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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吉林성 延邊 和龍시에서 제8회 長白山진달래문화관광축제에서 높이 1메터, 직경 2메터짜리 비빕밥그릇...
소월 시의 전통성과 창조성에 대한 일고찰
336. 잠든 됫박 / 이운룡
잠든 됫박
이 운 룡
쌀뒤주는 구경도 못한 우리 집 뒤란에 채워도 채워도 배고픈 빈 항아리 하나
그 속에 너를 가두어 놓고 어머니는 노상 한숨만 퍼내셨다
상반신을 구부려야 손이 닿는 밑바닥 도둑맞을 쌀이 어디 있다고 숨겨 두면 내 아니 모를라고 세상없어도 뚜껑만은 열어 놓지 않으시고
때가 되면 인기척하고 드나드는 뒤란 길 어머니 검정 치맛자락만 슬프도록 어른거렸다.
이운룡 시집 <이 가슴 북이 되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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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역사적 사건과 민간 풍속의 인유 방식
지명 이외에도 소월이 전통적 소재를 인유하는 대표적인 예는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시화한 경우, 그리고 민간 풍속이나 신앙을 폭넓게 수용하고 있는 시편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소월의 시에서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다루고 있는 시편으로는 「물마름」을 검토해 볼 수 있다.
그곳이 어듸드냐 南怡將軍이
말멕여 물엇든 푸른江물이
지금에 다시흘너 을넘치는
千百里豆滿江이 예서 百十里.
茂山의큰고개가 예가아니냐
누구나 네로부터 義를위하야
싸호다 못이기면 몸을숨겨서
한의못난이가 되는 법이라.
그누가 생각하랴 三百年來에
참아 밧지다못할 恨과侮辱을
못니겨 칼을잡고 니러섯다가
人力의다함에서 스러진줄을.
부러진대으로 활을메우고
녹쓸은호믜쇠로 칼을별너서
茶毒된三千里에 북을울니며
正義의旗를들든 그사람이어.
그누가 記憶하랴 茶北洞에서
피물든 옷을닙고 웨치든일을
定州城하로밤의 지는달빗헤
애친그가슴이 숫기된줄을.
물우의 마름에 아츰이슬을
불붓는山마루에 픠엿든츨
지금에 우러르며 나는 우노라
일우며 못일움에 薄한이름을.
- 「물마름」 제3-8연
이 작품에는 크게 두 가지 역사적 사건이 인유되어 있다. 하나는 세조의 중앙 집권 체제 강화에 반발해 세조 13년(1467년)에 일어났다가 南怡將軍 등에 의해 평정된 李施愛의 亂이고, 다른 하나는 西北人에 대한 차별과 부패한 세도정치에 항거해 순조 11년(1811년)에 平北 嘉山의 多福洞 작품에서는 ‘茶北洞’으로 나타나 있으나, 이는 소월의 착오로 보인다.
에서 봉기했다가 定州城에서 敗死한 洪景來의 亂이다. 한우근, ꡔ한국통사ꡕ, 을유문화사, 1987, 217-218쪽, 362-364쪽 참조.
이러한 역사적 사건의 인유를 통해 소월은 당대 현실에 대한 인식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즉 소월은 두 西北人이 일으킨 난을 부패한 중앙 정부가 강요한 차별과 모욕에 대한 항거로 해석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싸움과 이 싸움의 실패로 인한 수모를 당대에 대비시켜 3․1운동과 같은 민족적 운동이 실패함으로 인하여 우리가 처한 굴욕적 상황을 표현하고 있” 최동호, 「김소월 시의 무덤과 부서진 혼」, ꡔ평정의 시학을 위하여ꡕ, 민음사, 1991, 14쪽.
