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文人 지구촌

황동규 - 즐거운 편지
2016년 05월 01일 18시 44분  조회:4526  추천:0  작성자: 죽림

 

즐거운 편지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일러스트=잠산

황동규 시인은 올해로 등단 50주년을 맞는다. 반 세기 동안이나 그는 우리말을 정갈하게 빚었고 우리말의 숨결을 세세하게 보살펴 고아(高雅)하게 했다. 놀랍게도 ‘즐거운 편지’는 황동규 시인이 1958년 ‘현대문학’에 발표한 그의 데뷔작이다. 영화 ‘기쁜 우리 젊은 날’과 ‘편지’ 등에서 낭송되어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이 시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의 원 제목도 ‘즐거운 편지’였다고 한다. 이제 이 시는 한국인의 애송시가 되었다. 만남과 이별의 회전 속도가 이처럼 빠른 시대에 이 시는 왜 여전히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가. 왜 여전히 막막하게 하는가. 헤어져 돌아가던 옛사랑의 뒷모습을 보게 하는가.

하늘이 먹먹하게 어두워지고 주먹눈이 막 내리는 날이면 어디 먼 산골이나 바닷가 민박집에라도 가고 싶어진다. 작은 넝쿨에 말라붙는 붉은 열매 같은 눈빛을 하고서 눈이 내리는 그 시간을 살고 싶어진다. 눈이 그치면 순백의 설원과 설원 위를 유행(遊行)하는 바람의 노래를 듣고 싶어진다. 그리고 멀리 두고 온 사람을 ‘가까스로’ 떠올릴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적막한 시간에 나를 선택하지 않은 사랑을 떠올리는 일은 아주 사소한 일이 될 것이다.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이 될 것이다. 너무 사소하여서 손을 놓고 아무 일도 하지 못할 것이다. 너무 사소하여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그렇게 이 세상에서 잊혀진 듯 살 것이다. 폭설에 갇힌 순한 산짐승처럼 우는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그대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건넨 이별의 말은 나의 가슴에서 깨끗하게 씻어낼 것이다. 겨울 하늘에 뜬 달이 천강(千江)을 비추어도 그대는 나를 생각하지 말라. 그대가 나의 사랑을 다시 받아 안는 날이 와도 내가 아직 저 산골짜기 깊은 산막에서 그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하는 그런 아주 짧은 후일에도 그대는 나를 생각하지 말라.

[문태준 시인]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283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403 詩와 자연의 축복 2016-05-06 0 5954
1402 연변작가협회에서 회원들 작품집 출간 전력 2016-05-05 0 4160
1401 [한밤중 詩 읊다]- 詩 몇쪼가리 2016-05-05 0 4714
1400 정호승 - 별들은 따뜻하다 2016-05-01 0 4498
1399 강은교 - 우리가 물이 되어 2016-05-01 0 4457
1398 박인환 - 목마와 숙녀 2016-05-01 0 3913
1397 문정희 - 한계령을 위한 연가 2016-05-01 0 4330
1396 기형도 - 빈집 2016-05-01 0 4251
1395 박용래 - 저녁눈 2016-05-01 0 4332
1394 최승호 - 대설주의보 2016-05-01 0 4376
1393 노천명 - 사슴 2016-05-01 0 4196
1392 오규원 - 한잎의 여자 2016-05-01 0 4710
1391 곽재구 - 사평역에서 2016-05-01 0 4568
1390 서정주 - 동천 2016-05-01 0 4382
1389 김춘수 - 꽃 2016-05-01 0 4469
1388 황동규 - 즐거운 편지 2016-05-01 0 4526
1387 이성복 - 남해 금산 2016-05-01 0 4280
1386 김수영 - 풀 2016-05-01 0 4196
1385 박두진 - 해 2016-05-01 0 3966
1384 김삿갓 竹詩 2016-05-01 0 3789
1383 나래를 펴는 엉뚱한 상상 2016-05-01 0 3932
1382 詩作은 온몸으로 하는것... 2016-05-01 0 3701
1381 [밤중 詩를 읊다]- 詩 몇토리 2016-05-01 0 4413
1380 소월 시 음미해보기 2016-04-26 0 4675
1379 내 문학의 고향, 어머니의 詩心 2016-04-25 0 4200
1378 [출근족들 왁짝지껄 하는 이 시각, 詩 한컷]- 늦봄 2016-04-25 0 4327
1377 [詩 미치광이]- 메아리 2016-04-25 0 3942
1376 [기온차가 심한 아침, 詩 한컷]- 문신 2016-04-25 0 3583
1375 [詩로 여는 월요일 아침]- 아이의 질문에 답하기 2016-04-25 0 4071
1374 공룡아~ 발자국을 가져가거라... 2016-04-23 0 3999
1373 한 <단어>앞에 문득 멈춰서게 하는... 2016-04-23 0 3363
1372 흑과 백, 문밖과 문안 2016-04-23 0 3642
1371 [詩와 詩評으로 여는 토요일]- 봄 셔츠 2016-04-23 0 3529
1370 김수영 시인 대표작 시모음 2016-04-22 0 6293
1369 다시 떠올리는 전위시인 - 김수영 2016-04-22 0 4159
1368 [밤에 올리는 詩 한컷]- 아이가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다 2016-04-22 0 4278
1367 [詩로 여는 금요일]- 앞날 2016-04-22 0 3506
1366 [안개 푹 낀 아침, 詩놈팽이 한컷]- 명함 2016-04-22 0 3901
1365 자루는 뭘 담아도 슬픈 무게로 있다... 2016-04-21 0 4061
1364 詩는 쓰는것이 아니라 받는것 2016-04-21 0 4352
‹처음  이전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