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文人 지구촌

김수영 - 풀
2016년 05월 01일 18시 41분  조회:4199  추천:0  작성자: 죽림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전집 1' (민음사)
 

▲ 일러스트=권신아

풀은 이 세상에서 제일로 흔하다. 풀은 자꾸자꾸 돋는다. 비를 만나면 비를 받고 눈보라가 치면 눈보라를 받는다. 한 계절에는 푸르고 무성하지만, 한 계절에는 늙고 병든 어머니처럼 야위어서 마른 빛깔 일색이다. 그러나 이 곤란 속에서도 풀은 비명이 없다. 풀은 바깥에서 오는 것들을 긍정한다.

풀은 낮은 곳에서 유독 겸손하다. 풀은 둥글게 휘고 둥글게 일어선다. 꺾임이 없는 ‘둥근 곡선’의 자세가 풀의 미덕이다. 느리지만 처음 있던 곳으로 되돌리는 이 불굴의 힘을 풀은 갖고 있다. 풀은 이변을 꿈꾸지 않는다. 제 몸이 무너지면 그 무너진 자리에서 스스로 제 몸을 일으켜 세운다. 풀은 솔직한 육필이다. 풀은 ‘발밑까지’ 누워도 발밑에서 일어선다. 바닥까지 내려가 보았으므로 풀은 이제 벼랑을 모른다.

새날이 왔다. 새날을 받고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은 어제에 있다. 어제의 슬픔과 어제의 이별과 어제의 질병과 어제의 두려움 속에 있다. 그러나 어제의 곤란은 어제의 곤란으로 끝나야 한다. 열등은 어제의 열등으로 끝나야 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내심에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다. 이것을 잘 아는 사람은 만 명의 적이 와도 무서움이 없으며 물러섬이 없을 것이다. 자존(自尊)과 자립(自立)의 에너지가 우리의 자성(自性)이다.

나아지고 있다는 믿음, 일어서고 있다는 믿음, 넓고 큰 세상으로 향해 가고 있다는 믿음, 당신을 더 사랑하게 되리라는 믿음, 우리는 이 다짐으로 새날을 살아야 한다. 눈사태를 뚫고 산정(山頂)을 찾아가는 산악인처럼.

타계한 해에 발표된 ‘풀’은 김수영(1921~1968)의 마지막 작품이고, 우리 시대 100명의 시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시이기도 하다. 올해로 40주기를 맞은 김수영은 전위적 모더니즘으로, 4·19 혁명 이후에는 참여시(詩)로 한국 현대시의 지평을 넓혔다. 그의 시는 사람들 가슴 속에 눕고 울고 일어서며 푸르게 살아 있다.

문태준·시인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283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283 <봄> 시묶음 2016-03-31 0 4538
1282 <목련> 시묶음 2016-03-31 0 5652
1281 실험정신 없는 詩는 죄악 - 詩作 16가지 2016-03-31 0 4914
1280 [목련꽃 하얗게 피는 아침 詩 한송이] 2016-03-30 0 4549
1279 <매화> 시모음 2016-03-30 0 5466
1278 <개나리> 시모음 2016-03-30 0 5965
1277 <풀꽃> 시모음 2016-03-30 0 4772
1276 [머리 뗑한 詩공부]- 詩는 하찮은것에서 始作...詩作... 2016-03-30 0 4296
1275 "협동조합형" 詩잡지 나오다... 우리는???... 2016-03-29 0 4041
1274 봄맞이 선물 - 녀자 독자들이 사랑한 詩人 10인 2016-03-29 1 4323
1273 잊혀진 詩人과 그 詩人의 아들 2016-03-29 0 4820
1272 [詩공부시간]- 詩에서 빈자리 보기 2016-03-29 0 4504
1271 [화요일 아침 詩 한송이 드리꾸매]- 지옥에서 보낸 한 철 2016-03-29 0 4179
1270 [월요일 아침 새록새록 詩]- 양파 공동체 2016-03-28 0 4696
1269 [봄날의 아침 詩 두 잔 드이소잉]- 젖지않는 물/ 숟가락의 무게 2016-03-28 0 4538
1268 詩는 물과 거울과 달과 꽃과 더불어... 2016-03-28 0 4829
1267 낯설음의 詩 한묶음 2016-03-28 0 4849
1266 [詩공부]- 詩는 어디에서?... 2016-03-26 0 4161
1265 [봄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슬픈 詩 한수]- 병상록 2016-03-26 0 4085
1264 [詩공부시간]- 백마디의 말보다 한송이 장미가... 2016-03-26 0 4210
1263 땡!~ 제2의 '동주' 나올수 있을가... 남에 일 아니다... 2016-03-25 0 4183
1262 [꽃샘추위하는 날 따끈한 詩 한잔]- 자유 지역 2016-03-25 0 3862
1261 [詩作初心] - 詩는 노력가의 결과물 2016-03-25 0 4045
1260 [따뜻한 봄날 아침 따끈한 시 한잔] - 숲 2016-03-24 0 4079
1259 [詩공부시간]- 詩창작의 비법은 없다 2016-03-24 0 4651
1258 [신선한 詩 한잔 드이소잉]- 토르소 2016-03-23 0 3854
1257 [詩作初心]- 은유는 천재의 상징 2016-03-23 0 4666
1256 누에가 고치짓지 않으면 누에는 죽는다... 2016-03-23 0 4353
1255 한국 50년대, 60년대, 70년대, 80년대의 詩계렬 2016-03-22 0 5446
1254 ... 2016-03-22 0 3986
1253 ... 2016-03-22 0 4317
1252 ... 2016-03-22 0 4431
1251 ... 2016-03-22 0 4083
1250 ... 2016-03-22 0 4075
1249 [문학의 뿌리 알아보기]- 인도 문학 2016-03-22 0 4609
1248 [문학의 뿌리 알아보기]- 일본 / 몽고 문학 2016-03-22 0 4969
1247 [복습해보는 詩공부]- 시속의 은유 2016-03-22 0 4003
1246 [춘분절기와 詩]- 봄나물 다량 입하라기에 2016-03-21 0 3914
1245 [이 아침 신선한 詩 한잔 드시소잉]- 장춘(長春)- 긴 봄 2016-03-21 0 4180
1244 [월요일 아침 詩] - 물결 표시 2016-03-21 0 4765
‹처음  이전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