는 것이다. 소월 시에서 전통적 소재의 인유가 민족 의식의 표출이라는 목적을 위해 이루어지고 있는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사건이 작품 속에 인유되는 방식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우선 李施愛의 亂은 표면적으로 내세워진 南怡將軍의 故事 속에 숨겨져 있다. 제3연 제1-2행에는 남이장군의 逸話와 시구가 직접적으로 차용되어 있다. 장군의 이름이 명시되고 또 그가 지었다는 유명한 시의 한 구절인 “말멕여 물엇든 푸른江물이”(豆滿江水飮馬無)가 직접적으로 인유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남이장군의 고사는 이시애의 난을 떠올리기 위한 매개에 불과하다. 즉 시적 화자는 지금 “茂山의큰고개”를 넘으며, 이곳에서 불과 백여 리 떨어진 두만강과 남이장군에 생각이 미치게 된다. 그리고 연상의 흐름을 따라 남이장군에 의해 평정 당한 이시애의 난을 떠올리게 되고, 이를 계기로 또다시 삼백여 년의 차이를 두고 같은 서북인에 의해 일어났던 洪景來의 亂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홍경래의 난 역시 작품 속에 그 사건이나 인물이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고, “茶北洞”(茶福洞)과 “定州城”이라는 지명을 통해서 다소 간접적인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 이 사건과 관련된 구체적인 세부 사항을 기억하지 못하는 독자라면 인유된 사실을 쉽게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일부 연구에서는 이 작품이 남이장군에 얽힌 단일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기도 하였다.
이 두 사건은 이처럼 다소 복잡하고 분명하지 못한 형태로 함께 인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큰 무리 없이 전체 시의 의미 속에 용해되어 있다. 그것은 이 사건들이 지닌 역사적 의미의 동질성을 읽어내는 시인의 시선에 근거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시선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당대의 굴욕적인 현실에 대한 시인의 인식이며, 그러한 인식을 역사적 사건의 인유를 통해 표출하려는 시인의 의도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이 작품 역시 뚜렷한 시적 의도와 목적 의식을 바탕으로 전통적 소재를 자유로운 방식으로 인유하고 있는 예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소월 시에서 자주 인유되고 있는 전통적 소재로는 歲時風俗을 비롯한 民間 風俗이나 민중들의 생활 방식을 들 수 있다. 「널」, 「달맞이」, 「칠석」 등은 계절에 맞추어 관습적으로 되풀이하는 세시풍속과 관련된 시편들이며, 「후살이」는 민중의 삶의 방식과 생활 감정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그리고 「초혼」은 민간의 장례 풍습을 주요한 시적 모티프로 인유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가운데 대조의 효과를 위해 인유 대상을 이끌어들이고 있는 「달맞이」와 대상의 본래적 의미를 변형시켜 현재적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는 「초혼」을 통해, 소월의 주제 의식과 이를 구현하는 인유 방식의 창조성을 살펴볼 수 있다.
正月대보름날 달마지,
달마지 달마즁을, 가쟈고!
새라새옷은 가라닙고도
가슴엔 묵은설음 그대로,
달마지 달마즁을, 가쟈고!
달마즁가쟈고 니웃집들!
山우헤水面에 달소슬,
도라들가쟈고, 니웃집들!
모작별삼셩이 러질.
달마지 달마즁을 가쟈고!
다니든옛동무 무덤에
正月대보름날 달마지!
- 「달마지」 전문
이 작품의 중심 소재는 정월 대보름날에 행하는 달맞이 풍속이다. 이 행사는 매년 정월 대보름날 저녁 횃불을 들고 산이나 들로 나가 달을 맞이하며, 저마다의 소원을 빌고 일년 동안의 행운을 바라는 전래의 풍속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하는 행사로서 흥겹고 들뜬 분위기 속에서 치러지는 축제의 하나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달맞이’ 행사는 민속적 축제 그 자체로서 조명되기보다는 “옛동무”를 상실한 슬픔에 잠겨 있는 시적 화자와의 대비를 위해 인유되고 있다. 산과 들에서 흥성거리며 달맞이를 하는 “니웃집”과 달리 시적 화자는 “다니든옛동무 무덤에”서 달맞이를 하며, 이로 인해 그의 슬픔은 더욱 강조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대비적 의미 구조는 “새라새옷은 가라닙고도/ 가슴엔 묵은설음 그대로”라는 구절를 통해 반복되며, 작품의 의미를 형성하는 기본적인 뼈대가 된다.
