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文人 지구촌

문정희 - 한계령을 위한 연가
2016년 05월 01일 18시 57분  조회:4340  추천:0  작성자: 죽림

 

한계령을 위한 연가

 

               문정희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둘 바를 모르리.

 

<1996년>

 

▲ 일러스트 / 잠산

 

이 겨울에 사랑이 찾아온 연인들에게 이 시를 읽어보라고 권한다. 우선 어렵지가 않다. 쉽고, 리듬이 있어 흐르는 물처럼 출렁출렁한다.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눈이 쌓여 무게가 생기듯이 어느 순간 이 시는 우리들의 가슴께를 누르며 묵직하게 쌓이기 시작한다. 한 편의 시를 읽는 경험에도 '뜻밖의 폭설'은 내린다. 폭설이 내려 우리는 압도되어 이 시 안에 고립된다.

큰 고개를 넘으면서 느닷없는 폭설을 만나고 싶다는 말은 사실 좀 도발적이다. 우리는 그 불편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인은 '못 잊을 사람하고' 폭설에 갇히고 싶다고 말한다. 폭설에 갇히는 것이 고립의 공포로 엄습해오더라도. 사실 사랑만이 실용적인 것을 모른다. 사랑은 당장의 불편을 모른다.

모든 사랑은 고립의 추억을 갖고 있다. 서랍 깊숙이 넣어둔 연애편지가 있거든 꺼내서 다시 읽어보라. 연애편지는 고립의 기억, 고립의 문장 아닌가. 둘만의 황홀한 고립. 그러니 사랑에게 고립은 고립이 아니다. 우리는 사랑을 지속시키는 한 기꺼이 고립을 선택할 것이다. 그것이 후일에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무너뜨리더라도. 그것이 모든 길을 끊어 놓더라도. 사랑은 은밀하고, 은밀해서 환하다.

문정희(61) 시인은 여고 시절부터 전국의 백일장을 휩쓸었다. 백일장 당선시들을 모아서 여고 3학년 때 첫 시집을 냈다. 타고난 재기를 미쁘게 본 미당 서정주 시인이 시집의 서문을 썼고, '꽃숨'이라는 시집 제목도 달아주었다. 그녀는 여성의 지위와 몸을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가두려는 것들을 거부하면서 한국시사에서 '여성'을 당당하게 발언해왔다. 그러면서 여성 특유의 감수성으로 사랑의 가치를 활달하고 솔직하게 표현해왔다. '한 사람이 떠났는데/ 서울이 텅 비었다'라는 그녀의 문장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랑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활동이다. 톨스토이가 말한 대로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있어보라. 사랑은 소멸하고 말 것이다." [문태준 시인]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283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243 문학의 뿌리 알아보기- 대륙의 문학 2016-03-21 0 5007
1242 문학의 뿌리 알아보기 - 중국 근대, 현대 문학 2016-03-21 0 4796
1241 문학의 뿌리 알아보기- 元 明 淸 시대 문학 2016-03-21 1 5218
1240 문학의 뿌리 알아보기- 그리스, 로마 문학 2016-03-21 0 6152
1239 문학의 뿌리 알아보기 - 프랑스문학 2016-03-21 0 7856
1238 문학의 뿌리 알아보기- 남유럽 문학 2016-03-21 0 5989
1237 문학의 뿌리 알아보기 - 독일문학 2016-03-21 0 7222
1236 문학의 뿌리 알아보기 - 네덜란드, 벨기 문학 2016-03-21 0 4163
1235 문학의 뿌리 알아보기 -영국문학 2016-03-21 0 6585
1234 문학의 뿌리 알아보기 - 러시아 쏘련 문학 2016-03-21 0 9096
1233 문학의 뿌리 알아보기 - 북유럽문학 2016-03-20 0 5051
1232 문학의 뿌리 알아보기 - 동유럽문학 2016-03-20 0 5175
1231 문학의 뿌리 알아보기 - 미국문학 2016-03-20 0 5295
1230 문학의 뿌리 알아보기 - 라틴아메리카 문학 2016-03-20 0 4384
1229 문학의 뿌리 알아보기-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문학 2016-03-20 0 3725
1228 문학의 뿌리 알아보기 - 唐 宋 시대 문학 2016-03-20 0 5189
1227 문학의 뿌리 알아보기 - 漢 魏 六 朝 문학 2016-03-20 0 4622
1226 문학의 뿌리 알아보기 - 魏 晋 南 北 朝 시대 문학 2016-03-20 1 4440
1225 [일요일 아침 詩]- 목소리들 2016-03-20 0 3823
1224 [詩공부시간]- 詩는 자기자신의 분신덩어리 2016-03-20 0 4580
1223 [詩作初心]- 현대시론 개요(1,2) 2016-03-19 0 4317
1222 [詩作初心]- 현대시론 개요 2016-03-19 0 4345
1221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 폴 베를렌 2016-03-19 0 5062
1220 김혜순 시모음 2016-03-19 0 5013
1219 디카시는 언어 너머의 詩 2016-03-19 0 4611
1218 잊혀져가는 천재 시인 - 이근상 2016-03-19 0 4030
1217 [이 아침 신선한 詩 한잔 드시소잉]- 막돌 2016-03-19 0 3645
1216 정지용시인 산문 쓰다 2016-03-19 0 4383
1215 樹木葬 = "오규원 소나무" 2016-03-18 0 4460
1214 오규원 시모음 2016-03-18 0 5160
1213 <<가령>>과 <<설령>> 2016-03-18 0 3734
1212 [詩作初心]- 詩적 언어를 창조하는 은유 2016-03-18 0 4232
1211 詩쓰기는 텅빈 종이장 피땀같이 들여다보기 2016-03-18 0 4022
1210 현대시론 축소판 2016-03-18 0 4595
1209 [詩공부시간]- 詩속에 複數의 나 만들기 2016-03-18 0 4546
1208 [이 아침 신선한 詩 한잔 드시소잉]- 정식 2016-03-18 0 3806
1207 [詩공부시간]- 詩속에서의 참된 나 없는 나 만들기 2016-03-17 0 3925
1206 [이 아침 따끈한 詩 한잔 드시소예]- 해안선 2016-03-17 0 4051
1205 [詩공부시간]- 詩속에서 나를 찾기 2016-03-16 0 5180
1204 [詩공부시간]- 詩쓰기와 자아찾기 2016-03-16 0 3787
‹처음  이전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