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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학의 고향, 어머니의 詩心
2016년 04월 25일 08시 26분  조회:4069  추천:0  작성자: 죽림

 

[정호승 시인, 대구 범어천서 詩碑 제막식·문학기행 펼치다]

수성구, 범어천 생태복원 마치며 그곳서 자란 정호승 기려
시비에 시 '수선화에게' 새겨
 

"대구는 내 시의 어머니다. 나는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을 대구 범어천(泛魚川)에서 보냈다. 나는 범어천에서 자연을 배웠고, 인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정호승(66) 시인이 지난 23~24일 대구에서 독자들과 함께 시비(詩碑) 제막식을 갖고 문학 기행을 펼쳤다. 그는 23일 이야기 경영연구소(대표 이훈)가 주최한 '이야기 탐방 열차'에 참가한 독자 40여 명과 함께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갔다. 그날 오후 3시 대구 수성구 범어천 광장에서 정호승 시비(詩碑) 제막식이 열렸다. 대구 수성구가 2009년부터 225억원을 들여 시작한 범어천 생태 복원 사업이 올해 마무리된 것을 기념하면서 범어천에서 자란 정호승 시인을 기리기로 한 것. 정호승 시인은 "내가 어릴 때 맑고 깊었던 범어천은 내 시의 고향이다"라며 "심하게 오염돼 버려진 범어천이 서울의 청계천처럼 되살아난 것을 보니 내 생명이 다시 태어난 느낌"이라고 말했다.
 
대구 범어천 광장에 시비(詩碑)를 세운 정호승 시인은 “이 시비는 제 것이 아니라 독자들의 마음이 세운 비석”이라고 말했다.
대구 범어천 광장에 시비(詩碑)를 세운 정호승 시인은 “이 시비는 제 것이 아니라 독자들의 마음이 세운 비석”이라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시비에는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며 시작하는 시 '수선화에게'가 새겨졌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정 시인은 "이 시는 인간의 본질적 외로움을 노래한 것"이라며 "나는 잘 쓴 시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수많은 독자가 좋아한 덕분에 내 대표작이 됐다"고 말했다.

정호승 시인은 시비 제막식에서 올해 94세인 어머니(이태상)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범어천에 살 때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 어머니는 남몰래 가계부로 쓰던 공책 귀퉁이에 몽당연필로 시를 쓰면서 그 고통을 견디셨다. 어머니는 범어천 돌다리를 건너서 교회에 갔다가 집에 돌아올 때 본 조각달이나 보름달을 가슴에 품으셨다. 나는 고등학생 때 우연히 부엌에서 어머니의 시작(詩作) 노트를 읽곤 깜짝 놀랐다. 나중에 어머니는 '사는 게 슬펐지만 그 달을 보고 시를 쓰면서 견딜 수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니의 공책은 세월의 풍파 속에 사라졌지만 정 시인은 몇 해 전 어머니가 구술한 시 세 편을 받아 적은 적이 있다. '가네 가네 한 여인이/ 풍랑 속을 가네/ 비바람 세파 속을 헤치며 가네/ 기우뚱기우뚱 풍랑은 쳐도/ 그 여인 어머니 될 때/ 바람 잦으리'. 정 시인은 "어머니의 시와 마찬가지로 내 시도 삶의 고통을 견디기 위해 쓰인 것"이라고 말했다.

시비 제막식은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당선자(대구 수성갑)와 이진훈 대구 수성구청장을 비롯해 16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1970년대 학생운동 세대인 김부겸 당선자는 "우리 세대는 정호승 시인을 좋아한다"라며 "외로울 때는 서정시를 찾게 되고, 술 한 잔 걸치면 정호승의 시 '슬픔이 기쁨에게'를 읊조리곤 했다"고 말했다. 이진훈 수성구청장은 "정호승 시비를 세움으로써 대구 수성못에 있는 이상화 시인의 시비, 범어천 건너편의 가수 김광석의 거리를 잇는 문학 벨트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정호승 시인은 24일 독자들과 함께 대구 중구의 김광석 거리도 찾았다. 그는 "내가 쓴 시 중 60여편이 노래로 만들어졌다"라며 "특히 내 시 '부 치지 않은 편지'가 김광석의 마지막 노래가 됐다"고 말했다.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 보지 말고 그대 잘가라'('부치지 않은 편지' 뒷부분). 시인은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이 났을 때 쓴 작품이지만, 꼭 그런 배경 지식으로 이 시를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정호승 시인이 23일 오후 고향인 대구시 수성구 범어천변 광장에 세워진 자신의 시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가네 가네 한 여인이 가네
풍랑 속을 가네
비바람 세파 속을 헤치며 가네
기우뚱기우뚱 풍랑은 쳐도
그 여인 어머니 될 때
바람 잦으리
(정호승 시인 어머니의 자작시 '여인' 전문)