이러한 인유 방식은 민족 고유의 풍습을 통해 집단적 감수성을 자극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주관적 정서를 효과적으로 표출하려는 시적 의도를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님․고향․자연의 상실을 지속적으로 노래한 소월의 시세계의 이면에는 시대적 단절 체험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시적 정서가 공동체의 집단이고 전통적인 정서를 매개로 표상됨으로써 더욱 보편적인 정서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흔히 소월의 대표작의 하나로 거론되는 「招魂」도 민간 풍속의 적극적인 인유를 통해 시인의 주제의식이 돋보이는 성취를 거둔 작품으로 평가될 수 있다.
산산히 부서진이름이어!
虛空中에 헤여진이름이어!
불너도 主人업는이름이어!
부르다가 내가 죽을이름이어!
心中에남아잇는 말한마듸는
내 마자하지 못하엿구나.
사랑하든 그사람이어!
사랑하든 그사람이어!
붉은해는 西山마루에 걸니웟다.
사슴이의무리도 슬피운다.
러저나가안즌 山우헤서
나는 그대의이름을 부르노라.
서름에겹도록 부르노라.
서름에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소리는 빗겨가지만
하눌과 사이가 넘우넓구나.
선채로 이자리에 돌이되여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이름이어!
사랑하든 그사람이어!
사랑하든 그사람이어!
- 「招魂」 전문
이 작품에서는 소월 시에서 되풀이되는 중심 테마인 님과의 이별이 가장 극한적인 상황 설정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인간의 절대적 한계인 죽음으로 인한 이별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죽음의 문제를 다루는 시적 방법이 바로 민간에서 행해지는 ‘招魂’ 풍습의 인유이다.
초혼 풍습은 葬禮 節次의 일부로서, 인간의 영원한 문제인 죽음의 극복과 관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 삶의 가장 비극적 국면인 죽음이 주는 충격을 인간적으로 승화하기 위한 것이 초혼을 포함하는 장례 절차인 것이다. 이러한 葬禮 儀式의 의미는 원초적 민간신앙의 대상인 죽음의 문제를 문화적 제도 속에 포용해 놓는 일로도 설명된다. 김윤식, ꡔ한국근대문학사상비판ꡕ, 일지사, 1978, 143-153쪽 참조. 김윤식은 이 글에서 소월의 「招魂」을 屈原의 「楚辭」와 연관지어 언급하고, ꡔ禮記ꡕ에 소개된 초혼 절차를 인용하여 이 일이 죽음의 문제를 문화적 제도로 포용하는 儀式임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儀式을 통해 사람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확인하고 사랑하던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초혼 풍습이 갖는 이러한 의미는 의도적으로 거부된다. 시적 화자는 “불너도 主人업는이름”을 계속해서 부르며, 사랑하던 님의 죽음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것은 망부석 전설을 인용하고 있는, “선채로 이자리에 돌이되여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이름이어!”라는 구절에서 확인된다. 죽음의 결단으로 표명된 화자의 강인한 의지는 그 격앙된 어조만큼이나 치열한 감정을 느끼게 하며 비장미를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라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한계에 대해서도 체념하지 못하는 것은, ‘님’이 자기 삶의 절대적인 근거로서 어떤 경우에도 포기될 수 없는 본질적인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소월 시에서 ‘님’이 지닌 근원적 가치로서의 상징성을 확인할 수 있으며, 나아가 이러한 이별의 미학 밑바탕에는 근대 이후의 분열 체험과 시대적 단절감이 개재해 있음도 알 수 있다. 김인환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이 시의 인물이 민간 의식을 그대로 따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화로운 시대에는 누구나 우주의 질서에 맞추어 살 수 있었다. 이제 그러한 조화와 질서는 파괴되고 말았다. 민중의 목소리와 인물의 목소리가 어긋나는, 이 시의 불협화음은 대립과 긴장으로 가득찬 극적 상황을 부각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김인환, 앞의 책, 40쪽.)
