대 의학윤리를 질문하는 소설들을 의욕적으로 써내고 있다.탄탄한 구성과 의학 스릴러로 미스테리 분야에 새로운 장을 연 그의 출세작 <코마>에 이어 <브레인> <죽음의 신> <돌연변이> <바이탈사인> <바이러스=Outbreak> 등에서 의학계의 지적 우월주의와 의학 만능주의가 만들어낸 괴물을 등장시켜 그의 해박한 과학지식과 의학지식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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