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글)에 몰두하거나 성공적으로 몰두한 사람들에 관해서는 나는 그들에게 절대로 시를 포기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시는 가장 수지가 맞는 예술 중의 하나다. 허나 그것은 늦게야 그 대신 막대한 이자를 받게 되는 일종의 투자다.”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가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충고한 글이다. 그의 말대로 그 자신은 막대한 이자를 받았는데, 너무 늦게, 즉 사후에야 받았다고 할까?
“시를 쓰는 데는 법이 없어서도 안 되고 또 법에 구애를 받아서도 안 된다.”는 말이 있다. 시는 자유롭게 쓸 때 좋은 시를 쓸 수 있다는 말이다.
조선후기의 문장가인 홍만종은 “시를 아는 것은 시를 짓기보다 어렵다.” 고 말했다. 그렇다면 좋은 시는 어떻게 해야 써지는가?
“시를 쓰기 위해서는 때가 오기까지 기다려야하고, 한 평생,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의미와 감미를 모아야한다.
그러면 아주 마지막에 열 줄의 성공한 시행을 쓸 수 있을 거다.
시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감정이 아니고. 사실 감정은 일찍부터 가질 수 없는 거다. 경험이기 때문이다.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서는 수많은 도시들, 사람들, 그리고 사물들을 보아야 한다.
동물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새들이 어떻게 나는지 알아야 하며,작은 꽃들이 아침에 피어날 때의 몸짓을 알아야 한다.
시인은 돌이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알지 못하는 지역의 길, 뜻밖의 만남, 오랫동안 다가오는 것을 지켜본 이별, 아직도 잘 이해할 수 없는 유년시절에 우리를 기쁘게 해주려 한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서 언짢게 해드린 부모님 다른 사람이면 기뻐했을 텐데,
심각하고 커다란 변화로 인해 이상하게도 기억에 남아있는 어린 시절의 질병, 조용하고도 한적한 방에서 보낸 나날들, 바닷가에서의 아침, 그리고 바다 그 자체, 곳곳의 바다들, 하늘 높이 소리 내며 모든 별들과 더불어 흩날려간 여행의 밤들, 이 모든 것을 돌이켜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하나같이 다른, 사랑을 주고받는 수많은 밤들, 진통하는 임산부의 외침, 가벼운 흰옷을 입고 잠을 자는 동안 자궁이 닫혀져가는 임산부들에 대한 추억도 있어야 한다.
또 임종하는 사람의 곁에도 있어 봐야 하고, 창문이 열리고 간헐적으로 외부의 소음이 들려오는 방에서 시체 옆에도 있어 봐야 한다.
그러나 추억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추억이 많으면 그것을 잊을 수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추억이 다시 살아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큰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추억 그 자체만으로는 시가 돌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추억이 우리들의 몸속에서 피가 되고 ..
시선과 몸짓이 되고, 이름도 없이 우리들 자신과 구별되지 않을 때에야 보로소 몹시 드문 시간에 시의 첫 마디가 그 추억 가운데에서 머리를 들고 일어서 나오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의 일부분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경험할수록 좋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특히 추억이 제대로 살아나고 또 그 추억들이 잊혀 질 때 시가 쓰여 지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괴테가 <타소>에서 한 말은 시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말이다.
“만일 내가 숙고하거나 시를 짓지 않는다면 그 때 내 인생은 더 이상 내게는 생이 아니다.
누에에게 고치 짓는 것을 금하는 순간부터 누에에겐 죽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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