어쨌든 인유 방식의 측면에서 주목되는 것은, 이런 시적 의미를 형상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민간 풍속의 본래적 의미를 변형하고 있다는 점이다. 초혼 풍습이 장례 절차의 일부로서 사랑하던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문화적 제도의 의미를 지니는 것인데도, 시적 화자는 이런 의미를 끝내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초혼 행위가 원래 지붕이나 마당에서 행해지는 것임에도 이 작품에서는 산꼭대기에서 행해지고 있는 점도 인유 대상을 변형시킨 부분으로 지적될 수 있다.
이처럼 소월은 이 작품에서 ‘초혼’이라는 민간 풍속의 적절한 인유를 통해 경제적이고 효과적으로 시적 상황을 설정하면서도, 자신의 시적 의도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변형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양상은 일정한 시적 의도에 따라 과거의 유산들을 차용하고 현재적 문맥 속에서 재창조하는 소월의 인유 방식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5. 마무리
지금까지 소월 시에서 전통적이고 집단적인 모티프들이 인유되는 방식을 고찰해 보았다. 이를 통해 소월 시에서 전통적 소재의 인유가 뚜렷한 현재적 의식을 바탕으로 다양하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소월 시에서 전통적 소재의 인유는 집단의 전통적 감수성을 강하게 자극하며 민족적 자기동일성을 환기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의도와 함께 작품에 따라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주제 의식을 살펴보면, 직접적인 민족 의식이나 현실 인식인 경우도 있었고 근대적 분열 체험이 개재된 주관적 정서인 경우도 있었다. 이것은 모두 소월 시의 전통 계승이 시대적 현실과의 밀접한 관련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소월은 전통의 계승이 과거 유산의 단순한 재생산과 반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제들은 시적 문맥과 상황에 따라 다양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인유의 기법을 통해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었다. 공동체의 집단적 유산을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주관적 감정의 직접적인 토로에서 벗어나 시적 정서와 주제를 객관화시키고 보편화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시작 방법의 측면에서 인유의 궁극적인 의미와 효과가 작품의 현재적 문맥의 확대와 심화에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것이다.
결국 이러한 특징들은 내용과 형식의 양면에서 소월 시의 전통성과 창조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민족의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정서의 기반 위에서 동시대적 의미를 효과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소월의 다양한 인유 방식은 한국 근대시 형성기에 전통의 창조적 계승을 본격적으로 보여준 시사적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은 필자의 박사학위논문(ꡔ金素月의 詩作方法과 詩意識 硏究ꡕ, 고려대 박사학위논문, 2002년)의 일부분을 발췌, 수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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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 역설 / 이운룡
역설
이 운 룡
오래된 슬픔은 향기를 품는다
슬퍼서 소금이 된 알갱이는 빛을 머금어 투명하지만
썩은 슬픔은 검은 흙이 될 것이다
하지만, 썩어서 흘러나온 눈물이 마음을 적시고
마음을 키우는 거름이 된다면 나 또한
그렇게 푹 썩은 슬픔에 젖어
뒤돌아 훔쳐낸 눈물이고 싶다
덜 썩어 비린 풋냄새 나기 전에, 혹시는
썩다가 원색의 악의 꽃이 번져 중독되기 전에
아랫목 술항아리 불룩하고 따뜻한 뱃속
사랑과 미움이 보글보글 끓다가
마침내 승자도 패자도 없는 몸싸움을 다 끝내고 나면
참 조용하게도
온전히 숙성된 슬픔의 향기로 말갛게 발효되어
한 세상 걸쭉하게 물들일 때
내 몸 어딘가에서는 생수 터져 솟아나고
조만간 슬픔의 향기에 취해 쓰러질
어떤 늙은 사랑도 있을 것이다.
계간 <시안> 2003년 봄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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