23일 오후 고향인 대구시 수성구 중앙고등학교 인근 범어천변 광장에서는 정호승(66) 시인의 시 '수선화에게'가 새겨진 시비의 제막식이 열렸다. 정호승 시인은 이 자리에서 "나는 이 범어천을 한순간도 잊은 적 없다"고 소감을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시의 시작은 '어머니의 시'라고도 말했다.

수성구는 7년간 총 220여억원을 들여 대구의 도심을 흐르는 범어천의 강바닥을 정비하고 범어천 전 구간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했다. 그리고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배경이 된 ‘수성들’ 등을 비롯해 문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장소를 기려 '시문학벨트'를 구성했다.

이 사업의 일환으로 정호승 시인이 12년간 물을 따라 걸으며 통학했던 범어천 앞에 그의 시비도 세워지게 됐다.

정호승 시인이 말하는 그의 어머니는 범어천에 놓여진 돌다리를 건너서 교회에 갔다가 맑은 물에 비친 조각달이나 보름달을 마음에 품고 돌아와 가계부 여백에 연필로 시를 썼던 분이다. 수입이 없어 집의 본채를 세주고 닭장을 없앤 공간에 슬레이트 집을 지어 살던 시절, 간이 부엌에서 어머니는 가난한 생활의 고통을 시에 의지해 이겨냈다.

정호승은 "고단한 삶 속 슬픈 마음을 위로하며 그렇게 쓰는 것이 시라는 '시의 본질'을 어머니가 알려주셨다"고 말했다.

"'호승이 너는 열심히 노력하면 훌륭한 시인이 될 수 있겠구나!' 선생님은 한번 슬쩍 쓰다듬는게 아니라 한참 동안 내 까까머리를 정성스레 쓰다듬었다. 한달에 한번 감을까말까 한 머리를 쓰다듬는 그 손의 감촉을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어지는 강연에서 정 시인은 어머니를 통해 갖게된 시의 첫마음이 중학교 2학년 국어시간에 '훌륭한 시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해준 선생님의 말로 인해 더욱 단단해진다고 밝혔다.

범어천 안에 버려진 갓난아기들, 장대비가 내린 다음날 떠내려오는 젊은 송장, 가녀린 꽃대 위에 핀 연노랑색의 수선화, 저녁때 밥먹으러 오라고 외치던 어머니 목소리, 범어천변에서 가마니에 덮인 채 놓여진 동사자의 발, 옛집 장독대 위 소복이 내린 눈, 장마때면 산 채로 떠내려오던 돼지 등을 떠올리며 그는 자연의 무서움과 아름다움을 범어천과 범어동 고향집에서 배웠다고도 말했다.

정호승 시인은 이어 "나이들수록 뼈저리게 느끼는 것은 '나라는 존재 자체가 외로움의 원천이라는 것'"이라면서 "그 존재의 외로움은 인간의 본질이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시인은 "어머니는 현재 94세인데 과거를 아름답게 회상하신다"면서 외로움을 극복하는 비결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실은 어떻든지간에 과거의 사진을 보면 인생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만으로도 오늘의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행복은 인간의 의무다. 자신의 행복은 자신이 깨닫고 만드는 것이다."

◇정호승 시인의 시세계는

정호승 시인의 첫시집 '슬픔이 기쁨에게'(1973)와 두번째 시집 '서울의 예수'(1982)는 캄캄한 어둠 속에 쏘아올려진 조명탄같은 시집들이었다.

