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록(病床錄)
- 김관식(1934~70)
(…)
방안 하나 가득찬 철모르는 어린 것들.
제멋대로 그저 아무렇게나 가로세로 드러누워
고단한 숨결은 한창 얼크러졌는데
문득 둘째의 등록금과 발가락 나온 운동화가 어른거린다.
내가 막상 가는 날은 너희는 누구에게 손을 벌리랴.
가여운 내 아들딸들아,
가난함에 행여 주눅들지 말라.
사람은 우환(憂患)에서 살고 안락(安樂)에서 죽는 것,
백금(白金) 도가니에 넣어 단련할수록 훌륭한 보검(寶劍)이 된다.
아하, 새벽은 아직 멀었나 보다.
///호랑이표 시멘트 종이를 바른 방바닥에 “오연(傲然)히” 앉아 호피(虎皮) 위에서 산다며 “기호지세(騎虎之勢)”를 자랑하던 김관식 시인의 시다. 이 시는 그가 세상을 뜨던 해에 발표되었다. 세검정 꼭대기에서 병마와 기행(奇行)으로 세상을 질타하던 시인이 자식들에게 남긴 말이다. “가난함에 행여 주눅들지 말라.” 자본 지배의 세상에서, 이 목소리는 아직도 너무 외롭다. “새벽은 아직 멀었나 보다.”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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