서울로 흘러들어온 밑바닥 인생들의 고단한 삶에 대한 인식은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시 '슬픔이 기쁨에게' 일부)에서처럼 유약한 서정성을 넘어 사회에 대한 '결기'가 어려 있었다.

암울한 1970~80년대 시적인 현실반영과 비판은 '시인이며 예수가 되겠다'는 결심을 낳으며 '목마를 때 소금을 주고/배부를 때 언제나 빵을 주는'(시 '우리들 서울의 빵과 사랑' 일부) 현실에 대한 분노로 표출됐다.

이들은 '북소리'같은 강하고 결의에 찬 것은 아니지만 '현악기'의 소리가 주는 애잔하고 긴 울림을 주며 오랫동안 독자들을 울고 전율하게 했다. 그후 시인은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항아리' '새벽편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등의 시집에 상처와 아픔, 고독한 인간의 숙명과 사랑에 대한 갈망을 담아냈다.
정호승 시인이 23일 오후 대구 수성구 범어도서관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자신의 시세계를 설명하고 있다. 
[ 2016년 04월 25일 08시 34분 ]

 

 

산서성 개양(미자트) 황하수식부각관광지(黄河水蚀浮雕...2억년 력사)에서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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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안대회 교수, ‘내 생애 첫 번째 시’ 펴내


“통째로 남산을/옮기긴 어려워도/깨끗한 돌 하나는/가져가도 되겠지요/초가집 아래다/고이고이 놓아두면/흐르는 물소리/콸콸콸 들리겠죠.”

요즘 서울에 사는 아이가 쓴 동시 같지만 사실 조선 후기 사람인 김수약이 다섯 살 때 지은 시다. 요즘 동시처럼 조선 시대에도 아이들이 쓴 한시 동몽(童蒙)시가 있었다.

정갈한 한시 번역으로 정평이 난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가 옛사람들의 동시 120여 편을 묶고 해설을 단 ‘내 생애 첫 번째 시’를 최근 냈다. 4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안 교수는 “13년 전 ‘초등학생인 자식을 위한 책을 써보라’는 권유로 집필에 착수했는데, 문집에 산발적으로 나오는 동시를 모으다 보니 이제야 책을 낸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쓴 시이지만 수준이 놀랍다. “바다가 품어서/깨끗해진 하늘의 해/꽃처럼 뱉어 놓아/일년 내내 붉구나/강 위에 가득해라/고기 잡는 어부들/석양녘 바람결에/돛단배를 멈추었네.”

조선 후기 사람인 곽시징의 딸이 일곱 살 때 지은 이 시는 어부들이 돛배를 멈추고 해를 바라보는 고향 태안 바닷가 마을의 풍경을 간결하면서도 풍부한 이미지로 그려냈다.


동시에 아이들의 때 묻지 않은 시선과 솔직함이 드러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놀기만 좋아한다고 나무라자 ‘남들이 다들 정승감이래요’라고 읊은 시, 높이 열린 복숭아를 노래한 시 등이 그렇다. 안 교수는 “옛사람들은 잘 썼든 못 썼든 아이들이 시를 통해 스스로를 표현하는 힘을 키우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봤다”며 “요즘 교육이 배워야 할 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책에 실린 동시는 운자(韻字)를 맞추지 않았거나 대강만 맞춘 것들이 대부분이다. 안 교수는 “아이들이 형식에 매이지 않고 쓰고 싶은 대로 쓰도록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이라면 초등학생일 열세 살짜리가 소나무 아래서 술을 마시는 흥취를 노래하는 등 옛 풍경을 보여주는 시도 많다.

안 교수는 책을 펴내기 위해 옛 문집 200여 권에서 시를 골랐는데 동시가 문집 초고의 필사본에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안 교수는 “동시를 쓴 본인은 추억이 있어서 문집에 넣었지만 사망 뒤 문집 간행 시에는 자식이나 제자들이 간행할 때 뺐기 때문으로 보인다”라며 “남아 있는 동시는 참 귀한 것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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